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1화 : DP의 공주님.(1)
1-7. DP의 공주님.(1)
‘봐 줄 여유가 없다’는 내 말에 다카시란 놈은 피식 한 번 웃더니만, 즉시 수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시민 공원의 잔디밭을 밟아 훼손하며 내게 척척 다가 서기 시작한 G.M들… 그 중에 어제 밤 날 만났던 자들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표정이며 움직임에 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어제 밤의 G.M들과는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이……
“따아앗~!”
이건 뭐냐 싶은 기합소리와 함께 정면의 두 명이 먼저 상단 자세로 달려들었다. 낮은 자세로 스슥-! 짧게 경공을 써서 전진한 것만으로 놈들의 안색이 일변했다. 적의 내려찍는 공격보다도 빠르게 나는 약간 애매한 삼시전결을(?) 펼쳤다. 애매하다고 한 건 스피드와 위력을 감했기 때문이지만… 아래로부터 쏘아 올린 전결에 적중 당한 놈들의 손목에서 뭔가 깨어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격통에 일그러지는 놈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흠칫하고 내 몸이 굳어졌다. 나는 칼을 놓치고 물러나는 자들에 이어 다시 더 많은 적들이 달려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봐 주지 않겠다는 말도 결코 빈말이 아니었건만 그래도 옛친구 후예의 수하(복잡하다)들이라는 인식 때문에 새삼 망설임이 생기다니……
꽝! 꽝! 놈들의 칼을 받아내는 순간 터져 나오는 강렬한 타격음과 울림… 애매한 마음으로 어중간하게 받았기 때문일까? 직격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예상을 넘어 서고 있었다. 주춤 발을 멈춘 내게 일제히 퍼부어지는 칼날들! 그 속도감과 위압감! 다르다! 뭔가 달라! 나는 멈칫했던 보법을 다시 밟으며 놈들의 칼을 비스듬히 쳐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적극적이지 못한 방어일변도로 몇 십 초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큰소리 친 것과 달리 쪽팔린 꼴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 사이 차츰 놈들의 성향이랄까, 챈이 지휘하던 G.M들과의 다른 점을 깨달았다. 간단히 장점만 말하자면… 더 조직적이고 더 빠르고 더 힘차다. 이건… 매우 익숙하면서도 싫은 느낌이랄까…? 그래, 군대. 군대의 느낌이다. 잘 조련된 군대… 그래서 더 강한 거다. 한 명 한 명이 강하다기 보다는… 그래, 그럼… 나야 고맙지! 챈의 수하들 보다 빠르고 강한지는 몰라도 직선적이고 단순했다. 나는 예상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공격에 다소 놀랬던 시간보다 몇 배나 빠르게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충 대 여섯 번의 방어에 한 번의 반격, 그런 정도의 패턴으로 한 명 한 명을 확실하게 부수기 시작했다. 열 몇 명 째인가 차례에서 처음부터 가장 기분 나빴던… 요잇~!? 하여간 기분 나쁜 괴성을 지르던 놈의 목에 정글도의 뭉툭한 끝을 쿡 찔러 넣었다. 커헉~! 숨막히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놈의 뒤로 다카시란 녀석의 굳어진 얼굴이 보였다. 놈의 인상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뭐, 뭐 하는 거냐! 이 쪽으로 온다!”
쳇…! 들켰나? 정신없이 싸우는 척하며 티나지 않게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는데… 보스 급답게 눈치가 빠른 건지 단순히 겁이 많은 건지… 하여간 이렇게 되면 차라리… 이런 젠장! 저 자식, 벌써 하은이를 데리고 튀려는 건가? 나는 의식적으로 크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지르며 다카시를 향한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아껴두었던 내력을 본격적으로 정글도에 실어 가로막는 녀석들의 칼과 몸을 함께 뒤로 날려 버렸다. 갑자기 성격 나쁜 아저씨 밥상 엎듯(?) 수하들을 좌우로 쓸어내며 쳐들어가기 시작하자, 다카시는 뭐라 욕지거리를 씨부리며 총구를 내 쪽으로 돌렸다.
[ 주인님! ]
포인트! 방아쇠를 당기는 포인… 썅! 몰라! 이형환 위!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다카시의 총구가 내 쪽으로 불을 뿜었다. 이형환위로 순간 이동하기 전의 허공을 뭔가가 뚫고 지나간다 싶은 순간에 내 입은 버럭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금동앗!”
다카시의 팔과 총구가 다급하게 하은이와 금동이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이미 금동이는 하은이를 박차고(?) 다카시의 머리 위 허공에 떠 있었 다. 금동이라면… 에? 보통의 짐승들은 물고 할퀴는 게 기본이자 가장 위력적인 공격. 그런데 금동이 녀석은 다카시의 머리 위에서 몸을 뒤집으며 그냥 넘어가 버리고 있었… 아, 아니. 어느 틈에 상대의 머리카락이 금동이의 손에…… 하핫~! 나는 순간적으로 하은이를 보호하려 달려가야 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금동이의 액션에 감탄하고 말았다. 금동이는 다카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상대를 등진 채 뛰어 내리며 두 팔을 화악- 잡아당겨 버렸다. 변형된 유도의 업어치기…? 물론 금동이의 작은 체구로는 다카시의 몸이 아니라 머리만을 뒤로 젖혀지게 한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나는 무리한 이형환위 시전 때문에 가슴 쪽 기혈이 특히 막혀오는 것을 참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구슬 몇 개를 꺼냈다. 목이 삐끗하는 바람에 손으로 목뒤로 잡은 채 주저앉아 있으면서도 아직 총을 놓치지 않고 있는 다카시에게 한 방 날려주고, 그 사이 슬며시 하은이에게 접근 중인 저 콧수염 사내에게도 한 방을… 어? 뭐, 뭐야? 비화곡의 고수들에게도 통하는 내 암기술을 간단히 피해내? 이런 제기…! 영화 감독 흉내를 내며 간이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던 저 자가 실은 숨은 고수였나?
[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 동안 스캔 범위 바깥에 있어서 확인을 미처…… ]
몽몽의 사과를 끝까지 들을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 밥상 엎기 신공(?)때문에 물러났던 놈들까지 다시 몰려들기 전에 하은이를 구해내야 했다. 나는 경공을 써야 할지 망설이며 일단은 빠른 걸음으로 하은이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내 구슬 암기를 피한 직후에 이미 하은이 바로 옆에 서 있게 된 콧수염 사내는 비교적 여유있는 태도로 하은이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금동이가 뛰쳐나가는 기세에 놀라 뒤로 주저앉아 있던 하은이가 그의 손을 잡… 젠장! 저 녀석 왜 그렇게 당연한 듯 적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거야? 에구, 다카시 녀석도 설맞았나?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더니 벌써 눈을 뜨고 총을 찾고 있네? 금동이 녀석, 왜 뒤처리도 안하고 벌써 하은이에게 돌아간 거야? 으~ 금동이 탓할 때가 아니지. 나 자신이 마무리가 시원찮은 거였으니…… 결국 다시 총을 잡은 다카시는 비척거리면서도 일어섰고, 그로부터 3.6미터 정도 거리에 하은이와 콧수염 사내, 그 사이로 삼각형 형태의 지점에 내가 서 있는 상황이 되었다. 나로부터 양측의 거리는 동일한 2.8미터 정도… 난 왼 손 안에 또 하나의 구슬을 감추고 오른 손의 정글도를 다시 어깨 위에 걸쳤다. 여차하면 남은 내력을 쥐어짜 왼 손으로 여의탄(如意彈) 수법을 씀과 동시에 오른 손으론 누구도 피하지 못할 속도의 생사금마도결을 펼쳐야 했다.
[ …다카시라는 인물의 내력은 어제의 챈과 비교해 오차 범위 5% 이내의 동급. 하은님 옆의 콧수염 남자의 내력은 10% 상위로 추정됩니다. ]
챈보다 겨우 10%…? 내가 보기엔 그 이상일 것 같은데… 음, 하긴… 몽몽도 직접 대상 신체에 접촉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정확한 내력을 측정할 수는 없지. 더구나 고수일수록 자신의 내력을 속으로 갈무리해 드러나지 않게 하기 마련이고……
“고, 골든 차일드… 너, 너!”
다카시 녀석, 자신에게 ‘업어치기식 목꺽기'(?) 일격을 가했던 금동이 녀석에게 무시무시한 증오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저 녀석 설마 자기 조직의 최고 보물이 자 상징인 금동 옹에게 총질을 하는 건 아니겠지?
“물러나, ‘송수’!”
“안됩니다!”
콧수염 사내의 이름이 송수인 모양인데… 그보다 그에게 물러나라는 건 역시 총질을 하겠다는 뜻?
“…이 정도에서 끝내시죠. 골든 차일드 탈환이면 그분들도 만족하실 겁니다. 애초에 그 이상 일을 벌인 건……”
“닥쳣! 골든 차일드를 어쩔 수 없다면, 그가 좋아하는 친구라도 하나 없애야 속이 풀리겠어!”
놈의 총구가 살짝 올라가 하은이의 얼굴 쪽으로 향하고, 하은이는 비로소 겁을 먹…을 줄 알았는데, 저기집애…! 당사자가 그렇게 무덤덤 한 표정이니까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민망하잖아!
“…DP와 전설의 인물, 둘 다 적으로 만드시겠단 말입니까?”
“흥! 전설은 무슨 전설!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 본인도 아니고 그 전인일 뿐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우리들 전부가 전설의 후예들 아닌가?”
어이- 어이. 나 본인 맞아.
“…다릅니다. 저 남자는 우리와 달리 전설 속의 무공을 이어받아 정·말·로· 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선대 암천주의 유언을 무시하실 생각입니까?”
“그, 그건……”
다카시의 표정은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미 총구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지고 있었다. 흐음- 이거 저 송수라는 콧수염은 좀 다른데? 잘하면 얼마 남지 않은 내력을 홀랑 써버리지 않고 사태 수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저 남자는 당신의 친위대를 혼자 상대하면서 단 한 번도 살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맞아. 비록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분을 야무지게 손봐 주기는 했지만……
“더구나 조금 전 총을 피하던 그 수법은……”
송수는 말하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콧수염이 있어서 처음엔 좀 더 많게 봤지만 다시 잘 보니 삼십 대 중반 정도…? 뭐, 어쨌든.
“이형환위, 맞아. 혹시 전에도 본 적 있는 건가?”
응? 그냥 물어 본 건데… 고개를 끄덕이네?
“조금 다른 지도 모르지만… 어떤 분이 비슷한 수준의 신법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오호~ 역시 우리 시대에도 숨은 기인이 있다 이거지?
“부디 오늘의 무례를 용서하시고……”
송수는 마무리 멘트를 하려는 분위기였고, 나 역시 ‘옛 우정을 봐서라도 참아 주지’라는 식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송수 옆에 서 있던 하은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흥~! 멋대로 이런 짓을 벌여 놓고도 말 몇 마디로 끝낼 생각인가요?”
“야! 하은아!”
“오빠! 방금 못 들었어? 금동이를 데려간다잖아!”
어? 그러고 보니… 골든 차일드 탈환이면 만족, 어쩌고 그랬었지? 나야 어차피 금동이가 천이단으로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식으로는 좀… 게다가 소령이라면 몰라도 저 짜증나는 다카시 놈에게……
“…당신, 송수라고 했나? 챈에게 얘기 못 들었어? 금동이 문제는 내게 맡기기로 한 거?”
“…그건 챈님의 독단일 뿐. 상부의 허가가 난 사항이 아닙니다.”
젠장! 갑자기 협상 분위기가 망가지네.
“챈의 독단에 이어… 당신의 독단은 어떤가?”
“…전 그럴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윽, 결국 다카시를 쳐다보는 군.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 놈이 더 상관이라 이거지?
“오빠! 여동생에게 총을 겨누고 위협하는 자에게 금동이를 넘겨 줄 생각이에요?”
…그야 웰빙 당근, 아니지만…! 쯧! 결국 남은 내력을 다 써야 할 상황인 건가? 하지만… 상황의 난이도가 더 높아져 버렸다. 다카시 쪽 화력은 그대로지만, 송수라는 남자가 문제다. 실력도 만만치 않은 데다 맘 약해지게스리 우리 편 성향이니……
“후훗~! 난 말야, 송수! 그 갑갑한 노인네들과 달리… 전설의 인물도, DP도 그리 두렵지 않아.”
다카시는 금동이와 하은이를 노려보며 다시 총구를 들어 하은이를 겨냥했다.
[ 주인님! ]
몽몽의 다급한 경고 소리! 고개를 저으며 한 손을 하은이에게 뻗던 송수도 흠칫 긴장하며 행동을 멈췄다. 나 역시 남은 내력 뿐 아니라 뭐든 끄집어내야 한 다는 위기감이 등줄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당신도 할 말 없을 걸? 이 계집애가 스스로 자처한 일이니……”
다카시는 어디 또 날 막아 보시지,라는 표정으로 지껄이며 힐끔 내게 시선을 돌렸다.
“…멍청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카시는… 1초쯤 전부터 자신의 등뒤에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한 명이 서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