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65-2화 : 마녀와의 재회. 그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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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65-2화 : 마녀와의 재회. 그리고…(2)


으윽, 이 여자 정말…! 많은 식구들을 거느린 자는 어사조에서 제외한다는 조건을 걸었더니… 그랬더니 그 많은 식구들을 버리고(?) 와버렸다 이거냐?

“저기… 자룡대주. 이 어사조란 건, 알다시피 임시직…이거든? 근데 여기 들려고 애써 일궈 놓은 평생 직장을 버린다는 건 좀…”

물론, 날 잘 꼬시기만 하면 지하무림의 천모 자리를 꽤 찰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이 여자는 과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걸까?

“다시 생각해 봐. 꼭 어사조가 아니더라도… 자네가 지하무림 사람인 건 변함이 없잖아? 게다가 내 제자이기도 하고… 하여간 굳이 어사조를 고집하지 않아도…”

계속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군. 제기…!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그냥 무조건 본래 자리로 복귀하라고 ‘명령’을 내려야겠다.

“자룡대주는 당장…”

[ 주인님. 대교님께서 문 밖에 도착하셨습니다. ]

에그머니나, 하필 이런 타이밍에.

나는 지래 놀라고 긴장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곧 문을 열고 들어서는 대교의 표정에는 그리 크게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먼저 나에게, 그리고 조용히 다른 실내의 여자들에게도 목례를 보냈을 뿐이었던 것이다.

으음. 역시 대교는… 아, 아닌가?

대교는 그녀 역시 들고 온 꽃다발을 앞세우고 내게 다가오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낮은 음성으로 말하기를…

“볼 때마다 늘어나네요. 이 꽃처럼 아름다운 여자 분들이.”

으~ 차라리 그냥 겉으로 화를 내라.

“저와 은사마군은 구면이란 거, 기억하시죠?”

자룡대주가 먼저 말을 걸자 대교는 밝게 웃으며 자룡대주를 돌아보았다.

“후후~ 당연하죠. 저와 술잔까지 나눈 사이인데… 음, 자룡대주님, 맞죠?”

“맞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님’자를 쓰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신분이 달라 제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어머. 요즘 세상에 누가 신분을 그렇게 따져요. 게다가 전 아직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우리 서로 존칭을 쓰기로 해요. 그래도 되죠?”

마지막에 물은 건 나에게 한 거고, 나는 결국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쨌든 아직은 뭔가 불꽃이 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먼저 꽃병을 차지해서… 그 꽃 이리 주세요. 바꾸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것 없어요. 제가 늦게 온 잘못이죠, 뭐.”

그러니까… 내가 혼자 너무 민감한 건지 몰라도…

“음. 그런데 하시던 말씀은 계속…”

어, 야아- 자룡대주.

“아… 뭔가 말씀 나누시던 중이었군요. 제가 자리를 비킬까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전 다만 복직을 부탁드리고 있었거든요.”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설마 이 분을 해고하기라도 한 건가요?”

쯧, 누가 들으면 어사조가 무슨 직장인 줄 알겠다.

“그게 아니라, 대교. 실은 자룡대주가 자기 직장에서 사표를 내서까지 우리 조직의 임시 팀에 굳이 들어오려고 해서… 그래서 설득…하려던 참이었어.”

대교는 다시 자룡대주를 돌아보았고, 자룡대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천주께서는 무례를 용서하시길. 하지만 어사조는 ‘임시 팀’…이라고 표현될 정도가 아닙니다. 천년 만에 돌아오신 천주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실 수 있는… 지하무림인들에게는 이번 생애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영광된 자리지요.”

“저기, 내용이 너무 과장…된 거 아닐까?”

나는 어색하게 대꾸하며 이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가장 무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으음. 전 뭔가 실감은 잘 안 나지만, 그래도 본인이 저렇게 원한다는데… 그냥 허락하시면 안 되나요?”

“응, 알았어, 대교. 허락한다, 자룡대주.”

내가 이제 와서 대뜸 너무나 쉽게 허락을 해버리자, 병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자룡대주의 얼굴이 움찔 굳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자연스럽게 웃음 띤 얼굴로 바뀌며 대교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시 천주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제가 뭘 했다고요.”

제기… 모르겠다. 대교나 자룡대주도 공적인 일에까지 신경전을 벌일 타입은 아니니까, 차라리 지금부터 서로에게 내성(?)을 기르는 편이 나을 수도…

“아, 그런데 제가 잠시 이 분과 할 말이 좀 있는데…”

…역시 은근히 무서운 대교. 간단하게 라이벌(?)과 그 외의 여자들을 실내에서 몰아내(?) 버린다. 그 후에 대교는 자신이 가져온 꽃을 결가부좌를 틀고 있는 내 옆에 놓고 자신은 그 너머의 침대 옆에 앉았다. 자룡대주의 갑작스런 복귀 때문에 며칠 만의 재회가 다소 (?) 어색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대교가 가져온 꽃과 대교 자신의 향기가 병실을 채우기 시작하자 빠르게 기분이 바뀌기 시작했다. 대교도 이제야 약간 쑥스럽다는 기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

“하아-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다른 여자 분들이 신경 쓰여서… 음, 저 정말 못된 계집아이죠?”

“…훗! 난 그런 모습이 더 좋아. 관심이 없으면 질투도 할 리가 없잖아.”

“치이- 질투 같은 거 아녀요. 그냥 좀…”

에구, 귀여운 것 같으니. 그게 질투지 뭐가 질투냐?

“음. 그런데… 저도 앞으로 계속 당신께 진유준씨…라고만 불러도 되나요? 아니면 ‘님’자를 붙여야 하나요?”

“넌 당연히 그냥 편한 데로 부르면 돼. 뭐… 가급적 예전처럼 더 다정하게 불러 주면 좋겠…”

…어?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대교는 나에게 늘 곡주님이나 진하사님이라고만 불렀었잖아? 딱 한 번… 그러니까 소림사에서 백팔나한진과 대치하고 있을 때…

그때 처음으로 내게 어떤 다른 호칭을 쓰려다가 만 적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제가 어떤 호칭을 썼었는데요?”

“아, 아니… 그게… 그때도 딱히 특별한 호칭을 썼던 건 아닌… 아니긴 했는데…”

으으~ 새삼 무지하게 궁금해지네. 정말 빨리 대교의 기억을 찾아야 할 텐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원판의 힘을 빌려 대교의 기억을 되찾는 ‘반칙’에 대한 유혹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하지만 역시…

“노력…으로 찾아야지, 그런 건 역시…”

“…죄송…해요.”

“어, 어? 아냐, 네가 아니야!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였어! 네가 기억을 잃은 건, 그건 결국 내 잘못이란 말이야!”

나는 다급하게 부인했지만, 내가 무심결에 중얼거린 말은 이미 대교의 안색을 어두워지게 한 뒤였다.

…빌어먹을! 이 아이는 여전히 ‘자신이 진유준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 자체’가 가장 괴로운 거야. 차라리 …

다시 반칙의 유혹이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반칙도 반칙이지만, 무엇보다 원판의 기억봉인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상처는? 죄송해요, 그것부터 물었어야 했는데…”

대교는 애써 다시 표정을 수습하며 그렇게 물었다.

“그래. 괜찮아. 별거 아니야.”

“얼굴의 그 상처… 그리고 다른 곳도 다친 거죠? 당신 같은 분이 얼굴의 작은 상처 때문에 입원까지 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다른 곳도 뭐… 그냥, 조금…”

대교는 당장 바짝 다가와서 상처를 살펴볼 것처럼 반사적으로 손부터 뻗어 오다가 문득, 멈추었다.

지하무림의 석실에서 과거의 일들을 알았을 때… 그때도 그랬어. 날 받아들이려 애쓰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저렇게 거리를 두려고 했지.

나는 대교가 머뭇거리며 걱정스런 시선만을 보내고 있을 뿐인, 저런 모습이 오히려 더 안쓰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예의 기억봉인의 ‘키워드’는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과 진유준까지 위험해진다’였지…?

그렇다면… 대교가 무의식중에 계속 나와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 기억을 못 하고 있는 데에 대한 죄책감 때문뿐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아는 대교는 겉보기와 달리 누구보다 강한 심성을 가진 소녀다. 결국 그녀가 지금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건 원판의 기억봉인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무의식이 기억을 되찾아선 안 된다고 막고 있다는 얘기…

그렇다고 하면, 대교의 기억을 내 손으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정도가 아니야. 이게 정답이었어.

대교를 지키는 싸움과 기억을 되찾는 싸움은 같은 거였어.

< …몽몽. 현재 ‘마녀 여옥’과 소교의 위치는? >

마녀 여옥의 움직임은 당연히 항상 GM과 우리 지하무림 자체 정보망을 통해 몽몽이 관리하는 사이트로 전해지고 있다.

[ …두 사람 다, 이 곳 홍콩에 위치한 여옥의 저택에 있습니다. ]

마침 잘 되었군.

“진…유준씨?”

“아, 미안. 잠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갑자기 비죽이 웃으며 대교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로서는 다소 뜬금없다고 느낄 만한 걸 물었다.

“소교…! 소교가 보고 싶지 않니?”

“예? 그야 당연히 보고 싶지만…”

“그럼 보러 가자, 함께.”

대교의 커다란 눈동자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지금… 말인가요?”

“그래. 뭐, 안 될 거 없잖아? 너와 소교는 전생에도… 지금도 너무나 사이 좋은 자매인데 말이야.”

대교는 당장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망설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대교야. 난… 요 며칠 사이에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나와 널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대부분 파악하게 되었어.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금동이와 GM에 관한 일들이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교와 내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여옥…! 마녀 여옥이었어. 네가 왜 그렇게 마녀 여옥을 두려워하는지, 난 그게 이해가 안 돼.”

물론 마녀 여옥은 오랜 세월 동안 대교를 괴롭혀 왔고 지금도 여전히 대교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교는 그 정도의 악녀에게 기가 죽을 소녀가 아니야. 소교처럼 사랑하는 동생이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지.”

대교는 계속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즉시 문 밖으로 전음을 날렸다.

< 자룡대주! >

< 예, 천주. >

< 마녀…라고 불리는 여옥이란 삼합회 여자, 기억하나? >

< …기억하고말고요. 저를 납치했던 자들의 보스 아닙니까. >

아… 그랬었지, 참. 암튼…

< 그 여자가 지금쯤 나의 정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

<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의 부활을 일부로 소문 낸 적은 없고… 재 등극하신 이후의 기간도 짧지만, 아무래도 이 바닥은 소문이 빠릅니다. >

…하긴, 그때도 마녀는 이미 내가 ‘어떤 조직의 젊은 보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 이후로도 내가 꽤 요란하게 놀긴 했지.

<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 여자와 딸인 여수혜, 두 사람을 초대한다. 형식은 그때와 같지만 날짜는 오늘 당장, 그리고 한 가지… 장소는 그 쪽에서 정해도 된다고 해. >

< 복명! >

[ …주인님. 아무래도 날짜가 오늘인 것은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 얌마! 내가 발동 걸렸을 때는 초 좀 치지 마라. >

[ 죄송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코드명 마녀의 오늘 일정을 확인해 보니, 잠시 후 큰 규모의 파티가 자택에서 시작될 예정입니다. ]

이런~ 제기! 왜 하필 오늘…

[ 죄송합니다, 주인님. 현재까지 확인된, 초청장을 받고 입국 확인된 명단은… ]

< 입국…? >

…뭐야, 이거. 홍콩과 삼합회 보스들은 물론이고 대만 삼합회, 거기다 미국 삼합회 지부의 간부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그 바닥 파티인 거야?

[ 우웅~ 몽몽 오빠 잘못만은 아니에요. 이렇게 중요한 일을 느닷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시는 분이 어딨어요? ]

< 요몽, 콩 구워 먹는 게 아니라 볶아 먹는… 그보다 너, 자꾸 게기면… 아, 아니 그것도 저것도 다 나중에 따질 일이고! 암튼… 차라리 잘됐다. >

[ …지하무림의 세력이라면 파티 참가자들의 세력도 제압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과 같은 거대 조직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시점에서 더 적을 늘리는 건 삼가시라고 권고합니다. ]

< 됐어, 몽몽. 적이 얼마나 늘어나도 상관없어. >

[ 흐음~ 하여간 주인님은 대교님 일에는 유독 더 엄청 터프하고 성급해지신다니까? ]

< 요몽 너도 됐고, 하여간 니들은 파티 구성원들이나 좀 더 자세히 파악해 줘. >

정말이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 것 같다. 솔직히 몽몽 말대로 너무 산지사방에 적을 만들어 놓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대교. 아직 결정 못했니?”

내가 다시 불쑥 묻자, 대교는 흠칫 더욱 긴장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항상 마녀와 만나서도… 싸워서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역시… 사영이 문제였던 건가?

  • 그녀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아니 눈앞의 모든 사람들을 물어뜯어 그 피와 살점을 먹고 살아가며 또한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천성을 가지고 있다… –

이것이 사영이 대교에게 마녀 여옥에 대해서 묘사했다는 표현이다. 그런 말을 어렸을 때부터 줄곧 들으며 자랐으니 마녀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중에 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직이라면 마녀의 살막파 못지않게 강한 사영회를 이끌고 있는 사영이다. 그런 사영이 그런 식으로 대교를 세뇌시켜야만 했던 이유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다음 문제다.

“…하지만… 하지만 역시…”

대교는 결국 살짝 입술을 깨물며 뭔가 결심하는 것 같았다.

그녀를 오랜 세월 옭아매어 주저앉혔던 사슬 하나를 스스로 움켜쥐고 일어서려는 것이다.

“소교를 더 이상 그녀에게 맡겨두어서는…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요.”

훗~! 대교는 역시 대교로군. 결국 동생을 생각하여 일어서는 구나. 그래… 지금의 넌 거기까지만 해 주면 돼.

“도와… 주시겠어요?”

대교는 그렇게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시간 후.

나와 대교를 태운 지하무림의 차는 마녀의 저택에 도착했다. 아무리 어쩌니 해도 결국 조폭 여두목에 불과하면서도 돈 버는 수단이 좋아서 그런지 영화에서나 본 적이 있었던 초호화 거대 저택이었다. 나와 대교가 탄 차가 먼저 성문과도 같은 저택의 정문 앞에 섰고, 뒤이어 우릴 따라온 다른 차들도 일제히 정차하기 시작했다.

“흐음. 전화로는 환영한다고 하더니, 문을 열어 놓지도 않았군.”

내가 굳게 닫힌 철문을 보며 중얼거리자, 앞좌석에 타고 있던 천음마군이 차에서 내려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

“…문 열어.”

천음마군이 짧게 명령했지만, 철문 창살 너머의 검은 양복 사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 누가 먼저 나설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들… 나 몰라?”

“아, 압니다. …형님.”

천음마군이 야황살후였던 천 년 전, 그가 지배하던 살수조직의 명칭은 천살막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천살막과 지금의 살막파는 이름만 유사할 뿐 역사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저들이 천음마군을 아는 이유는 천음마군이 지금도 여전히 포악하기로 유명한 향주련, 홍콩 주류연합의 젊은 보스이기 때문인 것이다. 듣기에는… 저 천음마군이 보스가 된 이후로 주류 연합은 패싸움이란 걸 별로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툭하면 수하들도 모르게 혼자서 적진을 유린하고 돌아오는 보스 때문에.

“…문 열어. 세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혀, 형님! 잠깐, 잠깐만 참으십쇼!”

정문을 지키는 자들의 리더인 듯한 자가 다급하게 한 손을 저으며 다른 한 손에 든 무전기를 켰다. 그리고… 약 30초 후, 지극히 위압적인 자태였던 철문이 서서히 한 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문전 연락으로 상부의 허가를 받은 거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금방 문을 열어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천음마군의 악명만으로도 간단히 통과한 정문은…

일단 그렇다 치자. 하지만 안쪽의 경비는 상당히 많은 무장 병력들이 동원되어 저택 곳곳에 잘 배치되어 있군. 움직임으로 보아 훈련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으니 실제로 막으려 들 경우 천음마군 혼자서는 택도 없겠어. 음… 물론 저 모든 병력들보다도 저택 안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다른 조직 보스들 한 명 한 명이 더 큰 문제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탄 차는 그대로 2분 정도를 더 길을 지나고 나서야 메인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 옆의 한쪽은 거의 식물원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 유리 구조물이 조성되어 있고, 파티는 그 안에서 화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주인이… 이제야 마중을 나오는군.”

내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던 대교의 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대교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어하는 이는 오히려 오랜만에 직접 대교를 만나게 된 마녀 여옥인 것 같았다. 막 유리문을 열고 화려한 파티에 어울리는 의상을 드러냈던 마녀 여옥은 약간씩 씰룩이는 입가를 억지로 유지하며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안녕… 하세요.”

대교가 쓴웃음을 지으며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자 마녀 여옥도 입을 열었다.

“그래… 바쁘고 귀하신… 주가혜 양도 오셨군요. 쓸만한 보디가드를 구하더니… 겁도 없이!”

대교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녀의 살기 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녀와의 재회,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 본격적인 시작이다. 내가 기억 봉인이니 세뇌니 하는 더러운 수단에 의해 빼앗긴 대교의 기억, 나의 대교를 되찾는 방법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대교의 의식 속에 멋대로 주입된 ‘두려움’… 그 주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래… 난 이제부터 마녀 여옥이고 프리메이슨이고 나발이고 모두 대교의 머릿속에서 지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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