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57화 : surprise in surpris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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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57화 : surprise in surprise. I


7. surprise in surprise. I

자니… 크레이지 파이어 자니..! 그 엉뚱하고 너무나 위험하면서도 그리 밉지만은 않았던… 분명 친하지도 않은 녀석임에도 그 죽음이 왠지 날 열 받게 했던… 그 녀석이… 사실은 아직 죽지 않았다…? 내 눈앞에서 처절하게 심장이 파괴된 걸 보았는데도…? 닥터 제이가 말하는 ‘핵’이란 대 체………

“음. 나의 결론 언급이 너무 성급했던 거 같군. 사실, 실질적으로 죽기는 죽은 거라고 봐야겠지.”

“예?”

“핵이 자니의 근원을 이룬다고는 해도 그게 꼭 자니라고는…

어쩐지 뭔가 알 듯한 얘기가 나올 듯도 했다. 그러나 닥터 제이는 한 번 흐린 말끝을 좀처럼 잇지 않았다. “…저기요.”

“음. 어쨌든 궁금했던 블랙 얘기를 들었으니 난 이만 몽몽군 일하는 걸 보러가야겠군.”

이 양반이 근데..어?

닥터 제이가 돌아서던 동작을 멈춘 것은 내 정글도와 대교의 청명검이 동시에 자신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훗~! 내가 자네 커플의 급한 성향을 깜박했군.”

아니, 대교는 그렇다 치고 내 정글도는… 이 녀석은 지금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먼저 움직여 버렸네?

“어쨌든 나도 급하니까 지금은 간단한 요점 정리만 들어주게. 그게 그러니까…………”

닥터 제이는 엄청 압축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고, 우린 어쩔 수 없이 그 거라도(?) 경청해야했다.

…잠시 후!-

나는 닥터 제이가 드물게 다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뒷모습을 보며 쩝- 쓴 입맛을 다셔야했다.

“저 양반・・・ CR들 치료 과정을 처음부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분명 진심인데 그 와중에도 참 많이도 던져놓고 가네.”

사실 대부분 나중에 다시 천천히 자세하게 들어도 될 사항인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사람 기분이 어디 그런가?

“대교. 너도 일단… 기본적인 얘기는 알겠지?”

“예.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저로서는 많이 어려워요, 이런 얘기.”

“그야 뭐… 나도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배경이 뭐 어쩌고저쩌고는 못 알아듣지. 사실 과학적이라고 하기도 뭐한 얘기 같지만. 어쨌든 요몽! 그거 좀 꺼내봐.”

나와 대교의 사이이며 내 눈 높이 정도의 허공이 물결처럼 묘하게 일렁이는가 싶더니 스윽- 뭔가가 떠올랐다. 몽몽의 아공간 속에서 나온 것은 기 껏해야 손가락 두 마디정도 크기의 오렌지 빛 타원형 보석(?)이었다. 내가 손을 내밀어 쥐려는 순간 요몽이 경고했다.

「주인님! 전에도 말씀드렸듯 위험물체로 의심되니 조심…………」

“나도 전에도 그랬듯.”

그냥 덥석 손으로 잡아 버렸다. 블랙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쥐고 건네주던 걸 나라고 못 만질소냐 라는 매우 정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 참! 울 주인님의 단순무식 돌격정신은 하여간…………….」

요몽의 투덜거림을 무시하며 새삼 들여다보았으나, 역시 느낌은 처음에 접했을 때와 같을 뿐이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오렌지빛 보석 OR 돌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느낌…? 물론 요몽의 경고가 아니었어도 뭔가 껄쩍지근하니 막연 하게 수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녀석의 유품이라고 해도 일단은 미령이에게 전달하지 않고 숨겨두었던 것이다.

그치만 그래도 설마 이게 자니의 핵…! 그 녀석이 쓰던 그 엄청난 불꽃의 근원이었다고…? 이 작은 돌멩이 안에 그토록 엄청난 불꽃이… 으음… 하여간, 어쨌든! 이게 설사 정말 자니를 존재케 하던 근원이라고 해도… 그래도 역시 닥터 제이 말처럼 이게 자니 그 녀석 자체일리는, 그게… 그 렇지만 어쨌든 오랜 세월 결합(?)되어있던 녀석이라니깐두루…………

“어이~ 자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핵을 향해 자니를 불러보았다.

“너 여기 있는 거니? 응? 블랙한테 죽는 척하면서 슬쩍 여기 이 안에 짱 박힌 거야? 그런거니? 이봐아- 대답 좀 한 번 해 봐아.”

손에 든 돌멩이한테(?) 말 걸기가 민망해서 약간의 장난기를 섞었지만 그래도 영 모양새가 음. 내친 김에.

“어이구- 우리 자니, 자니? 자니 자니까 좋아?”

•쯧. 나도 참 대교 앞에서 별 뻘짓을 다… 웃?!

“… 유준 오라버니?”

대교가 살짝 긴장하여 내 눈치를 살폈지만 바로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내가 흠칫한 건 사실이었다. 아주 찰나적으로 손안의 핵에서 뭔가가 느껴 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느낌이었는지, 어느 정도였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미세, 미약, 미지근⋯은 좀, 하여간.

“어허~ 우리 자니 안자니? 안자면 형하고 얘기 좀 해 볼까? 응?”

난 다시 말장난을 섞어서(위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대화시도 끝에 꽤 유명한 노래 속의 자니~라는 부분도 가락을 살려 불러 보는 중 에… 드디어 뭔가(?) 반응했다. 엄한 요몽이.

「저기, 주인님!」

“응? 왜?”

「그거, 첨 입수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에너지 반응도 눈곱만치도 없걸랑요? 게다가…………

“재미없다?”

「넵. 딱히.」

쯧. 그만 둬야겠군. 조금 전 뭔가 느꼈다고 생각한 건 역시나 그저 ‘기분 탓’이었던 건가? 약간의(?) 기대는 있었거늘…

난 결국 몽몽의 아공간을 열어서 다시 자니의 핵을 수납한 다음에 대교를 돌아보았다.

“대교, 일단 우리 장소를 좀 옮기자.”

나와 대교는 아까 몽몽의 귀환보고를 받았던 ‘호텔수준의 방’으로 다시 이동했다.

“대교. 미안하지만 나 혼자 정리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 자니 일도 일이지만 그와 관련된 상황 전체가 어째 좀 그러네? 블랙 녀석이 그걸 굳이 나에 게 전달한 이유부터가 문제이고 말야.”

“후후- 이쯤에서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심하시고 편안히 시간 가지세요.”

나의 천생맞춤 반려자 대교가 곱게 웃으며 물러나더니 나의 ‘호위’모드가 되었고 나는 바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게 그러니까… 자니는, 아니 녀석의 핵은 본래 프리메이슨에서도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했지? 아마도 어떤 원자력… 하여간 매우 원 초적인(?) 분야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해⋯ 몇 십 몇 백 배의 효율성을 가진 에너지 생성 가능성을… 으음. 더 자세한 건 지금 내가 따질 필요도 없겠지…………? 결국에는 실패해서 묻혀진 수많은 연구 중의 하나라니까 말야. 중요한 건… 문제의 핵은 그 런 연구 도중에 아주 우연히 형성된 그 구조나 여하간의 정체(?)에 대해서는 프리메이슨 연구진 자신들조차 모를 정도로 수수께끼의 물질이라 4……?

여하간 뭔가 거대한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는 추정 하에 이런저런 온갖 별의별 실험을 다 하다가보니까 또 어느 날 얼결에(?) 발견된 사실 하 나…! 살아있는 생물의 세포… 특히 인간의 세포와 즐겨(?) 결합하는 거 같더라…는 발견…! 하지만 문제의 핵과 융합되어 성장하던 인체도 그리 오 래 버티질 못하여 끔직한 형태로 붕괴되고 말았다고 한다.

으음. 결국 마지막 실험체였던 자니가 유일하게 핵을 잘도 받아 들여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그런 얘기지?

으음. 그게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지금 닥터 제이가 압축해서 던져 준 얘기들을 풀어서 해석해 보려 한다면, 그건 요리의 명인이 엄선해서 준비 한 요리 재료들을 초짜배기 요리사가 제멋대로 가공하여 요리를 시작하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려나!

물론 지금 밖에서는 굶주린 손님들이(나와 대교) 빨리 아무 거라도 달라고 아우성 중이며, 요리 명인께서는 지금 출장 중이시다. 그럴 때 아무리 초 짜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뭐, 이럴 땐 역시 자취생 신공이 최고지? 좋아! 내 생각 냄비(?)속에 일단 명인의 재료들 중 이건 나도 안다 싶은 재료들을 대충 선별해서 집어넣는 거야. 거기다가 기본적인 파 마늘(몽몽 남매들에게 주워들었던 얘기들) 추가. 그리고 또 주방에서 눈에 뜨이는 재료들을(내 상식과 그간의 경험들에 의해 누적된 데이터들 약간) 마구마구 투척! 이제 그냥 끓이면 된 거야. 그냥 막 팔팔~ 푸욱~!

뭔가 생각하는 과정을 ‘맷돌 굴린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에 좀 질려서 나름 새롭게 요리과정을 이미지화 해 봤더니 좀 어색하긴 했다. 그래도 내친 김에 계속 맛난 잡탕찌개를 기대하며 얼마간을 더 진행해 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냥저냥 식탁 차리기(요점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밑반찬- 자니 핵 요리의 재료는 요리명인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과거의 지금은 아직 알 수 없는 어느 날, 칠칠맞은 미래여자 진 덕분에 미래 로봇과 그 안의 미래 과학 데이터를 손에 넣는 그야말로 땡을 잡은 프 리메이슨. 그날 이후 지금까지 프리메이슨이 단행해 온 이른바 ‘미래 데이터 현실화’ 프로젝트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방대하여 언제인가부터는 프리메이슨 자신들조차 전체적이고 세세한 관리는 불가능해 졌다고 한다.

뭐, 내가 직접 가 본 공룡섬 정도로 장난 아닌 규모와 결과물조차도 딱히 당장 쓸데가 없으니까 일단 재고 창고로 치고 잊어먹자. 그래, 그런 프리 메이슨의 무수한 연구진들 중 한 팀이 웬 쬐깐한 돌멩이 하나를 ‘초고밀도 에너지 집합체를 실험 중’이라고 보고해 봐야 제대로 확인하는 간부가 없 었던 것도 당연했다고 봐야겠지. 어쨌든 이걸 베이스로 다음 단계.

메인 요리- 완성된 자취생표 잡탕찌개는… 몰라, 나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고 맛 볼 생각 없으니까 알아서 드삼!

초고밀도 에너지 집합체로 추정되는 주황색 쬐깐한 돌멩이, 과감하게 줄여서 ‘초돌’. 문제의 초돌을 당시의 초돌 연구진이 처음부터 아예 만들어낸 건지, 어디서 주워 온 돌멩이에다가 뭔가 실험하다가 그런 결과를 낳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 후 또 뭔 실험으로 자니를 탄생시켰는지도 현재까지 아는 생존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자니 녀석이 미령이에게 고백했던 ‘불꽃인간으로서의 각성’의 그날, 자니의 불꽃에 사라진 것은 자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었다고 했지? “불태웠다기보다는 소멸, 그래. 그 정도의 엄청난 열 에너지였던 모양이야.”

닥터 제이의 표현처럼 자니와 관련된 자료들은 그날 완전 소멸. 물론 그때까지 상급기관에 보고되었던 데이터가 있긴 했지만 그런 보고서에는 본 질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희대의 초강력 울트라 라이터・・・ 아니, 그건 아니고… 하여튼 레어 아이템을 얻은 프리메이 슨은 자니의 능력을 몇 차례 검증하는 과정에서 이미 12인의 사도들 수호전사감으로 내정되어 버렸다지? 그 이후 오늘까지의 과정이야 더 따질 것 도 없이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안전하다고 판단되네. 보고서에는 분명 ‘인체 세포와의 융합’ 실험에 성공할 때까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내부의 에너지 방출을 유도 해 낼 수가 없었다고 하거든. 세포의 융합 패턴 역시 인위적이고 전문적인 간섭 없이 자연적으로는 발현되지 않았다고………….”

닥터 제이는 우선 그렇게 우릴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역시 뒷말이 문제였다.

“…현재의 상태? 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자니와 함께 한 세월 동안 어떤 변수가 생겼는지 조사해 볼 장비가 현재 여기에는 없거든. 여튼, 우리 그 건 좀 더 천천히 진행하자구.”

닥터 제이의 말처럼 천천히 조사를 한다고 해도 사실 상관이 없기는 했다. 그러니까 당장의 생각도 다음 단계로

후식- 블랙 커피. 이건 커피? 아니면 코피?

젠장..! 이게 어쩌면 메인 요리보다도 중요하다. 블랙 놈이 이걸 왜 챙겨가지 않고 나에게 주었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어. 그때 분위기가 아무래도 쫌 그래서 얼결에 받아들었고, 그땐 묻어있던 혈흔이 자니의 몸속에서 꺼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지. 으~ 블랙 놈은 대체 왜 이걸 준 것이 며, 자니 놈은 또 왜, 지가 무슨 득도한 고승이라고 사리 같은 걸 남기고 난리였던 거냐. 니들이 왜 나까지 시험에 들게 하냐고오~! 으으. 안돼.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진유준!

사실 애초에 생각 패턴을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식탁 차리기 같은 식으로 억지 꿰어 맞추기 놀이를 했던 거 자체가 ‘현실도피’였다. 문제의 사리인 지 초돌인지가 정말로 이제 안전한 상태라고 확인된다고 해도, 그래도 역시 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있기 때문이다.

“저기, 대교. 이리 와서 이거 시식 좀 아니, 그게 아니고, 암튼.”

난 내가 만들고도 내가 먹기 무서운 음식상을 앞에 둔 사람 기분으로 대교를 찾았다. 대교가 냉큼 날아와 마주 앉았을 때, 나는 다시 요몽을 호출하 여 아공간의 초돌을 꺼냈다.

“대교. 난 이게 안전하다고 확인되면 내가 낼름 먹어서 업그레이드판 태양마공의 부싯돌 겸 장작으로………….”

쳇. 아무래도 대교는 내 썰렁 농담을 받아 줄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군. 하긴, 영특한 우리 대교는 이미 나보다 빨리 요점 정리를 끝내고 내가 부르 길 기다렸겠지?

“음. 미안.”

난 손바닥 위의 자니 초돌을 새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안 되겠지?”

대교는 작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아무리 안전한 물건이고… 또, 고 녀석에게 유일한 자격이… 이걸 가질 유일한 자격이 있다고 해도… 그래도 주면 안 되겠지?” 

대교의 얼굴에 새삼 안쓰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결국 다시 끄덕.

“음. 역시… 어?”

내가 뭘 어쩔 틈도 없이 초돌은 이미 대교의 손에 옮겨져 있었다.

“죄송해요, 오라버니.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젠장! 대교가 내 허락도 없이 초돌을 가져갔거나 말거나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으~음?! 대교, 얘도 지금 괜찮은 거…같지?

“대교. 진짜… 괜찮니?”

“예.”

일단 대답해 놓고 다시 더 잠시 뭔가 느껴보고 가늠해 보는 듯하다가 결국 대교는 다시 나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임마. 네가 정말 괜찮으면 된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울상 짓고 고개 숙이지 마. 넌 다만 동생을 걱정했을 뿐이잖아. 내가, 아니 우리가 이걸 돌려주려고 했던 고 녀석, 미령이를.” 「주인니임~!」

으흑. 설마?

「미령님으로 부터의 긴급 호출이예요오~!」

이,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서, 설마. 미령이에게 원판이나 닥터 제이 귀신이 씌었단 말인가? 이 요망한~

나는 그만 허공에 소금 뿌리는 동작을 하며 현실도피를 선택했고, 대교도 고뇌에 찬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어. 그, 근데 소금을 뿌리는 게 귀신 쫓는 거, 맞긴 했던가? 귀신이든 뭐든 왔다가 갈 때 뿌리는 그럼 울 엄니가 주셔서 원판 얼굴 나오는 모니 터에 붙였었던 부적. 그 부적을 쓰는 게 더 나을… 으~ 나 계속 왜 이러니?

「응? 주인님? 대교님? 왜 그러세요?」

요몽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물었다.

「두 분이 그러시는 거, 미령님 때문이었어요? 그럼 어쩌죠? 제가 대신 받아 볼까요?」

“응? 네가? 그래 줄래?”

「넵! 주인님의 특급비서관 요몽. 궁극의 수다스킬로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닷!」

으음. 웬일로 요몽이 빠릿하게 나와주네? 어쨌든 그럼 일단 믿어 보기로 하면서 난 다시 정식(?) 고민모드로…

난 일단 대교 앞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대교는 여전히 계속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인 자세 그 대로였고, 나 역시 머리를 쥐어뜯다가 가끔 긁적이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 젠장. 차라리 칼질하면서 싸우는 게 낫지. 이런 난감 주제로 고민하는 것이 더 힘들어. 미령이 녀석이 이렇게 빨리 눈치까지만 않았어도 좀 더 차분하게 상황분석을 할 수 있었을텐데. 응? 가만…? 눈치?… 뭘? 어떻게?… 이런, 제엔장! 내가 왜 이렇게 기본적인 것조차 놓치고 있었지? 아무 리 미령이 맴 다칠까봐 걱정이 앞섰다고 해도 그렇지…………!

난 어이없다 싶게 스르르 뭔가 풀리는 느낌과 함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를 실제로 쥐어짜고 있 던 손가락의 힘을 풀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대교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들며 무언의 호소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제발 당신께서 어떻게든 해주세요.’

다행히 난 풀어져있던 머릿속 나사가 조금이나마 조여진 상태여서 씁쓸하게라도 웃어 줄 수가 있었다.

“좋아. 요몽, 수고했다.”

내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요몽이 날아와 내 손바닥에 자신의 작은 손을 탁 치며 기세 좋게 외쳤다.

「소요시간 32분 18초! 성공적 임무완수 및 교대엣! 우히힛~」

“…유준 오빠?”

“어, 그래. 나다. 음… 잘 돌아갔니?”

“…아니. 여긴 지금………….”

요몽이 신나게 펼쳐 보여주는 지도 위로 미령이가 말하는 지명의 위치가 표시되고 있었다.

상당히 가까운 곳이로군.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의 보안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늘 헤 어지면서 행선지를 숨기지 않았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가까이 오며 연락을 했다는 건 역시나………….

“……그리고 요몽이 자꾸 딴 소리하면서 시간을 끄는 거 보니까…..”

여전히 싱글벙글하던 요몽이 허걱~하는 기색인 건 뭐, 그렇다 치고.

“…음. 유준 오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미령이는 잠시 뜸을 들이기는 했지만 역시나 미령이다운 직구승부.

“있는 거죠? 자니! 그 바보 남자의… 유.품.이!”

역시나, 직구이며 강속구.

“…그래. 있어. 녀석이 남긴… 무언가가.”

“…제가 지금 갈게요.”

“아니, 아니, 그게 여긴 지금 오픈 준비 중이라서 그 뭐냐. 청소도 좀 해야 하고………….

“…훗~! 알았어요. 소령언니랑 쇼핑 좀 하고 갈게요.”

딱히 재밌지도 않고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내 반응에 살짝 웃어주기까지 하는 미령이가 고마운.⋯것도 그렇다 치고!

난 조금 전부터 미리 건빵주머니에서 꺼내들고 있던 이 기지 전용 무선기의 긴급호출 버튼을 눌렀다.

“천주?”

“그래. 자룡대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걸 최대한 빨리, 준비해 줘!”

내가 미령이와 통화를 시작했을 때까지는 기대에 차있던 대교의 안색이 점차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자룡대주에게 내려지는 명령의 주제가 ‘최악 의 재난상황 대비’ 였기 때문이었다.

“아, 미안, 대교. 이건 그냥 만약을 대비해서 미안. 미리 상의했어야했는데…많이 놀랐지?”

“아, 아니예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공연히 오라버니 심기를……….”

“어, 야아~자꾸 그러지마아. 공연히 버벅대고 그런 건 난데 니가 그러면 더 정말 무지무지 미안해지잖아.”

내가 두 손을 저으며 말끝에 공연히 히죽 웃어 보이기까지 하고 나서야 대교도 비교적 빠르게 평소의 모드를 되찾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하아~ 처음, 인 것 같아요. 제가 깨어난 이후 이렇게 속수무책이었던 것이.”

그러고 보니까 정말 그랬던 것 같았다. 나 역시 블랙 놈이 자니를 죽이는 걸 막지 못했을 때 빼고는 이렇게까지 상황대처에 버벅댄 건 처음이지 싶 었다.

“…초돌.”

난 쥐고 있던 손을 펴 손바닥 위의 초돌에게 새삼스런 시선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이 작고 태평한(?) 녀석은 내 손의 작은 움직임에 따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무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두어 시간 후.

나와 대교는 자룡대주 한 사람만 대동하고 기지의 비행장에 나와 있었다. 미령이가 탔다는 헬기가 저만치 먼 지평선에서 한 점으로 나타난 건 몇 분 전이었고 빠르게 그 크기와 존재감이 커지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현재 눈앞의 이 비행장 역시 즉각적으로 상황변화에 대응하여 확장 운용이 가능합니다. 확장 규모는… 음. 이 기지에 관한 추 가보고는 차후 진행하도록 그래야겠네요, 천주.”

-흣~! 미안, 자룡대주. 이런 곳에서 내가 처음 내린 명령이 ‘재난 경보’ 라니, 정말 미안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천주. 다소 미묘하고 황망한 타이밍이긴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자룡대주의 얼굴에 약간이라고는 해도 확실하게 씁쓸함과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곧 그마저 지운 자룡대주는 헬기 쪽으로 몸 을 돌린다 싶은 순간, 피융~ 쏘아지듯 내달렸다.

와우~ 대단한 걸? 저 경신법・・・ 그러니까 최근 대교가 전수해 줬다는 저 경신법 이름이………………

-팔방종횡(八方縱橫 맞지?

-예. 그러한 이름이지요.

공동 여제자의 무공성취도에 대한 칭찬이라던가 여하간의 일상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자룡대주가 헬기에서 내리는 소미령 자매와 인사를 나 누자마자 내 명령을 전달하고 시행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음. 이제 우리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전음을 교환하며 함께 공공보법을 펼쳐 미령이에게 향했다. 내 사전지시대로 소령이와 자룡대주까지 다시 태 운 헬기가 스윽- 떠오르더니 기지 건물 뒤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 같았다.

“대교 언니. 유준 오빠.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대체 뭐가 미안하고 고맙다는 건지 되물을 수가 없어서 입을 열지 못하는 사이, 미령이는 새삼 우리 주위의 텅 빈 공간을 돌아보았다.

“나야말로 미안. 천하의 미령 공주마마가 납시었는데 거창한 환영식은 고사하고… 청소만 겨우 해놨네?”

“후후 이 넓은 비행장은 청소하는 것이 더 힘들었겠어요.”

내 농담에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는 건 좋은데 역시 뭔가 평소의 미령이가 아닌거같지?

“하여간, 그 바보 남자, 끝까지 여러 사람 힘들게 하네요.”

그래. 그 중에 네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도 힘들다.

“훌훌 털어 내려고 했어요. 금방 잊어버리고 더 멋진 남자 만나겠다고. 그런데 생각이 나버렸어요. 그 바보가 했던 말이요. 함께 하늘을 날던 그 때 외쳤던 말들이…………….”

·선물. 깜짝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해 놨다고 그렇게 말했었다고…?

그 진짜 바보 녀석…!

블랙과의 싸움에서 어떡해서든 이기고 귀환하여 승리한 자기 자신이 바로 선물이라고. 그런 프로포즈 이벤트를 생각했었던 건가?

아니면 단지 어떻게 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미령이에게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었던 걸까…?

결국 블랙에게 패하자 자신의 핵만이라도 미령이에게 전달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었던 걸까……?

난 비로소 내 손안의 초돌에게서 느껴지는 너무나 미약한 이 울림이 ‘보고픔’, ‘그리움’ 같은 감정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령아. 이거….”

난 손을 내밀어 손바닥 위의 초돌을 보여주었다.

“이건 근데, 그… 자니의 그…….”

“어머? 생각보다 작네요?”

응?

“자니의 그 엄청난 화염능력과 지금 유준 오빠가 이렇게 조심하는 것으로 봤을 때는 뭔가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수상한 물건일거라고 생각했는 데… 근데 이건 도대체…”

“어, 야. 이게 이래봬도 그 뭐냐, 초고밀도 에너지가 집약된…”

쯧. 반응이 의외로 시시(?)하니까 내가 대신 변명해주는 분위기가………….

“후후~ 이게 뭐든,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아요.”

미령이는 주저 없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남자도 이 미령이를 다치게 하는 선물을 하진 못해요!”

미령이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초돌을 집어 들었고, 나와 대교를 번갈아 돌아보며 한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였다. 녀석은 이어서 초돌을 유심 히 살피다가 조물딱조물딱 만지고 비벼보는 등, 나름의 감정을 해보는 것 같았다.

“하아아아~!”

긴 한숨을 토해낸 건 대교였다. 난 도중에 살짝 풀어져 버렸지만 얼마간 호흡마저 멈춘 채 미령이와 초돌의 접촉 순간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 비하고 있던 대교는 이제 끈 떨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축 늘어져 버릴 만큼 허탈해진 모양이었다.

나도 사실 만만찮은 기분이긴 하지만… 자아 이제 어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역시 닥터 제이와 우리 연구진에서 조사를 해보고 나서 가져가라 고・・・ 그래야겠지? 응?

“미령 아가씨.”

자룡대주였다. 헬기를 안전지대로 이동시킨 후 돌아온 모양이었다.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GIA의 G.G 자격증이 있거든요.”

GIA의 G.G 자격증?

-요몽.

「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에서 발급하는 국제공인 보석 감정 전문가 자격증이에요. 보석 좀 볼 줄 아네요」

오호라~ 나름 돌멩이 전문가가 가까운 곳에 있었군. 근데 나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윽!

“안돼! 멈춰!”

파아앗-!

한 박자 늦은 내 고함과 거의 동시에 폭발적인 불꽃이 미령이와 자룡대주를 동시에 집어 삼키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 뻔한 패턴을 생각 못했었다니!

-자룡대주! 자룡대주, 괜찮아?

-…으. 예, 천주. 저, 전 괜찮습니다.

자룡대주의 대답은 꽤 먼 거리에서 전해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펼친 경공 팔방종횡 덕분에 불꽃 못지않은 스피드로 몸을 피할 수가 있었던 모양 이었다. 그래도 이미 옷에 붙은 불을 끄느라 비행장 바닥을 뒹굴어야 했고 그런 상태에서 아직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옴마나~ 이게 뭔 일이래요오?」

요몽이 호들갑스럽게 날았다.

「우리 스캔과정에서 그렇게 얌전하던 녀석이 왜 갑자기 신경질적이 된 거지? 뭐야, 쟤!」

-네 말이 맞아 요몽.

「예?」

-초돌. 저 녀석 지금 신경질 부린 거야. 자기를 미령이로부터 떨어지게 하려는 존재에게 말이야.

그래. 내가 한 박자 늦게 깨달은 것이 그거였다. 초돌이 원하는 인체와의 접촉, 그 이후 다시 떨어져야 할 경우 그때야말로 우리가 주목했어야하 는 순간이라는 사실.

“…미령아. 괜찮니?”

“아, 예. 괜찮은 거 같아요.”

화염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미령이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답해 온다. 사실 이런 것도 당연에 가까운 전개이다. 자니와 결합된 상태에서의 초돌은 계

속 자니의 신체는 물론이고 자니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미령이까지도 보호하는 형태로 열에너지를 발산했었으니까 말이다.

“유준 오빠. 묘해요, 기분이.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하고… 그래도 왠지. 왠지……”

미령이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난감해하면서도 계속 자신의 두 손을 들어서 움직여보고 머리를 저어 본다거나 여러 가지 행동을 하면서 그에 따라 기묘하게 일렁이는 불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 자니에게 납치당하던 때에는 정신이 없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꽃에 대한 감상을 할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군. 이제야… 음. 일단 그 건 그렇다 치고.. 이제 어쩐다? 저 ‘한 떨기(?) 불꽃 소녀’를 말이야.

“…어, 야. 미령아. 그거 그러지마.”

미령이는 조금 전부터 초돌이 달라붙어 있는 손바닥을 탈탈 털어 보거나 다른 손 엄지와 검지로 집어 올려서 손가락을 벌렸다가 다시 붙였다가하 는 걸 반복하면서 그때마다 어느 손가락에 초돌이 붙는지 확인해 보는 것 같았다. 그런 행동을 멈춘 것은 내 말을 들어서라기보다 우리 주위의 상황 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천주!!”

은사마군이었다. 그녀는 나와 한 떨기 불꽃 미령이를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고, 그건 우리 주위로 몰려들어있는 수십 명의 다 른 지하무림 병력들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저 소방차와 구급차, 그 앞의 소방대원들은… 흠. 이 기지에는 자체적으로 소방대까지 있었던 건가?

나와 대교는 화염이 솟구치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가 곧바로 미령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마음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대 교는 곧바로 자룡대주에게 날아가 그녀를 도왔고 나는 이렇게 나름 여유롭게(?) 미령이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내 수하들은 당연히 그렇지 못해 서 이렇게 엄청 몰려들어온 건 물론이고 무지하게 부담스런 시선을 나와 미령이에게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큼. 크흠! 은사마군.”

“예, 천주. 하명하십시오.”

“지금부터 얼마간 그러니까 자룡대주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어사조의 지휘를 은사마군이 맡는다. 그리고……………

“…복명!”

은사마군이 내가 지시한 몇 가지를 시행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든 병력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철수하기 시작했다. 자룡대주는 살짝 거 부하는 몸짓을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구급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 뒤에 오르고 있었다.

음. 내가 자룡대주의 화상치료에 특히 만전을 기하라고 한 건, 어디까지나 최측근 수하이자 나의 유일한 여제자이기도 한 자룡대주를 그만큼 아끼 기 때문이지. 암. 난 결코 나중에 조담놈에게 칼침 맞기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니다. 진짜… 큼, 흠. 어쨌든 이제 다시 우리 불꽃 미령이에게 집중해야 지?

“미아.”

이 녀석…! 내가 부르며 한 걸음 다가서려니까 지가 더 재빨리 물러나다니…! 조금 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자마자 초돌을 감추듯 쥐고 뒷 짐자세를 취한다 했더니……………

“미령아. 걱정하지마. 그거… 초돌을 빼앗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초・・・돌?”

“아니, 뭐. 그냥 내가 임시로 붙인 별명이니까 앞으로 네가 뭐든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 부르면 되는 거야. 그건 어디까지나 너만의….”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네 친구,니까.”

자기 소유를 인정하고 터치 안 한다는 건 좋은데 굳이 ‘친구’를 강조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거 같지?

“사실 나도 아직 잘은 몰라. 하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그 초돌은 단순한 보석류는 아니고 거대 에너지의 집합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해. 그건 아마도 아주 기본적인・・・ 그러니까 갓난아기 정도의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미령이는 뒷짐을 풀고 손을 앞으로 하여 손바닥 위의 초돌을 새삼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령이 너도 약간은 뭔가 느끼고 있겠지만. 어쨌든 너 혹시 ‘념念)에 의한 소통’이라고 아니?”

“…아뇨. 텔레파시 같은 건가요?”

역시 우리 영특한 미령이.

“음. 비슷한 개념이야. 약간 다른 점은 나와 이 정글이처럼 매우 한정적인, 아니 실질적으로 단 둘만 가능한 통신채널 같은 거라고 할까?”

내가 정글도를 들어 보이며 설명을 시작하자 미령이는 더욱 흥미가 느껴지는지 얼마간 나의 매우 간략하면서도 형이하학적인(?) ‘념에 의한 소통’ 설명을 들었다.

“…뭐. 사실 나도 정글이와 소통이 가능해진 건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대충은 이해가 되니?”

미령이는 약간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문득 키득 웃었다.

“어떻게든 해볼게요. 이 아이와의 대화라는 걸요. 무엇보다……”

미령이는 자신의 발밑으로 30센치 정도부터 지글지글 끓고 있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야 쓸만한 남자를 찾아도 어디 접근이나 할 수 있겠어요?”

“흣! 하긴.”

나도 마주 웃었지만 솔직히 조금 뜨끔했다.

자니 그 자식! 설마 진짜 그런 의도로 초돌을 남긴 건 아니겠…?

“어멋?”

응? 어랏?

미령이가 문득 놀란 만큼 나도 놀랐다. 모두 철수한 후에도 미령이를 안으로 데려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미령이가 이 지하기지의 모처에 가기 위 한 루트를 방염처리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실내만 얘기한 거였는데. 하핫~ 하여간 항상 내 기대 이상을 보여 주는군

건물 입구로부터 나와 미령이가 서있는 이곳까지 백 미터도 넘는 거리의 공간에 은빛 방염시트가 깔리고 있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빛 시트가 미령이가 서 있는 바로 앞까지 깔렸을 때, 역시 똑같이 반짝이는 방열복을 착용한 수하들이 시트 양옆에 도열하여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두 손을 입구 쪽으로 뻗어 보였다.

“자아~ 우리 사랑스런 막내 공주마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나까지 웃으며 부추기자 조금 쭈뼛대던 미령이가 발을 떼어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게 뻗은 은빛 길을 불꽃에 감싸인 소녀가 걷고 있 는 모습은 현재의 복잡썰렁한 상황을 잠시 잊게 해줄 정도로 진짜 아주 특별한 별세계 공주님의 입장식처럼 보였다.


얼마 후.

으음. 그러니까 미령이가 여기 지하 8층의 모처에 도착한 다음 한 시간 정도가 더 지난 현재. 미령이 저 녀석 ‘교육’이 시작된 건 십분도 안된 거 같 은데 벌써 슬며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네? 하긴, 열에너지 역학⋯ 어쩌구 하는 이론교육은 나라도 지루할 거 같긴 하지만………………

“미령이는요. 저거 시간을 젤루 싫어했어요.”

“응? 그랬냐, 소령아?”

“예, ‘담당교수님, 좀 많이 느끼’라고 하며 미령인 항상 싫어했어요. 난 잘 모르겠던데.”

흠. 당시 상황이야 내 알바 아니지만 어쨌든 잊고 있었는데… 소미령이들은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 조기 입학에 조기 졸업한 나 름 천재 소녀들이었지? 그럼 섣부른 이론교육은 역효과려나?

“은사마군. 들었지? 그냥 심심하지 않게 적당한 영화나 뭐 그런 거 틀어 줘.”

“아, 난 뽀로로!”

학력을 의심케하는 소령이의 영상신청에 은사마군이 쿡, 소리를 냈다.

“아참. 아기공룡 둘리. 또봇시리즈도…”

“언니! 난 그딴거 안 봐! 난…………”

미령이의 외침이 이어지기도 전에 소령이가 쪼르르 달려가 미령이와 채널 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방염처리된 소파에 길게 눕기 시작한 미령이 로부터 십여 미터 떨어진 대형 TV옆에서 보충설명을 위해 대기 중이던 승룡대 소속 과학자 한 명이 머쓱한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은사마군의 손짓 에 따라 슬며시 물러나고 있었다.

“뭐. 초돌의 인성, 아니 돌성 교육은 이따 닥터 제이와 상의해 보기로 하고………….”

내 옆의 대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오히려 저러한 환경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요.”

대교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아까의 혼란과 걱정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나도 더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미령이가 아직 새로운 이름을 결정하지 않아서 일단은 계속 초돌. 저 녀석은 아까 미령이가 건물 정문에 도착할 때쯤에는 화력을 많이 줄였었어. 그 후로도 이곳에 안착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화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역시 저 정도가 녀석이 인식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인가?

여기서 ‘저 정도’라는 건 소령이가 미령이와 수다를 떨면서도 2미터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바깥 비행장에서는 내가 3미터정도의 거리에서 호신강기를 운용해야만 겨우 버틸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 이하의 화력인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가 된 이후로는 요몽이 제공하는 온도표시 문자의 숫자가 거의 변동이 없는 상태였다.

흠. 1000도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건… 저 정도 크기의 보통 모닥불 정도인 거 같긴 한데.. 응?

“유준 오빠!”

미령이가 날 돌아보는 순간 웃음이 나온 건 초돌이 미령이 이마 한가운데 터억 – 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냥 이렇게 하면 더 소통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흥~! 뭐가 그리 웃겨요!”

“아-미안, 미안. 하지만 딱히 이상해서 웃었다기보다… 음. 그래. 우리 자룡대의 페트라 부대주가 생각나서 그랬어.”

“페트라…? 아! 그 인도계 여자요?”

흠. GM요원답게 내 수하들을 다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군. 어쨌든 사실 미령이와 페트라의 용모가 그리 닮은 건 아니지. 다만 미령이가 진지할 때 의 야무진 표정과 페트라의 기본모드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정도..? 그치만 저렇게 이마에 점(?)하나 붙인 것만으로 더 확 닮아 보이는 건 좀 웃기긴 하네.

“아하핳하~”

방울소리처럼 맑은 소령이의 웃음소리였다. 미령이가 초돌을 이마에서 떼어 내는가 싶더니 그걸 다시 자기 코끝에 붙였던 것이다. 나와 대교도 풋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자 미령이가 다시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참! 나 배고파요!”

나도 아참! 지금 벌써 점심때가 지났지?

“은사마군.”

“준비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천주. 쉐프들이 미령 아가씨의 상황을 전해들은 후 고민이 깊어져서 그만…….”

흠. 그러고 보니 고민을 할만도 하겠군. 바깥에서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면 자신들이 그 어떤 멋진 요리를 만들어도 그것이 미령이의 입에 들어가기 도 전에 재가 되어 버릴 거라고 생각될 테니 말이야.

“훗.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평소대로 가져오라고 해줘.”

“복명.”


잠시 후.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와 대교의 등 뒤 30여 미터 거리의 출입구가 지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뭔가 우르르~ 들어오는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음…? 요리접시가 빼곡한 카트. 8대…나? 그리고 선두의 카트를 밀고 있는 건… 어, 그러니까… 장가계에서의 너무나 멋진 야외파티의 숨은 영웅 (?)!

“오~ 반가워요. 장가계 이후 처음인가? 식신마군(食神魔君)!”

내가 결가부좌를 풀고 일어서며 반기자, 식신마군도 마주 웃으며 정중하게 포권했다.

“오랜만에 존체를 뵙게 되어 저도 무척 기쁩니다, 천주. 그리고…..”

식신마군은 예의 ‘살인미소’를 대교에게 날리며 다시 포권했다.

“천모께서는 그날 천주께 보쌈 당하신 이후 더 눈부시게 아름다워지신 듯합니다.”

대교는 주가혜였던 시기에 나와의 애틋한(?) 이벤트성 사건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지만 결국 더 하얗게 예쁜 웃음꽃을 피워 올렸다. “그날 저는 식신마군의 술과 안주 덕분에 납치당한 처지를 잊을 정도였는데 오늘에야 다시 한 번 입호강을 하게 되었네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천모. 저의 일천한 재주로는 천하의 ‘미소녀 미식가께 꾸중을 당할 일만 두려울 따름입니다.”

하핫. 이 양반 대교가 주가혜였던 시절에 출연했던 TV연예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구나. 그 프로 컨셉이 아마 당시의 주가혜를 비롯한 여러 미소녀 아이돌들이 보기보다 깐깐한 입맛을 자랑하며 매주 다른 맛집들을 하나씩 초토화시키는…………….

탕-~! 탕~!

뭔가 두드리는 소리? 윽! 아차차차! 반가운 만남으로 저 애들, 오늘의 미소녀 미식가(과연?)들을 깜박하고 있었다!

다정한 인사를 나누던 모두가 돌아보니, 미령이는 손으로 자신의 소파를, 소령이는 한발로 바닥을 친 거였다. 녀석들은 한창 배고플 때 무지하게 맛난 냄새를 앞세우며 등장한 음식대군의 진격(?)이 멈춰있는 것에 단단히 뿔딱지가 난 모양이었다. 배고픈 미소녀 자매의 이글거리는 살기에 의해 때 아닌 ‘최악의 재난’ 경고등이 켜지는 것 같았다.

“식신마군! 당장 제물을 바치 아니, 하여간 빨리 쟤들 밥 좀 줘요!”

“보, 복명!”

식신마군이 급히 카트를 밀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른 음식 대군들도 일제히 진격…이라기보다는 그냥 투항을 시작했고 비로소 최악의 재난 경보 등이 꺼지는 것 같았다.

…흠. 아직 완전히 안심하기는 이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적어도 초돌이 자기 의지로 미령이를 해칠 가능성이 없다는 건 일단 확실하다고 봐 야겠지?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 아니 어쩌면 대교도 이미 현재의 결과를 예측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계속 버 벅대며 걱정과 고민을 사서했던 거・・・ 인정! 아무리 우리라도 미령이의 마음까지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오만을 앞세운 ‘과보호 모드’였다는 걸 인정하고 반성하자, 진유준. 이제는 미령이를 좀 더 믿고 좀 더 많이 지켜봐 주자.

어찌어찌(?) 마음을 좀 정리하고 나니까 문득… 쓴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미령이가 자니의 깜짝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거로 친다면… 나야말로 오늘 지하무림으로부터 너무나 큰・・・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깜짝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

나도 짐작조차 못했던 건… 젠장! 어사조같은 내 측근 지하무림인들은 물론이고 몽몽 남매들, 심지어 우리 대교조차도. 즉, 나만 빼고 전부가 한 통속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선물은 이 지하비밀기지 그 자체였단다. 내가 대교와 몇 시간 시찰하며 ‘프리메이슨의 비밀 지하기지에 비하면 작 다’라고 생각했었던 공간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 규모만으로 치면 그랜드캐년에 있었던 DP의 비밀기지를 가뿐하게 넘어설 거라나? 이 터무니 없을 정도로 거대한 깜짝 선물의 이름은… 구.중.천(九重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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