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3-1화 : 어둠이 기다리는 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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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73-1화 : 어둠이 기다리는 땅.(1)


8-5. 어둠이 기다리는 땅.(1)

몇 년만에 돌아왔건만 오자마자 군황의 명령 이행에 실패했다는… 그런 자책감 때문인 걸까…? 막연했던 적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뇌룡대주는 갑자기 사람 자체가 달라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미령이도 그의 심상치 않은 살기를 느꼈는지, 조금 안색이 변해서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소교가 지금 무사한 지부터 말해 줘.”

그래도 대교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묻자 소령이와 미령이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직접 본 건 아녀요. 하지만 챈과의 통화에서 그가 분명히 ‘골든 차일드와 여수혜, 둘 다 무사하다.’라고 했어요.”

대교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 역시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갑갑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카시는 이미 홍콩을 떠났고 지금 거의 일본에 도착했을 거예요. 하지만 챈이 뒤를 쫓고 있으니까 어디로 숨든 우리 손을 벗어날 수 없어요. 본래 우리 내부 문제지만 이 쪽에도 피해를 입혔으니 일단 알려 주긴 하라고 챈이……”

“자룡대주. 들었지?”

“예, 천주! 즉시 특별기를 준비하고 일본 내 지하무림인을 소집하겠습니다.”

“잠깐…! 쓸데없는 짓 말아요. 다카시도 명색이 GM이라고요. 아무리 지하무림이라도 우리의 협조 없이는 절대로 꼬리를 잡지 못할 걸요?”

“협조… 안 해주겠다는 거냐?”

내가 묻자, 미령이는 조금 샐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왜 당신에게 협조를 해야 하죠? 우리도 여수혜까지 무사히 구출하도록 노력하겠지만, 함부로 끼어 들 생각은 말아요.”

“…여수혜, 우리는 소교라고 부르지. 그녀가 대교의 친동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대교…? 가혜 언니의 아명?”

내 말에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소령이었다. 소령이는 커다란 두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새삼 대교를 보았다.

“정말이에요, 가혜 언니? 우린 최근 계속 다카시 쪽의 움직임을 조사하느라 바빠서 몰랐어요!”

“…그래. 소교는 내 친동생이야. 늘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어제 더 확실해졌어.”

“아…! 그래서 지난번의 인질사건 때도 유준 오빠가 달려갔었던 거군요.”

소령이는 우리의 관여 자격을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것 같았지만, 미령이는 난처해하면서도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진작에 금동이를 돌려주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아, 하여간 곤란해요. 챈도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내부의 문제라고 했다구요.”

“그런 내부의 일을… 챈은 왜 우리에게 알려주라고 했을까?”

“챈은 지나치게 당신을 존중해서 그래요. 바보처럼 전설을 진짜로 믿고……”

“…어쨌거나 챈도 내가 가기를 바라고 있을 걸?”

“그렇지 않아요. 챈은 당신이 끼어 들면 일이 더 커질 거라고 우려했어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미 늦었어.”

“흥!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나와도……”

< 대교! >

길어지려는 말싸움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대교인 것 같아서 그녀를 불렀다.

“…미령아.”

“가, 가혜 언니……”

과연… 내게는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면서 삐딱선을 타던 미령이도 대교가 자신의 손을 잡고 말없이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대교가 마무리 소방수로 나선 것은 성공적이었다. 소령이와 미령이가 나타난 후 약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우리는 소령이와 미령이들 앞세워 자룡대주가 준비한 비행기에 오를 수가 있었다.
쯧…! 이번엔 준비시간이 촉박하여 전처럼 초음속 ‘미스 화룡’을 이용할 수 없는 게 아쉽군. 그래도 우리 일행만을 태운 전용기니까 일반 항공편에 비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지……?

“전용기니까… 일반 항공편보다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죠?”

“……”

“…왜 그러세요?”

“아, 아냐. 일단 앉자.”

나와 대교는 중간에서 조금 뒷좌석, 그 바로 앞에는 소령이와 미령이가 앉았다. 첨부터 별 생각 없었던 소령이는 물론이고 깐깐했던 미령이도 암 생각 없어진 듯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즐거워하고 있는 건 대교가 직접 사인을 해서 선물한 CD 때문인 것 같았다.

“정식 발매된 CD에 빠진 곡까지 있는… 한정판 CD라고?”

“예.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주려고 만든 거예요. 음… 그래도 지난번에 제가 반지(몽몽의 송수신기)로 당신께 들려드린 곡은 없지만요.”

그랜트캐년에서 거미로봇들과 개싸움 할 때 들었던 노래를 말하는 모양이군. 아직은 나만을 위한 노래라는 건가?

“…그 노래, 좋더군. 언제 다시 직접 들었으면 좋겠어.”

“언제라도 원하신다면요.”

“…아직 아침 안 먹었지? 뭐라도 좀 먹을래?”

“아뇨. 전 별 생각 없어요. 시장하시면……”

“아니, 나도 별로 내키지 않아. 어… 자리는 불편하지 않지?”

“예.”

일상적이고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대화가 얼마간 이어졌다. 하지만 뭔가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겉도는 대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출발하여 일본으로 방향을 잡은 이후로도 그런 분위기는 계속되었 다.

< …걱정하지마. 소교는 계속 무사할 거고… 내가 반드시 구해낼 테니까. >

  • 예. 믿을게요.

내가 전음을 쓰니 어제처럼 내 손등에 대답을 한다. 하지만 나는 어제처럼 대화를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계속 대교의 어두운 얼굴을 보는 것이 싫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농담을 꺼내거나 뭔가 재미있는 대화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기에는 고초를 겪고있을 소교에 대한 생각이 내게도 너무 무거웠다.
제기…! 다카시, 그 색히… 이번에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 GM과의 갈등이고 나발이고 반드시 내 손으로… 응? 뭐, 뭐야?
나는 갑작스럽게 눈앞을 가로막는 뭔가에 흠칫 놀라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조금 뒤로 빼고 말았다.

< 요, 요몽…? 뭐야 임마! >

내가 요몽의 등장에 필요이상으로 놀란 건, 1차적으로 녀석이 나의 바로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말 날 당혹스럽게 한 건 요몽의 전에 없이 심각한 분위기였다.

[ 주인님……! ]

요몽 녀석은 갑자기 요정에서 요마(?)로 변해 버린 것만 같은 표정과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 주인님… 복,수,하게… 해 주세요. ]

< 뭐…? 뭘 어쩐다고? >

[ 주인님… 패티가 또 울어요. ]

< …패티가 우는 거야 일상사 아냐? >

[ 이번엔… 그치지를 않아요. 2시간 16분 12초가 지났는데 아직도요. 그러니까… 복수,하게 해주세요. ]

< …그러고 보니 울기는 지금 너도 울고 있는 거 같다만…… >

나름대로는 참는다고 참는 표정이었지만, 두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은 이미 녀석의 심술궂게 튀어나온 입술 양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 하여간… 복수하게 해주세요. ]

<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니 맘대로 해라. >

[ 정,말…로요? ]

< 그래. >

내가 의외로 선선히 허락하자 요몽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지는 것 같았다.

[ 정말 고마워요, 주인님. ]

요몽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나는 잠시 얼떨떨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몽몽. >

내가 부르자 은발 소년 모드의 몽몽이 쭈뼛대는 기색으로 나타났다.

[ 죄송합니다, 주인님. 요몽이 그런 이유로 주인님께 나설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요몽과 패티가 운영중인 사이트에 최근 악플러들이 늘어나면서 패티가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전 그 사이트 운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곧 조사해서 보고하겠습니다. ]

< 지금은 됐다, 몽몽. 내가 뭔가 허락했을 때 저렇게 조용하게 기뻐하는 요몽은 첨 본다.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신경을 쓰긴 해야겠지만, 가급적 녀석 마음대로 하도록 놔둬 봐.>

솔직히 내가 지금 기분이 좀 그렇다 보니 ‘복수’라는 말이 웬지 정겹게(?) 느껴져서 허락해 버린 거기도 하지만… 응…? 넌 또 뭐냐?

이번엔 소령이가 좌석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나와 대교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 입을 여는 순간, 녀석은 쑥스럽게 웃으며 냉큼 숨어버린다.

< …대교. 난 뒤에서 운기조식을 좀 하고 있을 테니 동생들하고 있어. >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나와 함께 있다 해도 어제 일과 소교 일이 겹쳐서 우울 모드일 수밖에 없는 대교에게는 저 녀석들이 특효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령이 녀석, 내가 자리를 비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자리로 넘어오는 군. 미령이 역시 쭈뼛거리면서도 그 뒤를 따르고… 음, 대교의 표정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밝아지는 것 같지……?
결국 능력 부족(?)으로 대교 옆자리를 양보한 나는 맨 뒷좌석으로 이동해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문득… 지난 번 인질극 사건 때 미친 듯이 서둘러 달려가던 일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소교가 당장 해코지를 당할 확률이 적다는 판단을 내려도 될 것이다. 다카시 놈이 소교까지 데려간 건… 아마도 소교를 인질로 금동이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함일 테니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그 재수 없는 놈에게 소교가 잡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지. 게다가 만약 그 자식이 소교에게 엉뚱한 짓을 하기라도 하면……

[ 주인님. 닥터 제이로부터의 연락입니다. ]

< …연결해. >

“아, 유준군?”

< 예. 무슨 일입니까? >

“음. 자네도 참, 나 못지 않게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팔자로군. 잠시 쉴 틈도 없이 사건의 연속인 것 같으니 말야.”

< …제게 무슨 일이 있는지, 벌써 알고 계신 겁니까? >

“그래. DP로 모니터링 되는 자네 소식을 엿봤지. 대교양의 여동생이 납치되었다고?”

< 그렇습니다. >

“뭐… 범인이 누구든 자네라면 잘 해결할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군.”

반갑지 않은… 소식?

“프리메이슨에서 자네에게 보낼 자객을… 상당히 위험한 자들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이미 출발한 모양이야.”

제기. 하필 이럴 때……

< …’특별한 어둠’인지 뭔지 하는 놈들입니까? >

“벌써 하운군에게 들은 모양이군. 정확히 말하면 ‘에레보스(Erebos, 어둠. 암흑.)’라고 불리는… ’12인의 사도’ 직속의 암살조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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