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5-1화 : 마녀와의 재회. 그리고…(1)
- 3부 – 7-7. 마녀와의 재회. 그리고…(1)
이 사람… 진심인가…? 정말 복수를 위해 세계 멸망까지 결심하고 그런 준비를 해 왔다는 건가…? 그래서 한 편으로는 자신이 ‘폭주’하는 걸… 하은이까지 해칠 지도 모를 자신을 항시 경계하고 있어 주기를 바라는 건가…?
그의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와 굳이 이런 얘기까지 해 주는 의도가 무엇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전에, 얘기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가… 너무나 잘 이해가 되고 있었다. 나 자신도 역시 대교를 되찾기 위해서 미래의 운명을 담보로 미래를 협박하려고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만약 정말 그럴 생각이라면 제가 막을 겁니다.”
“그 만약의 경우에는… 쉽지… 않을 걸세.”
“그렇겠죠. 지금까지 당신께서 저를 수많은 안배로서 암중에서 조종해 온… 제가 어느 정도 눈치 채고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되든 그런 일까지는 막아야 한다. 이 사람은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대교를, 하은이를… 나의 가족을 보호해야 하니까…
앞으로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추기로 하는, 그런 걸 전제로 한 만남치고는 끝이 다소(?) 썰렁해진 셈이었다.
[ …주인님의 이모 되시는 분과 관련된 얘기라고 해도 좀 더 냉정하게 받아들이시기를 권고합니다. ]
닥터 제이와의 통신이 끊기자마자 몽몽이 한 말이었다.
[ 저의 판단으로는, 주인님께서 혹시라도 프리메이슨과 협의하는 형태로 싸움을 끝낼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못을 박아 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
< …그래. 그런 의도가 가장 크겠지. >
몽몽의 말이 아니더라도 난 내가 좀 더 침착하게 닥터 제이를 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 내가 아무리 어딘가에 소속되어 지배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해도… 대교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확실히 프리메이슨은 너무나 거대한 조직이고… 아무리 나라도 타협의 유혹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인정해. 더구나 최대의 변수가 있는 데… 그것마저 미리 경계하라는 경고의 의미도 크겠지. >
[ 최대의… 변수요? 그게 뭔데요? ]
< …요몽, 너 이번엔 지하 세계가 무서워서 안 나오고 있었냐? >
[ 에이~ 참. 주인님도? 제가 아니라 패티 때문이라니까요. ]
< 훗~ 암튼, 말이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변수라는 건…
‘프리메이슨’… 그중에도 의외로 괜찮은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야. >
[ 아- 그것도 그렇겠네요. 주인님께서 자주 **해서 XXX한 다음, 모모를 모모해서 삐리리- 할 X새뀌, 쓰레기만도 못한 폐기물… 그렇게 표현한 사람들도 어쩌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지 모르고… ]
< …내가 그렇게까지 표현했었냐? >
[ 그럼요. 게다가 사과 박스 사건이나 29만원 얘기 때는 더 심한 ##를 !!!할 XX라고 하시기까지… ]
으음. 앞으로 그 인간들에 대한 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가급적 요몽과 패티 앞에서 직접 말하지는 말아야겠군. 얘들 정서에 안 좋겠어.
< 암튼, 그래. 닥터 제이는 그런 경우까지 생각해서 내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거 같아. >
[ 게다가 그는 앞으로 주인님께서 보다 철저하게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해 주기를… ]
< 그건… 아닐 거야, 몽몽. 그가 내 성격을 안다면… 내가 그렇게 나오는 상대에게 어떻게든 반발하려 들지도 알 테니 말이야. 내가 보기엔 오히려 자신에게 무조건 이용당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뭐… 그렇게 해석해도 그 역시 나를 계속 트레이닝 시키려는 의도일 테니, 역시 기분은 껄끄럽지만… >
그래… 정말 최후의 진심은 어떨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이 계속 나에게 무공과 정신력, 거기에 머리 쓰는 법까지 더욱 키우려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닥터 제이의 의도와 달리 지금의 나는…
< 아아~ 모르겠다, 쓰~바! 힘쓰는 일만도 빡센데 계속 머리까지 쓰려니까 아주 스트레스 받아 미치것다! 요몽, 몽몽…! 당분간… 그러니까 다시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골치 아픈 얘기 금지!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 음… 이건 골치 아픈 얘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
< 뭔데 그냐, 요몽. >
[ 앞으로 어떤 일 있다 해도… 설마 저희들을 프리메이슨에게 넘기신다거나 그러진 않으실 거죠? 그쵸? ]
사실상 내가 방금 금지라고 했던, 골치 아픈 축에 속한 얘긴데도 내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 당연하지! 니들처럼 귀여운 녀석들을 왜 남 줘? >
[ 후후. 역시 주인님은… 음, 하지만 만약 대교님과의 일이 겹치기라도 하면… ]
< 그래도 못 줘! 대교도, 몽몽도, 요몽도, 팬티도 다 내꺼야! 집적대는 놈들은 무조건 박살! >
응…? 이런 저런 생각할 때는 골치 아프기만 했던 일들인데, 마음을 비우고 감정에 충실하니까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 방침이 내려지네? 뭐, 사실 전부터 계속 그래 오기도 했지만…
[ 헤에- 주인님은 역시 욕심쟁… 어, 근데 방금 뭐라셨죠? 패티를 팬티라고 하셨죠? ]
< 어…? 내가 그랬나? 하지만 패티나 팬티나 한끗발 차인데 뭐 그리 민감해? >
[ 뭐가 또 한 끗발 차이예욧! 패티가 또 울잖아요! 주인님 변태! ]
이런, 이런. ‘주인님 미워’라는 말이 지금까지 들어본 최대의 욕(?)이었는데… 이젠 그런 소리까지…?
< 몽몽. 나 지금 상처받았다. 말 좀 헛 나왔다고 이래도 되는 거냐? >
[ 죄송합니다, 주인님. 단시간에 반드시 재교육을 시켜 놓겠습니다. ]
< …그럴 자신은 있고? >
[ …단어 사용 규제에 관한 부분만이라면… 어떻게든… ]
쯧쯔~ 몽몽 녀석도 참…
처음에는 요몽을 회초리로 다스리기도 하던 녀석이 어느 틈에 이렇게 꽉 잡혀 살게 되었구나. 솔직히 요 녀석들이 평소에 지들끼리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 몰래 보고 싶기는 한데… 그랬다간 요몽 녀석이 길길이 뛰겠지?
시스터 콤플렉스 증상 심화 소년 몽몽, 버릇 상실 증후군 소녀 요몽, 본래 초심약 소녀 막내 패티…! 물론 이들 삼 남매 중에서 패티와는 아직 인사도 못 나눠 봤다. 하지만 다른 두 녀석과의 대화만으로도 그간의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수하들을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점차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나의 자랑스러운 수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사도객들로 하여금 보초까지 세워놓았지만, 계속 닥터 제이의 초소형 정찰 로봇들에게 포착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군.
아무리 최대의 연구소와 닥터 제이가 사라졌다고 해도 프리메이슨은 기본으로 비슷한 규격과 기능을 가진 장비들을 가지고 있겠지?
음… 아무래도 곧 닥터 우디에게 탐지기와 기타 여러 장비들을 만들라고 해야겠어.
그래야 몽몽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도 적의 장비에 대항하는 모양새를 낼 수 있겠어.
내가 닥터 우디를 효과적으로 부려먹는 생각을 하며 다가가자 보초인 은사도객이 가장 먼저 날 발견하고 모두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손을 들어 입가에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조용히 가만있으라’는 전음을 보냈다. 아직 내가 온 줄을 모르는 수하들과 용병대 대장 터너 사이에서 뭔가 다투는 듯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더 이상은 갑갑해서 못 참겠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할 거요?”
“훗~! 우린 한 번도 당신에게 같이 기다려 달라고 한 적이 없을 텐데요?”
가볍게 웃으며 대꾸하는 건 당연히(?) 우리 측의 페트라였다.
“쳇! 난 단지 내가 참여한 싸움의 결과를 끝까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뿐이요. 내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아뇨. 이번 싸움에서 당신과 당신의 부하들은 분명 계약 이상으로 잘해 줬어요. 우린… 당신이 아주 훌륭한 동료, 전우라고 생각해요.”
“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래서 이 상황이 너무나 갑갑하단 말이오. 아무리 그 사람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가 안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무작정 폭파를 해 버려? 그리고 결국 지하기지의 생존자들 중 일부를 생포해서 그가 그 시간에 더욱 깊숙한 기지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는 증언까지 들었잖소. 그런 사실까지 알고도 이렇게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터너는 페트라가 여전히 조용히 자신의 말을 듣고만 있자 더욱 인상을 긁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여간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하다못해 당장 현장으로 돌아가서 지켜봅시다. 그가 미군 수색대에게 발견되면… 그러니까… 만약 살아있다면 구출하고, 죽었다면… 그래도 그 유해를 당신들이 거둬야 하는 거 아뇨? 당신들의 주인이라면!”
거참… 하루 이틀의 짧은 전투만을 함께 했을 뿐인데, 저 남자는 나를 저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건가? 열혈 의리파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린… 천주께서 ‘재량껏 아무 때고 폭파하라’고 하셨기에 그리했고, ‘돌아갈 테니 기다리라’ 하셨기에 그리할 뿐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하신 말씀을 어길 분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저렇게 잔잔하게 웃으며 대꾸하는 페트라, 그리고 말은 안 해도 비슷하게 느긋한 표정일 뿐인 다른 수하들은 한술 더 뜨는군.
“하아아~ 당신들은 대체… 이건 충성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앙…”
고개를 젓던 터너가 문득, 뒤늦게 날 발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다른 내 수하들의 시선도 모두 나에게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다소 쑥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잠시 멈추고 있던 걸음을 다시 떼기 시작했다.
이미 거의 저문 일몰의 마지막 붉은 빛이 눈부시다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웃고 있는 수하들의 얼굴에 기쁨의 기색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일제히 포권하는 수하들을 향해 가볍게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수고들 했어.”
쯧…! 역시 그리 멋진 재회의 인사말이 나와 주지는 않는군.
“맙…소사…! 정말 그곳에서… 돌아온 겁니까…? 그렇게… 멀쩡…하게?”
“아, 뭐. 그렇게 멀쩡하진 못하고… 에구구~ 실은 나도 골병이 좀 들었다우.”
나는 터너에게 그렇게 대꾸하며 페트라 앞의 적당한 바위 위에 앉았다.
“천주, 후속 부대의 헬기가 근처에서 대기 중이니 바로 호출하겠습니다.”
“그래. 자세한 보고는 천천히 들을 테니 바로 철수 준비부터 해 줘.”
페트라는 즉시 다른 수하들과 함께 내 지시대로 철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터너는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허, 허허… 헛, 이제… 이제 나도 무슨 말이든 믿겠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어 버리겠다고. 설사 지하에서 지옥의 악마와 싸우다 왔다고 해도 믿어 버리겠다구!”
“어… 그게 원래 진실인데…? 진짜 지옥의 악마와 한판 붙었었단 말이오. 엄청나게 강해서 결국 이기지는 못했지만…”
나는 무심코 얘기를 꺼냈고, 터너의 실없이 허허대는 웃음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랜드캐년 전투를 끝낸 후, 대략 이틀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온통 새하얗고 정갈한 분위기의 병실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나는 결가부좌는 풀리 않고 상체만 조금 움직여 보며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으음. 많이 좋아진 것 같군.
당연히 아직은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여기저기의 상처가 터지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심한 부상이 많았었기 때문에, 나는 그랜드 캐년을 떠나 홍콩까지 돌아오자마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천의마군이 그 역시 부상 중이라 다른 A급의 사들로 구성된 의료진에게 하루 정도 집중 치료를 받았고, 그 후로도 계속 이 병실에서 운기조식으로 몸을 추슬러 왔던 것이다.
한국의 신불산, 중국의 지하무림 석실, 해저 연옥도… 그런 곳이 운기조식 장소로서는 최고겠지만… 역시 당분간만이라도 대교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지 않으니 할 수 없지.
기분 같아서는 홍콩에 오자마자 대교부터 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보여서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지금까지 꾹꾹 참고 있었던 것이다.
< …은사마군. >
< 예, 천주. >
병실 안에서 대기 중이던 은사마군이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 대교는 뭐라고 했지? >
사실 내가 지금 운기조식을 끝낸 것은 이 시간쯤에 대교에게 연락을 하라고 미리 지시해 뒀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얼굴만 뺀 미라 꼴이지만, 그래도 처음보단 꼴이 좀 나아졌다 싶었고… 그리고 더 이상은 운기조식조차 계속하기 어려울 만큼 녀석을 만나고 싶었다.
< 30분 후인 7시쯤에 화보 촬영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스케줄은 모두 취소하고 이곳에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
< 그래…? 뭐, 그리 많이 다친 건 아니라고 했지? >
< 그렇습니다. 하지만 천모(天母)께서… 아, 아니… 대교님께서 놀라지 않게 하시려면 상의를 걸치시는 편이… >
< 으음. 아무래도 그게 좋겠군. >
천모는 당연히 나중에 지하무림 사람들에게 불리게 될 존칭이다. 하지만 아직은 좀… 아니, 상당히 쑥스러워서 일단은 금지시켜 두었다.
< 그런데… 자룡대의 페트라 부대주도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
페트라는 이번 전투의 이런저런 뒤처리를 위해 홍콩까지 따라오지는 않았었다.
< 흐음. 일 처리는 모두 잘 되고 있데? 우선 거미로봇들은? >
< 모두 10개 부대로 분산하여 한국과 중국 본토, 이곳 홍콩, 그리고 일본 등의 아시아 지역에 고루 배치 및 동면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배치 지역에 곧바로 수송과 에너지 보급이 가능한 장비를 추가로 배치 중에 있습니다. >
닥터 제이 말로는 그 거미로봇들이 아직 시제품이라는 이유로 프리메이슨에게 메인 가동 시스템과 제어 장치의 중요 기술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것들을 다시 요긴하게 써먹어야 할 때가 오기 전까지 심약 소녀 패티가 요몽의 절반만이라도 닮아져야겠지만 말이다.
< 닥터 우디, 그 사람은? >
< 중국 본토로 보내서 승룡대주(乘龍隊主) 개인 소유의 연구소로 이송했다 합니다. ‘신병은 확실히 지키지만, 최대한 VIP 대접을 해주라’는 천주의 엄명도 확실히 전달했습니다. >
< 후후후- 그 사람, 곧바로 은사마군으로부터 벗어난 것만은 기뻐하겠군. >
< 아, 예.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가 천주의 명령을 모두 수행한 후에는 ‘예쁜 모습으로의 개조’를 시키고 싶습니다. >
윽, 이 여자… 하여간 은근히 집요하다니까?
< 안… 되겠습니까? >
< 훗~! 상관없어. 나중엔 은사마군의 뜻대로 해. >
< 감사합니다, 천주. >
닥터 우디에게는 미안하지만 하는 수 없군. 솔직히 나도 계속 주먹만 한 거미들을 쓰는 건 다소 찜찜하니 말이다.
< 그리고… >
은사마군은 보고를 계속했지만, 처음 두 건에 비하면 사소한 축에 드는 문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교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나는 점차 초조해지면서 문 쪽으로만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 주인님! ]
< 아, 왔냐? >
[ …죄송하지만 대교님이 아닙니다. ]
이런… 제기. 페트라가 먼저 도착했나? 어…? 페트라는 일단 페트라인데… 자룡대주까지 함께 왔잖아?
[ 에고, 일났다 일났어. 대교님도 곧 오실 텐데 하필 이때 자룡대주가 나타났네요? ]
으음- 우리 대교는 배포가 큰 여걸이니 호들갑을 떠는 요몽 말처럼 ‘일났다, 일났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좀 껄쩍지근하긴 하군.
“어… 병문안인가? 한두 번 다치는 것도 아닌데 뭔 꽃다발씩이나 가져왔어.”
일단 전음도 쓰지 않고 인사하는 건, 기밀 사항이나 하여간 길어질 얘기는 다음에 하자는 의미.
“후후-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오래 전에 모셨던 것만 같아서…”
자룡대주는 느긋하게 웃으며 자신이 가져온 꽃다발을 꽃병에 꽂더니, 여전히 느긋한 태도로 침대까지 다가왔다.
“어, 페트라 부대주에게 이번 전투 얘기는 모두 들었지?”
“그럼요…! 그리고 그렇게 환상적인 전투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답니다.”
“에이~ 뭘! 싸움이란 게 다 거기지 뭐. 어쨌든… 페트라 부대주처럼 유능한 인재를 보내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호호~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 여자… 왜 이렇게 평소의 모습과 다른… 그러니까 필요 이상으로 생글거리는 거지…? 이거 어째 좀 불안한 걸?
“…천주.”
“응? 왜? 바빠? 바쁘면 다음에 또…”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했지만, 자룡대주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사표 내고 왔습니다. 이제 실직자가 되었으니, 받아…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