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4-3화 : 악마의 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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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74-3화 : 악마의 바다.(3)


8-6. 악마의 바다.(3)

푸악! 퍽~!
수면과의 접촉음(?)은 대비하지 못했던 만큼 더 크게 내 귓속을 강타했고, 입수동작 역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으으윽~! 짧은 순간에도 발동해 준 호신강기(護身强氣) 덕분에 육체적으로는 큰 충격을 받지 않았지만… 에구, 쪽팔려라.
다들 내가 왜 실수를… 아니, 실수로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일단은 민망해서 수면 위로 나가지 못하고 서둘러 물안경을 쓰고 산소통의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하아아~ 장비를 미리 다 챙겨두고 있지 않았다면 더 X될 뻔했다. 으ㅤㅋㅡㅅ, 눈이 약간 따갑다. 물안경을 물 속에 들어온 다음에 썼으니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다행히 빨리 짠물에 적응해주는 눈으로 수면 쪽을 돌아보니,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가까운 곳에 일어나고 있는 물보라 속의 인형은 역시 대교였다. 그리고 다른 지점으로 수하들 역시 연이어 뛰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 …여기야. >

대교에게 헤엄쳐 가며 내 위치를 알리자, 그녀는 우아한 동작으로 물살을 헤치며 마주 다가오기 시작했
다.

[ 사전에 지시된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 통신 기능만을 갖춘 하위체를 주인님께 남기겠습니다. ]

< 어, 그래. 수고! >

나는 곧 대교와 물 속에서 마주 설 수 있었고, 그녀에게 몽몽을 건네주었다. 몽몽에게 대교는 이미 ‘제2사용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 …정말 못 말리는 분이시네요. ]

에구. 역시 대교는 눈치챘구나. 나의 음흉 울프 버전의 눈길을.

[ 저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 분이…… ]

< 어, 아니, 저기, 그게…… >

[ 하지만… 앞으로는 괜찮아요. ]

< 에? 어? 저, 정말? >

과연, 이 시대의 대교…! 천년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대범(?)한 건가?

[ 요전, 고층 호텔 벽에 매달려 장난을 치실 때는 정말 놀랐었지만…… ]

…응? 뭔가 핀트가 어긋난 듯한……

[ 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

그… 그렇게 해석해 준거냐…? 다른 일들은 지극히 예리하게 감 잡으면서도 이런 분야에만 둔감한 건 그만큼 아직 어리기 때문일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섭섭하기도(?)하고… 으음, 웬지 다소 복잡한 기분인 걸?

[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

대교는 수면 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 어째서 우리에게는 한 대 밖에 없는 거죠? ]

헬기에서 투하하기 시작한 수중기동장비… ‘USD9000(수중모터사이클의 기종명.)’에 대한 질문이었다.

< …우리 건 커플용이야. >

[ 예? 정말요? ]

사실은 준비된 장비의 대수가 빡빡해서 작전 투입 병력의 수까지 그에 맞춰야 했기에 우리 쪽에서 한 대 빼라고 했었던 거지만…

< 당연하지. 극장에도 커플석이 있는데 바다 속이라도 없겠어? >

별로 믿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결국 대교는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곧 대교와 함께 그녀에게 배당된 USD9000을 확보했고, 다른 수하들도 빠르게 자신들의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계기판의 LCD화면에 준비완료 된 수하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차례차례 떠오르기 시작하는군. OS와 자판이(핸드폰 비슷하게 작은 규격) 우리 한글까지 기본 지원이라… 흠. 과연 구양대주…! 비록 대수가 충분하지는 않다 해도, 짧은 기간에 이 정도 장비들을 잘도 이만큼 준비해 줬어.
내가 구양대주에게 이런 수중용 장비를 부탁했던 건, 지난 번 몽몽이 상어에게 먹혀서 해저 연옥도에까지 찾으러 가야했던 일을 겪은 후였다. 그 때는 당연히 다시 해저 연옥도에 가게 될 경우에 대교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부탁했던 거였다. 그런데 그 이상의 규모로 준비하고 있었던 걸 보니 구양대주는 내 말을 ‘수중부대 편성’으로 이해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우리와는 조금 다른 디자인의 GM쪽 기동장비를 몰고 다가오고 있는 저 녀석은 미령이다. 저 녀석이나 그 옆의 소령이나, 대교와 두세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도 훨씬 미숙하고 심심한 몸매…인 건, 중요한 게 아니고.

< 너희들…! 챈 대신 날 감시하려고 따라오는 건 좋지만, 못 따라와도 난 안 챙겨 줄 거야. >

USD9000의 시동을 걸어 출발하며 그렇게 전음을 보냈더니 녀석들의 즉각적인 답신이 화면에 뜨기 시작했다.

  • 오케바리! 문제 없삼! ^o^~~♬ (소령)
  • 님하 걱정마셈. ㅋㅋㅋ (미령)

…한글 타자가 무지 빠른 건 물론이고 우리 식 콩글리쉬에 통신체까지…? 이거 참. 녀석들이 다양한 정보 수집 차원에서 한글 사이트에도 자주 접속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쓸 줄은… 어랏…? 저 녀석들, 아예 지들이 먼저 부웅- 앞으로 달려가 버리네?

< 좋아. 우리도 가자, 대교. >

나는 USD9000의 속도를 높이면서 현천기공의 운용으로 몸무게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편법을 더 쓰기 시작하자 더 빠르게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아직 먼저 출발한 소령이와 미령이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더 멀어지지는 않고 있으니, 최소한 한 대에 두 명이 탄 핸디캡은 극복하는 셈이었다.

< 어때, 대교. 우리 커플용 장비의 성능도 꽤 쓸만하지? >

[ …당신께서 호신강기를 응용하여 우리 주위로 수중 생물에 근접한 형태의 기막을 형성하고 있다고, 이건 굉장한 난이도의 기공법이라고… 몽몽이 그러네요. 사실은 장비의 대수가 모자랐다면서요? ]

몽몽 녀석, 대교에게도 시시콜콜 상황을 해설(?)해 주고 있나보군.

< 뭐, 아무려면 어때. 흠, 그런데 그보다, 이 바다 속… 예상보다 상당히 아름다운 걸? >

정말 그랬다. USD9000의 운행이 안정되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내 눈에 이 곳은 악마의 바다가 아니라 천사들의 놀이터로 보일 뿐이었다.

< 하지만… 너무나 맑고 투명하여 바닥의 산호초들이 손에 잡힐 듯하고, 나로서는 수족관에서나 보았던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열대어들이 떼지어 다니는 이 풍경… 상당히 기분 나쁘군. >

[ 예? 왜요? ]

< 너무… 악마의 바다 같지가 않아서 그래. 우리가 몰래 침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유인 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

[ …다른 GM과 지하무림 분들이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책에 따른 역할을 잘 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대교 말대로 챈이 이끄는 GM의 요원들과 자룡대주가 지휘하는 일본 주둔 지하무림의 부대들은 현재 수면 위에서 문제의 섬을 향해 진격 중이다. 하지만 내가 성동격서를 쓰는 건 어디까지나 ‘기본’이기 때문이 고, 다카시나 CIA가 이 정도 작전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어수룩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 …주인님. 산발적이나 강력한 전자기장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

오~ 그래?
나는 비로소 안심(?)하며 후위에서 따라오는 수하들 모두에게 ‘괜찮냐’는 전음을 보내 보았다.

< 속하, 은사마군 이하 은사도객 전원 이상 없습니다. >

< 속하, 전황마군 이하 전마부대 전원 이상 없습니다. >

< 속하, 뇌룡대주 이하 뇌룡대 전원 이상 없습니다. >

자룡대주와 함께 천음마군도 후방 지원으로 뺐으니까, 작전 참가 병력들 모두 이상 없다는 보고로군. 역시 장비들이 모두 해저 연옥도의 환경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거라서 웬만한 전자기장인지 전자파인지에도 끄떡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무선통신은 어려워질 테니……

< 코드 5 상황 기준으로 대열 변경. >

각 부대장을 중심으로 대열의 간격을 좁히라는 얘기다.

< 소미령아! 속도 줄여. 니들 이동기지 주변과 비슷한 상황이다. >

  • 벌써 합쳐 말 것.

…전자기장의 전파 방해로 문자도 개판으로 오는 군. 어쨌든 내 말대로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벌써 알고 있음. 우릴 합쳐서 부르지 말 것’이라는 메시지인 것 같지?

[ 아…! 저기, 저기에! ]

대교가 당황하여 손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섬뜩한 무언가가 물살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 소령, 미령아. 좌측 57도 방향에 상어다. 조심해. >

두 녀석에게 경고해 주는 짧은 틈에도 순식간에 상어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 정정한다. 상어… 떼다. 방향은 당근 사방. >

  • 진짜네? (소령)
  • 상관없음. (미령)

녀석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니까 문자 수신이 다시 정상화되는 것 같군.

  • 정말 많다. 상어 싫어. 안 예뻐. (소령)
  • 이거, 당신들 장비에도 있죠? (미령)

미령이는 내게 메시지를 보낸 직후에 ‘상어 퇴치용 장치’를 가동한 모양이었다. 녀석에게 달려들려던 상어가 화들짝 경기를(?) 일으키며 방향을 전환하여 비켜가고 있었다. 나 역시 같은 기능을 하는 장치의 스위치를 누르기는 했지만, 지난번에 몽몽을 되찾기 위해서 상어 떼와 벌였던 혈전을 생각하면 다소 허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 몽몽이 방금 말해 주기를, 상어에게는 로렌치니 기관(Lorenzini’s ampullae)이란 것이 있어서 먹이감이 내는 것보다 강한 전류를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효과가 있군요. ]

< 그래. 난 그 것도 모르고 지난번에는 공연히 상어들과 박 터지게 싸웠었지 뭐냐. >

그나저나… 자연적인 전자기장과 상어 떼라니, 여기서 끝이라면 일본의 이 악마의 바다는 결국 버뮤다 삼각지대와 해저 연옥도의 짝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다른 때라면 몰라도, 나와 챈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정도의 대비뿐이라는 건 아무래도 좀……

[ …주인님. 전방에 적으로 추정되는 기체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

역시……!

< 기체…? 상어 같은 생명체는 아니라는 거지? >

[ 그렇습니다. 가장 근거리의 해저지면에 엔진을 정지하고 매복 중인 것으로 판단되는 소형 잠수정이 총 5기입니다. 길이 9.2미터, 폭 2.8미터… 외벽에 장착된 무장은 유도식 어뢰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

무장 잠수정이 다섯 대…? 지상에 비유하자면 전투 헬기 다섯 대라는 얘기니까 그랜드 캐년 전투 때보다는 조촐한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되지, 암.

< …전군, 상황코드 1에 대비! >

후위의 수하들에게 상황을 알려주며 소령이와 미령이를 돌아보았다. 그 사이 우리 옆으로 가까이 붙어서 가고 있는 소령이와 미령이, 두 녀석은 아직 적의 매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 GM의 기본 방침은 역시 무력 상황 배제… 맞지? >

  • 그럼요. 싸움은 나빠요. (소령)
  • 무슨 일이죠? (미령)

역시 미령이는 눈치가 빠르군.

< 곧 전투가 시작될 것 같아. 너희들은 대교와 함께 피해있어. >

  • 소령인 찬성! 가혜 언니 환영! (소령)
  • 알겠어요. 건투를 빌어요. (미령)

호오~ 웬일로 미령이가 격려를 다……

[ 주인님! 적의 잠수정들이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

< 이런…! 대교! 빨리 얘들과 피해! >

나는 거의 밀다시피 대교를 미령이 쪽으로 보냈고, 미령이는 대교의 손을 잡음과 동시에 해저지면 쪽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 주인님! 적의 잠수정으로부터 일제히 어뢰가 발사되었습니다! ]

자아- 어쩐다…? 어뢰들은 보통 엔진음을 추적한다고 했으니, 역시 적당히 피하다가 엔진을 끄고 비켜가게 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 어? 뭐야? 저거, 저 어뢰 하나… 지금 분명히 대교와 소미령이 쪽으로 방향을 바꿨지?

< 몽몽! 어떻게 된 거야? 걔들은 이미 엔진을 껐잖아? >

[ …적 어뢰의 추적대상은… 전류인 것으로 확인… ]

뭐, 뭐야?

< 모두 상어용 스위치 꺼! >

몽몽이 어떤 조치를 취했든, 소미령이들이 내 전음에 따랐든, 여하간 상어 퇴치용 전류 방출 장치는 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방향을 정한 어뢰는 그대로 대교와 동생들을 향한 돌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 반면 엔진을 끄고 있던 소미령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비어역천(飛魚逆天)!
나는 다급하게 수중용 삼시전결(三矢電訣)이랄 수 있는 낙수사암결(落水死巖訣)의 초식을 펼쳤다.
썅! 맞아라! 맞아 달라구! 그, 그래!
간절한 나의 바램에 호응하듯 물의 저항을 뚫고 뻗어간 나의 도기는 정확하게 어뢰에 적중하고 있었다.
쿠우욱- 쿵!
수중이어서인지, 지상과는 어딘가 다른 폭음이 묵직하게 울려오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이어져 올 충격파를 대비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넋을 잃고 말았다. 어뢰를 요격한 기쁨도 잠시… 대교와 그녀의 동생들은 이미 너무나 가까워진 곳에서 일어난 폭발에 휩쓸려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뭐…야 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모, 몽몽…? 대답…해! 야 임마, 몽몽! 소령아! 미령아! 대답해! 무사한 거지? 엉? >

계속해서 정신없이 전음을 토해내 봤지만, 누구로부터도…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이 바다 속이 아닌… 내 마음속의 악마가… 꿈틀대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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