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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144화


144화. 전면전(全面戰) (2)

부우웅!

단검이 호선을 그렸다.

“큭!”

당연히 베르티온은 그에 반응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검과 검의 격돌.

카아앙!

호각을 이뤘다는 증거처럼.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영혼 흡혈’의 효과로 인해 마력 0.3을 획득하셨습니다.]

‘영혼 흡혈’은 유효타를 적중시키지 않아도 대상의 마력을 빼앗아 온다.

‘막지 말고 피했어야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상위 버전의 스킬답게 여기엔 또 하나의 추가 효과가 있었다.

[‘영혼 흡혈’의 효과로 인해 정기 0.01을 영구히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상대의 마력을 흡수해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영혼 흡혈’은 ‘정기(正氣)’라는 고유의 에너지를 착취할 수 있다.

보유하고 있는 모든 스탯과 시너지를 내며, 그 자체로도 전신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스탯.

‘간극이나 적응형보다는 급이 낮지만, 이건 전투를 할 때마다 영구적으로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시 말해.

무한히 성장하는 스탯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정기는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막말로 엘리스나 천유성과 하루 종일 싸우면서 정기를 쪽쪽 빨아간다면, 스탯을 엄청나게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영혼 흡혈’이 워낙 입맛이 까다로운 놈이라 자기가 인정한 강자의 정기만 빨아들긴 해도 엄청나게 효율이 좋은 스킬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카카캉!

카앙!

폭풍처럼 교차하는 검격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몇 번의 공방전 끝에, 베르티온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력을 뺏기는 것만이 아닌, 전신에 활력이 뽑혀 나가는 느낌.

때문에 싸우면 싸울수록 균형이 급속도로 무너졌다.

“이런 뱀파이어보다 더 뱀파이어 같은 놈 같으니라고!”

“이야. 그래도 데카서스가에서 왔다고, 눈치라는 게 있긴 하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아. 이건 비웃은 게 아니라 어느 정돈 칭찬이다.

보통은 서서히 말라 죽는 게 수순이었으니까.

그나마 초반부에 깨달았다는 점에서 가산점 정도는 줄 수 있다.

‘그래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겠지만.’

탓!

진혁이 ‘검마제왕보’를 사용해 속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카카카카캉!

단검이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크으으….”

베르티온이 공격을 막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방어하게 급급할 뿐.

감히 반격을 할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다.

종횡무진 움직이며, 약점을 파고드는 솜씨는 잔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일격으로 숨통을 끊기보다는 상대가 가장 아프고 싫어하는 부위를 노리면서, 최대한의 정기를 뽑아먹으니까.

[마력이 0.3…….]

[정기가 0.1…….]

[마력이…….]

[정기…….]

싸울수록 마력을 빼앗기는 베르티온. 반면, 진혁은 싸울수록 마력이 회복되는 기현상이 펼쳐졌다.

결국.

“쳇!”

짧게 혀를 찬 오필리아가 참전했다.

직선 궤도.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레이피어가 진혁의 목덜미로 향했다.

그러나 진혁은 사각에서 가한 기습을 너무나 가볍게 피했다.

칼끝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둘이서 덤빈다라…… 그것도 재밌겠네.”

알아서 정기를 갖다 바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너무 시간을 끄는 것도 곤란하지만, 앞으로 10~15분 정도는 엘리스가 혼자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터.

그때까진 최대한 꿀을 빨아 줄 생각이었다.

진혁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제는 두 혈족의 몸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워낙 단기간에 많은 정기를 뽑힌 탓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안 된다.

그 사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베르티온과 오필리아가 가장 절감하고 있었다.

“베르티온!”

“알고 있다!”

[오필리아가 Lv15 ‘하트 이터’를 발동합니다!]

[베르티온이 Lv16 ‘블러드 스피어’를 발동합니다!]

앞과 뒤. 2대1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포지션.

거기에 갖고 있는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걸 꺼냈다.

우우우웅!

검붉은 기운이 레이피어를 통해 발현되었다.

‘베르티온 쪽은 파괴력에 중점을 뒀고. 오필리아는 범위가 좁은 대신 급소를 노리는 데 특화된 스킬이로군.’

사실, 예전에도 6가문 놈들하고 여러 번 부딪치다 보니 어지간한 놈들이 갖고 있는 스킬의 장단점 등은 모조리 파악해 둔 상태였다.

그래도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보게 되니 살짝 감회가 새롭긴 하다.

뭐랄까?

뷰튜브에서만 보던 어린아이 재롱잔치를 실제로 보게 된 것만 같다고 해야 하나?

녀석들 나름대로 전력을 다하긴 하는데, 상대하는 입장에선 웃음만 나왔다.

젠장, 그래도 긴장이라는 걸 좀 해야 하는데…….

엘리스와 미하일이 싸우는 걸 본 뒤로 모든 게 따분해져 버렸다.

“후우.”

진혁이 작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승리야 당연한 거고.

이 장면은 따로 편집해서 올릴 생각이었기에, 연출적인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요구했다.

‘아마, 저 정도 실력을 지닌 놈들에 이런 지형과 포지션이라면 대충…….’

진혁이 머릿속으로 열심히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쿠쿠쿠쿠쿠!

갑자기 거친 기운이 솟구쳤다.

곧바로,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어디서 감히 딴생각을 하는 거야!”

“건방진! 아주 찢어 죽여 주마!”

두 혈족이 극한까지 갈무리한 마력을 해방시켰다.

검붉게 물들은 칼날이 동시에 쇄도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

거기에, 먹잇감을 발견한 뱀처럼 공격의 궤도 또한 괴랄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회심의 일격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놈들은 알고 있을까?

그 완벽함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차라리 팔이나 다리를 노렸으면 조금 더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우직하게 급소만 노리는 거냐?’

진혁이 양손에 쥔 검에 각각 다른 마력을 주입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계산된 양.

그리고.

날아오는 검의 궤적에 맞춰.

‘……지금!’

몸을 살짝 틀은 진혁이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앞과 뒤에서 폭사된 레이피어가 진혁의 검들과 부딪치자, 아주 미묘하게 궤적이 어긋났다.

뒤에서 심장을 노린 칼이 겨드랑이 사이를 빠져나갔고.

앞에서 목을 노린 칼은 목덜미를 스친 채 뒤로 뻗었다.

푹!

푸욱!

살이 꿰뚫리는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

“커억…….”

“아…….”

짧은 탄성이 흘러나온 건 꼭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경악.

자신들이 상대하는 자가 대체 무엇일까에 관한 의구심.

그리고 모든 걸 넘어 압도적인 적에 대해 느껴질 수밖에 경외감.

그런 온갖 종류의 감정 때문이리라.

콸콸콸!

심장에 바람구멍이 난 베르티온이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난 뱀파이어라도 하더라도 상극인 ‘별의 가호’를 두른 검에 심장을 파괴당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몇 번인가 거칠게 호흡을 하는 게 고작.

그렇게 삶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던 베르티온이 마침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띠링!

[탑의 상층에 자리 잡은 존재, 데카서스가의 혈족을 사냥했습니다.]

[놀랄 만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번 업적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등재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여러 개의 상태창이 동시에 쏟아졌다.

‘혼이 담긴 정수’로 인해 마력을 대폭 강화시켰다곤 하나, 상층의 존재를 잡은 건 규격이 다른 업적.

때문에 이 영상이 지닌 가치는 상식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막대했다.

‘100만 코인은 가볍게 뽑을 수 있을 테니, 명예의 전당에 올리기 전에 적당히 편집으로 만져두긴 해야겠네.’

이전까지는 강제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는 형식이었지만, 지금부터는 강제가 아닌 선택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상태창의 메시지가 ‘할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어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혜택을 받는 거겠지. 이것도 예상보다 더 빠르긴 하지만.’

릭이 구독을 눌러 수수료를 80%까지 낮춰 준 것도 있으니, 그야말로 앞길이 탄탄대로다.

뭐, 코인이나 레벨업이야 나중에 처리하면 될 테고.

그보다 우선…….

진혁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곳엔 중상을 입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오필리아가 있었다.

“하아.”

실수했네.

베르티온 쪽은 즉사였지만, 오필리아는 급소에서 2cm가 빗나갔다.

완벽한 시나리오에 작은 오점이 남게 된 것이다.

“괴, 괴물 같은…. 하아. 하아. 방금 우리 공격을 완전하게 읽은 걸로 모자라서…… 그걸 이용해 우리끼리 자멸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그런 식으로 대단한 척 치켜세워 주지 마. 안 그래도 지금 실수해서 슬프니까.”

깔끔하게 마무리짓지 못하다니.

이래서야 고인물 실격이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곡예라도 그걸 성공시키는 게 석유가 갖춰야 할 덕목 아닌가?

‘아니, 어떻게 보면 이게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긴 하겠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몇 가지 궁금했던 걸 물어볼 수 있게 됐다. 원래는 미하엘에게 물어보려 했던 거지만, 이 여자 역시 약간은 아는 게 있으리라.

진혁이 오필리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은 채 한쪽 손에 마력을 끌어 모았다.

[Lv8 ‘불의 원소’가 발동됩니다!]

화르륵!

손바닥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역시나.

봉인되었던 불의 원소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동되었다.

복사 조건을 모두 달성했으니, 스킬의 봉인 또한 사라진 거겠지.

이제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게 되었다.

“그걸로 날 고……문하려고?”

오필리아의 동공이 미미하게 떨렸다.

아무리 오래 사는 종족이라도 고통은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거야 너 하는 거에 따라 달렸지. 지금부터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할 건데, 순순히 대답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면 고인물류(流) 고문을 몸소 체험하게 해줄 거고. 아! 기왕이면 나는 후자를 선택해 줬으면 좋겠어. 너무 쉽게 가는 것도 재미없거든.”

“……뭐가 궁금한 건데?”

“너희 6가문이 노리는 곳. 거기가 어디냐?”

“그, 그건……!”

오필리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장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부위를 정곡으로 찔린 탓인지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조차 못했다.

“역시, 입을 다무시겠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어차피 쉽게 입을 열 거라곤 기대도 안 했다.

안 그래도 이 고문을 한 지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원한다면 몸소 체험시켜 주는 수밖에.

화르르륵!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다가오는 불길을 보면서도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조 있네. 나름대로 좋아해. 그런 모습.”

진혁의 입꼬리가 더더욱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쿠쿠쿠쿠쿠!

불길이 대상을 거칠게 태워 버렸다.

오필리아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엄청난 고통이 느껴질 거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오필리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눈을 뜨고 채 균형을 잡기도 전에 전신을 감싸는 냉기가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풍덩!

지면이 꺼지며, 그대로 얼음물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아아악!”

오필리아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하필이면 저 위에 있는 사람은 진혁이었다.

“오. 마침 이런 게 있네.”

진혁이 침엽수로부터 나온 나뭇가지 하나를 쥐었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꼬르륵! 꿀꺽!

“컥! 커억!”

어떻게든 물 위로 올라오려던 오필리아는 또다시 바닷물을 한가득 마셔야만 했다.

“자, 다시 질문할게. 너희가 노리는 거 몇 층이야? 어허. 쓸데없이 애 쓰진 말고. 어차피 못 올라와.”

감히 산소를 마실 생각을 하다니.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지.

“꺄아아악! 어푸. 컥, 쿨럭! 머, 멈춰! 멈추라고, 이 악마 같은 놈아!”

“미안한데, 잘 안 들려. 조금 더 크고 분명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꾹꾹.

거. 정수리가 참 탐스럽네.

나뭇가지로 정확히 정수리 한가운데를 노려는 것도 묘한 중독성이 있다.

“원한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

참고로…….

이번 건 농담이 아니다.

그러자.

“기, 기다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마침내 오필리아가 입을 열었다.

“호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뱀파이어들의 목표는 꽤나 흥미로웠다.

판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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