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29화 : 로또 당첨되어 기뻐하다 번개 맞은 섬
9 로또 당첨되어 기뻐하다 번개 맞은 섬
“이거 참…정말 갈수록 태산이로군.”
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한 나라의 하나뿐인 대도시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왜 이렇게 잘사는 거야, 이거.”
그렇다. 내가 지금 짐칸에 타고 있는 트럭이 시내로 들어서기 전부터도 환상적인 도시의 전경은 내 예상을 살짝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온 바깥세상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자 선진국인 나라들의 멋진 도시를… 사진이나 영화로나마 많이 봤었다. 그런데 이 이상한 나라, 고립된 도시 국가가 그런 곳들을 능가하는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굳이 ‘자태’라는 표현을 선택하게 된 건・・・ ‘위용’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만큼 거대 건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대신 전체적인 조화랄까……?
현대 도시의 화려함과 우아한 자연 환경의 적절히 균형 잡힌 느낌은 그 어떤 도시 보다 뛰어난.. 마치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아. 끄으으음~ 솔직히 말해서 난 디자인이나 여하간의 예술적인 감각 빵점인 막눈인데, 그런 나에게까지 대번에 이런 느낌을 준다는 건・・・ 쯧. 하여간 일단 인정. 게다가 이 도시의 선진국 스러움(?)은 겉모습뿐이 아닌 것 같았다. 시내로 들어서면서 목격하게 된 곳곳의 풍경들도 너무나 잘 관리되어, 깔끔하면 서도 정감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꾸밈없이 밝은 표정과 웃음소리가 이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난 지금… 제기.
농담이 아니라 정말 내가 평화롭고 풍요로운 나라에 침투한 악질 무장공비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네. 항구와 검역소의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감 을 잡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안정된… 음?
내가 탄 트럭이 목적지에 다 와 가는지, 속도를 줄이며 길가로 붙기 시작했다. 평균 2, 3층 정도의 낮은 상가 건물이 줄지어 선 거리였다.
「주인님. 현 시간부로 도시의 네트워크망, 32.4%를 장악했습니다. 현재 탑승 중인 차량의 주차 장소는 차량이 등록된 주소지와 일치함이 확인되 었습니다.」
흐음. 천하의 몽몽 선생께서 이제 겨우 그 정도 장악했다는 건, 역시나 이 도시의 전산 시스템에도 프리메이슨의 과학이 적용된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는 얘기겠군. 어쨌거나………….
아까 나는 항구의 검역소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길가에 세워져 있는 트럭 뒤로 다가갔었다. 출입구 부근에 있던 차가 그 것뿐이었고, 막 시 동을 걸고 있어서 별 생각 없이 냉큼, 그리고 몰래 짐칸에 올라탔었다.
나중에 트럭 운전자를 몽몽을 통해 확인해보니 언뜻 보기에도 맘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였었지. 우리나라 길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치킨 파는 백인 할배’ 스타일이라고 할까….?
지금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시 봐도 치킨 할배와 닮아 있었다. 난 운전석에서 보이지 않는 짐칸의 구석에 앉아 있는 건데, 치킨 할배는 차에서 나오고도 내 쪽에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차를 떠나고 있었다.
치킨 할배께서 지금 들어가고 있는 가게는 커피 프린세스 3호점…………? 여기서는 치킨이 아니라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시는 모양이네?
기본적으로 유럽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예쁘장한 인테리어의 크지 않은 가게였다. 반투명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가게 안의 모습도 나 같은 남 자라면 간지러워(?)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어느 정도 떨어진 유리창의 밖에서 봐도 귀여운 스타일인 걸 알 수 있는 용모의 소년, 소녀들이 서빙을 하고 있는… 마치 백인들 이 일본 애니 코스프레(코스튬플레이 Costumeplay)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군.
하여튼, 카페와 구성원들까지는 그래도 봐 줄만 해. 다만…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주인님. 요몽이 도시 시스템의 데이터 검색 도중, 중요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그래? 근데, 잠깐 대기.”
중요한 보고라는데도 대기시킨 건, 아무래도 날 여기까지 태워준(?) 치킨 할배에게 ‘차비’를 내는 게 먼저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양아치들의 몰골이 개성을 넘어 개판인 지경이로군.
나는 트럭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두 손 모아 두두둑- 손가락을 꺽으며 가게로 향했다. 몽몽이 가게 안의 소리를 증폭시켜 주자, 조금 전부터 메이 드 복장의 소녀들에게 집적거리기 시작한 다국적(?) 양아치들과 소녀들의 항의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때마침 정의의 사자가 등장하는 전형적이고 식상한 전개가 거슬리긴 하지만… 응?
나는 출입문 바로 앞에서 흠칫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가게 안에서 치킨 할배가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썩 꺼져! 이 못된 KKK놈들!”
KKK단? 저 해괴한 차림새의 결정적으로 아직 대글빡에 피도 안 마른 잉아치들이?
콱! 와장창~!
양아치 중 하나가 테이블을 걷어차서 엎어버리는 소리였다. 난 생각을 일단 멈추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문을 밀고 들어서자 순간적으 로 실내의 모든 시선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무시…………! 거의 ‘웬 변견 한 마리가 들어왔네’ 정도의 반응이로군.
“영감! 이거 너무하잖아! 이런 데서 일하는 애들 엉덩이 좀 만졌다고 우릴 쫓아내겠다고? 엉?”
다시 대표로 지랄하기 시작한 놈의 머리는 말끔히 밀어버린 다음에 요란한 문신을 새겨 넣어 마치 장식용 전구 같았다.
“하여간, 이 꽉 막힌 병신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옆에서 씨부렁거리며 잭나이프를 꺼내드는 놈은 구형 일본 교복 같은 걸 입고 커다랗게 부풀린 헤어스타일의 꼴불견이었다. 치킨 할배는 놈의 나 이프 때문에 긴장한 듯했지만 그래도 물러설 기색은 없었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이 와중에도 다시 서빙 소녀들에게 접근하며 군침을 삼키고 있는 두 놈도 눈뜨고 못 봐줄 꼴을 하고 있는 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나는 먼저 나이프를 꺼내든 놈 쪽으로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이 노예(짐승)는 또 뭐야?”
철컥, 나이프의 날이 펴지자 소녀들의 비명소리가 먼저 울렸다.
“까악! 안 돼!”
“안 돼! 죽이지 말아요!”
소녀들의 비명에 더 자극을 받은 듯, 꼴불견 뻥튀기 머리 놈의 눈동자에 살기가 돌았다.
철컥! 철컥!
놈의 손에서 나이프가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어설프게 회전했다.
“헤헤~ 이 천국에선 노예새끼 하나 죽여도 상관없으니까………….”
짝!
놈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뺨을 맞고 돌아갔지만, 대체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몰라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당연히 그 사이에 자신이 쥐고 있던 나이프가 사라졌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 어?”
한 박자 늦게 자신의 빈손을 확인하고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놈의 나이프가 내 손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철컥! 휘릭! 철컥! 촤락! 촤라라라라락~!
지난 몇 년 동안 장난감이라고는 정글도 밖에 없었던 나에게 작은 나이프 다루는 것 정도는 껌이지.
얼결에 칼을 빼앗긴 꼴불견 놈도 그렇고, 다들 내가 잠깐 시범 삼아 보여준 칼 장난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흐음. 역시 아직 자라나는 새나라의 어린 양아치인 것 같군. 어린애들 패는 것도 좀 그렇고,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적당히 겁을 줘서 밖으로 유 도한 다음에 kkk단과의 연관성을 알아봐야겠………….
“서, 서커스에 있던 노예인가?”
“그, 그러게? 노예 새끼 주제에 별 꼴값을 다 떠는……………”
계획 취소.
퍼억!
꼴불견 머리 놈을 들이받아 입과 코를 동시에 함몰시켜 주는 소리였다.
우두둑! 빠직! 빠직!
이건 옆에서 달려든 장식용 전구 머리 놈의 팔을 꺾어 누르며 두 군데의 관절을 추가로 빼주는 소리.
겨우 이 정도에 비명도 못 지르고 눈이 돌아가는 애송이들이 감히………….
“저거 저거 뭐야?”
“미, 미친 노예야! 미쳤어! 어떻게 노예가 인간을……”
서빙 소녀들 쪽의 양아치 두 놈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 한 놈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경찰! 경찰! 여기 미친 노예가 날뛰고 있어요!”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훗. 요몽 목소리로군. 우리 귀염둥이가 잽싸게 전파를 가로챘구만.
“뭐야! 넌 전화도 똑바로 못 걸어?”
“그, 그럴 리가……”
내가 일부로 팔짱을 끼고 서서 곧바로 덤벼들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취하자, 놈들은 다시 허둥지둥 휴대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퍽! 퍽!
나는 구경만 하고 있었음에도 두 놈은 정신줄 놓고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놈들 뒤에는 치킨 할배와 서빙 소년이 각각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서 있었다.
연세에 비해 듬직한 치킨 할배는 그렇다 쳐도, 저 어리바리 유약형 꽃돌이 서빙 소년은 아직도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을 정도면서 용케 용기를 냈 구먼. 어디 거의 기절 상태였던 서빙 소녀들은… 웃!
이제 보니 ‘쌍둥이’인 서빙 소녀들이 동시에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달려와 안기며 무서웠다고 눈물을 흘릴리가 없지…………? 날 언제 봤다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에게 난 그저 노예(동물)일 뿐이니……………
잠시 후.
나는 예상대로 소녀들에게 안기고 쓰다듬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소녀들은 짹짹 참새처럼 종알대며 되려 날 걱정해주고 있었다.
“괜찮니, 노예야?”
“아아- 난 얘가 칼에 찔리는 줄 알았어!”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응?”
“착해! 착하고 용감한 노예야!”
“얘! 넌 어디서 온 거니? 응?”
…이런 쓰불. 아무리 유색인종은 전부 사람이 아니라고 세뇌 당한(아마도) 애들이라도 그렇지, 이 조막만한 것들이 어디 어른을 두고… 으~ 근데 난 또 왜이러니?
나는 어느 사이 무심결에 쪼그리고 앉아서 소녀들의 높이에 맞춰주고 있었다.
이 놀랍도록 빠른 나의 적응력이 때론 싫다, 싫어.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사 오신 거예요?”
금발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소녀 쪽이 치킨 할배에게 물었지만 할배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 보는 동양 종 노예로구나.”
치킨 할배의 눈이 의외로 날카롭게 나를 살피더니 새삼 의혹의 빛을 띄웠다.
“예전, 노예보호법이 강화되기 전에는 힘 쎈 노예들을 훈련시켜서 싸움 노예로 만든 다음에 노예 싸움으로 도박을 한… 그런 극악무도한 자들도 있었단다.”
“에? 그럼 이 노예도 그 싸움 노예예요?”
“가엾어라! 그래서 주인에게서 도망쳤나봐!”
생머리로 옆의 갈래머리 자매와 구분하는 모양인 소녀가 한층 더 애틋한 마음을 담아 날 보듬어 준다.
…이거 참.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건지………….
“하지만 그때에도 인간의 무술까지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은 싸움 노예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아차. 관절기는 쓰지 말걸 그랬나?
“대체 이 노예는…………….”
“아, 할아버지! 경찰이 와요. 누가 대신 신고해줬나 봐요.”
유약형 꽃돌이 소년이 창밖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지나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가게 안을 보고 있군, 그 뒤로 경찰차가 오고 있는 것도 보이고… 뭐, 이 정도면 차비는 충분히 낸 것 같으 니까 이제 그만 튀어야겠……………
“너희들, 뭐 하는 거야! 빨리 그 노예를 숨겨야지!”
음? 저 유약 꽃돌이가 뜻밖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네? 그래도 남자라 이건가?
“맞아! 이리 와, 노예야!”
“어서! 빨리 따라와!”
난 지들 딴엔 힘을 줘서 내 손을 잡아끌기 시작한 소녀들에게 일단 얌전히 끌려가(?) 줘 보았다.
주방을 지나서… 뒷문으로 탈출… 음? 아닌가? 날 2층으로 데려가고 있네?
소녀들이 날 데려간 곳은 2층의 방 3개 중에서 굳게 잠겨 있는 방문 앞이었다.
“서둘러야 해, 언니!”
“아, 알아!”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열쇠를 구멍에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고 버벅대던 소녀는 아래층에서 남자들의(아마도 경찰)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 며 아예 열쇠를 놓쳐버린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재빨리 주워서 문을 따주었다.
“와아~ 대단해! 이렇게 영리한 노예는 처음 봐!”
예, 예~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요.
나는 결국 알아서 방에 들어가 알아서 문을 잠갔다.
저 어설픈 아이들이 경찰을 제대로 따돌릴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 그냥 알아서 탈출을 해야… 음? 가만? 이건 또 뭐시여.
내가 창문으로 나가려던 동작을 멈춘 것은 방안에 있는 책상 위의 액자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서 어두운 방안이 었지만,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가로등 불빛으로도 사진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저 꽃돌순이들과 치킨 할배, 그리고… 검역관 아가씨? 여긴 그 아가씨 집이었던 건가? 쯧. 이런 우연이 과연………….
「주인님. 대기시키신 보고 내용 중 한 가지가 현재 보고 계신 사진 속의 여성에 관한 사항이었습니다.
“그랬냐?”
「여성의 이름은 ‘미나 H 샌더스’. 직업은 ‘공중보건의’이며, 금일 항구 검역소의 임시 증원 요청에 의해 파견된 것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주소지는 인접 구역 보건소의 기숙사로 되어 있으나, 본적은 이곳입니다.」
그… 뭐시냐. 미나라는 여자가 오늘 검역소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었는데… 가족인 치킨 할배는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검역소에 갔던 거고… 우리 의 탈출 사고 때문에 손녀의 퇴근이 기약 없어져 버려서 먼저 귀가하게 되고… 그때 트럭을 발견한 내가 살포시 탑승…………!
으음. 그렇게까지 누군가가 의도한 상황 전개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역시 찜찜하기도 하고………….
약간 생각이 복잡해진 나는 창가에 한 쪽 발을 걸친 자세 그대로 잠시 방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어째 곧바로 이 방을 수색하려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고 있어. 아니, 이거 아무래도 저 경찰들은 그냥 대충 돌아가려고 하는 분위긴데…………?
“…미안하다. 저놈들은 우리도 어쩔 수 없구나.”
“네, 알아요. 홈즈 경관님.”
“그래도 감사해요. 홈즈 경관님.”
“언니에게는 대신 안부 전해다오.”
…오가는 대화로 보아, 출동한 경찰들의 대장격인 인물이 이 방의 주인인 검역관 아가씨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군. 하지만 그전에… ‘저놈들 은 우리도 어쩔 수 없구나’
……………? 치킨 할배가 KKK라고 부른 양아치 놈들 얘기일 텐데… 그런 놈들을 경찰도 터치하지 못한다는 얘긴가?
“…몽몽. 아까 보고하려다 만 건 KKK단 놈들 얘기였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이 섬의 매스컴 자료를 중심으로 검색한 결과, ‘일부 고위층의 해외 유학파 자녀들이 스스로를 KKK라고 칭하며 사회질서 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의 정식 보도 자료가 최근 3년 사이 총 132건으로서……………
3년・・・・・・? 바깥세상의 KKK단 놈들이 이곳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 그 전부터였던 건가? 일단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함께 데려온 자식들의 가 정교육도 개판이라 저런 놈들이 된 거라고 판단해도 되려나………? 음. 하지만 그것도 ‘일부’라고 했지?
“몽몽. 놈들의 리스트를 전부 확보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주민들의 정보는 모두 철저하게 파기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백업 데이터가 존재하는 중앙 관청의 시스템 해킹에는 17 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이 섬의 시스템에 필요한 정보가 모두 존재할 확률도 100%가 아닙니다.」
쳇. 놈들도 꽤나 철저히 방어하고 있다는 거군. 게다가 여긴 말이 독립국이지 프리메이슨의 속국, 아니 그저 대규모 인간 실험장에 불과하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어. 이거 참… 이주민들이 전부 KKK단이라는 증거만 있으면 청소하기도 쉬울 텐데, 혹시라도 아니어서 무고한 사람들이 섞여 있으 면 곤란한데 말야.
쿡. 쿡. 크릭.
음. 쌍둥이 소녀들이 열쇠로 문을 열려는 소리로군.
나는 다시 잠깐 갈등했지만, 결국 재빨리 창문을 열고 가까운 가로등 위로 뛰었다. 그리고는 근처의 나무(야자나무) 가지 사이로 뛰어들어 몸을 숨 긴 후에야 소녀들이 창문을 열고 바깥을 살피고 있었다.
저 커피 프린세스 3호점이 안정된 은신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애완동물 취급은 사양하고 싶어. 또한, 아무래도 여기서 몽몽의 해킹 결과만 기다리고 있느니, 조금 전의 양아치 놈들 같은 부류를 정글도로 잘 타일러서 확인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편이 나을 것 같고 말야. 에고. 그래도 저 녁밥은 얻어먹고 나올 걸 그랬⋯ 응?
내가 빠져나온 집의 맞은편 상가 건물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평화로운 거리에 경찰까지 출동했던 상황이었으니 구경꾼이 있다고 해도 이상 할 건 없었다.
하지만 왠지 거슬리는 시선이 느껴지는 걸…..? 아무래도 저 노예, 아니 그냥 흑인인 녀석은 지금 내가 몸을 감추는 걸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나는 야자열매 중 작은 거 하나를 따서 손에 들었다.
쇄액!
현재의 비루한 내공이라도 암기(?) 하나 날리는 데는 충분하기에, 야자나무 열매 암기는 대포처럼 길 건너로 쏘아졌다.
・오. 피했어.
‘놀라며 간신히’라는 느낌이 역력했지만, 여하간 피한 것이다.
그리고… 튀는군.
나는 훌쩍 나무에서 뛰어내렸고, 단숨에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편 상가 건물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놈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뭐야! 벌써 어디까지 튄 거야?
이미 건물 두 개를 지나 세 번째 건물 옥상으로 건너뛰고 있는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이것 봐라?
“몽몽!”
난 몽몽의 지원을 요청하며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골목길로 달리면서 건물 위를 가로질러 날다시피 하는 녀석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좌회전 후, 전방의 공사구간을 통과해 주십시오.」
젠장! 시작부터 장애물 달리기냐?
나는 정신없이 자잘한 공사 장비며 쌓인 흙더미를 뛰어넘으며 공사장을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맨발인 상태로 발밑까지 신경 쓰느라 더욱 장난이 아닌 레이스였다.
…통과 후, 직전 7초, 좌회전!・・・ 20미터 전방의 좌측 쪽문 이용! 건물 통과 직후, 정면 샛길!」
…웃! 네비, 아니 몽몽게이션의 안내를 믿고 무조건 달리기에만 집중했는데, 웬 막다른 길? 담? 최소 3미터? 까짓 거!
난 주저없이 옆으로 뛰어 한 쪽 벽을 딛고 도약! 가볍게 훌쩍 – 담을 넘었다. 비루 내공의 비루 경공이라도 한 번에 하나씩의 장애물은 크기가 문제 되지 않는다.
「13미터 지점에서 우회전! 직후, 다시 우회전! 전방의 하천 폭은 8.36미터!」
이번엔 넓이뛰기? 으익! …하아~ 성공!
「… 11미터 정도 앞의 코너로 들어가시면……… J
거, 거진 다 왔다는 건가?
약간 속도를 줄이며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건물 세 개 사이의 막다른 공간이었다. 가로등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등이 오래 되어 침침한 편이었 고 그래서 더 후미진 골목의 분위기였다.
「…추격 대상은 약 4초 후 우측의 문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헥~ 헥~가, 간만에 땀 좀 나게 뜀박질을 하아 하~ 하아아아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자니까 몽몽 선생의 예언(?)대로 끼익- 문이 열렸다. 예상보다 차분해 보이는 편하게 분류하자면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 스타일에 가까운 인상의 흑인 청년이었다.
날 발견하고는 크게 놀라며 ・・・ 홈. 경계하는 자세가 뭔가 할 줄 아는 놈 같은데? 게다가 저 탄탄한 근육질 몸과 무수한 흉터들은…………….
“너, 넌? 쫓아온 건가? 날?”
“이 녀석, 말을 할 수 있는 노예였군.”
“뭐? 너도?”
“당연하지. 그보다… 너, 이 자식! 별거 아닌 놈이면 죽을 줄 알아.”
예정에 없던 뺑이를 치게 한 놈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었다. 물론 그게 가능할 정도의 신체능력부터가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증거겠지만 말이다. “…너도 싸움 노예 출신인가? 글래디에이터?”
쳇. 놈이 먼저 물어봤다. 여하간,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영화 제목이라 기억하는 거지만… 뜻은 ‘검투사’였었지?
“뭐, 진짜 의미는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넌 좀 다른 뜻으로 물어 본 것 같군.”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 녀석, 내 말을 그냥 씹겠다는 거야? 아니면 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하여간, 나는 너와 다른 노예… 아니, 난 원래 노예가 아니야.”
…쯧. 더더욱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이군. 하긴 노예에 대한 개념은 이 섬의 백인들뿐 아니라 유색 인종들에게도 똑같이 주입되어 있을 테니…
“넌 이상한 노예다. 주인들처럼 말한다.”
“그야 뭐………….”
복잡한 얘기는 뒤로 미루더라도, 당장 급한 궁금증부터 풀어야겠지?
“암튼, 너야말로 싸움 노예인 거냐?”
“…그렇다. 그랬었다.”
그랬었다? 치킨 할배도 분명 싸움 노예라는 거 자체가 없어졌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지금 주인은 누구지?”
“…주인은 없어. 난 주인이 없는 노예다!”
흐음. 일단 거짓말을 하는 느낌은 아니로군. 누가 시켜서 날 정탐했던 게 아니라면 왜 거기에……………
“싸우자.”
에? 얘, 뜬금없이 왜 이래?
“나와 싸우자! 나는 이 거리 노예들의 보스이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정체불명의 흑인 글래디에이터(아마도)는 새삼 팽팽하게 긴장하며 내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대화에 앞서 싸움으로 서열부터 결정하자고 나선 녀 석 답게 강력하고 빈틈없는 기세가 날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흥겨운 박자를 타는 듯한 저 옴직임은… 웃!
휘릭!
별안간 놈의 상체가 꺼지듯 사라지며 예상밖의 각도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순간적으로 상체를 젖혀 피하자마자 제2, 제3의 발차기가 소나기처 럼 쏟아져 들어왔다.
이 이거!
반사적으로 모든 공격을 막고 피했지만, 조금 놀라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휘리리릭~ 휘릭~.
놈의 몸은 빠르게 원을 그려 회전하며 자기 몸 몇 배의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거의 계속 물구나무를 서다시피 한 자세라서 일반적 인 반격 포인트를 잡기도 어려웠다. 저 자세에서 난감한 각도로 날아드는 발차기라는 건………….
카포에라………? 와우! 카포에라다!
난 분명 선제공격을 허용하고 밀리는 처지임에도 그만 벌죽(?) 웃고 말았다. 지금 고국에 있는 우리 작은형과 내가 한 때 열광했던 이국적 격투기 가 바로 카포에라였던 것이다.
흑인 노예들이 손에 족쇄가 채워진 채 정복자들과 싸우기 위해 개발하고 발달시켰다는 브라질 전통 무술…………! 하핫! 이거 정말 저 녀석에게 잘 어 울리는 걸?
휘리릭! 휘리릭!
다시 흥겹고 화려한 춤사위처럼 보이면서도 채찍처럼 강력한 공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별 어려움 없이 놈의 박자에 맞춰 피할 수가 있 었다.
작은형이 연습할 때 난 거의 구경만 했었지만 지금의 난 그때의 내가 아니지. 처음으로 만난 이 카포에라의 고수에게는 정말 미안하게도, 게임이 안 된단 말씀.
나는 좀더 이 독특한 무술의 동작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가볍게 한 쪽 발을 뻗었다.
쿠욱!
내 발끝이 정확히 놈의 명치 급소에 꽂힘으로서 짧은 대결이 끝나고 있었다.
얼마 후.
나는 흑인 ‘막시무스’와 마주앉아 나름 차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주인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재밌게 보고 주인공 이름을 따다 붙여주었다는 사연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그보다 이 섬의 노예 제도는 아 무래도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
“…그러니까, 이 섬에서는 노예들에게 정기적으로 특수 약물을 투입하여 지능 발달을 막고 있다 이거지?”
“그래.”
“싸움 노예들은 싸움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 불법으로 약물 투여를 중지했고… 그래서 너처럼 말까지 배운 녀석들이 생긴 거고 말야.”
“맞아. 나는 똑똑해. 그래서 도망쳤다. 지금은 도둑 노예들의 보스야. 아니 보스였다.”
대결에서 패했다고 깔끔하게 보스 자리를 넘길 모양이군. 그래 봐야 판타지 소설 속의 전문 도둑 길드 수준이 아니라, 먹을거나 훔쳐 먹는 정도 의… 도둑괭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노예들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정보 수집 활동에는 좀 도움이 되려나?
“도둑 노예들의 숫자는 많냐?”
“지금은 많아. 예전 주인들은 다 노예에게 잘해줬다. 지금은 아닌 주인도 많다. 아까 그놈들! 그런 주인들이 생겼다.”
아까의 양아치들을 말하는 건가? 역시 KKK단 놈들이 사회의 물을 흐려놨다는 얘기인 것 같군. 하지만… 이 나름 질서 잡힌 사회 자체도 결코 정 상이 아니라는 게 문젠데………….
“보스는 노예가 아니다. 그렇게 말했다.”
“어? 어, 그래.”
“노예가 아니면 뭐지?”
“…주인. 내 주인은 나야.”
“보스의 주인이 보스……………?”
“그건 너도, 아니 누구든 마찬가지야. 자신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인 거라구.”
막시무스는 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노예 해방군 같은 걸 이끄는 녀석이 아닌가 하는 기대도 잠깐 했었지만, 이래가지고는 개념 잡아주는 것조차 쉽지 않겠구먼.
이거 참, 갈수록 곤란해지는 걸…..? 솔직히 말해서 ‘계몽 활동’ 같은 건 나의 게으름과 한탕주의(?)에 위배되는 일이니 말야.
“…일단, 내가 묻는 거 조금 더 대답해주고. 그리고 나서는 내가 시키는 일을 좀 해줘야겠어.”
막시무스가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라진 후 나는 녀석이 추천해준 장소로 이동했다. 늦은 시간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는 예의 번화가였 다.
“과연… 조금 더 알 것도 같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길가의 정자에 올라가 앉았다. 비유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나라의 정자 디자인 그대로의 휴게 시설이었다.
아까 트럭을 타고 지나가면서 볼 때는 다국적인 문화에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이거 정말 엄청난 짬뽕 문화네. 무슨 무슨 나라 풍의 유행이 섞인 정도가 아니 라 그냥 암 생각 없는 베낌 문화야.
나는 비로소 치킨 할배네 카페의 국적불명 분위기와 애들 복장, 컬트(?) 액션 만화나 영화 속의 비정상 악당들이 튀어나온 듯한 양아치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들도 이미 어느 정도를 넘어선 것 같지 만, 저런 노인들도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를 행색들을 음. 그래도 저 한국의 조선시대 두루마기를 걸치고 갓까지 쓴 백인 아저씨는 약간 반갑기도 하군.
…하여간, 이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각자 베낀 듯한… 그러면서도 별로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한 이 분위기는 대체 뭐야? 같은 인간을 노예로 취급하여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사랑을 베푸는 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거지?… 젠장. 난 당연히, 프리메이슨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이런 문화를 만들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이런 거 자체가 이 섬의 고유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남의 말 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거리도 이와 비슷하게 우리만의 전통 문화가 사라지고 남 흉내만 내고 있는 꼴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우리 얘긴 그건 뭐, 그렇다 치자. 아직 이 섬처럼은 철저하게 우리 문화가 사라진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으음. 그렇지만 여기도 ‘철 저하게 자기 문화가 없다’라고 단정짓기에는… 내가 본 부분과 시간이 너무 짧아…………!
섣불리 ‘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줘야 해’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 또한 삼가 해야… 음? 가만?
문득, 아까 치킨 할배의 가게에서 양아치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 녀석… 분명 ‘꽉 막힌 놈들’ 어쩌고 하며 치킨 할배를 비웃었었지? 어째 사회의 막장들 대사나 태도치고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했더니… 바깥세상을 알고 있는 놈들 입장에서는 이 나라 사람들이 ‘어리석은 바보’ 같아 보였던 거야.
자신들은 이 나라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건가 본데… 그건 더 재수 없어……………! X도 아닌 것들이 해외파(?)랍 시고 ‘단지 속고 있을 뿐인 사람들을 비웃고 깔본 거였다니. 더구나 지들이 바로 사람들을 속이고 사기 치는 세력의 주체이면서 적반하장으로… 으~ 다시 생각하니까 더 열받는다!
“몽몽! 아직 멀었냐?”
「KKK단의 명단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죄송합니다. 아직 중앙 관청 해킹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썅! 그냥 이주민들은 닥치는 대로 조져버릴까? 으으~ 하지만 내가 무슨 또라이도 아니고, 무작정 특정 계층을 테러할 수는 없………….
「…주인님. 닥터 제이의 연락입니다.」
마침 잘됐어, 이 음흉중년!
“하이~ 유준 군.”
“왜요!”
“윽! 귀청 떨어질 뻔했………….”
“또 뭔 염장을 지를려고!”
“이, 이봐. 진정하게, 진정.”
“됐수다!! 다 알려줄 거 아니면 말도 꺼내지 마쇼!”
“이런, 이런・・・ 이번엔 정말 다 알려주려고 연락한 건데..
에?
“오랜 시간 공들여서 준비해 온 하운 군은 자신의 선물이 좀 천천히 개봉되기를 원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상황이 못 되는 것 같아서 말야. …음. 들어보겠나?”
나는 흐읍~ 숨을 들이키며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모부님.”
“훗. 어린 시절부터 넉살은 좋았는데, 여전하군 그래.”
닥터 제이는 남의 아름다운 과거를 멋대로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 잠시 사이를 둔 후에야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으음, 그나저나, 다행히 이미 어느 정도는 ‘하운 군의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된 것 같군.”
“에? 선물을 받을 준비요?”
“그래. 하운 군은 자네가 그곳의 실정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준비한 ‘첫 번째 선물’의 의미가 각별해질 거라고 했지.”
“첫 번째… 선물?”
“아무렴 하운 군이 달랑 하나의 선물만 준비했겠나. 그토록 기다려온 자네에게 말야.”
이런 제기. 그 노무시키가 주는 거라면 하나도 꺼림칙한데, 뭘 또 그렇게 많이 준비해뒀다는 거야?
“이미 눈치 채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선물은 바로 KKK단 그 자체라네.”
음?
“하운 군은 자네가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장기간 신중하고도 철저하게 미국, 아니 전세계를 뒤져 그 쓰 레기들을 찾아내서 한 군데로 모아 놓은 거라네.”
“…지금 그 말은, 이 섬의 이주민들이 모두 KKK단이라는 건가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사실 자네가 싫어하는 인종차별 주의자들 중에도 개심의 여지가 있는 자들은 있어. 그래서 오히려 그런 자들은 제외시켰 다고 하더군. 그 대신, 여러 분야의 악질들 강간, 사기, 폭력 등등… 간악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고도 태연히 잘 살고 있는 자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 좀더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고의로 장난을 쳐서 부를 축적한 자라던가, 권력의 자리에 올라 자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들고도 적반하장으로 국민들을 업신여기는 자, 조금은 괜찮은 권력자의 눈과 귀를 막아 앞에 예를 든 자로 만들어 버 리고는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기생충 같은 자들, 자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여 자기들이 원하는 바보로 몰아가며 낄낄대는 저질 언론의 펜대 들・・・・・・ . “
뭐, 뭐야, 이거.
“훗. 이런 식으로는 너무 얘기가 길어지겠군.”
“아니, 그보다. 설마… 이 섬의 사람들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 세상엔 아직 괜찮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네. 더구나 아무리 하운 군이라도 세상의 쓰레기를 전부 모을 수야 있었겠나. 막상 찾다보 니 시간이 모자라 빠트린 자들도 많아서 아쉽다고 하더군.”
“그럼 역시 이주민들만………….”
“그래. 프리메이슨의 기존 꼭두각시들… 즉, 예전부터 그 섬을 다스리며 그 나라 국민들을 속여 세상과 단절시키고 있었던 자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주민들로 대체된 상태지.”
“…비교적 알기 쉽게 구분해 놨네요?”
“쓰레기 분리수거는 문화인의 기본 소양이지. 아, 이건 하운 군이 전해달라고 한 말이었네.”
나, 이거야 원……..! 원판 녀석도 이렇게 이쁜 짓을 할 때가 다 있군 그래.
“…원판에게 쬐금 땡큐라고 전해주세요.”
대기 중인 CR부대를 전부 불러야 할 때가 왔군. 소냐가 맡아 가지고 있는 천음마군의 칼을 그에게 돌려주라고 해야겠고, 은사마군이야 알아서 챙 길 테고………..
“몽몽.”
몽몽의 마력 조종에 따라 비잉- 아공간의 틈이 열리며 나의 정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다 죽었어.
“지금 기분은 알 것 같네만…….”
“아직 감사의 말은 이르네.”
뭐야. 여기서 또 알아야 할 게 있다는 건가? 아, 원판의 선물이 하나가 아니라고 했지?
“내가 왜 벌써 자네에게 연락을 해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겠나.”
“그거야… 이모부로서 조카의 고생을 일찍 덜어주고자 하는 인자한 마음… 일 리가 없을 것 같기는 하네요.”
“후후. 너무 그러지 말게. 분명 그런 마음도 크다네. 물론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좀더 자제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야.”
원판의 예상을 벗어난 상황・・・・・・?
“어쨌든, 사실은 하운 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기보다, 두 번째 선물이 예상보다 일찍 개봉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주인님!」
응?
“자네가 섬에 들어가기 전에 얘기해줬던…………….
“자, 잠깐만요!”
나는 닥터 제이의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몽몽의 경고는 2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일 때문이 었다.
뭐야, 저 미친놈은? 어디가 아픈 듯 비틀거리면서도 마치 짐승처럼 아무에게나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들고 있잖아? 아, 마침 경찰들이 오고 있으 니까 알아서 해결하겠………….
우워어어어~.
괴이하고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유준 군?”
“죄송. 잠시만요.”
나는 다시 양해를 구하며 정글도를 잡고 정자에서 나왔다. 미친놈(?)의 등장과 공격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사이를 뚫고 달려갔다. 미친, 아니, 그 이상인 것 같은 놈에게 경찰들이 오히려 물어뜯기고(!) 있었다.
번득!
급하게 날린 일도에 미친놈의 팔 한 짝이 날았다. 그래도 놈은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경찰의 어깨를 물었다.
젠장!
나는 결국 미친놈의 머리에 정글도를 찔러 넣었고, 그제야 놈은 털썩 뒤로 넘어져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죽였… 아니, 아니야. 이미 죽은 놈이었어.
“으아아~.”
놈에게 물어뜯긴 경찰들과 그 전에 물린 일반 시민들까지 비명을 지르며 뒹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부패한 시체’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어야 했다.
부자연스런 움직임과 오래 된 시체와 같은 상태…………! 머리가 파괴되어야 멈추는・・・ 좀비(Zombi)? 설마 이게 원판의 두 번째 선물?
“…유준 군? 무슨 일인가! 혹시 시작되는 걸 본 건가?”
“시작…이라고요? 이 좀비가 말입니까?”
“으음. 좀비의 동작이 빨랐나? 어땠는가?”
“젠장. 빠른 편인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영화에서 봤던 좀비들보다는 말입니다.”
“옛날 영화만 본 모양이군. 최근 개봉한 영화 속에서는 매우 빠른 좀비들이 나온다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거기가 어디든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하게. 아무리 자네라도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으니까 말야. 어서! 서두르 게!”
닥터 제이는 전에 없이 날 재촉했지만, 나는 잠시 더 망설인 끝에야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좀비 영화의 설정처럼, 방금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까 지 좀비로 변해버린다 해도 내가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저것도 원판, 그 자식이 만든 겁니까?”
“으음. 역시 자네가 더 열받기 전에 이걸 먼저 밝혀야겠군. 발생이 시작되었으면 이제 좀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그걸 누구도 막을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치료…………..? 이미 죽은 시체를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옛날 영화 속의 좀비처럼 느린 좀비들은 가급적 해치지 말게. 동작이 빠른 좀비들은 뭐, 어차피 그놈들은 상관없겠지.”
“방금 그 말은.. 원판이 끌어 모은 쓰레기들은 좀비가 되어도 다른 좀비들보다 빠를 거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프리메이슨 연구진들에 따르면, 지능도 다소 높은 것 같다고 하더군.”
빌어먹을! 그런 것들은 왜 좀비가 되어도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고 약삭빠르다는 거야?
“기존의 주민들과 이주민들의 좀비화에는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지만, 아직 정확한 이유까지 밝혀지진 않았다네. 섬의 주민들이 그동안 프리메이슨에게 당해온 임상실험들 때문에 오히려 어떤 면역체계가 생긴 것 같다고 추정될 뿐이지.”
그래서 치료의 가능성도 있다는 얘긴가? 그럼 치료도 원래 주민들만… 아, 가만? 그러고 보니까, 이주민 좀비가 더 강하거나 말거나, 하여간 다르 다는 건 좋은 거잖아……? 어찌 보면 오히려 구분이 더 쉬워진 거야!
이런 원판 그 자식, 그래서 이것도 선물이라고 표현한 건가? 하여간 그 자식………! 모처럼 이쁜 짓 한다고 생각했더니만, 결국 이딴 식이었어. 누 가 변태 사이코 아니랄까 봐, 선물에 기어이 좀비 같은 걸 옵션으로 끼워 넣다니……………!
나는 다시 걸음을 떼어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지 확실하게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치킨 할배와 꽃돌순이들 카페, 커피 프린세스 3호점이 먼저 떠오르고 있었다.
“유준 군. 내가 그 섬의 소고기를 조심하라고 했었지?”
“예. 그럼 그 광우병인지 뭔지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렇다네. 본래의 프리온이라면 좀비화로까지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아까 말했었듯, 그 섬에는 변종 프리온이 투입되었거든. 물론 프리메이슨 의 연구진들도 빨리 샘플을 얻고 싶어서 개발한 변종이었을 뿐, 이런 사태를 원했던 건 아니야. 그리고… 뭐, 하운 군은 그 섬 사람들에게 이런 사태 를 피할 기회를 주기도 했었다고 해.”
“피할 기회라고요?”
“광우병의 위험성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했다는 얘길세. 그래서 한동안 여론에 밀려 광우병 발생 위험이 큰 부위의 제공이 거부되기도 했었다 고 하네. 아, 물론 그 섬에서는 ‘수입’ 이라는 형태로 알고 있겠지만 말야.”
“처음엔 그랬다가 결국 수입하고 또 먹었다는 건…….”
“당연히 그 섬의 정부 인간들 작품이지. 그들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낮은가를 집중적으로 홍보했다고 하더군. 예를 들어..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기뻐하다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이라고, ‘절대로 안전하다’고 말야.”
내참. 그건 또 무슨 말장난이야?
“예컨대, 그들은 지금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기뻐하다 번개에 맞아 죽게 된 상황인 건데… 훗~ 나름 재밌지 않나? 사람들은 그런 확률을 ‘결코 일 어나지 않을 상황’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 하지만 확률이 0%가 아니라는 건, 다시 말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이라네. 게다가 재수 없게 걸린 당사자에게는 100%가 되는 거고 말야.”
빌어먹을…………! 왜 어째서, 남의 나라 얘기를 듣는 것 같지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