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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31화 : 미래의 아이들


1 미래의 아이들

화이트 판타지아(White Fantasia) 최고의 백화점!

내가 켄터키 할배에게 말한 행선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기분상’ 한 소리였고, 이 작은 섬나라에는 본래 백화점이 달랑 한 개라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몽몽의 보고대로 바깥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훌륭해 보이는군. 게다가 이름도 맘에 들고 말야.

우리 일행이 탄 트럭이 시내를 가로질러 백화점에 가까워지면서 백화점 건물 상단에 설치된 간판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HWAGAEJANGTER’

누가 지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로서는 정이 가는구먼. 저 명칭처럼 진짜 시골 장터에 가듯 부담 없이 갈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주인님.」

“이봐, 노예친구!”

몽몽과 켄터키 할배가 거의 동시에 날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럭이 정지해버렸다. 시내에 들어왔어도 좀비들의 숫자가 그렇게 까지 많지는 않 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백화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수가 늘어나서 더 이상은 교통사고(?) 없이 가기가 어 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좀비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냥 차로 밀어붙이며 통과해버리지만 우리야 그럴 수가 없으니……………

“잠시 대기”

으으음… 어째 다 와서 약간 애매한 상황이 되었군.

「…도착시간은 약9분 20초정도후로 추정됩니다.」

또 으음~ 어쩐다?

이제 백화점과의 거리는 잘해야 200미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좀비들은 그 주위를 포위하듯 모여들어 그야말로 장터의 인파처럼 우글거 리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사방에서 끊임없이 모여 들고 있는 중이었다.

“크르륵.”

거북한 목 울림소리를 낸 것은 정지한 우리 트럭 옆을 지나가던 중년 남자좀비였다.

“크으~”

우리를 감지하고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 쪽의 소년 윈드가 먼저 좀비에게 손을 뻗었다.

파츳!

윈드의 손에 들린 전기 충격기가 확실하게 좀비를 쓰러트렸다.

“아아~.”

약간 뒤쪽에 앉아 있던 쌍둥이 소녀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트럭 뒤쪽에서도 좀비 두 분께서 군침을 흘리며 기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팟! 퍽!

나의 정글도와 막시무스의 강력한 발차기가 간단하게 좀비들을 격퇴해 주었는데도 두 소녀의 얼굴에는 이미 새삼스런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백화점 주변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트럭으로 접근 중인 좀비들의 숫자도 빠르게 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문제는 이 쌍둥이들이로군. 요 녀석들이 지들 오빠 ‘윈드’처럼 빠릿빠릿한 상태라면 돌파를 강행하든 다른 방도를 찾든, 어떤 식의 진행이라 도 훨씬 수월해질 텐데……………

나의 소박한(?) 바람과 달리 쌍둥이 소녀들은 계속 애절한 태도로 지들 언니인 검역관 아가씨 미나에게 매달릴 뿐이었다.

“몽몽. 주변에서 잠시 짱 박힐 만한 곳 좀 찍어줘.”

「우측건물의 귀금속 취급 점포가 비어 있………….」

「앗! 조심하세욧!」 응? ・・・윽!

요몽의 경고 직후, 본능적으로 몸을 숙인 순간.

투앙!

뭔가가 트럭의 지붕을 때렸다.

・…총격? 백화점 방향?

일행 모두가 다급하게 몸을 낮추며 운전석 뒤로 몸을 숨겨야 했다. 알 수 없는 총격도 총격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좀비들에 대한 방어가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

“요몽! 어떻게 된 거야?”

일찌감치 백화점 건물의 자동화 설비를 장악하여 피난처를 확보 해두는 건 요몽 담당이었다. 물론 누구든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피난해 오면 받아주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게, 피난 온 사람들 중에는 경호업체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직업에 비해 사격 솜씨가 좀………………」

에구! 그 사람들이 우릴 도와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런 식의 도움은 오히려 방해가 될………….

“크어어~”

어느 사이 다가온 좀비들이 거침없이 짐칸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을 때, 다시 몇 발의 총격이 이어졌다.

“이런 짱!”

그게 아니잖아! 명백하게 좀비들이 아닌, 우리와 트럭을 노린 총격이야!

「익! 나빠!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요몽이 뒤늦게 당황하여 뭔가 했는지, 더 이상 총격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미 우리는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있 었다.

파츳! 팍! 퍽! 빡!

나와 윈드, 막시무스, 미나가 일제히 좀비들을 처리하여 트럭 밖으로 밀어내버렸다. 약간 다급한 순간이었을 뿐, 크게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할 정 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살~짝 돌기 시작 하는 중이었다.

「죄송해요, 주인님! 전 설마 주인님 일행을 노리는 건 줄은 몰랐어요!」

“모두 저 가게로 대피한다! 당장!”

내가 소리치며 일어서자 운전석의 켄터키 할배도 뛰쳐나왔다. 우리는 카페에서 빠져나올 때처럼 나와 막시무스를 선두로 좀비 떼를 뚫으며 몽몽이 알려준 가게로 향했다.

「아까부터 대장인 양 행세하던 자가 있는데, 그자가 총을 쏜 거예요. 주인님 일행 때문에 자기들까지 위험해질 거라며……….]

난 요몽의 중계 설명을 들으며 한 발 먼저 금은방으로 가서 잠긴 문의 자물쇠를 정글도로 잘라버렸다.

“빨리! 다들 여기 숨어 있어!잠시만 버티면 돼!”

일행들을 모두 안으로 들여보낸 다음 문을 닫았지만, 정작 난 들어가지 않았다.

「주인님. 총을 쏜 자와 그 패거리들이 계속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어요. 자기들이 살려면 더 이상 아무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치이! 폐쇄된 건물의 문이 열려서 자기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이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고……………」

“됐어. 요몽.”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의 자기 방어권, 일부 인정. 그러니까… 대략90퍼센트만 죽여주겠어.”

나는 선언과 동시에 정글도를 휘둘러 정면에서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를 찍었다. 보통 좀비였기에 도의 등을 이용했지만, 그래도 맞은 놈은 맥없이 주저앉아버렸다.

빡! 빡!

연이어 달려드는 녀석들도 적당히(?) 찍었더니, 역시 힘없이 쓰러져버린다.

「…에고. 주인님 빡… 아니, 진짜 화나셨네.」

“90퍼센트 연습한 거야, 요몽.”

「에? 진짜요?」

「그래, 요몽. 조금 전 주인님께서 행한 물리적 타격은 좀비들이 간신히 두 번째 죽음을 면하는 정도였어.」

「와아~ 역시 울 주인님! 희한하게, 빡 돌수록 더 솜씨가 좋아지신 다니까?」

「참고로, 주인님. 두 번째 타격이 가장 90퍼센트에 근접했습니다.」

“땡쓰, 몽몽.”

몽몽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백화점 방향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당연히 더 무수한 좀비들이 두 팔을 벌려 허우적대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 러나 나는 슬쩍 몸을 틀어 회피하며 걸음을 빨리 하는 것만으로도 좀비들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이 고전 정통(?) 좀비들은 역시 더럽게 느려. 어지간하면 굳이 힘들여 쓰러트릴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말야.

나는 이제 혼잣몸이라는 홀가분함을 만끽하며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뛰는 방향을 바꾸거나 정글도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느린 좀

비 떼를 통과하는 건 쉬웠다.

「좌후방에 변종 좀비, 출현!」

몽몽이 경고한 방향에서 타닥-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멈추며 돌아보는 순간, 두 마리의 날쌘 좀비가 파팟-뛰어올랐다.

좀비 주제에 점프씩이나!

약간의 칭찬을 담아 한 칼씩을 날려주었다.

퍽! 퍽!

머리가 반쪽이 나는 소리와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의 차이는 크기뿐이었다.

「우측2층!」

“크아악!”

기습 타이밍도, 기백(?)도 좋았지만… 2층 건물의 창문에서 뛰어내린 좀비놈 역시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각각 떨어졌을 뿐이었다.

이 졸라맨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정글도를 휘두를 수 있어서 좋군. 물론대가리 숫자가 많아지면 곤란해질지도 모르지만………….

「주인님께서 ‘졸라 빠른 좀비’라고 규정한 좀비들을 저는 방금 ‘변종 좀비’라고 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원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발 생 원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변종’ 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정식 학명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모션 부스터 (Motion Booster)’ 라는 표현을 앞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학구적인 우리 몽몽선생………! 맘대로 하시구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모션 부스터… 줄여서 ‘MB 좀비’ 들이 겁을 먹은 것처럼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서 나의 화개장 터 백화점 가는 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빡! 빡~! 파츳! 빡! 파츳!

느린 보통 좀비들의 머리를 가볍게(?) 찍거나, 아무 곳이든 대고 감전을 시켜주며 유유히 좀비 무리 사이를 통과하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짜잔~ 주인님, 입장~!」

요몽의 환영 멘트와 함께 굳게 내려져 있던 백화점의 셔터가 스르르-올라갔다. 물론 살짝만 열렸다가 나만 재빨리 들어가고 좀비들이 따라오기 전에 얼른 다시 닫혔다. 셔터 안쪽의 투명한 유리문의 손잡이에도 굵은 쇠사슬이 감겨 있었지만, 당연히 일도양단!

“머, 멈춰!”

낯선 남자의 고함소리는 내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뒤늦게 울렸다. 내가 들어오는 과정에 놀라서 멈추라는 소리가 한 박자 늦게 나온 모양이었 다. 그래도 저 경비원 복장의 남자는 반자동 엽총을 나에게 정확하게 겨누고 있었으며, 그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들 역시 권총으로 날 겨누고 있 었다.

저놈들 뒤로 남녀노소가 폭넓게 뒤섞인 구성의 사람들…………! 소위 보통 시민들로 보이는 저들의 숫자는 대충20여 명 정도…………!

“노예예요!”

“세상에!”

“저것 봐! 노예가 무기를 들고 있어!”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온 거지?”

“저 녀석은 물리지 않았을까?”

“문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열어줬어?”

이런저런 숙덕임 소리와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그러나 저 무지할 뿐인 사람들은 일단 이해해주기로 했다.

“맥스! 그 멍청한 자식! 노예 따위를 살리려고 문을 열다니! 그 미친놈 때문에 다 죽을 뻔했잖아!”

나에게 계속 총을 겨눈 채 누군가를 욕하는 저놈………! 싸가지 없는 언행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 에게 총을 쏜 건…….

“그 좀만이가, 저 좀만이냐, 요몽?”

내가 묻자, 놈의 뒤쪽 카운터의 TV화면에 찌푸린 얼굴의 요몽이 나타났다.

“맞아요, 주인님! 주인님 일행께 마구 총질을 한 건 바로 그 남자와 부하들이에요!”

범인으로 지목된 놈들이 흠칫 놀라며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공공보법(空空步法)을 펼쳐 단숨에 놈들의 코앞으로 이동했다.

“당신들만 살겠다고 남들을 죽이려고 했죠? 당신들은 나만도 못 해욧!”

놈들은 요몽의 자학성 비판 내용보다, TV 속의 리포터가(?) 자신들을 야단치는 상황자체에 당황한 것 같았다.

“어이!”

바로 눈앞에 선 내가 짧게 부르자, 놈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니 그러고 싶어 했었다.

“어……?”

대장 격인 듯한 재수 결핍 싸가지 인상의 백인 남자는 물론이고, 부하 두 명까지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모두 나에게 마혈(痲穴)을 제압당해서 말조차 제대로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당신들 모두주인님께 90퍼센트쯤 죽도록 맞을…………」

“아냐, 요몽.”

「에? 예?」

나는 놈들을 차례로 잡아 문 쪽으로 집어 던졌고, 놈들의 몸은 열려진 유리문을 통과해서 셔터 앞까지 밀려갔다.

“요몽. 셔터 올려.”

「에고. 그렇게 나오실 줄은… 하여간, 넵.」

셔터가 스르르~ 어느 정도 올라가자, 그 틈으로 좀비들의 팔이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잠깐은 막연히 더듬거리는 것 같더니 곧 가까운 곳 의 제물을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휘젓고 있었다. 싸가지 놈들은 수많은 좀비들의 손짓을 보며 공포에 질려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런다고 나에게 잡 힌 마혈이 풀릴 리가 없었다.

“뭐하냐, 요몽. 더 열어, 더!”

「그치만, 더 열면 기어 들어오는 좀비가 있을 수도… 아, 알겠습니다.」

셔터가 좀더 올라가자 좀비들은 드디어 상체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치 특가세일 판매대 앞으로 몰려든 아주머니들처럼 무시무시한 기 세로 싸고 질 좋은(?) 먹잇감을 앞다투어 움켜쥐고 있었다.

“으! 으으~!”

싸가지들이 불쌍한 신음성을 흘리며 셔터 밑으로 끌려 나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코딱지만큼.

뭐 놈들이 이민자였으면 곧 심기일전 아니, 몸기일전하여 MB 좀비로서 돌아올 테지. 그땐 나머지 10퍼센트까지 죽여주는 거고, 만약 보통 좀비 가 되면 나중에 다 함께 몰아서 치료를… 으음. 근데 사실 저런 놈들은 나중에도 별로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기도………….

“뭐야! 무슨 일이야!”

흠. 이제야 겨우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은 분이 나오시는 건가?

로비에 있던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겁에 질린 채, 나의 행동을 막으려고 나서기는커녕 제대로 항의하는 이조차 없는 실정이었다. 방금 소 리친 사람은 이제 막2층에서 모습을 드러낸 청년으로서, 복장과 용모로 보아 애송이 경호원인 것 같았다.

「통제실에 있던 ‘맥스’ 예요. 유일하게 자기 대장에게 반발하여 주인님 일행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 훈남이죠.」

호오. 역시………….

“누가 문을 연거야! 대장은 어딜 간 거고!”

맥스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계단을 뛰어내려 왔다.

“다들 뭐해요? 빨리 막아야지!”

맥스가 막아야 한다고 하는 건 당연히 셔터 밑으로 완전히 기어들어온 좀비들이다. 하지만 로비에 있는 시민들은 모두 무기력하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을 뿐이었다. 행동만 봐서는 어느 쪽이 암 생각없는 좀비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다들 대체! 으~.”

갑갑해진 맥스가 혼자 권총을 뽑아 들며 내 옆을 지나쳐 가려고 했을 때, 나는 정글도를 들어 맥스를 막았다.

“보통 좀비는 죽이면 안돼.”

“어? 말을 할 줄 아는 노예야?”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미안.”

“윽!”

정글도의 등으로 가볍게 손목을 맞은 맥스가 권총을 떨구었다. 나는 맥스의 옆을 스쳐지나 좀비들 앞으로 나서며 정글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빡! 빡! 파츳! 빡! 빡! 파츳!

90퍼센트 살상력의 마빡 때리기와 전기 충격을 번갈아 쓰며 쉬엄쉬엄 공격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화점 안으로 들어온 좀비 들 모두 나혼자 쓰러트릴 수가 있었다. 그사이에 맥스도 다시 권총을 집어 들었지만 결국 맥없이 총구를 내리고 있었다.

“괴, 굉장해! 바깥에서 좀비들을 뚫고 오던 사람이 바로 너였구나!”

내가오는걸 위층에서 봤던 모양이군.

“하지만 좀비들은 더 끝도 없이 몰려 올… 아, 그래! 내가 어떻게든 문을 닫을게. 넌 계속 좀비들을 막아!”

맥스는 그렇게 감히 내게 명령하며 문 쪽으로 달려갈 태도를 보였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귀찮아.”

“뭐?”

난 맥스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좀비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요몽! 셔터 완전개방!”

“옛썰~!”

난 목소리를 높여 명령했고 TV화면 속의 요몽이 대답했다.

“자, 잠깐! 무슨 짓이야!”

맥스는 다시 권총을 들어서 나와 TV 속의 요몽을 번갈아 겨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홋. 이런 상황에서도 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 나 진유준처럼 근본적으로 착한 모범 청년인… 뭐, 암튼.

…3.2.1 0!

아까 몽몽이 9분 20초 정도 남았다고 하던 ‘도착 시간’ 카운트가 이제야 끝났다.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어?”

모범청년 맥스는 문득 뭔가를 깨닫고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내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놔줘. 아군이야.”

“복명!”

대답한 것은 기척도 없이 맥스의 뒤를 점하여 목에 칼을 겨누고 있던 은사마군(隱死魔君)이었다. 그녀는 맥스를 풀어주고 물러나며 포권했다. “속하, 은사마군 이하 모든 병력이 집결 완료하였습니다.”

“음. 좋아.”

나야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모든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맥스는 비로소 입을 따악 벌렸다. 그는 완전히 열려진 셔터 너머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뭐,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엄청난 좀비 대군을 좀비보다 더 괴물 같은 병력들이 나타나서 제압해버리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건 아니 지.

원래 내가 내린 명령은 ‘대피중인 켄터키 할배 패밀리를 무사히 백화점까지 데려오라’였다. 그러나 지금 CR 부대의 현장지휘관은 천음마군이다. “천주의 명이다! 길을 터!”

외치는 소리로 보아서는 내 명령 이 제대로 전달된 것 같고……………

“천주의 뜻이다! 적당히 죽여!”

…그게 그러니까, 저것도 분명 내 뜻이 맞기는 한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어째 구출이나 수송 작전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게.”

요몽 말처럼 천음마군을 비롯한 CR부대원들의 전투는 매우 살벌하며 가차가 없었다. 나도 물론 거침없이 좀비들을 처리했었지만, 난 그래도 ‘그 냥 뚫고 지나가는 식이었는데 비해서 천음마군 패거리(?)는 좀비들을 그야말로 ‘쓸어버리는’ 중이었다.

빡! 빡! 뻑!

정작 천음마군이 좀비들을 줘 패는 패턴은 나와 비슷하게 평범한 (?) 편이다. 그러나 CR들의 전투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슈아아아~

물………! 백화점 주변 분수대의 물이 솟구치더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아쿠아린 형제와 세이렌 자매들 주위의 허공으로 모여들어 일렁이고 있었 다. 그것만으로도 신비로운 광경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콰악-!

물의 일부가 순간적으로 대포처럼 강력하게 쏘아져 좀비들을 날려 버리고는 곧바로 다시 녀석들에게 돌아간다.

저 수중형 돌연변이 녀석들이 물속에서 자유로운 것뿐만 아니라 물 자체를 조종할 수도 있단 얘기는 들었었어. 하지만 설마 저 정도로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을 줄은… 웃! 쿠왕~!

여기까지 느껴지는 충격파………! ‘쓸어버린다’는 표현에 가장 걸맞는 건 역시나 BB형제와 비비안 남매로군. 저 빅 쓰리 남매의 충격파 펀치 한 방 한 방에 좀비들 대여섯이 종잇장처럼 날아가 버리니………………

녀석들의 주먹으로 하는 빗자루질(?)이 가장 확실하게 좀비들을 쓸어내고 있는 가운데, 다른 CR들도 부지런히 각자의 특기를 발휘해서 좀비들을 격퇴하고 있었다.

「헤에~ 그러고 보니 저 ‘발전소’ 라는 별명의 전기 소년은 아주 그냥 좀비들 퇴치에 딱이네요.」

“그러게.”

「에고. 하지만 저렇게 애매한 입장의 CR도………………」

“훗.”

내가 결국 작게 소리 내어 웃고 만 건, 사탄의 인형 처키 때문이었다. 녀석은 작은 몸으로 덩치 큰 좀비의 등에 업히듯 매달려 식칼 손잡이로 그 좀 비의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다.

「무슨 마늘 찢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 위력은 있는 것 같네 뭐.”

「그러게요? 몇 대 연속으로 때리니까 결국 쓰러지네요.」

…처키의 분투도 분투지만…그러고 보니, 다른 CR들 중에도 ‘좀비를 완전히 죽이지 않고 쓰러트리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능력뿐인 녀석들이 꽤 있군.

“기특한 녀석들………!”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사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더 무서울 때도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아주 어릴 적에는 생명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각종 벌레들 을 아무 느낌도 없이 천천히 분해하면서 놀았던 적이 있었다. CR들은 특수한 성장 환경 때문에 더 큰 고등 생물체..즉, 같은 인간조차 벌레처럼 아 무 감정 없이 해치면서 살아온 애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 녀석들이 이젠 내 뜻에 따르느라 저렇게 애써 불리한 싸움도 마다 않고 있으니…훗. 이런 맛에 애들 키우는 거 아니겠어?

좀비들의 수는 아직도 상당히 많았으며 도시 곳곳으로부터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켄터키 할배 가족이 숨어 있던 상가로부터 이곳 백 화점 정문까지의 공간은 기특하고 대견한 CR들에 의해 텅 비어 있었다. 그 넓게 개통된(?) 길을 켄터키 할배 가족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 들 기뻐하면서도 어이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한, 복합적인 표정이었다.

「모두 상처 없이 무사・・・ 아! 주인님!」

응?

문밖의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던 시체 (?) 세 구가 들썩들썩 하더니만, 기어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90퍼센트 죽인 놈들…………! 과연 저놈들의 종류는…………….

대장놈이 먼저 이빨을 드러내며 날 돌아보았고, 다른 두 놈 역시 일반 좀비와 다른 눈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MB좀비로군.”

나는 반갑게 정글도를 잡았고, 내 옆의 맥스도 권총을 들었다.

잠시 후.

10퍼센트를 마저 죽여줘야 하는 재활용 불가 좀비들을 가볍게 제거한 후, 나는 잠깐 수고해준 정글도를 다시 어깨에 걸치며 문 옆으로 물러섰다. 켄터키 할배 가족들이 도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웰컴 투 켄터키 패밀리~!”

내가 백화점 입성을 환영하자 비로소 켄터키 할배 가족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켄터키 할배는 좀비들과 전투 중인 CR들과 나를 새삼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일단 고맙다고만 해두겠네, 노예 친구.”

켄터키 할배에 이어 할배의 큰 딸래미 미나도 감사해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윈드가 ‘다른 세상’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애가 너무 이상한 책을 많이 봤나 보다 했는데,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노예가・・・ 아, 아니, 거기에선 노 예가 아닌 거겠죠? 이름이………….”

“진유준.”

“진,유,준………! 진유준 씨, 정말 고마워요.”

“뭐, 별말씀을….!”

근데, 동생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치고는 상당히 인식 변화가 빠른 것 같군. 본래 노예를 자신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하는 애노예인(?)이어서 그런가?

“저어・・・ 형님.”

“왜, 윈드.”

윈드가 손을 들어 가리킨 것은 TV 속의 요몽이었다.

“왠지, 저 소녀가 지금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훗, 기분 탓이 아니야.”

“에? 그렇다면…..!”

원드는 재빨리 주위를 살펴 백화점 곳곳의 감시 카메라를 확인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일찌감치 이곳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장악해 놓았지. 자 이제 요몽에게 정식으로 인사하지, 그래.”

“우홋~! 반가워요, 윈드!”

요몽이 먼저 손을 흔들자, 윈드도 소심한 태도로 마주 손을 들었다.

“저, 저도 바, 반가워요, 요몽 씨.”

음……?

“에이~ 그냥 이름만 불러요, 윈드.”

“그, 그럴까요? 요, 요몽.”

이것 봐라? 윈드, 요 지나치게 똘망똘망했던 녀석이 지금은 완전 홍시처럼 숙성된 얼굴로 말까지 버걱대네? … 뭐, 물론 우리 요몽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미소녀 요정이긴 하지만……………

“…천주.”

“응? 왜, 은사마군.”

재밌는 구경을(?) 방해한 은사마군의 시선이 백화점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무심한 대빵 진유준 때문에 천음마군과 CR들은 여전히 전투 중이었기 때문이다.

뭐, 아직 그리 피곤해 보이지는 않지만………………

“저희들은 ‘특정인들의 수송 및 거점 방어’라는 명령까지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흐음…….”

그동안 몽몽과 요몽이 파악해 놓은 바에 따르면, 이 작은 도시 국가를 다스리는 자들의 은신처 즉, 국회의사당은 아직 건재한 것 같다고 했다. 좀비 사태가 본격화되고 얼마 지나기도 전에 이 섬의 군대 대부분이 국민 보호를 포기하고 그곳 방어에만 투입되었다나? 켄터키 할배 가족을 안전 장소로 데려온 이상, 당장 그 캐싸가지 집합소로 쳐들어가고 싶기는 하지만………

“일단, 전부 백화점 안으로 철수시켜.”

“복명!”

수하들에게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해도, 역시 좀 쉬게 해 주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무지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군대’가 지키고 있는 곳으로 쳐들어갈 예정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어쩐지 거기에는 평범한 군대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아직 얼굴도 못 본 놈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 화이트 판타지아의 정 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KKK단의 보스…………! 소위 ‘제국의 마법사(Imperial Wizard) 케인’이라는 자…………!

KKK단의 중간 보스였던 데릭 허버트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KKK단을 지배하는 마법사 케인은 강력한 마력으로 불사의 좀비를 만들어낼 수도 있 고(광우 좀비와는 다른 것으로 추정) 늑대인간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들을 수하로 두고 있다고도 했다.

그게 정말 딴 세계의 마법인지, 프리메이슨의 과학을 지원받아 이용하는 것인지는 이직 알 수 없지만 만약 그자가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도 시 비를 걸어온 거라면 나름대로 상당한 저력을 가진 자라고 판단하는 편이 옳겠지…………?

지금 프리메이슨에서는 날 어설프게 자극하는 건 피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에레보스(Erebos) 암살단을 동원하여 한방에 말하자면, 내가 천 지파멸식(天地破滅式)을 발동하기 전에 해치워버릴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고도 있다.

마법사 케인 역시 같은 의도로 스카우트된 일종의 용병일 경우에는, 당연히 에레보스 녀석들 못지않은 필살의 한방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음…………? 근데 어째, 나 방금 조금 전에… 그러니까, 계속 잊고 빠트리고 있던 걸 얼핏 생각해냈던 것 같은… 그게 긍께………….

“아!”

나는 결국 깨닫고 은사마군을 돌아보았다.

“데릭 허버트!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항구에서 헤어진 이후로는 접촉한 바 없습니다, 천주.”

이런, 표정을 보니까 은사마군도 그를 까맣게 잊고 있던 모양이네.

“…천음마군.”

마악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천음마군을 부르자, 그는 매우 흐뭇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예. 천주! 여기선 무기력한 좀비여서 시시했지만, 흐흐~ 그 전까지는 모처럼 싸움 같은 싸움이었습니다.”

“뭐, 어쨌거나 수고했어. 근데 혹시 데릭 허버트 못 봤어?”

“예? 누구요?”

한 술 더 뜨는군.

“KKK단이었던 사람이요. 우리가 이 섬에 들어오는 걸 도와준

옆에서 같이 오던 소냐가 알려주자 그제야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아~ 그 남자 이름이었구나. 근데, 그러고 보니 그자는 지금 어딨는 거지? 누구 본 사람 있냐?”

천음마군이 뒤따라 들어오고 있는 CR들을 돌아보며 물었지만 전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쯧. 이거 어쩌다 보니 은따 내지는 왕따로 만들어버렸네.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귀순용사(?)인 사람을 이렇게 대우하면 안 되는 건데 말이야. 게다가……….

“그 사람도 외지인이니까, 만약 좀비가 되어버렸다면 MB좀비가 되었을 거야. 저기, 설마 벌써 그 사람을 이렇게 해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손을 들어 목을 치는 시늉을 해 보이며 물었다. CR들은 물론이고 천음마군도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 같더니… 다행히도 모두 고개를 저 었다.

솔직히, 천음마군은 자기가 해치운 상대를 일일이 기억하고 다닐 것 같지도 않기는 한데… 뭐, 일단은 믿어 보기로 하자.

“사실 그 남자도 나름 한 가락하는 모양이니까, 아직 좀비에게 당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으음. 어떤 상황이던 간에 난처하군. 다시 모른척하는 건 너무 미안한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찾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결국 일반(?) 수하들에게는 다들 앞으로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MB좀비를 만났을 때도 얼굴 확인을 먼저 해’ 라는 명령만 내려둘 수밖에 없 었다.

“몽몽과 요몽, 니들이 더 수고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도시 내의 감시 카메라를 전부 확인하지는 않았는데 이젠 그래야겠네요. 음… 근데 주인님.」

“왜, 요몽.”

「주인님의 그 무섭고도 판타스틱한 마공(爐功) ・・・ 말인데요.」

“…천지파멸식말야? 그게 뭐?”

「그걸 쓰시는 바람에 주인님께서 내공을 잃으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좋은 점도 있네요. 주인님께선 맨날 ‘내가 무슨 조폭 칼받이도 아니 고…’ 라며 한탄 하셨었잖아요. 근데 이제 흉터가 많이 없어졌네요.」

뭐 그거야 그렇지. ‘세포의 비정상적인 활성화 현상’인지 뭔지 때문에 나의 전신에 낙서처럼 가득했던 흉터들 중에서 얕은 건 아예 사라졌으며 깊은 것도 많이 희미해진 상태인 ・・・ 건데, 요몽이 지금 왜 뜬금없이 그 얘기를… 에구, 할 만하구나.

나는 비로소 내가 아직도 팬티 바람으로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중이란 것을 깨닫고 은사마군과 천음마군을 돌아보았다.

은사마군은 나와 헤어진 후에 바로 옷을 구해서 입기는 한 모양 이야. 하지만 어디서 저런 핫팬츠 청반바지에 배꼽티를… 저게 대체 입은 건지 만 건지..크흠. 암튼, 저것도 옷은 옷이니까 그렇다 치고, 천음마군은 아직도 나처럼 팬티 바람으로 야성미(?)를 뽐내고 있군 그래.

“천음마군. 우린 이제 옷부터 입어야겠어.”

“전 아무래도 상관 없… 아, 예, 천주. 그러고 보니 여긴 백화점이로군요.”

천음마군도 소위 ‘좀비 영화의 로망’을 깨달았는지 히죽 웃었다.

“후후. 그것도 주 · 인 · 없는 백화점이지.”

그래… 이 기회에 나도 어디 명품 팬티라는 것도 한 번 입어 볼까나?

“CR! 너희들도 지금부터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 휴식 및 자유시간!”

나의 해산 명령에 이어 TV 속의 요몽도 입을 열었다.

“장난감은 3층! 간식은6층! 자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모두 즐겨 보시라구요~!”

요몽의 부추김에 CR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먼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요몽!”

“넵! 고객님! 찾으시는 코너는 4층! 4층에 준비되어 있습니당! 호홍! 즐거운 쇼핑 되시길 바랍니다아~.”

내가 천음마군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

또링~♬

몽드폰의 메시지 알람음이었다.

「대교님의 문자입니다.」

또링~♬

연속 두 통이라… 홋. 이거 우리 대교 양께서 문자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모양이네?

「참고로, 대교님께서는 현재, 첫 번째로 찾아낸 ‘신들의 유회 멤버’와의 전투 개시 직전입니다.」

에?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문자를……………?

저와 감히 당신

을 모욕했던 자들

에 대한 응징의 시간.

벌써 문자에 익숙해진 듯 자연스러운 타자 솜씨인 건 둘째치고!

곧 첫번째 적의 수

급을 당신께 바치

겠습니다.

으윽! 얘, 왜이래? 신들의 유회 놈들에게 열 받아 있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또링~♬

이건 비화곡 버전.

하지만 이젠 그러

면 안 되겠죠?^^

에고. 살짝 당했다. 대교, 요것이 가끔 이렇게 앙큼한 장난을………….

또링~♬

그래도 적장을 포획하고 

적의 아름 다운 성을 

차지하는 건 21세기 전쟁도

마찬가지겠죠?

・・・응? 성?

「에 ~ 그게요, 이번에 찾아낸 신들의 유희 멤버는 영국의 무지 높은 귀족이더라구요. 흔한 표현처럼 ‘동화처럼 아름다운 성’을 가지고 있어서, 대 교님은 지금 거기로 쳐들어가시는 거고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거 어쩌면 졸지에 유럽의 성을 별장으로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려.

이제 가야해요.

곧 승전보를 전

해 드리겠사와요

「흐응~ 분명히 대교님이 맞으면서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네요.」

“그러게?”

문자 메시지는 아무래도 상대와 직접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서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애교나 여하간의 솔직한 표현도 가능해지는 모양이 다.

“뭐, 나도 맘 독하게 먹고 닭살 짓을 하려고 들면… 울 이쁜 애기, 대교. 아야 하면 안 되니까 조심해서 싸워야 해. 아라찌?”

띠리륑~♬

“그런 식으로… 우으~ 역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서 난 절대 못할.. 근데, 몽몽. 방금 들린 소리는 뭐였지?”

「메시지 송신음이었습니다.

“뭐? 뭔 메시지?”

울 이쁜 애기,

대교. 아이하면

안되니까 조심해

서 싸워야해. 아라찌?

♡\(^_^)/♡

「이상의 내용, 전송했습니다.」

“야, 야!”

「이모티콘은 임의로 첨부하였….J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야 인마! 취소! 취소!”

「알겠습…………」

「에이~ 주인님도 참!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리 창피해하고 그러세요? 두 분이 닭살 커플인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야 인마, 요몽. 그래도 남자가 어떻게 노골적으로 그런 천인공노하게 간지러운 짓을… 아, 진짜, 몽몽! 너도 그렇지, 내가 확실하게 보내라고 하지 도 않았는데 덥석 보내고 난리냐!” 「죄송합니다, 주인님. 명령 접수 및 이행 과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대교님께서 전투 상황으로 들어가 시기 전에 답신을 보내야 한다고 판단하여 서둘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으으음. 큰일 날 뻔(?)하긴 했지만, 몽몽도 나름대로 신경 써준 거니, 더 뭐라 하긴 좀 그렇군.

“천주, 무슨 문제라도…………….”

내가 방금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겉으로도 티를 낸 모양이었다. 은사마군은 물론이고 천음마군까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잠시 딴 생각을… 아, 암튼, 신경 쓰지 마.”

“혹시 저 아이들 때문이신 건..”

응?

이 백화점은 중앙의 커다란 공간을 중심으로, 모든 층의 매장이 오픈된 형태이다. 은사마군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3층의 어린이 매장과 6층 스낵 코너에 몰려 간 CR들이 마음껏 신나게 공짜 쇼핑과 먹자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당연히 그건 더더욱 아니지. 훗. 나도 이제부터 저럴 건데 뭐.”

먼저 남자 속옷 매장으로 들어가며 돌아보니, 천음마군은 슬쩍 다른 옷 매장으로 빠지고 있었다.

이런, 이런… 아무래도 천음마군은 아직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이 없는 것 같군. 속옷에 별로 신경 안 쓰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솔로 인생이야. “그럼, 저도 잠시…………”

“어, 그래. 은사마군도 기분 좀 내보고 그래.”

은사마군도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후, 나는 마음껏 매장을 거닐며 닥치는 대로 속옷을 집어들었다.

“아참. 요몽 넌 좀 가라.”

「호홍~ 새삼스럽게 월 그러세요. 이미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우리 사이에……………. J

짜식이, 누가 들으면 오해할 법한 소리를……………

“그게 아니라, 인마. 넌 윈드한테 가보란 말야. 도와줄 거 있으면 좀 도와주고.”

「아, 맞다! 안 그래도 아까 윈드 군이 면담 요청을 했었어요. 음 그럼 전 임자 있는 남정네 말고, 꽃돌이나 보러 가겠사와요~」

조 녀석, 하여간…….

나는 요몽이 사라지자마자, 팬티를 한 아름 안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근데 남자 속옷에도 뭐 이리 브랜드가 많고. 또 이렇게 해괴한(?)· ! 뭐냐? 이런 걸 일부로 돈 주고 사 입는 남자도 다 있단 말야? …으음. 이 걸 한 번 입어 봐, 말아? …어디, 재미로 한 번…………욱! 눈 버렸다!

나는 몹시도 해괴야시시한 팬티인지 뭔지 모를 몹쓸 것을(?) 벗어버리고, 비교적 정상적인 디자인을 찾아보았다.

이거… 뭐 이래? 부드럽고 편해 보여서 입어 볼라치면 뭐가 다 이렇게 꽉 끼는… 매우 송구스런 디자인인 거야? …음.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다가 문득 드는 의문 하나.

난… 팬티를 고르는 상황에서 왜… 근육 위주로 폼을 잡아보고 있는 걸까……? 으음. 나만 이런 건지 다른 남자들도 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 쨌거나, 최근 몇 년 동안의 뺑이치기가 몸매 관리 효과에는 짱이었군. 말년 병장 때 슬금슬금 침투해 와서 아랫배와 옆구리에 주둔하기 시작했던 군 살 부대가 싸그리 소탕되어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네, 그려.

나는 나름 만족하여 비죽, 웃었다.

그것도 그렇고.. 아직 딱 맘에 드는 놈이 없었다고는 해도, 팬티 값인지 금값인지 모를 정도로 붙여 놓은 가격표를 무시하며 입는 재미는 제법 쏠 쏠하구먼. 난 역시 서민 체질이라 내 돈 주고는 절대 사 입을 일이 없을 테니, 이번 기회에 아주 그냥………….

나는 계속 혼자 피실피실 웃으며 수많은 디자인과 색상의 팬티를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온갖 일탈을 다 해본 나였지 만, 팬티 뷔페(?)는 처음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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