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9-3화 : 진유준 VS 진유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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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59-3화 : 진유준 VS 진유준.(3)


7-1. 진유준 VS 진유준.(3)

“아아~ 그러셔?”

나는 놈의 큰소리를 가볍게 씹어 주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놈의 장담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의 경우 이런 밑바닥 싸움에서까지 밀린다면 정말 대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불안은 곧바로 현실이 되고 있었다. 놈의 칼이 섬뜩하게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상태에서 설마…

믿기 싫었지만, 놈의 칼은 기어이 허공을 가르며 푸를 달빛을 토해냈다.

청섬백(靑纖魄)…?

나는 나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날아드는 살인 초승달을 간신히, 그야말로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언뜻 돌아보니 내 뒤쪽의 벽, 닥터 제이가 ‘튼튼함’을 장담했던 특수 금속의 벽이 허무하게 일(一)자로 잘려 있었다.

트, 틀림없는 월광절화결…! 그 것도 이렇게 빠르게? 놈의 입에서 다시 자신이 쓸 초식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폭호결(暴虎訣), 광명난마(狂酩亂魔)…!”

비, 빌어먹을 놈! 아직 나보다는 내력이 남아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월광절화결에 폭호결까지 연속으로 쓸 여력이 남아 있다는 건가? 아, 아니 그보다 왜 하필 지금 폭호결의 초식을 쓰려는 거지?

나는 떠오르는 의문을 더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놈의 강력하고 화려한… 그러나 1대1인 이 상황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격을 피해 몸을 날려야 했다. 위력에 비해 비교적 쉽게 피할 수 있기는 했지만 역시 너무나 무서운 검기의 여파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나에게 다시 놈이 입을 열었다.

“이번 것으로… 겨우 나의 내력도 오리지널 너와 같아졌어. 이젠 각자의 비력(秘力)이 어느 정도인지를 겨룰 때인 거지.”

“비…력?”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건가…? 비력, 혹은 근원진기(根源珍氣)로 불리는 인간의 생명력 그 자체를 말하는 거다.”

아주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다. 비력이란 표현은 잘 모르겠지만 근원진기는… 그에 관한 사항은 분명히 몇 개인가의 무공서적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의 잠재능력이 편의에 따라 마음껏 쓸 수 있고 한계가 없다면… 인체 스스로 그 힘을 봉인해 둘 리가 없지…

넌 지금까지 아무 것도 모른 체 그 금단의 힘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쳇…! 나도 아예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발휘하곤 했던 힘이 나의 숨겨진 근원진지, 즉 인간의 생명력 혹은 ‘수명’을 깎아내서 쓰는 힘일 수도 있다는 건 벌써부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일종의 학설일 뿐이지.”

그래. 그래서 내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알 수 없는 저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후에도 몽몽이 그걸 따로 경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몽몽의 인체 분석 기능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아직은 그야말로 ‘미지의 힘’인 것이다.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리지널, 너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 힘을 써왔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는가? 자신을 이루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불태웠다는 느낌을… 말이야.”

“글쎄… 난 그렇게 예민한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야.”

솔직한 대답이 아니다. 나도 분명히 그런 걸 느낀 적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너무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잊었을 뿐이다. 사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신의 수명이 조금(?) 깎이더라도 당장의 죽음을 면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고 말이다.

“훗~! 속 편한 성격이로군.”

[ 주인님… ]

< 잠깐, 몽몽. 나중에 얘기하자. >

몽몽이 끼어드는 걸 막았고, 그 사이 조담놈이 말을 이었다.

“…오리지널, 너는 지금까지 생사의 갈림길에서나 그 힘에 눈을 뜨고 사용해 온 것 같더군. 하지만 나는 달라. 20년 동안 너보다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어오며 그 힘의 사용법까지 알게 되었지. 알겠나…? 나는 이제부터 나 스스로의 의지로 내 수명과 맞바꿔서 널 죽이고 진짜가 될 것이다.”

이런 저런 말 보다… ‘생사의 고비라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 가장 거슬리는 군. 나 진유준을 상대로 감히…

“그래… 그렇다, 말이지? 그럼 나도 반칙 쓰는 것 같은 기분 없이… 널 죽여도 되겠군.”

나는 처음으로 놈에게 ‘죽인다’는 선언을 내뱉으며 정글도를 들어올렸다. 놈이 닥터 제이의 장담처럼 나의 모든 것을 카피한 존재이며 거기에 업그레이드까지 한… 그야말로 최강의 적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난 아직 내가 진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진짜가 짝퉁에게 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흥-! 과연 그럴까?”

조담놈의 살기가 급격히 상승하며 실질적인 기까지 폭발적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놈의 검기가 다시 허공을 가르고 찢으며 날아들기 시작했다.

크윽! 제기-! 저, 정말 장난이 아닌데? 지, 지금까지…

나와 싸웠던 자들이 느꼈을 기분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현재 상태의 적에게서 결코 나올 리가 없는 파괴력으로 공격받는 황당함과 두려움 말이다.

아, 아니… ‘두려움’이란 표현은 빼자. 난 내가 놈에게 그딴 감정이 생기는 걸 용납할 수 없어

“으아아아아압~!”

나의 입에서 뜻도 모를 기합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놈의 공격을 간신히 막으며 몇 걸음을 물러서던 내가 갑자기 이를 악물고 반격에 나서자 놈의 얼굴도 흠칫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놈은 곧바로, 오히려 기뻐하는 기색으로 외쳤다.

“이제야…! 이제야 눈을 뜬 거냐?”

비로소 싸울 맛이 난다는 듯, 놈의 칼이 더욱 즐겁게 춤추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놈이 펼쳤었던 그 어떤 생사금마도결보다 자연스럽고… 인정하긴 싫지만 아름답기까지 한 검무(劍舞)였다. 그 검무 속에서 나는 놈과 다른 의미에서 춤 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아아~ 빌,어,먹,을…
나는 내 눈앞에 서있는 놈의 등 뒤로 금속의 벽이…
천장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적의 발아래 쓰러져 적을 올려다봐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놈은 쓰러져 있는 내 목에 칼을 댄 채 승리자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까진가, 오리지널.”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

“죽이기 전에… 한 가지 묻겠다, 오리지널.”

문득 놈의 입가에서 승자의 미소가 흐려지고 있었다.

“넌… 어째서 그렇게 늦게 무공을 시작한 거지?”

“…뭐?”

“난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너에 대해서 들으며 자랐다. 내가 태어난 이유,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차단당한 채 무공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원인인 너에 대해서…! 생사금마도결의 진유준을 쓰러트리고 그를 대신해야 하는 것이 나의 숙명이라고… 그 것만이 신의 축복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내가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정작 너는 어째서 고작 몇 년 전에야 무공을 시작한 거지?”

이 자식… 타임머신과 시간여행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사금마도결을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직 모르고 있군.

“내가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20년을 너는 고작 몇 년의 세월만으로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조담놈은 지난 세월에 꽤나 한이 맺힌 듯 격하게 날 추궁했지만, 나로서는 놈에게 뭐라 설명해줄 수 있는 말도… 그럴 기분도 들지 않았다.

“훗~! 그래.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제 넌 내 손에 사라지고, 이 내가 오리지널… 유일한 진유준이 되는 거니까 말이야.”

놈은 갑자기 키득,하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너의 애인 주가혜…! 무척 아름다운 소녀이더군. 그녀가 과연 우리가 바뀐 것을 알아 볼 수 있을지…”

놈의 칼이 스윽 내 목을 파고들어 내 뒤의 바닥에 찡-하는 소리와 함께 박혔다. 나는 놈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랐는지를 끝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날 흉내내며 대교까지 차지할 생각으로 환희에 차 있다가… 곧 믿기 어려운 현실에 당혹해하는 표정일 것이다.

“서, 설마! 설,마…!”

조담놈은 내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칼끝에서 벗어난 것은 알았지만 어느 틈에 자신의 등 뒤까지 점해 버렸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놈의 등 뒤에서 퉤-! 피 섞인 침을 뱉었다.

“말도 안돼!”

놈이 발악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몸을 돌려 칼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놈의 칼은 내 정글도에 간단히 막혀 의도했던 절반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설마… 아직까지 근원진기를 쓴 게 아닌… 서, 설마… 이제야 진짜…”

“그래, 인마!”

나는 정글도에 문제의 근원진기인지 뭔지를 실어 놈의 칼과 놈을 통째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네 놈이 너무 약해 빠져서… 그래서 이제야 발동이 걸렸단 말이야! 게다가 대교를 뭐 어째?”

나는 이를 부득 갈며 전투화 발로 놈의 복부를 걷어찼고, 놈은 커헉-하는 신음성과 함께 몸을 구부린 채 멀찍이 날아가 버렸다.

[ 주인님! 이 힘이 정말 그의 말대로… ]

< 나중에 얘기하자니까! >

난 몽몽의 말을 씹으며 성큼성큼 조담놈에게 걸음을 옮겼다.

“이익!”

놈도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미친 듯이 반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의 무시무시했던 공격도 지금의 내 눈에는 너무나 뻔히 보이고 있었다.

마군황의 마지막 단계에서 구중천(九重天)의 협공을 받으면서 겪었었던 그 느낌…! 적의 공격을 보는 것보다 빨리 깨닫고, 그 깨달음 이전에 이미 피할 수 있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냐, 네 놈은!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아무리 근원진기를 쓴 다해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 리가…”

“알게 뭐냐! 넌 숨쉴 때 생각하고 쉬냐?”

그래… 얼결에 한 소리긴 하지만 꽤 적당한 표현인 것 같다.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의 정글도는 내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놈의 급소를 향해 파고들었고, 놈의 검기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내 몸은 놈의 공격 방향에 존재하지 않았다.

“으아아악~!”

지금까지 내 입에서만 나오던 비명이 놈의 입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뒤바뀐 싸움의 양상은 그만큼이나 빠르게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이, 인정할 수 없어, 이런 건! 말도 안돼!”

조담놈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허무한 칼질을 쏟아내고는 허겁지겁 몸을 날려 내게서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놈을 바짝 추적하지 않았고, 놈은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자 겨우 다급한 경공을 멈추고 돌아서서 무서운 시선으로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게 등까지 보이고 달아났던 수치심에 떨던 놈의 칼이 빠르게 푸른빛에 휩싸이며 곱고 가는 달빛의 실타래를 자아내고 있었다.

월광절화결, 영월금(盈月襟)…! 그게 네가 선택한 최후의 절기인가…?

“주, 죽엇!”

놈의 입에서 광기 어린 외침 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달의 여신이 펼친 옷자락도 나를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누구… 맘대로!”

나의 정글도 역시 달빛을 머금고 놈의 영월금을 향해 휘둘러졌다. 두 개의 달빛이 격돌하는 순간, 거대한 실내가 온통 그 시리도록 아름다운 달빛으로 가득해 졌다. 나는 격전의 끝을 장식한 달빛 속에서 낮게 한숨 지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의 타오르는 것처럼 격렬했던 감정까지도 이 환상적인 달빛 앞에서는 허무할 뿐이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군. 당연히 월광절화결끼리의 격돌은 처음이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이렇게 무서운 절기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은 참…

“크아아아아아-!”

처절한 비명소리였다. 조담놈은 나처럼 달빛을 감상할 여유는커녕,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월광절화결 간의 상쇄 작용으로 둘 다 신비로운 빛으로 승화되어 사라져 가는 그 순간에도 나의 정글도는 멈추지 않고 놈의 얼굴에 두 줄기 도흔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놈이 결국 비틀, 몸의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얼굴에 칼질 당한 건 실제적인 치명상이 아니겠지만, 놈은 이미 자신의 한계까지 모든 힘을 소진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 놈에게도 최후의 자존심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놈은 끝내 한 쪽 무릎만을 꿇고 한 손에 든 칼을 지팡이 삼은 자세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 어째서… 어째서 나의 20년이 너의…”

“착각하지 마라, 조담놈.”

나는 놈의 피투성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난 분명히 너처럼 20년 동안이나 생사금마도결을 익힌 것은 아니야. 하지만 나도… 네가 알지 못하는 세월의 무게를 지고 있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월의 무게…?”

“그래. 난 과거, 너무나 아득하고 암담한 곳에… 그런 곳에 그녀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어.”

결국 이 시대에서 다시 대교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또 별개의 문제다. 나는 그 때의 무기력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또 다시 그런 일을 겪을 수는 없기에… 생사금마도결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이용해서 강해져야 해. 난 이제 상대가 설사 신(神. 타임씨?)이라 할지라도 질 수는 없어.

다시는… 다시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도 조금… 흥분했나…? 다소 쑥스러운 고백을 엉뚱한 녀석 앞에서 하고 말았군.

“겨, 결국 내가 주가혜를 언급한 것이 패인이었다는 건가…? 생사금마도결에 모든 것을 바친 내가… 생사금마도결을 이용할 뿐인 자에게 패한 이유가 고작…”

놈은 끝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뿌득- 이를 갈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을 육체가 따라주지 못하는 듯 좀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버둥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더 가만히 서서 기다려 주었지만, 놈은 결국 다시 쿡- 한 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조담놈의 눈가에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삐져나온 눈물이 맺히며 패배를 시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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