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0-1화 : 가혹한 진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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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0-1화 : 가혹한 진실.(1)


“쯧쯔~! 이거, 이거… 또 계산 밖의 상황이로군.”

닥터 제이의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조담놈의 표정이 더욱 처연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전 아직 패하지 않았습니다! 기, 기어이 다시…”

“헛된 고집 피우지마. 누가 봐도 너의 명백한 패배니까 말이야. 으음. 그래도 너에게는 꽤 기대를 했었는데…”

“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추하군…! 게다가 누가 누구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단 말이냐. 그 권한은 내가 아닌 승자, 진유준 군에게 있을 뿐이야.”

“그, 그건…”

“어떤가 유준 군. 그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아량이 있는가?”

“아량…? 아량이고 뭐고… 한참 싸울 때라면 몰라도, 죽이기 전에 결판이 나버려서 다시 칼질할 의욕도 별로 없습니다.”

“흐음- 자네의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알고 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넘길 줄은 몰랐군. 다른 상대라면 몰라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도플갱어에게는 누구나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인데…”

“뭐… 언제고 싸움을 마다할 나는 아니고, 날 닮은 얼굴에는 X자 표시를 해 놓았으니, 이제 다른 사람들이 헷갈릴 염려는 없겠죠.”

그래. 내가 처음에 먼저 얼굴에 살짝(?) 칼침 맞았을 때 열 받은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였다. 표시는 카피본에 해야지 원본인 나에게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X표시…? 하하핫~! 그게 그런 의미였나? 자네답군 그래. 핫핫핫핫~!”

닥터 제이는 자신이 준비한 비장의 병기가 패했다는 사실은 벌써 잊은 듯 즐겁게 웃어대고 있었다. 조담놈은 그런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닥터 제이의 웃음소리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이, 이쯤에서 한 가지 물읍시다! 원판이나 당신 같은 타입의 사람들이 달랑 하나만 준비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저 녀석 말고도 내 복제를 더 얼마나 만들어서 키워 놓은 거죠?”

“아하. 그래. 그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군.”

“오늘 대표로 나온 걸 보니 몇 명 중에서든 저 녀석이 가장 강한 복제일 테지만…”

“후후~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에…? 서, 설마…

‘지금 녀석은 1000명의 가짜 진유준 중, 가장 약골이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서열 999위부터 1위까지와 차례로 싸워야 할 것이다! 음뿌핫핫핫~!’

이, 이따위 패턴으로 나가는 건 아니겠지?

“뭐… 자네는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나도 거의 동요가 없으니 굳이 더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겠군. 사실은 말이야… 제로(0)…! 아무도 없어! 자네의 복제인간은 말이야.”

그, 그나마 다행… 아, 아니지. 저 인간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

“그러니까, 자네가 조담놈이라고 칭하고 있는 그 친구를 포함해서 말이지.”

응…? 이 인간,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자, 잠깐. 무슨 뜻이죠?”

“무슨 뜻이기는…! 사실 우린 자네의 복제에 실패했다네.”

닥터 제이의 고백(?)에 놀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조담놈도 흠칫 몸을 굳히는 것 같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거기 있는 13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13호는 자네의 복제가 아니라는 얘기야. 세월의 흐름에 따른 성장까지 계산된 성형수술을 어렸을 때 받게 하여 진유준의 용모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 두었던 거지. 나도 물론 본래는 자네의 복제를 성공시키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잘…”

“자, 잠깐!”

이번에 닥터 제이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조담놈이었다. 놈은 자신이 지금 무슨 얘기를 들은 것인지 실감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제, 제이…님…?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거, 거짓말이죠…?”

“…미안하구나, 13호. 하지만 만약 네가 오늘 진유준을 쓰러트리고 그의 자리를 차지했더라면 이런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마, 말도 안돼…! 그, 그럼 난… 나란 놈은 대체 뭐였던 겁니까! 저 진유준이란 남자를 목표로 살아왔던 나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13호. 네가 비록 유준 군의 복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다를 건 없어. 아니, 오히려 난 유준군의 복제에 실패한 후, 유준 군보다도 무공에 적합한 체질과 재능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유전자를 선택해서 일을 진행했던 거야. 그러니 너에게는 유준 군의 복제인간보다도 유준 군의 인생을 차지할 수 있는… 더 유리한 여건이 주어졌었던 거지. 다만 문제는… 나의 계산이 틀렸던 건지, 네가 안이했던 건지… 결과적으로 이렇게 네가 진유준이란 남자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뿐.”

닥터 제이의 담담한 설명에 13호, 아니 조담놈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의지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 같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에게 패하던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몇 배나 처절하고 비참한 절규였다.

조담놈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칼을 내팽개치고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내 입장에서야… 정말 나의 복제가 실패했다면 기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걸 표현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DP의 미래 과학과 그걸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것 같은 닥터 제이가 나의 복제에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의혹과 궁금증도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지금 그걸 따지고 있기에는 조담놈의 절규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저기… 난 이만 좀…”

“으음- 그래. 유준 군은 어찌되었든 승리자이니, 적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자격은 갖춘 셈이지.”

닥터 제이는 생각보다 순순히 그렇게 말했고, 그 직후 벽의 한 쪽이 열려지며 출구를 만들어졌다.

“13호는 뭐, 앞으로 육체와 정신의 회복 여부에 따라 …”

“닥쳐!”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것만 같았던 조담놈이 악에 받힌 음성으로 닥터 제이의 말을 끊었다.

“제이님…! 아니, 이제 ‘님’자를 붙이는 것도! 당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끝이야! 더 이상 당신이 나의 인생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겠어! 알겠나, 닥터 제이!”

자신이 나의 복제가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에 반란을…? 아니, 아니… 그런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진실이 거짓이었다는 점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진유준!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이든! 무엇이었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기어이 네 놈을 쓰러트리고 내가 진유준이 되겠어!”

“어, 야아~ 무슨 결론이 그러냐. 사실 나야 니가 탄생하고 살아오는데 관여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나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인…”

“닥쳐! 너의 존재 자체가 원인이다! 이제 난 네가 되는 길 밖에는 없단 말이다!”

“이런 제기~! 닥터 제이로부터 벗어날 것처럼 말하면서도 결국… 쳇! 알았다, 알았어. 니 맘대로 하세요.”

나는 약간 투덜대는 투로 대꾸하면서도 왠지 더 이상 놈에게 심한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잊지 마라, 진유준! 이대로 끝나지 않아! 난 기필코 널 …”

조담놈의 고함소리가 스륵- 닫히는 금속 문에 의해 잘려진 후, 나는 공연히 뒤끝이 찜찜하여 눈살을 찌푸린 채 걸어야 했다.

나라도 저 녀석과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되면 정체성의 혼란이라던가… 여하간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살짝 돌아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나로서는 놈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놈이 결국엔 나의 복제였던 아니었던 간에… 놈은 놈이고 나는 나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만난 인간들 중 가장 최강의 적수였던 조담놈을 꺾고 결투장을 떠난 후, 나는 얼마간을 조용히 걷기만 했다.

기본적인 상황은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벽이었던 부분이 열리며 나를 지나가게 한 다음, 내가 지나가고 난 후에는 다시 닫혀 벽이 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방향은 수시로 바뀌었고 닫힌 곳은 문과 벽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번엔 미로에서 출구 찾기 놀이라도 시킬 셈인가요?”

“그런 식 말고도 그 곳에는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가 있다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그 장치들 중 어느 것으로도 자넬 막는 건 무리일 것 같군.”

이 인간 지금 ‘아직은’ 이라고 했지…? 그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코스에 있는 장치만이 그렇고, 더 나아가면 내가 정상 컨디션이거나 근원진기라는 걸 써도 뚫을 수 없는 방어 장치가 되어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멈춘 다음 시간을 끌어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결국 걸음을 약간 늦추었을 뿐, 멈추지는 않았다. 내가 멈추면 나의 회복을 방해하기 위해 새로운 뭔가를 내보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내 쪽에서의 조커는…

< 몽몽. 아직 멀었냐? >

[ …죄송합니다. 이 곳에 설치된, 저의 스캔을 막는 장치들의 패턴은 지금까지 다른 장소나 인체에 설치되어 있던 것보다 복잡합니다. 분석에는 81.5%의 확률로 3시간 17분 가량이 더 소요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

‘아직도 3시간 넘게 남았냐?’…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패턴이 더 복잡하다’는 말과 달리, 이 건물에 들어 온 후로 지금까지 지난 시간에 3시간을 더 한다고 해도 예전보다 오히려 빨라진 것이다.

처음부터 몽몽을 표적으로 연구되고 제작된 소위 ‘스캔 방지 장치’들인 만큼 몽몽도 그 동안은 분석에 많은 에로사항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몽몽 역시 나처럼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으음. 그보다 내가 왜 자네의 복제에 실패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뭐, 조금은…”

겉으로는 시큰둥하게 대꾸했지만 사실은 닥터 제이의 수다(?)를 듣고 싶었다. 당연히 나의 복제가 실패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가 떠드는 동안에는 공격이 없을 것 같으니 그 사이 조금이라도 더 내력을 회복할 생각인 것이다.

“후후- 그럴 줄 알았네. 사실… 나만의 실수라면 이렇게 떠버리기도 싫었겠지만, 지금까지 인간을 복제하는 과정에 대해서 밝혀진 건 말이야. 나나 DP의 과학력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복제가 불가능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 바로 자네와… 대교양처럼 말이지.”

“당신, 대교까지…”

“아아- 흥분하지 말게. 먼저 밝혔잖은가. 이미 실패했다고 말이야. 사실 대교양을 복제하여 자네를 압박할 계획도 세웠었는데… 결국 안 되더라고. 우리 DP의 기술로도 명확하게 분석하지 못한 ‘영혼 단계의 문제’라는… 그 정도 가설만이 현재로서는 정설에 가깝게 인정되고 있지.”

“영혼 단계의 문제…?”

“그래. 바로 그거야. 사실 인간의 육체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기술은 이미 수십 년 전에 거의 완성되었어. 적어도 이 곳 DP의 연구소에서는 말이지. 그런데 문제는… 복제된 인체가 원인불명으로 기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더란 사실이었네. 그 원인을 ‘영혼의 유무’에서 찾아 다른 연구진들을 납득시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네만…

어쨌든, 자네와 대교양의 경우는 특히 유별났어. 꼭 본래의 영혼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 다른 미지의 영혼이 깃들어서 새로운 개체가 되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자네들의 육체는 그렇지가 않았던 거야. 나로서도 ‘이 육체에는 꼭 그 영혼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유전자 레벨의 정보로 새겨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비과학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지.”

으음… 왠지 복잡한 기분이군. 나와 대교의 유전자를 저 인간이 멋대로 주무르며 별의별 실험을 다했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서 불쾌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악착같이 지조(?)를 지켰다는 우리 커플의 유전자가 기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 그게 비과학적이라는 생각도 나중에 바뀌긴 했지.

어떤 모종의 단체를 알게 되고 그들이 하는 일을 직접 목격한 후로는 말이야.”

“…모종의… 단체?”

“자네라면, 아니 자네의 그 작고 놀라운 부하의 정보력이라면 이미 알게 되었을 거야. 세계정화재단이라는 곳을!”

세계정화재단…? 몽몽이 찾아낸… 요괴나 악마를 사냥한다는 그 오컬트 단체? 그렇다면 프리메이슨이 아니라 그 재단이 바로 모든 일의 원흉…?

“그 곳과 인연이 닿으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과학’에 대한 개념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 했네. 아니… 좀더 폭넓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까…? 초능력과 심령현상에 대한 연구도 엄연한 학문, 이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에 대해 탐구하는 과학의 일부라고 말이야.”

“…쳇! 나도 이런 저런 경험 때문에 그 말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역시… 그러니까, 인간의 영혼인 유령까지는 몰라도 요괴나 ‘악마’같은 것까지 완전히 믿기는 좀…”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제 곧 믿을 수 있게 될 걸세.”

“…설마, 이제부터 그런 것들을 동원해서 날 막겠다는 겁니까?”

“딩동댕~! 정답!”

이런 제기…! 이 인간, 설마 진짜 그런 짓까지… 웃

[ 주인님! 전방에 에너지 반응입니다! 영체로 추정되나 인간의 영체가 아닌… ]

몽몽의 경고와 함께, 내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엄습해 오는 ‘뭔가’를 향해 본능적으로 정글도를 그었다.

끼아아아-

소름끼치는 비명을 허공이(?) 질렀다. 아니, 그건 그냥 허공이 아니었다. 내 정글도에 베인 직후, 그 허공의 공기가 압축되기라도 한 듯 투명하고 괴이한 짐승의 형체가 떠올랐던 것이다.

지, 진짜냐? 게다가, 썅!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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