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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16화 : KKK(Ku Klux Klan)


6. KKK(Ku Klux Klan)

캔들 리의 자택은 보스턴에서 약간 떨어진 해변 마을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우신이 저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리버티 호텔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캔들 리를 태운 차는 눈길에서 안전운전을 하느라 천천히 오고 있어서 우리는 그보다 먼저 리버티 호텔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흑주는 내가 부르는데도 씹고 지 혼자 어디론가 가버린 후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아직 긴밀한 협력 플레이는 무리니까 우린 우리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나는 병원에서부터 몰고 온 차를 호텔 앞에 세우고 몽드폰을 들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암살이 시도 될 장소가 새벽처럼 리버티 호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거죠?”

사영에게 묻자, 캔들 리의 차에 동승 중인 사영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켄들 리의 집 주변에서 얼마간 느껴지던 수상한 기운이. 우리가 집밖으로 나왔을 때 오히려 곧바로 사라졌었다네. 나와 은사마군의 움직임을 간 파하고 즉시 철수할 정도면, 일단 상당히 수준 높은 살수라고 봐야 할 거야. …음, 서양이니까 킬러라고 칭하는 편이 더 어울리려나?”

“그야 뭐…….”

“어쨌든 내가 적 킬러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십중팔구, 이미 한 번 저격 사건이 있었던 장소를 다시 택할 거야.”

“흐음. 계속 이쪽의 허를 찌른다는 개념이로군요.”

“그래. 그리고 일류 킬러라면 보통 좀 더 신중하게 목표물을 파악하고 기회를 노리는 법이지만 드물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네. 경계가 심해진 시점에서 굳이 가까이 접근해 왔었던 걸로 보아 이번 킬러는 반대인 경우, 즉 계획수립과 행동이 신속한 타입인 것 같아.”

과연 사영. 역시 이 양반을 보낸 것이 정답이었던 거 같군.

“아니면………….”

응?

“굳이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서둘러야 할… 이유….? 아, 그렇구나. 거액에 (아마도) 고용된 킬러라면 다른 킬러, 즉 흑주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거야.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먼 저 목표물을 해치우려고 서두르는… 어, 아니지? 또 하나의 방법이 있잖아? 그건 바로 경쟁자인 흑주를 먼저 제거하는 것!

“몽몽. 흑주의 현재 위치는?”

-코드명 캔들 리가 탑승한 차량의 예상 이동로에 속하는 지점의 한 건물 위로 확인되었습니다.

흑주 녀석, 자신을 드러내어 적을 유인하려고 하는 거구나. 녀석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그쪽은 흑주를 믿고 맡기자. 우리는 예정대로 이쪽을 대비하는 편이. 으음. 근데 뭐지…………? 내가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이 자꾸 든단 말야…………?

나는 왠지 찜찜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하며 차에서 내렸다. 몽몽이 지금 막 캔들 리의 차가 육안으로도 보일 거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었 다.

“몽몽.”

-아직 저의 스캔에 잡힌 움직임은 없습니다.

“어사조 배치는?”

-주인님의 의도에 부합되는 위치에 효율적으로 배치, 대가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으음. 이제 만약 적 킬러가 이쪽을 저격해 올 경우에는 곧바로 위치를 파악해서 잡으면 되고, 놈이 흑주 쪽으로 갔을 경우에는 흑주가 알아서 할 테 고…….

캔들 리의 차가 나의 십여 미터 정도 앞에 세워지는 것을 보며 걸음을 떼려는 순간, 몽몽의 보고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조금 전, 흑주님이 공격받기 시작했습니다. 부상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쳇, 그쪽이었군. 그렇다면 이쪽은 일단 안심을 해도 될… 아!

그게 아냐! 에스는 분명히 ‘놈들’이라고 했었어!

ᅳ주인님!

“사영!”

나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사영은 막 차에서 내린 동년배의 남자를 잡아 누르고 있었다. 다음 순간!

칵!칵!칵!칵!

요란한 타격음이 쏟아지며 차와 차 주변에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이미 방탄차를 엄폐물로 삼고 있는 셈인 캔들 리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다. “자룡대주! 새벽의 그 건물!”

난 어사조를 저격수가 나타난 곳으로 출동시키며 잠시 망설였다.

나와 대교도 함께 가서 잡아……………? 아니야. 아직도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아. 적이, 아니 적들이 비록 서둘렀다고는 해도, 그 전까지는 계속 암 중에 이쪽을 관찰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거야.

당연히 흑주가 일으킨 새벽의 저격소동 때, 거기에 즉각 반응하여 움직인 나와 대교, 그리고 어사조 병력들까지 목격했겠지. 이어 사영과 은사마군 이라는 동종의 특급 전문가들이 캔들 리 경호로 배치되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 정도 저격만으로 일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까………?

“잠깐! 당신들 어디서 그만둬요!”

호텔 안에서 들려온 천우신의 외침 소리였다. 호텔의 로비 안쪽 어디선가로부터 우르르 나타난 기자들이 천우신의 만류를 무시하고 몰려나오기 시 작했다. 저마다 들고 있는 카메라며 마이크로 자신들의 신분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다른 걸… 가지고 있는 놈도 섞여 있군.

나와 대교는 몽몽이 스캔으로 알려준, 독침 같은 것을 소지한 자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놈은 딱히 특징을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 한 인상의 백인남자였으며, 다른 기자들과 달리 조금 느린 걸음으로 뒤쳐져 다가오고 있었다.

…분석 결과, 미세한 침 형태로 고착된 특수 화학물질은 인체에 침투 시 즉각 용해되며, 10초 이내에 성인 남성의 급성 심장마비 및 그에 따른 합병 증세를 보이며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너, 이 새끼…………!

나는 등 뒤의 정글도를 집째 풀어 들었고, 놈은 내 살기를 느꼈는지 흠칫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 기자들이 우리 앞을 지나쳐 가더니 정신없이 짖는 개들처럼 캔들 리에게 질문을 쏟아 붇기 시작했을 때도 독침 킬러 놈은 움직이지 못 하고 있었다.

독침 따위를 쓰는 놈이라도 명색이 프로 킬러라 이거군.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 벗어날까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게 보여. 하지 만・・・……….

“도망쳐.”

내가 낮게 말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은 것 갈았다.

“10초 준다. 그 안에 내 시야에서 벗어나면 보내 준다.”

내 발이 채 끝나기도 전에 놈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게 집어 던졌다. 그뿐 아니었다.

핏-!

내게 던져진 카메라를 상체를 틀어 피하는 순간, 독침은 하체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물론 독침은 내 정글도의 집에 박혀 버렸을 뿐이었다.

놈은 자기 공격의 성패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려 호텔 안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럭저럭 현명한 선택이로군. 하지만…………….

나는 대교의 손을 잡고 산책이라도 하듯 걸음을 옮기며 놈에게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г8,7,6……………..]

생전 처음 전음을 들었는지. 놈의 발걸음이 어지러워지더니 지나던 호텔 직원과 부딪치기까지 했다.

г5, 4…………….]

카운터는 계속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에 두려움이 차오르고 있었다.

“으익!”

“꺄악~”

놈이 최후로 선택한 저항책은 자신과 부딪쳤던 호텔 직원을 잡아 인질로 삼는 것이었다.

[0.]

피잇~

내 손을 떠난 독침(놈의 것이었던)이 정확히 놈의 이마 한 가운데에 틀어 박혔다.

「…마지막으로 알아둬. 적엽비화(適葉飛花)라는 거다.」

잠시 후.

무명의(나에게는) 킬러는 갑자기 호텔 직원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뜬금없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진 남자라는 오명을(?) 쓴 채 들것에 실려 나가 고 있었다.

나는 캔들 리가 기자들로부터 벗어나고 나면 올라올 코스를 미리 걸으며 계속 안전을 체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우신의 거처 겸 사무 실까지 도착했다.

-… 현재의 위치로부터 저의 스캔 가능 범위의 전역에 어떤 위험요소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체크했으니 일단 안심인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몽드폰을 작동시키며 창문을 통해 건너편 건물 쪽을 돌아보았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 현상이 눈에 띄지 않았다.

“자룡대주. 그쪽은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천주. 도주로는 모두 차단했지만 예상보다 저항이 거세어… 아, 전황마군(戰徭魔君)! 생포해야 하니 그런 병기는……….”

“됐어 자룡대주. 우리 쪽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이 처리해.”

“아, 북명!”

명령 전달 후, 채 5초가 지나기도 전이었다.

꽈릉~!

목직한 폭음과 함께 두 번째 킬러이자 저격수가 있었던’ 모양인 건물의 옆구리에서 화려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건너편 건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 객실 안의 내게까지 직접 느껴질 정도의 폭발이었다.

“저기, 그래도 너무 요란한 건 좀…….”

“걱정치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천주. 미처 보고 드리지 못했지만, 이런 일의 뒤처리에는 저보다 더 뛰어난… 저희 자룡대의 부대주 ‘페트라’가 합류 했습니다.”

페트라…………?

오호~ 내가 병원 다녀온 사이에 그 중국계 인도 아가씨까지 온 모양이네? 전투 헬기 용병단의 소대장 ‘터너’는 페트라를… ‘뒷 세계의 악마 같은 중계인’이라고 표현했었지. 아마?

그런 패트라와 자룡대주 콤비의 사고 수습과 언론 플레이 능력을 생각하면 안심해도 될 것 같군. 예를 들어, 설사 저 시내 한 복판의 건물이 미사일 폭격을 맞고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하더라도… ‘이건 종종 일어 날 법한 일로 여겨진 것 같기도 한 일상적 사고로 추정된다고 다들 말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어머니께서 가르쳐 준 듯싶은…’ 식으로 얼버무리고 덮어버리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좋아, 수고.”

이곳 보스턴은 엄청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나 진유준이라는 악마가 물러가기 전에는 약간(?) 위험한 도시가 될지는 모르 겠군.

“몽몽. 흑주 쪽은?”

-구체적인 전투 과정은 파악되지 않았으나, 이미 종료되어 흑주님은 현재 이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훗~! 역시 흑주로군.

근데… 흐으음. 이 정도까지 정리가 되었는데 말이지, 그런데도 왜 난 왜 아직도 아주 말끔한 기분이 되지 못하는 걸까………? 난 조금 아까… 호 텔 앞에서 에스의 말을 떠올리고 ‘적 킬러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었어.

그럼에도 찜찜함이 남아 있다는 건・・・ 어, 가만? 그러고 보니…마지막・・・말? 나는 무의식중에 에스에게서 ‘마지막’이란 느낌을 받았던 건가? “몽몽, 병원의 에스는?”

-아직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행이지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군. 아직 나를 완전히 믿고 흑주를 맡겨도 되는지를 확신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야. 하지만 역시… 그 양반은 결국 흑주가 없을 때 뭔가 사고를 칠 생각인 것 같아.

다시 생각해보면 오늘 처음 만난 우리 앞에서 자신의 인생역정을 시시콜콜 털어놓았던 것부터가 이상했던 거야.

「조담놈!」

분명히 조금 전 옆 객실에 들어갔는데… 대답이 없네? 아무래도 아까 병원 육상에서 대기 중이던 녀석을 까먹고 우리끼리 그냥 차 몰고 와서 삐쳤 나 보다.

「어이, 조씨.」

…흠.

「파란해골~13~호~ 납작코가 되었네~!」

「무슨 헛소리냐!」

「그냥, 그런 노래가 있어. 여하튼 너 두고 출발했던 건 미안해. 하지만 너도 그렇지, 그럼 얼른 따라와서 차에 타면 됐잖아. 뭐하러 혼자 뛰어 오 냐?」

「… 닥쳐! 난 네놈의 수하도, 무엇도 아니야! 착각하지 마라! 난 오리지널, 네놈이 내공을 되찾을 때를 기다리고, 참아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확실히 삐쳤군.

「뭐 그거야 알지만, 기왕 서로 잘 지내고 있는 참이니……………」

「난 네놈과 잘 지낼 생각 없어.」

「에이~ 그러지 말고 내 부탁 하나 들어주라. 응?」

「뻔뻔한 것 하나는 인정해줘야겠군.」

「훗. 그럴지도 모르지만. 너도 어쨌든 흥미를 가질 만한 일일걸? 흑주의 사부를 감시하는 일이니까 말야.」

「흑주……? 그 이상한 눈의 여자 살수 말인가? 그 사부라면…………」

「심무도(心武道)는 너도 알겠지? 그 고대 무예의 전인에다 인법의 고수야. 지금 너 말고는 그 남자를 마크할 수 있을 만한 고수가 없어서 그래.」 이 정도만 해도 넘어 올 것 같기는 하지만. 옵션을 하나 더 붙여줘 볼까?

「아, 그리고 자룡대주가 너 쓸 휴대폰 사왔다더라. 가기 전에 그거 받아가.

조담놈에게는 닥터 제이가 옛날에 줬던 휴대폰이 있었는데, 지난번에 우리 비행기로 뛰어들 때 잃어 버렸다고 했었다.

「휴대폰 따위로 날・・・…………」

「인마, 무지 비싼 최신형이래. 그리고 자룡대주가 자기 사진으로 배경 화면 만들어 놨대더라.」

이건 뻥이지만・・・・・・

「…좋아. 이번만은 부탁을 들어주지.」

오호라, 빙고.

「단, 나중에 내가 하는 요구 하나를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

칫. 막판에 만만치 않게 나오는데?

「그냥 휴대폰으로 때우… 아, 알았다. 뭔데?」

「…나중에 얘기하겠다.

「야. 뭔지 들어봐야 나도……………」

―주인님 . 코드명 조담놈은 이미 자리를 떠났습니다.

쳇. 저 자식, 지가 더 뻔뻔하고 막무가내 구만.

난 잠시 조담놈이 내세울 요구 사항이 무엇일지를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뭐, 그건 나중 들어보면 알 일이니 지금은 신경 끄자.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면 ‘난 된다고 한 적 없다’고 생까면 되는 거지, 암.

“몽몽, 켄들 리 쪽은?”

ᅳ…조금 전 폭발이 일어난 쪽으로 기자들이 몰려갔기에 현재 위치로 이동 중입니다. 또한, 흑주님도 호텔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흑주 녀석, 아주 동에 번쩍 서에 슬그머니로군. 캔들 리는 과연 이렇게 사방에서 자신을 수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음……….! 드디어 납시는군. 천우신과 사영이 먼저 방안으로 들어섰고, 이어 문제의 캔들 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동안 하도 대단한 칭찬을 많이 들어온 데다, 과거의 꽃훈남 해동선생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지극히 보통 사람 같은 첫인상에 약간의 실망감을 느낄 정도였다.

“당신이 진유준씨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실은 ‘무림 진씨 1대입니다’ 같은 소리를 덧붙일 생각이었지만 참았다. 섣불리 장난칠 군번(?)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린 그렇게 의례적인 악수와 인사말을 나누고는 곧바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겉으로 드러난 용모는… 우리나라의 배우 노주현 씨처럼 세련된 멋쟁이 신사 스타일에 불과했지만(?) 왠지 속에 더 큰 것을 품고 있는 인물 같다는 이 느낌도 선입견에서 온 것일까……?

“…진유준 씨께서 고맙게도 일류 경호원들과 방탄차까지 보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근데 왜…………? 그리고 당신은 대체 누구?’ 라는 말없는 질문들이 뒤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뭐가 되었든, 감사는 저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 할 겁니다, 바로 당신의 딸 펄 리, 아명 흑주와 당신의 의동생 ‘신’…두 사람에게 말입니다.

그런 얘기가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간단하게 ‘별말씀을…….’ 정도로만 답례하고 구체적인 대답은 생략했다. 이미 천우신이 자신의 인맥으로 오게 된 ‘알려지지 않은 거물’ 정도로 소개했다고 했으니, 그 이상 다른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몇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일단, 오늘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짐작도, 예측도 못하셨던 일이었습니까?”

“정가에 뛰어든 이상, 어떤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벌써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전 아직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협 이 될 만한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캔들 리.”

천우신이었다. 캔들 리 옆에 앉아 있던 천우신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께선 항상 너무 자신을 낮게 보시는 것이 탈입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긍정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가치 를 좀더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늘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천우신의 말에 캔들리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자네야말로 날 너무 과대평가해서 탈인 건 아는가? 난 그저 내가 가진 생각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잔소리꾼일 뿐이 야.”

으음. 나도 조담놈에게 잔소리꾼이란 소리를 듣긴 했지. 물론 잔소리 분야와 스케일이 좀(?) 다르겠지만.. 음? 아. 이런, 지금 뻘 생각할 때가 아니 지.

“…그렇다면, 내가 이 친구에게 들은 몇 명의 혐의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천우신을 턱짓하며 묻자, 캔들 리는 새삼 신중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천우신이 내게도 말해 주었었던 인물들은 총 세 명으로서 현재 몽몽도 탐문 중이기는 했다.

…하지만, 천우신이 ‘단순 소문이었을 뿐, 실제 움직임을 보고 받지는 못했다’고 한 것처럼 몽몽도 아직 그들에게서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 어.

수하들이 날려버린(?) 킬러는 그렇다 치고, 내가 상대했던 독침 킬러는 살려두고 정보를 캐내 볼 걸 그랬나…………? 쯧. 난 독같은 거 쓰는 놈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스팀 받아 버리곤 해서 문제야.

“음. 역시 모르겠군요. 사실은 오히려 난 그 사람들을 꽤 좋게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특히 ‘미스터 잭’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상당히 지적이고 유머감각도 뛰어난 남자인데다. 무엇보다 절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양반이 말하는 ‘미스터 잭’은 다른 두 명의 용의자가 정가에 속하는 인물인 것과 달리, 우리 계열… 즉 마피아 보스다.

조폭 두목치고는 지적이고 유머감각이 있다는 게 용의자에서 제외 할 근거가 되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당사자의 의견이니까 반영하 기로 하자.

“실은, 전 그보다 다른 인물이 더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응?

나는 물론이고, 아니 천우신이 더 놀라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으음.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은데…….”

…우연히 들른 대형 쇼핑센터에서… 어쩐지 낯익은 백인 남자 한 명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결국 생각이 나길. 옛날에 만난 적이 있는 KKK단 간부였다…고라고라~?

“맙소사! 그런 중요한 얘길 왜 제게 하지 않은 겁니까!”

천우신이 발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진정하게 진정해!”

조금 당황한 기색이 된 캔들 리가 천우신을 달래는(?) 사이, 우리 쪽에서는 대교가 날 돌아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손을 잡아왔다.

「저어. 그런 웃음……………」

음? 내가, 웃고 있었나?

「왠지 무서워요.」

「아. 미안. 그게.. 하, 핫~! 내가 너무 노골적이었던 모양이지?」

그래. 살아오면서 직접 마주칠 일이 없어서 그간 잊고는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가 가장 끔찍이 싫어하던 개새끼들이 바로 그것들이었지.

니들, 제발 제발 이번 일과 관계 좀 있어줘라. 응?

-코드명 KKK.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라 칭해진 미국의 비밀 테러 조직으로서, 백인 우월주의를 근본으로, 인종차별을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위험단체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1866년 최초 조직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870년대 이르러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1915 년 재창단되어 근래에 이른 것으로…………….

몽몽은 계속해서 놈들에 대한 이런저런 데이터를 길게도 늘어놓았지만, 내가 아는 그놈들의 정체는 좀더 심플했다.

흰 가운과 흰 두건을 뒤집어쓰고 두건에 두 눈깔만 보이도록 구멍을 뚫어 놓은 행색에 자신들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색인종들을 짐승처 럼 여기며 괴롭히고 참살하는 또라이들…………!

지들의 하얀 피부색이 신에게 선택받은 증거라고 생각 하여 유색인종을 죽여도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무뇌 쓰레기들이지. 살아오 면서 한 번 직접 만나본 적도 없었으나 단지 그에 관한 얘기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내가 ‘죽여 버리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던 놈들이 바로……

-주인님.

「유준 오라버니.」

응?

“……그래서 자네에게도 굳이 알리지는 않았던 걸세.”

“하아~ 캔들 리. 아무리 그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몽몽과 대교 덕분에 살짝 광분 초기 모드였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으면, 두 사람의 대화를 놓칠 뻔했군.

“그런 자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집요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여하간 저에게는 알려주셨어야죠.”

천성이 발랄한(?) 천우신으로서는 드물게 계속 인상을 긁은 채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그가 누군지 알려주십시오. 물론 제가 따로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요.”

천우신의 단호한 말에도 캔들 리는 잠시 더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테네시, ‘테네시 포레스트’ 라고 하네. 그가 흑인 소녀 폭행 치사로 체포되어 재판정에 서게 되었을 당시에는 분명 그렇게 불렸었지. 하지만 당 시에도 가명임이 드러났고 본명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네. 그래서 몇 가지 죄목이 더 추가되게 도 했는데………….”

…이 양반, 에스 때와 마찬가지로 억울한 희생자를 위해서 증인으로 나섰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당시에도 한동안 KKK단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면・・・ 그때 이 양반을 암중에 지켜줬던 건・・・ 담연히 에스 아자씨겠지…?

나는 에스가 우리에게 이 얘기를 쏙 빼놓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에스는 이미 킬러들을 고용한 자가 누군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만약 에스가 흑주에게도 이 얘기를 하 지 않았을 경우…….

「몽몽. 지금 흑주 어딨지?」

ᅳ현 505호와 같은 라인의 503호입니다.

503호는 본래 아침까지 천우신의 사무실이었지만, 지금은 천우신이 여기로 옮기고 그곳은 사고현장이라는 경찰의 접근 금지 테이프로 폐쇄된 상 태이다.

“실례지만, 이 대화는 다음에 다시 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와 대교는 약간 의아해하는 듯한 캔들 리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총격 사건의 현장이라고는 해도 직접 범인이 침투해 온 것이 아니어서인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찰병력은 없었다.

“흑주.”

방에 들어서면서 부르자, 문 옆의 천장에서 스르르- 검은 그림자가 내려왔다.

“넌 여전히 천장에 짱박히는 걸 좋아하는구나. 큼. 그건 어쨌든, 뭐하나 묻……………”

“흑주, 아빠. 괜찮아?”

“어, 그럼. 말짱하시지.”

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으로 말없이 티 안내고 기뻐하고 있는 걸, 내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어쩐지 그런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흑주. 너 말야, 너희 아버지 캔들 리를 노리고 있는 놈이 누군지 알고 있니? 킬러들을 고용한 자 말이야.”

“응. 나쁜 놈.”

“…아니, 그 나쁜 놈이 누군지 아느냐고.”

고개를 젓는 흑주. 역시 우려했던 대로였다.

어쩐다…………? 그렇다고 백 프로 확실한 것도 아닌데 흑주에게 이 얘기를 꼭… 으음. 그래도 역시 일단은 해줘야 할 것 같지………?

“흑주. 아무래도 니 에스 아저씨가 사고를 칠 생각인 모양이다.”

흑주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가 병으로 죽기 전에 캔들 리를 노리는 나쁜 놈을 죽이러 갈 생각인 것 같다고!”

그제야 흑주의 눈동자가 일시에 확대되고 있었다.

“혼자? 흑주, 같이, 아니고?”

“그래. 네가 알면 분명 막을 테니까 혼자 몰래…….”

-주인님! 코드명 에스가 움직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뭐?」

-화장실에 들어감으로서 감시 카메라로부터 벗어난 후, 평균 이용시간이 지났으나 나오지 않았으며 방금 도착한 간호사가 화장실을 확인 중이나 응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조담놈은?」

-병실 밖의 공동 화장실을 이용 후 복귀 중이니 곧 상황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에스의 종적은 어떤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제기………! 나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흑주는 내가 몽몽의 보고를 받는 사이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에, 나도 대교의 손을 더욱 굳게 잡으며 뛰쳐나가야 했다.

「흑주! 진정해, 인마!」

거칠게 오토바이를 모는 흑주의 뒷모습이 불안해 보여서 전음을 날려 보았지만, 흑주는 아랑곳없이 눈길을 마구 질주해 갔다.

우리가 탄 차도 그 뒤를 잘도 따라붙어서 거의 동시에 병원 앞 까지 갈 수 있었던 건, 운전자가 ‘최강 폭주족'(?) 은사마군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다.

“흑주…….”

나는 에스가 입원해 있던 병실로 들어서며 흑주를 불렀지만, 녀석은 텅 빈 병실의 침대를 보며 그저 망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젠장! 조담놈! 너 대체 뭐한 거야?”

난 몽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녀석으로부터는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어디야? 추적 중인 거야?”

“……그래.”

“뭐? 근데 왜 말을 안 해?”

“실수를 인정한다. 방심했다.”

“에이 쒸~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 아저씨 찾긴 한 거야?”

“……그래. 하지만… 모르겠다.”

“너, 지금 나하고 장난하냐?”

“…방심했기 때문만이 아니었어. 내 모든 오감을 총동원해서 추적하고, 분명히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 놓치고…! 벌써 몇 번째인지… 빌어먹을! 설마 이 나를 이렇게까지 농락 할 수 있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입술을 깨물며 분해한다는 느낌…………! 그리고 전화를 놈이 먼저 끊어 버린다.

“몽몽.”

-코드명 조담놈의 위치는 휴대폰 위치 추적만으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일관성 없는 이동루트로는 최종 목적지를 추정하기 어 렵습니다.

“그, 테네… 포테이토인지 감자인지 하는 놈을 직접 찾는 건?”

-테네시 포레스트입니다, 주인님. 해당 인물은 당시 재판을 받고 수감된 후 34일 만에 탈옥했으며, 이후의 행적은 공식적인 데이터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장 요몽을 풀어주고 함께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

쳇! 괜히 요몽 문제를 완전히 일임한다고 했나…………? 이제 와 말 바꾸기는 좀………

-주인님. 소령님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응? 아이고, 이런 바보팅이 진유준! 특급 정보 전문 조직, 21 세기 천이단(天耳團) GM을 잊고 있었다니!

“하이~ 유준오빠! 좋은 소식이 있어요오.”

소령이의 장난기 어린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다.

나는 소령이로부터 테네시란 작자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 들은 후, 곧바로 병원 안으로 돌아갔다.

“흑주님!”

병실 문을 열기도 전에 대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나갈 때만 해도 멍한 상태의 흑주를 대교가 감싸 달래주 는… 그럭저럭 훈훈한 모습이었는데 그 사이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진정하세요, 흑주님! 벌써 말씀 드렸듯, 흑주님과 에스님의 정보원들을 찾아내어 다그친다 해도 에스님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을 거예요. 에스님 은 그리 허술한 분이 아닐 테니 말이죠. 지금으로서는 곡주님, 아니 지하무림의 마군황을 믿고 기다리는 편이 현명합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병실 안에서 두 절정의 여() 고수들이 무지하게 살벌한 분위기로 대치중이었다. 순수 무공과 내력은 지금의 대교가 훨씬 위겠 지만 흑주의 잠재력과 현대 병기의 혼용에 의한 상승효과도 만만치만은 않아 보였다.

“야, 야~! 누가 와서 보면 어쩌려고 그래? 둘 다 총하고 칼 좀 치워라.”

쯧. 둘 다 내 말 씹고 꿈쩍도 않네. 가만 보면 여자들 싸움이 은근히 무섭단 말야?

“난 이제 너의 에스 아저씨 찾으러 갈 건데, 흑주 넌 계속 그러고 있을래?”

비로소 흑주의 총구와 단도가 움찔 하더니 먼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출, 아니 병출 중년 에스가 사라지고 난 후 6시간 정도가 지났을 즈음.

나와 대교, 흑주는 보스턴 근교에 있는 어떤 대저택의 부근에 도착해 있었다. 소령이가 알려줬던 건 테네시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아니었기에 여 기까지 찾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게 되었던 것이다.

“…니네들.”

내가 입을 열자 흑주와 대교가 동시에 날 돌아보았다.

“…아니, 뭐. 그냥 난 편하게 와서 좋았다구.”

내 말에도 흑주는 별 생각 없이 다시 고개를 저택 쪽으로 돌렸고, 대교는 이제야 다소 민망했는지 살짝 홍조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소령이가 처음 알려준 사람은 KKK단 소속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 으로 이 지역 KKK단을 체크하는 CIA(Central Inteligence Agency. 미국 중앙 정보국)요원이라는데… 사무실에서 졸고 있다가 난데없이 목에 칼을 들이대는 흑주 때문에 심장마비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

그가 알려 준 KKK단의 말단들은 흑주와 대교에게 번갈아가며 밟히며 협박과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한 놈이 여기를 불었는데 으음… 대교 녀석. 어째 아닌 듯하면서도 결국 은근히 흑주에게 진짜 질투를 느끼고 경쟁심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단 말야…………? 그럴 필요 없는데 녀석도 참… 으음, 그나저나.

실은, 정보를 제공한 자들도 이 저택이 ‘KKK단의 비밀 간부 테네시 포레스트의 저택’이란 건 ‘자기들 사이에서도 소문일 뿐이다’라는 단서를 달 았을 정도로, 결코 확실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저 멋진 저택이 자리하고 있는 지리적 위치가 먼저 그걸 알려 주고 있었다. 하아아~ 캔들 리도 참. 그동안 꿈자리가 사납지 않았는지 몰라. 과거의 원한을 잊지 못한 싸이코가 이렇게 자신의 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 덕에 살고 있었는데 말야.

몽몽의 검색에 따르면, 저 저택에 누군가 새로 이사를 온 시기는… LA폭동 때 입은 부상으로 오랜 투병과 재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캔들 리가 다 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여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참이라고 했다. 역시나 의심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몽몽.”

-예, 주인님. 코드명 조담놈과 에스는 여전히 추적과 회피를 거듭하며 불규칙한 이동을 계속하고 있으나, 후반 2시간 동안의 이동루트와 현재의 이동 방향을 분석한 결과 목적지가 전방의 저택일 가능성이 80% 이상입니다.

벌써 6시간이 넘게 이어진 추격전이라…………!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 원래 남아도는 게 체력인 조담놈은 상관없을지 몰라도, 중환자인 에스는… 끄 음~ 이거 이러다가 난 에스를 살리는 게 아니라 말려 죽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몽몽. 조담놈은 아직도 휴대폰 꺼놨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으으음. … 에이~ 나도 모르겠다.

새벽부터 다각도로 이모저모 이 사람 저 사람 신경을 쓰며 뺑이 쳐서 그런지 좀 피곤했다. 나는 결국 앉아 있던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옆으로 길게 누워 버렸다.

내공의 유무와는 별개로 균형감각은 변함이 없어서 그리 불편하지가 않았다. 내가 퍼져 누워버린 가지 옆 가지에는 대교가 비스듬히 우아한 자태 로 앉아 있었고, 그 앞의 가지에 흑주가 삐친 아이처럼 쪼그려 앉아 있다.

우리가 모여 앉아 있는 이 나무는 목표 저택으로부터 4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숲의 나무들 중 하나였으며 당연히 저택이나 주변의 어떤 방향에서도 눈에 뜨이지 않을 위치였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저택 주위의 가로등도 하나 둘 켜지고… 흐음. 근데 어째 저택 안은 계속 어둡네…………? 분명히 이까 도착하자마자 안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했었는데・・・ 어랏?

테네시의 저택만 있을 뿐, 근방에 다른 주택이 보이지 않는 외딴 언덕이다. 그런데도 두 대의 차가 아래쪽에서 나타나더니 이 곳으로 곧장 올라오 고 있었다.

저택 안의 주차장에 차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었으니 저건 외부의 손님인 것 같은데… 흐음. 차들이 대문 앞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 대문이 열리 는군.

이것 봐라? 차에서 마당으로 내려서는 자들의 분위기가 어째 심상치 않은데…? 테네시가 눈치 까고 경호를 늘리는 걸까? 아니면 오늘 암살 이 실패했다고 바로 다른 암살자들을 고용하는… 응? 설마?

내리자마자 집안으로 향하는 자들과 달리, 두 번째 차의 뒷자리에서 내린 두 명의 남녀만은 차 옆에 그대로 선 채 우리 쪽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 같 았다.

…아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우릴 보고 있어, 틀림없이!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대교와 흑주도 긴장하며 각자의 병기를 고쳐 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두 명의 남녀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우리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몽몽이 확대해주는 영상 속의 남녀 중 여자, 눈보다 창백한 피부의 백인 미녀가 선혈처럼 새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며 새액ᅳ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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