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4부 – 3화 : 대교의 기도


3 대교의 기도

“얘들아! 왔다! 바로 저기야!”

나도 모르게 소소미령 자매들을 부르며 창밖을 가리켰다.

욱!

소령이 녀석이 먼저 달려와 내 등에 달라붙은 채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소교와 미령이도 살며시 양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그렇게 옹기종 기 창밖으로 펼쳐진 비화곡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저기 저곳이 입구야! 천하마인들의 본산이면서도! 저곳부터 곡내 보든 곳에 온갖 형형색색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한 꽃들이 사철 만발했기에 – 그래서 비화곡이라 불렸던 거야!”

그래. 정말 그랬다. 처음 와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저 꽃들의 아름다움만은 나를 달래주었었다.

“저기부터 본단! 저쪽에 비취각(翡翠閣), 의화각(醫華閣), 지옥전(地獄殿)… 아! 그래! 저기가 바로 창천각(天間)! 내가 머물던 곳이다! 나와 대교! 그리고 너희들이. 하핫! 미령아! 언젠가 겨울에 네가 저쯤의 계단에서 미끄러지…..”

응? 어랏?

미령이는 벌써 제자리로 돌아가고 없었다. 소교도 마찬가지였다. 등에 달라 붙어 있는 소령이만 턱으로 내 어깨를 쿡쿡 찌르며 볼멘소리를 낸다.

“뭐가요오~ 그딴 것들이 저기 어딨다고 그래요오~”

“응? 어・・・ 그게, 물론 음. 옛날에 그랬, 었 다고.”

「제가 옛 건물들의 분포도를 보여드리기는 했습니다.」

으음. 그래 봐야 그림처럼 단순한 그래픽이었을 뿐이었는데 내가 좀 흥분했나?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현재처럼 지껄이고 말았다. 하아— 이런 것도 참…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안달을 했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또 이곳이 고향이라도 되는 양 반가운건지…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묘하네.

나는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찬찬히 비화곡, 아니 옛 비화곡의 터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창천각 같은 건물은 고사하고 그 어떤 인간의 혼적 조차 보이지 않는 그저 아름다운 계곡일 뿐인………….

“흐움~ 그런 거 없어도 좋네.”

“뭐?”

“아까 거기부터 쭈욱인 거죠?”

“응? 어. 그래. 그리고 대충… 저기부터 저기 정도…………? 그게 전체 경계선이고 니들이 태어났던 마을이 저쯤 되지.”

내가 창밖의 전경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는 동안 소령이는 왠지 편안한 표정이 되어 웃고 있었다.

“깊고 넓고 크은~ 계곡… 근데 예뻐. 예쁜 계곡이다. 소령이는 정말 이런 곳에서 살았을까요? 대교 언니랑, 소교 언니랑 미령이랑 유준 오빠 ……”

이 녀석, 오는 동안 소교에게 들은 ‘환생’ 이야기를 단번에 믿어버린 건가? 그럼 다른 녀석들은…음? 저 녀석들도?

소교와 미령이는 내 오버에 오히려 흥미를 잃은 것처럼 자기들 자리로 돌아갔었지만, 결국 반대편 창문을 통해 옛 비화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리고 녀석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도 단순히 처음 보는 경치를 감상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데자뷰…………….”

미령이었다.

“언니도 그래요?”

“글쎄… 유준 오빠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 건지도…….”

음. 확실히 뭔가 느끼긴 느끼는 모양이군.

“천주!”

“아- 조금 더 가 줘, 자룡대주. 방향은…….”

헬기가 비화곡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즉시 소령이가 입을 열었다.

“저기까지가 비화곡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대교 언니도 비화곡에 있다고 했잖아요!”

하늘에서 대충 손으로 가리켜 알려준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 버리다니. 완전 인간 GPS로군.

“비화곡에는 출입구가 두 군데인 장소가 있어. 그 중 하나는 비화곡 바깥으로 연결된 비밀통로였지.”

내가 내 육체를 되찾고 처음으로 진유준으로서 대교와 함께 지냈던 그곳, 와룡전(臥龍殿). 대교는 분명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음. 와룡전! 와룡전이죠?」

“그래. 요몽. 그곳밖에 없어. 다른 장소는 전부, 심지어 성지(聖志)까지도 차기 비화곡주가 드나들 수가 있지. 하지만 와룡전은 애초에 원판만을 위 한 장소. 게다가 비화곡 안의 정식 출입구는 내가 없애 버렸잖아.”

대교와 함께 탈출 할 때, 난 그곳에 수류탄으로(내 기억으로는 6개 정도?) 부비트랩을 설치해 두었었다. 당시 우릴 추적하려던 마극파천대(魔極破 天隊)가 이거에 걸려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비밀통로의 반대편은…”

창밖으로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천년 전, 천가장(天家莊)의 대 저택이 있던 자리에 지금도 뭔가 있는 것이다.

…설마 아직도 천가장…………..? 아, 아닌가?

가까워지면서 확실해지는 옛 천가장. 비화곡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예전의 영화는 떠올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그저 폐허일 뿐이었다.

….천우신. 천우신 이 친구야. 자네와 처음 만났던 장소에 내가왔네. 아아- 미안하네. 이번에는 자네를 찾아온 것이 아니야.

헬기는 드디어 옛 천가장의 폐허 마당에 착륙했고, 나는 즉시 뛰어 내렸다. 거의 터만 남은 천가장이었지만 유일하게 한 곳, 비화곡과 연결된 비밀 통로의 입구가 있던 사당(祠堂)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끼이이이-

을씨년스런 소리와 함께 2미터 정도 높이의 나무문이 좌우로 열려졌다.

「천가장은 왕조의 교체 때마다 위기를 겪어 왔지만, 대대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한 가문답게 그 명맥을 이은 것은 물론이고 곧 당시 왕조의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천가장이 뜻밖의 멸문을 당한 것은 200여 년 전으로……………」

우리가 왔을 때에도 ‘유서 깊은 가문이라고 했는데 그 후로도 800년이나 유지되었다니, 참 대단한 가문이다.

「…현 사당이 남아 있는 것은 천가장의 후예들이 노력한 바도 있으며 이면에서 수라문의 활동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그랬겠지. 그리고 오늘의 천우신, 자네를 찾아온 것이 아니기도 하고 자네는 후계자 자리를 마다하고 연옥도로 향했다고 하니 어차피 이곳에 없겠지. 하지만……………..

난 천씨 가문의 조상님들 위패가 걸려 있는 쪽을 향해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 옛날 나와 대교를 도와주었던 천우신의 아버님이 생각났기 때문이었 다.

“정말이지 여러모로…정말이지 오랫동안 신세를 지었습니다. 이 은혜, 제 친구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천가장에 도착한 후, 우리 일행은 얼마간 덕방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송구합니다, 천주.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초고속 항공편을 이용한다 해도 한국에서부터 데려오는 거니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자룡대주.”

“예, 천주.”

“옛 건축물 복원 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거 전문가들 좀 확보해줘.”

“복명.”

이 사당 좀 보수해 준다고 은혜갚음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성의 표시는 해두고 싶었다. 천씨 가문과의 인연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나와 대교가 탈출할 때 썼던 재단 뒤 철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아니, 문뿐이 아니라 구조자체가 달라졌다고 해야겠군. 그때는 돌출 된 형태로 재단 뒤의 구조물로 위장되어 있었는데 그걸 아예 전체적으로 없애버리고 지면과 같은 높이의 덮개를 해 닫은 형태야.

「스캔 결과, 구조변경은 천년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역시 천우신이 한 일이라고 봐야겠군.

「스캔 결과 바닥을 이루는 목재 부분과 그 아래 석재 부분 모두 전체 바닥 및 석면과 오차 범위 0.04mm로 정밀하게 일치합니다.」

“엄청나게 아귀가 딱 맞는 문이란 얘기 군. 육안으로는 문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말야.”

「그렇습니다. 그 자체가 훌륭한 잠금장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비공인 에너지 흐름에 의해 이중 보호되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수라문 사람들의 주술이 걸려 있다는 얘긴데… 역시 덕방 녀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쯧. 예전 같으면 당장에 내 손으로… 아, 아 니구나. 설사 나에게 이걸 깨버릴 힘이 있더라도 여긴 다른 공도 아닌 천가장이다. 친구의 집에서 무례한 짓은 곤란하지.

나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재단 뒤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재단 앞으로 나와보니 조금 늦게 들어 온 소령이와 미령이도 천가장의 위패들에 인 사를 올리고 있었다.

그 옆의 소교는 그냥 막연히 남의 집에 왔으니 하는 인사 수준인 것 같았지만 소령이와 미령이는 자못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니, 여긴 천이단(天耳團)의 선조 천우신의 생가이니 너희들에게도 특별한 장소가 되겠구나. 더구나 소령인……….”

아, 이건 쓸데없는 발언인가?

“우음! 듣고 보니 이상하네?”

소령이가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내가 정말 옛날에 선조님의 신부였다면… 그럼 여기 계신 분들 중 대부분이 내 후배겠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갈지는 않았지만. 나름 난처하고 민망한 기분도 들기는 하는지 소령이는 살짝 눈가를 찌푸리며 묘하게 웃는다. “잠깐. 저 좀 보세요.”

미령이였다. 약간 어두운 사당 구석으로 날 몰고(?)가는 녀석의 눈빛이 제법 사나웠다.

“당신은 그렇다 치고, 소교 언니의 말이니… 그러니 일단은 믿는 방향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환생 얘기? 너희들과 대교, 소교・・・ 이렇게 친자매였다는 거 말이지?”

“그래요. 그건 그건 정말 기쁘지만. 그렇지만 다른 건 곤란해요.”

“다른 거?”

“소령 언니가 그, 이름까지 같은 천년 전의 그분이었다는 게 알려지면 안 된다구요.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물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겠지만, 그렇지만… 이제 곧 그런 불확실 한 일까지도 중요해지는… 그런 일이…….”

“암천주(暗天主). 요즘 말로 다크 스카이 마스터! GM의 차기 보스 선출이 얼마 안 남았다 이거지?”

“그걸 어떻게 아! 챈이?”

눈치 한번 빨라 좋다.

“…바보 같은 챈. 아, 하여간 알고 있었다니 얘기가 더 빠르겠네요.”

“그래, 인마. 너희들에 관한 걸 내가 왜 떠버리고 다니겠어. 너희들이나 음. 특히 소령이 자신의 입 단속이나 잘 시켜라.”

“흥~! 언니 걱정은 마세요. 언니도 명색이 GM이니까.”

“그래, 미안하다.”

내가 순순히 사과하자 미령이는 오히려 조금 민망한 표정이 되어 어색하게 돌아섰다.

거 짜식 참. 여전히 까칠하기는. 응? 왜 걸음을 멈추지?

“설마 나에게 천년 전과 같은 대접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니겠죠?”

“훗. 그럴 리가 있나. 난 그때부터 너희들을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어.”

“…내 성격 알 거 아네요.”

“어, 그야 뭐..”

“당신을 싫어한 적 없어요. …오·빠.”

으윽!

미령이는 감격(?)해 버린 나를 뒤로 하고 총총히 소령이에게 돌아갔다.

이건 마치 엄청 까다로운 담벼락의 고양이가 내 쓰다듬을 허락했을 때의… 그런 기분?

「주인님. 도착한 모양입니다.」

“어, 그래.”

나는 미령이가 안겨준 뜻밖의 선물 때문에 빙긋이 웃으며 사당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런 내 앞으로, 그러니까 우리가 타고 온 헬기 옆의 마당에 새로 운 헬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이봐! 이 고릴라야! 정말 끝까지 이럴 거야?”

나는 덕방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풀썩 웃고 말았다. 헬기에서 내리는 엄청나게 건장한 사내가 한 손으로 덕방의 뒷덜미를 잡아 짐짝처럼 든 채 내 리고 있었던 것이다.

덕방 녀석 오늘 완전히 스타일 구기는군. 으음. 근데 저 남자… 옥환이라고 했던가…………? 이거 장난이 아닌데?

내 머리 하나, 아니 그 이상의 키와 그에 걸맞는 근육질의 체형. 검은 썬그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빛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 아래 얼굴부터 시작해서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의 신체를 가득 채운 흉터들을 보면 옷 안쪽의 상황도 알만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살벌한 건 전신에서 마치 수증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강력한 기운이었다.

…지난 번 만났었던 웃는 괴물 마신일. 그 작자와 거의 맞먹겠는 걸?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어? 뭐야? 저 인간 왜 저래?

천음마군이었다. 그가 왜인지 으르렁거리는 얼굴로 나서고 있었다.

뭐야. 흉폭한 분위기에 한 수 밀리는 상대가 나타났다고 자존심이 상해서 시비를 걸려는 건 아니겠지?

“아, 설마 저 남자가?”

“뭔데, 자룡대주.”

“전에 천음마군이 한국 땅에 철천지원수가 한 명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이런……………! 소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인가?

옥환이란 남자도 덕방을 내려놓더니 더욱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며 천음마군과 대치하기 시작한다.

이거, 어떻게 말리지?

“그만둬요! 천음마군!”

내가 망설이는 사이 자룡대주가 먼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저 인간이 누구 말을 들을 인간일까?

게다가…웃!

천음마군이 먼저 움직였다. 부상이 채 완치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격렬한 질주였다.

쐐액!

천음마군의 발끝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화살이 나는 것과 같았다. 그 발끝이 옥환의 목 줄기에 꽂히기 직전, 옥환은 상체를 슬쩍 기울이는 것만 으로 그걸 피해낸다. 그러나 천음마군의 공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저 스피드에서 전신을 회전하면서 연속기 4번?!

와우~ 천음 마군의 격술도 대단한데? 정육점 칼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무서운 스피드와 힘, 변화무쌍을 고루 갖춘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뿐. 상대는 아직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천음마군의 저 놀라운 공격을 모두 피하거나 손바닥으로 가볍게 흘려버렸을 뿐인 것이다.

역시… 마신일급의 고수로군. 천음마군으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음. 설마?

천음마군이 두 손을 뒤로 돌려 양복 윗도리를 들어올리자, 허리춤에 숨겨져 있던 그의 애병기 견신(犬神. 내가 맨날 정육점 칼이라고 부르는 사각 형 날의 칼)이 드러난다.

“미쳤어요. 천음마군?”

“뭐가?”

“아무리 개인적인 원수라고 해도 그렇지! 천주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에요!”

“원수? 누가?”

그제야 자룡대주를 돌아보는 천음마군의 얼굴에는 오히려 지가 더 의아해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우린 본래 항상 이렇게 인사 한다구.”

“예……?”

천음마군이 두 손을 뒤로 돌린 건, 바지를 추스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한 다음, 빙글빙글 웃으며 옥환에게 다가가기 시작 했다. 옥환 역시 조금 전까지 뭔 일 있었냐는 듯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두 남자는 각자 오른 손을 들어 툭 주먹을 한 번 마주 댄 다음, 그 팔을 서로 얽어 힘을 주며 소위 ‘불끈 악수’ (?)를 한다.

“오랜만이야, 친구.”

“그렇군.”

“흐~ 어때. 그 동안 친구의 충고대로 발에도 신경 좀 썼는데 말야.”

“많이 늘었더군.”

“흐흐ᅳ.”

친구의 칭찬을 들은 천음마군이 만족한 웃음소리를 내며 돌아서는 것을 자룡대주는 어이없어 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천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반가움에 그만……….”

“뭐. 괜찮아.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 그렇게 강한 기를 뿜어내면서도 정작 살기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야.”

“후후~ 역시. 천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정말 천음마군의 원수가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저 옥환이란 남자는 아니고… 또 어느 정도 나이 차가 나는 듯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서 친구가 된 건지…도, 내 알 바 아닌데… 음. 근데 이 사람은 또 왜 이러는 거지?

나는 내게 다가와 날 내려다보기 시작한 옥환을, 당연히 마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쓰바~ 키 크는 무공 같은 건 없나? 이거 영 자세가… 아니, 그보다 이 남자는 왜 계속 말없이 날 바라보고만 있는 거야? 썬그라스 너머의 눈빛이 어 째… 날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나 한테 뭐, 무슨 문제라도 있소?”

결국 직접 물었는데도 그는 아무런 대꾸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봐, 친구! 네 성격은 알지만 이번만은 아니야! 그분은 우리 지하무림의 주인, 마군황이시다! 더 이상 무례하면 내가 용서 못해!”

천음마군이 새삼 진지한 얼굴로 전부태세를 갖추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물론 은사마군은 한 발 먼저 옥환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옥환 은 나 외에 주변의 누구도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당신, 마음에 드는군.”

에? 어렵게 입을 열어서 한다는 소리가 무슨…000.

“듣던 대로 마신(魔神)의 힘을 얻고도 자신을 잃지 않았어.”

뭐?

“천음. 자네는 좋은 주인을 만났군.”

칭찬하는 건 좋은데… 어떻게 안 거지……? 누군가에게 들었다고……? …젠장! 전에 마신일이 말했던 그의 보스, 세계정화재단의 한국 지부 장……! 그 여자(닥터 제이 말로는)인가? 그 여자는 무슨 천리안이라도 가졌단 말인가? 이거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걸?

내가 기분 나빠하거나 말거나 옥환은 스윽 몸을 돌리더니 말없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주춤 물러난 은사마군이 날 돌아보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 다.

“한국까지 다시 잘 모시라고 해.”

“복명!”

그나저나, 기분은 분명 나쁜데 근데 한편으로는 이제 호기심도 좀 생기는 걸? 마신일과 저런 남자를 거느린 여자라니까, 어째 북천여제(北女 帝) 자옥령이 연상되기도 하고 말이야.

“씨앙~!”

응?

“뭐야! 왜 그냥 가! 야이 고릴라 같은 놈아! 당장 이거 못 풀어?”

・이런. 저 옥환이란 남자의 조용한 박력 때문에 덕방을 잊고 있었네.

옥환을 태운 헬기가 이륙하는 것을 잠깐 본 다음에 나는 덕방 앞에 섰다. 덕방은 하얀 동아줄 같은 것으로 친친 감겨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상태로 씩씩대고 있었다.

“다, 당신! 이게 무슨 짓이야!”

“여전하군, 그 건방진 말투.”

“흥! 아무려면 어때! 당신이 우리 사부도 아닌데!”

“…네 말대로 지금까지의 일은 아무려면 어떠냐.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안 그래?”

덕방도 전혀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문득 씩씩대는 걸 멈추고 있었다.

“빨리 이거나 풀어 줘. 그 빌어먹을 옥환 놈의 이 밧줄은… 내 쪽에서는 풀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손대면 보통 밧줄이나 마찬가지라구.”

“풀어주기야 풀어주는데, 그 전에 먼저 좀 묻자. 너, 내 전언 들었지?”

“…대교님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는 말?”

“그래. 그 말을 들었으면서도 왜 계속 달아나려는 거지?”

“너희 수라문의 임무는 대교를 지키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때가 되면 깨어나게 하는 거 아니었나?”

“…맞아.”

“그런데 왜……….”

“당신은 아니야.”

“뭐?”

“당신은 안돼! 당신은 대교님의 짝이 될 자격이 없어!”

이 녀석…………! 단순히 길을 헤맨 게 아니었나?

“나, 난. 대교님이 다른 육체로 환생하신 걸 보고. 이곳에 있는 대교님이 뭔가 잘못된 줄 알았어. 그래서 확인하려고 여길 오려고 했는데… 근데 내가 산 속에 있는 동안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으로 바뀐 거야? 탈 것들도 빨라지기만 했지 곧장 가지도 않고…….”

…헤맨 건 맞군.

“아무튼 그러는데 당신 부하들이 나타난 거야. 대교님이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고? 그럼 지난번의 그 대교님은? 그 대교님의 육체를 잃어버린 거 “지?”

이 녀석이…………?

“…그래.”

“그러니까 안 돼! 대교님을 지켜주지도 못한 자가 대교님의 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 빌•어 ● 먹 • 을 놈이…………..!

“게다가 지금 보니까, 더 안 되겠어. 그 라후 혈족의 꼬리가 없으니까 아주 잘 보여. 당신의 그 위험한 영혼이 말야.”

“닥쳐.”

“당신은 자격이 없·

“닥치라고 했다!”

“읏.으…”

뭐야. 이 터무니없는 살기. 다, 당신은 역시 정상이 아니..”

“덕방! 너!”

나는 더 치솟으려는 살기를 억누르느라 이를 악물어야했다.

“…그래. 난 대교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래서 난 이제 다시는… 다시는…….”

말을 잇기가 어려워진다. 대교를 잃었을 때의 감정을,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지금의 결의를…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

덕방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칼을 들고 나와 덕방 사이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넌・・・ 누구?”

덕방이 물었지만, 단검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녀, 미령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령이는 말없이 덕방을 결박하고 있던 밧줄에 칼을 대 잘라냈다. “고마워. 근데 넌 누구지?”

“분명… 이번에 유준 오빠는 대교 언니를 지켜주지 못했어.”

“아! 대교님이 언니? 그럼 넌..”

“그렇지만!”

미령이의 손이 살랑 춤추듯 날았다.

짜악!

무방비로 뺨을 맞은 덕방의 얼굴이 패액 돌았다.

“너에게는 권리가 없어.”

“궈, 권리?”

덕방은 벌개진 뺨을 어루만지면서도 웬일인지 미령이에게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든! 이건 대교 언니와 유준 오빠, 두 사람만의 일이야! 천년의 세월 동안 서로 그리워해 온… 그런 사람들의 일이라고! 너도, 세상 그 누구에게도 두 사람을 논하고 평할 권리가 있을 리 없잖아!”

“하, 하지만 난 대교님을 지키는……”

“닥치고 가서 문이나 열어! 네 임무가 그거라며! 근데 왜 시건방지게 유준 오빠를 평가하고 헛소리를 해대는 거야?”

“그, 그건・・・ 난 대교님이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라는…………….”

미령이는 손을 들어 사당 쪽을 가리켰다.

“대교 언니의 행복은 유준 오빠를 만나는 거야. 문지기가 그것도 몰라?”

“아니, 난…….”

“열어.” ・・・승부(?) 끝.”

파팟!

뭘 어떻게 한 건지, 눈부신 광채가 한 번 빛나더니 몽몽으로부터 ‘비공인 에너지 소멸’이라는 보고가 온다.

“이야압!”

내친김에 힘으로 돌문까지 들어올리는 덕방.

“와아~.”

소령이의 감탄사와 함께 짝짝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순진한 소년처럼 얼굴을 붉힌 덕방이 앞장을 서서 들어가고 소소:미령 자매들이 그 뒤를 따 랐다. 나는 자룡대주가 준비해 준 오토바이를 끌고 가느라 가장 늦게 들어갔는데, 덕방 녀석은 왜인지 동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줘, 진유준님. 아직 주술로 만든 방어장치가 더 있어. 이건 개인의 주력(呪力)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도구를 좀 써야 하는데…………….”

“어? 이거 아닌데? 어따 뒀었지? 아, 여기・・・ 그리고 또… 응? 왜 여기에 이딴 게 들어 있어? 응? 가만? 이건 유효기간이………….”

…이 자식. 또 시작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고 나서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서늘하고 축축한 동굴 속의 공기를 실감하면서 새삼 울컥 뭔가가 치밀 어 오르기 시작했다.

대교가 이런 곳에서 혼자 날 기다리고 있다. 확정된 재회를 기다리는 설레임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참아!

“비켜, 덕방!”

“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이건 힘으로 깰 수 있는 게 아니야!”

“알게 뭐냐!”

나는 정글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 했다.

“위험해!”

「주인님!」

덕방과 몽몽의 경고가 겹친 직후, 전방의 동굴 바닥에서 파직! 파직! 푸른 불꽃같은 것이 튀기 시작했다. 이어 양쪽 벽과 천장, 모든 곳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며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기 시작했다.

“거기 닿기만 해도 큰일 날……”

“웃기지 맛!”

나는 발악하듯 주술의 벽에 정글도를 내리쳤다.

쿠와왓!

주술의 벽이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나 곧바로 츠팟! 츳! 전기 스파크 같은 소리를 내며 복구되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다시 내리쳤다.

“내가 어떻게 방해꾼들을 없애고 길을 열었는데! 이변엔 또 뭐야? 주술? 뭐가 이렇게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

미친 듯이 한 번 더 정글도를 그었을 때, 비로소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빛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맙소사! 진유준님, 당신 역시 이상해! 우리 쪽 사람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영력(靈)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는 거지?”

“알게 뭐냐. 넌 이제 잘 따라 오기나 해.”

나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며 소교를 돌아보았다. 자매들 중 유일하게 경공을 쓸 수 없는 녀석이니 뒤에 태우려고 한 건데, 뜻밖에도 소교는 고개 를 저었다.

“저도 빨리 언니를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양보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소교는 배에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내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여주고 있었다. 소령이와 미령이도 그 옆에서 웃고 있었다.

“빨리 가 봐요. 대교 언니가 기다리잖아요.”

“유준 오빠 파이팅!”

나는 너무나 기특하고 고마운 녀석들의 격려를 받으며 출발하여 거침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동굴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대로 오토바이를 타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그러나 바닥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콱! 쾅! 쾅!

곳곳의 요철과 돌맹이들을 미처 피하지 못할 때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신으로 충격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나는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1 시간 정도를 무작정 달렸다.

…경공을 못 쓰던 때의 걸음으로 30시간이 넘는 거리였지. 현재 속도라면 앞으로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만 더 가면…………….

…어? 지금 뭔가! 으악!

아차 하는 사이 앞바퀴가 구덩이에 걸리며 내 몸은 허공에서 뒤집히고 있었다.

썅! 아무리 내공을 잃었어도 이 정도는…………!

나는 몸을 틀어 간신히 안전하게 착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저만치 앞에 나뒹굴고 있었다.

“몽몽! 점검!”

「…오토바이의 기체 모든 부분 양호합니다. 일부 약해진 부분이 있으나 운행에는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다행이군.”

「주인님…? 잠시 쉬었다 가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어둠 속을 운전하며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체력의 소모를……

“그게 아냐, 몽몽.”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집중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한까지 높아진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곳, 이 장소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여기였어, 몽몽.”

「…데이터에는 특정 의미가 있는 장소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너에게는 그랬겠지. 몽몽. 하지만 내게는 꽤 의미가 깊었어.”

경공을 쓰지 못하는 나의 걸음에 맞추느라 길고 길었던 동굴 속에서의 시간. 그 도중에 야영을 하며 쉬었다가 간 곳이 여기였었다.

“동굴 속임에도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서 이렇게 깊숙이 들어간 모양이 마치 사람이 만들어 놓은 방 같다고… 그래서 이 안에 들어가 함께 잠을 청했었지. 물론 서로와의 거리는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이었어. 내가 원판의 몸이 아닌… 내 몸, 내 귀로 대교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었던 건 말야.”

대교조차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그러나 내게는 작지만 소중한 추억의…………….

「주인님.」

“…뭐?”

나는 몽몽이 알려주는 쪽의 벽에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낯익은 서체의 글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 기 때문이었다.

・천지신명께 간곡히 기도하며 비옵니다. 저 대교가 원컨대, 그분께 가는 길을 막지 말아주시길.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글들은 모두 기도이며 또한 내게 보내는 편지였다.

대교가 원컨대, 당신이 미소 짓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의 입이 저를 칭찬해 주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이 제게 화내시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이 늦었다고 탓하시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께서 안아주시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께 다시 이 몸의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 품을 저의 눈물로 적실 수 있기를.

대교가 원컨대, 당신의 품이 아직도 따듯하기를.

대교가 원컨대…………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대교의 기원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콰앙-!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와룡전에 도착함과 동시에 뛰어내렸다.

“야- 인마!”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도 녀석을 불렀다.

“대교! 어디 있어! 대교!”

허우적, 허우적 걸으며 그녀를 찾았다.

“야 멍청한 계집애야! 어디 있냐고!”

화가 났다.

“그딴 일들이 뭐가 어렵다고! 다 해줄게! 다!”

정말 화가 난다.

“대교! 이 바보 같은 것아! 나한테 겨우 그깟 것들 바란 거야? 겨우 그런 걸 꿈꾸며… 이런 곳에서 이런 곳에서 천년 동안…….”

아아-

원판과 내가 바뀌었던 곳. 내 몸이 몇 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그곳에 대교가 있었다. 대체 어떤 주술인 건지, 웅덩이 속의 물이 얼음처럼 솟아올 라 무수한 기둥을 이루고… 그 한 가운데에 대교가 앉아 있었다.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흩날리는 머리 결과 모든 것이 마치 영사기가 멈춰 버린 필름처럼 그렇게 정지되어 있었다.

「주인님! 진정하십시오! 위험합니다! 아직 설치된 비공인 에너지의 운용 방식 분석이……………」

“하아 그만둬, 진유준님! 그냥 손대면 안돼! 죽는다고!”

몽몽과 뒤늦게 달려온 덕방이 외쳐댔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더는 단 1초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내가 다가서자 얼음 웅덩이 전체를 휘감고 있는 붉고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일제히 피처럼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주술의 반발력은 엄청나! 진짜 죽는단 말야!”

나는 아랑곳없이 손을 댔다. 그 다음 순간, 붉은 빛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선 속으로 붉은 문자들이 일제히 꿈 틀거리며 줄맞춰 움직이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였다. 이어 문자들은 붉은 나비처럼 팔랑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번쩍!

붉은 섬광이 지난 후 묶여 있던 시간이 풀려 흐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얼음 기둥 같았던 물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천천히 그녀가… 대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교……!”

“…와주셨군요. 이제야.”

“대교… 너……….”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길었어요, 아주. 하지만… 당신의 꿈을 꾸었지요.”

이 바보가 정말……….

“제가 남긴 글・・・ 보셨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러시나요. 어째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대교는 내게 다가와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눈물만 흘리고 계시나요?”

이 바보가. 자신도 울고 있으면서……

나는 두 손을 내밀어 대교를 안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해줄 수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품에 보듬어 안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오랫 동안 참고 또 참아왔던 눈물로 그녀를 적시며………….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