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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310화


310화. 천마(天魔) (1)

작은 오두막 안에선 아직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 막아!”

“들어오면 우린 다 끝이야!”

“히이익!”

나무를 쌓아 두고 낫과 곡괭이 따위를 휘두르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

제대로 된 방어라기보다는 최후의 발악에 가까운 듯 보였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혈강시의 팔이 한 남자의 머리를 붙잡았다.

“사, 살려줘!”

바로 그때.

콰앙!

소유명이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사술로 만든 시체 따위가 사람을 해하려 들다니!”

검을 따라 푸른빛 강기가 줄기줄기 일어났다.

“케엑!”

‘태극검’의 초식이 펼쳐지자 혈강시들의 머리가 그대로 조각나 버렸다.

콰콰콰콰콰콰!

무당파의 일대 제자라는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니다.

혈강시들이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쓸려나가고 있었으니까.

한 합. 두 합…… 세 합.

눈 깜짝할 사이에 일곱이 넘는 혈강시들을 정리한 소유명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야. 제법인데 신입? 계약자 예전 시절 모습 보는 것 같네.”

“쓸 만하군. 앞으로 뒤치다꺼리는 저 친구에게 맡기면 되겠어.”

“과연, 진혁 씨가 고른 분답네요.”

칭찬이 이어졌지만, 소유명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사람들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아버린 탓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다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흑흑흑.”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긴장이 풀린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수백 명이 넘게 사는 마을이었는데, 살아남은 사람이 고작 서른 명도 채 되질 않는다.

고작 열 개의 강시만으로도 이렇다면…….

동선에 따라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도 있을 거다.

“일단 이것부터 좀 나눠 드세요. 숨 좀 돌리신 다음에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물과 보리빵을 꺼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잠깐 한숨을 돌리자 초췌했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저는 마을의 촌장 역할을 맡고 있는 늙은이입니다. 우선…… 목숨을 구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구려. 대인들이 아니었다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죽었을 거요.”

노인이 깊숙이 허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한데, 대인들께선 이런 촌구석까지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여길 습격한 놈들을 처리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또 찾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요.”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진혁이 주위를 힐끔 살폈다.

다들 부상자들을 돌보고 혹시 모를 강시들의 추가 습격에 대비하고 있느라 정신이 없다.

잠깐 잡담을 나눠도 이목을 끌 일은 없겠지.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 중 최근에 이 마을에 들어온 자를 알고 계시나요?”

천마가 천마신교를 떠나 낙양에 와 있다면 그건 꽤나 근시일 내에 있던 일일 터.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있어 이방인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사실 한 명. 닷새 전에 이곳에 온 젊은이가 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지금 이곳에 있고요?”

“예…… 그렇습니다.”

역시나.

내공을 되찾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거다.

음양의 조화가 충돌하는 장소는 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여기 단 한 곳뿐이었으니까.

“누구죠? 아. 손으로 가리키진 말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말하면서 그 사람 생김새만 묘사해주세요.”

“이것만 말씀드려도 충분히 알아보실 겁니다. 목덜미에 특이한 검상이 있는 남자. 그자가 바로 대인께서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목덜미에 상처.

진혁의 눈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요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았다.’

먼지투성이에 굶주린 듯 꽤나 수척해 보이는 외모였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아니, 더벅머리 사이로 날카롭게 빛나는 안광은 스승님보다 오히려 더 매서웠다.

목에 있는 상처도 검상이 아닌 짐승이 할퀸 것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천마(天魔).

만마의 재앙이자 천마신교를 이끄는 마두를 뜻하는 말이다.

‘천마신교가 단일 세력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전부와 정사대전을 치른 것도. 모두 천마라는 절대자가 있는 덕분이지.’

하지만.

가장 높게 날던 새는 어느 날 날개가 꺾였다.

모두의 경외와 시기를 한 몸에 받던 왕은…….

……더 이상 왕좌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무엇 때문에 50층과 싸웠는지.

무엇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버렸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이제부터 그 모든 걸 알아볼 생각이었다.

진혁이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옆에 좀 앉아도 됩니까?”

“…….”

남자는 진혁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혁은 무반응을 허락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다.

털썩. 옆에 앉자 마침내 남자가 반응을 보였다.

“앉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

“싫으면 싫다고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뻔뻔한 놈이로구나. 아니면, 풀이나 뜯어먹고 사는 사람의 의사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더냐?”

“강시도 처리해 드렸고 식사까지 제공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능글맞게 웃으면서도 합당한 이유를 들이밀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남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해라.”

과거에는 천살강기 때문에 맨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훨씬 멀쩡하게 생겼네.’

천마 역시 외모는 다른 평범한 이들과 비슷했다.

아니, 환골탈태 덕분에 오히려 깨끗한 피부와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다는 편이 더 맞으리라.

진혁이 ‘탐식의 눈’을 발동시켜 조심스럽게 상대를 살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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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백일하

성별: 남

나이: ??세

레벨: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7 내공 ???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고유 능력: 천마신공(天魔神功)

스킬: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Lv?? , ‘천살강기(天殺罡氣)’ Lv??, ‘천마대멸겁(天魔大滅劫)’ Lv??, ‘천마반탄기(天魔返彈氣)’ Lv??………… 스킬의 종류가 너무 많아 접어두기 상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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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현재 천마는 50계층의 존재와의 전투로 인해 진원지기를 거의 소모한 상태입니다. 과거의 내공을 다시 찾기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천마를 도와 그의 내공을 되찾게 해줄 수 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 조건: 한 번의 기회를 통해 천마의 기억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때 천마와 천마신공에 대한 사전 이해도에 따라, 복사되는 천마신공의 완성도가 달라집니다.(최대 10성)]

탑의 상층부를 수월하게 오르고.

이후 50층에 도달하기 위해선…….

반드시 천마신공을 습득해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천마신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 40층대를 돌파하는 속도가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특히 북유럽의 신격들과 그들의 권역에 속해 있는 신수들은 압도적인 힘과 무식한 마력을 바탕으로 한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들과 싸우려면 그에 어울리는 능력이 필요할 터.

‘흑천마황공이나 괴력난신도 도움이 많이 되지만, 가장 효율이 좋은 건 역시 천마신공이지.’

보통은 융합을 통해 상위 버전의 능력들을 습득하곤 했으나.

천마신공은 그 위의 상위 능력이 없는 무결점의 능력이다.

‘펜리르나 요르간문드……와도 상성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천마에게 빚을 하나 지워두는 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봤을 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복사 조건이 까다롭긴 하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겠지.

“이제 그만 아는 척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어차피 저에 대해선 스승님에게 들었을 텐데요.”

진혁이 피곤한 눈치싸움을 먼저 끝냈다.

사마자는 천마를 배신했으나, 암황은 천마를 배신하지 않았다.

단순히 힘에 기대 편승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천마를 믿고 따랐기에.

모든 걸 잃어버린 지금까지도 천마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호법이 제자를 거뒀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평생 제자를 거둘 일이 없다고 하더니. 말년에 와서야 이렇게 되는군. 그것도 마교인도 무림인도 아닌 탑 밖에서 온 외인을 상대로 말이야.”

천마가 복잡한 심정이 담긴 웃음을 내뱉었다.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한 법이죠.”

“정말 그런 것 같구나. 그래서. 우호법의 제자가 이 먼 곳까지 본좌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상처를 언급하자, 천마의 눈꼬리가 역팔자로 휘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내가 왕관 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와서는 안 될 놈들이 넘어왔다.”

“……!”

이번엔 진혁이 놀랐다.

설마, 천마의 입에서 왕관이 튀어 나올 줄이야.

탑의 정상을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모아야 할 성유물.

그 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반응을 보아하니 왕관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보군.”

“들어는 봤습니다.”

진혁이 부정하지 않았다.

“천마께서도 과거형으로 말씀하신 걸 보면…… 현재는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걱정 마라. 놈들에게 빼앗긴 건 아니다. 마지막 순간, 내가 왕관을 층계 밖으로 던져버렸거든.”

……응?

그러니까.

탑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을 버렸다?

그것도 아래층을 향해서 냅다?

진혁의 영혼 나간 표정을 본 천마가 황급히 한 마디 덧붙였다.

“큼! 무식한 짓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놈들에게 빼앗기는 것보단 그 편이 낫지 않더냐?”

기가 막힌 일이다.

개인의 힘으로 탑의 층계를 뚫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 있을 줄이야.

“후회는…… 하지 않습니까?”

모든 내공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놈들과 싸웠다.

50층의 존재들을 퇴패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본좌는…… 후회하지 않는다.”

천마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일까.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일까.

해가 서서히 산을 따라 넘어갔다.

낮이 가고.

밤이 찾아 왔다.

***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진혁은 운무관에서 가져온 무공 비급을 꺼냈다.

[비급이 개방됩니다!]

[2대 천마 ‘백월천’에 의해 쓰인 비급, ‘혈혼수라심법’의 귀결이 펼쳐집니다.]

[마교의 모든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370%만큼 상승합니다!]

[장시간 심법을 사용할 경우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마공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을 주나 동시에 시전자를 미쳐버리게 만들 수 있는 양날의 검.

극마의 경지에 도달했을 당시 백월천이 직접 쓴 비급이다.

워낙 난해했기에 적혀 있는 심법과 초식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으나, 책에 있는 마기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천마신공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후우…….’

진혁이 ‘흑천마황공’과 ‘혈마기’를 통해 체내에서 날뛰는 마기를 다스렸다.

거기에 ‘특수 조건’이 개방되자 차가운 마력이 전신을 집어삼켰다.

[천마의 기억을 읽습니다.]

진혁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쿠쿠쿠쿠쿠!

주위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

떠오르는 돌과 바위 조각들 사이로…….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광오하게. 오만하게.

모든 것을 오시하는 무림의 절대자가 검을 뽑아들고 서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한복판에서 꼿꼿하게 서 있는 대나무처럼.

그를 상대하는 건 수많은 입과 이빨을 가진 태고의 존재.

슈브 니구라스.

탑의 아래층으로 현현했기에 본신의 힘이 극단적으로 제약되어 있긴 했으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든 생명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고 지형이 뒤바뀐다.

물리 법칙을 초월한 규격 외의 신격이 층계를 침식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천마는 그 기세에도 추호도 겁을 먹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저것이 전성기의 천마…….’

두 눈으로 담아 둬야 한다.

저 움직임과 동작 하나하나를.

그리고 천마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이해도: 0%]

“오거라. 검은 양들의 어미여. 본좌가 친히 그 힘의 깊이를 가늠해 보겠다.”

“키에에에에!”

탑의 역사에 남을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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