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5-2화 : 폭풍 속으로.(2)
“보스!”
[ 주인님! 포격이 시작됩니다! ]
터너와 몽몽이 거의 동시에 경고해 왔다. 그 직후 우리 쪽 헬기로부터도 팍-! 파앗! 하고 작은 발사음과 진동이 느껴졌다.
이제야 적들이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고 우리 측 헬기들도 방어를 위해 플레어(flare)나 채프(Chaff)인지를 발사한… 읏!
플레어나 채프는 분명히 적의 유도탄을 교란시키는 방어 병기들이지만 그런 걸 쏜 후에도 본체는 기존의 기동 방향을 바꿔서 피해야 한다. 당연히 내가 서 있는 헬기, 아니 공간 자체가 급격하게 한 쪽으로 쏠린다 싶었고, 그 다음 순간에는 더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종착역이 없는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
순간의 감상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탄 헬기가 어떤 재주를 부리며 날고 있든 상관없이 균형을 잡으며 출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터너와 몽몽의 보고만 들어도 대충 상황 파악은 되겠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에 출입구를 힘주어 열었다.
물론 난 이미 얼마 전에 몇 만 피트의 상공에서 맨몸으로 떨어져 본 경험까지 있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를 안 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그 때와는 많이 달랐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의탁하고 있어야 하는 이 헬기가 하늘을 달리는 격렬한 움직임과 속도감… 그리고 그런 우리를 적들의 헬기 부대가 바짝 뒤쫓으며 말 그대로 지옥의 불길과 같은 무기를 쏴 대고 있는 이 상황은 분명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제 멋대로 요동치는 하늘과 땅… 그 속에서 악귀처럼 따라붙고 있는 수십 대의 적기들… 그리고 그로부터 무수히 날아들고 있는 미사일 포격…! 이건… 가상현실 속에서의 훈련보다 더 거짓말 같은 현실…! 이… 이 비현실적인 느낌… 그래… 아니, 그래서… 그,래,서, 괜찮은 것 같군. 내 컨디션은……!
[ 주인님…! 한 가지 보고드릴 사항이…… ]
< 이번 전투에 필요한 일이냐? >
[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은 아닐 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
< 그럼 됐다, 몽몽! 지금이 딱 좋아! 알겠나? 너도 당장의 전투에만 집중해! >
난 몽몽의 보고를 씹고 터너를 불렀다.
< 터너! 플레어는 얼마나 남았지? >
“벌써 1발씩 밖에는… 윽! 지, 지금 막 사용했습니다!”
그의 보고가 있은 직후, 우리 측 플레어에 적중한 적의 미사일들이 연속해서 허공에서 폭발하며 불꽃과 충격파를 흩뿌렸다.
“하지만 아직도 놈들의 공대공 화력은 건재합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평시보다 많이 실어 놨었다고 해도, 불과 다섯 대에 탑재하고 있던 플레어 정도로 오십 대가 넘는 적기의 유도탄을 모두 소모시킬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 우린 더 유도탄을 따돌릴 방법이 없고 말입니다!”
이 것도 당연한 상황이다. 다른 모든 전투 상황에서도 적에게 후위를 잡히면 싸우기가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고속으로 기동하며 싸우는 공중전에서는 특히 치명적이다. 더구나 앞으로만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상태의 헬기는 다른 어떤 현대 병기보다도 후위 공격에 약하다. 탑승자들 중에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나 화기가 있어도 꼬리 쪽 프로펠러 때문에 뒤쪽으로 사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당장 기수를 돌려 정면으로 맞붙는 것이……”
< 이제부터는 내가 어떻게든 한다고 했잖아! 지시한 대형으로 가기나 해! >
“아, 알겠습니다! 으~ 이제와서 당신을 안 믿을 수도 없으니……”
내가 미리 지시해 둔 대형이란 건… 사실, 별거 없다. 내가 탄 헬기가 맨 뒤로 빠지고 다른 헬기들은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인 형태로 날아가는 거다.
< 몽몽…! 이제부터 예정대로 너와 내가 후위 방어 및 반격에 나선다! >
[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적의 방어 장비 때문에 저의 교란 활동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 괜찮아, 몽몽. 대신 내가… 발동 걸렸으니까! >
나는 그렇게 선언함과 동시에 출입구의 턱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후욱-!
짧은 찰나의 부유감은 곧바로 내 몸이 폭풍 속의 휴지조각처럼 날리는 무력감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든 스팅어 미사일과 발사기의 무게 때문일까? 날리는 기세 못지 않게 빠른 낙하와 함께 등 뒤에서 들리던 카라락~하고 와이어가 풀리는 소리가 어이없을 정도로 짧았다. 와이어가 모두 풀림과 동시에 내 몸은 콰악! 엄청난 충격과 함께 허공에 걸렸다가 장난감처럼 퉁겨 올랐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간이 하늘에서 땅으로 자유낙하하는 속도는 시속 200KM 정도라고 했지만… 난 지금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헬기에 매달려 버린 거니 이런 속도감과 압박은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동안 단련된 균형감각과 경공의 요령으로 몸을 가누려 애쓰며 스팅어 미사일 발사기를 적들에게 겨누기 시작했지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쳇..! 헬기의 화물 운송용 와이어를 이용해 수상스키를 타듯 헬기에 매달려 가며… 그러니까 꼬리 프로펠러가 앞을 가리지 않는 위치에서 반격을 꾀한다는 아이디어까진 좋았는데… 이거 여건이 생각 이상으로 나쁜 걸?
[ 주인님! 사격 전, 신체 안정에 좀 더…… ]
< 나도 그러고 싶다만 시간이 없잖아! >
그래. 아직 적들이 내가 이렇게 헬기 뒤에 매달린 행동의 의미를 알아채기 전에 한 방 날려 줘야 한다. 요동치는 몸을 고정시킬 수 없다면 그 움직임에 순응하면서… 서두르면서도 침착하게… 침착하게…..
군대에서의 저격수 교육 때의 경험… 아니 지금은 그 보다 궁술을 수련할 때의 감각이 더 나를 이끌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미쳐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묵직한 느낌과 함께 날 떠나 적기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는 미사일의 불꽃을 보며 확신했다.
빗나가지 않아, 이건!
[ 적의 선두기, 주인님의 미사일을… 회피! ]
엑! 피했어? 전속력으로 마주 날아오던 놈이?
[ 뒤… 3열의 적기에 명중! ]
다, 다행히 뒤에 놈이 맞아 주었군. 빗나가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나 자신에게 졸라 벌쭘 할 뻔했다.
[ …4열과 5열 적기들의 대열 이탈 움직임으로 보아 선행기 폭발 여파에 의한 충격을 일부 받은 것으로 추정! ]
나는 ‘이제 진짜 시작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등에서 정글도를 빼들었다.
[ 적기가 재차 포격을… 이번엔 모든 적기로부터입니다. ]
쳇~!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53기나 되는 헬기들이 줄지어 발사한 유도탄들이 눈앞의 공간을 온통 뒤덮기 시작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예전 산 속에서 작업 중 땅벌 집을 건드려서 그 작고 무수한 독종들에게 휩싸였던 순간의 섬뜩함이 떠오르는군. 그러나… 당연히 지금의 나는 그 때처럼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벌집 제거에 나서야 했던 군
발이가 아니지!
< 몽몽! >
[ 예. 이미 적의 포격에 대한 2차 회피 프로그램을 가동 중입니다. ]
그래…! 적들은 현재 몽몽이 자신들의 전자장비를 교란할 수 없게 방어하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몽몽이 적들의 레이더나 유도탄의 추적장치를 직접 제어하는 방식의 1차 회피 수단은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적들을 직접 제어하는 게 아니라 적의 레이더나 유도탄의 추적장치가 탐지하는 근본 방식을 이용할 수는 있다고 했다.
즉…! 몽몽은 자기 주변의 일정 영역까지 방어막 같은 걸 쳐서 적의 레이더가 발산하는 전파를 난반사시켜서 모습을 감추거나(스텔스기와 비슷한 원리) 위치를 잘못 알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속임수 자외선의 발산으로 자외선 감지 유도탄 자체를 혼란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 1호기와 4호기가 계속 산발적으로 저의 배리어 밖으로 벗어나고 있습니다! ]
그래, 이거. 이게 문제다! 성능에 비해 출력이 낮은 게 몽몽의 유일한 약점이다. 그래서 우리측 헬기들은 모두 몽몽의 좁은 배리어 범위 안에서만 날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 터너! 어떻게 된 거요! 계속 간격 유지하라고 했잖소! >
“계, 계속 이런 간격으로 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
< 쉬운 일이 아니면 못한다고? 그 정도 용병이었어, 당신들은? >
“빌어먹을…! 야! 티미! 컨트! 정신 안 차릴래? 2년 전 개미 작전 때 생각 안나?”
터너가 자기 부하들에게 무선으로 발악적으로 고함을 지르자 1호기와 4호기 조종사들도 다시 더욱 애써 헬기간의 간격 유지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나도 정글도에 양강(陽剛)의 내력을 집중해 생사금마도결을 펼쳤다.
잠성결(箴星訣)의 유성폭우(流星爆雨)……! 플레어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열기와 빛을 발산하는 양강의 응집체를 토해내는 초식이다. 그걸 펼친 내 정글도에서는 무수한 화염 덩어리와 같은 형체들이 쏟아져 나왔…긴 한데! 제기!
쒸-훙! 나의 바로 옆을 날카로우면서도 뜨거운 바람이 지나갔다. 헬기에 매달려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날고 있는 나를 오히려 스치듯 추월해 버린 것은 적의 미사일 중 하나였다. 50발이 넘는 미사일 중 대부분은 몽몽의 배리어와 나의 유성폭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주었지만 몇 발인가의 감지장치는 몽몽의 배리어 밖으로 나갔던 헬기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빌어먹을! 방금 한 발은 다행히 나나 다른 헬기들까지 스쳐 지나갔지만 그 뒤의 다른 몇 발, 네… 아니 다섯…? 적어도 다섯 발은 정확하게 우릴 향해 엄습해 오고 있다.
[ 주인님! 방어 한계초과입니다! 탈출을…… ]
매달려있는 와이어를 자르고 나 혼자 땅으로 튀라고? 웃…기지마! 난 저들의 주인… 마군황이란 말이다!
내 팔은 결국 가장 익숙한 초식을 선택하여 미사일들을 향해 백색섬광의 화살을 마주 날렸다.
[ 대비! 충격 여파 대비! ]
몽몽의 짧은 경고음이 울린 직후, 사방에서 엄청난 폭음과 충격파가 덮쳐왔다. 나는 남은 내력을 모두 호신강기(護身强氣)에 돌리며 몸을 움츠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
충격파…는,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은 듯…! 다행히 내 호신강기가 뚫릴 정도의 파견 타격이 없어서… 아, 아니 그보다, 나… 나 지금……
[ 주인님! 주인님께선 조금 전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셨습니다. ]
그, 그래… 나, 방금… 삼시전결로 다섯 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요격했다!
[ 익숙하지 않았을 뿐인 대공화기 요격 능력은 훈련에 따라 단시간에 습득 가능한 것으로 예상했지만, 해당 초식의 업그레이드는 저도 단기간에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 그, 그게… 뭘 축하 받고 어쩌고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만… 어쨌든 씨이~ 졸라 기분 좋긴 하다! >
패도광협 선배가 공식적(?)으로 남긴 삼시전결의 최고 경지는 일격에 네 줄기의 섬광…! 그걸 내가 지금 넘어선 건가…? 그… 뭐냐, 물론 그 양반이 비공식적으로 어떤 경지까지 갔는지는 모르는 거지만… 그, 그래도 일단!
< 터너! 뭐 하는 거요? >
나는 아무래도 살짝 들뜬 기분이 되어 터너에게 외쳤다.
< 직격 된 거 없잖아! 근데 왜 이렇게 술 취한 것처럼 운전을 하는 거지? >
“아무리 직격 되진 않았다고 해도… 아, 아니 그보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겁니까?”
터너는 주변의 허공에서 강력한 미사일들이 폭발한 여파 때문에 헬기 조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가 어떻게 그 미사일들을 요격한 건지가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 지금은 계속 조종에나 집중하쇼! 어쨌든 적의 공대공 화기는 이번 공격으로 전 거의 다 소모되었을 거야! >
전투 헬기는 본래 지상의 전차를 효과적으로 박살내는 게 주목적이고 겸사겸사(?) 지상시설 및 병력까지 상대하면서 지상군을 지원하기도 하는 병기다. 영화에서처럼 헬기끼리 공중전을 벌일 일은 그리 많지 않아서 공대공 미사일은 몇 발 장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 하고… 실제로 지금 우리를 쫓고 있는 놈들의 기체에도 사이드와인더 같은 공대공 미사일은 각각 두 발씩 밖에 장착되어있지 않았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놈들의 화기는 그 뿐이 아니잖습니까!”
터너의 말대로 놈들에게는 아직 헬 파이어 미사일, 체인 건 같은 것들이 건재하다. 그 것들은 본래 공대지, 즉 지상의 적을 타격하기 위한 화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공중전에서 쓰지 말라는 법은 없겠고 말이다.
“게다가 우리 블랙 호크의 기체는 놈들보다 느립니다! 이대로 직선 비행을 고집한다고 해도 얼마안가 따라 잡힌단 말입니다! 저 숫자의 적들이 근거리에서 탄막을 전개하기 시작하면……”
< 그건 나도 알아! 군소리 말고 지금부터는 헬기 조종도 내 지시에 즉각 따르는 거야! >
“…알겠습니다. 따라드리지요! 그 대신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좋아! 터너가 헬기 조종에 대한 자존심까지 버리고 충실히 따라 준다면 당연히 우리의 승산이 더 높아진다.
< 몽몽! >
[ 예, 주인님. 제 3차 회피 프로그램도 이미 가동했습니다. ]
3차 회피 프로그램이란, 몽몽이 내 목소리를 가장해 우리측 헬기들 모두의 움직임을 지휘하는 방식을 말한다. 몽몽은 현재 적 헬기들의 전자 장비를 직접 해킹할 수는 없지만, 놈들의 표면적인 움직임만 보고도 직사화기의 사격 괘도와 포인트를 계산하는 건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 그러고 보니, 몽몽! 저 놈들 유도 미사일 공격 이후로는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벌써 이만큼이나 거리를 좁혀 놓고도 말이야. >
[ 아직 적기 사이의 무선 암호를 모두 해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일부 해독된 내용에 의하면… 적의 지휘관은 미사일 공격을 막아낸 주인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여 대응을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뭐야…? 원판이 내 무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면 일단 듣기는 했는데 믿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 …하지만 결국 공격을 진행하는 명령이 하달된 것 같습니다. ]
<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군. >
놈들의 움직임에 생긴 변화는 내 시야에 직접 보이는 적기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하는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50대가 넘는 헬기들이 각각의 진로를 변경하며 서로의 사격을 방해하지 않는 대형을 짜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미사일을 발사할 때는 앞 열부터 발사하고 비킨 후에 다음 열이 발사하는 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저 떼거지들이 동시에 미사일이나 체인 건을 쏴대서 말 그대로 하늘에 탄의 그물을 치겠다는 건데…
가장 우려했던 형태의 공격인 건 물론이고, 대형이 이루어지는 신속함으로 보아 이런 형태의 공격을 철저하게 훈련한 놈들이다. 이런 경우의 대책은… 당연히 선제공격!
잠성결… 공포유성탄(恐怖流星彈)!
새로운 초식을 펼치기 위해 정글도를 치켜든 내 입가에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이 지어졌다. 연옥서생 사부가 공포유성탄이 실린 페이지에 남긴 주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이 초식이 5성 이하로 펼쳐질 때의 공포(恐怖)는……
그렇게 시작되는 설명처럼 공포유성탄의 특징은 일반인들의 눈에도 뚜렷이 보일 정도의 광채를 발한다는 점이다. 작은 내력만을 써서 5성 이하로 펼친다 해도 말이다. 바로 이렇게……!
유성폭우보다 각각의 기운은 작으면서도 뚜렷한 광채의 공포유성탄이 적을 향해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속도도 다른 어떤 초식보다도 느렸지만 지금 적들은 스스로 수백 KM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니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놈들은 조금 전 내가 유도탄을 요격해서 폭파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이다.
- …공포(空砲)에 가까우나, 때로 유용할 것이다.
라는 연옥서생 사부의 장난기 어린 표현처럼 적 헬기들은 결국 공갈(?)포에 불과한 공포유성탄을 회피하느라 대형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계속 내공 소모가 적은 공포탄으로 적을 혼란시키면서… 중간중간 삼시전결 같은 검기를 섞어 날리는 것. 그게 내가 택한 기본 공격 패턴이었다.
물론 삼시전결도 극성까지 쓰지 않으면 전투헬기의 장갑을 뚫기는 어렵기 때문에, 적이 공포탄을 피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기체를 트는 순간을 이용해서 꼬리날개를 노려야 하지만 말이다.
[ …삼시전결 세 발 중 한 발만이 목표에 명중…! 그러나 명중된 적기는 확실히 타격을 받아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
쳇…! 명중률이 너무 낮군.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웃! 드디어 놈들도!
[ 2호기! 3호기! 1호…… ]
적들의 사격이 재개되는 순간 몽몽이 다급하게 우리 헬기들에게 회피 방향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나의 반격 때문에 적들도 완벽하게 탄막을 펼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대규모의 사격이었다. 게다가 적들의 탄환이 점차 뚜렷이… 불꽃에 휩싸인 벌떼가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건……
< 몽몽! 뭐야! 어느 틈에 날이 저물기 시작했잖아! 어째서 아직 도착 못한 거야? >
[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계속 최고 속도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 제기! 포인트 지점까지 도착하기 전에 어두워지면 우리가 불리하잖아! >
그건 무엇보다 몽몽 때문이다. 몽몽은 지금 스캔 장치 활용이 제한되어 있어서 더 어두워지면 적의 사격을 사전에 파악해 내는 것도 어려워진다.
[ 그렇습니다. 저의 지휘능력은 이미 저하되기 시작하였으며 약 6분 25초 후에는 50% 이상 저하됩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다시 1분가량이 지난 후로는 적들의 공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윽! 이게 갑자기 뭔 소리야?
[ 죄송합니다. 이용할 위성의 교대 시점 판단과 ‘패티’ 활용 결정에 오차가 있었습니다! 패티는 요몽의 카피 AI에 붙여진 새로운 별칭입니다. ]
응? 뭐…야? 요몽의 복사본? 위기 상황이라서 그 녀석을 출동시켜서라도 어떻게든 하겠다는 건가? 어, 어쨌든 그래도 1분, 아니 그 이상의 틈이 있을 거란 말이잖아! 몽몽 없이도 몇 분쯤이야…였으면 좋겠으나, 그건 나 혼자일 때의 얘기!
걱정하기 무섭게 머리 위 헬기에서 카칵! 섬뜩한 타격음이 터지며 불꽃이 튀었다. 다행히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건 아닌 듯 했지만……
“보스!”
< 미, 미안!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앞으로 몇 분은 나도 장담 못해! >
“이, 이제와서 무슨 무책임한 소립니까!”
< 미안 하대두! 암튼 몇 분만 더 버티면 돼! >
[ 죄송합니다, 주인님! 마침 이용 가능한 위성들이 궤도에 없는 시간대와 겹쳐서…… ]
< 됐으니까, 뭐든 빨리 해! >
제, 제기랄! 지금 또 4호긴지 2호기인지도 몇 발 맞는 것 같았다.
몇 분이 몇 시간, 아니 그 이상의 길고 긴 시간인 것만 같았다. 점점 더 몽몽으로부터 적절한 회피 움직임을 지시 받지 못하게 된 우리 측 헬기들에 하나둘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그 헬기에 매달려 있는 나도 점점 반격은커녕 내 몸 하나 피하기도 바빠진 것이다. 게다가……
[ 주인님! 적들의 롱보우 레이더 전파가 우릴 포착했습니다. ]
레이더에 포착되어 미사일 공격을 받는 건 몽몽이 혼란시킬 수 있다. 그런데 적들도 지금까지 미사일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빗나간 사실을 잊고 있을까? 만약 레이더 조준은 적당히 무시하고 헬파이어 미사일로 탄막을 치기라도 하면……
< 터너! >
나는 모두 산개하여 피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위해 터너를 불렀다. 목적지가 코앞인 시점에서 포기해야 하는 건 너무나 열받는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지금 당장 모두…… >
[ 잠깐, 주인님! 다행히 패티가 성공했습니다. ]
응? 뭐?
[ 위성을 경유하여 적기의 시스템에 버그를 침투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적은 롱보우 레이더 및 사격통제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
< 그, 그래? >
“보스! 뭡니까? 지금 당장 어떻게 하라구요?”
< 어… 그게, 그냥 계속 가. >
“예?”
< 훗~! 아슬아슬하게 우리 쪽 해커가 적기의 시스템에 침투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 포인트 지점까지 가는 동안은 괜찮을 것 같아. >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공격이……”
멈추었다. 물론 사격은 수동으로도 가능하므로 아주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
< …이렇게 일제히 공격이 멈추었다는 건 놈들이 꽤나 당황했다는 뜻이겠지? 놈들이 평소 전자장비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던 건지도 알 만한 반응이고… 뭐, 그렇다면 곧 돌려 줘야겠지? >
[ …역시 그럴 생각이십니까? ]
< 그래, 몽몽. 우리가 목적지에 접어드는 데로 롱보우만 막아 놓고 다른 시스템은 정상화 시켜 줘. >
[ 전투 시작 전에 알려 드리지 못한 사항… 정말 보고 받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
< 글세. 그거, 지원하러 오다가 당한 것으로 생각했던 보천구룡대가 실은 아직 ‘무사하다’라는 거 아니었어? >
[ …알고 계셨습니까? ]
< 확실히 알았다기 보다는, 네가 보고 할 것이 있다고 했을 때 웬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수하들이 적에게 당했을 거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진위 여부는 상관이 없는 거였어. 내가 깨달은 건… 수하들의 죽음(?)을 의식하기 전까지는 나란 놈이 너무 물러 빠진 정신상태로 전투에 임하려고 했다는 사실이야. 원판이야 어쨌든 눈앞의 놈들은 분명히 나와 내 수하들을 해치려고 하는 적임을 알면서도 말이야. >
그래… 그랬다. 그래서 몽몽의 보고를 무시하고 수하들의 생사도 모르는 상태가 ‘딱 좋아’라고 말했던 것이다.
“보스! 드디어 포인트 지점입니다.”
몽몽과 얘기하는 사이 드디어 포인트 지점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과연… 어느 사이 차츰 더 짙게 내려앉고 있는 사막의 어둠 속에서 그 보다 더욱 깊고 어두운 협곡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대 협곡 그랜드캐년의 끝자락인 것이다.
“우리 쪽 상태는… 4호기만 손상이 다소 심할 뿐, 다른 기들은 거의 전투에 지장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적들 쪽에서… 전투 시스템이 망가졌는데도 계속 추적해 오겠습니까?”
< 어- 그건 걱정하지 말도록! 망가진 게 아니라 일시 마비시킨 거고, 곧 풀어 줄 테니까. >
“하하하~ 보스도 참! 당신도 기어이 끝장을 보는 성격이로군요!”
< 그야 뭐… 음, 어쨌든 당신들과 약속한 것도 있잖아. >
“하핫! 하긴! 보스는 분명히 우리와 약속했죠. 저 머리 수와 최신 장비만 믿고 날뛰는 망할 자식들과 도그 파이팅(Dog Fighting, 직역하면 개싸움이나, 보통 근접 공중전을 뜻함.)을 하게 해 주겠다고!”
이 터너라는 자도 나 못지 않게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너는 이 곳까지 오는 동안 내가 적기의 공대공 미사일을 제거하여 이 곳에서는 도그 파이팅을 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날 보스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첨단 장비 빨에 밀리지 않는 상황에서의 도그 파이팅이라면 상대가 아파치고 나발이고 몇 대인 것도 상관없다는 자신감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라는 뜻이다. 게다가 출발하자마자 자신들의 본부가 습격 당했다는 걸 알게 되는 바람에 지금은 더 빡 돌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 이제부터는… 어사조 제군들도 각자 알아서 전투에 임한다. 모두… 건투를 빈다. >
나의 간단한 최종 명령에 어사조 모두에게서 일제히 기운 찬 대답의 전음이 들려왔다. 헬기 안에서 대기하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나 지루했었다는 기세였다.
< 은사마군. >
< 예, 천주. >
< 내가 지시하는 순간에 내가 매달린 와이어를, 아니 기중 장치를 통째로 부숴 버려! >
잠시 후… 헬기가 협곡의 절벽 위를 통과하는 순간, 내 지시에 따라 은사마군이 내 몸과 연결된 와이어와 연결된 기중 장치를 부숴 주었다. 당연히 급격한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한 몸을 공공보법으로 가누며 절벽 위에 안착…! 그 직후 나는 서둘러 줄과 그 끝의 기중 장치를 챙겼다. 헬기를 상대로는 이런 형태의 물건이 꽤 유용한 무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줄 끝을 잡고 그 끝의 기중 장치 조각, 즉 금속 덩어리를 빙글빙글 돌려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상대로 적기가 우리 뒤를 쫓아 협곡 안으로 날아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들이 ‘유인’되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바보들은 아닐 테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냥 물러서지 않을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헬기에 매달려 오며 원거리 공방을 주고받았던 것도 그렇게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지만… 난 역시 땅을 딛고 살아 온 인간이어서 인지 지금부터가 더 좋았다. 하늘을 날더라도 내 발로, 내 힘으로 땅을 박차고 날아서 적을 내 영역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래… 나 역시 싸움은 역시 근접전투, 도그 파이팅(개싸움)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