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9-1화 : 진유준 VS 진유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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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59-1화 : 진유준 VS 진유준.(1)


7-1. 진유준 VS 진유준.(1)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 복룡출사결(伏龍出射訣 )…

놈의 손에서 너무나 익숙한 생사금마도결의 초식이 시전되고 있었다. 나의 정글도와 같은 칼이 시아아아~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공기가 흔들고 있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후격잠천(後擊潛天)!”

처음이 아니지만 그 전의 하늘을 가라앉힌다는 의미의 초식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엄습했고, 나는 허둥지둥 옆으로 몸을 날려 간신히 피해냈다.

쿠콰콱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내가 들어왔던 문, 틀림없이 특수금속으로 만들어 졌을 문이 형편없이 우그러져 그 너머의 복도가 보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몸을 가누며 정글도를 들어 다음 공격을 대비했지만 웬일인지 더 이상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뭐냐, 그 꼴은! 오리지널 진유준이 이 정도 공격에 그렇게 놀라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냐?”

나와 같은 무공으로 날 공격했던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생사금마도결로 공격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 가끔 듣는 전설 또는 괴담 중에 ‘도플갱어’라는 게 있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과 똑 같은 존재가 하나 있으며 만약의 경우 그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 바로 그 도플갱어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니, 도플갱어는 내 눈앞의 저 놈이 아니라 내가 바로 저 놈의 도플갱어가 아닐까…? 나의 기억, 나의 머리 속에 있는 나의 과거는 과연 진짜 나의 것인 걸까…? 아니라면 나는, 나란 존재는…

[ 주인님! 진정하십시오! 심장의 박동을 비롯한 자율 신경계가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

< 모, 몽몽…! 나, 난 대체… >

“흥~!”

우, 웃어…? 내가, 아니 저 놈이 날 보고 웃었다…?

코웃음…? 왜?

“막상 직접 만나게 되니 허무하군.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동요하는 자라니… 역시 진짜는 나였어! 내가 진짜 진유준! 네 놈은 가짜야!”

나, 아니 놈이, 나를 차갑게 비웃으며 정글도를 척 어깨에 걸치고 있다. 역시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와 똑같은 모습…! 여, 역시… 역시 저 놈은 나의 도플갱어. 만나게 되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그 도플갱어…

“…는 개뿔!”

나는 나도 모르게 막을 내리는 대사를 해 버린 후 하아아~ 한숨을 내 쉬었다. 아무래도 조금 멋쩍어서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자니까 짝퉁 녀석의 표정이 조금 굳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은 더 ‘감정이 실린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건, 하은이 생각이 나서였다. 카디를 만났을 때의 하은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나도 느껴봐야 녀석을 위로하거나 설득해야 할 상황이 있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연극을 고등학교 이후로 그만두길 잘했어. 약한 척 연기를 너무 열연하면 실제로도 금방 힘이 빠져 버리거든. 짜증나기도 하고 말이야.”

“연기…? 지금의 그게 연기였다고? 얼빠진 듯한 모습은 그렇다 쳐도, 심장박동의 빠르기와 식은땀까지…?”

“그래, 인마. 나 진유준이 설마 나 조금 닮은 놈 만났다고 진짜 얼이 빠질 녀석인 줄 알았냐?”

내가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한 태도로 대꾸하자, 날 ‘조금 닮은 놈’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녀석은 곧 다시 비죽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심장의 박동이나 땀샘의 활성화… 그런 것까지도 현천기공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조절된다는 걸 깜박했군. 역시 잔머리 하나는…”

“이봐, 이봐…! 그 정도에 뭔 현천기공까지 써. 그냥 연기였다니까? 감정을 잘 통제하면 육체는 그 것을 따르는 법. 그 정도도 모르다니… 너, 정말 나를 복제한 거 맞아?”

실은… 내가 무슨 희대의 명배우라고 단번에 그런 연기를 펼치겠냐, 현천기공을 쓴 거 맞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기선을 제압하고 놈을 흔들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복제 인간의 약점은 ‘자기 정체성’…! 특히 자신이 오리지널보다 못한 점이 있을 거라는 자격지심

“흥…! 웃기지 마라! 그런 잡기나 잔머리는 닮고 싶지도 않아! 그래… 난 오리지널, 너와 달라! 항상 오직 이 칼로만 승부하지!”

으음. 별 동요 없이 다시 공격해 올 기세다. 역시 쉽게 먹히지는 않는 건가? 뭐… 내 복제씩이나 되는 놈이 이런 심리전에 너무 쉽게 넘어오는 것도 좀 찜찜할 것도 같지만서도…

“이거, 이거… 또 예상 밖이로군.”

다시 닥터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저 짝퉁의 기세가 흠칫 멈춰버린다. 따로 멈추라는 지시가 없는데도 그가 말하는 도중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철저하게 지배받고 있다는 뜻인가…?

“일관되고 자연스럽게 동요를 가장했다는 건, 상대를 알아본 직후에 벌써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거로군. 뭐, 자네라면 잘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어. 혹시 이런 상황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 생각도 안 했습니다. 비논리적이란 건 알지만… 아무리 놀라운 과학으로도 나의 복제만은, 나란 인간을 똑같이 카피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렇게 무작정 믿고 있었으니까요.”

“흐음- 그런데도 용케 심리적 동요를… 아, 그렇군. 단지 버티고 있을 뿐인가?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그 것도 아뇨. 난 단지 내 믿음을 아직도 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 내 눈앞의 저 녀석도 날 ‘닮았을 뿐’이라는 것을!”

“과연…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에 성공했군.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짧은 적응시간만은 역시 칭찬 받을 만한 것일세. 지금까지 내가 봐온 그 어떤 사람도 자신과 같은 존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그렇게 빨리 극복하지는 못했었다네. 겉으로 드러난 반응을 기준으로 해도 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은 하은이의 약 5 분…! 그 정도였지.”

하은이는 자신의 복제인 카디를 만났을 때, 그 정도의 시간 후부터 겉으로 동요를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거군.

“어쨌든 닥터 제이! 당신과 우리 집안은 정말 징글징글한 악연이었군. 20년 전에 이미 우리 이모님은 물론이고 어렸던 내게까지 흑심을 품고 마수를 뻗었었다니 말이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를 살 법한 표현이로군.”

“쳇! 표현이야 어쨌든!”

“후후- 확실히 그 때 이미 다른 프로젝트와 더불어 ‘진유준 프로젝트’도 수립되어 시행 단계였지. 20년이 지난 후 자네가 어떤 인물로 변모할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일세.”

“…그 딴 건 이제 와서 따지고 싶지 않고…! 한 가지만 묻죠. 당신들이 날 찾아 낸 것과, 당신이 나의 이모님…
우리 희야 이모를 만난 것…! 어느 쪽이 먼저였죠?”

“…그렇군. 그게 자네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이겠군. 하지만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네. 설사 내가 자네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시스를 만난 거라고 해도… 자네가 아니었다면 시스가 나란 남자와 사랑에 빠질 기회가 없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게. 자네와 대교양처럼 나와 시스 역시 어떻게든 다시 만날 운명이었을 테니까 말이야.”

“다시… 만나? 당신도 설마…”

원판과 나처럼 천년 전에서 온 인물…? 게다가 이모님도 환생자…? 만약 그렇다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겠지만, 그건 아니라네. 분명 과학자로서 가치 있는 경험이었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자네와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거든.”

저, 적어도 미래 여자 진과 만나서 타임머신으로 이 시대에 온 건 아니라… 이거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환생자…? 그 것도 전생의 기억을 가진…? 하, 하지만…

난 저 사람을 모른다. 용모는 천음마군처럼 달라질 수 있다고 해도… 저런 타입의, 저런 느낌을 주는 인물은 천년 전에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또한… 내게는 전생의 기억 같은 것도 없다네.”

“뭐, 뭡니까, 그럼!”

“…안타깝지만, 시스가 전생에서부터 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런 환상을 품게 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제, 젠장! 저 인간, 사람 헷갈리게

“그러니까… 당신은, 나와 대교의 경우를 자신에게 멋대로 대입시키고 있는 겁니까? 우리보다 훨씬 어른인 주제에 한심하군요.”

“후후~ 사랑이란 평생 익숙해지지도 않고 정의할 수도 없는 감정인데, 나이와 선후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쳇! 난 이제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난 인정할 수 없어! 분명히 같은 시간, 같은 세계에 있었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로운 죽음을 맞게 한 당신! 그것도 모자라 그 사랑의 결실인 하은이조차 버렸던 당신…! 당신은 어머니 말씀처럼 한 방으로는 부족해…! 내가 이제 곧 갈 테니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걸?”

“…시스가 사랑하는 조카에게 심판 받는 거라면 나도 거부하고 싶지는 않군. 하지만…”

갑자기 사방에서 작지만 기분 나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스윽 올라가고 있었다. 내 등 뒤의 부서진 문과 벽까지 포함하여 사방의 벽까지 천장을 따라 올라가더니 그 위에서 조립식 퍼즐처럼 조각조각 갈라졌다가 다시 척척 접혀 둥근 돔형의 천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사라진 벽들 너머 수십 미터 거리에 또 다른 벽이 있었다. ‘방’ 정도로 느껴질 뿐이던 크기의 실내가 순식간에 ‘운동장’급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 일단 맡은 일에는 충실해야 하니 이해해 주게. 그리고 이 공간은 당연히 자네들의 생사금마도결을 마음껏 펼쳐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네. 그럼… 두 사람 모두 건투를 비네. 둘 중 누가 진짜 진유준이자 진짜 생사금마도결의 계승자가 될지… 잘 지켜 봐 주겠네.”

끝까지… 사람 열 받게 하는 소리만 하는 인간이로군. 도저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봐, 오리지널! 제이님의 말씀도 끝났는데, 더 기다려 줘야 하나?”

“…아니. 하지만 그 전에, 너… 이름이 뭐냐?”

“훗~! 지금은 이름이 없어. 곧 ‘진유준’이라는 이름과 인생을 차지하게 되겠지만 말이야.”

“…니 희망사항은 그렇다 치고, 당장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지. 그래. 넌 나를 조금 닮은 놈이니까… 줄여서 ‘조담 놈’이라고 불러 주마.”

“뭐, 뭐?”

“시작하자. 덤벼라, 조담놈!”

“누, 누굴 그 따위로 부르겠다는 거냐!”

어감이 다소 거시기해서 일까…? 조담놈은 급격히 흥분하여 이를 부득 갈고 있었다.

[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발산되는 내력의 기세는 분명히 주인님을 상회합니다. ]

알아, 몽몽. 하지만… 그렇다고 질 수는 없잖아…?
오리지널이 짝퉁에게 말이야

난 다시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고 조담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건 놈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마치 거울을 향해 다가서는 것 같은 상대를 노려보며 급격히 가까워져 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드디어 가장 좋아하는 거리에 도달했을 때였다.

번쩍

동시에 두 개의 정글도가 움직이며 똑같은 섬광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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