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35화 : 웨인가의 비극. (2)
2. 웨인가의 비극. (2)
천음마군의 인상이 대뜸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비죽이 웃으며 이를 악물었을 뿐, 더 말로 응수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스윽 몸을 낮추며 극도로 긴장된 임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천음마군의 가슴 한복판의 옷자락이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고, 그 안의 피부까지 몇 줄기 상처가 있었다. 싸움이 중단되기 전에 이미 가볍게(?) 당했었군. 한방 먹은 데다 저런 도발까지 해오는데도, 발끈하기에 앞서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그만큼 상대의 강함을 실감하고 있다는 얘긴가? 으음. 지나 역시 여유는 잠깐이었고, 어느 사이 천음마군 못지않게 신중하면서도 격렬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어. 이거, 이거, 너무 심상치 않은데? 자칫하면 말릴 틈도 없이 심각한 사태가 될 분위기야!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고, 정글도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싸움을 막으러 달려갈 수는 없었다. 지나가 달빛을 받아 반칙적으로 변신한 것도 아니어서, 끼어들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제기. 처음부터 대결을 허락하지 말걸 그랬나? 생사결 운운하는 생각을 한 건 그냥 재미였고, 진짜 저렇게 둘의 전투력이 비슷해서 팽팽한 생사결이 될지는 몰랐는데…웃!?
번쩍~!
눈부신 섬광과 함께 격돌은 아직 아니고, 뭐냐, 또, 이 조명(?)은?
때마침 또(!) 생사결을 방해한 빛의 원천은 리치몬드였다. 리치몬드가, 이제 다시 자신의 소유로 굳어진 바이킹 해골들을 회수하기 위해서, 만능 수납 망토를 작동한 모양이었다. 싸움터였던 공간 여기저기에 서있던 바이킹 해적들이 일제히 리치몬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천음마군과 지나 주변에 서있던 바이킹들은 둘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고 있기도 했다. 다소 벌쭘하게 서있던 두 사람 중에서 지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흥~! 두 번이나 운이 좋았군요. 하지만 더 이상은 봐주지 않겠어요!”
“무슨 헛소리냐, 늑대 인간! 네놈이야말로, 또 싸움 도중에 눈을 감아버리면, 영원히 눈뜨게 되지 못할 거다!”
음? 저 야수남과 야수녀, 서로 상대가 갑작스런 빛에 시야가 나빠지는 순간을 노리지 않으려다가 싸움이 멈췄었던 건가? 거참. 기본 이미지에 비해서 엄청 신사, 숙녀적으로 싸우고 있었네? 나 같으면 상대의 빈틈을 얼씨구나 노렸을, 아, 아니, 나도 뭐, 꼭 그런 놈은 아닌데 무심결에 진심을, 크흠. 암튼!
“저기, 천음마군!”
내가 결국 끼어들기로 한 것은, 아무래도 천음마군이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놈’이 아니야. 안 그래, 지나 양?”
둘은 동시에 흠칫 몸을 굳혔고, 천음마군은 ‘그럴 리가?”하는 눈으로 주변의 다른 웨어 울프들과 눈앞의 지나를 번갈아 살피기 시작했다. “그,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쫌.”
훗. 늑대 인간 모드의 겉모습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모양이군.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었고, 목소리도 늑대 특유의 목울림이 섞여서
헷갈리지. 하지만 잘 들어보면 소프라노(?) 음색과 어투를 알 수 있었을 텐데, 그것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나보군.
“천음마군. 아까 이쪽으로 오면서 웨어 울프들 중에 한 명이 여자인거 못 봤었나? 지나 양이 바로 그 홍일점이라구.”
지나는 가타부타 스스로 밝히지 않고 변신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천음마군은 내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맥이 빠져 시무룩한 얼굴이 되고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 자신의 칼, 견신도 내려트렸다. 다음 순간, 지나의 신형이 스슥- 사라졌다.
“큭!”
한순간에 목을 잡혀버린 천음마군의 몸이 서서히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한 손만으로 천음마군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 지나가 비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크흥~ 어설픈 신사양반. 여자를 무시하려면, 이 여자를 이기고 나서 그래보시지.”
“크윽!”
천음마군은 이를 악물었고 칼을 쥔 팔에도 힘줄이 솟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그걸 휘두르지는 못했다.
“흥~!”
코웃음만을 남긴 지나가 천음마군의 목을 놓고 패액- 돌아섰다. 지나는 당당한 태도로 걸음을 옮겨 천음마군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고, 다른 웨어 울프들은 충실한 모습으로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일견, 철없이 까부는 놈팽이 하나를 간단히 손봐주고 가는 여자 대장의 당당한 비주얼이었다.
그에 비해 천음마군쪽은 여자한테 깨갱당한 멍멍이 망신으로 처연한 분위기인데, 이거, 위로를 해주어야하나?
-저기, 천음마군. 괜찮아?
‘우쒸!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라는 표정으로 노려보는군.
-미안. 먼저 알려줄 걸 그랬네. 하지만 나는 천음마군이 여자에게 이렇게 약한지는 몰랐어.
사실이었다. 천음마군이 여자와 싸우는 건 본 일이 없었지만, 왠지 여자에게 약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도 몰랐습니다, 천주.
응? 갑자기 날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며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바뀌네?
-생각해보니, 여자와 싸워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여자와는 이렇게 진심으로 싸울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천음마군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제 멀찍한 곳에 있는 지나쪽을 돌아보더니,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과적으로 수모를 안겨 준 상대에게 분노조차 잘 일어나지 않는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으으음. 난 솔직히 상대가 여자라도 ‘확실한 적’일 경우, 그리고 ‘종족이 다를 경우’에는 ‘그때그때 달라요’를 적용하기도 하는데, 천음마군은 나보다 중증의 ‘여성보호본능증후군 환자(?)였었던 건가? 그건 그럴 수도 있겠는데, 이렇게 되면 묘한 것이, 어째서 다들, 심지어 천음마군 자신조차도 이걸 모르고 있었던 건가(?) 하는 점이로군.
나는 이렇게 나도 알 수 없는, 은근 수수께끼가 생기면 늘 그렇듯, 대교를 돌아보았다. 예상 및 기대대로 대교는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그걸 묻고 들을 타이밍은 아니지 싶었다.
-비에이! 아니, 위생병! 너희들의 대장이 늑대인간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치료를 서둘러라!
그래. 난 왕땅이니, 수하의 사생활(?) 탐구에 앞서, 더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야하지.
늑대 인간에게 상처를 입게 되면, 보통 얼마 안가서, 같은 늑대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쌓인 오컬트 계열 데이터에 의하면,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한데,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보다 위험한 일반적 부작용은 ‘공수병 발작’이라고 했고, 우리의 적으로서 웨어 울프가 나타난 시점에서 ‘치료제 및 백신’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 치료제는 페트라가 비에이에게 챙겨 주는 것 같았고, 크루버가 천음마군은 늑대 인간 체질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천음마군이 메롱 될 일은 없겠지?
나는 비에이와 가야가 천음마군을 챙기러가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매우 휑~한 분위기가 되어버린 사막 지대를 새삼 돌아보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이 넓은 장소에 포진하여 존재감을 자랑하던 바이킹 해골들이 작디작은 소녀 마법사, 리치몬드의 망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그 과정을 다 보았음에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뭐, 천음마군을 신경 쓰느라, 조금 놓친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거야 어쨌든, 누가 나한테 정말 탐나는 아이템을 고르라고 한다면, 바이킹 해골들을 지배할 수 있는 미니어처 뿔고둥보다는, 바로 저 리치몬드의 ‘만능수납용(?) 망토’를 고르겠지. 훗~ 하지만 역시 포기하겠어. 저
망토 패션 역시 저 녀석, 리치몬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으니 말야.
나는 잠깐의 흑심을 버리고 피비에게 돌아섰다. 그녀는 리치몬드에게 나누크의 언어로 무슨 얘기인가를 듣고 있다가 나의 시선을 인식하고 나를 마주 보았다.
“음. 중요한 얘기였으면 더 하도록 해. 기다릴게.”
“아니, 충분히 들었어요. 더 기다려 줄 필요는 없어요.”
눈치가, 아무래도 나에 대한, 그리고 긍정적인 얘기였던 모양이지?
“좋아, 피비! 아까 나에게 뭔가 약속해 달라고 했지? 그래야만 협조하겠다고 말야.”
“아뇨.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오우, 역시 땡쓰야, 리치몬드.
“진유준. 나는 이제 당신이 파괴적인 복수의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니, 난 사실 어느 정도 그런 놈 맞는데, 라는 항변(?)은 생략.
“그리고 이건, 당신이 도널드의 죄악에 대해서 한 말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죠.”
“피비님!”
살리나였다. 그녀는 피비가 이제라도 다시 도널드 놈의 편에 서주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던 듯, 애타는 표정으로 피비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살리나를 향해 돌아서는 피비의 얼굴은 지극히 싸늘했다.
“피비님! 그때, 도널드님은 그때.”
“살리나! 더 이상 그 어떤 거짓말도 듣고 싶지 않아!”
피비 머리 위의 마법 다람쥐는 통역뿐 아니라, 피비의 분노까지 충실히 담아내고 있었고, 살리나는 절망하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널드! 당신도 지금 날 보고 있겠죠?”
흠. 살리나를 통해서 이쪽을 보고 있을 도널드 놈에게 직접 한소리 하려는 모양이군.
“도널드! 당신은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주제넘게 건드린 남자의 손에 죽게 하진 않겠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허튼 생각 말고, 얌전히 나를 기다려요!”
흐음. 이 얘긴, 어쨌거나 외부의 적인 나보다, 피비 자신이 직접 죽여주겠다는 선언이로군. 나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내가 가장
바라던 일이야.
피비는 일단 질러놓은 다음에, 내 허락을 구하는 시선을 보냈고, 나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쥐시키 아작권리’를 양보했다.
“아참, 그런데 피비.”
나도 슬쩍 살리나 카메라(?)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난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말야. 나와 대교, 그리고 산드라는 당신과 함께 들어갈 거야. 물론 당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 거고, 만약의 경우에는 다 같이 탈출할 수도 있지.”
나는 조금 전부터 가까이 와있는 산드라를 가리키며 웃었다.
“산드라는 사실, 꽤 먼 거리까지 워프 할 수 있어. 만약의 경우, 이 산이 통째로 무너져 버린다거나, 그런 일이 발생해도 문제없다는 얘기지.” 피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이것으로 도널드 놈에게 ‘동귀어진 자폭시도는 의미없음’을 알린 셈이었다.
“유준. 나도 가겠어.”
“어, 그럴래?”
리치몬드의 참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 같군. 아직 새벽이어서 산드라의 운송 가능 인원을 초과하진 않을 테고, 리치몬드 자신도 불사니까, 뭐.
“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필요 없어, 살리나! 당신은 여기서, 어떤 징벌을 받게 될지나 걱정하고 있어.”
어떻게든 또 나서보려던 살리나를 차가운 말로 찌끄러지게 한 피비가 먼저 성큼성큼 입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널드 놈은 그렇다 치고, 살리나는 쬐금 불쌍해 보였다.
잠시 후.
뱀프 무덤이자, 나누크의 성지 후보(?)였다는 곳의 내부 공간에 대한 나의 첫 감상은 ‘썰렁하네’였다. 내가 지금까지 다녀 본 동굴들이 단단한 암벽 위주였던 것에 비해서 이곳은 모래와 돌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재질이라는 것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는 그냥 단순 형태 동굴의 연속일 뿐이었던 것이다.
“리치몬드. 너도 이곳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건가?”
“응. 피비로부터 조금 듣긴 했는데, 직접 온 건 처음이야.”
“그랬군. 조금 들었다는 얘기 중에서 재미있는 건 없어?”
나보다 대교를 위해서 물은 건데, 리치몬드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재미있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허락 없이 들어 온 자들은 ‘나누크의 망령’을 만나서 반드시 죽게 된다고 하지.”
“호오. 너무 흔한 패턴이긴 해도, 기본 재미는 있겠다. 계속해봐.”
“미안하지만, 나도 더 자세히는 몰라. 아, 어쩌면 직접 겪어보게 될지도 모르겠네.”
“뭐?”
리치몬드는, 전방을 턱짓했고, 앞서 가고 있던 피비가 걸음을 멈추며 두 팔을 들어 ‘다 같이 멈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뭐야, 피비! 무슨 일이지?”
내가 물었지만, 피비는 대답 없이 잠깐 동안 전방의 어둠을 노려보다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깨어난 거 같아요! 도널드가 또 한심한 선택을 했나 봐요.”
쥐시키의 마지막 발악? ‘그래봤자’라는 생각이 앞서기는 하지만, 나도 느껴지기 시작하는 이 요상한 기운은 왠지 찜찜하군.
““그들’이라고? ‘나누크의 망령’이란 건가?”
“그건 도널드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고, 사실 그들은…………….”
피비의 말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소위 ‘나누크의 망령들이 몸소(?)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자들은 어딘가 나에게 매우 친숙한(?) 몸짓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좀비? 그런데, 화이트 판타지아에서 만났던 좀비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 하나같이 헐벗은 차림이고, 노출된 피부에 문신이 잔뜩 그려져 있어. 바로 피비와 같은 문신이!
“나누크 종족의 좀비?”
“그래요. 생전의 능력을 다 쓰지는 못해도, 외부 자극에 의해서 기본적인 공격 마법은 발동이 될 거예요.”
과연, 보통의 좀비가 아니고, 마법 좀비라 이거지?
“리치몬드! 일단 막아주세요!”
내가 나서기도 전에, 피비의 부탁을 받은 리치몬드의 망토가 살짝 펄럭였다. 특유의 비싸 보이는(?) 광채와 함께, 바이킹 해골 몇 명이 출동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슬쩍 옆으로 비켜 주어야했다.
우어오우우우~
비슷한 괴성, 괴음이 뒤섞이면서 좁은 동굴 안에 붉은 섬광과 금빛 광채가 혼란스럽게 번쩍번쩍 난리도 아니었다.
죽어서도 마법을 쓰는 마법 종족 좀비 떼거지와 바이킹 해골 부대의 맞짱이라! 아놔, 진짜! 요즘 미국, 갈수록 왜 이러니?
“고마워요, 리치몬드.”
“내가 직접 싸우는 것도 아닌데, 뭐.”
쿨한 리치몬드양과 달리, 피비는 초조한 기색으로 뭔가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도널드는 바보가 아니에요. 저들을 깨웠다고 해서 저와 당신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어요.”
그래. 피비급의 나누크들이 저렇게 몰려든다면 몰라도, 척 보기에 저들은 피비 수준으로 강하지는 않아. 내가 파악하고 있는 도널드 놈이라면,
이렇게 애매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보다, 나나 피비에게 매달려 목숨을 구걸하는 길을 택했을 거야. 그렇지 않고 이렇게 개겨보는 것은, 내가 모르는 변수가 또 있었다는 건가?
“제 실수예요. 도널드를 먼저 잡았어야 했는데, 도널드가 알아채고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빨리 서둘러야………….”
“자, 잠깐! 지금 뭐란거야? 지금 도널드 놈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어?”
“예. 미리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요.”
이런 젠장! 내가 너무 방심했나? 여기서 소령이과(?)한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네?
“그럼 넌 대체 어딜 가고 있었던 거고, 도널드 놈보다 서둘러야 하는 일은 뭐라는 거지?” 나는 인상을 긁으며 물을 수밖에 없었고, 피비는 먼 어딘가를 바라보는 태도로 대답했다. “저는, 호크, 나의 호크를 깨우러 가는 거였어요.”
뭐시라고라?
“나의 호크는 그때,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너무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기에, 오랜 부활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죽은 줄 알았던 자를 깨우러 가는 거였다고? 이거, 그야말로 깨는 얘길세.
“좋아, 피비! 어찌되었든 축하할 일이군.”
나는 일단 손을 들어 몇 번 짝짝 박수를 쳐 준 다음, 말을 이었다.
“그 축하해야 마땅한 ‘호크 웨인’의 부활을, 도널드 놈이 일찍 알아챘다면 이렇게 막으려드는 것이 당연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별 의미가 없잖아. 호크가 있건 없건 우리는 도널드 놈을 처단할 예정, 아, 가만? 혹시?”
나는 이제야 떠오른 어떤 가능성 때문에 살짝 헛웃음을 흘려야했다.
“핫. 지금 도널드 놈이 먼저 호크를 깨우러 간다는 거야? 호크 웨인은 또 동생의 말에 넘어가서, 동생을 보호하려고 할, 그런 남자고?”
피비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