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4부 – 13화 : 위험한 재회


3. 위험한 재회

우리가 보스턴 공항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새벽 4시 정도였다. 전에 혼자 프리메이슨을 상대로 날뛰고 다닐 때는 ‘미스 화룡’ 같은 초음속 제트 여 객기까지 동원하곤 해서 그런지, 이번에야 비로소 아주 먼 나라에 힘들게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으음… 기왕 늦은 거. 더 천천히 오자고 할 걸 그랬나? 어디 들어가기도 그렇고, 어차피 잠도 비행기에서 충분히 잤으니 쉴 생각도 별로 없고……. 애매한 시간대이긴 했지만, 공항을 나서면서는 잠시 모든 걸 잊을 수가 있었다. 꽤 북쪽에 위치한 도시라서 그런지 아직도 눈이 두텁게 덮여 있는 거리의 고즈넉하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꽤나 낭만적인 멋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 전부 그대로네? 하나도 안 변했어.”

소령이? 저 녀석은 이 보스턴에 와본 일이 있는 건가?

“당연하지, 언니. 이 도시뿐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는 역사도 짧으면서 꽤나 고전적인 전통을 좋아하잖아. 어, 그래도 저 모퉁이의 작은 상점은 오래 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네?”

미령이도 함께 와본 모양인데… 말하는 걸로 보아 잠깐 다녀간 정도가 아닌 것 같군.

-소령님은 만 10세가 되던 해, 현 도시에 위치한 MIT, 메사츄세스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했던 것으로 확인되 었습니다.

…에? 뭐시라고라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소령이가 내 등에 특 부딪쳐 왔다.

“우~ 왜 그래요?”

“아니, 너, 진짜, 그게.”

“예?”

“…아니, 됐다.”

나는 소령이를 외면(?)하고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으음. 소령이가 다른 건 몰라도 공학 쪽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겨우 열 살에 MIT학생이었다고…………?

‘천재와 강아지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음. 암튼.

“몽몽. 더블엠 천, 그 친구도 하버드 출신. 그것도 15살에 입학해서 조기 졸업한 경력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쳇! 알고 보니 이것들, 조낸 천재 커플이었군. 옹? 내가 왜 방금 쳇 소리를 냈지? 에구… 나도 은근히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나보다.

“크흠. 음… 이 근처에 어디 시간 때울 만한 곳 없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코드명 더블엠 천은 조금 전에 기상하여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흐음. 그 친구가 준비 중인 주지사 선거는 아직 한참 남은 걸로 아는데 벌써부터 꽤나 바지런을 떠는 모양이군. 하긴, 그 친구는 나와 달리 좀 부 지런한 타입이긴 했지.

“그럼 바로 가야지 뭐.”

예의 ‘킹 메이커’ 더블엠 천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은 ‘리버티’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다. 본래 악명 높은 감옥이었는데 몇 년 동안 리모델링해서 최 근 호텔로 변신하여 오픈 했다고 한다.

“여기・・・ 5층 503호?”

-그렇습니다. 본 사무실과 집은 뉴욕에 위치해 있으나 일주일 전 보스턴의 현 호텔로 이동, 해당 호실에 머물며 선거구 분석을 시작한 것으로 추 정됩니다.

“으음… 일단, 나와 대교만 먼저 들어간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자, 뜻밖에 소령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특유의 ‘난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표정이 약간 남아 있기는 했지 만, 매우 드물게도 ‘복잡한 심경’이라는 글자가 얼굴에 가득한 상태였다.

잠시 후.

리버티 호텔의 503호 문 앞에 선 채, 난 새삼 짧은 심호흡을 했다. 로비에서 호텔 직원을 통해 방문을 알린 우리가 이곳까지 오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한 건지, 곧 문에서 작게 달칵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열려지는 공간 너머로 올백 머리의 낯익은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진유준 씨?”

천 년 전과 달리 매우 자연스런 한국어였다.

“그렇소.”

“어서 오십시오. 그쪽 숙녀 분은.. 아!”

예상했던 대로 ‘주가혜’로서의 대교를 먼저 알아보고 있었다.

“오~ 이런! 새벽부터 뜻하지 않게 귀한손님이 오셨군요!”

은근한 경계심을 우선적으로 보이던 태도가 급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블엠 천・・・ 아니, 나의 친구 천우신의 손짓에 따라 조용히 객실로 들어갔다. ―영체(靈體) 일치도 96%……………! 천우신님의 환생자가 확실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알아. 몽몽.”

안다구.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으음~ 이거 당황스럽군요. LA한인회(韓人會)에서 오신 분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벌써 확인해 봤겠지만, 그건 거짓말이요.”

천우신은 표정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자제하는 것 같았고, 아직 허리 뒤춤에 숨기고 있는 총에 손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자신이 밀고 있는 주지사 후보가 킬러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남자답지 않은 여유였고, 그야말로 천우신 다웠다.

“아니요. 아직 그쪽 분들에게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전 다만, 새벽부터 찾아온 낯선 한인회 분이 거기에 주가혜 양처럼 유명한 홍콩 분을 모시 고 왔다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의문을 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천우신은 말끝을 흐리며 잠시 난감해하는 것 같더니, 문득 고개를 저으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일단, 앉으시죠. 곧 차를 내오겠습니다.”

“아니, 제가 할게요.”

대교가 먼저 빠르게 커피포트 쪽으로 걸음을 옮겨 버리자, 천우신은 다시 난감한 표정이 되고 있었다. 천하의 천우신도 손님이며 초면일 수밖에 없 는 대교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소령이.”

“예?”

“천소령.”

정체불명의 남녀를 대하면서도 비교적 태연했던 천우신의 표정이 소령이외 이름을 듣게 된 것만으로 급격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사람이었나?”

훗. 천 년 전에도 보기 드물었던 진지하고 살벌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하다니………

“아니. 지금 우리가 마실 차를 준비 중인, 당신이 주가혜로 알고 있을 대교. 그녀가 소령이의 ‘친언니’…라고 하면, 무슨 일인지 알겠소?”

잠깐 보였던 ‘암천주(暗天主) 모드’ 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천우신은 멍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나와 대교 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그 아이에게… 친・・・ 언니… 가족이?”

역시… 그 부분에 주목하는군.

소령이에게 잃어버렸었던 친족이 나타났다는 건, 소령이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와 인연을 정리하는 형태로 자신과 소령이의 ‘남매 사이’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놀랬나, 친구?”

“당연하지, 친…….”

어색하게 멈추어지기는 했지만, 방금 이 친구는 무심결에 옛날처럼 맞장구를 치려고 했지……………?

“아, 내가 당신과… 아는… 사이였나요?”

천우신은 새삼 내 얼굴을 바라하며 자신이 오래 전에 떠났던 GM의 멤버들을 검색해 보는 것 같았다.

“천천히 차라도 드시면서 생각하세요.”

대교가 차를 내오며 한쪽의 테이블과 소파를 눈짓했다. 완전히 주인과 손님이 뒤바뀌어 버렸음에도, 천우신은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표정으로 얌 전히 소파로 가서 앉았다.

“실은, 소령이도 오늘 우리와 함께 왔소.”

“아. 그 아이가……….”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불러주겠소.”

“아니, 아니… 잠깐 생각을 좀………….”

“흣! 이거 실망인 걸? 생각은 더 무슨 생각! 그냥 옛날처럼 좀 솔직해 봐!”

나는 찻잔을 들어 그것이 술잔이기라도 하듯 천우신에게 내밀었고, 천우신도 반사적으로 마주 손을 들고 있었다.

칭-

잔을 부딪치며……….

“오직 대교!”

“오직 소령!”

그래, 친구. 머리로 기억하지는 못해도 가슴으로 잊지 않았구나. 우리가 연옥도를 탈출하여 강호로 귀환했던 날, 첫잔을 건배 하며 외쳤던 구호를. “내가 방금 무슨…………….”

나는 나름 감격을 맛보고 있었지만 천우신은 찻잔을 내려놓을 생각도 못한 채 얼떨떨해 하고 있었다.

“당신. 정말 전에 나와 어떤…………….”

“아무렴 어떻겠소. 그냥 뭐~ 이렇게 만났으니, 앞으로 친하게 시내면 되는 거지.”

천우신은 피식피식 웃으며 하는 나의 말, 그리고 조금 전 무심결에 나은 자기 자신의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긴, 왠지 느낌도 나쁘지 않으니… 당신 말대로 우리 그냥 앞으로 친하게 지내봅시다.”

잘도 복잡한 의혹들을 접어버리고 자신의 진심에 충실한… 그래, 이게 천우신이지. 이거… 옛날처럼 웃으며 내미는 옛 친구의 손을 마주 잡고 악수 를 하자니 쳇, 쪽팔리게 눈시울이 다 찡해지네.

옆자리의 대교 역시 벅찬 감정을 숨기기 어려워하며 천우신을 보고 있었다. 대교에게 있어서도 천우신은 자신이 현 시대로 올 수 있도록 모든 지원 을 아끼지 않았던 은인이자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동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사실 난・・・ 항상 나의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한편으로는 거부감도 느끼고 있었소. 그 바위처럼 완강한 고집불통 아버지가 나의 인생까지 GM이라 는 틀에 가둬 버리려는 것이 싫었고, 소령이 ・그 아이의 천진한 눈동자가 한결같이 날 바라보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웠소. 난 결국 두 사람 모두를 배반할… 그런 천성을 타고난 자라는 걸.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답지않게, 또 이런다. 뭐 그리 말이 많아?”

남의 고뇌는 나의 즐거움(?). 나의 모토는 절친한 친구에게도 예외가 없었기에 가차없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결국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소령이가 보고 싶어.”

“OK~!”

나와 대교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었다. 문 앞에는, 조금 전 미리 몽몽의 연락을 받고 올라와 있던 소령이가 약간 쭈뼛거리는 기색으 로 서 있었다.

으음…….”

솔직히 몽몽을 동원해 두 사람의 재회를 좀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산업단지 굴뚝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나와 대교는 조금 전에 문을 닫고 나온 503호 앞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쨌든… 소령이 녀석도, 참.”

사실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에게 대뜸 지 노트북을 내미는 행동부터가 평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소령이가 천우신에게 물은 건, ‘얘 이 름이 뭔지 알아요?’였다.

“소령이는 상대가 자신을 잊고 있지 않은지⋯ 남매로서 지내 온 시간 이전의 기억을… 과연 상대방도 공유하고 있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가 봐요.”

“그래. 그래서 천우신의 대답을 듣고 그렇게 기뻐한 거겠지.”

천우신의 대답은. ‘몽몽. 내가 너의 보물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어준 이름을 어찌 잊었겠니’…였다.

“후훗~ 소령이 녀석이 그렇게 소리 없이 조용히 기뻐하는 걸 보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은데?”

“에. 저도 그런 거 같아요.”

대교와 내가 기분 좋은 웃음을 교환하며 오는 것을 보며.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던 일행들도 ‘긍정적 상황 진행’을 알아채고 있는 것 같았다.

“잘 되고 있는 거죠?”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하는 미령이에게, 나는 엄지와 검지를 모아 OK 표시를 해 보였다. 미령이는 새삼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지만,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영은(안 오셔도 된 다는데 굳이 쫓아온) 공연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봐. 대교는 그렇다 치고, 소령이는 아직 너무 어리잖아. 자네 마음대로 이래도 되는 거… 욱!”

돌발적으로 팔꿈치를 들어 사영의 허벅지쯤을 쿡 찍었던 미령이가 흠칫, 굳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무심결에 무슨 짓을 했나 싶었는지 얼굴을 붉히 며 고개를 숙이는 미령이와는 달리, 사영은 약간 놀랐던 표정을 빠르게 지우고 급방긋 모드가 되고 있었다.

“하핫~ 이거 이거……………”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미령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쓱쓱 쓰다듬어 주며 대교를 돌아보았다.

“대교 너와는 다른 걸? 사실 넌 애가 너무 얌전해서 재미가 없었다구!”

“예? 지, 진짜요?”

“아무렴!딸래미 키우는 재미를 주는 건 바로 요런 녀석이지. 이렇게 앙큼하고 톡톡 튀는 녀석!”

사영은 나사 빠진(?) 초보 아빠 같은 표정으로 미령이를 답삭 안아들었고, 대교는 섭섭하다고 투정을 부리는 소녀처럼 입술을 삐죽였다.

이렇게 보면… 참 평범한 가족처럼 보이는데 말야. 나 자신은 물론이고 저 다정한 부녀들의 정체를 누가 안다면…

응? 뭐야……? 지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저 호텔 직원의 표정이 좀 거시기 하네? 정말 우리의 본색을 눈치 채기라도 한 건.. 음. 아니, 아니야. 원인은 이 녀석인 것 같아.

“야. 조담놈. 넌 그 칼 좀 잘 가지고 다닐 수 없냐?”

“어……? 이게 언제 풀렸지?”

조담놈은 엉성하게 풀려 거의 모습이 드러난 자신의 칼을 다시 천으로 대충(!) 여미기 시작했다.

“너, 나 좀 보자.”

나는 조담놈을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에서는 원판도 나름대로 조심하며 보통 사람들 눈에 뜨지 않으려고 하는데, 넌 대체 왜 이러냐? 비행기 탈 때도 네가 칼을 화물칸에 넣기 는커녕 손에서 떼지도 않으려 해서 결국 비싼 전용기 타고 다니는 거 아냐. 그럼 이런 데선 잘 감추던가 해야지, 왜………….”

“이 이상 단단히 감으면 곧바로 검을 뽑기가 어려워.”

“그야 나도 알지. 무인으로서의 그런 자세는 좋은데 말야. 요즘 어디 그런 세상이냐? 여긴 무협지 속의 세상이 아니잖아. 넌 대체 교육을 어떻게 받 았기에………….”

“역시 실망이군.”

“뭐?”

“닥터 제이… 그는 자주 내게 오리지널 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었다. 그 이야기 속의 너는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누구보다 굳건한 정신 력……!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에 봄처럼 따스한 다정함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 그리고 설사 하늘을 적으로 삼게 된다 해도 굴하지 않 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그런 남자였다.”

에…………? 닥터 제이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칭찬을 아, 아니 하여간. 이 녀석한테 나에 대해 그렇게 좋게 표현을 해왔다고? 어랏? 조담놈, 이 녀 석… 어째 살짝 얼굴까지 붉히고 있네?

“그런데… 두고 볼수록 그게 아닌 것 같군.”

“큼. 음… 어, 뭐 내가 그런 수준이 아닌 건 내가 더 잘 알아, 인마.”

“잔소리꾼.”

윽.

“소인배. 구두쇠. 사기꾼. 공처가.”

“야~ 야!”

“사실. 막상 오리지널 너와 대결을 앞둔 시점에서 오리지널을 상대할 때 필요할 거라는 전력을 들으면서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느끼기는 했었 지.”

제기… 어떤 상황이었을지. 어째 훤히 짐작이 가버린다. 꽤 한참 전의 어느 날.

닥터 제이의 지하 연구소로 호출된 13호는, 그동안 자신이 평생에 걸쳐 수련해 온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의 진짜 주인을 마침내 만나 대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대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오리지널 진유준의 특징’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선 엄청 잔머리에 능하다.”

“예? 그런 얘긴 처음…………….”

“그는 잔머리 지존에 자칭 사악구라……………! 소위 말빨이 좋다는 뜻이니, 대결 전후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대비하고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예? 오리지널은 정정당당한 승부사로 알고 있….”

“절대 아니다. 그는 생사금마도결에 온갖 잡다한 무공을 섞어 널 혼란시키려 할 것이며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다른 함정을 팔 것이다.”

“그, 그럴 리가… 내가 생각한 오리지널은 결코….”

“전에 들었던 말은 잊고, 오늘 들은 진실을 믿어라. 또한, 대결에 임하여 무엇보다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끈질긴 생명력이 고래힘줄, 바 퀴벌레. 국회 정치꾼 등을 능가할 정도라는 것이다.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으아아아아~ 대체! 대체 오리지널은 어떤 놈인 거냐!”

…으음. 상상의 뒷부분이 특히 찜찜했다. 하여간… 조담놈, 이 녀석이 그때 나와 싸우면서 보였던 모습들이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군.

처음에는 주의 받은 대로 내 심리전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이런 놈을 목표로 했던 건가?’ 라는 생각에 광분하게 되고… 결국 마지막 주의 사항이었을 ‘진유준의 질긴 생명력’을 간과하여 패배…………! 대충 그런 상황 전개였던거 같지?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뭐?”

“어차피 언젠가는 결국 내가 오리지널, 너를 꺾을 테니까. 내가 오리지널을 넘어선 내가 진짜 진유준이 될 테니 말이다.”

이제 보니… 조담놈 녀석이 집착하는 ‘진짜 진유준’은 실제의 나라기보다, 녀석의 머리 속에 오래 전에 만들어져 있는 ‘영웅형 완벽남’인 거였군. 닥터 제이 그 양반. 어쩌자고 순진한 애 꼬셔가지고 이렇게 만들어 놨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들어가겠다.”

말하면서 이미 반쯤 몸이 돌아가 있었다.

“젠장. 알긋다. 자룡대주한테 말해서 곧 네놈 칼집도 우리처럼 만들어 줄 테니까. 그리 알아.”

“역시 참견쟁이 계집애 같아.”

“…뭐래도 좋은데, 빨리 깨닫는 게 좋을 거야. 넌 결코… 내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야.”

“흥! 알아.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녀석…………! 어쩐지 지금은 그렇게 단순한 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걸?

나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조담놈의 뒷모습을 보며 공연히 혼자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좀 더 분발해야 하는 요인이 아주 주위에 산재하는구만. 성취동기가 많은 건 좋은데… 좀 부담이 되기도 하네. 아직 몽몽도 나도 이렇다 할 ‘단전 복구’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나와 몽몽은 천지파멸식과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으로 만든 새로운 구결을 조합하여 ‘통제 가능한 천지파멸식’을 연구해 보고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현재로서는 적절한 조합이 불가능했다. 그 구결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이미 포화상태가 된 에너지의 흐름 유도’였다. 지난번처럼 사고 칠 거 어지간히 다 친 다음에야 수습용으로밖에 활용이 안 되는 것이다.

묘선(菌)대사가 반평생을 바쳐 연구해 낸 거였다는 구결도 그 정도 역할에 그칠 정도니… 거참. 젊은 나이에 천지파멸식 같은 걸 만들어 낸 연옥 서생(燥獄書生) 사부는 대체…………

-주인님!

응?

-저격! 조심하십시오!

뭐?

…….

갑작스런 몽몽의 경고에 나는 황급히 몸을 낮추었다.

-목표는 이쪽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방향은…………..

나는 몽몽이 알려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건 호텔 맞은 편의 커다란 건물 위 옥상이었다.

뭐야! 설마?

…천우신님의 거주처가 목표일 가능성 87%! 저격수가 흑주님의 환생자일 가능성, 50% 이상입니다!

빌어먹을!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무작정 맞은 편 건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쉬잉-

바람소리와 함께 대교의 신형이 내 옆으로 날아들었다.

“몽몽에게 들었어요! 서둘러야. 아!”

-주인님!

이미 늦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저격을 받아 깨진 503호의 창문 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으로 커튼이 펄럭이는 모습 이 희미하게 보였다. “몽몽!”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모두 무사하다는 소령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일단 다행이긴 한데… 제기………! 흑주 녀석. 왜 하필 …………….

나는 대교의 손을 잡고 그녀의 내력을 이용해 수하들에게 전음을 날리기 시작했다.

「모든 병력은 산개하여 전방의 건물을 포위하고 퇴로를 차단한다. 저격수를 발견하면……………」

나는 순간 망설였지만, 곧 명령을 계속했다.

「각자 전력을 다해서 상대하라. 절대 방심하지 마라.」

그래. 현 시대의 흑주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흑주는 흑주겠지. 내가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내 수하들 쪽인 거야. r

저격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패티의 위성 4호가 정찰에 들어갑니다.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군. 저 녀석,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

나도 내력을 눈으로 집중하고 있는 상태여서 이십여 층 위의 흑주가 전에 본 사진 속의 모습 그대로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저격의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지금은 무조건 도주타이밍 아닌가?

―주인님. 옥상 구조물 중의 한 쪽에 ‘행글라이더’로 추정되는 장비가 발견되었습니다.

흐음. 그래서 여유를 부리는 아니, 오히려 기다리는 건가? 어쨌든 차라리 잘됐어. 내 수하들과 부딪치게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야.

「자룡대주! 전군, 아니 대충 적당한 병력을 옥상으로 보내.

명령을 끝내기도 전에 나와 대교는 경공을 발동해서 건물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두운 건물 안으로 막 들어설 때쯤이었다.

주인님. 흑주님으로 추정되는 저격수가 탈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역시, 추적자들이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군.

-어사조 멤버들이 옥상에 도착………! 저격수, 출발합니다.

나와 대교는 다시 건물을 나와 흑주가 날아가버린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흑주의 행글라이더는 한껏 날개를 펴고 활강하는 독수리처럼 쏜살같이 새벽하늘을 가르며 건물들 사이를 관통해 날고 있었다. 하지만 공공보법(空 空步法)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우리 커플의 지상비행도 만만치는 않았다.

더구나… 흑주가 비행을 시작한 건물의 옥상은, 행글라이더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그리 높은 지점이 아니었어. 벌써 조금씩 고도가 낮아 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으니까 이제 곧 아, 아닌가? 젠장!

흑주의 행글라이더는 공중에서 새로운 바람을 만났는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며 고도까지 올리고 있었다.

「동동! 오토바이 같은 기동 장비를 구할 만한 곳은?」

-계속 체크 중입니다. 그러나 저격수의 비행 방향이 예측 불가이므로

치이~ 흑주 이 녀석! 천년 전엔 어디 딴 데 좀 가 있으라고 해도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고 쫓아다니더니 이젠 꽤나 비싸게 구네!

도시의 하늘을 종횡무진하며 달아나는 흑주와 눈 덮힌 거리를 질주하며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 커플의 추격전은 좀처럼 쉽게 끝날 것 같지 가 않았다.

추격전 개시 후 얼마가 지났을까.

이미 날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고, 나와 대교는 이름 모를 동네의 건물 모퉁이에서 숨과 진기를 함께 고르고 있었다.

“후~우~ 흑주… 이 녀석. 후우 은신술(隱身術)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에효. 도망도 더럽게 잘 치네.”

“예에… 그 ‘날틀’은 동력도 없는 것 같던데… 그렇게 빠르고 오래 날 수 있을 줄은… 하아~ 저도 이렇게 장시간 전력으로… 공공보법을 펼쳐 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공중도주의 끝에는 바로 이 강…………..! 보스턴의 명물이라는 ‘찰스(Charles) 강이 있었다.

찰스 강에 행글라이더째 뛰어든 흑주는 아직도 한겨울이나 다름없는 강물을 물살도, 소리도 없이 물귀신처럼 가로지르더니 조금 전에야 기슭에 상 륙한 참이었다.

그나마 강에다가 모터보트 같은 걸 숨겨놨다가 갈아타는 짓까지는 안 해서 다행이다. 물론 그렇다고 은신처 주변에 바로 착륙했을 리가 없으니… 좀 전에 들어간 저 작은 건물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겠지…..?

으음… 좀 더 미행해서 진짜 은신처까지 잡아내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역시 그냥 빨리 녀석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몽몽. 스캔 범위 내에 녀석이 있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상을 보여드리기 전에 대교님의 허락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

-현재 저격수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입니다.

“아참. 흑주 녀석, 강물에 빠졌었지? 그럼 들어가더라도 예의상 좀 있다 들어가줘야 겠네.”

・어? 근데 가만? 방금 몽몽 녀석… 대교의 허락이라고 했었나? 어랏? 대교는 또 왜이래?

“…뭐시여. 왜 그렇게 묘하게 웃는 거야?”

“그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순간적으로는 당신께서 태연하신 것에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쩐지 부럽기도 해서요.”

“내가 흑주를 전혀 여자로 보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럼 ‘안도’까지는 알겠는데, ‘부러움’은 또 뭐냐?”

“전 어쩌면.. 평생 당신께 그 정도로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존재가 되진 못할 것 같으니까요.”

나는 결국 풀썩 웃고 말았다.

“하여간 이 아가씬 참, 욕심도 많다니까? 이봐요 대교 양! 자넨 그럼 내가 자네를 생각해도 설레는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가?”

“아, 아뇨! 절대 반대!”

“훗! 거봐 인마. 난 너희 둘 다 좋아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단 말야. 흑주와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다 까놓고 지내서 그런 지 음. 물론 이건 내 쪽의 입장일 뿐이기는 하지만..”

“아- 그러고 보니, 흑주님은 당신께서 곡주님일 때의 모습밖에 모르겠군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만났을 때는 사실상 가까이 지낸 시간이 거 의 없었을 것이고요.”

“그렇지, 뭐. 그래서 천우신 때와 같은 반응은 아예 기대도 안 하고 있어.”

대교는 내가 이런 얘기까지 담담하게 하는 것에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그게. 사실 난 이미 꽤 오래 전부터 흑주의 나에 대한 애정, 애착… 그 어떤 감정도 포기하고 있었어.”

쯧. 막상 ‘포기’라고 하니까 어감이 좀 거시기 하긴 하네.

“포기…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어쨌든 흑주가 굳이 날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건 진심이야. 천우신과 달리 흑주는 서로 교류를 했다기 보다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다 드러내고 의지 했었던 경우여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어떻게 생각하면 녀석이 내가 모르는 내 어린 시절까지 다 알고 있는 형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반대로 녀석이 뭐든 잘하길 바라고, 잘 하면 기특해하고 칭찬하고 응원해 주고 싶은, 내가 녀석의 오 빠나 삼촌쯤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으으음. 막상 말로 표현하려니까, 생각보다 되게 막연하고 복잡하네.

“손을 떠난 애제자를 생각하는 스승의 마음…………?”

“어, 뭐. 대교 네 말도 듣고 보니 그런 감정과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네. 거 이상도 하지? 난 녀석에게 뭘 가르친 적도 없고, 오히려 녀석에게 의지 하고 도움만 받았었는데 말야.”

“역시 흑주님은 저의 최대 라이벌이었네요.”

“에이~ 그런 건 아니래두 그러네.”

“하지만 어쨌든, 흑주님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뭐…가?”

“제가 주님이 진하운에서 진유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도 결국 당신을 따랐듯… 흑주님도 분명 ‘진하운이 아닌 진 유준의 그림자였던 시간’을 잊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 말은 어쩌니 저쩌니 해도… 나도 결국 흑주 녀석이 날 알아봐주면야 당연히 기쁘겠지만…….

“암튼, 당장 문제는 흑주 녀석이 하필 천우신을 노렸다는 점이지. 이제 와 내가 녀석의 킬러 짓 자체를 때려치게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이 번 일은 막아야 하니………….”

-주인님!

음?

-흑주님이 현재의 위치인 3층의 창가로 나오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도 우리가 보이지는 않겠지만, 기분상 조금 더 골목 안으로 물러나볼까….? 어, 근데, 잠깐.

“몽몽, 너 방금 녀석을 뭐라고 불렀지?”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이미 확신하고 계신 것 같아서 흑주님의 영체 및 스캔 결과보고를 생략했습니다.”

“됐어, 인마. 맞으면 된 거지 뭐. 그보다 녀석 동태가 어때?”

・실내에 특수 제작된 ‘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소음기가 장착된 추가 총기류도 다수 스캔되었으나 그밖에는 몇 종류의 의류뿐, 주거에 필요 한 도구 및 식료품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임시 거처로 추정됩니다.

흠. 근데 이제야 나오기 시작한 영상을 보니까, 흑주 녀석⋯ 갈아입었다고 한 옷이 전과 똑같은 블랙 패션이네. 사람의 취향이란 이렇게 오랜 세월 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지… 응? 흑주가 천천히 활을 잡네? 화살을 매기기까지 하는데… 방안에서 어디 쏠 데도 없을 텐데 왜……………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창문이 3cm가량 열려 있습니다!

미리 열려 있었다고? 이 추운 계절에?

흑주는 마치 혼자 연습이라도 하듯 서둘지 않는 태도로 활을 창문의 작은 틈에 겨누고 있었다.

저 각도는 분명 우리 위치와 관계없는… 에? 혹시, 저 녀석!

파앗!

흑주의 화살이 창문의 작은 틈을 비집고 사냥에 나선 독사처럼 뛰어 나왔다.

칵!

화살이 우리 전방의 가로등에 부딪치며 괘도가 변경되는 순간, 우린 황급히 몸을 숙여야 했다.

카칵!쌕-!

가로등 옆 건물의 벽에 부딪치며 다시 한 번 괘도 변경, 그리고 바로 나의 머리 위에 콱, 하고 꽂혔다.

뭐시여! 쿠션 사격이냐?

이제 흑주는 창문을 아예 활짝 열어젖히더니 마구 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와앗! 투 쿠션! 쓰리쿠션! 왓~! 방금 그냥 흰 거 맞지?

쿠션 사격에 이은 변화구(?) 사격은 피할 틈도 없어 간신히 정글도 집채로 막았다.

대교가 다시 내 손을 잡은 것은, 어느 틈에 활을 등에 맨 흑주 녀석이 창문으로 뛰어내림과 동시에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대교!」

쏴아아~

대교의 검기가 눈길을 가르며 날아 흑주가 타려고 했던 오토바이에 명중했다. 흑주는 순간적으로 놀라는 것 같았지만, 곧 지체없이 그 옆의 골목으 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으악!

저 녀석! 그 틈에 또 총을 쏘다니… 윽! 뭐야!

흔한 말로 등뒤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다. 엄청난 속도로 달아나면서도 모퉁이를 돌기 직전에는 권총을 든 팔만 뒤로 돌려 총격을 가해 오는데, 이 게 조준사만큼이나 너무나 정확했다.

에이 쒸! 흑주 인마야! 반가운 재회의 인사는 바라지도 않았다지만, 이건 좀 심한거 아냐?

정확하게 가해오는 총격을 피하다보니 공공보법으로 추격하는데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어째 대교의 인내심 스위치가 꺼지는 것 같았다.

「적당한 공격으로 발목을 잡는 것이……………」

「자, 잠깐!」

대교의 공격 기운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흑주의 움직임이 바뀌고 있었다. 급브레이크를 잡은 듯 몸을 뒤를 젖히며 주르르 눈길을 미끄러지던 흑 주는 한 건물의 벽을 딛고 솟구쳐 올랐다.

오~ 분명 특정 경공이 아닌데도 엄청 가볍고 날렵한・・・ 마치 야생 짐승과 같은 몸놀림일세?

우리는 경공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낡은 아파트쯤 되는 것 같은 건물 위의 흑주를 올려다보았다. 흑주는 몸을 바닥까지 낮추고 경계하는 들짐승 같 은 자세로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흑주의 손이 움직여 다시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그만 둬! 흑주!”

순간, 총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작게 흔들렸다. 칠흑 갈은 머리카락 사이로 이제야 확연히 드러난 흑주의 신비로운 에메랄드 빛 눈동자 가 우리를 응시하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