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9-2화 : 진유준 VS 진유준.(2)
쩌엉-
거대한 범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거센 충격에 밀려 뒤로 주르르 밀려나야 했다.
그러나 그 것은 조담놈도 마찬가지
“흣! 제법인데, 조담놈?”
“그딴 이름으로 부르지 마…! 하, 하지만 확실히 오리지널 당신도 제법이군.”
짝퉁이 오리지널인 나에게 감히 ‘제법’이란 말을 쓰는 것도 불쾌하다면 불쾌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분명히 지금의 첫 격돌에서 내가 느낀 건 녀석이 그만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가지!”
선언함과 동시에 조담놈이 척, 척, 걸음을 옮기며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긴 기세를 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 역시 마찬 가지
“제 3결… 삼시전결!”
“제 3결… 삼시전결!”
동시에 쏘아진 백색섬광의 화살은…
까각! 까각! 까각! 까각! 까각
다섯 발…! 같은 다섯 발이었기에 각각 만나 서로를 잘라버리며 소멸하는 소리도 다섯 번.
“하하하~ 다행이지 뭔가, 오리지널. 당신이 바로 지난밤에라도 이 숫자의 삼시전결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 말이야!”
“훗! 내가 겨우 3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이룬 경지를 20년 만에 하는 놈이 잘난 체 하는 거냐?”
나의 대꾸에 조담놈의 입이 비틀어지며 실룩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곧바로 제 12결, 월광절화결(月光切花訣)로 승부 해 볼까?”
“맘대로 하셔. 네가 그 거 준비하는 동안에 난 삼시전결이나 몇 방 더 날려 줄 테니까.”
“…흥! 넌 오리지널로서의 자부심도 없는 거냐? 정면으로 맞대응 할 용기도 없는…”
“너야말로 날 카피한 놈이 뭔 헛소리냐. 우리가 지금 대련놀이하고 있는 줄 알아?”
나는 ‘알아?’라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기습적인 검기를 날렸다.
그러나 놈은 슬쩍 몸을 돌려 간단하게 그 것을 피했다.
피하는 경신법 역시 낯이 익었다.
“공공보법(空空步法), 이의소보(異意笑步)…! 훗! 내가 너의 생사금마도결만을 전수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야 뭐, 현천기공을 기반으로 생사금마도결을 펼치며 공공보법이 조화를 이루는… 그게 나의 기본 패턴이긴 한데 …”
“그러니까, 똑 같은 무공들의 조합과 패턴을 가진 자들끼리는 결국 이거 아닌가?”
조담놈은 지 멋대로 결론을 내리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나 역시 마주 달려들었다.
쩍! 콰앙-! 빠즛! 팟
온갖 타격음과 파찰음이 터져 나왔다.
우린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생사금마도결이고 나발이고 특별한 초식도 없이 무식하게 서로의 정글도를 맞부딪치고 있었다.
당연히 뭘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나 이렇게 하자는 사전 약속은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일격 일격에 각자의 모든 힘과 스피드를 걸고 정면으로 격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계속해서 견뎌야 했다.
상대의 내력에 의해 전해지는 뼈 속 깊이 저린 충격, 그리고 피부가 베어지는 타는 듯한 고통… 그런 것이 계속, 계속, 계속…
[ …주인님! ]
균형이 깨지는 순간에 몽몽이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결국 내 쪽에서 놈의 내력에 밀려 몸의 균형을 잃으며 물러 서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검기가 나의 방어 초식과 호신강기를 뚫고 내 오른 쪽 뺨을 깊게 베어 버렸다.
ㅤㅋㅡㅅ! 썅…! 하, 하필…
나는 놈에게서 이어질 공격을 대비하는 태세를 취하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하핫핫!”
놈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넌 내가 월광절화결로 승부하자고 했을 때는 편법으로 대응할 것처럼, ‘정면승부는 바보짓’이라는 식으로 말했지?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정면 승부…! 그래… 넌 결국 오리지널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이를 악물고 마주 외치며 미친 듯이 정글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놈은 그런 나의 모든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피하고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의 여유와 나 못지않은 기세는 역시 무리해서 유지한 것에 불과했군.
물론… 그런 방식도 나와 같은 수준의 적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통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놈의 칼이 나의 정글도에 비해 너무나 차분하면서도 강력한 기세로 내 영역의 공간을 치고 들어왔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몸을 떨면서 겨우 겨우 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놈은 건방지게도 나를 향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 한낱 말장난으로 상대를 흔들고자 하는 유치함, 자신과 상대의 우열을 가늠할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
그런 주제에 상대의 칼에 조금 당했다고 분노에 자신을 맡기는 방만함…! 정말이지, 벼락치기로 칼질만을 배우고도 ‘자신이 무공을 안다고 착각하게 된 자’다운 모습뿐이군.”
“그런…가? 내가 그 정도란 말이지…? 훗! 그렇다면 넌 어떤 거 같으냐, 조담놈. 응? 넌 상대의 칼에 얼굴을 베여도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지?”
“그런 건 그 무딘 칼로 내 얼굴을 벨 수 있게 되면 묻는 것 이…”
조담놈은 문득 뭔가를 깨닫고 말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 어느 틈에…?!”
놈은 그제야 이미 자신의 왼쪽 뺨에도 나 못지않은 상처가 생겨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무분별한 분노보다도 위험한 건 ‘방심’이란 놈 아닌가? 그건 굳이 무공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 아닌가, 조담놈?”
“…흥! 과연 오리지널…! 이 나에게 방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이거지?”
놈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분이 난다는 표정이 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너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주며 장난칠 여유는 없을 것 같군.”
“호오~ 그러셔? 말려들어 주신 거였어?”
“당연하지…!”
당연하다고 대답함과 동시에 다시 놈과 놈의 칼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짝퉁이 짝퉁 정글도를 휘두르는 것이라고 비웃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생사금마도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신결(水神訣)… 해룡역린(海龍逆鱗)
놈의 칼이 발한 검기의 소용돌이가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굳이 같은 초식으로 맞대응할 생각은 없었기에 놈과는 다른 초식을 펼쳤다.
풍운지왕결(風雲之王訣)… 백호종운엽(白虎從雲獵)!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른 나의 신형은 단숨에 놈의 검기를 뛰어 넘으며 희미하게 감지되는 틈새에 나의 검기를 찍어 넣었다.
그러나 놈도 순간적으로 경공에 변화를 주어 피하며 적동 혈해인(赤銅頁海引)이란 초식으로 반격해 왔다.
제기! 역시 초식간의 연결이 장난이 아니군
나는 허공에서 다시 허공을 차고 몸을 움직여 놈의 공격을 회피하며 삼시전결을 날렸고, 착지함과 동시에 정글도를 바닥에 찌르며 지독아(地毒牙)를 펼쳤다.
지소파천결(地笑破天訣)로 만들어진 검기의 독사가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발밑을 파고들었지만, 놈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자신의 칼도 바닥에 꽂으며 지독아의 기운을 와해시켜 버렸다.
같은 지소파천결의 지정만독포(地情萬毒泡)…?
저걸 저렇게 빠르게 쓸 수 있는 건가? 빌어먹을 놈…! 놈이 생사 금마도결을 나보다 더 완벽하게 펼칠 수 있다는 건 더 확인 할 것도 없이 확연했다.
나는 계속해서 생사금마도결로 놈과의 공방을 계속하는 한편, 간간이 기습적으로 다른 무공을 섞어 펼치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놈의 표정이 변하는 것으로 보아, 놈은 아무래도 생사금마도결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전수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놈에게서 우위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하아- 하아~ 제, 제기…! 긴, 아니 짧은 시간…일 뿐이었나?
난 그 사이 놈과 대체 얼마나 많은 공방을 한 거지…?
대천마(大天魔)이후로… 단 한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힘겹게 싸워야 했던 건… 그런 경험은 물론 없… 아, 아니…
대천마 때도 내가 이렇게 밀리진 않았었…는데…
너무나 낯선 경험이었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나는 날 닮았을 뿐인 단 한 명의 적을 계속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적의 몇 배나 되는 피와 땀에 절은 몸을 들먹이며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적이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었다.
“이 무슨… 어리석은, 한심한 짓이냐!”
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버럭 분노를 표출하며 엄청난 살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그 따위 잡기들을 써서 생사금마도결을 상대하겠다는 거냐? 오리지널!
그러고도 네가 생사금마도결의 계승자라고 자처하는 거냐?”
“그 따위 잡기…? 내가 쓴 건 만든 사람들 모두가 평생을 바쳐 완성한 무공들이야.
아무리 생사금마도결이… 완벽에 가까운 무공이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다른 무공들을 무조건 우습게만 취급해야 할까?”
“흥! 생사금마도결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자의 구차 한 변명이로군! 그렇다면… 내가 보여주마.
생사금마도결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나의 생사금마도결로 너의 잡다한 무공 모두를 박살내 주마!”
놈의 살기와 내력의 방출이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무시무시해지고 있었다.
나이가 현재의 나와 비슷하다고 치면… 저 놈은 불과 서너 살 때부터 무공을 시작했고, 생사 금마도결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인식하고 수련하며 성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계승자 결정전(?)’에서 내가 다른 무공을 섞어 쓰니까 정말 빡 돌아 버린 것이다.
“각오!”
경고 아닌 경고와 함께 놈의 공격이 재개되었고, 나는 벌써 지칠 데로 지치고 내력마저 고갈된 몸을 채찍질하며 정글도를 들어야 했다.
그 때부터 이어진 것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나는 놈의 폭풍 같은 공격에 정신없이 맞고 베여 형편없는 몰골이 되어가며 뒤로, 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거냐, 오리지널! 좀더 손을 뻗어! 정글도를 좀더 빨리 들어 막아봐! 뭐하는 거냐고! 이제 반격은 아예 포기했나? 응?”
조담놈은 계속해서 날 비웃으며 공격해 왔고, 나는 그런 비웃음에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수모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놈이 자랑하는… 나보다 심후한 내력도 소진의 기미가 확연해 질 때까지는…
“자, 이제 그만 끝장을 내주…”
놈의 기고만장한 선언이 끝나기 직전, 나의 정글도가 스윽- 일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힘없이 들어올려 졌다.
“헛-!”
처음으로 놈의 입에서 당혹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고, 놈은 내게 가하려던 최후의 일격을 포기하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야 했다.
조금… 얕았나…? 놈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색으로 보아… 잘해야 피부만 벨 수 있었던 모양이군.
벼르고 벼르던 반격의 성과로는 미흡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치명상만을 겨우 피하며 수모를 견뎌온 것은 놈을 나의 조건에 최대한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함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아… 이제부터가 진짜 나 진유준이 자신하는 시간이다. 생사금마도결의 경합이나 무공의 우위를 가리는 것을 떠나,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지를 판가름하는…!”
“흥! 웃기지 마라! 또 잠깐 방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 또한 나도 원했던 바다!
오리지널, 너만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는 경험을 해본 줄 아는 건가?
나 역시 지난 20년 동안 몇 번이나… 훗~ 그래. 난 그런 경험까지도 너의 몇 배나 위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