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1-1화 : DP 본부의 운명.(1)
7-3. DP 본부의 운명.(1)
상당히… 난감했다.
‘아무래도 우리 편 아닌가’했던 닥터 제이는 일단 그렇다 치고, 적의 명단(?)에서 저 수상한 힘을 가졌음이 분명한 남자 마신일이 빠지게 된 것도 일단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마신일이… 지가 전부 통제할 수도 없으면서도 무책임하게 불러낸 ‘무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저기, 듣자니까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상당히 귀하신 분인 것 같네요. 우리, 말도 통하는 데 웬만하면 좋게, 좋게 …”
나는 나에게 다가서고 있는 늑대님(?)에게 애써 사교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걸어 보았다.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빠, 빠르다?
후웅- 바람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순간, 이미 살기가 내 뒤 쪽에서 느껴졌다.
이렇게 간단히 내 후위를 점해?
어이없고 소름끼치는 와중에도 내 몸 또한 무의식중에 뒤쪽으로 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일검을 날린 것은 왼쪽이었다. 뒤쪽의 페인트에 속지 않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왼쪽에도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 아래? 아님 위? 아래닷
나는 영점 몇 초인지도 모를 순간에 내려진 판단에 따라 위로 도약하며 아래쪽을 노렸다.
틀렸어
나는 공중에서 패액하고 전신을 회전시키며 거꾸로 일검을 날렸다. 그러나 거기에도 적은 없었다. 맙소사! 이건 페인트고 뭐고가 아냐! 그냥… 그냥 빠른 거다
그걸 깨달으며 착지하는 내 왼쪽 옆 머리카락이 피익-하고 날렸다. 나의 옆머리 바로 옆을 스쳐가면서…
아마도 그런 모양인… 그렇게 내 머리카락 일부를 날려버린 늑대가 저만치 앞에서 비로소 모습을 보이며 가볍게 바닥에 내려서고 있었다.
저, 전혀 보이지 않았어
나는 아직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라는 표현을 실감해야 했다. 이건 특정한 초식을 쓸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적의 칼끝이나 총알이라면 몰라도 적 자체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던 건 처음이었다.
하, 하지만! 나도 완전히 놓친 건… 아니었어!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스피드라도 어떻게든…
나는 잠깐 찬물이 끼얹어졌던 투지를 다시 되살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정작 라후의 혈족은 늑대의 입으로 인간처럼 흐음~ 소리를 내며 인간 이상의 무언가를 담은 것 같은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그러고 보니 왜 멈춘 거지? 단 한 차례의 공격으로 내 머리카락 조금 잘랐을 뿐이면서…
< 가, 가만? 모, 몽몽! 내 옆머리, 지금 머리카락만 조금 잘린 거 맞지?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상처가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 >
[ 그렇습니다. ]
< 다, 다행이다. 일단 다행은 다행인데… 빌어먹을~! 내가 기본적인 걸 잊고 있었다! >
[ 우려하시는 바를 알겠습니다. 제가 확보한 늑대인간의 데이터에도 분명 늑대인간에 의해 상처를 입은 인체가 차츰 변이를 일으켜 결국 같은 늑대인간이 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한 인체 세포 파괴 및 재구성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일단 원인은 미지의 바이러스 침투에 의한 것으로 가정하여 최대한 방역 체제를 운용 중입니다. ]
< …그, 그래? >
역시 우리의 만능 닥터 몽몽 선생…! 하지만 상대는 몽몽에게도 낯선 괴생명체인데도 과연 예방이나 치유가 가능한 걸까…? …치이! 잊자. 그 딴 건 일단 잊고 있자! 지금은 눈앞의 적을 깨고 보는 게 우선이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짐짓 태연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핫~! 이거 너무 한 거 아뇨? 사람이 말하는데 기습이라니… 라, 뭐라는 신의 직계씩이나 되는 분께서 말이야.”
“라후…! 태고에 다른 수많은 신들을 물어 죽였던 위대한 분이지.”
다른 신들을 물어 죽여…? 하, 하긴 늑대니까 당연한 건가?
“어쨌든, 방심한 틈을 타서 어설픈 공격 한 번 해 놓고 뭐 하는 거요, 지금.”
사실 방심한 적은 없었다.
“조금 전 내 발톱으로 자른 머리카락을 통해서 너의 영격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묘하군. 천한 듯하면서 귀하고, 귀한 듯 하면서 천한… 알 수 없는 영체를 가진 자야, 그대는.”
“칭찬을 들은 건지 욕을 먹은 건지 헷갈리긴 해도, 여하간 내 생각에는 그런 게 인간 아니겠소? 태어날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아니,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의해서 귀천이 결정되는 거니까!”
“귀한…”
“아~ 쓰바! 미치겠네! 나 요즘 왜 자꾸 뭔가 있어 보이는 대사를 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거지?”
“천한…”
“아, 거~ 사람이 뭔 말 할 때마다 자꾸!”
“큭, 크크크크~ 맛있겠군! 정말 맛있겠어!”
“뭔 결론이 그래?”
“좋아… 이번에는 말해 주지. 간다!”
간단한 선언과 함께 다시 파앗-하고 놈의 형체가 사라졌다.
윽! 더 빨라?
피했다. 분명히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잿빛 탄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 내 오른쪽 어깨 죽지에는 이미 큼직하게 찢겨진 상처가 있었다.
< 몽… >
이럴 틈 없어! 그 문제는 몽몽을 믿고 난… 으윽
또 다시 비명을 토할 사이도 없이 가슴이 찢겨져 나갔다.
상처의 통증보다 몇 배나 더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격전 중도 아니고 이렇게 제대로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당한 건 처음이었다.
“이, 이게 정말…!”
내가 이를 갈거나 말거나, 놈은 또 조금 전처럼 잠시 멈추어서 자신의 발톱에 맺힌 나의 피와 살점을 혀로 핥아먹고 있었다. 아주 맛있는 간식을 먹고 있다는 듯이.
“으아아아아아아아~!”
빡 돌아서 지르는 나의 괴성에 내력이 담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처음으로 놈이 움찔하는 것 같았고, 나는 미친 듯이 정글도를 바닥에 찍었다.
지소파천결, 지파랑(地波狼)
땅 속에 공진을 일으켜 적을 치는 초식을, 넓다고는 해도 분명히 밀폐된 공간 안에서 펼쳐버린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라후의 혈족은 그 충격파마저 간단히 뚫고 거침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래도… 보여, 이번엔
초고속 열차처럼 달려드는 잿빛의 그림자에 전력이 담긴 정글도가 그어졌다. 후욱~ 라후의 혈족이 반격도 없이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베었…다? 아, 아니야.
뒤쪽에서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 보다 내 정글도가 먼저 징징- 울려대며 적을 베어내지 못한 원통함을 토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역시…였다.
“이번엔 제법이었어. 내 몸에 상처를 입힌 인간… 아니 그런 마물조차 있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군.”
“사, 상처? 어디에?”
“당연히 벌써 아물었지, 그런 건.”
놈은 ‘이쯤이었던가…?’ 하는 식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늑대에게도 그런 게 있다면)부위를 혀로 핥고 있었다.
으으~ 내 공격을 받고도 얄밉도록 태연한 저 늑대새끼를 당장 때려 죽여서 가죽을 벗겨 버리…고 싶지만, 으아아~ 미치겠네! 방금 건 월광절화결의 기운을 실은 일격이었단 말이다! 그런 일격에 입은 상처가 침 한번 발라주면 끝…?
그런 거야~?
“야이 쒸! 마신일! 당신 사기 쳤지?”
나는 엉뚱한(?) 마신일에게 고함을 질렀다.
“한 마리면 나한테 안 될 것 같았대매! 근데 이거 뭐야! 완전 사기 캐릭이잖아!”
“에구구~ 화살을 저에게 돌리시는 겁니까? 이번 건, 기껏 반격의 기회를 잡아 놓고도 칼에 좀더 영력(靈力)을 싣지 못한 진유준씨 잘못이잖습니까.”
“여, 영력? 그 딴 걸 싣는 법은… 윽!”
다, 당할 뻔했다
얼결에 몸을 낮추어 피하긴 했지만, 등 뒤로 얼음물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만약 방금 머리 위로 스쳐갔던 몇 줄기의 강력한 기운에 적중되었다면…
그대로 토막시체가 될 뻔… 아니 호신강기가 있으니 그 정도는… 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발…톱? 그 걸로 허공을 격한 공격도 가능한 건가?”
마른침을 삼키고 물었지만, 제자리에서 한 쪽 발만을 휘둘러서 인간 고수의 검기 아니 검강 수준의 어떤 기운을(아마 도 발톱 숫자만큼) 날렸던 늑대님께서는 대답이 없었다.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하기는 했는데 그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크우와앙
크게 벌려진 아가리에서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괴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엄청난 충격이 나의 전신을 강타했다.
추, 충격파! 그 것도 나의 지파랑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
나는 모든 내력을 호신강기로 돌린 채 정신없이 뒤로 밀려 나는 몸을 간신히 가누어야 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계속 되는 충격파는 무형임에도 대기를 뒤흔들어 그 너머가 희미하게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반격은 고사하고 온몸의 기혈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는데 급급해야 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어떻게 저런 괴물을 쓰러트린 말인가…! 그, 그 것도 세 마리나
< 자신을 가지십시오, 진유준씨. >
전음…? 마신일?
< 초보자에게 처음부터 대뜸 영력을 쓰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건 보통의 초보자들 얘기고, 당신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에게는 그만한 재능이 있습니다. >
재능? 그런 재능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
< 뭐… 아마도요. >
…이 인간, 말하는 4가지 봐라.
< 어쨌든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전부터, 그리고 조금 전까지도 영력을… 비록 무의식중에 ‘약간’이지만 분명 자신의 칼에 영력이 가미된 무공을 펼쳤습니다. >
조금 전까지? 내가?
< 음. 저의 식귀들을 날려 버릴 때까지는 그랬는데, 오히려 라후의 혈족과 마주하게 되자 그 것이 빠진 공격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
그…랬…었나?
< 저야 그렇게 된 원인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명심하십시오. 영력이란 당연히 자기 자신의 영혼이 가진 힘! 마음가짐에 따라 쓰고 못쓰고 결정되는 겁니다. 당신이라면 분명… 음. 일단 여기까지. >
[ 주인님! ]
어느 사이 충격파가 멈춰있었다. 나는 아무 공격도 없는데 괜히 몸을 웅크려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는 꼴이 된 셈이었지만, 민망함 같은 걸 느끼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버텨 보려 했지만… 난 결국 털썩 한 쪽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이다.
“쿠, 쿨럭~!”
자신의 칼로 간신히 몸을 유지한 채 자신이 토해 낸 피가 바닥에 번져 가는 것을 보는 건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다.
“거기까지인가, 인간? 하긴, 이 정도도 대단한 거지만 …”
참으로 잘난 늑대님께서는 이제 흥미를 잃었다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흥미를 잃은 건 싸움뿐이고 아직 ‘식사’에는 의욕이 있는지 벌려진 입가에 군침이 흐르고 있었다.
치이- 마신일, 저 남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군. 나는 정글도를 쥔 손에 다시 꾸욱- 힘을 넣었다. 내가 … 조금 전까지는 그 영력인지 뭔지를 쓰고 있었다고? 무심…결에?
나는 이를 악물고 크으-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가오던 늑대가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그래…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 때까지는… 잊지 않고 있었으니까.
“호오~ 더 계속할 수 있겠는가?”
“진기…가 흐트러져서 잠시… 현기증을 느꼈을 뿐, 난 아직 말짱해.”
“과연- 끝까지 즐겁게 해 주는군.”
난 정말 바보다. 아무리 저렇게 강대한 마신의 혈족과 맞닥트렸다고 해도… 그래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었지? 이 싸움이… 누굴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