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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230화


230화. 성채에서의 휴일 (2)

[‘명예의 전당’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모두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영상이 마침내 올라왔다.

-비둘기치킨: 야 떴다. 진짜 떳다고! 강진혁 거인 성채 공략전 영상!

누군가의 말에 벌떼처럼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상위 길드와 플레이어들에 의해 제국과 무림과의 전쟁 떡밥이 한창 풀린 상황.

당연히 그 반응은 폭풍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개팅만10,000번: 거인을 상대로 힘만으로 이기는 게 말이 되냐?

-적박구리폴더: ㄹㅇ. 근데, 원거리에서 공략했으면 더 유리했을 텐데, 마치 일부러 근접전으로만 어울려 주는 것 같음. 왜 그런 거지?

-jkccil5005: 삼대500 쌉가능하다는 거 아닐까?

-새영언환: 뭔가 이유가 있겠지. 중요한 건 어느 분야로 싸워도 진혁이한테 안 된다는 거야.

-이생망: ㅇㅈ. 내가 최근 제국이랑 무림 쪽 정보 싹 다 찾아보고 있는데, 거기서 자랑하는 소드마스터나 각 문파의 절정급 고수들도 별거 없더라고.

-faclift: 별거 없는 게 아니라. 걔들도 겁나 쎄다. 너 정도는 입에 묻은 밥풀로도 뚝배기 깨 버릴 수 있음. 단지, 강진혁이란 플레이어가 규격 외로 비상식적인 거임.

-다람이 쿠션: 거기에 오그라쿤과 거인들 쓰러뜨린 덕분에 90일이란 시간도 벌게 됨. 진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는 매력덩어리 플레이어다. 크으.

-소방차는 멈추지 않아: 난 형한테라면 가능해. ANG.

댓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상 하나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서버가 폭주되는 게 연례행사가 될 지경이었다.

조회수가 심상치 않게 오르는 게 오늘 내로 천만 뷰는 가볍게 넘을 것 같다.

‘이번 것도 반응이 좋네.’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정신없이 탑 안에서만 보냈는데, 조만간 탑 밖으로도 나가 봐야겠다.

각성자 협회에도 가 봐야 하고 김희웅이나 이태민, 유연화를 비롯해 한국과 나머지 국가들이 돌아가는 사정도 들어봐야 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야…… 이거 꼭 이렇게까지 입어야 돼?”

엘리스가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 다가왔다.

“이야. 다들 잘 어울리네. 역시 벌칙을 할로윈 컨셉으로 하길 잘했어.”

블랙 앤 화이트가 적절하게 조합된 옷.

레이스 달린 치마와 모자 그리고 양산의 조합이 마치 서양식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뾰족한 송곳니와 붉은색 눈동자 덕분에 굳이 추가적인 분장을 하지 않아도 뱀파이어 그 자체다.

“진혁 님. 이거 옷이 너무 허전한 것 같은데요.”

“주군. 패배했으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만……. 이건 검객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짧은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안드리아와 연미복 차림의 월영이 못마땅한 얼굴로 불만을 토로했다.

불편한 듯 계속 온몸을 달싹대는 게 이건 이것대로 보는 맛이 있다.

‘하긴, 현대풍의 옷이 두 사람에겐 낯설 수밖에 없긴 하겠지.’

구미호의 콘셉트를 본 딴 안드리아는 스커트 뒤에 아홉 개의 꼬리를 달고 있었고.

미라 콘셉트를 본 딴 월영은 연미복 위에 하얀 붕대를 몇 군데인가 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둘 다 원판들이 훌륭해서 그런가?

지금 당장 이태원에 내놔도 모두의 시선을 한 번에 붙잡을 거다.

“아. 그리고 이거 하나씩 받아.”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초록색 네잎클로버를 닮은 보석을 꺼냈다.

“이게 뭐야?”

엘리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펜시아의 꽃잎이라는 건데…… 비싼 건 아니고 그동안 고생해서 주는 선물이야. 우리 회사의 사원들에게만 주는 일종의 사원증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진짜? 이걸 공짜로 준다고?”

“응. 모두 하나씩 가져.”

진혁이 펜시아의 꽃잎을 하나씩 나눠줬다.

“고……마워요. 진혁 님.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감사합니다. 주군.”

모두들 뜻밖의 선물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 받았으면 이제 손님 맞을 준비나 해. 조금 있으면 제국이랑 무림에서도 귀빈들이 올 거야.”

‘성주의 만찬’.

거점을 얻은 플레이어가 발동할 수 있는 특수 이벤트다.

중‧소 세력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선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널리 알려야 했는데.

때마침, 제국과 무림이라는 거대 세력들을 초대할 수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번 이벤트에는 그 녀석이 참여할 테지.

빌어먹을 배신자 놈이 말이다.

“어떻게 괴롭혀야 잘 괴롭혔다고 소문이 날지 벌써부터 기대되네.”

진혁이 분노와 장난기가 반반 섞인 미소를 내뱉었다.

“후후…….”

그러다 미소는 이내 광소로 변질되었고.

“감히…… 감히 날 배신했다 이거지? 응? 좋아. 아주 좋다고. 넌 기저귀만 입힌 코스프레 확정이다.”

곧, 실내에 미친 듯한 마력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죽었네. 그 검성 녀석. 하필이면 저런 또라이한테 밉보이다니. 그래도 나름 싹수가 있는 놈이었는데 안됐어.

-저라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살했을 것 같아요…….

-서 설마, 나를 포함해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지. 괜히 찔리는군.

서로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채.

세력들의 운명이 걸린 할로윈 파티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

흠칫하고.

진혁의 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너무 멀고 희미해서 확신할 순 없었지만, 불길하고 낯선 기운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엘리스. 방금, 뭔가 못 느꼈어?”

“응? 사실 네가 대악마라는 느낌을 살짝……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못 느꼈어. 진짜로 나 잠깐 멍 때리고 있었거든. 지, 진짜야.”

엘리스가 황급히 고개를 도리질 쳤다.

‘착각인 건가.’

엘리스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건지도 모르겠다.

***

제국에 소속된 왕국 중 하나인 ‘세데스’.

여신 페리스를 모시는 신성국가인 이곳은 성기사들 본고장이나 다름없는 성지였다.

그리고 왕국의 성기사들이 영면을 취하는 카타콤에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또옥……. 또옥…….

천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거대한 무덤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배치는 전부 다 끝난 건가?”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인 협회의 간부이며, 동시에 원탁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랭커.

가웨인이었다.

그러자 가웨인의 곁에 있던 늙수그레한 노인이 손바닥을 비비적댔다.

“킬킬킬! 예. 성물들이 전부 모인 게 아닌 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꽤 강력한 마족을 불러올 수 있을 겁니다.”

마왕을 현현시키기 위한 필수 재료 ‘저주받은 성물’.

그걸 위해 마인 협회에 소속된 플레이어들과 탑의 거주자들은 시련의 탑이 도래한 이후 미친 듯이 탑을 헤집어 다녔다.

소원을 이루고 탑의 저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완전히 변해 버린 이 세계의 법칙에 순응하기 위해서.

지금껏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추구해 왔다.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4개의 성물과 3개의 준성물.

이거라면 자신들의 본 계획을 시행함에 있어 부족함 없는 중간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좋다. 그럼, 시작해라.”

“킬킬! 알겠습니다.”

노인이 중앙에 놓여 있는 성물들을 향해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노인의 온몸에서 보라색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우우우웅!

[성유물이 대상의 마력에 반응합니다!]

[7개의 저주받은 성물로 인해 마계로 이어지는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성물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불러올 수 있는 마족의 격이 제한됩니다!]

붉은색 상태창이 연거푸 나타났다.

“오오!”

“드디어……!”

“위대한 분들의 수족이 온다.”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토록 염원하던 일을 마침내 이루게 됐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쿠쿠쿠쿠쿠!

지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치이이!

갈라진 땅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붉은색 용암이 어두웠던 무덤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온다.

저 아래로부터…….

문자로 서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콰드득!

콰득!

관 속에 있던 해골들이 모조리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들을 전부 흡수해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잠시 뒤.

“크르르…….”

용암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1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화염 해골이었다.

크기도 엄청났지만,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지금까지 마주했던 몬스터들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이것이 바로 상급 마족 중 하나인 ‘군타페르’의 혈족이다.

탑의 상층부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존재가 이곳에 현현했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급력을 낳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염 해골이 손을 뻗었다.

용암과 겁화로 뒤덮인 백골이 머리를 조아리던 남자 한 명을 낚아챘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몇 초도 안 되는 찰나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 플레이어.

“뭐, 뭐야?”

“갑자기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건데!”

“으아아악!”

“도…… 도망쳐!”

경외와 탄성은 이 시점을 끝으로 절명과 비명으로 바뀌었다.

달아나야 한다.

한 시라도.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워낙에 좁은 통로 탓에 빠져나갈 수 있는 인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콰콰콰콰콰콰!

화산탄이 일거에 플레이어들을 휩쓸어 버렸다.

“크르르르!”

화염 해골은 플레이어들이 자신을 소환해 줬다는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웨인과 노인만은 건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온 마인 협회의 어중이떠중이들을 제물로 바친 건…….

다름 아닌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우리를 방해했던 모든 놈들은 오늘로서 전부 잿더미가 되어 버릴 거다.’

가웨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

퍼어엉!

퍼퍼펑!

성채의 하늘을 가득 수놓은 형형색색의 불꽃들.

새로운 주인을 축하하기 위한 대대적인 불꽃놀이와 함께 성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초대장을 받은 제국과 무림의 고위급 인사들이 하나둘 성 내로 들어왔다.

“크윽. 탑 밖에 거주하는 플레이어 따위에게 내가 이런 수모를 겪다니…….”

성채 공략의 총사령관인 호비에르 백작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리 이 거점의 자유로운 통행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한들, 지체 높은 귀족이 근본도 없는 천민의 파티에 와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없었다.

허나, 아무리 불평해 봐야 이제 와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리라.

‘빌어먹을. 명령만 아니었어도.’

호비에르가 똥 씹을 얼굴을 한 채 성 내부로 들어갔다.

한편.

초대장을 받은 무림측 인사들도 성의 서쪽 문에 도달했다.

백설린과 남궁천을 위시한 다수의 인원이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린 채 걸음을 옮겼다.

그 중에는 천유성도 함께 있었다.

‘…….’

천유성이 불안한 얼굴로 성 안을 두리번거렸다.

[무림에서는 다른 놈은 몰라도 반드시 천유성을 대동하고 올 것. 미지참시, 성 안에 출입을 불허함. – 성주 강진혁 백]

초대장에 적혀 있던 내용.

틀림없다.

탑 내에서 가장 흉학한 악마가 지금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천유성의 눈에 아주 익숙한 누군가가 잡혔다.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인물이 서 있었다.

그것도 사이즈가 제법 넉넉해 보이는 프랑스 메이드복을 손에 든 채.

“헉…….”

시선이 마주쳤다.

천유성의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극심한 불안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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