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75화 : 연옥서생의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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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75화 : 연옥서생의 유작


7. 연옥서생의 유작

대교를… 잃었다고…? 이렇게 어이없이…………?

나는 그리 대단치도 않은 충격파에도 힘없이 밀려가던 몸을 간신히 가누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며 이성을, 냉정을 되찾으려 애를 써보았다.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라구!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기혈의 운행이 정상에 서 벗어나며 금단의 경로로 움 직이기 시작하는 것도 막을 수는 없었다.

「…주인・・・・・・・」

…?

「…주인님 ・・・ 대교님은 무사…..」

아아~ 이 빌어먹을 녀석! 사, 사람을 이렇게 이렇게 놀라게 해도 되는 거냐?

「…전 괜찮아요. 우리 모두 무사해요.」

그 어떤 천상의 아리아도 지옥에서 날 건져 주는 대교의 음성만큼 감미로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신도 무사한 거죠..? 여기선 제대로 보이지 않아요.」

대답을 해야 하는데… 으읏! 제기…! 폭주 일보 직전이었던 기혈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적 어뢰에 대한 저의 분석이 늦어서 주인님의 상황대처에 어려움을 초래… J

어뢰? 아, 그래. 다른 어뢰들은?

나는 비로소 좀 더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맛이 가있던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 동안에도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은 다들 산개해서 회피를 시도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어뢰의 속도가 빨라서 쉽지 않아 보이는데…

쿠쿵~!

폭발음…?

제기, 누구냐? 누가 당한 거야?

「…현재까지는 지하무림 병력에 손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약 1.4초 전의 폭발은 주인님께서 탑승 하셨던 SUD9000가 격파된 결과로 추정 됩니다.」

에…? 내 SUD9000?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지금 맨몸이잖아…? 으~ 내가 정신이 없긴 없었구나. 몰고있던 장비를 놓쳐서 그게 혼자 달려(?)가버린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쿠웅~!

쿠우오~!

또・・・ 아니, 이제 사방에서 연속으로 터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모두 효과적으로 회피에 성공, 어뢰의 자폭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다. 난 맨몸이라 어뢰의 추적을 받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빨리 기혈을 안정시키고 수하들을 도와야 할 텐데…………

「유준씨? 괜찮으세요? 대답해 주세요!」

대교의 음성에도 조금 전의 나와 같은 안타까움이 섞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대교. 난 괜찮아.

「하아~ 왜 대답이 없었어요?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 임마. 너 때문에 안 괜찮을 뻔하긴 했지만.. 이제 괜찮아. 너야말로 다친 곳은 없는 거야?

「예. 하지만 제가 서둘러 바위 뒤로 피하다가 몽몽을 바위에 부딪치게 하는 바람에 몽몽이 충격을 받아서 잠시 이상했었어요.」

아… 그래서 몽몽이 곧바로 대답을 못했던 거구나. 지금 몽몽은 나와 함께 있을 때처럼 나의 호신강기에 함께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녀석이 평소모드 였다면 현 시대의 전자장비나 마찬가지의 내구성 밖에 없었던 셈이었던 것이다.

-몽몽, 너… 미리 구조변화로 기체를 강화해 두지 않았었구나.

「현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서포트를 위해서는 기체 강화를 위주로 한 구조변화를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충격대비는 하고 있었 으며, 현재는 모든 기능이 원상복구 되었습니다. 통신복구까지의 지연시간 때문에 걱정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됐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하지만… 네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모두가 X될 뻔했다. 모두가…………….

「제가 아니라 대교님의 빠른 판단과 대처 행동 덕분이었습니다.」

-아니, 그 잘 피한 걸 나에게 알려준 타이밍 말야. 나 정말… 대교가 어찌된 줄 알았어.

불과 조금 전의 상황이었건만 아주 먼 기억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순간적으로 지옥과 천국을 오갔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설마, ‘그것’을 발동시킬 생각이셨습니까?」

몽몽 녀석이 ‘설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나도 뭐… 의식적으로 그러려고 했겠냐?

「역시 너무 위험한 결정이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어 영구 봉인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보다, 저 어뢰들은 니가 어떻게 안되겠냐?

「…현재의 ‘통신 불능지역에서는 어렵습니다. 현 시대 전자장치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같은 계열의 전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자기장 따위에 영향 받지 않는 통신장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너의 하위체를 이용해서 어뢰들을 유인할 수는 없을까?

「가능합니다. 적 어뢰의 추적장치는 1차로 일반 생명체 이상의 전류를 감지, 2차로 엔진음을 감지하는 시스템으로 분석됩니다. 따라서 주인님이 소지한 송수신기로 엔진음을 발생시키면……….

-아, 잠깐! 니 말대로 라면, 다른 방법이 낫겠어.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나서서 어뢰들을 유인하는 거라면 몽몽의 도움이 없어도 가능하겠어. 아니, 몽몽 의 하위체도 통신 거리에 한계가 있으니 까 내 방식대로 하는 편이 오히려 더 자유롭고 효율적이지.

제멋대로였던 기혈은 이미 어느 정도 운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발동할 뻔했던 ‘그것’을 확실하게 봉인하기 위해서 는 역시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으음. 근데 수하들이 어뢰를 회피하고 있는 움직임을 가만 보면… 저 너무나 잘나고 기특한 나의 수하들이 내 도움 없이도 잘 해결할 것 같기도 한 데…? 물론 성능 좋은 기동장비 덕도 있겠지만…………

「주인님. 적의 잠수정으로부터 재차 어뢰가 발사되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렵겠군.

-전군, 주의해라! 2차 공격이다!

나는 수하들에게 경고해 주고는, 이어서 재차 대교들의 안전을 확인해 보았다.

-몽몽. 대교와 다른 아이들도 정말 괜찮은 거지?

「그렇습니다.」

-좋아…! 계속 모두를 부탁해.

나는 여전히 운기에 신경을 쓰면서 엄습해 오고 있는 어뢰들을 향해 마주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어뢰들의 무리는 당연히 지상의 로켓탄에 비해서 는 훨씬 느린 속도로 날아들고 있는 거지만, 어떤 면에서 그게 더 섬뜩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몸은 지금 너희들의 섬뜩함 따위를 음미할 상태가 아니지. 아직… ‘그것’이 발동하려던 때의 기분이 남아있거든.

쉬리리릭~!

그리 크지도 않은 소리와 함께 몇 대의 어뢰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대로 계속해서 전진했다.

내력을 눈으로 돌려 안력을 높이고 얼마간 더 나아가자 희미하게 적의 잠수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어를 퇴치하기 위한 우리들의 장비 예상했었다 이거지?

그래서 그걸 추적하는 장치를 개발해서 어뢰에 장착해 둔 건 일단 칭찬해 주마. 하지만 전류추적을 음파추적보다 선순위로 둔 건 실수였어. 이거… 알고 있나 모르겠네. 인간의 몸에도 미약하나마 전기가 발생하며, 나의 현천기공에는 그걸 증폭시킬 수 있는 수법이 있다는 사실을 말야.

「주인님. 현재의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시면 곧 저와의 통신가능 범위를 벗어나시게 됩니다.」

-상관없어. 그보다 어뢰들은?

「일부의 어뢰들이 비정상적인 궤적을… 죄송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수영의 속도를 약간 낮추며 인체전기의 출력은 더욱 올리기 시작했다.

「・・・ 대부분의 어뢰들이 일제히 선회하여 돌아가고 있습니다.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대교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해줘.

내가 아무리 내력을 이용해서 상어처럼 빠르게 헤엄을 친다고 해도 어뢰보다 빠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저기, 저 놈들까지만 어떻게든.

어뢰가 사람처럼 살기를 뿜을 리도 없건만 어쩐지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비로소 적들도 자신들이 발사한 어뢰가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어뢰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함인지 뭔가를 방출하는 것 같 았고, 서둘러 모든 엔진을 가동해서 도망치려는 놈도 늦었어, 이 자식들아!

적의 잠수정 유리 너머로 경악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싶은 순간, 나는 인체전기 방출을 중지했다.

천근추!

모든 내력을 아래로 돌리며 급격하게 하강하는 내 머리 위로 쉬익쉭- 어뢰들이 스쳐갔다.

나는 결과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초고속으로 해저지면까지 하강하여 바위틈을 찾았고, 곧이어 엄청난 폭음과 충격파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쯧, 이 바위가 견디어 줄까…? 그리고… 천근추에서 호신강기로 이어지던 기의 흐름도 어딘가 삐걱이고 있다. 역시 몽몽 말대로, ‘그것’을 익혔던 건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을까………?

나는 회의적인 생각을 털어 버리고 싶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몽몽의 판단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언제나처럼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수십 발의 어뢰가 연속으로 잠수정들에 명중하며 일으 키고 있는 폭발의 여파는 쉽게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내려온 해저지면의 수심이 생각보다 깊었던 건지 우려했던 것보다는 여파가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계속 현천기공을 운용하여 기혈의 안정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고개를 들어보았다.

아름답기까지 한 폭발과 함께 물거품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너희들…! 자신들의 무기로 당했다고 원통해 하지 마라.

만약 너희들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해도 너희들의 운명은 변함이 없었을 거야. 그만큼 ‘그것’은… 몽몽조차 파괴의 범위를 계산해 내지 못할 만큼 터무니없는 괴공(怪功)이라구.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생사의 위기를 넘나들면서도 발동 하지 않았던, 수명을 깎아먹는 근원진기를 써야 할 때조차도 무의식중에 억제해 왔던 그 건・・・ 천지파멸식(天地破滅式)…! 연옥서생(煉獄書生) 사부가 최후에 남긴 전율의 괴공이며 마공魔功)이었다.

천지…파멸…식!

그래… 천 년 전의 무림시절, 나는 연옥도에서 문제의 이 무공을 발견했었다.

천지…파멸…

새삼 되뇌어보고 있자니 문득 쓴웃음이 지어진다. 정말이지 단순명료, 노골적이며 알기 쉬운 명칭이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내용을 압축한 명칭이기도 했다. 필생의 역작인 생사금마도결의 주요 도결조차 곳곳에 ‘명칭과 다른 의미와 용도’의 초식으로 구성해 놓았을 만큼 훼이크를 즐기는(아마도) 연옥서생 사부의 작품답지 않은 셈이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연옥서생(煉獄書生) 사부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무공의 범주에 넣어야 할까?)을 만들었던 건지는 나나 몽몽도 알 수는 없었지 만, 그 위험성만은 처음부터 몽몽이 보증하며 ‘아예 보지 말 것’을 권고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분명 몽몽과 나, 그리고 천우신까지 만장일치로 ‘소거’를 결정하고 비급을 불태워 버렸었지,

하지만……………!

몽몽의 데이터 속에는 계속 그 내용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난 현재의 시대에 돌아온 이후. 몽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걸 끄집어내고야 말았었다.

당연히… 대교, 그녀 때문이었다. 난 대교를 데려오지 못하게 했던 타임 씨인지 신인지 모를 존재에게 끝까지 대항할 것이며, 대교를 되찾기 위해 서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는… 미래, 혹은 타임 씨를 향한 내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가능한 무공이 정말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일 리는 없겠지만…………….

「주인님・・・・・・!」

응?

ᅳ어, 몽몽이냐?

「예, 주인님. 상황종결로 판단하여 대교님과 함께 주인님께 이동 중입니다.」

나는 몽몽의 연락을 받자마자 천지파멸식에 대한 추억(?)을 접으며 방호벽 역할을 해주었던 바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적의 잠수정 과 어뢰들은 말 그대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는 잠수정들 말고도 그 뒤에 적의 병력들이 더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잠수정들의 전멸 장면을 보고 전부 튀어버린 모 양이군.

「・・・ 굉장한 폭발이었어요. 괜찮으세요?」

대교의 걱정어린 음성이었다.

어~ 그래, 대교. 난 괜찮아. 이 정도야 뭐……….

나는 여유 있게 대답해주며 그녀가 오고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 거리가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대교를 태워오고 있는 건 은사마군이 고. 소령이와 미령이도 각각 다른 은사도객들의 USD9000에 합승해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폭발도 폭발이었지만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다니까……….

아……………? 가만? 지금 대교는 ‘폭발도 폭발이었지만’이라고 했지. .? 그럼 조금 전의 전투보다 더 걱정되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잖아?

「전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께선……………」

-무슨 얘기, 들은 거야?

「예. 당신께서 무서운… 일단 시전되면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파멸시킬 정도로 파탄적인 그런 금단의 마공을 익히셨다고… 그리고 아 까 저 때문에, 그 마공이 발동할 뻔했다

고요.」

-…훗~! 그래. 몽몽녀석, 빨리도 고해바쳤군.

일단 장난기를 섞어서 입을 열어보았다.

-다 들었다니 알겠지만, 진짜 쓰겠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미래의 인간들과 타임 씨 협박용이었어. 어쩌면 ・・・ 정말로 내가 그렇게 막가파로 나갔기 때문에 널 돌려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게 물론 좀, 거시기한 마공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제 어지간히 가까워진 대교의 눈치를 살피며 다소 멋쩍게 웃었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까지 제어가 어려울 줄은 몰랐어. 사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시작될 기미조차 없었거든. 근데 아깐 그렇게 갑자기 뜬금없이… 아니, 뜬금없었다기보다는 그, 뭐냐. 의외로 낯선 경험이었다고 할까?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다.

난 지금까지 대교 걱정을 아주 달고 살았다고 할 수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대교를 진짜 잃게 되는 순간을 실감할 순간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도록 하면 되잖아.

「자신 있으세요?」

-그야, 뭐………….

쳇…………! 무조건 ‘자신 있다’고 장담해줘야 할 타이밍인데 얼버무리고 말았다. 기집애……………! 계속 그렇게 투명한 눈동자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 면… 허세를 부리기도 어렵잖아……………!

「…바보 같은 사람.」

어쨌든 지 무공인데 통제할 자신감도 없느냐는 건지, 애초에 그렇게 감당도 못할 마공을 익힌 거 자체를 탓하는 건지…………

「바보 같고… 못된 사람.」

바보는 그렇다 쳐도 못됐다는 건 또 뭐야?

「당신은 정말 바보 같고, 정말 못됐으며, 정말・・・・・・・

ᅳ어, 야아- 왜 자꾸 늘어 나냐?

「제 말이 틀렸나요?」

ᅳ아니, 그렇다기보다…………….

「여자 로서…………

…응?

「저의 안위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걸린 싸움을 할 때보다… 그 어떤 일보다 분노해주는 남자가 있다는 거… 기뻐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지요.」 확실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스쳐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대교의 표정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당신 자신까지 파멸케 된다면 그런 일을 제가 어떻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어요.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다시 또 당신을 천년 동안 기다리게 된다 해도… 어찌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뭐?

지금 대교가 뭐라고 한 거지…….?

지금이 표정은……

-너, 혹시 기억을……………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대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히 기억이 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천년 동안의 기다림에도 제게는 결코 슬픔만이 있지 않았다

이번엔 대교가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와락 당겨 안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어디까지 찾았는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난… 나는… 날 원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년의 기다림에 지쳐 울며 날 원망하고 또 원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행복이라 4…….

「그러니 약속해줘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자신까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없이 몇 번이고 저었다.

-안 돼…………! 난 그런 약속 못해! 또 다시 널 잃고 견딜 자신 같은 거! 그딴 거 없어! 네가 약속해! 결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내 손을 놓지 않겠다고!

그래… 나야말로, 나란 놈이야말로 대교를 원망했었다. 왜 그때 대교 스스로 진의 손을 놓았었느냐고…………!

—그래! 네 말대로 난 바보 같고 못된 놈이야! 못되고 이기적인 놈이야! 그러니까 무조건 약속해!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참으로… 당신은・・・・・・・」

대교는 이번에야말로 날 책망하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두 팔로 날 마주 안아왔을 뿐이었다. 이 아름다운 해저 속에서 깨어날 뻔했었던 내 안의 악마까지 그 한없는 따스함에 녹아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카시 놈이 보낸 잠수정 부대를 격퇴한 이후 대략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나와 우리 일행은 드디어 다카시 놈이 기다리는 섬의 앞 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마는 그건 곧바로 출발했을 때 얘기 1……!

-크흠. 큼. 음. 전군, 출발!

나는 이제야 비로소 다소 어색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괜찮니?

기동장비 USD 9000의 시동을 걸면서 슬며시 등 뒤의 대교에게 말을 걸어보았더니 대교는 묻지 말라는 듯 내 등을 툭 쳐올 뿐이었다.

적이 또 나타나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애매하고 민망한 분위기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곧바로 LCD화면에 소령이와 미령이로부터의 메 시지가 연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레리꼴레리.

-대교 언니랑 유준 오빠랑.

-얼레리꼴레리.

이 녀석들이…………!

-얼레리꼴레리 대교 언니랑 유준 오빠랑 바다 속에서 얼레리 꼴레리.

야! 니들이 애들이냐?

-우리 애들 맞삼.

윽! 그랬지 참.

– 그, 그래도 그건 본래 너희들보다 더 어린애들이 쓰는…………….

-얼레리꼴레리 대교 언니랑 유준 오빠랑 애들 앞에서 얼레리꼴레리~

에구… 지은 죄(?)가 있으니 더 뭐라고 하기도 그렇구나.

-근데 미령아. 나 첨 봤다.

-뭘 말야, 언니.

응…………? 이건 또 뭐야? 나와 대교처럼 한 대의 USD9000 에 두 녀석이 타고 오면서 웬 대화체의 메시지?

-주변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보고 있는데도 오래도록 껴안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거 말야.

-어 그러고 보니 나도 소설이나 영화 속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첨 봤던 것 같네.

– 있잖아 나 아까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 막 뛰었다? 특히 유준 오빠와 대교 언니가 다정한 손길로 서로의 산소 호흡기를 입에서 빼내면서 공기방 울이 보글보글.

-보글보글 공기방울이 합쳐지는. -보글보글 해저 러브러브.

-야! 야아~

-거기서 더 어디까지 갈지 모르던 분위기.

―맞삼. 소령 언니가 기척을 내지 않았다면.

-에이 쒸! 물속에서 무슨 어디까지. 아니, 그게 아니고.

「차암~ 애들도 짓궂기는……………」

응? 어째 대교의 반응에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아까 처음 주변의 구경꾼들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고개도 못들 정도로 부끄러워하더 니 그 사이 나름대로 감정을 수습한 건가?

-하여간, 이럴 때는 두 녀석 다 애들 같네. 소령인 그렇다 쳐도 미령이는 그렇게 쿨한 척하던 녀석이………….

「그래서 다행이에요.」

-에? 다행? 뭐가?

「예. 미령이만은 당신께 적대적인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요.」

-어…………?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요전까지의 미령이였다면 내가 자신이 좋아하는 언니까지 독차지했다며 더욱 살벌하게 미워하는 반응을 보였 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단지 장난을 치고 있는 것뿐인 것 같은데?

나는 약간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는 미령이 쪽으로 술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당연히 커다란 물안경을 쓰고 있어서 녀석의 표정이 제대로 파악될 리 는 없었지만. 기분 탓인지 전처럼 차갑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소한… ‘적의’가 느껴지는 얼레리꼴레리는 아닌 것 갈았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교전 상황이 되기 직전에도 나에게 ‘건투를 빈다’는 소리 씩이나 해주었었다.

-이거 이거 웬일인지 몰라도 일단은 반가운 변화로군, 사실 미령이 조녀석에게는 다소 섭섭했었거든. 녀석이 사실 천년 전에도 날 싫어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고 말야.

「그럴 리가요. 미령이는 본래 누구에게도 처음에는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아이잖아요. 새끼 고양이가 혼자 사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우듯이 말 이에요. 하지만 영특한 아이니 만큼 당신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를 깨닫는 것도 빠르겠지요.」

-미령이 성향이야 나도 알지. 그치만 문제는 내가 네 말처럼 그리 좋은 놈이 못 된다는 거 아니겠어?

「후후~ 자신을 가지세요. 저 대교가 보증하거니와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니까요.」

등 뒤로부터 날 안고 있던 대교의 두 팔에 힘이 더해지고 있었다.

어쩐지. 대교가 빠르게 천 년 전의 그녀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 그때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이던 지금의 대교도 괜찮았는데… 음, 그렇다고 예전의 스타일이 싫다는 건 아니고… 뭐, 결국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다른 버전(?)의 대교에 대해서 대충 결론을 내려버린 것은, 아무래도 복에 겨운 분석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의 ‘해저 러브러브’ 때문에… 우리가 목표했던 섬의 앞 바다에 도착한 것은 본래의 예정에서 20분 정도가 더 지난 후였다. 나는 USD9000을 수 면 가까이 부상시킨 후에 머리만을 수면 위로 내밀어 보았다.

나와 대교가 먼저 물안경을 벗고 있자니까 소령이와 미령이의 자그마한 얼굴들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자면 확실히 터너 대장 말대로 인어공주들을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 들기도 하네. 하지만 오늘은 이 인어공주들과 함께 바다 속 산책을 나온 것이 아닌, 전쟁을 위해서 나선 처지라는 점을 뒤이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는 수하들의 모습이 상기시켜주는군.

물론 그뿐이 아니었다. 내가 소교의 안전에 대해 장담을 했고 소령이와 미령이까지 동행하고 있기 때문인지, 대교는 지금까지 어느 정도 여유를 가 지고 있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표정부터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대교는 굳어진 얼굴로 적의 본진이자 소교가 잡혀 있는 섬을 노려보고 있었으며, 눈앞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갈았다.

…좋아. 나도 이제 슬슬 전투스위치를 올려 볼까…………?

납치된 소교와 금동이를 새삼 상기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막상 적진이 눈앞에 놓여지자 내게는 슬슬 다른 방향에서의 분노도 첨가되고 있었 다. 그건 문제의 적진이 너무나 근사한 섬이었기 때문이었다.

쳇…..!

바다 속 풍경과 패키지로 너무나 탐나는 섬이다. 게다가 일본의 영해를 영토의 몇 배로 만들어줬다는 이 오가사와라 제도 안에는 저런 섬들이 엄청 즐비할 거 아닌가.

몽몽이 알려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지들 섬으로부터 까마득한 남단의 태평양 위에서 쬐깐한 바위(암초?)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위에 시멘트 발 라서 가라앉지 않게 한 다음에 섬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섬 (?) 사이에 있는 이 광대한 해역을 차지했다는 건데 뭐, 사실 그런 짓 자체에 시비를 걸기는 싫다. 잔머리+우기기라고는 해도, 결 국 그것도 능력은 능력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놈들이 이젠 우리 독도까지 집적대고 있다는 거지. 쓰바…………! 우릴 쥐X으로 보는 XX새뀌들은 물론이고, 이런 사태를 자초 한 우리나라 쪽 무뇌 쓰레기들까지 언젠가, 아니 조만간 모조리 밟아버리고 말겠어.

「…전투 모드 스위치 ON!」

…응?

「천지파멸식의 봉인 자체 점검…

뭐야? 대교?

「…OK! 맞죠?」

대교는 어느 사이 적진을 노려보고 있던 표정을 지우고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

「후후~ 몽몽, 아니 당신의 흉내를 내봤어요. 지금 머릿속에서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전투 모드는 그렇다 치고, 천지파멸식 발동까지 걱정을 한 건가….?

으으음. 나도 모르게 그렇게까지 과도한 살기에 사로잡혔었나?

「후움. 그게 아니라면 그런 과정은 이미 끝났고, 다카시란 자를 어떻게 두들겨야 잘했다고 강호에 소문이 날까 고민 모드?」

나는 결국 대교를 따라 쿡, 웃고 말았다.

「어쨌든, 이제 혼자만 생각하고, 혼자만 화내기 없기예요.」

-그래. 그럴게.

「그럼 이제부터 작전 회의에 들어가기로 하죠. OK?」

-어 야아. 지휘관은 나잖아.

「아무나 시작하면 좀 어때요. 그리고 이번 상황보고는 저 대교 비서관이 맡겠습니다. 아셨죠? 그럼… 기본적인 사항은 일단 패스~ 곧바로 적의 전력 분석 보고입니다.」

에구. 막상 얘가 이렇게 당돌하게 나오니까 천년 전 성격의 대교가 그리워지는… 어, 가만? 대교가 직접 상황보고를?

「우선 적의 보스로 추정되는 다카시. 그는 현재 GM의 중견 간부에 지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GM의 차기 지도자 후보로 손꼽히는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둘째 치고, 그의 배경과 수하들의 능력만을 보더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사실을… 물 론 당신께서도 인지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야 뭐………….

다카시 놈의 뒤에는 GM의 상부 권력층이 존재한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잘 나가는 가문의 도련님’ 이고, 그 잘난 가문의 힘은 놈이 이번 일과 같은 대형 사고를 친다 해도 무조건 처벌할 수는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고 한다.

「또한, 아니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현재 다카시와 연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조직이 ・・・ CIA, 현 시대 최강국가인 미국의 대표적인 첩보 조직이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 실은 그게 더 큰문제이지. 게다가 CIA는…..

「CIA라는 조직은 이런 일에 문외한에 가까운 저조차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죠. 하지만 그보다도 심각한 건, 그들의 뒤에 아주 무서운 배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그런 얘기까지도 몽몽 녀석에게 들은 건가?

「네에~ 바로, 프리메이슨입니다.」

대교의 표정과 음성에 의도적인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프리메이슨! 그래요. 과거 생체실험의 일환으로 저 대교의 육체를 만들었다는 자들! 현재는 몽몽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 진 유준 대장님과 대치 중인 최대의 난적이지요.」

-잠깐! 대교, 너……………

너무 의도적으로 밝은 척을 하는 것 같아서 막은 거지만, 대교는 정말 이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아요. 제게 가장 언급하고 싶지 않으셨던 사실은 이것이었죠? 하지만.. 전 괜찮아요. 언제고 부딪쳐야 할 자들이라면 이렇게 빠른 편이 오히 려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도하겠지만…………….

당연히 계속 숨기거나 회피한다고 넘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긴 하지. 그래도 그게 쯧.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에 대한 배려, 당신의 다정함에는 감사해요.」

대교는 비로소 짐짓 섭섭하다는 표정을 떠올리며 살짝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전 오늘 아침, 분명히 앞으로는 울지 않겠다고.. 저 스스로 더 강해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저를 어린아이처럼 보살피려고만 하시네요.」

-어린아이 취급했다?

「그래요.」

-섭섭했니, 그게?

「그래요.」

-그러면… 뭐.

한박자 쉬고.

-이제 안 그러지 뭐.

「당연히 그러셔야… 음. 막상 그러시니 조금 아쉽기도……………」

-쳇. 훗. 이미 늦었어, 이 아가씨야.

나 지금 투덜댄 거야? 웃은 거야? 둘・・・ 단가?

-나 이제 막나갈 거라구.

나는 스윽 USD 9000을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시키며 이마 위에 걸치고 있던 물안경을 아예 빼서 물에 던져버렸다.

-우리 대교 양 과보호 모드 해제와 동시에……………

거기까지는 대교에게, 그리고 이후로는 모두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비밀 침투작전 중지! 전군, 전면전 준비!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하들도 일제히 수면 위로 부상하며 물안경을 벗어들고 있었다. 나는 정글도를 언제라도 빼기 좋게 고쳐 매며 명령을 이 었다.

-상륙시까지 현 대형 유지. 단, 상륙 후에는 각자의 판단을 우선시 한다.

대교 녀석, 이래도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군. 그렇다면 보충 설명.

-간단히 말해서, 각자 알아서 쳐들어간다. 연락할 수 있으면 하자.

내 수하들조차 놀라서 동작을 멈추고 있는데. 그런데도 대교는 까딱없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정작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미령이였다.

“뭐예요! 여기까지 와서 왜 갑자기 전면전, 아니 그것도 아니잖아!”

미령이는 잠깐 당황한 걸 만회하려고 애써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까 이미 공격을 받았다고 해서 그래요? 물론 그때 이미 비밀작전의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뭐예요! 조직적으로 적 들에게 혼란을 준다던가. 하여간, 다양한 작전을 그게, 그러니까………….”

똘똘한 우리 미령이가 모처럼 버벅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당신이 초인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고… 당신 수하들도 드물게 우수한 요원들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그랜드캐넌 때와 경 우가 다르잖아요. 무엇보다 인질이 있는 상황이고, 게다가………….”

미령이는 차츰 정돈된 반박을 시작하면서 힐끔 대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투능력이 없는 사람까지 동행한 상황에서는…”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인마.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나 방금 야단맞았다. 대교한테.

“예?”

-과보호가싫데. 어린애 취급받는 것 같아서 말야.

“하지만 언닌 정말로…………….”

“미아.”

대교였다. 대교는 살짝 손을 들어 미령이에게 뭔가 특별한 동작을 해 보였다. 거기엔 미령이는 물론이고 나까지 놀랄 수밖에 없는 의미가 담겨 있 었다.

…금나수(換筆?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그러고 보니 언니가 아까 우릴 구해줄 때 썼던 수법이…………….”

아까 우릴? 미령이와 소령이를? 그러니까… 어뢰의 공격을 받고 신속하게 대피할 때의 상황?

“난 언니가 무공을 전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사실 전혀 못해. 지금의 나는 말이야. 하지만 천 년 전에는 달랐었다고 해. 더구나 최근 두 번이나 그때의 무공을 나도 모르게 썼던 모양이고 말이 야.”

대교… 이 녀석, 그게 너의 ‘믿는 구석’이었던 건가?

“으음 그러니까, 말야. 어떤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것도 날 위해서만 특별한 능력이 발휘되었다고 하면…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교는 미령을 바라보면서도 날 바라보는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그게 당연하잖아.”

나는 적진에 상륙하기 직전에야 수하들에게 물었다.

-작전에 대한 의문 사항은?

정확히 말하자면 대표자 은사마군에게 물은 거지만………….

ᅳ…아니.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지휘관이 절

대적이라도… 니들도 최소한의 뭔가는 물어야 하는 거 아냐? 하다못해 목표지점이 어디쯤이냐, 라던가………………

・보통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대답하는데 음성이 좀 시큰둥하달까, 하여간 이상했다.

・그런데?

-천주께서 그런 걸 물으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뭐?

-마군황의 명령에 반문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이 진짜! 이러면 내가 정말 할 말이, 할 기분이(?) 마땅치 않잖아!

-에이 씨바! 니들 진짜!

나는 적진으로 가는 스타트 지점인 모래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버럭버럭 고전 (고함을 지르는 전음?)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 있는 거지! 응? 정말 내가 멋대로, 아무렇게나 정한 작전대로 가도! 그래도 살아남을 자신 있는 거야? 응?

-예!!!!!!!

오우~ 마이갓! 기껏 나 ‘막나간다’ 했는데 반응이 다들 이러면 어쩌란 말야! 대교도 그렇고, 내 수하들도 그렇고, 왜 내가 막 나가는 분위기 조성에 왜 협조를(?) 안 해주는 거야?

-에이쒸! 알았다. 그냥 가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애초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던(혹은 기대하던 상황은…………….

“죄송해요.”

-뭐?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 감정에 치우쳐서 그만……”

에?

“하!지!만! 당신께서도 이젠 그 점까지 명심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당신의 수하들도, 저도.. 완! 전! 히! 당신 을 믿어버리게 되었다는 걸요.”

대교는 말끝에 헤헤~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씨~! 진짜~!

“분하시죠? 필살기인 ‘엉뚱한 행동 하는 척하다가 반전으로 상대방을 놀라게 하기’가 통하지 않게. 아,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이겠지만, 하여간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으니 말예요. 게다가………….”

우리의 얄미운 대교 양께서는 고개를 돌려 내 수하들을 보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상대가 저여서 화도 못 내겠고… 우희~”

괴이한 웃음은 대교의 입에서 살짝 혀끝이 내밀어져서였다.

나는 심각한 상황의 적진을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과 수하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 하여간 모든 현실을 잊고 잠시 멍하니 아무 말이나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제군들… 보다시피… 내가 이래. 이렇게 돼버렸어.

나의 항복선언에 동요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뭐시여,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거야?

-에이- 뭘 그래요. 천년 전부터 본래 그랬다는 거 다 아는데.

소령이였다.

그 옆의 미령이까지 피식거리고 있는 걸 봐서… 에… 그러니까 미령이도 이젠 챈처럼 나와 대교의 ‘천년 인연’을 믿기 시작했다는 의미겠지? 그 것도 좋고, 다들 날 절대적으로 밀어준다니 더 좋고…………

나는 애써 가장 맘에 드는 상황만을 골라서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유일한(?) 장기가 망가져서야. 그게 상대가 대교면 상관없… 아니 그래도 조금 억울… 억울이 맞나? 내 지금 기분에 맞는 감정 표현 은・・・ 어?

「주인님!」

버벅대던 날 부르는 몽몽의 강렬한 음성! 그 속에 담긴 경고의 의미가 날 깨어나게 했다.

「주인님! 지금 방금! 정확히는 1.3초 전에……………」

-아, 알아. 안다구! 방금 뭔가. 어, 하지만 뭐지?

나는 아직 막연하기만 한 ‘이상 징후’를 스스로 분석하고 싶었지만 그게 어째 쉽지 않았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총소리나 미사일 발사음. 아니,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방식의 병기가 사용된 소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섬뜩한……….

나는 너희들도 들었냐?’는 의미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다들 내가 별안간 정색을 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 긴장하게 된 것 일뿐, 아무런 소리 는 고사하고 그런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 기색들이었다.

「…지진파(地震波)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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