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203화
203화. 라이프 포스 베슬
마법과 마법이 부딪쳐 상쇄되는 과정.
콰아아앙!
퍼어엉!
불꽃과 얼음이 박살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크으으윽!”
베이로둠이 사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머릿속은 수많은 술식으로 인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잠시도 쉴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단 1초라도 대응을 잘못 했다간 당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낙하하는 수많은 마법들과 그것들을 강화하고 왜곡시키는 결계들을 상쇄시켜야만 했다.
[펜타플 실드가 펼쳐집니다!]
비교적 위력이 떨어지는 공격은 실드를 통해 막고.
감당하기 힘든 건 아예 회피해 버린다.
대응하는 한 수 한 수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베이로둠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1분……만 버티면 된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대마법을 영구히 지속시킬 순 없을 터.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최소한 7서클 마법을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면…….’
베이로둠이 정신을 집중해 새로운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Lv4 ‘적색마탄(赤色魔彈)’이 발동됩니다!]
퍼퍼퍼퍽!
“크아아아!”
실드를 두드린 붉은 섬광에 간신히 형을 갖추던 마법진이 산산이 부서졌다.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변수를 만들려고 하면 그 즉시 저 가증스러운 인간의 공격이 귀신처럼 이어졌다.
“계속 당하고만 있을 것 같으냐!”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공격에 나서야 한다.
라이프 포스 베슬만 건재하다면 치명상을 입더라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수 있었으니까.
적색마탄을 맨몸으로 막아낸 베이로둠이 모든 마력을 끌어 모아 대형 마법진 하나를 완성시켰다.
화르르륵!
[베이로둠이 7서클 ‘플레임 이터(Flame Eater)’를 발동합니다!]
직경 3m의 거대한 불덩이가 나타났다.
수백 도가 넘는 고온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
“화염 마법이라…….”
귀엽네.
진혁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무한의 마법 ‘지옥겁화(地獄劫火)’가 발동됩니다!]
격이 다른 불길이 치솟았다.
쿠쿠쿠쿠쿠!
베이로둠의 불꽃이 한 줌의 티끌이 되어 사그라졌다.
작은 불꽃이 더 크고 뜨거운 불꽃에 집어삼켜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열기.
터무니없는 위력의 고랭크 마법에, 입에선 탄식밖에 나올 게 없었다.
피해야 한다.
오직 그 생각만이 베이로둠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콰콰콰콰콰콰콰!
태양의 고리를 연상케 하는 불줄기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베이로둠의 몸이 검은색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블링크.
단거리 공간 이동 마법으로 몸을 피한 베이로둠이 왼쪽으로 약 20m 떨어진 지점에서 나타났다.
그곳은 물론…….
“뻔해.”
진혁이 좌표를 정확하게 파악해 둔 장소였다.
[무한의 마법 ‘서리마녀의 한숨’이 발동됩니다!]
이번엔 빙계 마법이다.
파츠츠츠!
한 줄기 선이 베이로둠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쩌저저적!
전신이 얼어붙는 덴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얼음덩어리는 곧, 지상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하늘과 지상을 잇는 거대한 얼음 나무가 완성되었다.
당연히 그 안에 갇힌 베이로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역중력 마법을 통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진혁이 베이로둠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아직도 40초 정도 남았어. 계속해 봤자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얼음 속에서 분노로 이글거리는 리치의 안광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퍼퍼퍼퍽!
얼음 나무가 박살나며, 검은색 가시 넝쿨들이 진혁의 몸을 관통했다.
아니, 관통한 것처럼 보였다.
진혁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 넝쿨들이 분자 단위로 분해돼 사라졌다.
온갖 마법을 경험해 온 베이로둠으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고서클 방어 마법이었다.
“내가…… 내가 모르는 마법이 있을 리 없다. 그런 게 존재할 수는 없어!”
[베이로둠이 8서클 ‘암흑의 검’을 꺼냅니다.]
기사에게 오러블레이드가 있다면.
리치에겐 마나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속성 검이 있다.
베이로둠이 불길한 기운을 토하는 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마저도.
상대에게 비하면 그저 티끌이나 다름없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무한의 마법, 빙하조형(氷河造形) ‘하늘의 검’이 나타납니다!]
구름을 가르며 하늘에서 한 자루의 검이 내려왔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검과는 아예 규모 자체가 다른 크기다.
쿠쿠쿠쿠쿠!
어떤 걸 꺼내더라도 그걸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위 랭크의 마법으로 응수해 온다.
그것도 아예 범접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마법으로.
압도적인 절망과 좌절 속.
“으아아아아!”
수십 미터에 육박하는 검이 베이로둠과 함께 지면으로 낙하했다.
콰아아아앙!
대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지상에서 10m가량 파인 구덩이 속엔 흙과 먼지로 뒤덮인 베이로둠이 있었다.
이걸 맞고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리치의 생명력이 바퀴벌레처럼 질기다는 게 사실이긴 한 모양이다.
‘역시 소멸시키려면 라이프 포스 베슬을 부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 건가.’
진혁이 힐끗 궁전의 외곽 부분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나올 타이밍이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퍼어엉!
실드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어느새 몸을 추스른 베이로둠이 화염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전신이 걸레짝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주위의 마기들을 흡수하며 매우 빠른 속도로 부서진 부분을 복원시키고 있었다.
“나……는 결코 패배하지 않노라.”
전투에선 지더라도.
전쟁에선 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보충할 수 있는 마기와 불사의 특성상 리치는 계속해서 싸울 수 있었다.
반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진혁으로선,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10초.
발동할 수 있는 마법은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혁이 남아 있는 마력으로 새하얀 마법진을 그렸다.
[무한의 마법 ‘이터널 리뎀션(Eternal Redemption)’이 발동됩니다!]
신성계열 최강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마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우우우웅!
형언할 수 없는 기운과 함께.
모두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시야가 돌아왔다.
치이이이익!
신성계열 마법이 휩쓸고 간 자리에선 하얀 김이 뿌옇게 피어올랐다.
언데드 몬스터에게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공격답게 그 위력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크크크…… 푸하하하!”
베이로둠은 소멸되지 않았다.
해골은 반쯤 사라졌고.
입고 있던 검은색 로브는 걸레짝으로 변해 버렸지만.
생명이 끊어지진 않았다.
한참이나 광소를 터뜨리던 베이로둠이 웃음을 뚝 그쳤다.
“마지막에 웃는 건 결국 나인 모양이로구나. 솔직히 마법 실력으론 네놈이 나보다 훨씬 위였으나, 단지 그뿐이다.”
연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곳엔 ‘무한의 마법’이 모두 끝나 잔뜩 지친 얼굴의 진혁이 보였다.
“똑똑히 기억해 둬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이…… 응?”
그런데.
말을 하던 베이로둠이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있는 곳에, 진혁 외에 또 다른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
“모기!”
“주인, 우리 잘했지?”
“말해준 데에 정확히 있던데?”
“다들 조용히 해. 시끄러워.”
고구마와 정령수들이 제법 묵직해 보이는 구슬 하나를 둘러싼 채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틀림없다.
저건 베이로둠의 라이프 포스 베슬이다.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내가! 분명히 숨겨 둔 위치를 바꿔 뒀다. 누구도 찾지 못하게 숨겨 뒀단 말이다!”
아…… 이거?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숨기려면 잘 숨겨 뒀어야지. 마력을 지우는 거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취를 지우는 데엔 소홀히 했잖아?”
“시……취라고?”
“그래. 시취. 잘 모르나 본데, 우리 고구마가 후각이 기가 막히게 발달했거든.”
진혁이 고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기!”
고구마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콧김을 거칠게 내뿜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베이로둠이 깊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마력을 지울 거라는 걸 예측해, 마력이 아닌 후각을 이용해 라이프 포스 베슬의 위치를 찾을 생각을 했단 말인가…….”
미세한 마력의 잔향을 없애는 것만 신경 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진혁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라이프 포스 베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다 놨다.
엄청나게 위태로워 보인다.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간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 버릴 것이다.
“조, 조심해라. 그렇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럼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거지 뭐.”
예쁜 유리공예품 하나 잃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어차피 내 몸에 상처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자 진혁의 손놀림이 한결 더 느슨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진 마. 당장 이걸 부술 생각은 없으니까.”
아직 베이로둠으로부터 얻어 내야 할 게 한 가지 남아 있었다.
바로 복사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알려 줘야 한다는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선 조금 더 창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리라.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라이프 포스 베슬을 고구마에게 건네줬다.
“모기?”
고구마가 두 손으로 구슬을 꼭 쥐었다.
“그거 가지고 놀아.”
“모오오기!”
“오오! 주인. 공놀이야?”
“나도 할래! 나도!”
고구마와 정령수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라이프 포스 베슬을 서로에게 던졌다.
마치, 피구를 하는 듯이 말이다.
거기에 진혁이 슬그머니 ‘던질까 말까 1시간 반복’ 뷰튜브까지 틀어 주니 제법 그럴듯한 무대가 갖춰졌다.
물론.
라이프 포스 베슬이 땅에 떨어질 듯 말 듯 하는 걸 지켜보는 베이로둠의 입장에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수밖에.
“머, 멈춰라.”
베이로둠이 손끝이 떨렸다.
“제발. 제발 멈추란 말이다! 그건 장난감이 아니다. 내…… 내 생명줄이란 말이다. 이 잔인한 놈들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걸을 했지만, 그런 게 통할 정령수들이 아니었다.
[복사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베이로둠이 보유한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복사의 성공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났다.
‘드디어 이것까지 성공했군.’
정말이지, 먼 이국땅까지 와서 고생 참 많이도 했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부우우우웅!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갑자기 측면에서 강기를 머금은 검이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빠르다.
“……헉?”
마력과 체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기에, 저 공격에 반응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받아치는 건 고사하고 피하는 것조차 무리다.
진혁이 재빨리 앞에 있는 고구마를 끌어안았다.
일명 고대종 방패.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방패라면 검강을 상대로도 능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말이지.
“모, 모기!”
당황한 고구마가 진혁의 품에 안겨 마구 버둥거렸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고구마 역시 재빨리 앞에 있던 운디네를 끌어안았다.
그 주인에 그 소환수라고.
고구마 역시 그동안 진혁과 함께해 오며,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완벽하게 학습해둔 상태였다.
그렇게 방패에 방패가 덧대어졌다.
이제 타겟은 최전방에 있던 운디네에게로 돌아갔다.
“꺄아아악! 뭐야 이건 대체!”
코앞에 다가온 검을 본 운디네가 본능적으로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엔 유일하게 이 공격에서 앞을 막아 줄 유일한 희망이 있었다.
운디네가 망설임 없이 그걸로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베이로둠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퍼걱!
검이 유리의 표면에 닿는 순간.
“안 돼애애애애!”
베이로둠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궁전 일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