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5-1화 : 폭풍 속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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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55-1화 : 폭풍 속으로.(1)


6-7. 폭풍 속으로.(1)

그러니까… 공중전을 포함한 전투를 앞둔 시점에서 헬기 조종에 관한 한 전세계의 용병들을 통 털어도 한 손에 꼽힐만한 실력자라는(그 세계 중개인 페트라양의 증언) ‘블랙 스마이크’ 제임스 터너 대장과 그의 비행 용병단을 계속 쓸 수 있게 된 건 좋았다. 그런데 그 대신 출발단계에서부터… 조금, 시끄러웠다.

“대장! 한동안 멀쩡하다가 또 멋지게 미쳐 버린 우리 대장!”

“으흑~! 난 죽어도 대장을 원망할 거요!”

“결국 버릇을 못 고쳤어! 예감이 안 좋은 날은 침대에 단단히 묶어 뒀어야 했는데!”

무선기를 통해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부하들의 항의 소리야 나에게까지는 그리 크게 들려 오지 않았지 만……

“그러게 너흰 그냥 가라니까, 왜 너희들까지 전부 따라 오는 거야?”

“울보 티미! 또 전투 중에 울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꺼져!”

“컨트? 넌 또 뭐야? 네가 내 애인이냐? 엄마냐?”

모두 함께 참전을 선택한 부하들에게 일일이 마주 고함을 질러대는 터너의 목소리는 이륙을 시작한 헬기의 엔진과 프로펠러의 소음조차 무색할 정도여서, 그의 좌석 바로 뒤의 세 번째 보조 승무원 자리에 있던 나로서는 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크흠~ 흠! 부하들과 아주 사이가 좋은 대장이로 군. >

“어? 아- 보스?”

내 전음에 흠칫 놀라 소음공해(?)를 멈춘 터너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륙 전에 나의 전음능력이라던가 몇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알려 주고 실제로 겪어 보게도 해 주었지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새롭고 괴이한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게 빠른 걸 보면 역시 산전수전에 당연히 공중전은 더 고수인 사람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 후후~ 사이가 좋다기 보다는… 말은 이래도 결국 다들 나와 같은 부류인 녀석들이거든요. >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나로서도 뜻밖이었던 것은, 조금 전 이 터너 대장은 물론이고 다른 부하 조종사들까지도 나의 터무니없는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도중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내가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남자는 어쩌면 약속한 바를 실현 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쪽에 기대를 걸기 시작한 것 같았다. 기대를 받는다는 건 언제나 부담을 동반하는 거지만서도……

< …어쨌든, 내가 좀 전에 말해 준 작전 내용은 잘 숙지하고 있겠죠? >

“숙지하고 말 것도 없이, 작전이라고 해 봐야 ‘1차 포인트 지점’까지 죽도록 달아나는 게 전부 아닙니까? 헬파이어(hellfire, 주로 대전차용으로 쓰이는 레이더 유도 미사일.)와 20, 30mm체인건, 거기다가 사이드와 인더(sidewinder, 공대공 미사일) 같은 것까지 퍼부어 댈 녀석들을 뒤에 달고 말입니다.”

< 그야 일단은 그렇지만 그밖에도…… >

“후후후~ 조종에 관한 한 세세한 건 맡겨 두시고! 보스, 보스는 약속만 잘 지켜주면 되는 겁니다.”

쯧…! 위급할 때는 전원이 나(사실은 몽몽)의 지시에 따라 헬기를 조종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데… 어째 이미 자신들만의 세계에 반 이상 넘어가 버린 것 같군. 아직 이들의 실력을 본 적이 없어서 완전히 믿기는 좀 어렵지만… 자기 일처럼 기세가 오르기 시작한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기도 그렇고… 으음~ 모르겠다!

< …출격! >

나의 지시와 함께 우리의 헬기 다섯 대가 일제히 앞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그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면에서 접근 중인 적의 헬기 부대는 좌우로 넓게 펼쳐진 대형으로서 우리의 열 배가 넘는 숫자를 과시하며 도도하게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 …과 동시에 작전 개시! >

곧바로 이어진 명령에 따라 우리 측 헬기들은 모두 전진 각도를 45도 가량 바꾸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도 일제히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와 함께 좌우 1자 횡대였던 적의 대형이 서서히 변화하여 이 쪽에서 보면 한 대 뭉쳐지는 듯한 형태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 적기들의 전체적인 선회 속도와 타이밍으로 보아 약 3분 24초 후에 최소한 4대의 적기에게 후미를 잡히게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

내 눈보다 정확한 몽몽의 보고대로라면, 적들은 역시 전기가 다 속도를 조종하여 대형을 유지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따라서… 우리가 후미를 잡힐 때쯤의 적들은 종대로 길게 늘어져 따라 붙는 형태가 될 것이며 그 때 우리 후미에 붙은 적기가 4대 정도뿐이 라면… 그래, 일단 시작은 성공적인 셈이다.

[ …주인님. 예상대로 적기의 기체에는 저의 스캔과 전자 장비교란을 막는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

쳇…! 적기가 가까워져 오자 안 좋은 사실이 먼저 확인되는 군. 하지만 뭐, 그 거야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 다.

“…그런데, 보스! 적기들은 왜 아직… 아니, 처음부터 대공 화기로 공격해 오지 않았던 겁니까? 놈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가 이륙하기도 전에 박살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 그야. 이륙하기 전에 공격해 봐야 내가 타고 있지 않는 한 헛수고였을테니까 그랬겠지. >

“그 건 적에게 우리… 아니, 보스의 부하들까지도 아무 관심이 없다는 얘기군요!”

역시 이해가 빠르군.

“적이 노리는 건 당신 한 사람! 그렇다면 지금도 공격해 오지 않고 있는 건 당신이 타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어?”

아무래도 터너의 말에 내 대신 대답이라도 해 주려는 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터너는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다는 표정으로 무전기의 수신 신호를 보다가 조금 머뭇거리는 손길로 수신 스위치를 올렸다.

“…아… 여기는 더블 이(double E)… 이블 이글스 (Evil Eagles) 부대의 대장 ‘브라이언 매카시’ 대령이다. 들리는 가, 블랙 스마이커 소대! 오버!”

역시 적으로부터의 연락이다. 이륙한 후에는 어떻게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냈을 텐데… 그래도 확인을 하려는 거던가, 아니면 그냥 내게 반갑다는 인사라도 하고 시작하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판의 세뇌교육 때문에 DP의 전투원들 모두에게는 내가 무지 탐나는(?) 사냥감으로 인식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매카시… 브라이언 매카시 대령…? 난 귀관이 누군지 모른다, 오버!”

“확실히 난 그 유명한 블랙 스마이커에 비하면 무명이 지.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 오버!”

“젠장! 그보다 대답하라! 어떻게 우리 무전 주파수와 암호를 알아냈지? 오버!”

“그야 당연히 조금 전 우리 쪽에서 보낸 특수 부대가 자네들의 본부… 주제넘은 일에 참견한 용병들의 본부를 제압 완료했기 때문이다, 오버.”

뭐…? 이, 이런…! 이건 나로서도 뜻밖의 사태다. 난 DP의 기술력으로 이 헬기의 무전 주파수와 암호를

알아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이렇게 되면 지원대기 중이던 헬기들은 물론이고 그 곳을 기점으로 모이고 있었을 보천구룡대들까지 당했다는 건가…? 그렇게 쉽게 당할 이들이 아니지만 아직 전투를 시작하기 전이라고 생각해 방심한 상태였다면… 빌,어,먹…을! 왜 난 적의 이 정도 움직임도 예측하지 못했던 거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스마이커. 그리고……”

“닥쳐!”

터너는 흥분하여 오버라는 말을 붙이는 습관마저 잊을 정도로 이성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과 음성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착각하지 마라!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고 기가 죽는 건 정규군들의 얘기…! 우리들 용병에게 본거지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야. 오…버.”

“…모처럼 상대하게 된 적이 기가 죽지 않았다니 기쁘다. 그럼 이제 너희들을 고용한 사람… 진유준님을 바꿔주기 바란다. 오버.”

매카시 대령의 태연한 대꾸에 터너는 이를 부득 갈고는 몇 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내게 무선 헤드폰을 건네주었다.

“…나, 진유준이다.”

“안녕하십니까, 진유준님. 먼저 닥터 제이, 현재 연구소 방위 부대 사령관으로부터의 전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본부나 다름없는 연구소의 소장에 방위 부대 사령관이라… 하은이 말대로 꽤나 출세하셨군, 우리 이모부.

“…살아서 내 앞까지 와 보라. 이상입니다.”

“그게… 다인가?”

“그렇습니다. 연구소 안에 틀어박혀 현실의 전투를 모르는 임시 사령관의 불가능한 주문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오버.”

“…확실히 그 사람 생각은 나도 잘 모르겠군. 지원부대를 미리 제거하는 작전 같은 건 나 같은 놈… 게다가 ‘적이라도 되도록 적게 해치며 나가자’라는 생각을 하고 오는 놈을 상대로 쓰는 게 아닌데 말이야.”

나는 조종석 뒤에서 물러나 은사마군과 은사도객들이 대기 중인 선실로 자리를 옮기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임무에 충실할 뿐인 너희들에게는 미리 사과하겠다. 이젠 모두 제거하고 가겠다. 미안하다. 오버.”

“하핫! 이거, 이거… 첨단 병기로 좌우되는 전장의 현실을 모르는 분은 당신도 마찬가지였군요. 물론 당신이 바이오닉 솔져를 능가할 정도의 초인이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그 힘이 우리 이블 이글스를 상대로 어디까지 통할지…”

나는 통신을 끊고 더 이상 비웃음 섞인 상대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부족했던 적의와 살기는 수하들의 복수라는… 우두머리로서의 의무감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들어라! 아무래도 지원 부대는 오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따라서 제 1포인트까지의 유인작전 종결 후… 적당히 적과 대치하며 지원부대를 기다린다는 작전은 취소한다. 나와 침투조 역시 전투 도중 먼저 빠져나가는 예정을 취소하고 적의 섬멸에 전력을 쏟을 것이다. 이상.>

나는 그렇게 다른 헬기의 모두에게까지 전음으로 작전 변경을 알린 후, 은사마군 뒤쪽에 놓여진 무기 박스에서 스팅어(Stinger) 미사일 발사기를 꺼내들었다. 현대 병기를 멀리하고 정글도 만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결심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휘관 잘 못 만나 적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한 수하들을 위한 추모의 폭죽(?) 한 방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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