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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2화 : 대교를 찾아서


2 대교를 찾아서

뭔가 몸속의 익숙한 이 느낌은… 음. 몽몽이 내 몸을 치유하고 있군.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이 감촉은 부드럽고 따스한 이불.

나는 내가 어딘가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만을 확신하고 눈도 뜨지 않았다. 아직 너무나 피곤했다.

.

.

다시 언뜻 정신이 든 것은, 누군가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누군지 알겠군.

「주인님! 주인님! 제발 눈을 뜨세요! 제발!」

“…남의 발.”

「에?」

“뭐가 에야, 인마. 잠 좀 자자 잠 좀.”

「우와아~ 깨어나자마자 썰렁 개그! 주인님 완전 부활!」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역시 개그에 소질이 없다.

「통증은 어떠십니까, 주인님.」

“일단은 대충 괜찮은 거 같다, 몽몽.”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짜식~ 죄송맨에서 조금 발전했구나.”

나는 누운 채 전신을 조금씩 움직여 보고 난 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보았다. 조금 어지러운 감각이 있기는 했지만 약간 거슬릴 정도에 불과했다. 44……

“으음. 좀 허전하네.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말야.”

「…정밀 검사 보고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걱정스러운 기색의 몽몽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됐어. 천천히 해도 돼, 그런 건.”

「하, 하지만 주인님!」

“됐대두, 요몽.”

요몽은 물론이고 몽몽까지도 나의 시큰둥한 태도에 놀라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나한테 좀 놀랐다. 나도 내가 이런 상황에 이 정도로 덤덤한 기 분일 줄은 몰랐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이리 된 것을.

“…아침. 내 정글도!”

요몽이 뾰로롱 날아간 곳은 침대 머리맡의 작은 탁자였고, 그 곳에 나의 정글도가 얌전히 누워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즉시 손을 뻗어 녀석을 잡아들었다. 전에 없이 묵직한 무게감에 다소의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우선적으로 반가움이 앞섰다.

차암 주인님도 대단하세요. 의식을 잃고 바다 위를 표류하는 와중에서도 그 정글도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훗- 어찌 놓을 수가 있을까. 이번의 지옥 속이 아니라 하더라도,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전장을 나와 함께한 전우이며 이제는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이 녀석을 말이다.

“…일단 기본적인 상황보고 먼저 듣자.”

「예, 주인님. 주인님께선 약 51시간 32분 전, 천지파멸식 발동을 멈추고 추락하여 바다로 입수. 그 직후 대기 중이던 지하무림인들에 의해 본 선박 ‘흑해1호’로 이송되었습니다. 모셔지는 당시 주인님께서 내린 명령에 의해 본 흑해 1호는 중국으로 복귀하여 명령하신 해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내 명령…………? 음. 그러고 보니 비몽사몽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그런 명령을 내렸었던 것 같기도 하군. 하긴 무의식중에라도 그랬으니 이렇게 마음 놓고 쉴 수 있었겠지.

「보고 중에 죄송합니다만… 주인님.」

“응? 뭐냐, 몽몽.”

「…주인님의 경우, 생사현관(生死玄關)이 타동 된 신체이며 타고난 체질과 그 동안의 혹독한 수련으로 소위 차크라(chakra)라 불리는 비공인 에너 지 제어 포인트도 어느 정도는 활성화 된 상태였습니다. 주인님의 정신력 역시, 저의 데이터에 저장된 인류를 통틀어 최상급. 그러나… 그런 모든 조 건을 계산에 포함시킨다 해도 천지파멸식으로 파생된 행성단위 에너지의 지속적인 통제 가능성은 0%입니다. 그런데………………」

녀석, 인간적으로 말끝을 흐리는군. 이 녀석이 뭘 알고 싶어하는지는 알겠는데, 딱히 설명하기가 좀…….

“그냥, 빡 도니까 어찌되더라.”

응? 지금 살짝 진동? 움찔?

내 가슴 위에 핸드폰 형태로 놓여져 있는 몽몽 녀석 본체 반응도 이상했고, 입체 영상의 몽몽 군도 표정이 좀 미묘했다.

「이것이… ‘인간적인 감정’ 중의 하나인・・・ ‘경외감’이란 것 같습니다.」

“…새애끼 쑥스럽게시리.”

「맞아요! 정말 죽였어! 주인님 정말 짱! 킹왕짱!」

조용히 감정을 음미(?)하는 몽몽과 달리 요몽은 호들갑스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먼 바다에서 보는데 정말 죽였다구요! 해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섬 전체게 으릉! 우룽! 진동을 하며 지하로부터 땅을 뚫고 흑룡이 막 튀어나오 1…….

흐음. 초기 천지파멸식의 기운은 엘의 시각뿐 아니라 평균적으로 그런 형태로 보이는가 보군.

「도망치는 헬기를 쫓아서 백열화(化)된 상태의 주인님이 날아오르는데 으- 꺄아~ 멋져! 멋져!」

“야, 야! 오버하지 말고.”

그러나 요몽은 진정하지 못하고 꺅! 소리만을 연발하고 있었다.

“몽몽.”

몽몽을 부르자 녀석은 요몽을 진정시키는 대신 원거리 촬영해둔 당시의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으음. 내가 봐도 꽤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한데 이거 뭐, 내가 악마도 아니고… 훗! 그러고 보니 그땐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는 상태였군.

난 쓴웃음을 지으며 당시의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다. 새하얀 불꽃의 악마가 검은 정글도를 든 모습은 요몽이 호들갑을 떨 만큼 멋지다고 하기는 좀 그래도 확실히 이채롭기는 했다.

어? 이건・・・ 내가 봐도 정말 멋진… 걸? 내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와 날 찍어버린 저 어마어마한 빛……………! 인공위성에서 쏜 무슨 입자빔이라고 했 던가?

「중섬입자빔입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독립위성에서 발사되어 막지 못했습니다.」

“됐어, 죄송맨. 이제 내가 가장 궁금해 하는 거나 압축해서 보고해.”

「… 전원 무사. 이상입니다.

“훗! 좋아. 그 과정은 천천히 듣기로 하고, 일단 나가서 다들 얼굴부터 좀 봐야겠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들으셔야 할 보고가 또 잇습니다만……………」

“알았다, 죄송맨. 해봐.”

「그 전에 이루어진 주인님의 파괴 행동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중성입자빔의 강습과 이에 대응하는 주인님의 폭주에 의해 전장이었던 섬은 완 전 괴멸되었습니다.」

…..좀. 아니, 상당히 찔리는군. 아름다운 섬 말아먹기라… 이것도 무슨 전통인가?

본래 연옥도(煉獄島) 연옥서생(煉獄書生) 사부가 인근 바다에서 천지파멸식을 발동하는 바람에 그 영향으로 나중 가라앉아 버렸다는 것이 몽몽의 추정이었었다.

「또한, 주인님의 천지파멸식이 해당 해역의 해저 포인트가 포함된 조산대와 판에 미친 영향력이……………」

“몽몽, 결론은?”

「…언젠가 일본이라 칭해진 국가가 성립된 섬 지역이 붕괴됩니다.」

・・・뭐라?

“어, 언제? 그럼 우리나라는?”

「아직 정확한 계산이 어렵습니다만, 짧게는 수십 년 이내에 발생할 가능성도 70% 이상입니다. 주인님의 현 거주지가 포함된 반도지역은 기본적

으로 무사하나, 파장에 의한 피해 정도 파악에는 재조사 및 계산이 필요합니다.」

…맙소사. 나 결국 사고 쳤구나. 연옥서생 사부의 몇 배 따따따블 초대형 사고!

“대책! 그러니까, 일단 막는 방법. 그리고…결국 막지 못했을 때 최대한 피해를 줄일 방법 같은 거 좀 연구해 줘.”

솔직히 우리 재일 동포들 먼저 몰래 대피시키는 일이 가장 처음 떠오른다.

「이미 진행 중입니다. 조만간 종합하여 보고하겠습니다.」

“그려 수고.”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오며 명령을 덧붙였다.

“…일본수상 관저… 거기에 일단 기본적인 메시지는 보내줘.”

「어떤……………」

나는 잠시 생각해 본 후 선실을 나서며 말했다.

“미안해.”

선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조금 멀찍이에서 대기 중이던 은사마군(隱死魔君)과 은사도객(隱死島客)들이 바람같이 달려왔다.

「은사마군은 물론 소령, 미령님에게도 저희가 미리 주인님을 가장하여 대피 명령을 내려 두었었습니다.」

-잘했어, 몽몽. …이라고 전음으로 칭찬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은사마군. 이번에 고생 많았어.”

“화, 황공합니다!”

대답하며 몸을 숙이는 태도가 아무래도 전과 달랐다.

공손하기는 해도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쯧. 하긴. 이번에 그 황당한 광경을 봤으니 녀석들 눈에도 내가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으려나?

“음. 근데 말야. 내가 이번에 무리를 좀 했더니 당분간 무공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신경 좀 써줘.”

나는 솔직히 말해주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어 주인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요몽.”

나는 반문했다. 바로 옆 사람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식으로… 바로 비화곡 시절처럼.

「뭐가라니! 이젠 무공을 쓸 수 없으시잖아요! 당분간이 아니라 영원히……………」

「요!」

“괜찮아, 몽몽. 어차피 다 아는 건데, 뭐.”

그래, 천지파멸식을 간신히 멈추었을 때 이미 스스로 느꼈었던 일이다.

“음. 하지만, 내공을 잃었을 뿐. 무공 자체를 잃은 건 아니야.”

「예?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단전이 모두 파괴되었고, 단전이란 건 결코 복구가 안 된다면서요.」

“그렇지 않아, 요몽! 주인님의 수련과 나의 보조에 따라 언젠가는………….」

확실히 내게는 과거 무공상실자들과 달리 몽몽이란 초특급 조력자가 있다. 하지만… 그 초특급 조력자마저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게임오버인 셈이다.

“그게. 분명 내공을 쓸 수 없으면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의 기본기조차 제대로 펼칠 수 없겠지. 그래도 뭐, 정글도를 아예 휘두르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난, 진유준.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움직일 수 있고 무공을 잃은 것이 아니다.

-전음도 쓸 수는 있어.

「에? 정말이네?」

“하지만… 아껴야지. 몇 마디 하면 땡이니까.”

달마역근경에서 파생된 새로운 구결 덕분에 혈도는 대부분 무사했다. 하지만 기의 집합지이자 증폭지인 단전이 싸그리 아작 난 이상 아무리 기를 모으려 해도 안 된다. 물이 그냥 들어왔다가 나가는 고무호수 꼴이 된 거라고 할까…………?

그러니까 호수 안의 물, 전신에 흩어져 있는 미약한 기를 모아서 궁색하게 쓰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닥닥 긁어모아도 GM의 챈에게조차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고 그것도 1회성인데. 뭐, 어찌되겠지.

“…은사마군. 소교하고 금동이는?”

“무사하십니다. 현재 옆 선실에 묵고 계십니다만…..”

「지금은 금동옹하고 갑판 산책 나가셨어요오!」

585!

“냅둬, 몽몽. 요몽식의 보고도 괜찮지.”

「에? 진짜요?」

훗~ 표릉거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녀석을 보는 것도 좋군.이런 게 ‘살아 있다는 기쁨’일까?

나는 그런 감상 속에서 갑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대교가 니들을 소교에게 준거지?”

이건 상황으로 보아 뻔한 얘기기는 하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대교님의 명령에 따라 소교님을 보조하며 무사히 탈출하였습니다. 금동의 적극적인 전투와…………」

「그게요, 금동옹. 이번에 정말 무서웠어요. 그, 웬만하며 ‘멋지다’고 칭찬만 해주고 싶지만… 이건 완전히 작은 야수였다니까요.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로 특수부대고 뭐고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는데… 에고, 소교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여럿 잡았을 걸요?」

흠. 이번엔 금동이도 완전히 꼭지가 돌았었나보군.

「…또한, 짧은 체류 시간에도 불구하고 소교님에게 감화된 자가 있어서 탈출에 도움을 준 일도 있었습니다.」

오호- 역시 우리 소교. 어디서나 사랑 받는구먼.

「와아- 저깃따! 저깃따, 미녀와 야수!」

이 흑해1호(아마도 흑해마군(黑海魔君) 전용선)는 상당히 커서 소교와 금동이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난간은 출입구로부터 수 십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나란히 선 두 녀석의 모습은 얼핏 해가 뜬 직후인 현재 시간대의 산뜻한 느낌과 잘 어울리는 풍경으로 보였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이유 때문에 곧바 로 녀석들에게 갈 수가 없었다.

“처, 천주!”

돌아보니 자룡대주(紫龍隊主)가 상당히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동안 쌓아 온 신뢰와 친근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같은 사람일 까……………?’라는 의구심, 어쩔 수 없는 경외와 공포까지… 어느 쪽 감정에 비중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랄까?

어디 보자… 다른 수하들 모두 갑판 위로 집합해 있었군. 천음마군(天飮魔君)만이 거의 평소와 가깝고 다른 모든 수하들 표정에는 자룡대주와 비슷 한 감정의 혼선을 겪고 있는 것 같은.. 음? 낯선 자가 하나 있네?

“자네는…………….”

“예, 천주! 흐, 흑해마군이 첫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넙죽 오체투지 (五體投地)하는 흑해마군.

“일어나, 반가워.”

“화, 황공합니다!”

거친 바다의 마군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아주 깔끔하고 고급스런 양복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였다. 물론 양복 밑의 건장하고 탄탄한 몸이 느껴지고 얼굴 또한 강인해 보이는…………….

“쿡! 속지 마십시오, 천주.”

모두의 시선이 천음마군에게 모이고 있었다. 역시 그만이 평소의 그였다.

“그 친구. 양복만 벗으면 바로 바다의 저, 됩니다. 해적들이 아주 벌벌 떨죠.”

“천음이 너!”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흑해 마군의 말투부터가 천음마군의 말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흑해마군은 아차 하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나는 피 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가슴을

가볍게 툭 쳐주었다.

“잘해보자구.”

“화, 황공!”

이런… 천지파멸식 이후로 ‘별말씀을 이 ‘황공합니다’로 바뀌어버린 것 같군.

나는 다음으로 자룡대주에게 다가가 스윽 손을 내밀었다. 흠칫 놀라는 그녀의 팔을 툭툭치며 웃었다.

“뭐야. 왜 이렇게 얼어 있어? 이 사부가 그렇게 무서워?”

“예, 예? 아, 아닙니다!”

“이번에 본 건 부디 잊어 줘. 내가 열 받으면 진짜 몸에서 불나고 그러는 거 알려지면 나 장가도 못 가.”

웃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모르는 자룡대주에게 내 쪽에서 씨익 웃어 주고 돌아섰다.

역시나 썰렁자폭 개그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뭐. 이런 분위기야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겠지. 그보다 문제는… 바로 이 아이.

“끼이-?”

작은 야수(?) 금동이가 먼저 돌아보더니 반가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소교는 여전히 작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쩐지… 금동이가 날 반기면서도 달려오지 못하는 건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소교가 바로 바다에 뛰어들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하니, 추운데.”

슬며시 말을 걸며 옆 난간에 팔을 얹고 섰지만 소교는 역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물방울이 은가루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에효오~ 소교님 또 이러신다. 우리가 그렇게 대교님도 무사하실 거라고 말해 드렸건만………………..

“이제 몽몽 남매에 대해서 알겠구나. 그런데 녀석들 말을 못 믿겠니?”

여전히 대답도 대꾸도 없다. 그럴 만도 했다. 나와 대교만이 남았는데 대교는 오지 않고 나만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이다. 나는 몸을 돌려 난간에 등을 기대며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그렇게 말해도?”

그제야 흠칫 약간의 반응이 있었다. 너무 애처로워서 보는 사람까지 함께 울어 버리게 만들어 버릴 것 같은 옆얼굴이 약간 내 쪽으로 향했다. “집에 데려다주시겠어요?”

이런, 내 말도 못 믿겠다는 건가? 아니 그보다. 에이 쒸- 이거 뭐야?

나도 모르게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욕설이 섞일 만큼 그만큼 소교는 위협적(?)이었다. 본래도 어디서나 은근히 눈에 띄는 아이였는데,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 본성이 폭발(?)해 버린 것 같았다.

애잔 모드 슈퍼 울트라 니트로 장착!

유치한 비유지만 나로서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간부급들은 나 때문에 갑판에 집합해 있었다고 쳐도 일반 선원들이 생각보다 많이, 그것도 이쪽에 집중해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다들 흘끔거리며 소교에게서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지들도 슬픔에 가득한 표정으로!

이거… 호위를 서고 있는 뇌룡대주(雷龍隊主)만 없었다면 벌써 다들 달려와 소교 앞에 무릎을 꿇고 ‘그대의 눈물을 멈출 수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소~!’라고 외쳐댔을 분위기…………?

내가 좀 과민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그렇게 소교의 분위기는 심각해져 있었다.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아~ 진짜! 누가 보면 내가 앨 납치해 온 흉악범인 줄 알겠다.

어랏? 저 친구들 보게? 날 꼬나 봐?

어처구니없게도, 지하무림 간부들조차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나를 일반 선원들이 야리고 있었다. 내가 소교를 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 다.

「…페리몬 분비라던가, 음공을 쌓아 pme91 계열의 에너지를 발산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음. 몽몽 오빠도 아직 확실히 모르겠데요.」 “…그런 걸 그냥 ‘매력’이라고도 한다만…………….”

내가 대답이 없자 소교는 지가 그냥 난간에서 몸을 떼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뇌룡대주가 즉시 다가와 내게 포권을 했다.

“소인, 천주로부터 소교님의 호위를 명 받은 바 있으니, 계속 이를 충실히 실행하겠습니다!”

‘실행해도 되겠습니까’가 아니라 그냥 선언? 아주 그냥, 허락 안 하면 치겠다, 치겠어.

“어. 수고.”

나도 모르게 대답하자. 그는 즉시 소교의 뒤로 따라붙었다. 나는 다소 황망한 기분이 들어서 잠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야! 소교!”

역시 돌아보지도 않는군. 홋~ 하지만!

“난 니 언니 만나러 가는 건데, 같이 안 갈래?”

그제야 발길을 멈추는 소교.

“난 니 언니 대교! 그 녀석 만나러 간다구! 지금 당장! 알아? 난 약속했단 말야! 이번에는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고!”

나는 그렇게 소리친 후,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할 것도 없이 돌아서서 뱃머리를 향했다. 나는 소교를 걱정하고 금동이가 궁금했고 내 수하들 모두의 안전을 기원했다. 그러나 모두에게는 미안하게도… 내게 있어서 무엇보다,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그녀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가하게(?) 모두를 챙길 수 있었던 건… 그래. 이 배는 이미 그녀, 대교를 향해 가고 있는 거다.

5시간정도 후.

나는 흑해1호의 뱃머리에 걸터앉아 눈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대륙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지파멸식을 다시 발동해서라도. 악마의 날개를 달고서라도 당장 대교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단 1초라도 빨리 그녀를 찾아가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 나는 비교적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뱃머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제 막을 자는 없어.

사실. 내가 12인의 사도를 전부 해치웠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엘 한 명은 확실하지만, 다른 12인의 사도들까지 공간을 넘어 날아든 나의 공 격에 죽었는지 어쨌는지를 내 눈으로 확인했던 건 아니었다. 정확한 저격이라기보다는 마구 폭격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전부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당분간, 그러니까 내가 현재 내공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천지파멸식을 쓸 수도 없는 상태라는 걸 모르는 동안은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할 걸…………? 대교, 그 녀석이 원한 것도 바로 그런 효과인 거고 말야.

여행지가 아무리 멀어도 반드시 갈 수 있다는 걸 아는 이상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간이 오히려 더 설레고 달콤한 그런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 다. 다만 문제는 그 여행의 가이드인데……………

“…보고, 드리겠습니다.”

힘없는 은사마군의 태도로 보아 아무래도 그 녀석이 끝내 말썽인 모양이군.

“그 녀석, 아직도 확보 못한 거야?”

“소, 송구합니다.”

“은사마군이 왜 송구해. 그 자식・・・ ‘덕방’놈이 문제인걸.”

그렇다. 대교가 가짜라며 혼자 날뛰다가 또 혼자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뜬금없이 사라졌었던 그 정신없는 주술사(況術師) 덕방. 그 녀석이 바로 대 교를 찾을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1인 전승의 수라문(修羅門), 그 문주는 그 세계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실력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보고하던 자룡대주가 문득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설마 이런, 이렇게 극단적인 길치일 줄은………….”

그렇다. 덕방 그 어이없는 녀석은 우리가 섬에 가서 그 난리를 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소교님 구출작전 직전에 받았던 보고에서 본토 행 비행기를 탔던 덕방은 경유지인 한국의 공항에서 잘못 내려 공항직원들과 충돌. 미행 중 이던 은사도객이 개입하려 했으나 그 전에 이미 공항직원을 부상 입혀서 체포. 우리 쪽에서 풀려나도록 조치하고 본토 행 비행기에 탑승을 유도하 는데 성공. 그러나 본토에 도착한 후에도 버스, 택시, 전철, 배・・・ 모든 교통수단 이용에 있어 어린아이 수준의 이용능력과 방향감각을 보이며 몇 개 도시를 전전하다가 결국에는 행방이 묘연해 졌었습니다.”

“저희 은사도객들이 미진하여 그자를 제대로 미행하지 못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죽을 일도 많다. 하여간 5시간 전에는 다시 찾았었다며, 한국에서.”

좋게 말하면 신출귀몰이고 사실 진짜 뜬금없는 놈이다.

“예. 그런데 은사도객들이 신분을 밝히자마자 천주의 전언을 전하기도 전에 도주하여 추적 중이지만 좀처럼 잡을 수가 없다 합니다.”

그 녀석도 참…………! 내 추측대로라면 자기가 대교 수호를 제대로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 같고… 은사도객들을 대교가 보낸 줄 알고 내빼는 중인 모양 이다. 지딴에는 대교 볼 면목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찾고 나서도 문제겠군.”

내가 직접 가기도 그런 것이, 지금의 나는 가봤자 절대 놈의 경공을 따라 잡지 못한다. 설사 어떻게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놈은 필시 내 말을 듣기도 전에 별 해괴한 주술부터 쓰고 난리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놈의 주술을 막아줄 라혈꼬(라후 혈족의 꼬리)가 없다.

으음. 천지파멸식 발동 때 견디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 모양인데 막상 없으니까 아쉽군. 게다가 만약 라후의 혈족이 내가 자신의 꼬리를 없애버린 사실을 알면… 에구, 머리 아프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자룡대주, 은사마군. 두 사람은 전에 나와 걔가 한 판 붙는 거 봤었지? 지하무림에 놈을 포획할 만한 자가 있나?”

자룡대주와 은사마군은 서로를 마주보며 잠시 생각해 보는 것 같더니 결국 난처한 듯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면목 없습니다. 무공이라면 몰라도 그 괴이한 주술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하무림에도 주술 전문 마군이 있잖아. 귀혼마군(鬼魂魔君)…이었던가? 그리고 실연자(緣)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예. 하지만 그도 전수를 너무 늦게 받아서 현재 수도 중입니다.”

“…쯧. 하는 수 없군. 외부에 의뢰해. 세계정화재단(世界淨化財圍)이란 곳이 있어. 알지? 그런 거 전문조직.”

그 재단의 마신일이란 남자의 싱글거리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남자라면 덕방 녀석쯤 여유있게 잡아서 끌고 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체 해결이 안 되는 건 아쉽지만… 하는 수 없지. 덕방은 재단에 의뢰하고, 우리는 지금 출발한다.”

“복명!”

갈 장소는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기에 덕방 녀석부터 찾았던 것이다. 덕방 녀석이라면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 을 테니까. 천년 동안 ‘대교의 본체’ 를 수호하고 있던 수라문의 문주라면.

“…소교.”

나는 내 머리 위로 다가오고 있는 헬기를 올려다보며 소교에게 물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천 년 전. 그때 천하를 쥐고 있던 마도인들의 성지를 알고 있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라는 표정의 소교.

“인마! 너도, 너네 자매들 모두의 고향이기도해.”

“우리들의 고향……?”

“비화곡!”

“비…화・・・곡…….?”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이던 소교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녀의 고운 머리카락이 헬기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 위로 옛날 비화곡 창천각 창가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

우릴 태운 헬기는 곧바로 내가 지시한 장소를 향해 날았다.

「현 이동장비의 속도로는 약 4시간 20분가량이 소요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흐음. 이런 것도 은근히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군. 그 당시 말 타고 몇 날 며칠을 뺑이치며 가야 했던 거리를 지금은… 웃.

“야, 야. 왜?”

내가 조금 놀라서 묻자, 내 어깨쯤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 소리를 내던 녀석, 소령이가 슬쩍 뒤로 물러난다.

헬기 바닥을 기어온 품세도 그렇고… 오늘은 미령이가 아닌 이 녀석이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 녀석은 아무래도 새참한 고양이보다 출랑대는 강아지 쪽에 가까우려나?

으음. 기왕이면 다 같이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미리 연락했다가 데려왔더니만 분위기가 뭐이래?

맞은편 자리의 소교는 미령이와 다정히 앉아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 시대에서는 거의 처음 만난 셈인 두 녀석이 저리 다정한 걸 보면, 두 녀석 다 대교 때처럼 본능적으로 ‘친자매’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두 녀석 다 계속 나와는 시선도 맞추지 않으며 생까고 있다는 점 이다.

소교는 아무래도 나를 ‘대교 언니의 죽음을 방관한 자’로 인식 하는 것 같았고, 미령이는 소위 ‘악마 모드(?)’의 나를 목격했기 때문에 내 수하들 이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도 좀 껄끄럽지만… 얜 또 이 무슨 신선한(?) 태도람?

소령이 녀석은 조금 전에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아본 것도 모자라는지 계속 날 위아래로 관찰하며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한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 본다.

“야, 야! 너 진짜 왜 이래?”

“…맞아요?”

“뭐가?”

“유준 오빠 맞냐구요.”

“그럼 지금 네 눈엔 내가 누구로 보이냐?”

“그을세요. 일단 유준 오빠가 맞긴 한 거 갈은데… 그럼 지난 번 그 하늘의 이따 만한 불마왕은 유준 오빠가 아니었나요?”

“끄음. 그, 그게…”

“미령이도. 다른 사람들도 다 유준 오빠라고 했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되지?”

.젠장. 설명해 줄 엄두가 안 난다.

“저기, 그때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든, 그냥 지금 내가 나…이면 상관없는 거 아닐까?”

에고. 이런 실명에 누가 납득을……

“오!”

했다?

대뜸 두 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그건 그렇죠.’ 라는 표정이 되는 소령이. …왠지 고맙다.

“그럴 줄 알았어요. 유준 오빠는 역시 마왕이 아니었어.”

자신만의 논리 전개로 납득을 마친 소령이는 기쁜 표정으로 올 때처럼 기어서(대체 왜?) 소교 옆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곧바로 미령이처럼 소 교와 러브러브 모드.

새삼 천 년 전 저 녀석과 천우신이 어떻게 살았을지. 그것이 궁금해지네. 나이를 먹어도 만년 소녀, 아니 만년 아기 수준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 았을 것 같은 저 녀석과 남들 챙겨주기 좋아하고 정 많은 천우신의 조합은 확실히 잘 어울리기는 한데……………

쿡-!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중년의 부인이 된 소령이가 여전히 소녀처럼 깨록깨륵 웃으며 천우신의 품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모습과 소외 된(?) 그들의 자녀들은 하는 수없이 지들끼리 알아서 놀고 있는 그런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천주.”

자룡대주였다.

“덕방이란 인물의 포획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벌써? 화끈하구먼.”

“그 정화재단의 특급 에이전트가 마침 가까운 지점에 있었다고 합니다.”

“흠. 이름이 혹시 마신일이라고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습니다.”

자룡대주는 자신의 PDA를 다시 확인하더니 말했다.

“옥환(玉環)이라 불리는 자라고 합니다.”

..옥환………?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걸? 덕방도 보통은 아닌데 지금 소요된 시간으로 보면 거의 만나자마자 한 방에 보내 버렸다는 거잖아?

“주술사 덕방을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수송토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전에.”

“아. 확인했다고 합니다. 천주의 전언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협조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지만, ‘비화곡’이라는 말에는 분명 동요하는 기색이었 다고 합니다.”

역시 그렇군. 그랬어. 대교는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좋아! 부탁해, 자룡대주!”

“복명!”

내가 새삼 힘주어 말하자, 자룡대주도 의욕에 찬 어조로 대답하며 돌아선다.

「와아- 대단해요, 주인님. 어떻게 미리 알고 계셨죠? 아니 그 전에… 대체 덕방과 대교님은 어떤 관계인거죠?」

“몽몽이 너에게는 말해 주지 않던?”

「에? 몽몽 오빠도 알고 있다고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다는 의미야.」

「에? 논리적? 음… 하지만 근거가 너무 없잖아.」

“…지난 번 덕방이 대교를 만났을 때, 녀석은 16년 전에 봤었던 대교의 영혼을 기억하고 현재 대교의 영혼도 알아봤어. 하지만 그 전에는 왜 대 교를 가짜라고 했을까? TV 같은 데서나 목격했을 뿐인 대교, 주가혜로서의 대교를 왜 무조건 가짜라고 했을까?”

「어, 그거야… 어…………? 그럼 그가 16년 전에 본 대교님은… 이린 대교님이 아니라… 현재와도 외모 비교가 가능한… 비슷한 연령대의 대교님? 16 년 전에?」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논리지. 그래. 대교는 천년 동안 환생을 거듭해 온 것이 아니었어. 줄 곳… 어느 한 장소에 봉인된 채 기다리고 있 었던 거야. 내가 돌아올 때를.”

그 바보 같은… 못 말리는 무대포 불사파 충성 소녀는 또 그렇게…………

「그럼 덕방이란 사람이 그렇게 달아났던 건요?」

쯧. 요몽 녀석. 감상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군.

“…녀석의 말이나 행동으로 보아. 수라문은 대교를 천년 전 그대로 유지하는… 아마도 ‘시간을 멈추는 주술’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그 런 주술이 쉬울 리 없겠지. 그래서 그걸 대대로 유지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을 거야.”

「아!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교님이 다른 육체로 환생해 버린 걸 알게 된 거군요. 그래서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거지.」

“뭐 대충 그런거지.”

「우와. 대충이 아니라 딱딱 맞아요!」

몽몽은 얘 ‘논리 교육’ 안 시키나 싶었지만, 사실 나도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천지파멸식을 멈추고 떨어져내린 바다.

그 수면 위에 떠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명확하지도 않은 의식 속에서도 난 지금 요몽에게 말해 준 상황을 생각해 냈다. 그런데도 그 전에는 요 몽처럼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 했었던 것이다.

…하긴, 그때 난 이미 대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볼 필요도 없었기는 하지만…………….

「그러면 지금 대교님의… 음. 본체? 천년 전의 대교님의 본체 가 옛 비화곡에 계시다는 건 어떻게…

“그 부분은 비논리야. 그냥… 나라면, 나와 대교의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기다려야 할 입장이었다면 어떤 장소를 선택했을까. 그 렇게 생각을 해봤을 뿐이지.”

「우웅~ 어쩐지 그것도 나름 ‘논리’ 인 것 같은데요?」

“훗. 그런가?”

「후후. 그래도 다행이네요.」

“뭐가.”

「대교님요. 환생을 거듭해 온 것도 아니고, 시간이 멈추는 주술에 걸려 있었던 거라면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의식을 하지 못하고… 헤헤- 심심할 틈도 없었겠네요, 뭐.」

“…그랬으면, 네 말대로 얼마나 다행이었겠냐마는…….”

「에? 또 왜요?」

“그 주술인지 뭔지가 ‘영혼의 시간’까지 멈출 수 있는 거였다면.. 그랬다면, 덕방이 그 주술을 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대교의 영혼이 밖으로 나와 서 환생할 수 있었겠니.”

「에 정말 그러네?」

요몽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새삼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 봉인 된 자신의 육체만이 존재하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천년 동안 그 아득한 세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리 모질 게… 나 같은 걸 제기! 이제 와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난 그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이를 악물고 조금씩 다가오는 재회의 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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