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3-2화 : Dr. J의 딸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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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53-2화 : Dr. J의 딸들.(2)


6-5. Dr. J의 딸들.(2)

하은이가 한국을 떠난 후 네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몽몽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하은이는 공원에서 나와 헤어진 후 약 4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일반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미국의 LA로 직항하는 비행기인 것으로 보아 중간에 전용기로 갈아탄다거나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야 나도 그런 하은이를 곧바로 따라가거나 아예 같은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최근 너무 오래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일단 급히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전화질로 떼우고 돌아가지 않았다가는 어머니께서 악착같이 추적(?)해 오실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어머닌 평소 혼자서는 국내 여행조차 잘 다니지 않는 분이지만… 당신의 아들들에 관한 일이 걸렸을 경우에는 미국은 물론이고 지구상 어디든 쫓아오실 열혈슈퍼모친이시다. 실제로 12년 전쯤인가? 큰형이 잠깐의 방황으로 가출했을 때, 어머닌 일주일만에 제주도까지 탐문 추적하여 체포(?)해 왔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 야단 좀 맞고(여행이 예정보다 길어진 것과 친구들이 다친 일로), 그런 다음에야 다시 새로운 여행을 허락 맡아야 했다. 씁쓸하면서도 다행인 건, 뜻하지 않던 도우미가 있어서 부모님들을 납득시키는 게 수월했다는 점인데… 암튼, 결국 나는 지금 이렇게 하은이를 따라 나서게 되었다.

“…LA로 향했다면… 아무래도 본사가 아니라 연구소로 가는 길을 선택한 모양이네요.”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카디가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닥터 제이에게 직접 따지러 갔거나… 아니면 마스터 역시 지금 연구소에 있을지 모르죠.”

“…카디.”

“예.”

“너, 정말 계속 날 따라 올 생각이냐?”

“이미 그렇다고 말했잖아요.”

“…자유는 어쩌고?”

“후후- 지금 이런 게 바로 자유 아닌가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말예요.”

“딴은 그렇다만……”

하은이가 애써 살려주고, 이어서 나도 지하무림의 힘으로 앞으로의 위장신분을 만들어 주는 등… 여하간 자유를 찾는데 최대한의 도움을 주려고 했건만 카디는 어째서인지 엉뚱한(?)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도와주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전 어쩐지… 조금 더 그레이스, 아니 하은 언니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어요. 수집된 기억 정보를 기계적으로 입력받는 게 아닌… 진짜 직접 만나고 얘기함으로서 알게 되는 언니를… 말예요.”

“…어쨌든, 이미 늦기도 했다. 죽음을 가장한 후 곧 바로 내 곁을 떠났다면 몰라도… DP의(+더 거대한 조직)의 정보망이라면 이미 네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너의 그 변장도 사실 헛수고일지 몰라.”

내 말에 약간의 변장(?)을 하고 있는 카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그 점에 대해서는 또 대책이 있으니까요.”

“대책? 그 변신 말고 또 뭐가 있다는 거지?”

“변신…이요? 훗, 칭찬이라고 듣겠어요.”

카디는 가볍게 웃어넘기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직도 카디의 현재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다. 사실 긴 머리를 뒤로 땋아 묶고 조금 두꺼운 테의 안경을 썼을 뿐인 걸 변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화장을 달리 한 점이 작용하자 곧바로 변장을 넘어서 변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게 나로서는 조금 신기하기까지 했다. 여자들의 화장이란 건 어쩌면 무공만큼이나 신비오묘막측한 분야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유준 오빠.”

“어, 왜.”

카디는 내 대답에서 내가 자신이 오빠라고 부르는 걸 허락했음을 알고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제 연기 어땠어요? 점수는?”

이 녀석… 아까 우리 집에서 지가 하은이 행세했던 걸 얘기하는 거다. 그래… 난 결국 또 부모님께 거짓말을 한 건 물론이고 이번에는 가짜 하은이를 동원한 생쇼까지 했던 것이었다.

“…75점.”

“에…? 이번엔 또 왜요?”

“왜요는 무슨 왜요냐? 너, 너무 오버했잖아! 넌 하은이로서 급히 미국에 돌아가야 하고, 내 도움이 필요하니 함께 가게 해달라는 얘기만 하면 되었는데… 거기서 왜 너의 어머니, 이모님의 유해를 모시고 돌아오겠다는 얘기를 한 거냐?”

“그거야… 하은 언니가 그걸 바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바라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약속해 버리면 어떻게 하냐?”

게다가… 그 얘기 때문에 어머니와 하은이가(?) 함께 서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어머니를 위로하고 진정시키게 할 타이밍을 못 잡아서 아주 난감했었다. 가뜩이나 어머니를 속이는 게 죄송스러웠는데 그 분위기는 정말이지……

“아, 암튼. 이제 넌 앞으로 하은이 흉내는 그만 두도록 해.”

“뭐… 나도 이제 흉내는 싫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언니의 역할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넌 왜 그렇게 하은이를 좋아하는 거냐? 내가 보기엔 이번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말야.”

“후후~ 그야…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언니에 대한 얘기만 듣고 보고… 같은 생각만 하도록 교육받았으니까요. 그럴 경우… 그 대상을 증오하거나 사랑해야 하는데… 전 ‘증오’라는 감정이 싫었거든요.”

증오라는 감정이 싫다라… 하은이도, 그 녀석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그 녀석은 좀 다를 것 같아 걱정이다. 난 어쩐지… 그 녀석이 이번에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같은 투로 말했던 건 아무래도 원판 아니, 그 닥터 제이라는 사람과 어떤 형태로든 ‘끝장’을 볼 각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받았다는 그 교육은… 역시 닥터 제이라는 사람에 의한 것이겠지?”

“아, 예. 아무래도 그 분이 연구소의 모든 걸 총괄하니까요. 하지만… 그 분이 직접 하는 교육시간은… 드물지만 재밌고 행복했어요. 다른 기계적이고 무뚝뚝하며 잘난 체하는 과학자들과는 차원이 틀리다구요!”

“…그래? 하지만 하은이는 그 사람…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더라.”

“에? 정말요?”

카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가 정말… 자기 ‘친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고요?”

친아버지…! 그래. 카디가 아버지 닥터 제이는 바로 하은이의 아버지, 나의 이모부인 것이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집안 어른들도 하나같이 ‘그 망할 자식’정도로만 칭하였기에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은이가 정하은이니 까 당연히 이모부 성도 정씨… J…! 으음~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양녀(?)인 카디와 달리 친딸인 하은이는……

“하은이는 아버지를… 글쎄, 사랑하지 않는다…? 뭐, 그 정도뿐이라면 오히려 다행일 지도……”

‘그 사람은 날 양육하여 DP에 넘긴 대가로 아주 근사한 위치에 올라있다.’

…그 것이 전에 하은이가 유일하게 자신의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 표현한 말이었다. 그 말을 할 때의 하은이는 아버지가 아니라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떠올린 듯이 살벌한 표정이었었다. 내가 살짝 쫄아서 더 자세한 걸 묻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래도 언니는 닥터 제이를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오해……?”

“그래요. 그 분은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소흘이 대했을 사람이 아니에요. 틀림없이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뭐야. 너도 뭔가 확실히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추정일 뿐인 거냐?”

“그, 그야… 아, 하지만 우리 러브리 대디가 그렇게 무정할 리가 없어요. 제가 본 5년 동안 날마다 입만 열면 러브리 하은! 러브리 시스!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요.”

이 녀석이 닥터 제이를 부를 때 러브리 어쩌고 하는 건 그 양반에게 물들어서 그런 모양이군. 어… 근데, 가만?

“우리… 이모님의 미국 이름은 ‘시스’가 아닌 걸로 아는데?”

…그랬다. 어머니께서 받은 편지에 적혀있던 이모의 미국 이름은 분명 플로라…였던가? 하여간 시스와는 비슷하지도 않았었다! 젠장…! 이모분지 나발인지 그 인간 설마 바람을… 아니면 혹시 처음부터 우리 이모님을 이용하기만 한… 썅! 만약 그런 거면 가만 안 둬! DP의 간부로서 복제인간 사태의 원흉을 따지기 전에 우리 집안의 배신자로서 죽여버리겠어!

“그런…가요? 하지만 그 분… 음, 전 한 번도 만나지 못해서 엄마라고까지 생각되는 건 아니지만… 암튼, 잠시만요!”

카디는 갑자기 스튜어디스를 불러 종이 한 장과 펜을 부탁해서 받더니만 거기에다 뭔가를 열심히 끄적대기 시작했다. 놀라운… 그림솜씨였다. 불과 몇 분이 지났을 때는 이미 종이 위에 낯익은 이모님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닥터 제이가 가진 사진 밖에 못 봤지만… 어때요? 이 분이 아니에요?”

“아, 아니… 맞는 거… 같은 데?”

“흐응~ 거봐요! 우리 닥터 제이는 역시 의리있는 남자죠?”

쯧, 어쨌든 일단…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확실하게 동일인물이라면, 시스라고 하는 건 아마도 두 사람 사이에서 통하는 이모님의 별명인 모양일 테고… 음… 근데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하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남자라면 어째서 하은이를 DP에 양녀로 보냈던 걸까…?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하지만 과연 원판이란 놈이… 아무리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주었다고 해서 실력도 없는 자에게 자신의 연구소를 총괄하게 했을까…? 어중간한 곳도 아니고 원판 자신이나 하은이의 복제인간을 만들어 교 육시킬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는 연구소를……? …사실, 나로서는 하은이가 말한 ‘딸을 팔아 얻은 근사한 위치’란 게 놀고먹는 간부가 아니라 유능한 과학자로서의 위치였다는 것부터가 뜻밖이었다. 우리 외가분들과 하은이의 증언(?)을 합쳐보면 ‘지지리 궁상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놈팽이라 마누라를 죽도록 고생시키다가 끝내 딸래미를 팔아먹어 출세한 파렴치 악당’…! 그게 그 ‘미국 이모부'(어렸을 때는 그렇게 불렀다)라는 남자의 이미지였는데……

“으으으으음… 모르겠다. 역시 사람이란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

“후후~ 그래요. 하지만 카디는 확신해요. 오빠도 분명 그 분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아무래도 카디는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 반대의 입장인 하은이 역시 진심이었다. 자신의 딸들을… 어찌 되었건 둘 다 자신을 아버지로 알고 있는 두 녀석에게 이렇게까지 상반된 인식을 가지게 한 닥터 제이, 나의 이모부는 과연 어떤 남자인 건지 지금은 모호하기만 했다. 당연히 앞으로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도 마찬가지이고…… 으음… 뭐, 이제 한 10분 정도 후면 일본에 도착해서 내 전용기로 갈아 탈 테니 늦어도 내일 새벽… 아니, 시차가 있으니 결국 오늘 저녁 무렵이 되겠군. 그 때는 문제의 이모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난 DP의 적으로서 보다, 먼저 우리 집안 대표로서 그 양반에게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더구나… 어머니께서 그에게 보내는 전언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오빠. 이 비행기… 왜 이래요?”

“뭐가?”

“뭐가 라니요. 이게 어딜 봐서 보통 여객기 안의 풍경이에요. 우리 말고는 승객들도 거의 없잖아요.”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카디가 무슨 얘길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실은, 우리가 탄 이 아씨바~ 항공인지 뭔지가 얼마 전부터 조종사들이 파업 중이래. 사실 파업자체는 그렇다 치겠는데… 조종사 노조에서 주장하고 있는 조건들 중 좀 썰렁하게 몇 개 있어서… 현재 많은 시민들이 항공사보다 노조를 더 욕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군.”

“아- 그래서 승객들이 먼저 이 항공사 비행기를 보이콧하게 되었다는 건가요?”

“어… 나도 몰랐는데 점점 그러기 시작한 모양이더라.”

“욕하는 입과 달리 행동에는 소심한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이 돌아 설 정도라면… 상당히 비상식인 요구를 하나 보네요?”

“그게… 난 요즘 무지 바빠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조종사가 돈을 얼마를 받든 내 알바 아니고, 난 오히려 조종사들은 다른 많은 승객들의 생명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의 고액 연봉과 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번에 파업하고 있는 조종사들의 요구 중의 적어도 하나는 나도 좀 그런 게… ‘조종사들의 탑승 전후 약물 및 알콜 검사 중지’…라 나? 아니, 타기 전에 하지 말고 타고 난 다음이나 사고가 나면 그 후에 검사 하라던가?”

“…사고가 난 후에요…? 이런, 우리도 딴 비행기 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급하기도 급했지만… 설마 모든 조종사들이 다 그렇겠냐. ‘일부’겠지.”

“하긴…!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는 이 항공사를 이용하지 말아야겠네요. 하은 언니와 유준 오빠 생각해서 한국 항공사를 주로 이용하려 했더니……”

쯧…! 괜히 얘기해 줬나? 게다가 오늘 이 비행기에 탄 다른 승객들 구성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단단히 국제망신인데… 에효~ 사실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후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사건이 하나 더 있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나 자신 의 일이 더 복잡하고 심각하므로 애써 그런 사소한(?) 일들은 머리 속에서 지우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비행기는 일본의 오키나와에 도착했는데… 나와 카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예쁘장한 승무원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죄송하지만, 조금 서둘러 주세요.”

그 사소한 또 하나의 일 때문인 것 같군.

“왜요?”

내가 짐짓 모른체 하자, 승무원은 힐끔 다른 좌석 쪽의 눈치를 살핀 후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조금 전에 깨어나서도 혼자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다른 일행들이 있으니……”

이 여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란… 비행기에 오르는 도중에도 내 뒤에서 계속 이번 파업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고 투덜대던 일본인이었다. 그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술 한잔 걸치고 알딸딸한 상태였던 모양인 데, 타고 나서도 계속 스튜어디스들에게 술을 요구한 건 물론이고 징그럽게 집적대기도 했었다. 같은 일행이랍시고 있는 몇 명들도 말릴 생각은 않고 그 녀석이 떠드는 소리에 맞장구나 쳐대고 있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난…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술 먹고 뻘짓하는 건 매한가지라 는 생각을 하며 참았다. 더구나 비행기 연착은 분명히 우리측 항공사 잘못이고 말이다. 또한… 내가 최근 들어 다국적 부하들을 거느리게 되다 보니(지하무림인들은 겉으로만 중국인이지 실제로는 세계인에 가깝고, 일본인 혼혈도 있다.)… 그 동안 너무 일본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가 반성하기 시작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자꾸만 내 귀에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다케시마는 우리 땅, 조센징들의 불법 점거 기분 나빠.’였다. 아니, 그건 그나마 점잖게 표현한 거고 실제로는 상당히 밥맛 떨어지는 말투와 터무니없는 논리의 헛소리들이었다.

“저어… 죄송하지만 저희로서는 일단 공항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동료들의 대표로 온 듯한 스튜어디스는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나는 태연히 웃어 주었다.

“상관없어요. 당신들은 여객기 승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거죠.”

“그, 그래도 저희는 고객님께 너무 죄송해서… 아, 하지만 기장님께서 일부러 조금 멀찍이 세웠으니 빨리 피하시면……”

스튜어디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웬지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결국 결심을 했는지 작은 목소리지만 힘있게 말했다.

“어쨌든… 고객님이 그 개자식!을 화장실에 거꾸로 처박은 건 정말 통쾌했어요!”

으음… 난 솔직히 요즘처럼 평화로운(?) 국제화 시대에 이웃 나라 사람에게 너무 심하지 않았나도 생각했지만,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야 뭐…… 나는 승무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담은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나가다가 화장실에 처박혔던 자의 일행들 좌석에 왔을 때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오는 동안 계속 각자의 좌석 밑에 애매한 자세로 ‘대가리 박아’를 하고 있던 그들을 흘끔 한 번 본 다음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나를 따라서 놈들이 성실하게 대가리를 박고 있나 감시하고 있던 보천구룡대 대원도 자리를 뜨자 내가 입구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뒤쪽에서 일본말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승무원! 뭐해! 경찰! 경찰 불러! 경……”

내가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가장 큰 소리를 내던 자가 입을 다물고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들 보다 더 안 쪽에서 나오던 다른 거구의 사내 한 명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찍어눌렀기 때문이었다. 그 찌그러진 자의 일행들도 알아서 입을 다문 건… 안 쪽에서 일제히 일어나서 나오기 시작한 다른 승객들 모두가 비슷한 분위기의 살벌한 인상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입구에서 친절한 미소로 날 배웅하던 승무원들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서, 설마. 저 사람들을 뺀 다른 승객들 전부가 고객님의……”

그렇다. 오늘 이 여객기의 승객들 중 저 재수 없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승객들은 나의 보천구룡대와 카디의 부하들(공원에서 날 저격했던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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