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76화 : 고요의 념력자(念力者). (3)
2. 고요의 념력자(念力者). (3)
얼마 후.
나와 대교는 세이렌 자매들이 밀어주는 물결과 함께 고요의 저격수가 기다리는 섬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까의 저격 트랩 상황 때문인지, 대교의 기색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져 있어서, 내가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주인님.」
-어. 그래, 몽몽. 요몽과 교대했구나.
요몽과 교대해서 나타난 몽몽에게 짐짓 태연하게 웃어 보였지만, 녀석의 분위기도 대교 못지않게 심각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아직 코드명 고요의 저격수, 그의 능력에 대한 분석이 미비한 상태입니다.」
-죄송하긴, 내가 분석 시간 많이 줄듯이 말해놓고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오히려 미안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께선 코드명 레인의 합류에 따른, 합리적 선택을 하셨을 뿐입니다. 저의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짜식, 그러지 말라고 해도 자꾸 그러네.
몽몽은 최근 나름 도통한 이후로는 처음 보이는 ‘죄송맨’ 모드였다.
나는 빠르게 커지며 가까워져 가는 저격수의 섬에서 슬쩍 시선을 떼고, 일곱 번째 섬을 보았다.
-몽몽. 레인과 CR들 움직임은 어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아쿠아린 형제만 처키의 전투 보조로 편성되고 다른 모든 CR멤버 전원이 일곱 번째 섬, 코드명 ‘신의 전차’가 대기 중인 장소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이는 흑해 1호에 대기 중이던 병력까지 포함한 사항입니다.」
에? 나와는 다른 패턴으로 지휘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좀 뜻밖일세?
-하핫! 대교. 레인 녀석 스타일이 생각보다 화끈하네?
슬쩍 그렇게 말을 걸어보았으나, 심각모드의 대교는 형식적으로 작게 웃어 보일뿐이었다.
-아니면, 신의 전차라는 덩치가 내 생각보다 엄청 강한 걸까? 우리, 그쪽 구경 좀 하다가 갈까?
-죄송해요, 오라버니. 저는 저격수에게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요.
에고. 고요의 저격수를 치러 출발하는 순간부터 불기 시작한 찬바람이 갈수록 강해지기만하네. 어설픈 분위기 전환 시도는 소용없겠어.
-몽몽. 너도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너도 대교처럼 고요의 저격수에게 빡 돈 상태가 여전하냐고 물은 거야.
「현재 저의 시스템 자원이 고요의 저격수 분석 및 대비에 치중된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이는 현재 주인님 서포터 상황에 적합한 형태일 뿐,
인간적인 감정을 우선시한 시스템 정책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흠. 빡 돌았다 정도는 아니라도, 살짝 돌긴 돈 상태임을 자인하는 것 같군.
쯧. 이제 어쩐다? 아까 고요의 저격수 놈의 트랩에 걸렸을 때, 나도 살짝 흥분해서 저격수 놈과 싸울 때는 몽몽에게 서포터를 맡길 것처럼 말했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역시 놈은 내 힘만으로 잡고 싶어지고 있으니… 음. 망설이는 사이에 도착해 버렸네.
「주인님!」
보트에서 뛰어내리려던 나와 대교는 몽몽의 경고 때문에 일단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만, 1차 스캔만으로도, 두 분의 경공으로 착지 가능한 모든 해변에 수상한 념(念)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뭐시여?
「스캔 한계선까지의 패턴 분석 결과, 스캔 범위내의 오염된 념의 분포는, 섬 전체에 걸쳐 이루어져있을 가능성이 70퍼센트 이상입니다.」 난 다소 어이없어하며 새삼 눈앞의 작은 모래 해변과 바위투성이의 지형을 돌아보았다. 이 섬 역시 미리 대충이라도 봐두었었는데, 당장 눈앞의 전경은 조금 전에 떠나온 환영의 천사와 싸웠던 섬과 비슷하게 바위투성이의 복잡한 지형으로 보였다.
그러나 저 수 십 미터 높이의 바위 언덕은 섬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을 뿐이고, 중심부근은 빽빽한 숲으로 이루어진 분지 형태였어. 그래서 저격수 놈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분지로 유도한 다음에 절벽위에서 아래로 저격하는 식의 공격을 예상해 보기도 했었는데… 근데, 그런 어떤 작전이고 뭐고, 아예 섬 전체에 ‘념의 트랩’을 깔아 버렸다는 건가?
-몽몽. 대체 어느 정도인거냐? 설마 발 디딜 틈도 전혀 없는 거냐?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해당 포인트를 이용한 이동도 권고 사항은 아닙니다.」
하긴, 트랩 작동을 피할 수 있는 곳의 위치도 놈이 뻔히 알고 있을 테니, 거긴 또 직접 저격해 오겠지?
-쳇! 환영의 천사 때처럼, 이 녀석도 짜증나는 타입이긴 하지만, 이 녀석은 원래 ‘저격수’니까 뭐라고 하기도 좀 그러네. 하는 수 없지. 대교! 투덜대는 전음 끝에 대교를 부르자, 그녀는 무심결에 날 돌아보았고, 난 뜬금없이 치켜든 한손의 주먹을 살짝 흔들며 외쳤다.
“가위, 바위, 보!”
“예?”
의아해 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마주 손을 내민 대교의 손은 보자기였다. 나는 거의 동시를 가장하여 영점 몇 초 늦게 바위를 내민 상태였다. “에이~ 내가 졌네. 그럼, 할 수 없이, 몽몽 너 가져.”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대교의 손에 몽드폰을 쥐어 주었고, 대신 그녀의 귀에서 몽몽 하위체를 빼내서 내 귀에 넣었다. 대교는 얼결에 몽몽을
받아들기는 했지만, 결국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 팔을 잡아왔다.
-오라버니. 설마, 혼자 하시려는 건가요? 더구나 몽몽도 없이? 제발 이번만은 그러지 말아주세요.
-아니. 이번에는 그 반대야. 대교 너도 지금 열 좀 받았지? 몽몽과 함께 저격수 놈에게 돌격해서 아작을 내던지 맘대로 해. 난 저걸로 지원해 줄게. 나는 보트 옆의 물속에서 스윽- 내밀어지는 내 무기 배낭을 받아들었고, 대교가 비로소 작게 탄성을 울렸다.
-아~! 세이렌 자매 중 한명이 왜 안보이나 했더니, 그랬던 거군요.
대교는 몽몽을 손목에 차며 살짝 기쁜 기색의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활과 화살, 그 밖의 몇 가지 소도구가 든 배낭을 등에 메며 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야! 이상한 저격수! 우리 왔다! 얼굴 좀 보자”
내력을 실어 섬 전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외친 거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온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너, 수줍음 많은 거 아는데! 그래도 이번 대결은 좀 특별하잖냐! 인사나 하고 시작하자구!”
‘아무리 같은 편한테도 얼굴을 보이기 싫어하는 놈이라도, 이정도 상황에서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냐? 흐으음. 이 녀석, 이거 혹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녀석인 거 아닐까? 그래서・・・ 어? 나온건가?’
정면에서 약간 우측의 가장 높은 바위 두 개의 사이에서 스윽- 하나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내공으로 안력을 높이면 얼굴 구분까지 가능한 거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저 챙이 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네. 사실, 지난밤에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 제공된 영상데이터로 녀석이 저렇게 왜소한 체형에 짙은 녹색 전신 슈트 차림인건 알고 있었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자 디자인이 낯설면서도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중세 서양식 모자랄까? 그런 거였군. 뱀파이어 시그마처럼 펜싱 칼을 차고 있으면 어울릴법한데, 저 녀석은 그런 칼 대신 총을, 총신이 아주 긴 저격용 총을 한손에 창처럼 들고 있네.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을 탄환화 할 수 있는 녀석이 따로 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저 총의 위력이 념으로 조종하는 탄환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겠지. 음? 이번에는 얼굴도 보여주려는 건가?
고요의 저격수는 천천히 한손으로 모자를 벗어들더니, 모자와 손을 반대편 가슴쯤에 대며 정중히 상체와 고개를 숙여왔다. 여자처럼 긴 머리를 뒤로 묶었으며, 창백한 낯빛에 길고 뽀족한 턱선, 가늘게 뜨여진 눈매의 백인 남자였으며, 무엇보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뭐, 이젠 아는 얼굴이든 아니든 상관없으려나? 통성명도 하자고 할까? 아니면.. 훗. 얼굴 보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거지?
고요의 저격수는 다시 모자를 쓰고 다른 손의 총을 들어 우리 쪽을 겨냥했다. 그리 빠르지도 않은 행동이었으나, 나와 대교가 총구에 겨냥되기 직전까지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놈의 행동이 가볍게 하품이라도 하듯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배액!
형언키 어려울정도로 날카로우면서도 강력한 바람이 내 짧은 머리카락을 몇 올 날렸다. 주저앉듯 몸을 낮춰 총을 피한 나 역시, 이미 활을 들고 화살을 먹인 상태였다.
파악!
내가 날린 화살도 놈을 향해 맹렬히 쏘아졌고, 그 화살 못지않게 눈부신 속도로 대교의 신형도 날았다.
놈! 내 화살을 피하고 바위 뒤로 사라져버렸군. 대교는? 오~ 역시 우리 대교!
내 화살이 저격수 놈의 뒤쪽 바위에 꽂히는 순간에 해변 모래 위를 가로지르는 것 같았던 대교의 신형은, 내가 두 번째 화살을 메기는 사이에 이미 바위 언덕의 절반 가까이 날아 올라있었다.
아직 어떤 트랩도 작동하지 않았지? 몽몽이 ‘념의 지뢰밭’ 공략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아, 이런!
피잉! 피잉!
뭔가가 대교에게 날아드는 것을 느낀 순간, 대교의 청명검도 짧게 검광을 뿌렸다.
잘 막았어! 근데 또?
처음 두 발의 뭔가를 막고도 신형을 멈추지 않았던 대교지만, 연이어 날아드는 정체불명의 탄환들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신형을 멈추고 약간 아래쪽으로 내려 설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대교가 실수로 트랩을 건드렸, 아, 아냐! 놈이 직접 날려댄 거야! 내가 대응 사격을 할 수 없는 곳에 몸을 숨긴 상태에서 저런 위치의 대교에게
공격을 가했다는 건?!
이건 놈의 탄환이 상당한 각도로 휘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했고, 당연히 놈의 저격에 사각지대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판단과 함께 정글도를 쥐고 몸을 날렸다. 앞선 대교와 비슷한 지점의 해변에 착지하기 직전에 폭호결(暴虎訣)을 펼쳤다.
콰아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모래지면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모래더미가 흩뿌려졌다. 나는 그 폭연이 사라지기도 전에 정글도를 지면에 박아 넣으며
지파랑(狼)을 펼쳤다.
쿠오오~!
지파랑의 충격파가 폭호결의 여파까지 포함해서 해변 너머 바위와 나무들까지 뒤덮으며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이 충격에 의한 트랩 작동은…없는 거 같지?
나는 대교 쪽을 올려다 보았다. 지파랑의 충격파가 대교까지 덮치지 않도록 조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대교. 나의 요란한 엄호 포격(?)을 틈타 벌써 어딘가로 이동했군. 저격수 놈을 제대로 포착하여 추격 중인건지 일단 자신도 은신한 건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나는 계속 나대로 가는 거다.
우선 천천히 걸음을 떼어 전진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디서도 아무런 공격이 가해오지 않고 있었다.
폭호결과 지소파천결(地笑破天訣)의 초식들로 인해 적어도 모래해변에 있던 저격수 놈의 념은 날아가 버린 것 같군. 어디, 바위들 위는 어떨까? 나는 살짝 뛰어올라 가까운 바위 위에 올라서 보았다.
팟! 핏! 파악! 슥!
가지각색의 파공성과 함께 사방에서 뭔가가 날아들었다.
이익!
순간적으로 신형을 뒤로 빼며 왼손의 활과 오른 손의 정글도를 휘둘러 날아드는 것들을 막아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앞으로 나갈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빌어먹을. 모래 지면의 념은 모래와 함께 날려버릴 수 있었지만, 다른 곳의 념은 건재한 모양이야. 게다가 그 념의 명령에 따라 탄환화 되어 날아들 것들은 사방에 그야말로 널려있고 말이지. 결국 놈의 념이 맺혀 있달지, 스며들어 있달지, 하여간 그런 지역을 안전하게 통과하려면 라프의 대형 마랑포(?) 정도를 동원해서 날려 버려야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까지 떠올랐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환영의 천사에게 대규모 화력전을 펼쳐버렸던 건 상대의 짜증나는 도발에 대한 응징과 경고의 의미로 한정 사용한 거였다. 그걸 모든 싸움에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뭐, 지금은 어차피 라프를 꺼낼 수 있는 몽몽도 대교에게 준 상태이기도 하고, 흐으음. 어쩐다? 념의 트랩을 일일이 돌파하는 거 자체도 쉽지 않겠지만, 그 와중에 추가로 가해질, 놈의 이상한 탄환들은 장애물을 피해서 휘어 날아들 수 있고, 원거리에서는 저격용 진짜 총탄도 쏠 수 있어. 쳇. 이대로는 기껏 대교와 양동 작전을 선택한 의미가 없잖아.
문득, 바위 절벽 너머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대교가 발산하는 기운과 파괴음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몽몽이 내 귀의 하위체로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아서 갑갑했지만, 내 쪽에서도 말을 걸지는 않기로 했다.
몽몽은 거의 전 기능을 대교의 서포터에 집중하고 있는 거야. 난 몽몽과 대교를 믿고 으음. 난 우선 저 포인트, 아까 저격 후 놈이 나타났던 지점 정도를 최대한 빠르게 확보해야해. 내 호신강기를 깰 정도 위력을 가진 탄환들이 만천화우(滿天花雨) 수준으로 쏟아져 나올 끔찍한 레이스……! 썅! 알게 뭐냐!
난 결심을 굳히고 흐으읍, 깊게 숨을 들이켰다. 스윽- 앞으로 기울여지는 내 몸은 이미 한계까지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파앙!
나 자신이 정말 화살이 된 기분으로 땅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호신강기에 돌릴 내력까지 최소화하며 모든 전심전력을 공공보법에 집중한 나의 신형은 저공비행하는 제트기처럼 목표를 향해 질주했다.
핏! 핏핏핏 핏핏핏
어김없이 날아드는 탄환들의 파공음이 약하게 뒤통수를 간지럽힐 뿐인 건, 트랩작동 타이밍이 내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왓차!
내 몸은 어느 결에 목표지점 절벽을 지나쳐, 보다 높은 허공에 떠있었다. 허공에서 몸을 틀어 자세를 안정화하며 착지한건, 저격수 놈이 서있었던 바위들 사이였다.
웃! 뭐냐, 또.
순간적으로 느낀, 그극 하는 기척에 반응하여 다급하게 바닥에 장력을 날려 그 반탄력으로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콰직! 꽝!
착지했던 지점 양쪽의 톤급 거대 바위 두 개가 동시에 엄습하여 부딪치며 터진 굉음이었다. 바위 사이에 끼어 납작해지는 꼴을 겨우 면한 내가 무심결에 조금 내민 손이 차가운 바위 위에 바로 닿았고, 나의 다른 사지 모두가 불과 몇 센티 움직인 것만으로 바위와 접촉되고 있었다.
제, 젠장. 그야말로 아슬아슬했네. 으~ 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돌비린내(?)!
나는 본의 아니게 바위위에 납작 엎드려 있는 상황이 된 셈이었고, 일단 잠시 움직이지 않고 생각해 보았다.
합쳐진 바위들의 형태가 자연스러운걸 보니, 원래 붙어있던 바위들을 옮겨서 트랩을 준비했던 거군. 근데 이 자식, 이렇게 커다란 바위까지도 념의
힘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럼 대체 어떤 것까지 놈의 탄환이 될 수 있다는… 아, 아니지.
나는 문득, 놈의 ‘저격수’라는 코드명 때문에 모든 것을 ‘탄환’으로 인식해 온 것이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몽몽!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해. 적이 이용할 수 있는 물체에 크기 제한을 두지 마. 그리고 지금부터 놈의 코드명을 저격수에서… 음, 그냥
‘념력자(者)’정도로 하자.
놈이 특이한 형태로 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나도 몽몽도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놈의 코드명 ‘저격수’에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전의 거대 바위 트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호칭에서부터 ‘저격수’ 이미지를 바꾸기로 한 건데, 이런 나의 뜻을, 몽몽은 잘 알아들었겠지?
나는 몸을 돌려 바위 위에 대자로 누운 자세로 바꾼 다음, 눈을 감았다. 나는 환영의 천사 섬에서 처음 트랩에 걸렸을 때, 나름의 감각으로 놈이 남긴 념을 가늠해 보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 바위의 념도 새삼 찬찬히 느껴보았다. 정글이와 념에 의한 소통을 하며 지낸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 싶었다.
탄환이든 뭐든, 공격에 쓰이는 물체들의 념에 놈이 추가한 념 명령어는 보통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인건 거의 맞는 거 같아. 그리고 트랩 작동에 쓰이는 명령어는… ‘인간이 오면’・・・ 정도 되려나? 혹은 ‘초대한 손님이 오면’쯤 되는 거 같기도 하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여라’는 고사하고 ‘공격하라’ 정도의 표현도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어떤 공격에서도 우리가 살기를 감지 할 수도 없고.. 아까 보니 저격수, 아니 념력자 놈도 우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었어. 살기나 투지도 느껴지지 않는 녀석을 잡으려면 좀 더 근본적인 감각을 끌어올려야… 어, 이건? ‘뭔가 온다’라는 감각이 전신을 달렸다.
쌔애액!
빠르게 엄습하는 뭔가를 피해 순간적으로 몸을 굴린 직후, 정수리에 화끈한 기운이 일었다. 내친김에 더 몸을 굴려, 뭔가 날아 온 방향의 반대편 바위 옆으로 뛰어내리며 활에 화살을 메겼다.
분명 저쪽 아래에서 휘어지며 날아왔지? 달려 나가 도약하면서 놈의 신형을 확인하기만하면 나도 반격을… 에? 뭐, 뭐야?
쐐애애~
전혀 엉뚱한, 탄환이 날아가 버린 방향에서 다시 파공성이 감지되었다.
벌써 반대로 이동? 설마 놈도 순간이동 능력이? 아, 아냐!
팍!
간발의 차로 숙여진 머리를 스친 총탄이, 바위에 부딪혀 불꽃을 튀기며 방향이 꺾였다.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보이는 예의 초감각 모드가 발동해 준건 좋았지만, 그런 내 초감각 시야 속에서, 놈의 금속 탄환은 다시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날아들기 시작했다.
금속 총탄이 살아있는 것처럼 날아다녀? 이씨!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