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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227화


227화. 툼그레이브의 오른팔

거신족 ‘툼그레이브’.

탑의 상층부에 거주하는 거신족들 중에서도 대영웅으로 추앙받는 거신이다.

‘더럽게…… 아프군. 신경이 갈가리 찢어지는 느낌이야.’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욱씬! 욱씬! 욱씬!

묵직한 신경을 타고 뇌수까지 파고들었다.

말이 오른팔을 빌려 온 거지.

거신의 본체를 그대로 이식한 것에 대한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기화 진행 중…….]

[레벨과 능력치의 여건 상 본 능력의 10%만 재현할 수 있습니다.]

[거신족의 영향으로 인해 모든 힘 스탯이 500%만큼 상승합니다.]

[제한 시간은 3분 30초입니다.]

고작 3분 30초.

아니, 불완전하긴 했으나, 툼그레이브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3분 30초나 된다.

파츠츠!

결계사의 증표인 ‘달의 각인’이 새로운 팔과 공명했다.

황금색 물결이 진혁의 목을 따라 손끝까지 이어졌다.

‘결계로 통증을 완화하고 이질적인 위화감을 해소한다.’

후우우…….

진혁이 눈을 감은 채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간결하고 신속하게.

그러면서도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최적화된 몸을 구축한다.

단 5초.

그렇게.

진혁은 모든 마력을 동기화시켰다.

***

“저 힘은 대체 뭐……란 말인가.”

오그라쿤의 두 눈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

백색 나무 탄그라실 또한 할 말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부리던 각종 곤충들까지 통제하는 걸 잊어먹어 버렸을까.

그만큼 지금 진혁이 보여 준 능력은 아예 상식을 초월해 버린 일들이었다.

‘평범한 인간의 팔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지만, 그 속을 구성하는 본질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오그라쿤이 대검을 든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과연 이런 거였나. 데스나이트만 믿는 줄 알았는데, 그게 내 착각이었어.”

히든카드가 있다면 당연히 데스나이트일 거라 생각했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데드 근접 계열 최강의 기사는 바로 데스나이트였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네 녀석이 훨씬 더 강한 거였구나.”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건 데스나이트 따위가 아니다.

미지의 힘을 이어받은 인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전율이 일어나는 괴물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한다.

“싸워 봤자 안 되는 걸 깨달았으면, 꼬리를 내리는 게 어때? 성채만 포기하면 거인들은 살아서 보내 주지.”

“그건 안 될 것 같군. 나도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거든.”

오그라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협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듯 확고한 말투다.

[이해득실을 완벽하게 따질 줄 아는 이성적인 성격이기에, 그 점을 잘 파악한다면 의외로 싸움을 피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태창에서 적혀 있던 내용을 떠올린다면 꽤나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반응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진혁은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다.

“마인 협회…… 때문이냐?”

넌지시 던지는 듯한 말에.

“……!”

오그라쿤의 얼굴에서 툼그레이브의 팔을 보았을 때보다 더욱 큰 동요가 느껴졌다.

완전히 허를 찔린 듯, 대검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재빠르게 표정과 검을 갈무리하는 걸 보면, 과연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 듯싶었다.

물론, 그래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렇게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돼. 더 이상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된다.

‘역시 그런 거였군.’

지금의 반응만으로도 확신을 얻었다.

마인 협회에서 마왕을 소환할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는 걸.

‘가웨인이라고 소개했던 마인 협회의 간부 놈이 제국까지 온 건 우연이 아니겠지.’

조만간 탑의 어딘가에 엄청난 빅 이벤트가 일어날 것이다.

탑의 절대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기로 손꼽히는 마왕의 강마 의식이…….

그리고.

거인들 역시 그 의식에 함께하기로 약속한 게 틀림없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들이 하나씩 맞물리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대화는 안 통할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하자고. 이제 2분 30초 정도밖에 안 남았거든.”

“능력에 시간 제한이 있다……?”

“그럼, 이 정도 힘을 얻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을까?”

“……그것도 맞는 말이군. 허면, 그걸 왜 나에게 알려 주는 거냐?”

“별 이유는 없어.”

그저.

“그 시간으로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을 뿐이지.”

툭!

진혁의 모습이 나타난 건 오그라쿤의 뒤였다.

툼그레이브의 오른팔이 척추를 향해 뻗었다.

간발의 차로 대검이 그 공격을 받아냈다.

콰아아앙!

주먹과 쇠가 부딪쳤다고는 믿기 힘든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반응은 제법 빠르네. 완전히 사각을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크윽! 이런 무식한……!”

진혁보다 족히 2배가 훨씬 넘는 오그라쿤의 몸이 휘청거렸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곧바로 균형을 잡은 오그라쿤이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일격에 지면이 모조리 갈려 나가며 충격파가 성채의 외벽에까지 이르렀다.

물리 법칙 따위는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터무니없는 위력의 일격이다.

그러나.

“사, 상처 하나 없다고?”

진혁은 오른팔 하나만으로 그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고작 이 정도면…… 굳이 팔을 쓸 필요까지도 없었겠어.”

이죽이며 도발하는 건 덤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무렴. 당연히 그래야지. 이게 끝이면 기껏 달아오른 몸이 너무 쉽게 식어 버릴 뻔했잖아?”

생긋 웃은 진혁이 지면에 꽂혀 있던 도끼 한 자루를 뽑았다.

조금 전, 티본과 거인이 싸우다가 떨어뜨린 무기 중 하나였다.

[툼그레이브의 팔로 인해 무기가 강화됩니다.]

꾸드득…….

마치, 혈관처럼.

팔에서 이어진 황금색 선이 도끼 자루를 타고 퍼져 나갔다.

맨손도 좋지만, 역시 전면전을 벌일 땐 그에 걸맞은 무기가 필요한 법이다.

어디.

이건 얼마나 손에 잘 맞는지 볼까.

진혁이 자세를 잡았다.

발바닥에서 다리를 거쳐 허리로.

그리고 허리에서 팔까지.

마력이 혈관을 타고 회전했다.

……저건 위험하다.

오그라쿤이 본능적으로 대검을 뻗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쿠쿠쿠쿠쿠!

지면에 있던 흙들이 중력을 거스른 채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거신족의 일격이라면.”

힘이 끝을 논해야 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오그라쿤이 휘두른 대검과는 비교도 할 수는 충격파가 일어났다.

한 줄기 섬광과 함께.

거대한 폭풍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바꿔 버렸다.

***

철벽과 같던 성채의 성벽이 무너졌다.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넘어설 수 있는 험로가 단번에 뚫렸다는 뜻이다.

천재일우의 기회!

대체 무슨 이유로 저 두꺼운 암벽이 붕괴됐는지는 몰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이유를 찾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당장, 전 부대를 안으로 이동해라! 그래. 타이탄! 타이탄 기사단을 먼저 보내야겠구나. 묠튼 경! 경이 직접 기사단을 이끌고 성을 점령하시오.”

“경공술에 자신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서라. 먼저 거점을 손에 넣어야 저 가증스러운 제국 놈들로부터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국과 무림의 지휘관들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곧, 제국 측에선 타이탄을 주축으로 한 경기병들 성 안으로 진입했다.

백설린이 이끄는 화산파의 절정급 고수들도 바로 뒤를 따랐다.

“됐다! 우리가 더 빨라.”

묠튼이 이끄는 타이탄 경기병이 성 내로 들어가 실낙원까지 질주했다.

소수의 거인들이 항전했지만, 전원이 소드마스터로 구성된 타이탄 기사단을 막을 순 없었다.

“크아아악!”

“커어억…….”

몸에 바람구멍이 난 거인들이 좌우로 쓰러졌다.

속도와 무게를 살린 일점 돌파.

중갑 기병도 아닌, 경기병이라고는 믿기 힘든 파괴력이다.

타이탄이란 마도병기가 지닌 특징도 톡톡히 한 몫을 했으리라.

채 30초도 안 되는 찰나에, 실낙원까지 가는 길을 지키던 거인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실낙원만 확보한다면, 무림 놈들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묠튼이 더욱더 타이탄에 박차를 가했다.

두두두두!

후방에 있는 경기병들이 백설린이 이끄는 화산파를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선두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던 경기병들 사이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거센 돌풍이 피부를 압박하는가 싶더니.

“끄아아악!”

“으아악!”

이내 돌풍이 태풍이 되어 몰아쳤다.

선두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던 타이탄 기사들이 종잇장마냥 찢겨 나갔다.

퍼퍼퍽!

콰직!

피 분수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오그라쿤이 휘두르는 대검에 말려든 것이다.

“그 빌어먹을 거인 놈인가……! 비켜라!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묠튼이 오러블레이드를 끌어올린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이어진 대검의 이격에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분명.

“묘, 묠튼 경!”

“묠튼 경이 한 합을 버티지 못하다니.”

“괴…… 괴물이다.”

굴러 떨어진 묠튼의 목을 본 기사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대장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감히 그 누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설 수 있단 말인가?

목표를 코앞에 두고 후퇴해야 한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물러서야 한다.

바로 그때.

“자, 잠깐……. 잠깐 기다려 봐.”

기사 한 명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이상하다.

현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짙은 위화감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젠장. 뭐가 이상하고 자시고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화산파의 떨거지들이랑 저 괴물 사이에서 고깃덩어리가 될 거다.”

“기다려 보라고. 저 거인의 모습을 자세히 좀 보란 말이야.”

“자세히는 개뿔…… 어?”

답답하다는 듯 외치던 금발 기사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거인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긴 했다.

두려움에 가득 잠긴 얼굴.

상처투성이의 몸.

방금 전 기사들을 쓸어 버렸던. 위풍당당해야 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녀석, 도망치고 있는 거야.”

더 큰 포식자로부터 정신없이 도망치는 피식자.

그래.

지금 보여 줬던 검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의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대체 저 괴물에게 이토록 압도적인 공포를 준 건 누구란 걸까?

저벅.

발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 봤자 소용없어.”

거대한 도끼를 든 진혁이 황금 장미 사이로 걸어 나왔다.

“허억……. 허억.허억.”

오그라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상대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한 제한 시간. 3분 30초.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실낙원을 요리조리 도망쳐 다녔지만, 그것도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게다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고작 3분이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헉…….”

한 호흡.

그리고 단 한 번 눈을 깜빡였을 뿐이다.

그런데 진혁은 어느새 오그라쿤의 바로 아래까지 도달해 있었다.

도끼가 허리를 향해 쇄도했다.

피해야 한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지칠 대로 지친 몸은 간신히 대검을 비스듬히 세우는 게 고작이었다.

콰아아앙!

“커억!”

오그라쿤의 몸이 기역 자로 꺾였다.

몇 번이고 튕겨나간 몸이 형편없이 지면을 굴렀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그렇게 생각이든 순간.

오그라쿤의 동공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고유 능력 ‘버서커’가 개화합니다!]

“크오오오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짐승이 거칠게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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