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34화 : 주석궁 전투
4 주석궁 전투
1층에서 만난 한 명의 기쁨조와 다수의 짜증조로 구성된 방어 부대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돌파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위층으로 향하는 길에 긴장과 기대가 여전한 건, 실제 북쪽의 뽀글이 씨도 비밀리에 구입한 모양인 ‘프리메이슨표 용병’ 들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오~죠~ 발음 테스트! 발음 테스트! 오~죠~」
…물론 요몽 녀석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지만……………
「죠히 주인님이래, 고죠, 쌈박질 하난 최고래요~!」
“…지금, 끝말은 좀 이상하지 않았냐?”
「아, 그랬나요? 헤헤~ 그보다 주인님! 축하드려요!」
“뭘?”
「많이 빡돌지도 않으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심도(刀)를 쓰신 걸 보니까 벌써..
“그게 아냐, 요몽.”
겉으로 보인 형태에서 오해를 할 법도 했지만………….
“마음과 도가 하나가 되는 심도… 아니, 마음이 가는 곳에 도가 따른다는 의형수검(意形受劍)의 경지도 못되는… 그냥 조금 잘한 칼질이었을 뿐이 야.”
「에…………? 진짜요?」
「맞아, 요몽. ‘조금 잘한 칼질이었을 뿐’이란 표현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분명 주인님의 뇌파와 검기의 동조현상은 없었어.」
「치이~ 요즘 자꾸 몽몽 오빠가 그런 스캔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니까 헷갈렸잖아!」
「너도 이제 순수한 안목을 키워야…………」
「몽몽 오라방도 참. 나 같은 숙녀가 칼 쓸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슈?」
「그게 아니라…………」
“저기, 얘들아. 잠깐만 조용히 해줄래?”
일단 애들을 입다물게 하긴 했는데 우째 계속 적이 나타날 분위기가 아니네……? 40층이 넘는 건물이니 층마다 적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짜증났 을 일이긴 하지만… 으으음… 결국 9층까지 적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갈 걸, 괜히 응?
“뭐야. 이제야 겨우…….”
10층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칙칙한 쑥색(?)의 북쪽 스타일 군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었다. 덩치가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콤비였지만, 작은 쪽도 나보다는 키가 커 보였다. 놈들과의 현재 거리는 대략9미터 정도였고, 난 일단 이 거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9층까지는 일반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이라서 그렇습니다, 진유준씨.”
“…하긴. ‘OK 주민 서비스’ 같은 문구가 사무실 앞에 붙어 있기도 하더라만……….”
먼저 입을 연 작은 쪽 동양계 사내는 호리호리한 몸매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스피드 위주의 공격형으로 추정되는군. 눈매가 독사 갈은 것이 ‘도홍’ 대령이 연상되기도 하고. 여튼, 만만치 않겠어.
“이곳 10층부터 15층까지도 고위 공무원들의 사무실입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한적한 편이죠.”
“과연… 음. 근데 너희들은 사투리 안 쓰나 보네?”
“우린 본래 경호 대상 외의 인물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는 존재니까요.”
“호오. 그건 너희들이 최후의 비밀 병기라는 말 같은데?”
옆의 덩치 큰 고릴라 인상의 남자에게 묻듯 시선을 보내봤으나, 놈은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고 바위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독사눈 사내 만 말을 할 줄 아는 거 아닌가 싶었다.
“…뭐, 그럼 오히려 너희들이 나오는 게 너무 빨랐던 거 아냐? 이제 겨우 10층이잖아.”
“이 위로는 ‘그분’의 수하들이 아.”
무심코 말하다가 흠칫 입을 다무는 걸보니… ‘그분’이란 저자들 의 경호대상인 이 섬의 주석이 아니며, 더 상위의 인물인 모양이군.
보나마나 ‘마법사케인’을 말하는 것일 테고 말야.
“홋. 리순희처럼 우리도 이 섬에서 너무 오래도록 따분하게 지냈나 봅니다. 말이 너무 많았죠?”
“뭐, 더 얘기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도 돼. 솔직히 좀 미안하니까… ‘유언’ 정도는 들어줘야지.”
킥, 하고 독사눈의 사내가 웃었다.
“우릴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군요.”
“칭찬한 거기도 해. 너희들이 리순희 양 수준이라면 손속에 사정을 둘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여유가 없을것 같아서 말이지.”
“우릴 상대로 과연 여유만 없는 정도일지……”
“쯧. 유언치곤, 참.”
유언치곤이라고 했을 때는 이미 놈과 나의 거리가 2미터로 좁혀져 있었다. 단발 비루 경공이기는 해도 독 눈을 놀라게 하긴 충분한 것 같았다. 찌직!
독사눈의 양팔 소매가 날카롭게 찢겨지며 그 안에서 살색의 칼날이 튀어나왔다.
츄아악!
거대 사마귀의 팔과 같은 두 개의 칼날이 가위처럼 교차하며 허공을 잘랐다. 그러나 그건 내가 계속 전진했을 때만 유효했을 공격이었다. 난80퍼센 트쯤의 내력으로 달려들다 나머지 힘으로 급정거를 했던 것이다. 거의 전력으로 헛칼질을 해버린 놈의 입장에서는 일단 칼날을 다시 뒤로 당겨야만 공격이든 방어든 할 수 있는 형국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대로… 응?
정글도를 그어 내리기 직전. 나는 ‘에그머니’라는 탄성 (?)과 함께 반격을 취소해야 했다.
쑥! ! ! !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귀에서 인지한건 이미 네 번의 칼질이 날아들고 난 후였다. 뒤에 다른 놈이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해온 거라 착각할 정도였지 만, 아니었다.
뭐, 뭐가 이리 빨라? 아무리 팔과 칼날이 일체라고 해도 그렇지!
“자, 잠깐! 잠깐!”
나는 서둘러 외치며 뒤로 물러섰고. 다행히 놈의 빠르면서도 강력한 칼질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에・・・ 그게, 손이 좀 저려서.”
젠장. 그거 좀 막았다고 이게 뭔 꼴이냐. 내공이 비루하니 여러모로 비루한 처지가 되는…………… “후후.”
응? 웃어?
비웃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으나. 어째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당신에 관한 소문을 하도 많이 들어서 대체 어떤 타입의 인물인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그러다 직접 보니 어떤 것 같냐’고 차마 내 입으로 묻기가 좀………….
“여러 가지 상상을 해 왔었지만, 설마 이렇게 뻔뻔한 남자일 줄은 몰랐・・・ 웃!”
피윳!
쳇! 또 실패!
슬쩍 날려 본 정글도가 놈에게 적중하기 직전, 놈의 상체가 뒤로 빠지는 동작이 간발의 차로 빨랐던 것이다.
“어-미안, 미안! 난 그런 얘길 들으면 더 하고 싶어져서 말야!”
말 그대로 뻔뻔하게 외치며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놈은 이번에도 왠지 곧바로 따라 붙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계속 장난을 치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증거………! 그러나……”
놈의 얼굴에 비로소 소름끼치는 살기가 왓!
마치 중간이 잘려진 필름을 돌린 것처럼 한순간에 놈과 나 사이의 거리가 사라져 있었다.
슉! 슉! 슉! 슉! 슉!
착시현상이 생길 정도의 스피드로 날아드는 칼날을 간신히 막아내가며 조금씩 뒤로 밀리기를 몇 초.
반격할 타이밍이 좀처럼… 윽?
정면으로 엄습해 오던 놈이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었다.
옆? 썅! 뒤!
반사적으로 상체를 틀어 피하는 순간, 쉬익- 차가운 바람이 옆구리를 스쳐지났다.
당했아니, 얕아!
“큭!”
먼저 작은 비명이 흘러나온 건 내가 아니라 놈의 입이었다. 나의 카운터가 먹힌 것이다.
“어, 어떻게?”
타닷-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는 발소리를 들었다 싶은 순간, 놈은 이미 수십 미터 밖으로 멀어져 있었다.
“쳇. 달아나는 속도도 환상이네. 팔은 사마귀 팔이라치고…………….”
난 어느 틈에 변해 있는 놈의 다리를 턱짓하며 물었다.
“그건 뭐냐? 메뚜기다리?”
사실 특정한 곤충 모양은 아니고, 그냥 다리의 근육만 두 배쯤 강화된 것 같은 모습인데… 으음. 아무래도 저놈은 전신의 파워와 형태를 원하는 곳 에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나름 추정해 봤으나, 정작 본인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놈은 칼날로 바뀐 만큼 질량이 줄어서 아기 손처럼 작게 변해버린 손으로 가슴의 상처를 누른 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자세에서 그런 각도로 반격해 올 수가 있는 겁니까?”
당혹과 분노사이를 오가는 표정과 음성으로 보아, 어지간히 예상 밖의 타격이었던 모양이군.
“검기, 아니 내 경우 도기라고 해야겠지. 암튼, 기의 발산에 사각 지대가 있을 리 없잖아.”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도기를 자유롭게 발산하는 건 고사하고, 도에 기를 싣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라고 들었는데 그 건 거짓 정보였군요. 프리메이슨의 정보망을 속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아니. 그게 아니야.”
적에게 굳이 떠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꼭꼭 숨길 생각도 없었다.
“내가 형편없는 상태인 건 사실이야. 난 다만 작은 내공이라도 효율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중인 거야. 얼마 전 우연히 심도의 경지를 조금 맛보게 되었었거든? 지금은 그걸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응용하게 된 거라고 할까?”
“심도…………? 오래 전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설마 그런 공격이 가능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심도에 대한 개념을 ‘공격’이라고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니까 무공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부한 녀석은 아닌 것 같군. 물론 저 실용적인(?) 육 체와 격투 감각만으로도 일급 고수를 능가할 테지만 말야.
“어쨌든, 당신을 쉽게 제압할 수 없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호오~ 그럼 어렵게는 제압할 수도 있다는 거네? 나 기분 나빠지려고 한다?”
사실은… 10층에서 네 놈들과 만났을 때부터 너무 지나치게 기분이 나빠져서 그걸 억제하느라 계속 애써 가벼운 언행을 하고 있는 거지만… “후후. 우선 일대일 대결 구도부터 바꾸기로 하죠.”
독사눈이 한 손(겸 칼)올 들어 신호를 보내자, 놈의 뒤에서 철컥! 낯익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동료인 독사눈이 나와 싸우거나 말거나 멀뚱하게 서 있기만 하던 고릴라 덩치의 남자였다. 그의 몸 어디선가 들려왔던 소리는… ……
기계. 그것도 총기류…………? 아무래도 저 고릴라는 몸에 머쉰 건 같은 걸 이식(?)해 놓은 놈인 것 같군. 쌍칼 일체형 전사와 중장갑 기계화 병사콤비 라 이거지?
“어째 덩치부터 누가(?!) 계획적으로 맞춰 놓은듯한데?”
“무슨 뜻이죠?”
“그냥 ‘너무 전형적인 상황’인 것 같단 얘기야. 안 그래, 소냐?”
이번엔 내가 내 뒤를 향해 묻자, 독사눈의 표정이 흠칫 굳어진다. 10층에 도착하기 조금 전부터 합류하여 자신과 BB형제까지 숨기고 있던 소냐가 투명화 능력을 풀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소냐 이 녀석. 내가 갑자기 말을 거니까 얼결에 모습을 드러낸 거군. 편의점에서 가져온 오징어 다리를 오물오물 먹고 있다가 얼른 감추네. 난 소냐 때문에 피식 웃고 말았지만, 독사눈 사내는 그럴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동행한 부하가 세 명…………! 그리고 투명 인간 같은 능력을 가진 자도 있다는 보고 역시 받았었지만… 설마 바로 눈앞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일 줄은…….”
뭐, 지금 독사눈이 놀랄 만하긴 하지. 나도 처음 몽몽에게 소냐의 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을 때는 꽤 감탄했었으니 말야.
“그 소녀는 상대의 시각적인 정보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감각까지 속이는… 말하자면 심장 소리와 체취 같은 것까지 감출 수 있는 거로군요.” “이해가 빨라 좋네.”
동동은 소냐의 능력에 대해 거의 모든 유출 에너지의 왜곡’이라고 표현했던가………..? 게다가 만약 앞으로 소냐의 능력이 더 발전할 경우에는 ‘거의 모든’이 ‘모든’으로・・・ 즉, 몽몽의 스캔 장비마저 속일 수 있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까지 적에게 해줄 필요는 없겠지?
“…이렇게 되면 우리 쪽이 곤란해졌군요.”
말뿐이 아니라 정말 난감해하는 기색이 느껴지는군.
“그건 걱정하지 마. 소냐가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건 물론이고, BB형제도 한 명만 나서게 해서 쪽수를 맞춰 줄 테니까 말야.”
독사눈은 어쩐지 쪽수에 밀려 질 것 같아서 난감해하는 건 아닌 듯하지만… 뭐, 어쨌든 난 쌈질도 정정당당하게 하는 모범청년… 흠. 크음. 암튼. “진심…이십니까?”
“고럼, 고럼 날 한 번 믿어보라구.”
독사눈의 표정에 신뢰가 거의 느껴지지 않거나 말거나, 나는 정말 소냐와 베이비 존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철컥!
응? 두 번째의 장전음?
고릴라 사내가 두 팔을 앞으로 뻗는 것과 독사눈이 그 뒤로 몸을 피하는 행동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칵칵!
고릴라의 손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나와 빅존은 좌우로 몸을 날렸다.
콱! 쾅!
난 옆에 있던 문을, 빅 존은 아예 벽을 부수며 피했다는 차이는 있어도 하여간 피했… 윽! 아직 아닌가벼~!
쿠콰콰콰콰~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내가 피한 사무실의 벽을 과자처럼 부수며 엄습해오는 초강력 총탄세례!
이, 일단대피!
나는 사무실의 책상이고 뭐고 마구 밟으며 뛰어 또 다른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옆 사무실로 내달리는 내 뒤를 총탄의 소나기가 따라붙는다. 머신건 고릴라는 벽 너머의 보이지 않는 복도에 있는 건대도 직접 쏴대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우쒸! 뭔 놈의 인간이 무장 헬기급의 화력을… 이익!
급정거를 하며 뒤로 도약, 화려한 공중제비를 선보이며 사격의 동선을 반대로 타 넘었다.
일단 한숨 돌리・・・응?
내가 달려가던 방향으로 진행되던 사격이 문득 멈추고 있었다.
젠장.
「주인님!」
쿠콰콰콰콰꽉!
체면이고 나발이고 납작 엎드린 직후, 내 몸의 살짝 위쪽 공간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주인님! 적은 투시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해당 장비의 무력화를 원하신다면……..
“됐어, 몽몽! 아직은 도움이 필요 없어!”
「주인님!」
꽈직!
천장이 부서지며 파편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칼질의 폭우!
와다다닷타!
본능적으로 독사눈의 칼질을 막고 피하며 몇 바퀴를 구르고는 간신히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복도 쪽의 벽 너머에서 꽈앙하고 대형 교통사고가 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 왔다.
「빅 존이 병기 인간과 충돌! 파워 전 양상으로 돌입!」
과연・・・ 킹콩 두 마리가 각설이 타령에 맞춰 지르박 댄스를 추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는군. 이제 나도 독사눈에게 집중을…….
쿠콱콱! 왓! 뭐야!
짧고 느닷없는 총질에 놀라 평정심이 흐트러지는 순간, 다시 맹렬한 칼질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 이, 잇, 익! 익!
자신이 뭘 어떻게 뭣으로 막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난 끝내 버텨냈고, 독사눈은 다시 훌쩍 물러나 거리를 두었 다.
저, 저 자식………! 내가 고릴라의 공격에 반응할 때를 노리면 아까 같은 ‘반격의 여지조차 없을 거라고 계산한 건가…? 쓰바….! 인정하긴 싫 지만 정답이야. 내가 아무리 알뜰하게(?) 내공을 운용한다고 해도 조금 전 같은 이중 공격을 받으면서는 반격으로 돌릴 내공이 없어! 썅! 그렇다면 내가 먼저… 에?
내 쪽에서 먼저 치고 나가려고 했더니, 독사눈 놈은 즉시 튈 기색을 보인다.
제기………! 저 메뚜기 발을 이용해서 철저하게 아웃복싱 스타일로 나갈 작정이로군. 이제 병기 고릴라 놈은 빅 존과 싸우면서도 언제고 틈을 봐서 나에게 총질을 가해 올 테고, 당연히 그 순간을 노려 독사눈의 번개 잽 칼질도 날아들 텐데… 계속 반격도 못하고 몰리기만 하다가는.. 으음. 어쩐… 다?
“네놈들 전술은 물론 승리를 위한 전술로서는 좋아. 하지만 내가 애써 쪽수까지 맞춰줬는데도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면 나, 섭하지.”
“자신보다 낮은 급수라고 여기는 상대에게도 암습을 서슴지 않는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에이~ 난 그냥 장난이었고, 너희들은 아니잖아.”
“한국의 유행어라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그런 태도로군요.”
쳇. 이놈이 원판나라 물을 좀 먹었나? 말대꾸도제법일세.
“암튼, 그럼 나 또, 꼼수 부리는 수가 있다?”
“훗, 얼마든지.”
…그래. 지금의 내 처지에 정정당당은 개뿔, 그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 나 진유준은 원래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구! 난 천천히 걸음을 떼며 왼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
“그렇게 노골적인 짓을………….”
입으로는 비웃으면서도 내 손아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하군.
“평범한 암기? 소형 폭탄? 뭐, 맘대로 생각해.”
좀 더 헷갈리도록 말 미끼를 던지는 사이에 놈은 나와의 거리가 공짜로(?)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저 빈손. 그게 제 결론입니다!”
말을 끝내기도전에 슥-놈의 팔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의 수작을 무시하고 소신대로 한다’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이미 약간 늦었어!
슈슈숙!
더 빨라진 것 같은 칼질이 날아드는데도, 난 비교적 수월하게 막고 흘려내며 원하는 지점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접근 주도권과 리듬을 빼앗은 덕분………..! 그리고!
기어이 나의 왼손을 움직이자 놈이 흠칫 긴장했고, 내 손을 떠난 무언가들이 놈을 향해 날았다.
“무슨?”
암기(?)의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서 더 수상했는지, 놈은 결국 그 걸 막지 못하고 피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빈틈이 없 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전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지만……………
“…아무런 특수 장치 없는…….”
“그냥 동전이었어, 보통 동전.”
“…그런 물건을 별다른 암기술도 아닌, 그야말로 ‘던짐’. ……? 결국 단순하고 치졸한 심리전이었을 뿐인………….’
독사눈이 말끝을 흐린 건 나의 사악한 미소 때문일 것이다.
“너 이놈!”
나는 계속 실실 쪼개면서 입으로는 짐짓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싸우지 않겠다는 소니까지 공격하다니! 소냐! 괜찮니? 많이 다친 거냐?”
독사눈은 뜬금없는 인터넷 악플을 당하게 된 사람 표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확한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좀 전에 우리 빅 존이 네 동료의 총격을 피해야 했던 건, 어디까지나 평소모드라서 그랬던 거야. 실은 BB형제가 뚜껑 열리면 말이지, 내공을 잃기 전의 내가 이걸로도 못 벨 정도거든?”
정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자니, 소냐와 함께 있는 베이비 존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내 귀에는 울부짖음에 불과한 소리 같았으나 형제간에는 통하는 뭔가가 있는 건지………….
“크아아아아!”
즉시 발동 걸리는 듯한 빅 존의 포효소리!
“난CR들의 큰형님격인 ‘레인’ 녀석의 ‘암시’를 쓰진 못해도. BB형제와 가장 절친한 아이가 소냐라는 건 알고 있어서 말야.”
비로소 독사눈도 나의 간악・・・ 아니, 하여간 알고 보면 단순한 꼼수를 이해하게 된 표정…윽?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짧지만 엄청난 진동이 나와 독사눈까지 엄습하였기에, 우린 무심결에 사이좋게(?) 진동이 전해져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 렸다.
쿠라!꽝! 쿠콰콱! 꽝! 쿠콰콱!꽝!
이성적으로는 분명 강력한 머신건 소리와 두터운 시멘트벽이 파괴되는 소리가 어우러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했지만, 기분상으로는 마치 거대한 지진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바뀌어 우리 쪽으로 돌진해 오는 것만 같았다.
이, 이거 어째 내 예상까지 넘는 상황인지도…우왁!
난 재해를 감지한 야생 동물처럼 후다닥 옆 사무실로 튀었고, 그건 독사눈도 마찬가지였다.
쿠와왕!
1, 2초 전까지 우리가 서 있었던 사무실의 벽이 폭발하듯 날아가 버렸고, 그 여파만으로도 사무실 안은 전쟁터의 폭격현장화 되어버렸다.
뭉개뭉개 피어오른 시멘트 먼지 속에 서 있는 거대 그림자는…………,
한명……? 아니, 빅 존이 병기 일체 고릴라를 양팔로 안고 있어서 그렇게 보인 것뿐이고……………
빅존이 팔을 풀자 병기 일체 고릴라 남자는 맥없이 쿠욱~ 널브러졌다.
최강의 장갑을 자랑하던 전차가 폐차장의 기계에 눌린 승용차 꼴이 된 형상이라고 할까? 근데 이거… 빅 존의 몸에 머신 건으로 난사된 흔적이 보 이지도 않는 것까지는 다행이지만…………….
“크으으”
거칠게 실룩거리는 빅 존의 입술사이로 아직 분노가 덜 풀린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빅 존의 모닥불처럼 이글거리는 두 눈이 이쪽으로 향하자 독사눈 사내는… 아니, 솔직히 나까지 섬뜩함을 느끼고 긴장해야 했다.
“빅, 존? 릴렉스! 릴텍스~! 나야 나! 진유준!”
에고고. 우째 나도 몰라보고 덮쳐올 기세인 것 같은…………….
“빅! 비익! 진정해!”
구세주 소냐 양이 서둘러 달려와 빅 존의 앞을 가로막자, 그제야 빅 존의 사나운 기운이 주춤했다.
“난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빅!정말 괜찮아!”
소냐가 연이어 자신의 무사함을 강조하고서야 빅 존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정상화되며 나도 알아보는 기색이 느껴진다.
으으음.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닮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이제 보니 진짜 완전 ‘인크레더블(incredible) 헐크’였구나. 앞으론 웬만하면 성질 을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겠어.
「…코드명 BB형제, 특히 빅 존이 과도 반응을 보인 것은 친근도가 높은 동료, 소냐의 ‘눈물’을 목격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 소냐가 울었었다고? 난 분명 동전을 맞지 않게 던졌어. 놀라거나 겁을 먹는 효과만 노리고… 아니, 그리고 설사 내가 실수해서 맞혔다고 해도 그렇지! 명색이 CR의 정예인 애가 살살 던진 동전에 맞고 울어?”
「소냐의 눈물은 외부의 타격에 의한 고통이 아니라, ‘상실감에서 파생된 슬픔’으로 추정되는 감정변화 때문이었습니다.」
“뭐?”
몽몽은 아까 내가 던진 동전에 놀랄 당시의 소냐가 있던 장소를 영상으로 잡아보여 주었고, 거기엔 ‘눈물의 원인’ 이 분명히 존재했다.
“저기…소냐.”
내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부르며 다가가자 소냐의 원망 섞인 시선이 날 찔러왔다.
“미안. 난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그만…….”
“돼, 됐어요. 얘기하지 마세요.”
“그, 뭐. 음. 하지만 너도 그렇지, 버터구이 오징어 떨어트린 거 가지고 그렇게……
“얘, 얘기하지 마시라니까욧!”
소냐의 새빨개진 얼굴, 아니 전신이 사악-사라졌다.
으음. 버터구이는 먼지가 잘 묻고 털어지지도 않아서 주워 먹을 수가 없었을 테니, 나중에 내가 직접 구워주면서 사과를 해야 할 것………. “우어?”
소냐가 삐친 채 사라지는 통에 빅 존이 다시 약간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 싶어, 난 재빨리 선수를 쳤다.
“야, 야! 빅! 나야 나!”
“…….”
“인마! 여자애가 좀 운다고 너까지 광분하면 어떻게 해? 또 나한테 버릇없이 굴거야? 엉?”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야단을 맞고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는 녀석을 보니까 되게 미안… 한 건 한 거고…………! 레인 녀석이 돌아오면 ‘암시’기법을 나 도 배우던가 해야지. 이거 무서워서 같이 다니겠어, 어디?
“음… 어쨌든 수고했어. 너, 파워 진짜 죽이더라. 아주 멋졌어!”
빅 존의 어깨…는 좀 무리고 해서 허벅지쯤을 툭툭 두드리며 칭찬 해준 다음, 아직 남아 있는 적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독사는 남자는 왠지 맥이 빠 진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제 정말순수하고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을………….”
“그만두겠습니다.”
“어? 왜?”
“당신 같으면 더 이상 싸울 기분이 나겠습니까?”
독사눈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낮게 한숨까지 몰아낸다.
“하아~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당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끝까지 진지한 마음으로 싸우게 하지도 못할 줄은 몰랐는데…………
쯧. 진심으로 낙담하는 기색을 보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군.
“어쨌든, 아무리 이런 당신이라도… 다음 층으로 가시기 전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뭐, 이런 패턴의 상황에서는 층이 높아질수록 강한 놈들이 나오는게 정석이겠지.”
“…우리 다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은… 정말이지 절망 적으로 강합니다.”
뭐야. 저 독사눈도 사실 장난이 아닌데, 그런 저자가 절망할 정도로. 그렇게 터무니없이 강한 자가 겨우 11층에 있단 말야?
“특히, 당신처럼 초고수일수록 더더욱 절망을 맛보게 될 겁니다.”
…이건 또 웬 도깨비 날콩 까먹는 소리? 오, 이 표현은 굉장히 오랜만에 썼거나 말거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거 꽤 재밌는 얘긴 것 같은데, 무슨 뜻이지?”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겪어 보는 방식을 선호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야, 그렇긴 하지.”
“물론 한 번의 경험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기는 하겠지만……….”
독사눈의 두 팔은 이미 평범하게 돌아와 있었고, 돌아서는 두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자신이 직접 안내하겠다는 태도인데… 명색이 ‘최종 경호원’이 저래도 되는 거야?
“이봐.”
앞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던 독사눈이 문득 멈추더니 피식 웃었다.
“제 이름은 ‘리철민’ 입니다.”
백인 북녀 리순희와………….
“본래 공화국출신이며, 그곳의 진짜 지도자 동지를 경호하는 6처에 있었으나 현재의 조직에 ‘역수출’ 된 케이스입니다.”
갈은 경우가 아닌 모양이네?
“지도자 동지 아니, ‘그자’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아 ‘생체 실험용’으로 팔려가면서도 오히려 기뻐했던 건 그 지긋지긋한 공화국을 떠나게 되었 기 때문이었지요. 어차피 언젠가 남한이든 어디든 도망칠 생각이었거든요. …훗. 결국엔 이렇게 똑같은 처지가 반복 되는 운명인지도 모르고 말입니 다.”
・거참. 기분 되게 복잡 오묘해지네. 해외에서 같은 동포를 만나면 무조건 반갑기 마련이라지만. 우린 이건 뭐… 분단의 문제에 별의별 해괴한 관 계까지 복잡하게 얽힌 사이이니…………
“대도 인생 참 어지간히 더럽게 꼬인 사람이로군.”
1차 결론 및 감상은(?) 그렇고.
“여기 정리하고 나면 같이 쐬주나 두어 병 깝시다.”
“후후. 그거 좋지요. 다만, 그건 우리 둘 다 생존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으음. 또 내가 다음 층에서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로군. 대체 어떤 놈이 기다리고 있길래…
알고 보니 진짜 북쪽 출신에 귀순희망자였던 리철민. 그는 다시 다음 층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난 새삼 정글도를 굳게 움켜쥐며 뒤를 따랐다.
…음. 11층…을 그냥 지나치네? 하긴. 다음 적이 꼭 11층에 있다고 했던 건 아니었고, 10층에서 발생한 ‘빅 존 광란사건’ 때문에 11층까지 엉망이 되어 있으니… 으음. 12층・・・ 13층도 연속으로 통과 해버리는군. 아참. 아까 리철민이 15층까지 공무원들의 사무실’이라고 했었지? 게다가 그건 몽몽이 일찌감치 보여줬던 ‘건물구조도’에도 나와 있던 내용인데 깜박 잊… 응? 잠깐?
또 하나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귀순 희망자’였던 리철민과 달리, 실제로 나한테 귀순한 데릭 허버트…………! 그 아저씨는 지금 대체 어딨는 거야? 몽몽과 요몽의 수색에도 지금까 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건, 혹시………….
“이곳입니다.”
쯧. 데릭 씨 생각은 다시 접어두기로 하고…
어느 사이 도착한 16층은 그 전까지의 층과 입구부터 달랐다. 15층에서 건물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초대형 금고가 연 상되는 금속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 위로는 평소에도 특수한 신분을 가진 이들만이 출입할 수가 있습니다.”
리철민 자신도 그 중의 한 명이라는 걸 간단히 비밀 번호를 눌러 증명하는군. 어쨌거나. 이렇게 꼭꼭 숨어살아야 겨우 안심할 수 있는 거면 뭐 하러 그렇게 권력을 탐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처럼 자기 자신이 쌈질 좀해야 바람직한 독재자 생활을 누릴 수 있… 응?
16층의 남다른 점은 입구뿐이 아니었다. 한 층이 전부 통합된 하나의 광장인 건 원판의 서울 아지트였던 아파트에서 겪어 봤었다.
하지만 여긴 규모가 그곳의 몇 배인 것 같았다.
“이건 뭐..완전 운동장이네, 운동장.”
“실제로 이곳은 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바로… 저 인물이 말입니다.”
리철민이 가리킨 건, 조금 과장해서 ‘까마득히 먼 반대편 출입구였다. 그 문이 막 열리며 낯익은(?)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 옘병!”
나도 모르게 곱지 않은 말부터 나왔다.
‘당신을 절망케 할 적’이라는 말 때문에 은근 긴장하는 한편, 무지 기대도 했었는데… 어째서 저렇게 나이 먹은 백인에 비만형 뽀글이 남자가 나오 는 거야!
“흐후훗~!”
웃음소리도 재수 없・・・ 아니, 잠깐? 저거 설마…….
“리철민. 네놈의 임무는 그 이방인을 설사 쓰러트리지는 못할 지라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었을 텐데?”
“물론 그랬지요. 지도자 동지. 당신과 강적의 싸움에 도움이 되도록 말입니다.”
이것 봐라…………? ‘절망적으로 강한 적이라는 게 이 섬의 주석이자 짝퉁 뽀글이… 본인? 저 인간도 쌈질 좀 하는 독재자?
“…바로그렇다네, 방자한 이방인.”
“뭐시여, 댁도 원판 흉내야?”
“원판?”
“아니, 그건 그렇다치고………….”
나와 저자의 현재 거리는 거의 100미터…………! 그래서 리철민은 애써 큰 소리로 대답했고, 난 평상시 톤으로 말하고 싶어서 아까운 내 공을 목소리에 실었어. 헌데 저 인간의 잔잔한 목소리는 내공이 실리지 않았는데도 또렷하게 들리고 있어.
외모와 달리 여러모로 심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리메이슨의 생체 강화 전사들 중에서도 A급에 속할 전투력의 리철민이 ‘절망’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의 괴물이라는건, 아직 실감이 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반공교육 때문인 것 같아.”
역시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댁이 카피한 우리나라 북쪽집단의 두목들 이미지는 나에게 혹부리 돼지와 뽀글이 돼지일 뿐이거든. 당연히 댁도 내 눈에는 뽀글이 돼지…뭐, 그런 거지.”
“…흐흐흣. 그렇게 세뇌에 약한 인물이라면 더욱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 같군.”
짝퉁 뽀글이, 줄여서 짝뽀 주석이 여유있는 태도로 걸음을 떼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것봐라? 어째 본격적으로 안 좋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미리 말해두지, 이방인. 나의 친위대들… 리순희를 비롯한 기쁨조, 중장갑 및 중화기 융합 병사, 그리고………….”
짝뽀가 손을 들어 가리킨 건 내 옆의 리철민이었다.
“바이오블레이드전사…………!”
어?
「주인님!」
몽몽의 경고와 리철민이 파팟 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건 거의 동시였다. 그야말로 눈부신 스피드의 순간이동이어서 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정도 였다. 그러나………….
“크윽!”
신음성과 함께 나뒹구는 리철민의 몸은 내게서 10미터 정도 거리에, 그의 다리 하나는 4미터 정도에 떨구어졌다.
“…모두가 위대한 이 몸의 재탄생에 쓰였던 실패작에 불과하지.”
짝뽀의 말이 끝날 때쯤,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피리릭~ 낮은 소리를 내며 그의 팔소매 안쪽으로 회수되고 있었다.
리순희와 여장남자 일당들이 썼던 ‘절단 실’……….! 아니, 그보다 더 가늘어서 보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런 걸로 리철민의 강화된 다리를 잘라버려? 게다가 뭐가 그렇게 빨라! 방금의 공격이 만약 나에게 가해진 거였었다면……….
「주인님!」
뭐, 뭐야? 저작자, 언제 저기까지 온 거냐!
짝뽀는 어느 사이에 쓰러져 있는 리철민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짝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이미 분노보다 공포가 더 짙게 덮여 있었다.
“한동안 대결. 아니, ‘흥겨운 스파링’ 상대를 해주지 않았더니, 깜박 잊어버린 모양이군. 공포와 고통, 그리고 ‘절망’이라는 단어들을 말이야.” 저 은근한 음성과 살기…………! 겉으로 보이는 외모에 의한 나의 선입견을 단번에 날려버리는…진짜 악마의 얼굴…………!
“어리석은 반역자를 처리하는 즐거움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나를 돌아보며 슬쩍 들어올리는 팔에 리철민처럼 살색의 칼날이 생성되고 있었다.
웃!
둔해 보이기만 하던 짝뽀의 몸이 리철민의 순간 가속, 아니 그 이상의 스피드로 나에게 엄습해왔다.
파츳!
소리는 한 번. 그러나 내가 거의 본능적으로 막고 피해낸 공격은 총 세 번이었다.
막은 건 그렇다 치고… 피한 건 내가 피했다기보다 운이 좋아 빗나갔다고 보는 편이… 아, 아니, 아니! 그보다는……
“이 몸이 직접 손을 써서 어딘가 잘라내지 못한 건 처음인 것 같은 데… 흠음~ 확실히 실패작들이 당해내지 못할 만한 남자는 되는 것 같군.” “그・・・러셔?”
나는 나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리며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이거 참. 간만에 진짜돌기 시작하네, 이거.”
「주인님!이번적은 불확실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제가………………」
“됐어, 몽몽. 넌 끼어들지 마.”
「… 알겠습니다. 주인님.
몽몽이 굳이 우려를 나타낼 정도로 장난 아닌 적이라는 건 분명하다. 또한 난 지금 필요이상으로 감정이 격해 있기도 하다.
“꽤 비쌌겠어.”
이 주석궁이라는 건물을 봤을 때 문득 떠올린 후, 10층에서 리철민과 장갑 병사를 만났을 때부터 더욱 강해지기 시작한 생각이었다.
“프리메이슨이 무슨 자선 단체도 아니고 말야. ‘신들의 유회’ 라는 정신 나간 부자들이나 사갈 법한 상품을 이런 작은 섬의 수령이 살 수 있었다 는 건…….”
“음. 맞아. 내가 조금 쓰긴 했지.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난 이 섬의 하찮은 천민들을 다스리며 신세계로 이끌어 줄 위대한 지도자…………! 이 몸에 ‘신의 기술’을 심기 위해서 이 건물 몇 개 분의 돈이… 아니, 이 섬 전체를 살 수 있을 재화가 들었다 한들 누가 감히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 저런 빌어먹을 얘길 태연히 지껄이는 작자가 우리쪽 진짜 뽀글 씨의 카피라는 게 문제야. 이 섬은 프리메이슨의 신세계 견본으로서 먹고사는 문제만은 괜찮은 것 같지만, 진짜 북쪽은 주민들 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똑같은 짓을… 씨파! 게다가 백두산까지 중국에 팔아 처먹은 건 도저히 용서가안 되는… 으~ 쌈질 할 때는 먼저 흥분하는 쪽이 불리하거나말거나!
“짱! 역시 못 참겠어! 눈앞의 짝퉁이라도…………….”
시잇~!
적의 절단 실보다 섬세하면서도 절대적인 나의 도기가 짝뽀를 향해 날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짝뽀는 이미 내 시야에게 사라져 있었다.
빌어먹을! 거의 심도에 가까운 공격까지 피할 줄은.. 음? 아닌가?
각오했던 역공이 곧바로 날아들지 않은 이유는, 짝뽀가 순식간에 40미터 이상 달아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놈은 한 손을 들어 자신 의 목 부위를 직접 만져 보고도 그 손에 묻은 피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 이건가? 신의 대리께서 말씀해주셨던… 이방인의 악마 같은 힘…이?”
“살짝 스친 거 갖고 무슨…그리고 이제부터 더 아프게 될 건데 뭐.”
“…후, 후훗.”
웃어……………? 얼씨구?
“후하하핫~!”
짝뽀는 두 손을 뒤로 돌려 뒷짐을 진 자세로 웃어대기 시작했고,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당신이…….”
한 쪽에서 입을 연 것은 리철민이었다. 그는 잘려졌던 자신의 다리를 다시 조립(?)하면서 말을 이었다.
“신의 대리… 즉, 마스터 크라우드가 ‘신들마저 위협하는 남자’라고 했던 말을 상기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자신이 쓰러트릴 경 우, 신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약속 받을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거겠지요.”
리철민은 독사눈매에 어울리지 않는 애절함(?)을 담아 날 올려다보았다.
“난 저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오래도록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저자는 우리들 모두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저자 의 진짜 무서운 점은…….”
“리철민.”
웃음을 멈춘 짝뽀가 차갑게 이름을 부르자 리철민은 흠칫 입을 다물었다.
“네놈이 알고 있는 사실 따위, 얼마든지 떠벌려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기르던 개가 다른 자에게 꼬리를 흔드는 꼴을 보는 건……” 싯-!
짧게 날린 나의 도기가 리철민과 짝뽀 사이의 공간을 베었다.
피리리~
예의 절단 실은 아까와 달리 맥없이 회수되고 있었다. 리철민은 어느 틈에 또, 게다가 이번엔 자신의 몸통에까지 감겨 있었던 실의 일부를 확인하 며 마른침을 삼켰다. 리철민 제거에 실패한 짝뽀의 얼굴은 분노로 실룩거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역시… 제법이로군. 나의 무형신사(無形神絲)를 이렇게 쉽게 간파한 자는…………….”
“놀고 있네.”
“뭐?”
“어울리는 사람이 그래야 어울리지. 계속 뭔 최종보스 흉내를 내고 지롤이야, 지롤이. 그래 봐야 16층 지키는 똘마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둔한 이방인이 감히…….”
“또 그런다. 마법사 케인이 기르는 뽀글돼지 주제에.”
“이, 이…….”
마법사 케인을 언급하니까 약빨이 먹히기 시작하는 건가? 좀더 씹어줘야 감정상태가 공평・・・ 으음. 아니, 아니야. 말장난은 이제 그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상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잠시 냉정을 잃는 것 같던 짝뽀의 얼굴이 다시 빠르게 냉랭해지고 있었다.
…
“명색이 신의 전사인 리철민이 왜 그렇게 이 몸을 두려워하는지 알게 해주마. 넌 이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짝뽀의 선언에 나도 마주 대꾸해 주었다.
“지옥? 거창도하셔라. 난 그냥 엿 좀 먹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