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30화 : 좀비물의 로망
10 좀비물의 로망
문제의 변종 프리온 좀비 발생을 직접 목격하고 난 후, 나는 치킨 할배의 가게가 있는 거리로 돌아갔다.
내가 직접 겪은 사건이 일어나고 1시간이 넘게 지났음에도 이쪽 거리에는 별다른 변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치킨 할배의 가게인 커피 프린세 스 3호점은 문이 닫혀 어두웠으나, 2층의 방들에는 불이 켜져 있었으며, 한 창문으로 꽃돌이 서빙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좀비 사태는 여기저기 동시다발로 터지고 있을 거라고 봐야겠지만 다행히 여긴 아직 괜찮은 것 같군.
“…유준 군.”
“예.”
“하운 군의 전언 한 가지가 더 있네.”
“이번엔 또 무슨………….”
“난… 당신이라면, 설사 광우병에 걸린 30개월 이상 소의 뼈로 곰국과 감자탕을 끓여먹고 곱창전골에 소주 한 잔을 걸친다 해도… 오히려 더 건강 해질 남자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눈곱만큼의 빠져나갈 틈이 있어도 그걸 챙길, 징그러울 정도로 강한 악운의 소유자이니까요.”
뭐야. 그 싹바가지 없는 놈이 그래서 뭘 조심하라는 말조차 안 했었다는 거야?
“이상일세.”
“제 쪽의 말도 전해주세요. 여기서 그 소뼈를 가지고 가서 네놈 아가리에………….”
“됐네. 답변은 듣지 말라고 하더군.”
이런 썅!
“그럼, 수고하게.”
으~ 원판, 이 거지 발싸개 같은 놈…………..! 이번엔 진짜로 광우병 소뼈에 맞아 죽을 줄 알아라!
「…주인님. 은사마군과 연결되었습니다.
“그, 그래?”
나는 스팀 받은 머리를 애써 식히며 은사마군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물론 CR들도 모두 불러들이도록 했다.
“…그러니까, 즉시 작전 개시야. 작전 목표는 이 섬을 이끄는 자들 및 각자의 판단에 따른 ‘나쁜 놈’ 전부 제거! 작전 방식은 제한 없음!”
“제한 없음 입니까?”
은사마군으로서는 모처럼의 반문이로군.
“그래…그리고 CR들에게는 사전 방역 작업이라고 알려 줘. 또한, 이미 발병한 좀비들과 조우했을 경우의 구별법과 제거법도 확실히 주지시키고.” “복명!”
…쯧. 나도 이미 버린 몸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확실하게 ‘적의 말살을 지시한 건 처음인 것 같군.
“몽몽. 천음마군은?”
「신호는 가지만, 아직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 인간이 검역소에서 무사히 탈출한 다음에 소냐와 함께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은사마군에게 들었다. 소냐도 은사마군처럼 이 섬에서 사 용 가능한 휴대폰을 확보했다는 것도 들었건만, 전화를 받진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작전 지원가능 상공에서 이탈된 위성의 복귀를 기다리시거나, 해당 휴대폰의 자동 착신 기능을 활성화 시켜서 현장 확인을… 아, 연결되었 습니다.」
“여보세요? 유준 아저・・・ 아니, 천주?”
“그래, 나다.”
“아, 저… 저희는 지금… 그게, 저어………….”
“괜찮아, 인마. 야단치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상황 보고해.”
“네에. 그게… 지금 천음 오빠는 이곳의 주민들과 싸우고 있어요.”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 아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이상한 차림새의 청년들인데, 거리에서 저를 억지로 오토바이에 태우려고 해서 천음 오빠가 막느라…….”
“벌건 야밤에 부녀자 납치 및 성폭행 시도? 사형!”
“예?”
“천음마군의 견신(大神. 정육점 칼)을 아직 네가 가지고 있으면 빨리 주라고!”
“에, 예.”
잠시 후.
“음뿌핫핫핫핫~!”
천음마군의 행복해하는(?) 웃음소리가 들린 후, 비명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통째로 집어던지는 것 같은 소리도 나는 걸 보니… 전에 블러디 울프(bloody wolf)의 빅 고렘(Gorlem), ‘론’ 중령에게 당했던 부상도 완치된 모양이군.
“천주!”
몇 명이었는지 몰라도, 참 빨리도 끝내고 전화를 받네.
“이 섬의 주민들은 다들 이상하게 친절해서 말입니다! 또 싸울 일이 없을까 봐 걱정했었습니다!”
“뭐… 앞으로 당분간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야.”
“오~ 이런 놈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런 놈들은 애송이에 불과하고, 진짜 거물들도 많아. 다만 주의할 건…….”
나는 천음마군에게도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었고, 천음마군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학! 그런 겁니까? 이번 달 저의 운세가 정말 좋군요!”
‘좀비 출몰’이라는, 보통 사람이라면 먼저 놀라 관심을 갖고 의문도 표할 법한 사안에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행동이 느린 좀비 분들은 봐주고 졸라 빠른 좀비 놈들만 아작 내는 거야. 알겠지?”
“복명!”
흐으음. 이제 수하들 동원은 다 끝났는데… 근데 뭔가 하나 잊고 빠트린 것 같은 기분이………………
「주인님!」
응? 아… 정탐 보냈던 막시무스가 돌아오는 모양이군. 원래는 내일 새벽에나 만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걸 보면 다른 문제가 생긴 거라고 봐야겠지?
어느 정도 떨어진 건물 위에서 얼핏 보였던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야마카시…였던가? 그 건물을 타고 다니는 극한 스포츠의 최고 실력자를 보는 것 같아. 웬만한 내가고수의 경공 못지 않겠 어, 근데 이번엔 혼자 가 아니네?
막시무스보다는 못한 것 같았으나 그래도 나름 뛰어난 동작으로 따라오고 있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하나, 둘, 셋… 흠. 동양인과 흑인이 반반씩 섞여 있고… 막시무스를 포함해서 모두 일곱 명이군. 일곱 명의 싸움 노예들(아마도)은 치킨 할배의 집 옥상에 집결했고, 나 역시 재빨리 뛰어 올라갔다.
응…………? 얘들 왜이래? 싸움전문이었으니까 전신에 엄청 많은 흉터가 있는 건 그렇다 쳐도, 거기에 웬 문신들을 이렇게 많이⋯ 꽃에 용에 잉어(?)까 지 아주 난리가 아니군, 그래. …헛. 엽기토끼도 있다.
“보스~!”
막시무스는 날 부르며 두 팔을 어깨보다 조금 넓게 벌리더니 상체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일제히 똑같은 자세로 몸을 숙인 다.
완전히 한국 어깨들이 형님~ 하면서 취하는 인사 액션과 비쥬얼이네. 싸움 노예의 문화는 한국 조폭 깍두기 영화와 일본 야쿠자 영화 같은 걸 즐 겨보는 자들이 조성한 걸까?
“어~ 그래, 그래. 밥들은 먹었냐~?”
나도 무심결에 약간 그쪽 태도와 멘트를…………….
“예~ 보스~.”
난 아직 못 먹었… 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들 말을 할 줄 아는 거야?”
“말을 잘하는 노예는 나야. 다른 노예는 잘 못해. 그래도 잘 듣는다.”
막시무스, 너도 썩 매끄러운 편은 아니다만 그런대로 말이 통하긴 하니 통역으로 인정해주지.
“좋아. 그런데 어째서 지금 돌아온 거지? 벌써 내가 시킨 일을 끝낸 거야?”
사실 이미 공격 목표가 전부 결정된 상태이니. 막시무스에게 내린 정탐 명령은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미안해, 보스. 못했다.”
먼저 이렇게 나오면 좀 섭하긴 해.
“이상한 병이 생겼다. 다들 놀라서 그 얘기만 한다.”
으음. 역시…………!
막시무스는 한 손을 들어 딱- 손가락을 튕겼고, 즉시 뒤에 있던 녀석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유난히 큰 용이 온몸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녀석 이었는데, 녀석은 몸을 축 늘어트려 잠깐 죽은 체(?)를 하더니 곧 어색하게 흔들흔들~ 움직여 보인다.
“…죽은 시체가 그렇게 움직이는 걸 봤다 이거지?”
“맞다! 다른 사람들을 막 문다고 한다.”
막시무스가 설명을 덧붙이자 몸보고(?) 전문 녀석이 더욱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크왕! 크와악!”
저 녀석, 눈 뒤집혀서 날뛰는 좀비 흉내도 제법 내는군. 나름 재밌기도 하지만… 이게 지금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막시무스.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막시무스와 다른 녀석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모두 이해시키는 건 어려울 것 같았기에 좀비의 위험성과 대처 방법만 집중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런 데 막시무스의 얘기도 들어보니, 노예들 중에서는 아직 좀비가 된 녀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막시무스, 네가 오래 전부터 모두에게 소고기, 특히 뼈와 내장을 먹지 못하게 했다 이거지?”
“그렇다. 그건 나쁜 거라고 했다. 막시무스의 친구는 현명하다. ‘윈드’는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이 섬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것 봐라?
“그랬단 말이지?”
막시무스가 말하는 친구 윈드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치킨 할배 집에 살고 있다. 막시무스는 그래서 이 집 부근을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날 만났 던 것이다.
미나라는 검역관 아가씨와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 녀석의 ‘주인에 가까운 친구’는 이 집의 장남 ‘윈드 S 샌더스’라고 했다.
그 유약형 꽃돌이가 길거리 싸움 노예들의 보스를 거느린(?) 녀석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도 조금 놀랐었지만… 결국 흔한(?) 영화 속의 설정 처럼 ‘소년과 맹수의 우연한 만남과 우정 스토리’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 갔었는데 말이지. 이제 보니 그 꽃돌이가 의외로 보통내기가 아닌지도 모르 겠군.
잠시 후.
기본적으론 막시무스 파(?)이며 임시 대한군발 파인 중간 보스들은 자기 수하들을 챙기러 갔고, 나와 막시무스만 남았다.
“……몽몽. 내부 좀 살펴봐야겠다.”
일반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비상시니까… 음? 그 검역관 아가씨도 기숙사에 안 가고 이 집으로 퇴근해 있었군. 미나 H 샌더스는 탈출 노예(나)를 찾느라 피곤했던지, 자기 방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그 옆방의 쌍둥이 소녀들은 잠옷바람으로 같은 침 대에서 뒹굴거리며 MP3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맨 끝 방의 치킨 할배가 돋보기안경을 쓰고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평범한 가정의 평온한 밤이로군. 물론 윈드 S 샌더스, 저 꽃돌이 소년이 혼자 PC앞에 앉아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소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일견 남다른 건 방의 벽 두 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여기저기 쌓여 있는 저…
“몽몽. 저 방의 책들 좀 확대해서 보여줘.”
…허어~ 이제 겨우 12, 3살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보는 책치고는 너무 두껍고 표지도 암울한(?) 색상이 많은 것 같다 했더니… 무슨 무슨 철학서 니 사상집들이 이렇게 많아? 게다가… 각종 전자 전기 관련 전문 서적에 밀리터리북과 의학 관련 서적까지…………? 얼씨구~ 한자, 라틴어 등등의 다 양한 원서…………? 뭐냐, 쟤? 설마 저런 걸 다 읽었다는 거야?
「모든 서적의 스캔 결과, 윈드 소년의 타액이 일정 간격으로 검출되었습니다. 기타 검출물 및 서적의 상태로 보아 해당 소년은 모든 서적을 평균 한 번 완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 나이에 저 많은 전문서적을 전부 완독…………? 그리고 한 번? 전부 단 한 번 읽고 이해를 해버렸다고..
이건・・・ 또… 천재? 피골이 상접하도록 공부해서 겨우 성적을 유지하는 보통 학생들의 염장을 지른다는 그 얄미운 희귀 종족…………? 분명 희귀 특수 인종임에도 웬일인 지 엄마 친구 분들은 흔히 생산한다는 그. 으음~ 암튼!
“…몽동. 저 녀석이 컴퓨터로 지금・・・ 아니 그동안 뭘 했는지도 철저히 체크해 봐.”
「알겠습니다, 주인님. 우선, 해당 소년은 현재 이 섬의 자체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실시간 뉴스를 검색 중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해킹 툴을 이용하여 일부 언론사와 공공기관의 시스템에 접속 중입니다. 해킹 툴의 셋팅과 활동 기록으로 보아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행동으로 추정됩니다.」 소년 해커도 이제는 그리 드문 세상이 아니라지만……………
「…지금 언론과 공공기관의 블랙 라인에 접촉, 현재 가장 많은 데이터 전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을 확인 중입니다.」
소년의 컴퓨터 모니터에 새로운 창이 뜨면서 동영상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계속 담담했던 꽃돌이 윈드의 얼굴에 흠칫 놀라 긴장하는 표정이 떠오 르고 있었다.
어떤 병원에서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가 광우 좀비(?)가 되는 장면인데… 저 좀비 환자, 약간 낯이 익어.
아무래도 내가 아까 시내에서 처리한 좀비에게 가장 먼저 물렸던 남자인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먼저 좀비가 되고 함께 실려 온 경찰들도 연이어 좀 비화 되면서 주변 사람들을 습격하는 장면이 긴박하게 촬영되어 있었다.
“기어이 이런 일이…………!”
윈드 소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녀석은 창가로 가서 새삼 주변을 살펴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오오~ 보기 드물게 상큼한 꽃돌이로세~」
“요몽.”
「넵. 주인님.」
“네가 보기엔 저 녀석이… 으음.”
사실은 원판 취향의 요몽에게 저 녀석이 원판 계열로 보이느냐고 물으려고 했던 거였다. 하지만 천재 미소년이라고 해서 원판과 연관지어 편견부 터 가질 필요는……………
「저 꿈꾸듯 사색적인 시선과 잠옷 사이로 엿보이는 작살 샤프 쇄골라인 바람직한 기럭지까지…………! 딱 백인 버전 원판 씨네요. 그래도 역시 아직 인간을 벗어난 원판 씨 수준은 멀었고, 저대로 훈훈하게 잘 커주면 혹시… 아, 근데 방금 뭘 물어 보시려고 한 거예요?」
“…아니, 됐다.”
「피이~ 궁금하게……………」
“그보다, 요몽. 넌 매스컴 시스템 장악한 다음에 대기하고 있으랬잖아.”
「그건 벌써 다 끝냈지요. 이제 명령만 내려주시면 된다구요.」
“그냐? 그럼 바로 시작해. 레벨 1, 아니 2로 시작해.”
「50%의 채널에서만 정보를 제공하란 말씀………! 넵! 요몽 출동입니다아~!」
…이제 이 섬의 방송 중 절반은 기존의 정부 방침대로 ‘별일 없다. 약간의 소란은 공권력이 해결할 테니 국민들은 안심하라’는 내용을 거듭할지 몰 라도, 요몽이 장악한 채널은 진실을 보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졸라 빠른 좀비가 될 녀석들을 미리 최대한 많이 처치하며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으음… 연옥서생 사부와 나 진유준………! 우리 연옥도 출신들을 아주 일각에서는 섬을 전문적으로 가라앉히는 섬 킬러, 섬 분쇄기(?)라고 매도할 수 도 있겠지만, 난 사실 이렇게 처음 만난 섬의 주민들을 위해 애를 쓰는 나름 착한 청년이라는 말씀…………!
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자리에 앉아 결가부좌를 틀었다. 원래는 잠깐 치킨 할배네 안부만 확인하고 수하들과 함께 쓰레기 청소에 나설 예정이었 지만 생각이 바뀐 것이다.
윈드의 외모와 일부 특성에서 원판 녀석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 무지하게 마음에 걸리기는 해.
그치만 요즘 기름값이 더럽게 많이 올랐다고 하니까, 아직 트럭 얻어 탄 차비 지불에 부족함이 있을지도. 크흠. 음… 하여간 어차피 좀비 도시 체험 이벤트(?)를 피할 수 없는 거라면, 비쥬얼 좋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편이 낫겠지, 뭐.
치킨 할배의 커피 프린세스 3호점 옥상에서 운기조식에 들어 간 후, 대략 8시간이 지났을 때.
후으음…! 벌써 날이 밝기 시작하는 건가?
눈을 떠보니, 저 멀리 섬의 동쪽 산등성이로 태양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서서히 자신의 색과 밝기를 찾아가는 도시의 전경은 간밤에 본 야경이 무색할 정도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이 상황이 더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는군. 이 아름다운 새벽의… 좀비떼 러쉬…………!
나는 무심결에 ‘러쉬 앤 좀비~!’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버린 건지, 눈 앞의 거리와 골목마다 비척거리고 걷는 좀비들만 보일 뿐이었다.
“…막시무스.”
무거운 음성으로 막시무스를 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난 운기조식 중에도 조금 전부터 막시무스가 어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감 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놔. 혼자 먹지 말고.”
“응. 여기. 오늘은 윈드가 많이 줬다.”
치킨 할배 손자답게 치킨을 아침으로 준 모양이다.
““무’는?”
“헤헤~ 윈드는 항상 무를 하나 더 준다.”
그런 바람직한 쎈스를…………! 음. 하여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고, 금강산도 식후 땡이랬다고.. 일단 이 치킨이라도 좀 먹고 시작해야지. 음. 쩝, 쩝… 광우 좀비떼를 내려다보면서 AI 치킨(?)을 먹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구먼.
“쩝, 우물~ 음… 윈드한데… 쩝! 내 얘기했지?”
“응. 우걱! 쩝!”
“쩝. 아작아작…뭐래?”
“음음. 도와… 꿀꺽! 달래. 음… 울고 있다.”
“윈드가?”
“아니. 쌍둥이들이 운다. 윈드는 켄터키 할아버지와 미나 아가씨와 준비하고 있다.”
“음. 쩝… 무슨 준비?”
“창문하고 문은 새벽에 다 막았다. 하지만 도망쳐야 할지 모른다. 무기하고 식량하고 준비한다.”
몽몽이 좀비떼의 일부가 이 가게로 오고 있다고 경고해준 건, 사실 한 시간 정도 전이었다. 내가 운기조식조차 풀지 않고 그냥 방관하고 있었던 건 윈드 소년과 치킨 할배 가족들의 초기 대응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00점. 아니, 소년에게는 보너스 점수까지 더 얹어줘야겠어. 나이도 어린것이 치킨 할배와 의사 누님, 막시무스까지 아울러 지휘관 역할을 하며 좀비떼를 상대로 한 공성전을 시작한 거 자체도 칭찬할 만한 일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대단한 점은 따로 있지.
몽몽의 보고에 따르면, 윈드 소년은 자신이 먼저 알게 된 초유의 위기 상황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더러, 쌍둥이 동생들이 TV를 보지 못하 고 잠들도록 유도했다고도 한다. 그리고는 밤새 혼자만 나름의 생존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체력전’을 염두에 두고 가족들을 쉬게 했다는 건데… 이건 정말 어린 소년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지. 역시… 고 녀석 은 단순한 학구파 천재가 아니었어.
쾅!
가게의 닫힌 문을 치는 소리였다.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던 좀비들이 드디어 이 건물 안의 살아 있는 인간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우워어어어~.”
기분 나쁜 울부짖음에 이어 쾅쾅 문이며 여기저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막시무스가 먼저 먹던 것을 던져버리고 2층과 연결된 통로 로 향했으며, 나 역시 출격하기로 했다. 한 손에 정글도를, 한 손에 치킨 한 쪽을 들고.
잠시 후.
나는 2층 자기 방에서 어깨에 메는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중이던 윈드 소년과 딱 마주쳤다. 강력한 응원군을 반가워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소 년의 얼굴에 우선적으로 떠오른 감정은 ‘혼란’에 가까운 것 같았다.
뭐… 나도 팬티바람으로 한 손에 치킨 조각을 든 채 믿음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긴 했어.
“난 어제 저녁부터 굶었단 말야.”
기어이 남은 것을 입에 넣자, 윈드 소년이 픽 웃었다.
“노예가 아니라 바깥세상에서 오신 분인 거죠?”
“음음. 그래. 바깥세상에 대해서… 우물, 꿀꺽! 음… 너처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니?”
윈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는 한, 일반 국민들 중에는 없어요. 일부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처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긴, 저도 최근에야 겨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요.”
몽몽의 보고에 따르면, 이 윈드 소년의 컴퓨터에는 엄청난 용량의 다양한 데이터가 몽몽도 감탄할 정도로 잘 정리되고 비교 분석되어 ‘바깥세상의 실체’를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도출되어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수십만의 사람들을 감쪽같이 바보로 만들어 온 ‘왜곡 정보’ 들도 이 어린 천재를 속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쉽진 않았을 텐데… 참 대단한 녀석이구나. 기특해.”
“뭐, 뭘요. 전 다만…………….”
“됐어, 인마.”
좀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내 쪽도 크지만 때가 좋지 못했다. 나는 손을 들어 소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of…….”
윈드는 비로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지만, 바깥에서 좀비들의 괴성이 들려올 때마다 안색이 굳어지 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도 숨기지 못했던 것이다.
“천재든 뭐든, 애는 애……………! 역시 몸빵은 나 같은 어른이 해줘야지, 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멀쩡한 집기들이 전부 유리로 된 곳을 막는데 쓰여서 전쟁터처럼 살벌한 분위기로 변해버린 카페에 치킨 할배 패밀리가 모여 있었다.
“앗! 탈출노예?”
검역관 아가씨 미나 샌더스가 먼저 놀라며 날 가리키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어젠 미안했다. 하지만 여자한테 그런 신체검사를 받는 건 좀 그렇잖소.”
“너, 아니, 그, 저, 그게………….”
훗. 꽤 재미있게 반응하는구먼.
미나는 입을 벌린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버벅대고 있었고, 치킨 할배 켄터키 (본명도 좀・・・) 씨도 혼란스런 표정으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쌍둥이들은 서로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 있는 폼이 거의 정신 줄 놓은 상태인 것 같군. 당연히 나의 등장에도 반응을 보일 여력도 없는 것 같아. 하 긴, 누구라도…
이렇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합창을 들으며, 문과 창문들마다 들썩거리며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는 쉽지가 않겠지.
“윈드. 당장 여길 떠날 준비해.”
나는 쌍둥이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꽃순이들, 아니 네 동생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여긴 좀 그렇잖아.”
“그건・・・ 그래요.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어차피 여긴 오래 못 버텨. 저렇게 얌전한 좀비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
나는 천장 쪽에 세팅된 TV 화면을 턱짓했고, 윈드는 지금도 방영중인 요몽의 ‘좀비 강좌'(?)와 나를 번갈아 보며 뭔가를 깨닫는 것 같았다. “아…………! 저 해적방송도 아저씨가………….”
콰악!
으음. 나도 모르게 정글도로 카운터를 찍었다.
“형! 님!”
“…예. 형님. 그럼 저 해적방송도 혹시….”
“어, 맞아. 저렇게 심각한 방송을 하면서도 예쁜 척하고 있는 요정 녀석의 이름은… 요몽이라고 하지.”
“요정, 요몽……?”
요몽 녀석, 본래의 날개 달린 모습인 채 해설자로 출연하다니. ! 뭐, 어차피 다들 CG인 줄 알겠지만. 어? 가만? 요몽은 원래 CG였던가? “어쨌든! 나와 막시무스가 길을 뚫을 테니까, 다들 트럭으로………….”
콰직!
이런……………! 시작이로군!
콰직! 우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을 막은 탁자와의자 더미가 안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꾸어어억~!”
벌어진 틈으로 먼저 상체를 비집고 들어오며 괴성을 지른 좀비의 낯이 익숙하다. 저 자식은, 어제 나한테 몇 군데 관절이 꺾였던 장식용 전구 머리 양아치…………? 응?
2층에서도 심상치 않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2층 창문을 뚫고 들어올 수 있을 정도면 이른바 졸라 빠른 좀비들일 것이다.
“다들 정신 차려! 치킨・・・ 켄터키 씨! 검역관 양! 쌍둥이를 보호해!”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그들을 지나쳐 문 쪽으로 향했고, 막시무스도 날 따랐다.
“꾸워- 억! 끅.”
전구 머리 양아치의 괴성이 애매하게 끊긴 것은 당연히 나의 정글도에 살포시(?) 찍혔기 때문이었다.
쾅! 콰르륵~!
아차, 천장?
천장을 뚫고 들어 온 좀비가 착지한 곳은 바로 쌍둥이들의 코앞이었다. 좀비답지 않은 기습을 감행한 일본 교복 좀비가 크왁- 입을 벌렸다. 그러 나 그 입에 쑤셔 박힌 것은 차가운 엽총의 총구였다.
투앙~!
좀비의 머리에 시원스런(?) 구멍이 뚫리며 뒤로 털썩 쓰러졌다.
오~! 켄터키치킨 할배의 멋진 원샷!
“흥! 이 못된 놈들을 언젠가 꼭 이렇게 해주고 싶었어!”
켄터키 씨의 일갈이 채 끝나기도 전에 2층 계단에서 두 마리의 좀비가 쿵쾅거리며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역시 어제의 그 양아치 멤버들이었다. 꽝! 꽝!
연달아 울린 두 방의 총소리와 함께 양아치 좀비 두 마리도 허무하게 뻗어버린다.
“…우리들도요, 할아버지.”
멋진 권총 사격 실력을 보여준 미나, 윈드 남매였다.
“…훗! 모두 준비가 된 것 같군.”
나는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다시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양아치 좀비가 어느 정도 허물어 놓은 장벽을 일반 좀비들이 마저 허물며 꾸역꾸역 들 어오고 있었다.
“가급적 방어만 해! 이 좀비들은 나중에 다시 되돌릴 수 있어!”
“아, 알아요! 그것도 요몽 양이 알려줬어요!”
윈드가 대답하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전기충격기입니다, 주인님. 저의 스캔 결과, 강한 전류는 일시적으로 좀비의 행동을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우”
처연한 울음소리와 함께 손을 뻗어 오는 좀비 중 하나의 가슴에 정글도의 끝을 살짝 댔다.
파츳!
희미한 스파크가 일며 좀비의 몸이 덜컥 고장(?)이 나는 기색을 보이면서 쓰러졌다. 나의 현천기공(玄天氣功)은 인체의 미세한 전류를 증폭시키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비루 내공 때문에 비루 발전만 가능하고 최소 1초는 다시 충전(?)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치만. 뭐,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군, 그래.
나는 충전이 끝난 후에 다시 다음 좀비를 감전시켰고, 한 박자 쉬고 다음 좀비, 또 한 박자 쉬고 다음을 반복하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몰려드는 숫 자에 비해 너무나 느린 일반 좀비들의 속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으~ 그래도 사방에서 덤벼들기 시작하니까 너무 바쁘… 웃! 이런!
퍽~!
내 팔을 잡기 직전이던 좀비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옆으로 픽 쓰러져 버렸다. 막시무스의 카포에라가 작렬한 것이다.
쿵작. 쿵작.
막시무스는 언뜻 그런 박자가 연상되는 리듬으로 춤추듯 좀비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단순 패턴의 박자로 보아 녀석도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내가 한숨 돌리기에 충분한 도움이었다.
“좋아! 모두 탑승! 빨리!”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는 무심해서 그런지, 트럭에 타는 건 생각보다 수월한 편이었다. 나와 막시무스가 가까운 좀비들을 처 리하는 사이에 켄터키치킨 할배가 재빨리 운전석에 올랐다.
근데 이럴 때 보면 꼭 시동이………….
쿠릉~.
훗. 영화와 달리 한방에 시동이 걸려 주는군, 그래.
나의 기우를 날려주는 시동에 이어 트럭은 쿠왁- 기운찬 소리와 함께 출발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느릿한 좀비들의 모습이 빠르게 멀어졌다. “꺄~아핫하~!”
막시무스가 독특한 환호성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들고 기뻐했다. 그리고………….
끼이익~! 쿠당탕!
좋아하다 말고 참 시원스럽게도 자빠지는군.
“막시무스, 괜찮냐?”
“으~ 괜찮다. 하지만 혹이 난다.”
치킨 할배가 카포에라의 막시무스가 넘어질 정도로 급정거를 한 건, 속도를 내기 시작한 트럭 앞의 도로에 몇 명의 좀비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엔 어린 소년 좀비도 있었다.
“아! 토비! 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토비예요!”
윈드가 안타깝게 외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 이런 문제가 있었군.
“이봐요! 내가 운전할까요?”
“…아닐세, 노예 친구!”
치킨 할배는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트럭을 출발시켰다. 트럭이 빠르게 가속하며 소년 좀비를 향해 질주하자 미나가 두 팔로 쌍둥이들의 눈을 가렸 다.
끼이이-.
소름끼치는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급격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트럭!
으윽! 설마! …핫! 이거, 이거……………
나도 섬뜩했을 정도로 위태로운 터닝이었지만 결국 트럭은 뒤집히지 않고 평형을 찾더니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치킨 할배의 위험한 곡예 운전이 도로에 남긴 스키드 마크 위로 멀쩡한(?) 좀비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단 한 명도 치지 않고 교묘하게 빠져나온 것이다. “핫핫핫~! 어떠냐, 윈드!”
와우~! 멋져! 할아버지, 최고예요!”
기뻐하는 윈드 옆에서 나도 비죽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지켜줄 의욕이 나는 아니, 훌륭한 동반자들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노예 친구! 이제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그야 당연히 암울한 좀비 세계의 오아시스, 좀비물의 로망…………!
“백화점! 백화점으로 가세요!”
나는 그렇게 알려주며, 어느 사이 조금 흘러내린 팬티를 끌어 올렸다.
…거기 가면 바지부터 챙겨 입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