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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281화


281화. 야차(夜叉) (1)

천마신교의 지하 뇌옥엔 큰 죄를 짓고 갇힌 죄수들뿐만 있는 건 아니다.

무림에 존재하는 골치 아픈 다양한 마수들 역시 뇌옥 안에서 다시 한 번 햇빛을 볼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철창 안에서 한 쌍의 노란 동공이 번뜩였다.

“크르르…….”

최소한 5m 이상의 중형급 마수다.

‘무림이니 ‘요괴’라고 부르는 편이 좋으려나?’

크기뿐 아니라 보유한 마력 역시 심상치 않아 보였다.

“잠깐.”

진혁이 앞에서 다가오는 채홍아와 죄수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이상 오면 나도 모르게 이 문을 열 것 같은데. 어때. 이거 열면 꽤 재밌어지지 않을까?”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마수라서 여태 갇혀 있는 게 틀림없다.

당연히 이런 마수가 튀어나왔다간 녀석들도 곤란하겠지.

하지만.

“후후. 어디 한 번 해 보시죠.”

채홍아가 마음대로 하라는 듯 겨누던 창까지 치웠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마치, 그에 대한 방비는 다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죄수들의 철창과 달리 마수를 가둬 둔 철창 앞엔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녹색 부적이 붙어 있었다.

“……주술을 걸어 뒀군.”

그것도 매우 수준이 높은 주술이다.

“검강으로도 벨 수 없는 종류랍니다. 아무렴 저희가 그런 위험 요소를 버젓이 방치해 두고 있었을까요?”

보통 1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진 주술이 무림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었고.

2가지 속성을 섞은 주술은 각 문파의 장로급이 되어야 가능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여기 사용된 주술은…….

목(木), 수(水), 토(土).

3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진 대주술이다.

천마신교의 서열 4위. 심마사령이 직접 봉인한 주술이겠지.

“3속성이라…… 확실히 꽤 튼튼한 종류긴 하지.”

진혁이 부적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천마신교에서. 아니, 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강시와 주술에 관한 한 심마사령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는 없을 거다.

그래. 그게 맞긴 한데…….

문제는 완벽한 주술이라는 건 없다는 점이다.

[1성급 결계 ‘속성의 고리’가 발동됩니다!]

[Lv15 ‘태초의 불꽃’이 발동됩니다!]

3개의 속성을 잇는 마력 회로에 화(火) 속성이 끼어들었다.

정확히 각 속성이 지닌 에너지를 3.3%만큼씩만 갉아먹으면서 그 사이에 안착해야만 한다.

그러자.

[주술의 봉인력이 약화됩니다!]

쿠쿠쿠쿠쿠!

철창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심마사령의 주술을…….”

채홍아의 얼굴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천마신교에 들어온 외지인이. 천마신교 1인자가 십수 년을 고심해 만들어놓은 주술을 파훼하다니.

설령, 천마가 직접 온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 주술이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덴 효과적인데, 반대로 밖에서 부수는 건 의외로 간단하거든. 3개나 되는 속성을 견디느라 안 그래도 아슬아슬할 텐데, 거기에 화 속성까지 끼워 넣었으니 견디지 못하는 거야.”

진혁이 손가락으로 철창을 쿡 하고 찔렀다.

콰드득!

우둑!

철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크르르!”

안에 있던 마수가 머리를 철창 가까이 들이밀었다.

본능적으로 철창의 수명이 머지않았음을 느낀 탓이다.

“아, 안 돼! 그걸 열었다간…….”

채홍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열었다간 뭐? 골치 아파진다고? 아니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게 될 거라고?”

그런 협박은 상황을 좀 봐 가면서 써라.

“어차피 난 이미 곤란한 상황이야. 대놓고 죽이겠다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거기에 고춧가루 좀 뿌린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어?”

소스 10개 뿌린 불닭볶음면에 캡사이신 좀 추가한다고 해서 죽는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망할 거면 다 같이 사이좋게 망해보자고.”

일단 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게…….

이 게임의 새로운 룰이다.

철컹!

마수를 봉인했던 문이 열렸다.

“크아아아!”

철창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콰콰콰콰콰!

“으아아악!”

“끄아아아!”

여우의 형태를 한 거대한 마수가 죄수들 사이를 휩쓸고 지나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속도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죄수들 역시 전부 한 가닥 하는 실력을 지녔으나, 여우는 철저하게 부상당한 이들만을 노려 공격했다.

바로 그때.

부우웅!

적색 창이 여우의 머리를 노렸다.

“크르르…….”

위협을 느낀 여우가 처음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 녀석은 정면에서 주위만 잘 끌어주면 됩니다. 제가 그 역할을 맡을 테니, 나머지는 측면에서 공격하세요!”

채홍아가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다.

독고룡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 비밀 통로를 통해 뇌령단과 다른 고수들을 보낼 터.

조금만 더 버티면 충분히 이 여우 요괴를 제압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된 이상 암황에게 알려지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대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철컹!

“이야. 여기 동물원이 참 실하네. 아주 없는 마수가 없어. 이건 거북이 종류인가?”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야 이 미친놈아! 그건 또 왜 여는 건데?”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채홍아였으나, 이번에는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도와주진 못할망정 더 큰 똥을 싸질러대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아. 이건 열면 안 되는 건가? 미안 미안. 그럼…… 다른 녀석을 꺼내 주지 뭐. 저기 녀석이 굉장히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진혁이 또 다른 철창 앞에 다가갔다.

“컹!컹!컹!”

머리가 두 개 달린 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침을 뚝뚝 흘렸다.

지옥의 파수견, 케르베로스와 비슷한 종류다.

“그 개는 안 돼. 멈추라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채홍아의 안타까운 절규와 함께. 또 다른 문이 개방되었다.

***

“세상에나…….”

“이, 이게 대체 무슨…….”

독고룡과 뇌령단주, 그리고 절정급 고수들이 무간지옥에 도착했을 땐…….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은 뒤였다.

죄수들 중 상당수는 죽거나 도망쳤고. 홀로 남은 채홍아는 사력을 다해 세 마리의 마수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내부를 살피던 이들로부터 급보가 쏟아졌다.

“제, 제2 통로를 통해 마수 3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제3 통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만, 이대로라면 본교 전체가 이번 일에 대해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도깨비 불’을 손쉽게 재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는 오히려 마수들이 지상으로 뛰쳐나올 수 있는 탈출구로 변질되었다.

결국.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우선 마수들부터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뇌령단은 나를 따르라!”

“예. 단주!”

뇌령단에 소속된 무림인들이 즉각 채홍아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제서야 잠시 숨을 가다듬을 틈이 생겼다.

“채홍아! 놈은. 그 빌어먹을 놈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독고룡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새파란 놈을 산채로 녹여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안에…… 그 녀석은 뇌옥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이라고? 상급 도깨비에게 갔다는 말이냐?”

“상급 도깨비는 이미 죽었어요. 그보다 더 안쪽……. 더 안쪽으로 갔다고요!”

최심부.

그 말에, 독고룡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뇌옥의 최심부에는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녀석이 봉인되어 있다.

도깨비 불을 모은 것도.

이곳에 마수들을 봉인해 둔 것도.

모두 그 녀석 하나를 이용해 대업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막……아야 한다.’

심마사령의 주술을 풀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마지막 봉인마저 안심할 수 없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아직 완전히 정제된 도깨비 불을 손에 넣기도 전에 그 녀석이 풀려났다간,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몰랐다.

***

마수들이 날뛰는 동안, 진혁은 상급 도깨비를 처리하고 뇌옥의 최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간 순간.

모든 단서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맞아떨어졌다.

천마신교가 10년의 폐관 중에 겪은 가장 큰 사건 중 하나, ‘야화의 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네임드 몬스터 야차(夜叉).

지금 눈앞에 있는 게 그 당사자다.

‘도깨비 불을 이용해 야차를 세뇌시켜 천마와 스승님에게 대항할 카드로 써먹으려고 했던 거였나.’

오싹하고.

전신에 소름이 일어났다.

‘이런 괴물이라면 가능하긴 하겠어.’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이래서 시스템이 연계 퀘스트라고 했던 거군.

과거에도 여러 종류의 연계 퀘스트를 경험했지만, 무림에서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때는 ‘도깨비 불’이라는 변수 자체가 없었으니까.

가장 크게 바뀐 점이라고 한다면…….

‘엘리스인가.’

회랑에서 엘리스를 빼옴으로써 뱀파이어 가문들과 이른 접점이 생겼다.

아마 상층부의 도깨비 불을 좌호법에 넘긴 것도 그놈들이겠지.

단서들이 모이면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걸 잘 활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이번 일의 결과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좋아.’

호흡을 가다듬은 진혁이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화르르륵!

[Lv15 ‘태초의 불꽃’이 발동합니다!]

머리통만 한 불꽃들이 허공에 나타나자, 드디어 시야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닿아 있는 거대한 기둥.

그리고 기둥에 묶여 있는 인간형 마수.

도깨비를 연상케 하는 뾰족뾰족한 적색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진혁이 ‘탐식의 눈’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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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야차(夜叉)

성별: 남

나이: ??세

레벨: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0 내공 ???

고유 능력: 괴력난신(怪力亂神)

스킬: Lv?? ‘이매망량(魑魅魍魎)’, Lv?? ‘불굴의 영혼’, Lv?? ‘태산검(太山劍)’

‘탐식의 눈’의 레벨이 낮아 대상의 스킬을 전부 확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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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설명: 광기에 젖은 마수는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으며, 그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습니다. 오롯이 자신의 본능에 따라 모든 것을 멸시하고 죽이려는 자. 그것이 중층부에서 가장 강력한 네임드 보스 중 하나인 ‘야차’입니다.]

[복사 조건: 천마의 생존은 50층의 존재들을 억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결 과제. 허나, 야차는 그런 천마를 죽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기입니다. 야차가 천마를 해하기 전 죽일 수 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복사 조건이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띠링!

[히든 퀘스트의 영향으로 인해 실패 페널티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천마가 사망할 경우 그들 중 하나가 탑의 아래층에 현현할 수 있게 됩니다.(현현 제한 시간: 30분)]

역시…….

히든 퀘스트는 50층의 그 녀석들과도 관련이 되어 있었다.

야차의 존재 자체가 곧 첫 번째 퀘스트 그 자체라는 뜻이다.

‘퀘스트의 보상도 보상이지만, 녀석의 능력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괴력난신.

‘야차’라는 이름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근접계 고유 능력.

흑천마황공과 함께할 경우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낼지 상상하자,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저걸 얻기 위해서라면…….

‘설령, 달을 따다 바치라고 해도 성공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실패해서는 안 될 과업들.

그 첫 걸음이…….

[야차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마침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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