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4-1화 : 악마의 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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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74-1화 : 악마의 바다.(1)


8-6. 악마의 바다.(1)

“에… 그러니까, 난 아무래도 여자… 특히 수녀님씩이나 되는 분에게는 함부로 대하기가 좀 그래서……”

나는 다소 멋쩍은 기분으로 ‘적들을 그냥 보낸’ 변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당연히 나의 수하들 누구도 불만의 기색은 없었고, 그건 마지막에 적의 보스에게 낭패를 볼 뻔했던 뇌룡대주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무표정하면서도 당당한 그의 표정을 보니 내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자신이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뇌룡대주가 자신감을 되찾은 건 잘 됐고, 딱히 불만을 품은 수하들도 없고… 다 좋은데, 요 녀석이 문제일 것 같군.

“후후~ 그 수녀가 젊고 뛰어난 미색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역시나.

“미령이 너, 넌 나에 대해서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 같지 않냐?”

“수녀님. 수녀님인데에- 변태! 유준 오빠는 변태!”

“야아- 소령이 너까지! 아니, 우째 네가 한 술 더 뜨냐?”

“얘들아, 그만 하렴.”

오오. 역시 우리 대교만이 내 편을 들어주는 구나.

“음… 정말 잘하셨어요. 전 안 그래도 당신이 신부님과 싸우는 것부터가 꺼림칙했어요.”

“…대교 너, 혹시 성당이나 교회 다니니?”

다닌다 해도 나야 상관은 없지만 우리 어머니가 불교이시니 가급적이면 같은 종교인 편이 더 좋을 텐데……

“아뇨. 전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아요.”

으음. 다행이군.

“하지만 어떤 종교든 진실되게 믿고 봉사하는 성직자들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호라~ 우리 대교는 종교관도 기특하지 뭐야. 다소 팔불출스러운 반응인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도 대교와 비슷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특정 종교의 신을 섬기지는 않지만 그 신이나 신을 모시는 성직자나 신도들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급적, 그러니까 ‘적’이 아닌 이상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말이다.

“음… 무엇보다 신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잖겠어요?”

대교는 ‘신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이건 아무래도 농담인 듯한 말을 하며 곱게 웃었다.

“어, 하지만 유준 오빠는 벌써 밉보인 거 아닌가요? 조금 전에 신부님들이 마귀라고 했잖아요.”

“소령아. 그건… 음. 사연이 좀 길다. 하여간, 조금 전의 신부들은 그쪽이야말로 정상적인 신부님이 아니었잖냐.”

“으움~ 그건 그래요. 제가 아는 신부님들은 칼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몸이… 어, 이렇게 이상하게 움직이지도 않고요.”

나는 그만 풀썩 웃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령이가 생체강화 및 개조 신부들 흉내를 내느라 어색하게 팔이며 고개를 비틀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우리끼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는 건 역시 소교에게 미안한 노릇인 것 같지만… 음. 그래. 빨리 가야지. 다카시 때려잡고 소교와 금동이를 되찾으러. 내가 재차 각오를 다지며 모두를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 주인님. 닥터 제이로부터의 연락입니다. ]

응…? 지금은 통신이 안 되는 시간 아니었나?

“아아- 급한 정보가 있어서 비상 회선 하나 소비하는 걸세. 이 회선은 1회용인데다 잘 해야 2분 정도밖에 통화 못해. 그러니 듣기만 하게.”

닥터 제이는 전에 없이 다급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에레보스에 관한 정보는 아직 없어. 그런데 다른 조직… ‘블랙 제수이트(Black Jesuit)’, 즉 ‘검은 예수회’에서도 자네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네.”

에…? 그럼 조금 전의 그자들은 에레보스가 아니었단 말야?

“사실 많은 기독교 단체에서는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는 예수회 전체를 검은 예수회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버야. 실제로는 일부의 예수회 회원들이 프리메이슨과 결탁하며 변질되어 검은 예수회가 성립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걸세.”

예수회…라면, 그 명칭은 전부터 신문 같은 데서 가끔 본 기억이 있다. 기부나 봉사활동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로 말이다.

“그들은 본래도 교황을 위해 반대 세력의 암살 같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비밀결사였던 데다 프리메이슨의 영향과 지원을 받아서 더욱 무서운 암살 조직이 되어있어. 그러니 만약 그들과 조우하게 되면 조심해서……”

< 저기, 벌써 왔다 간 거 같은 뎁쇼. >

“뭐?”

< 몽몽. 아까 그 신부의 기도문인지 저주문인지… 그거 녹음해 놨지? >

몽몽이 신부가 외던… 조직을 배신하면 동료들의 손에 입이 찢기니, 배 째고 염산을 넣네 마네 하는… 그 다정한 저주의 기도문을 들려주자 닥터 제이는 잠시 귀 기울여 듣는 것 같았다.

“…검은 예수회가 회원을 가입시킬 때 쓰는 최종적 선서, 그 내용 중 일부가 틀림없네.”

“하핫! 하……”

< 역시 에레보스가 아니었던 얘기군요. >

나도 모르게 즐거운(?) 웃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 그, 뭐… 둘 다 명칭에 시커멓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네요. >

“음… 여유를 부리는 걸 보니 잘 막아낸 모양이군. 하지만… 그들의 부제 정도를 상대했던 거라면, 그 것만으로 그들을 평가해서는 안될 거야. 사제의 서품을 받은 자들은 결코 만만치 않을 거란 말이지. 프리메이슨의 생체과학기술이 DP를 통해 전달되었고, 그들은 그걸 자신들 특유의 암살 기술과 접목했다고 해. 게다가 사제들 중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자도 있다는 얘기도 있지. 또한 그들의 신앙은 그 어떤 교단보다도 성모 마리아에게 치중되어… 아, 이런…!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군.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다음에 따로 보내 줌세.”

닥터 제이와의 통신을 끝낸 후에도 나는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자포자기성 해탈의(?) 경지로 넘어가게 되는 것 같다고 할까……? 프리메이슨에다 조담놈… 걔들(?) 상대할 일만도 빡빡해 죽겠는데 또 그런 자들이 추가되었다 이거지…? 나, 참! 그래… 뎀벼라, 뎀벼. 세상의 비밀조직이란 비밀조직은 다아~ 뎀벼라. …에효오~ 내 팔자야.

“무슨… 생각하세요?”

비교적 우리 쪽이 우세했던 싸움을 끝내고 가는 것 치고는 내 표정 변화가 꽤나 썰렁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자질구레한 참견을 잘 안 하는 대교가 굳이 묻는 걸 보니 말이다.

< 실은… 아, 미안. 다음에 얘기해야겠다. >

대교에게 숨기려는 건 아니었다. 그 사이 우리는 공항의 게이트를 통과해서 로비 쪽으로 나왔고, 그 앞에 너무나 낯익은 인물이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챈!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

“추적은 이미 끝났기 때문입니다, 미령 아가씨.”

“추적이 이미 끝났다고?”

내가 앞으로 나서자 챈은 정중하게 포권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진유준님. 다카시는 모종의 장소에 안착하였으며 이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야, 거기.”

“왜 그래요! 왜 챈을 심문하듯……”

미령이가 발끈했지만,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챈,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건 이미 GM 내부의 일로 끝날 일이 아니야.”

“이봐요, 진유준씨! 내가 당신을 데려온 건 단지……”

“진유준님 말씀이 옳습니다, 미령 아가씨.”

“…챈?”

챈은 울상이 되는 미령이의 시선을 슬쩍 회피하며 내게 말했다.

“가시죠.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일행 모두가 GM측이 준비한 차량과 일본 내 지하무림인들이 준비한 차량에 대충 나눠 타고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도쿄에서 가장 가깝다는 해안가였다. 나는 챈의 요청 때문에 대교까지 수하들과 함께 멀찍이 있게 하고 챈과 단 둘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서게 되었다.

< 소교가 끌려 간 곳이, 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諸島)…라고 했나? >

나는 눈앞의 바다를 응시하며 그렇게 물었고, 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습니다. >

몽몽의 설명에 의하면, 그곳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바다 저 너머로 1000KM 가깝게 길게 이어진 섬들의 집합체인 모양이었다. 그로서 일본의 영해를 국토의 13배나 넓게 만들어준… 일본으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쪽으로 제일 먼 곳의 바다에 간신히 드러났다 없어졌다 하는 쬐깐한 바위 하나를(아마도 암초?) 시멘트로 보수한 다음 ‘섬’이라고 등록했다고…? 그 다음에 ‘거기서부터 우리 일본 영해’라고 선포했다 이거지…? 그런 식으로 영해를 확장하는 잔머리+배째라 정신의 일본이니 우리 독도까지 지들 거라고 우기는 거겠지만… 으음. 그 문제도 지금 따지기는 좀 그렇고……

< 그 넓은 제도 안에 있는 무인도 중의 하나라… 훗! GM은 아무래도 주로 그런 바다 위에 비밀기지를 만드는 모양이군. >

내가 조금 비꼬는 투로 말하자, 챈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그렇지 않습니다. 그 섬은 본래 미국의 비밀기지입니다. >

< 뭐…? 미국? >

< 예. 미국은 베트남 전쟁 실패 이후, 1945년에 공식적으로 점령했던 오키나와에 대한 지배력까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1972년경, 일본과 모종의 계약으로 그 섬을 확보했고, 비밀 군사 기지 건설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

< …그럼 뭐야. 지금 미군 기지라는 거야, GM거라는 거야? >

< 둘 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 둘 다…? 천하의 그 어떤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정보’가 자랑이었던 GM이 미국과 손을 잡았다는 건가? >

< 정확히 말하면 ‘다카시와 추종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부끄럽지만, 그가 미국의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와 내통하고 있음을 의심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더욱 확실해진 것입니다. >

< 천우신이 알면 참… 쯧. 하여간 이제 너희들은 어쩔 생각이지? >

내 입에서 천우신의 이름이 나오자, 챈은 더욱 굳은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 …CIA에서는 그 섬에 있는 자신들의 비밀기지 존재 자체를 부인하더군요. 따라서 저희 쪽에서는 ‘그렇다면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경 쓰지 말 것’을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

< …모처럼 GM도 맘먹고 무력을 쓰겠다는 거군. >

< 배덕자를 징계하는 방식이야 어떤 조직이든 공통이겠죠. >

< 그야 그렇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

< 진유준님…! 이번 일을 아가씨들을 통해 알려 드린 것은 저의 독자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중에 어떤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전 진유준님께 다카시를 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역시… 소령이와 미령이를 보낸 건 내가 오길 바래서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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