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55화 : 레크로노미콘(Necronomicon). (1)
9. 레크로노미콘(Necronomicon). (1)
평화로운 종전 파티에 찾아 온 정체불명의 요괴 대군!
최소한 천 단위는 가볍게 넘길 듯한 떼거지로군. 아직도 거리가 멀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크기며 날갯짓 패턴이 일정하지 않은 거 같아. 하늘을 날아다는 것들의 연합군쯤 되는 걸까?
-몽몽. 하늘뿐이냐?
「현재까지 탐지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주인님.」
-러브 하우스쪽은?
「아직 어떤 적도 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교님을 비롯한 러브하우스 병력들 모두 아무런 징후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대교는 아직 술에 많이 취한 상태가 아니야. 다른 이들 중에도 산드라처럼 거의 술을 마시지 않고 분위기만 즐기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는데, 그들 모두가 감지하지 못했다면, 적들은 이쪽으로만 나타났다는 건가? 혹시, 러브하우스에는 호크가 있어서?
지금 쳐들어오는 놈들이 ‘매퍼 가문’이라면 그럴법했다. 호크의 웨인가와 매퍼가는 상당히 각별한 사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습격 자체가 애매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셈이었다. 놈들이 호크 앞에서 일을 벌이기 싫었다면, 아예 그가 돌아간 후에 쳐들어오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놈들이 호크가 돌아갈 때를 기다리지 못한 것은, 파티가 끝나면 우리 역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판단해서일까? 그렇다면 놈들의 목표는 나, 혹은 우리, 아니면… 인호 일행? 으으으으음. 아직은 뭐하나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몽몽! 대교에게는 알렸냐?
「그렇습니다. 아직 혼자만 알고 계시며, 주인님의 지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훗. 역시 나의 이심전심 짝지로군.
-좋아. 만약을 위해, 최소한의 병력으로만 대비하라고 해. 이쪽도 그럴 거고, 결국 기본 작전은 ‘파티를 지켜라’쯤 되려나?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럼 저는 이제부터 대교님 보조에 특화된 활동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당근이쥐.
언제나 믿음직한 몽몽을 대교쪽으로 보내자마자, 잠시 뒤로 빠졌던 요몽이 살짝 상기된 얼로 나섰다.
「우후! 정체불명의 적들이 습격해오는 상황에서 파티를 지켜라’ 작전이라니, 왠지 멋지기도 하고, 없어 보이기도하고, 그러네염.」
-그건 됐고, 넌 산드라 커플에게만 잘 말해둬. 언제든 대규모 수송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항상 게이트 주변에서 대기하라고 말야. 그들에게도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말고, 그리고………………
나는 요몽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몽몽의 아공간에서 정글도를 꺼내 어깨에 걸치자, 리치몬드도 따라서 일어섰다.
“리치몬드, 넌 나설 필요없어. 파티를 지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최자인 나의 몫이니 말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으나, 리치몬드는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갈 거야.”
응? 이 녀석, 불청객 떼거지를 노려보는 기색이 심상치 않은데? 간만의 평화로움을 방해받은 것에 빡돌은 건가?
“좋아, 리치몬드. 솔직히 나도 혼자가기 심심했는데, 함께 가주면 고맙지.”
나는 계속 웃으면서 말했고, 리치모드도 살짝은 마주 웃었지만, 녀석의 웃음기는 아주 잠시만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럼, 간다!”
짧은 알림 직후, 내 신형은 밤하늘로 쏘아졌다. 바람의 저택 주변에는 러브하우스쪽 보다도 광활한 숲이 펼쳐져 있었으며, 나는 그 숲의 나뭇가지를 수십 미터마다 한 번씩 디디며 날다시피 달렸다. 칠성 이상으로 펼치는 경공이라 조금 걱정했으나, 리치몬드는 전에 없이 빠른 비행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오우~ 예! 드뎌 리치몬드양도 참전이당!」
쯧. 요몽 녀석만 신이 났군. 나는 리치몬드를 싸움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어영부영 어긋나서 찜찜한데 말이지. 끄음. 솔직히, 저 녀석의 지원을 받게 되니까 무지 든든하긴 한데…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
-요몽! 적들의 움직임, 보이는 대로냐?
「아, 예! 3, 4킬로 정도 폭으로 넓게 펼쳐져서 날아오던 적들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하늘 요괴 떼거지들이 모여들고 있는 포인트는, 당연히도 내가 나아가고 있는 전방의 한 지점이었다.
「주, 주인님. 이거, 이거어~」
어느 정도 재미있어 하던 요몽이 빠르게 기가 죽어 질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백, 아니 수천이 될지도 모를 정체모호 요괴들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면서 몰려드는 기운과 날갯짓 소리는 나도 살짝 후달리기 시작할 정도였던 것이다.
「마, 막상 가까워지니까 장난이 아니, 이, 이거, 아무리 리치몬드양이 돕는다고 해도, 지, 진짜 이런 것들을 막을 수 있으시겠어요?」
요몽은 ‘파티 지키기’는 때려 치고 전부 출동시켜서 함께 싸워야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마구 떠오르긴 하는데, 젠장! 그래도 이제 와서 그러기는, 그노무 쫀심이………………
「주, 주인님!」
콰우웃!
머리위로 무서운 기세로 내려 꽂히는 무언가를 피해서 경공을 틀어야했다.
쿠우어~!
괴물의 목울림과 날갯짓의 풍압,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내 옆을 스쳐갔고, 곧이어 그것이 땅바닥에 화악! 처박혔다.
익룡? 아니, 그건 그래도 실종했던 생명체고, 저건 아무래도 딴 세상 괴물인거 같지?
하늘을 나는 공룡을 닮았으나 분명 더 이질적인 요괴가 땅바닥에서 퍼덕대다가 결국 늘어져버렸다. 내가 놈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날린 반격의 일도가 제대로 먹힌 것이었다.
「또, 또!」
쐐액! 퍽! 쐐액! 퍽!
연이어 날린 삼시전결에 요격된 비행 요괴들 두 마리도 앞에 놈과 같은 몰골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나는 등장하자마자 전사한(?) 하늘 요괴들 사이로 착지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리치몬드, 괜찮냐?”
“응. 난 괜찮아.”
리치몬드는 나와 달리 기습을 받지 않은 것 같았고, 내 부근에 내려서며 격추(?)된 하늘 요괴들을 스윽 살펴보았다.
키잇! 캑! 키이이~
약간 더 퍼덕대던 놈들이 추욱 늘어지는가 싶더니, 마치 땅에 녹듯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나는 놈들이 오컬트 괴물들답게 잘 안 죽어 줄까봐가 걱정이었는데, 일단은 다행인 셈이었다.
“역시 대단해, 유준. 이것들을 밤에 해치우기는 어려운데 간단하게 처리했군.”
응? 원래는 잘 안 죽는 놈들이었어? 흐음. 그럼, 나의 칼질에 소위 ‘영력’이 제대로 담겼었던 건가? 그리 빡돈 상항은 아니었는데도 말이지. 어디 그럼, 나의 영안도 잘 열려진 상태인건지까지 확인해 볼거나?
“그건 좋은데, 이놈들 죽는(?) 모습이 왠지 좀 묘하네. 사라지기전에 마치 두 개의 영혼으로 나뉘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기도 했달까?”
“잘 봤어. 이것들은 평범한 잡령들에 ‘마(魔)’가 침투해서 변했던 거야.”
오. 역시 마법계의 포털 사이트. 이놈들의 실체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리고 나의 소위 영안도 잘 열려져 있는거 같네. 혹시나 해서 이마의 ‘차크라’를 살짝 연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왔는데, 차크라가 잘 개방되었나벼.
「저기요, 주인님. 첫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신 건 좋은데, 지금 너무 여유를 부리고 계시는 거 아닐까요?」
요몽이 걱정스럽게 나선 것은, 어느 사이 우리 주변의 상황이 매우 심각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리치몬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들어보았고, 그런 우리 주변의 나뭇가지마다 요물 열매(?)가 하나 가득한 상태였다.
이 많은 것들이 종류는 또 왜 이렇게 다양한 거냐. 가지에 매달린 박쥐형, 좀 전의 익룡형, 깃털이 덮인 조류형, 팔다리가 제대로 달린 인간형, 얼씨구~ 뱀에 날개 날린 거 같은 놈들도 있네. 지난번 ‘마계 콜로세움’에 등장했던, 각양각색 마족들의 ‘날짐승’버전인 셈인데, 이번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군.
나는 시선을 좀 더 올려서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의 무심한 달빛을 받으며 날고 있는 비행 요괴들은 아직도 숲에 내려앉은 놈들보다 몇 배로 많아 보였다. 대가리 숫자에서 마계 콜로세움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니임. 역시 지원 병력을 요청하시는 편이・・・・・・・┘
-얌마,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했는데 자꾸 초치지마.
「꾸움~ 이번에도 X고집 부리시는군요. 항상 그노무 쫀심 때문에 생고생 하시면서!」
-됐거든?
나는 요몽의 딴지를 무시하면서 몸을 조금 돌려 처음 달려가던 방향을 향해 섰다. 그쪽에서 매우 특별한 마력의 발산이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예상대로 유독 큰 나무의 가지위에 매퍼 가문 특유의 타오르는 듯이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놈이 하나 서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이십대 초중반, 신디와 조금 닮긴 했으나 훨씬 날카로운 인상, 그래도 굳이 분류하자면 미청년에 가깝기는 하고, 평범한
청바지에 캐주얼한 복장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년의 용모야. 그런데 저 녀석이 이 많은 비행 요괴들의 두목이란 말이지? 무엇보다 이 놈, 신디와 달리 상당히 사악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
“뭐냐? 부하들에게만 인사를 시키고, 넌 계속 X폼 잡고 있을 셈이냐?”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놈은 비죽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자인’, ‘자인 매퍼!”
자인 매퍼, 신디가 ‘성질 급한 오빠’라고 했던 놈이로군. 성격이 급한지 어쩐지는 둘째 치고, 음성에 기분 나쁜 울림이 섞여있는 것이 우선적으로 거슬리네.
“당신은 진유준, 맞지?”
“그래. 내가 진유준이 맞긴 한데, 도널드 놈 때문에 온 거라면, 이미 너무 늦은 거 아닐까? 더구나 최종적으로 도널드 놈을 잠재운 것은 내가
아니었고 말야.”
“아아~ 그래. 호크님으로부터 모든 얘기를 들었어. 사실, ‘월트’ 숙부님에게 도널드씨를 부탁한 것도 호크씨였으니, 우리는 헛걸음을 한 셈이었어.”
헛걸음을 했다는 말이 과거형이로군.
“그런데 우린 곧 알게 되었지. 우리 매퍼의 형제들에게는 웨인가와의 약속보다도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말이야.”
자인 매퍼는 고개를 들어 내 뒤쪽으로 멀찍이 보이는 바람의 저택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우린 언제고 한국이란 나라를 다시 찾아가서 한 인물을 확보할 계획이었어. 그런데 설마, 그가 스스로 이 미국땅을 찾아 올 줄이야!”
인호, 유인호를 말하는군. 인호의 원수들이 오히려 인호를 역으로 노리고 있었다는 건데, 이거, 이거어 소위 혹시나하고 생각해본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도 무지 안 좋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것 같아.
“신디,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내가 불쑥 신디에 대해서 묻자, 자인 매퍼는 흠칫 안색을 굳혔다.
“신디, 그녀는, 그 어리석은 소녀는 지금 벌을 받고 있지. 감시 대상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이번에도 드웨인 형을 속이려고 했으니까.”
제기, 역시 그랬군. 신디는 오래전부터 인호를 감시하란 명령을 받고 한국을 오가면서 인호 주변을 맴돌았었던 거야. 그러다가 그렇게 더욱 인호에게 빠져들었던 거고 말이지.
“이봐, 자인. 너희들이 예전에 ‘몽인 선사’를 해친 것도 그렇고, 그 후계자인 인호를 계속 감시해 왔던 것도, 그 무슨 이상한 책을 찾기 위해서라는 거지?”
“이상한 책?”
자인 매퍼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되더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이며 큭큭대며 얼마간을 웃은 끝에야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정말 웃기는군. 당신이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 이상한 책, 아니, 전세계 모든 어둠의 존재들이 탐내는 그 책을 정작 당신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젠장! 이 녀석의 지금 이 반응은 뭐야? 나에게 그 이상한 책에 대해서 얘기해 준 인호와 소희조차 그 책의 실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어. 그런데 이 녀석은, 내가 그 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고 있는 거잖아?
“이봐, 자인. 나도 ‘네크로노미콘정도는 알고 있어.”
그래.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 그건 나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수많은 공포 소설이나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그 방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책이지. 그건 사실 어떤 소설가가 상상해낸 픽션인데, 워낙 매력적인 공포 소재라서, 이게 진짜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었어. 그게 말하기도 좀 거시기 하지만, 인간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책이며, 온갖 고대의 악령이나 악마를 불러낼 수 있다는 그런 책이라고 했던가?
“그게 진짜 있다고 치자. 그런데 너희들이 찾는 것은, 그보다도 한술 더 뜨는, 그런 이상한 책이라지? 그딴 걸 찾아서 대체 뭘 하려는 거냐? 너희들이 전세계 오컬트계를 정복하고 싶기라도 한거야?”
“아아~ 알겠어. 당신은 정말 그 책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 같군.”
“그래. 난 아무 것도 모른다. 어디 아는 놈이 지껄여봐라. 대체 얼마나 재미있는 마계 만화책인지 말야.”
자인 놈은 내 말에 또 큭큭대고 웃었고, 나는 새삼 정글도를 고쳐 잡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곱게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준, 조심해. 놈은 비록 일부겠지만, 네크로노미콘의 힘을 가지고 있어.’
리치몬드의 충고는 나름 고마웠으나, 문제는 그걸 리치몬드가 텔레파시로 보내 왔다는 점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리치몬드는 어느 사이 망토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있었다.
골든 스켈레톤 모드? 예의 최종판 이상한 책은 고사하고, 네크로노미콘에서 일부의 힘을 얻은 놈을 상대로도, 리치몬드 본인까지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건가? 우쒸! 술김에 너무 대책 없이 나선 거 아닌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