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205화
205화. 등장하는 변수들 (2)
국제사회에서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지닌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
당연히 각 나라에서는 플레이어들이 다른 나라에 귀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보안이 적용된 게 바로 지금 걸려온 전화였다.
뚜우우……. 뚜우우…….
붉은색 메시지가 계속해서 점멸했다.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인데…….’
그게 뭔지는 확인해 보는 수밖에.
천유성에게 짧게 양해를 구한 진혁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강진혁 플레이어님. 한상진입니다. 바쁘실 텐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급하게 말씀드려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상진이 잔뜩 굳은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듣고 있습니다.”
[‘제국’의 내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금 저희 각성자 협회에 찾아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반드시 진혁 님을 만난 뒤에 해야겠다고 하는 터라…… 지금 당장 한국으로 와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호오.
‘제국의 내부 정보라고?’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일전에 카페에서 만났던 펜하이머는 아니다.
‘펜하이머가 직접 온 거라면, 협회장이 아니라 곧바로 나에게 연락했겠지.’
그렇다는 건 지금 협회에 있는 사람은 이쪽과는 일면식이 없는 이방인이라는 뜻이 된다.
정보가 제한되어 있어 이 이상 대상을 특정 짓는 건 불가능했지만, 꽤나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건 틀림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
갑작스럽게 종료된 뒤풀이.
일행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진혁은 로마 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가는 귀국길에 올랐다.
한상진이 저번과 마찬가지로 1등석을 섭외해 준 덕에 순조로운 여행이 예상되었다.
딱 한 가지.
바로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짐 덩어리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오오오! 이게 공항이라는 곳이구나.”
“신기하네요. 언니! 저기 봐요. 저거 맛있을 것 같아요.”
엘리스와 안드리아가 평소보다 2옥타브는 올라간 듯한 소리를 내었다.
“지금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너흰 대체 왜 비행기까지 따라가려는 건데?”
“이것도 다 배움의 일종이니라. 훌륭한 보스가 되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 또한 중요하지 않겠느냐?”
“맞아요. 절대 사리사욕을 채우는 게 아니라 전부 나중에 진혁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엘리스는 예전에 비행기를 함께 탄 적이 있지만, 그때는 반지 속에 잠들어 있던 터라 세세한 과정까지 전부 본 건 아니었다.
안드리아야 탑 밖의 문물이라면 뭐든지 신기해했고.
알고 있다.
그 신나는 마음은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놀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 비행기에 본체로 타 보는 건 처음이지?”
“그러하다. 하지만, 짐에게 어울릴 만한 크기와 위용을 가진 물건이구나. 나쁘지 않아.”
“네.”
두 녀석이 순진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행기 처음 탈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정도는 당연히 공부해 왔겠네?”
“그. 그런 게 있어요?”
안드리아가 당황한 듯 되물었지만, 엘리스는 재빨리 그녀를 제지했다.
진혁과 함께해 온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엘리스 역시 이 정도 상황은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알고 있느니라. 그 정도 정보도 찾지 않고 비행기를 태워 달라고 했겠느냐?”
“언니?”
“가만히 있거라.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엘리스가 자신만만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뷰튜브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보들의 바다라고 불리는 만큼 비행기를 타는 법에 관한 것도 있을 게 틀림없었다.
1. 먼저 비행기를 처음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되고.
2. 출발하기 전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쳐야 됨.
3. 화장실은 유료니까 꼭 동전을 많이 준비해 둘 것.
4. 멀미가 날 것 같으면 승무원에게 부탁해 창문을 열어 달라고 말하기.
“봤느냐?”
엘리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종이에 꼼꼼하게 찾은 정보들을 정리했다.
“역시…… 대단해요 언니.”
“그래서 말했잖느냐. 나만 믿으라고. 인간들의 관습 따위야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뱀파이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엘리스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혁 역시 입가에 환한 미소가 드리웠다.
‘흑역사는 잘 찍어 놨다가 나중에 비싼 값에 팔아먹어야지.’
안 그래도 시련의 탑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엘리스에 관한 팬층이 조금씩 생기려고 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런 모습들을 하나하나 잘 기록해 두면 먼 훗날 아주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올 거다.
그리고 잠시 뒤.
비행기에 오른 진혁은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1등석 가장 안쪽 자리로 안내받았다.
모처럼 장시간의 시간이 보장된 순간이다.
이 틈에 베이로둠을 처리하고 올린 레벨과 스킬들을 정리해 둘 생각이었다.
진혁이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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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나이: 27세
레벨: 80
힘 71 민첩 25 체력 34 마력 181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정기 30.53
보유한 스탯 포인트: 18
보유한 코인: 600,125
직업: 룬의 해석사
고유 능력: ‘융합(融合)’, ‘검의 무덤’, ‘별의 가호’, ‘아누비스의 심판’, ‘혈마기(血魔氣)’, ‘만다라(曼茶羅)’, ‘1초 무적’, ‘천독(千毒)’, ‘하얀 맹수’, ‘만상공유(萬祥共有)’, ‘태양의 성역’,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
스킬: 배운 스킬의 숫자가 너무 많아 ‘접어두기’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결계: 배운 결계의 숫자가 너무 많아 ‘접어두기’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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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레벨은 총 6.
보유한 스탯은 18개다.
레벨이 70이 넘어간 걸 고려한다면, 단일 개체의 보스 몬스터 하나를 사냥한 것치곤 터무니없이 많은 경험치를 획득한 셈이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계속해서 성장을 한다는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남들과 더욱더 격차를 벌리며, 모든 중요한 기연들을 독식하고 결국엔 다시 한번 탑의 정상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테니까.
‘이제 슬슬 민첩이나 체력 쪽에도 투자를 해야겠어.’
마력이 최우선 사항인 건 변함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스탯들을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
특히나 이제 곧 무림과 제국의 대대적인 전쟁이 발발할 텐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완벽한 밸런스를 갖춰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백설린을 포함해, 고도로 훈련된 무림인들이나.
평생을 검과 마법을 갈고 닦은 제국인들이나.
얕보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암황을 비롯한 천마신교까지 개입한 이상, 작은 변수 하나가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
[민첩이 25 → 30으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34 → 60으로 상승합니다.]
[마력이 181 → 188으로 상승합니다.]
진혁이 각각의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전신에 따뜻한 기운이 깃들었다.
민첩과 체력 그리고 마력까지.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감각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묵직한 마력이 느껴졌다.
‘좋아, 다음은…….’
[베이로둠이 보유한 스킬 중에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대망의 스킬 복사를 선택할 차례.
상급 리치인 베이로둠이 보유하고 있던 스킬들인 만큼 어떤 걸 복사할지는 꽤나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Lv19 ‘원소 마법’, Lv18 ‘흑마법’, Lv18 ‘강령술’, Lv18 ‘언데드 제조’, Lv17 ‘저주’]
복사할 수 있는 스킬은 총 5개다.
‘상급 리치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탑의 30층에 갈 때까지 없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나같이 쓸 만하긴 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밟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이건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언데드 제조를 복사할게.”
[Lv1 ‘언데드 제조’가 복사되었습니다.]
[복사된 스킬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세력이 가지고 있는 병력의 규모 또한 중요해진다.
‘지금이야 내가 소형 세력에 불과하지만, 나중에는 그 세에 걸맞은 군단이 있어야겠지.’
그걸 고려한다면, 언데드 제조를 통해 자신만의 병사들을 만드는 스킬을 복사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진혁이 힐끔 주위를 살폈다.
1등석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자리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 일은 없었다.
애초에 칸막이가 있어 잘 보이지도 않기도 했고.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
승무원에게 부탁해 받은 T본 스테이크의 뼈를 모은 뒤. 그 위에 마력을 집중하자…….
파츠츠!
뼈가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병사 ‘Lv1’을 만드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첫 번째 언데드 병사가 당신의 세력에 합류합니다.]
[이름을 지을 경우 더 높은 충성심을 기대할 수 있으며, 대상의 성장 속도에도 약간의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달그락!
작은 강아지만 한 해골병사가 무릎 위에 나타났다.
가분수에 까만 동공을 보자니 뭐랄까?
끔찍한 외형의 언데드 몬스터가 아니라 작고 귀여운 미니어처 같다.
아직은 스킬의 레벨이 부족해 이 정도가 한계인 거겠지.
‘그나저나 이름이라…….’
확실히 고구마 같이 애칭을 지어 주는 게 입에도 착 감기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도 좋다.
잠시 고민하던 진혁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생긋 웃었다.
“티본. 앞으로 네 이름은 티본이야.”
T-Bone 스테이크에서 만들어졌으니 티본이라고 짓는 게 가장 어울렸다.
비싸고 고급진 느낌까지 드는 건 덤이다.
“달그락!”
뼈다귀가 무언가 불만인 듯한 마찰을 냈지만, 이미 진혁의 머릿속은 스스로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내가 작명 센스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단 말이지.’
이렇게나 훌륭한 이름을 공짜로 지어 준 게 살짝 후회가 될 정도다.
그때였다.
“모기!”
의자 아래 숨어 있던 고구마가 갑자기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맹수가 초식동물을 사냥한 것처럼.
티본의 다리뼈를 덥썩 물었다.
“달그락!”
고구마가 오물오물 거리며 뼛속 깊이 배어 있는 고기 향을 음미했다.
“어허. 그거 먹는 거 아니야.”
“모기?”
“앞으로 함께할 동료니까 네가 친절하게 교육 좀 잘 시켜 줘. 정령수들에게도 말해 주고.”
“모기!”
고구마가 힘차게 대답했다.
음.
알겠다면서 왜 티본의 뼈를 계속해서 맛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똑똑한 녀석이 잘 알아들었을 거다.
……아마도 말이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인가.’
진혁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이번 레이드의 가장 큰 보상.
칠흑빛을 띤 대마도사의 로브다.
솔직히 말해 베이로둠한테서 이게 드랍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과거에도 스태프나 장신구를 주는 게 전부였지 로브만큼은 단 한 번도 드랍된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이다.
진혁이 떨리는 손으로 스태프의 정보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