극악서생 3부 – 52-3화 : 묘랑(苗琅) 진하연의 각성.(3)
“정말 하은이가 아닌 걸까?”
짧은 찰나의 갈등. 그러나 내 정글도는 그대로 뽑혀져 무정하게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 주인님! ]
다급한 몽몽의 경고와 함께 섬뜩한 무언가가 날 향해 엄습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저격?
판단 이전부터 운용된 보법이 순간적으로 나의 몸을 몇십 센티미터 옆으로 이동시켰다.
피잉! 핑!
작지만 악마적인 위력의 총탄이 바람을 가르는 익숙한 소리였다. 물론 그 두 발은 목표였던 날 잡지 못했지만 말이다.
[ 저격 방향으로 적병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
< 은사마군! >
나는 은사마군에게 보천구룡대의 출동을 지시하며 하은이, 아니 하은이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복제된 가짜 하은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목 줄기에 실처럼 가늘고 길게 그어진 상처를 만져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이 남자…! 나, 날… 정말로 죽이려고 했어. 자기 동생일지도 모를 날……”
그래, 그랬다. 아니… 모르겠다. 저격을 피하느라 정글도의 궤적이 달라졌던 건 틀림없지만, 그로 인해 가차없는 정글도가 빗나갔던 건지 아니면 본래 저런 얕은 상처조차 없었을 텐데 오히려 베이고 만 건지… 지금은 나 자신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난 최종판단을 정글도에 맡기고… 막말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휘둘렀던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녀의 목에서는 조금씩 선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겉 피부만이 베여진 것뿐이라는 건 알고, 상대가 진짜 하은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하은이와 똑같은 모습의 소녀가 내 칼에 의해 상처 입은 모습은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냉정하게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녀석의 앞에 섰다.
“자, 잠깐! 진정해요! 내겐 인질이 있다구요!”
“인질…? 하은이 말이냐?”
“오빠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아무래도 오빠에게는 통하지 않겠죠?”
“…그래. 복제는 복제! 결국 대체품에 불과하지. 어떤 이유로 대체하려고 드는 건지 몰라도… 그 대체가 오리지널만큼 쓸모 있다는 게 확인되기 전에는 오리지널을 없애버릴 수 없겠지. 물론… 대체가 먼저 망가져버릴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겠고!”
“그만! 제발 그만! 인질이 있다는 말 잊었어요?”
가짜 하은이는 다시 다급하게 외쳤고, 나는 다시 움직이려던 손을 움찔하고 멈추었다.
“하, 하! 이 내가… 다리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살기라니……”
길지도 않은 시간에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흐으음- 아무래도 이젠 나의 공갈 신공도 꽤나 경지에 이른 모양이군. 하긴… 이 정도까지 되려면 ‘통하지 않으면 진짜 죽일 각오’까지 해야 하지만 말이다.
“사, 사전정보와 달리… 정말이지 위험한 오빠로군요. 아무래도… 인질의 ‘증거’를 먼저 보여드려야겠어요.”
가짜 하은이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뒤쪽 공원 아래 방향에서 작은 타격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어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너, 너어-“
“아-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요. 아.직.은.”
[ 사실입니다, 주인님. 사람들은 약수터 옆의 시멘트 바닥이 소규모의 폭음과 함께 패이는 것을 보고 놀랐을 뿐입니다. 아직 아무도 그것이 총탄에 의한 일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
…치이. 그렇군. 인질은 이 공원에 있는 사람들 전부라 이거지? 어째서 이런 곳으로 유인하는가 했더니……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아까 여자 한 명과 함께 왔었죠? 그녀를 시켜서 사람들을 대피시킨다거나 하면 그것도 반칙! 당연히 그때는 저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을 확실하게 사살해 드리겠어요.”
가짜 하은이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새애액- 웃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 위로 무림시절 진하연의 모습이 살짝 겹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후- 즐거운 데이트의 마무리가 좀 우습게 되었네.”
비로소 여유를 찾은 듯 가짜 하은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의 먼지를 털어냈다.
“오빠도 그 무서운 칼은 좀 치우는 게 어때요? 이곳은 언제 다른 사람들이 올지 모르는 곳이니 말예요.”
“…상관없어. 그보다 난 네 오빠가 아니야.”
나의 차가운 대꾸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네. 어디에서 들통이 난 거죠? 보다시피 내 육체는 그녀… 오리지널인 그녀와 아무 것도 틀리지 않아요. 게다가 과거의 기억, 말투,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말예요. 음… 어설픈 천사 흉내보다는 마스터를 위해 당신에게 총을 겨누는… 그런 컨셉이 더 나았을까요?”
“…아니. 네가 선택한 컨셉이나 그거나 마찬가지야. 정하은이라는 소녀에겐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잠재되어 있을 테니 말이야.”
“흐응~ 하긴 그래요. 나도 그 때문에 선택에 꽤나 고심했었죠.”
“…확실히 넌… 며칠 전 내가 없애버린… DP의 마스터를 복제한 놈에 비하면 넌 상당히 괜찮은 편이야.”
“후후- 칭찬은 고마워요. 하지만 날 급조된 C14호와 같이 생각하는 건 곤란해요.”
14호…? 뭐야? 원판의 복제를 벌써 14번이나 만들었단 말이야? 설마… 나, 아니 란에게 죽은 녀석을 빼도 아직 가짜 원판이 13명이나 있다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말아요. 중요인물의 복제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한 번씩밖에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넘버가 어떻게 되든 마스터는 지금의 마스터 한 명뿐이죠.”
칫! 잘도 사람의 마음을 넘겨짚는 것까지 흉내 내는군.
“나 같은 경우는… 넘버 1…! 오리지널 그레이스 화이트 크라우드는 모르고 있었지만… 난 이미 5년 전에 태어나서 그 후로는 그녀와 똑같은 세월을 살아왔어요. 뭐, 비록 대부분 갑갑한 연구소 안에서였긴 했지만……”
5년 전…? 하은이가 화이트 가문에 입양되었다는 때로군.
“저어- 그런데도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거죠?”
끈질기군. 란도 내가 원판의 복제를 알아봤을 때 그러더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후후~ 나도 우리 몇 가지 우리 쪽 기밀 사항을 알려 줬잖아요. 그러니 오빠… 아니 당신도 말해줘요. 어떻게 내가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걸 알아본 거죠?”
“…아니니까, 아니라는 걸 아는 거지.”
“치이- 그런 대답이 어딨어요?”
“그냥…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야. 처음엔 나도 감쪽같이 속았을 정도로 완벽하게 하은이와 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도 뭔가 다르다고… 뭔가 빠졌다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야.”
“영혼… 말인가요? 소문대로 정말 사람의 영혼을 알아볼 수 있는 건가요?”
“…나도 몰라, 그딴 건. 내가 영혼까지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니까.”
“…그녀, 주가혜를 말하는군요. 아아- 있군요. 정말 그런 커플이.”
“다, 닥치고…!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하은이는 지금 어딨지?”
“으음- 말해 줄 수 없어요. 말해 주는 즉시 절 죽일 거잖아요.”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
“와아- 그래도 많이 좋아졌군요. ‘할지도 모른다’라니… 후후~ 역시 시간을 끌어서 달아 오른 감정을 식힌 것이 주효했어요.”
“지금 그 말로 역효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아차차~ 그렇구나!”
손뼉을 치는 제스처와 함께 애교스럽게 혀를 내미는 저 모습…! 저건 하은이가 아니다. 또 다른 연기인 걸까? 아니면 본래 자신의 인격… 으음. 아니. 지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지금 저 복제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할수록 나만 불편해진다.
“어쨌든, 말할 생각이 없다 이거지?”
“넵! 대신 힌트는 드릴게요.”
“…힌트?”
“그래요. 음… 실은 말이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린 우리의 공주님을 강제로 어쩌지 못해요. 즉,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납치를 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런… 제기. 그건 다행이지만, 그럼 조금 전까지 내가 얘를 죽이네 어쩌네 협박한 건 다 나 홀로 생쇼였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에 말이죠. 마스터께서는 웬일인지 제가 오리지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허락했어요.”
…뭐? 하은이도 이제 자신의 복제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고?
“자아-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신과 DP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오리지널이… 자신이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마스터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DP의 프린세스가 사실은 대체까지 준비된 장식품에 불과했다는… 그런 현실을 알게 된 오리지널은 과연…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가짜 하은이는 장난스런 마무리 멘트와 함께 다시 혀를 날름 내밀었다. 그러나 물론 나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애교를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원판, 그 놈의 뜻인가? 아니면 놈을 지배하는 조직의 뜻일까? 나도 아니고 하은이를 몰아세워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썅-! 그 미친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아- 또 이렇게 흉악한 살기를 뿜어내다니… 무서워서 더 이상 같이 못 있겠네요.”
“뭐?”
“후후~ 아쉽지만, 난 이만 가볼게요.”
“간다…고?”
“그래요. 뭐,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당신도 더 이상 날 붙잡아 두거나 죽이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 네가 지금 한 말들이 모두 사실일 경우에는 말이야.”
“흐응~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요? 오리지널이 지금 자신의 의지로 당신을 떠났다는 걸?”
“…그래. 난 의심이 많은 성격이거든.”
“믿으세요.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까불지 마.”
“아하하! 어쨌든 난 갈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 드리죠. 당신에 대한 데이터, 이번 일에 대한 반응 행동에 대한 자료는 이미 본사에 전달되었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걸 마지막 선물로… 난 이대로 달아날 거예요. 당신뿐만 아니라 마스터로부터! DP로부터! 저 지겨운 연구소로부터!”
뭐…? 이 여자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가짜 하은이는 내가 잠시 당혹해 하는 사이 스윽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대로 몇 걸음을 떼던 그녀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멈추고는 고개만을 내 쪽으로 조금 돌려 말했다.
“아- 그래도 우리 ‘러브리 닥터 제이’에게는 조금 미안하고 아쉽네. 으음~ 그러니까, 대신 안부 좀 전해 줘요. 당신의 두 번째 딸 ‘카디’는 행복한 가출을 했다고요!”
“러, 러브리? 젠장! 내가 닥터 제이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그보다 너, 이대로는 못 보내!”
그래. 저 녀석에게 듣고 싶은 정보가 너무나 많다. 정말 DP로부터도 벗어날 생각이라면 더더구나 잘만 설득하면……
“후후- ‘보호’를 미끼로 ‘정보’를 빼내고 싶은 모양이군요.”
으윽! 너무 정곡을 찔러오는군. 더럽게 아프네.
“비, 비슷은 한데, 미끼라기보다는… 네가 진심으로 DP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거라면……”
“…됐어요. 자유란 스스로의 손으로 움켜쥐어야만… 시작부터 자유로워야만 진정한 자유…! 자아- 그런 의미에서… 축포!”
가짜 하은이는 축포라는 외침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 주인님! >
몽몽의 경고는 다급했다. 카디의 치켜올려진 팔과 위쪽의 하늘에 검은 점 두 개가 떠 있었다. 조금씩 커져오는 점의 뒤쪽으로 보이는 저 회색 연기는…… 옘병! 로켓 탄이다! 두 개? 아니, 다른 방향에서도 두 개가 더…? 게다가 전부 아까 총질해 온 곳과는 다른 방향에서다. 썅! 이렇게 많이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처음부터 그렇게 찝찝했지!
“아하하하~ 안녕, 무서운 오빠!”
가짜는 지금까지 중 가장 진짜 하은이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당연히 그녀를 쫓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몸을 날려 단숨에 가까운 거리의 가로등 위로 뛰어 올랐다. 순식간에 4기의 로켓 탄두 모두가 야구공처럼 보일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아래쪽 공원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롭게 거닐고 잡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내 한 몸 피하는 훈련만 해왔는데! 썅! 하나라도 놓치면! 으! 뭘 쓰지? 삼시전결(三矢電訣)? 하지만 대공사격(?)은 자신 없는… 아!
나는 어느 틈에 내 정글도가 창백한 월광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무의식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무의식에 의지를 담아 거의 모든 내공을 최대한 빠르게 정글도에 응축 시켰다.
월광절화결(月光切花訣) 영월금(盈月襟)……
나는 몽몽이 출력해 주는 좌표와 나 자신의 감각을 의지해 남은 내공을 모두 경공으로 돌려 뛰어 올랐다.
출조(出釣)!
실전에선 처음으로 시도하는 월광절화결의 응용기였다. 전력을 다한 월녀의 옷자락이 본래보다 촘촘하면서도 넓게 펼쳐졌고… 나는 그것을 그물처럼 허공에 던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월광의 그물 속으로 4기의 로켓탄 모두가 물고기처럼 걸려들었다.
퍼펑! 펑! 펑!
예상 밖의 귀여운(?) 폭음과 함께 허공에 요란한 불꽃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축…포…가.
나는 허무함 때문에 주화입마에 빠져버릴 것만 같 은 기분과 함께 땅바닥에 착지해야 했다.
<모, 몽몽……!>
[죄송합니다. 미처 스캔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탄두에 살상용 폭약이 제거되어 있다 하더라도 만약의 경우 사람들에게 직격되었으면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주인님의 판단과 행동은 적절했습니다.]
<…쳇! 어쨌든 간만에 깨끗하게 한 방 먹었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짜… 아니 ‘진짜 카디’가 달려 내려간 계단의 난간으로 가보았다. 그 사이 공원 뒤쪽 아래까지 다 내려가서 조금 후미진 구석으로 달려가고 있는 카디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 앞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로켓탄에 실려 있던 폭죽의 불꽃 조각과 색종이(?)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녀석은 신나게(어쩐지 그렇게 보인다.)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시동을 건 다음 고개를 든 카디는 날 올려다보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나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에게 손을 저어 ‘그래, 가라 가!’라는 신호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천주!”
은사마군이었다. 돌아보니 카디가 내려간 반대방향의 계단으로 은사마군이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방금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자유를 찾아 떠나는 소녀가 축포를 터뜨려 달라기에 도와줬을 뿐이야. 그런 것치고는 내공 소모가 너무 심하기는 했지만……”
“그, 그게 무슨……”
“나중에 얘기해 줄게. 일단 병원으로 돌아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서 병원 방향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참. 보천구룡대 출동은 어떻게 되었지?”
“아, 예. 천주께서 말씀하신 상가 건물 두 군대로 출동하여 현재 옥상의 적들과 대치 중입니다.”
“우리 측 피해는?”
“아직 없습니다. 보천구룡대는 적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도 천주의 명령대로 적에게 경고만 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적들 역시 지금까지 별다른 행동 없이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다 합니다.”
“…그렇군.”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아, 아무래도 카디는 혼자서 탈출을 노린 게 아닌 것 같다. 몇 년 동안 밖으로 나올 때만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의 명령만을 따르는 자들을 만들어 놓았던 거다.
“모두 그냥 철수하라고 해.”
“예?”
“그리고 놈들에게 전하는 내 메시지, ‘잘해 봐라’.”
“그건… 아, 알겠습니다.”
나도 수하들도 공연히 헛수고만 하고 바보가 된 기분도 들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리 불쾌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카디가 앞으로 과연 언제까지 조직의 눈을 피해 살아갈 수 있을지……
[주인님! 카디가 다시 저의 스캔 범위 내에 들어왔습니다.]
<윽…! 설마 뭐 빠트리고 갔다며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과 제가 이동함에 따라 스캔 범위에 들어왔을 뿐, 그녀는 특정 위치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하은님입니다. 진짜 하은님이 DP 요원으로 추정되는 자들과 함께 카디를 잡은 것 같습니다.]
하은이가…? 아, 그렇구나! 난 하은이가 원판에게 먼저 진상을 따지러 갔을 거라고 예상했고, 카디 역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하은이는 그 전에 먼저 또 하나의 자신… 원치 않는 그림자를 ‘제거’할 생각인 거다! 제기!
내공은 아직 얼마 회복되지 못했지만, 나는 서둘러 경공을 발동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은이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싫었고 그 대상이 그 녀석 자신(?)이라 는 건 더더구나 막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