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3-2화 : 프리메이슨의 실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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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3-2화 : 프리메이슨의 실수.(2)


7-5. 프리메이슨의 실수.(2)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무릎 위의 정글도를 내려다보았다.

내 몸 속에 항상 머무르며 이 정글도를 휘두르는 법을 알려 주었던 생사금마도결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정글도 때와 마찬가지로 생사금마도결에게도 사과했다.

‘천하제일 도법의 명예를 실추시켜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훗~!”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쯧! 유준아, 진유준아… 이젠 무생물도 모자라서 무공까지 의인화시키는 거냐?

[ 주인님…! ]

< 응? >

내가 조금 놀란 것은 몽몽이 갑자기 불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몽몽, 너… 지금 나에게만 들리도록 말한 거지? >

[ 그렇습니다. ]

고개를 들어보니 닥터 제이는 계속 뭐라고 종알종알 떠들고 있는 요몽의 수다를 웃으며 들어주고 있었다.

[ 요몽에게는 ‘패티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밖에도 닥터 제이가 모르고 있는 부분, 즉 전 사용자인 ‘진’의 로봇으로부터 얻은 정보 이상으로 주인님과 저희들에 관한 정보를 유출하지 않도록 주의를 해 두었습니다. ]

< …너, 저 양반을 의심하고 있는 거냐? 지금까지 들은 말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거야? >

[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진술과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분석한 결과만으로도 그의 말에는 신뢰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경계’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

< 그게… 무슨 말이냐? 믿을 수는 있는데, 그래도 경계하라고? >

[ 그렇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진실을 알려주며 주인님의 신뢰를 얻으려 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

< 근데 그게 무슨 문제지? >

[ 그 목적이 문제입니다. 닥터 제이는 지금까지처럼 목적의 타당성을 앞세워 주인님께 위험한 상황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성향의 인성과 사고패턴을 가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성향의 코드명 원판을 주인님께서 항상 경계하시는 것과 달리 닥터 제이는 주인님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주인님께서 냉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울 요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의식적인 주의를… ]

< 몽몽. >

나는 일단 몽몽의 말을 끊은 후 피식 웃었다.

< 너도 알다시피… 나는 본래 상대가 누구든, 남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때로는 그래도 일단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은 게 있는 법이잖아.

우선 이 전쟁 자체가 어차피 이대로 멈출 수가 없어. 적은 너와 내가 만나기 전부터,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기다려 왔다잖아. 안 그래? >

[ 그렇기는 합니다만… ]

< 그리고 원판도 이미 닥터 제이와 비슷한… 쳇. 그 녀석도 나와 혈연…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게 되어 버렸잖아. 녀석의 복제인 하은이가 이모님의 딸이며 나의 사촌 여동생이니까 말이야. …젠장. 굳이 촌수를 따지려면 졸라 복잡하고 애매하겠다. >

이모님을 중심으로, 남이라면 전부 남이고 친척이라면 전부 친척인… 그렇게 돼버린 건가?

[ 주인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경계심’만은 유지해 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

몽몽 녀석, 닥터 제이와의 전반적인 대화 태도도 그렇고, 상당히 견제하는 걸? 새로운 두뇌파의 출현에 참모 자리에 불안감을 느낀 질투심의 발로…는 당연히 아닐 테고, …으음. 생각해 보니 내가 줄곧 적개심을 드러냈던 원판은 오히려 아직은 나에게 그리 치명적인 위기 상황을 가져오지는 않았었던 것 같지…? 그 반면 닥터 제이는 이번에 계속 내 전투력을 능가하는 적들을 보내 온 것이 사실이긴 하다. 몽몽이 닥터 제이에게 따졌던 것처럼 어떤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그래, 몽몽. 앞으로 닥터 제이와 함께 공동의 적과 싸우게 되더라도… 네 말대로 닥터 제이에 대한 경계는 잊지 않을 게. >

[ 전 다만 주인님의 안전을 위한 조언을 드렸을… ]

삐- 삐이~ 삐~ 삐~ 몽몽의 말을 끊고 울리기 시작한 소음은 나의 바로 옆 기기… 아니, 아니다. 주변의 모든 기기들이 산발적이면서도 일제히 비슷한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 현재 장소의 메인 루트로 전력이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모든 기기를 구동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몽몽의 말처럼 완전하지는 않은지 몰라도,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모든 기기의 스위치가 동시에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수치로는 100여 평… 내 기분 상으로는 대형 할인 매장인 2마트가 연상될 정도로 넓은 공간의 첨단(세월을 초월해서) 기기들의 부속 램프와 메인 모니터가 일제히 켜지고 있는 것이다.

“훗~ 이제야 기본 정비를 끝내고 에너지 보급을 시작한 모양이군.”

닥터 제이가 끼익- 의자 소리를 내며 조금 몸을 세우고 있었다.

“…치… 치이… 치익…! 닥… 닥터 제이…”

잡음이 섞인 라디오 소리 같은, 그리고 몽몽의 초기 버전처럼 딱딱한 기계적 음성이 실내의 모든 스피커에서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어쨌든 분명히… 여자의 음성이었다.

“아핫~ 오랜만이야, 플로라!”

닥터 제이가 지금까지의 어떤 때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좀 늦었지? 기분은 어때?”

“…음성 패턴… 체크… 완료. 제2… 패턴… 제3 패턴 검사…”

닥터 제이의 반가운 태도와 달리 플로라인지 뭔지 하는 여자(?)의 기계적인 음성에는 감정 같은 것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메인 시스템 관리자… 신원 확인 완료. …안녕하십니까, 닥터 제이.”

[ 원시적인 반응체계뿐인 초기 AI입니다. ]

몽몽의 해설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미리 녹음된 음성을 틀어 놓은 것뿐인 말투였다. 그러나 닥터 제이에게 만큼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하하~ 그래. 너도 잘 있었나 보구나.”

닥터 제이는 흐뭇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장내의 중앙에 위치한 메인(아마도) 기계 장비 앞으로 가고 있었다.

“에너지 보급률, 현재 72.3%.”

“좋아. 외부 모니터 가용 범위부터 확인해 줘.”

닥터 제이의 요구와 함께, 이곳에서 가장 큰 모니터… 웬만한 영화관의 스크린보다 크지 싶은 거대 모니터의 화면이 부웅- 켜졌다. 그리고 그 모니터는 백모씨 비디오아트처럼, 혹은 바둑판처럼 수십 개의 작은 화면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14번, …28번, 44번, 39번, 31번 카메라를 동시에 연동시킵니다. 참고로, 해당 카메라는 평균적인 고속 기동 정찰기능이 장착된 기종에 부가되는 것이며, 재현 등급 21의 영상 열람자는…”

“뭐야, 플로라. 나 외의 다른 개체에게도 동일한 승인 코드가 있어. 빨리 확인해.”

“…확인 완료. 안녕하십니까, 진유준씨.”

흐음. 나도 일찌감치 등록해 놓았던 건가?

“그려, 니도 안녕하냐?”

“…표준어 사용을 권장합니다.”

“훗~! 진짜 어째 몽몽 너의 초기 버전 삘이 나는데?”

[ 에엑~! 말도 안돼요! 이건 모욕이에요! ]

요몽이 먼저 발끈하여 항의해 왔고, 몽몽도 아직 별 말은 없지만 슬며시 사라지는 폼에서 ‘삐졌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하하~! 나의 플로라를 인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네의 몽몽과 비교할 수는 없지. 현 시대의 몽몽, 그리고 요몽은 AI의 최종 완성체, ‘신(神)’이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니까.”

[ …신? 에이- 그건 좀 그래요. 쫌 오버다. ]

요몽의 반응에 닥터 제이는 다시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닥터 제이의 뒤로 다가서며 물었다.

“어쨌든, 플로라… 그건 이모님의 영어 이름… 맞죠?”

“후후~ 그래. 자신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에 아내의 이름을 붙이는 건 과학자의 로망이지.”

흐음. 그렇다면 나도 만약 나중에 내가 새로운 무공을 만들 게 되면 대교의 이름을 붙여 볼까…? 대교살법…은 좀 그렇고, 대교마공..도 좀… 대교신공…이 그나마 좀 무난한 듯싶긴 한데… 음. 근데 첨부터 살법이니 마공이니 그런 명칭부터 떠올리다니… 비화곡주와 마군황으로 이어지는 경험 때문인가? 아니면 나는 본래 사마외도 체질…?

“자아- 보게.”

“어, 예.”

“자네가 접했던 KS 시리즈에도 응용되었던 기술의 상위 버전이랄까? 소형 기동체에 장착되어 고속 기동 시에도 안정적인 영상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야.”

해석하자면 졸라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소형 로봇들이 지상을 돌아다니며 정탐하고, 그걸 여기서 다 볼 수 있다는 얘기인 것 같다.

“…제 수하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먼저 찾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모니터, 아니 역시 스크린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초대형 화면에 지상의 상황이 다양한 각도와 시점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지하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발 때문에 부근의 지형도 상당히 바뀌어 버렸을 텐데, 그 전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 전에는 이랬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되었군.”

닥터 제이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예전의 지형을 찍은 항공사진과 현재의 지형을 비추는 인공위성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로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광활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랜드 캐년의 한 모퉁이가 … 들고 가다 떨어트린 케이크처럼 안쓰럽게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말이다.

이거, 이거… 전투 헬기와 거미 로봇 부대와 싸울 때 이상으로 자연 보호 헌장을 위반 했는걸? 미국… 아니 지구 단위의 보호 구역을 짓밟아 버린 셈이니… 소위 천벌 받는 거 아닌가 몰라. 으음~ 신이 큰맘 먹고 뽑아낸 예술 작품에 흠집을 낸 건 다소(?) 찜찜하긴 하지만…

“아직 못 찾았습니까? 아, 그리고 하은이, 하은이가 무사히 탈출했는지도 확인됩니까?”

“…하은님의 안전 체크는 저의 재기동과 동시에 모든 의무에 앞서 선행되었습니다. 현재의 위치도 추적 중이나, 탈출 시점과 루트, 동행자의 능력 등을 감안하면 인위적인 지층 붕괴의 여파에서 벗어난 것만은 90% 이상 확실합니다.”

플로라가 먼저 대답해 주었고, 이어서 닥터 제이도 다소 멋적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카디는 본래 나보다 먼저 조직에서 벗어나서 날 서포터 하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함께 지낼 예정이었어. 하지만 역시 하은이가 혼자 다니는 건 불안해서…”

그래서 카디를 보조로 따라붙게 했다는 거군. 하은이가 자신의 복제인 카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몰라도… 흐음.

어쨌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초미녀 쌍둥이 자매가 함께 다니는 걸로 보이겠군. 나나 닥터 제이 입장에서는 천하의 묘랑 진하연의 분신이 둘이나 되니 어느 정도 안심을 해도 될 것 같고 말이다.

“아, 발견한 것 같군.”

닥터 제이의 말에 이어 수많은 화면 중에서 몇 곳이 낯익은 인물들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멀었지만 곧 빠르게 그들의 모습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무사히…

아니 헤어질 때보다 부상자는 많이 늘은 것 같지만… 그래도 어쨌든 모두 살아서 지하에서 탈출한 것 같았다.

내가 저들에게 부여한 임무는 적의 본진 침투 및 폭파, 그리고… ‘살아남아라’였지. 사실 무책임하고 무모한 명령일 수도 있었는데… 근데 전부 해냈구나! 나의 자랑스러운…

꼭 깨물어주고 싶은 수하들 같으니.

“내가 암중에 서포터 해주어서 침투루트에 잔류 병력이 거의 없었다고는 해도… 그래도 대단했어. 아무리 소수라도 생체 강화처리 된 병력들을 일반인들이 제압하고 임무를 완수하다니… 자넨 부하 복도 많은 것 같아.”

“훗~! 당연하죠. 저도 목숨 걸고 얻은 수하들인데.”

그래… 나도 꽁으로 얻은 수하들은 아니다. 마군황이 되기 위한 과정은 결코, 진짜 장난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에 용케도 협곡 하나 건너까지 이동해서 집결해 있군. 저기라면 미군 조사대가 와도 금방 발견되지는 않겠어.”

“미군…이요? 프리메이슨이 아니고?”

“표면적으로는 프리메이슨이 나설 리가 없지. 하지만 백악관과 CIA 등, 미국의 심장부조차 대부분 그렇듯… 결국 비슷한 얘기지. 사고 발생을 알고 출동하는 조사대의 지휘관도 프리메이슨의 회원일 거야. 하지만 그 누가 어떤 장비를 가지고 온다 해도 이곳까지 발굴해서 진실을 알아내려면 최소한 2년은 걸릴 걸?”

2년…이라. 그럼 이 양반은 그 2년 안에 프리메이슨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거, 프리메이슨에 대해서는 우리도 조금 알아보기는 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말이지? 그럼 거의 대부분을 알게 된 것이 맞아. 그들은 진짜 중요한 영역을 제외하기는 했어도, 세상의 그 어떤 비밀 조직보다도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프리메이슨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는 겁니까?”

“그래. 그게 더 무서운 거지. 막말로 자신들을 확 까발리고 숨기지 않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헷갈리는 거야.”

…하긴. 나도 예전에 친구 상훈이 녀석이 프리메이슨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걸 가장 말도 안 된다는 요인으로 꼽았었다. ‘너 그거 전부 도서관에서 읽은 거지? 진짜 그렇게 무서운 비밀조직이라면 자신들의 정체에 대한 책이나 자료가 돌아다니는 걸 그냥 놔두겠어?’라고 말이다.

“후후~ 그래서 프리메이슨의 기밀 정책은 비교적 수월하게 유지되지. 너무나 거대해서 숨길 수가 없는 것만큼이나, 그걸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실감각을 잃게 되거든. ‘에이~ 설마 저게 진짜겠어…?’라고 말이야.”

뻔히 보여도 믿지 못할 만큼, 그냥 비유가 아니라 진짜 아무도 믿지 못하고 있는… 그렇게 황당하게 거대하고 강력한 조직… 그게 프리메이슨이라는 거다.

“…처음에 왜 프리메이슨에 가담했고, 또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거죠?”

너무 압축하고 단도직입적이면서도 모호한 질문이었나…?

“그 얘기까지 해 줘야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들이 이모님을 해쳤다는 사실이죠.”

“…그래. 바로 그거야.”

닥터 제이는 피식,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는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본래 나 자신이 그들 중의 최고위인 33도… 즉,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가 되는 것이 1차 목적이었어.”

[ 최하위 1도에서 시작하여 33도까지에 이르는 프리메이슨의 계급 단위입니다. ]

몽몽 녀석, 다시 나에게만 들리는 채널로 해설을 해 주는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랜드마스터들의 평의회에서 선발되는 ’12인’에 포함될 생각이었어. 그들의 ‘교황(Pope)’까지 되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12인에 포함되는 것만으로도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거였어.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할 바에는 그들 위에 군림하는… 그런 방식으로 자유를 얻을 생각이었던 거지.”

이 양반, 최고 교황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엄청난 스케일로 자유를 추구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을 알게 된 후로는… 당연히 목적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거야.”

여전히 차분하고 웃음기 어린 음성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은근하고 서늘한 살기가 점차 피어오르고 있었다.

“12인, 12인의 사도(Apostolic). 12인의 원로(elder)… 등등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지만 본래는 그냥 ’12인’이야. 그들 12인이 구색뿐인 교황을 대신하여 프리메이슨을 지배하고 있지.”

“12인의 사도, 원로…! 그럼 그들 중에 누군가가… 아니 모두 합의해서 결정한 건가요? 이모님…의 암살을?”

“나도 몰라, 아직은.”

쯧…! 이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5년 동안 조사해 왔을 텐데 그것도 모른다는 건가?

“그러니… 전부 없앨 수밖에.”

응? 그러고 보니 그런 방법이…

“12인, 모두 없애 주겠어. ‘300위원회’를 박살내고, ‘로마 클럽’을 짓밟고, ‘검은 귀족’을 추락시킬 것이며, ‘원탁회의’의 탁자를 불태워 주겠어.”

닥터 제이는 자신을 점령한 분노의 불꽃을 진정시키려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뭐, 대충 그럴 생각이야.”

“협조하죠, 기꺼이!”

나의 답변이 너무 즉각적이고, 굳이 ‘기꺼이’라는 말을 강조해서인지 닥터 제이도 조금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보아온 자네는…”

“잊고 있었죠.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이모님의 얼굴조차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그건 잊으려고… 아니, 그냥 무관심해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전…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렇게 회피하곤 했거든요.”

그래… 그랬다. 이모님은 그냥 막연하게 친척 중의 한 분으로 어렴풋이 기억되기만 해도 되는 거였다. 어차피 그분이 어떤 인생을 살든 내가 뭘 어째서 도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거였으니까.

“근데, 그게 말이죠.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 가끔 어린 시절에 어머니, 엄마 등에 업혀있던 기억까지 나거든요? 저를 업기 위해 썼던… 포대기인지 뭔지가 허벅지와 엉덩이를 조이던 느낌… 엄마 어깨 너머의 새롭고 다채로운 풍경… 때때로 돌아보며 ‘자니?’ 하고 묻던 엄마의 다정한 음성…”

가끔, 자주는 아니지만 나는 정말 가끔씩 그런 기억을 꿈에서 보거나 그냥 평소에도 떠올릴 때가 있었다.

“근데… 근데 말이죠. 그 기억 중에서 몇 번은… 아니 거의 절반 정도는… 대상이 틀리다는 걸 느끼곤 했죠.”

나는 닥터 제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모님… 제가 한때 ‘희야 이모’라고 불렀던 그분… 목 뒤에 점 두 개가 있죠?”

“…그래. 크기가 작고, 부위가 그래서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지.”

“아주 어렸을 때 엄마만큼이나 자주 저를 업어주고 안아주던 분에 대한 기억은 그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그러니까 그분이 그냥 편하게… 하여간 자연스럽게 가시지 못한 거라면…”

프리메이슨은 확실히 엄청난 규모와 조직… 그들은 조직원을 그냥 회원이라고 한다던가…? 하여간 미국의 대통령을 포함해서 누구나 아는 거물들이 회원일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조직이다. 그들이 그렇게 성공(?)할 때까지 크고 작은 실패나 실수도 많았겠지만… 그 실수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여인을 해친 일일 것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선량하나 그들에 비해서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게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묘랑 진하연의 어머니이며 알 수 없는 저력과 집념을 가진 천재의 아내였으며, 나 진유준… 현 시대 마군황의 이모였다.

나는 정글도를 쥔 손에 더욱 힘을 가하며 닥터 제이에게 말했다.

“혼자 다하기 없깁니다. 쫌…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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