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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3화 : 환상의 섬.(3)


1-6. 환상의 섬.(3)

나는 작게 한숨 쉬며 양쪽의 G.M들을 새삼 찬찬히 돌아보았다.

“이 일을 지시한 게, 정말 챈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대인이나 동생 분을 해칠 뜻은 없으니……”

“그런데, 왜 그렇게 떨고있지?”

내 지적에 둘 다 흠칫 안색을 굳혔다. 눈에 띄게 부들부들 떨고 있지는 않아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어서 넘겨짚은 것뿐인데……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날 두려워하고 있거나… 어느 쪽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둘 사이로 성큼 한 걸음을 내딛었다.

“머, 멈추시오!”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경고 소리와 반대로 총구가 움직임을 멈춘다 싶은 순간, 양쪽에서 퓨!퓩! 음료수 캔의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파열음이 울렸다. 역 안의 사람들 시선이 하나 둘 이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거?”

“왜 그래? 어?”

들려오는 소리들로 보아 누구도 그 소음기가 달린 총소리를 듣지 못한 채, 다만 내가 서 있었던 공중전화 박스의 일부가 왜 괴상한 소리와 함께 부서졌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개중에는 나에게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물러나는 게 어때?>

내 친절한 권유에도 둘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고, 내가 먼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나는 것도 더 이상 막으려 들지도 못했다. 둘은 내가 전음을 보내 왔다는 사실, 아니면 그 전에 목격한 이형환위(以形換位) 수법에 놀래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몽몽… 총 피한다고 이형환위까지 쓴 건 좀 오버였을까? 목격자도 있는 것 같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셨습니다. 순간적인 이형환위 수법보다는 요란한 격투 쪽이 더 많은 목격자를 양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아. 근데 하은이는?>

[…25번 출구… 아, 이동 속도로 보아 차량에 탑승한 것 같습니다.]

몽몽이 알려 준 출구는 아까 들어왔던 출구와 정반대였다. 서둘러 처음의 출구로 달려나간 나는 키트 1호를 몰고 추격을 시작했다. 탐지기를 동원한 스릴 넘치는 추격전…? 그 딴 건 액션 영화 장면을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나 해당되는 얘기고… 당사자가 된 지금은 그저 쓰바 소리가 절로 나올 뿐이었다. 챈의 배신 여부는 둘째 치고라도 천이단이 이 딴 짓을 한다는 자체에 스팀이 받았다. 이런 건 천이단, 내 친구 천우신의 스타일이 아니다.

[출발지와 진행 방향, 이동 속도로 보아 곧……]

이동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얼씨구…! 저 차야? 저 앞에 신호대기하고 있는 차?

<뭐야? 유괴범들 주제에 교통신호는 충실히 지키는 건가?>

[그런 것보다는… 처음부터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의도가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건… 어? 신호가 바뀌자마자 밟아대며 달아나기 시작하네?

[침착하십시오, 주인님!]

<그, 그래! 그래야지!>

젠장! 서둘러 커브 틀다가 불법 주차된 차를 들이박을 뻔했다. …아 쓰바~! 코너에 불법 주차된 차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냐? 그리고 급하다고 비상등 켜도 다들 더럽게 안 비켜 주네!

[주인님!]

<으~ 나도 알아. 놈들이 날 유인하고 있다는 거… 그러니 조금 뒤쳐진다 해도… 쳇! 역시 저기서 어물쩍거리고 있네.>

<으아~ 이 씨빠빠 버스~! 왜 깜박이도 안 켜고 튀어나오는 거냐! 게다가 뭐 잘했다고 니 쪽에서 빵빵대고… 죽을래?>

미치겠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빌어먹을…! 서울에서 왜 쓸만한 액션 영화를 못 찍는지 알겠다!

[진행 방향으로 보아 목적지는 근거리… 한강고수부지의 시민 공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야, 요정 몽! 좀 전에 지나친 버스… 운전기사 표정이 좀 이상하지 않았냐? 약간 넋이 나간 듯한……>

[그야~ 주인님이 욕을 하셨잖아요. ‘전음’으로.]

<윽! 그랬었나? 무심코 그만……>

[주의하세요, 주인님. 물론 평소에 매너운전을 하셨던 만큼 다른 차들의 비매너가 더 거슬리시겠지만……]

젠장! 내 차에 ‘이 차는 평소 무지하게 양보 많이 하는 차이며, 지금 좀 급하다니 양보 좀 해 줍시다.’라고 공인 마크가 찍혀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차들도 이해는 한다만… 으휴~ 하여간 싫다 싫어!

<어쨌거나! 그럭저럭 차량 추격신은 끝난 것 같네요.>

요정 몽의 말대로 하은이와 금동이 유괴범들의 차는 한강 시민 공원으로 들어가 멈추고 있었다. 상대가 무지 양보해 준 티가 나는데도 한발, 아니 두발은 늦게 도착한 나는 다소 민망한 기분으로 차에서 내려야 했다. 나는 먼저 차에서 내린 놈들이 하은이와 금동이를 데리고(끌고 가 아닌 듯) 넓은 잔디밭의 한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며… 그만 짧게 웃고 말았다.

<핫~! 거참. 녀석들도 꽤나 웃긴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니……>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역시 고전적인 분위기의 칼을 든 자들이 30… 아니 32명…? 영화 촬영 현장의 스탭진과 감독 흉내를 내고 있는 녀석들을 뺀다 해도 당장의 순수한 전투 병력만도 32명인 셈인가? 여차하면 하은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일단 챈까지 합세하면 33명… 숫자는 내가 좋아하는 숫잔데… 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어젯밤 삼시전결의 극성까지 선보이느라 소모한 내력도 그렇고, 그동안 소모만 하고 보충이 안 되어 있어서 본래에서 절반도 안 되는 내력뿐이다. 굳이 수치화하자면 30% 정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은이가 인질만 아니었어도 부담이 덜했을 텐데……

“어머! 어머! 영화 촬영인가 봐!”

“누구지? 와- 여배우 예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슬렁거리던(?) 서울 시민들께서 모여들어 한가한 소리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 이 쪽도 배운가 봐!”

내 쪽으로 모여든 일부 어린 청소년들의 시선이 영 거슬렸지만, 이건 실제 상황이라고 소리친다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말없이 뒤 트렁크에서 정글도를 꺼내들었다.

“조폭 영환가? 아니 퓨전인가 보다! 저 악당들 복장 봐!”

에효~ 뭐 이런 상황이……

“근데 남자 주인공 스타일이 좀 아니다.”

“아냐! 저 정도가 설마 주인공이겠어? 어쩌면 저 총 든 남자가……”

에이 쒸~! 진짜!

“야! 남자 주인공이 총 들고 여자 주인공 위협하는 거 봤어? 저 숫자와 싸워서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엑스트라 봤어? 봤냐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자, 날 약올린(?) 어린 새싹들께서는 ‘별꼴이야~!’, ‘즐~!’ 그딴 소리를 해가며 예쁜 여주인공, 하은이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주인니임~!]

<으- 저 놈들의 외모 지상주의 발언에 내가 그만 이성을……>

나는 초중고딩(?)들에 의해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수십 명의 엑스트라…를 가장하고 진검을 든 G.M의 고수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막상 적들 앞에서니, 아니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전투에 필요한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난 그 적들 너머의 하은이에게 외쳤다.

“괜찮냐?”

납치된 미소녀 캐릭터치고는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하은이였지만, 일단 그렇게 물어 봤다.

“응. 난 괜찮… 아, 금동이도 괜찮대!”

훗~! 금동이 녀석, 암 생각 없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근데 오빠가 어떻게……”

“네 눈치가 아무래도 이상해 보여서 따라와 봤……”

아! 지금은 누가 봐도 날 유인한 상황이니 하은이도 이미 어느 정도 감 잡았으려나?

“…하여간, 조금만 기다려! 곧 둘 다 구해 줄 테니!”

대충 전형적인 대사를 치며 이번엔 하은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나보다 쬐금은 더 주인공에 가까워 보인다는 용모의 녀석에게 눈을 돌렸다. 막상 어느 정도 가까이서 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녀석은 빙글빙글 재수 없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전설의 주인공이라기에 기대를 했었는데… 운전만은 좀 서투르신 것 같더군요.”

쳇…! 그런 건 좀 그냥 넘어가지……

“뭐라 해도 좋은데… 그보다, 넌 누구냐?”

대뜸 묻자, 녀석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인피면구(人皮面具)는 벗고 얘기하지 그래.”

“하핫~! 설마 아직도 그런 용어를 쓰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밤 나와 거나하게 술을 펐던 남자 챈…을 가장하고 있던 녀석은 한 손을 들어 얼굴의 인피면구, 과거와 달리 최첨단 소재로 보이는 가면을 뜯어냈다.

“하지만 G.M의 기술을 한 눈에 간파하다니… 역시 전설의 주인공답군요.”

굳이 말하자면 전설의 기계 주인이 맞지만… 그보다, 쓰파~! 이 자식 진짜 얼굴은 나나 챈보다 더 잘생겼잖아? 아까 그 새싹들이 ‘것 봐! 주인공 맞잖아! 얼짱가수 **닮았어!’ 이딴 외침을… 으~ 정신 차리자, 진유준! 지금은 엄한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너희들도 G.M이 맞다는 거냐? 여자 애에게 총을 겨누고 납치하는 놈들 따위가?”

새삼 눈앞의 녀석과 일당들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 잠시 흐려졌던 분노의 방향이 제자리를 찾았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전설 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당신과 그 전설을 동경하는 챈… 전 두 사람과는 좀 다릅니다.”

녀석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전 보다 효율적으로 앞서가는 21세기의 G.M을 이끌 남자… 일단은 ‘다카시’라고 불러 주십시오.”

“…G.M에 일본인도 있어?”

“아뇨. 가명입니다, 가명! 주 활동무대가… 아- 이런, 쓸데없는 소리까지……”

“괜한 제스처 쓰지 마. 재수 없으니까.”

괜찮은 놈 챈에 대한 모함. 같은 G.M이면서도 저지르고 있는 짓… 차로 쫓아오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새싹들을 현혹하는 용모에 대한 분노… 음, 요건 뺄까? 괜히 질투하는 것 같은… 에- 하여간! 여러 가지로 빡 돌 요소는 차고 넘친다.

“솔직히, 난 지금 제 컨디션이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감정도 감정이지만 현 상황이 너무나 ‘놈들에게’ 나빴다.

“…봐 줄 여유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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