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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312화


312화. 죽은 자들의 싸움 (1)

혈강시의 숫자는 세 자리 수에 이르렀고.

절정급이 다섯은 달라붙어야 간신히 막을 수 있는 음양강시는 열다섯이나 보였다.

거기에 둘만으로도 초절정급 고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진 수라천살강시까지.

능히 한 군대라고 칭할 만한 엄청난 수의 병력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검은색 흑의를 둘러쓴 이가 보였다.

심마사령.

강시와 주술은 물론, 암기술에 능통한 고수.

강자들만 모인 천마신교에서도 네 번째 서열을 차지할 정도로 그 강함에 관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게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군. 네놈이랑 같이 다니면 잠까지 마음대로 못 자는 거냐?”

한 발 늦게 반응한 천유성이 으르렁거렸다.

아직까지 눈이 풀려 있는 게 제대로 단잠을 방해받은 듯싶었다.

의대생들은 하루에 3시간 이상 안 잔다고 하던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잠돌이인지 모르겠다.

“세상에나…….”

“가, 강시들이 이렇게나 많이…….”

“으으으…….”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아. 도망갈 곳도 다 막혔어.”

살았다는 안도감에 빠져 있던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처음에 마주했던 강시들보다 족히 몇 배는 많은 수의 강시들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절망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대, 대인.”

촌장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진혁을 불렀다.

‘제법이야. 이곳으로 오는 길목에 알람 결계를 3중으로 쳐 놨는데, 그걸 전부 파훼했다는 건가.’

엘리스와 테레사 씨가 있는 오두막에도 다수의 강시들이 포진해 있었다.

심마사령이 직접 온 걸 보면, 사전에 우리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다는 거겠지.

민간인들을 노리는 것도 그렇고.

이쪽의 수를 먼저 읽어내는 것도 그렇고.

초반 수 싸움에서 꽤나 난항을 겪는 느낌이다.

‘거점을 하나도 잃지 않고 시작하려 했었는데, 꼴을 보아하니 다른 쪽은 이미 놈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가정해야겠네.’

스물일곱 번의 정사대전을 치르는 동안 가장 까다로웠던 적.

매번 상황에 맞게 새로운 전술을 구사하느라 곤혹을 치렀었다.

덕분에 층계 공략 실패도 많이 했었지.

‘이번에도 따분할 걱정은 접어둬도 되겠어.’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예측을 뒤엎고 예상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짜릿한 긴장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호오. 이거 완전히 대어들이 잔뜩 걸렸군. 무당파의 애송이들에 암황의 제자에…….”

천천히 오두막을 훑던 심마사령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으응? 아니 이게 뭐야?”

시선이 향한 곳은 초췌한 몰골의 남성이었다.

“푸하하하! 아니, 천하의 천마께서 이게 무슨 꼴이오! 누가 보면 웬 거렁뱅이가 이곳에 있는 줄 알겠소이다.”

“심마사령…….”

천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음성에 무게란 실려 있지 않았다.

“내공을 잃어버렸다는 게 정말이구려. 좌호법께서 말씀하셨을 때 반신반의했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믿겠소이다. 그분을 선택하는 게 옳았다는 걸 말이오.”

“사마자는 천마가 될 그릇이 못 된다.”

“아니, 그분이야말로 무림 일통의 꿈을 이룰 만한 그릇이오. 이빨 빠진 호랑이가 함부로 입에 담기엔 너무 크신 분이지.”

아무리 약육강식이라지만…….

한때 충성을 맹세했던 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진혁이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내공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방법도 빨리 찾아봐야겠네.’

사마자 같은 놈이 득세하고 천마 같은 자가 몰락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그런 불합리한 결말을 지켜보다간 스스로를 용납하기 힘들 것만 같았다.

게다가 천마신공을 복사하려면 어차피 해결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바로 그때.

심마사령이 손을 휘저었다.

“버러지들을 쓸어버리는 것쯤이야 손쉬운 일이지만, 새롭게 태어난 천마신교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의미에서 작은 무도회를 열도록 하지.”

강시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겹겹이 쌓여 있던 벽이 열리며, 엘리스와 테레사 소세령이 머물고 있던 오두막이 보였다.

세 명 역시 갑작스러운 습격에 잠에서 깨 밖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말하라. 너희 중에 가장 강한 게 누구냐?”

가장 강한 놈을 죽여 강시술이 천외천의 무공임을 증명한다.

아무리 정파의 심법이 고강하고 탑 밖에서 온 플레이어들이 날뛴다고 한들.

마교 천하 앞에서는 하찮은 힘에 불과하다는 걸 똑똑히 각인시켜 주겠다.

“무당파의 떨거지들은 아닐 테고…….”

심마사령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큭!”

지명을 받은 소유명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런 도발을 들으면서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건 무당의 도사가 아니다.

“저 사악한 마도의 무리가 감히…… 무당을 능멸하다니!”

“사형! 명령만 내려주십쇼. 제가 당장 가서 저놈들을 모조리 쳐버리겠습니다!”

소영호와 소운군도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소유명은 쉽사리 나설 수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강한 건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유명이 나서지 않자, 콧대 높은 여왕님께서 움직였다.

“후후. 그거야 당연히 위대하고 고귀한 짐이…….”

엘리스가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엘리스.”

“응?”

“기다려.”

엘리스가 손을 높게 들려는 걸 진혁이 말렸다.

그리고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역시, 네놈이더냐. 암황의 제자.”

심마사령이 예상했다는 듯 진혁을 바라봤다.

-역시나. 무당파의 일대제자인 나를 제압한 저 괴물이 이중에서 가장 강하겠지.

-으으으으응…… 그래. 뭐 계약자라면 어차피 나도 도와줄 테니까 종합 전투력으로 봤을 때 젤 센 게 맞아!

-진혁 씨……. 후방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모두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그런데.

“아니, 나보다 더 강한 놈이 있어.”

“너보다 더 강한자라고?”

“그래.”

진혁이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손으로 천유성의 등을 밀었다.

“어?”

천유성이 몇 걸음인가 더 앞으로 나갔다.

제법 힘을 줬기에, 거의 강시들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후욱하고.

시체 썩는 냄새가 천유성의 코끝에 닿았다.

“추혼사영의 제자다. 솔직히 말해 나를 포함한 나머지 전부가 덤벼도 이 녀석한텐 안 될걸?”

“호오. 추혼검을 이어받은 자라 이건가? 그거 재밌군.”

“야! 너! 이게 무슨 생각……헉!”

천유성이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콰앙!

검강을 끌어올렸음에도 몸의 균형이 일격에 무너졌다.

수라천살강시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손톱을 휘둘렀다.

쾅! 쾅! 콰아아앙!

목, 심장, 가슴.

하나같이 급소만을 노리는 절초다.

“크윽!”

‘검의 노래’를 사용한 천유성의 얼굴에서 긴장한 빛이 흘러나왔다.

추혼검무로 어떻게든 받아치고 있었으나, 그게 한계였다.

아무리 천유성이라고 해도 이런 괴물을 상대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적어도 이렇게 탁 트인 곳이 아닌,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천유성이 자리를 박차고 내달렸다.

“너. 이건 반드시 기억하겠다. 내가…… 죽더라도 이 일은 잊지…… 않겠다고! 똑똑히 기억해 놔라. 으아아아!”

천유성이 숲속으로 도주하면서도 진혁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음.

역시 잘 뛴다.

진정한 강자는 다리가 빨라야 하는 법이지.

가장 성가신 최상급 강시를 떼어 놓자 훨씬 더 여유가 생겼다.

***

천유성이 사라지자 느슨해졌던 공기가 다시 조여지기 시작했다.

“동료 한 명을 버림 패로 썼구나.”

“음? 알고 있었어?”

“내 눈이 옹이구멍도 아니고. 저 녀석이 강한 건 알지만 네놈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호오.

아예 머저리는 아니라 이건가.

“그런데도 내 장단에 맞춰 준 이유는?”

진혁의 질문에, 심마사령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강시 하나가 없다고 해서 너희를 처리 못 할 거라면…… 애초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느니라.”

전술의 백미는 기습.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진법을 통한 공간이동술을 사용했다.

여기에 들어간 제물만 해도 남녀를 합해 수백에 이른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성공이라는 대전제를 완성시키기 위함이다.

“보거라. 강시를 지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심마사령이 손끝에서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우우우웅!

바닥을 따라 붉은빛을 머금은 기운이 솟구쳤다.

“크으으…… 크아아아아!”

“크오오오!”

“케에에엑!”

피를 매개로 한 ‘혈계 주술’.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강시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심마사령이 고유 능력 ‘사령의 권속’을 발동합니다!]

[죽은 자들의 능력치가 30%만큼 상승합니다!]

[산 자들의 능력치가 30%만큼 하락합니다!]

강시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근육이 급속도로 팽창했으며, 손톱 역시 평소보다 2배 가까이 자라났다.

또옥……. 또옥.

검은 손톱에서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는 혈교에서 가져온 맹독.

거기에.

[상태 이상에 걸리셨습니다.]

[시각과 촉각이 무뎌집니다.]

[균형 감각이 평소보다 10%만큼 하락합니다.]

진법 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붉은 상태창이 미친 듯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연.

심마사령이 자신만만하게 나선 이유가 있다.

이래서야 강시가 아닌 한, 이 안에서 싸우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말이다.

“시체를 부릴 수 있는 힘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크하하하! 어이가 없군. 그새 강시라도 몇 구 제조했다는 거냐?”

“아니, 강시 따위보다 훨씬 더 든든한 놈들이지.”

죽은 자들의 범주에 반드시 강시만 포함되는 건 아니다.

“나와라.”

진혁의 등 뒤로 아공간이 개방되었다.

파츠츠……!

거대한 공간 너머에서 눈처럼 새하얀 눈보라가 일어났다.

소름끼치는 냉기가 흘러 넘어오기 시작했다.

다각. 다각.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진 건 바로 그때였다.

전신을 흑갑으로 감싼 데스 나이트.

티본.

그리고 그 뒤엔, 룬어가 새겨진 창을 든 고대 병사들이 있었다.

전원이 유령군마를 탄 채 도열한 모습은 마왕군이 현세를 침공한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마스터.”

티본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곳에 투자하던 마력을 모두 쏟아 부었기에, 티본의 모습은 몽환의 실낙원에서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데스나이트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저놈을 상대하는 동안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

목표는 우두머리 단 하나.

남은 잔챙이들은 티본과 고대 병사들에게 맡긴다.

“맡겨 주십쇼.”

티본이 말 위에서 검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퍼퍽!

퍽!

지면이 흔들렸다.

오래 전 이곳에 묻혔던 망자들이 일어선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백골들.

도적에 죽고.

마교에 짓밟힌 원귀들이.

새로운 주인의 부름에 응답했다.

이걸로 숫자는 대등하다.

‘부족한 질은…… 메우면 그뿐.’

진혁이 ‘세계의 기억’에서 또 다른 능력을 불러왔다.

[고유 능력 ‘군단의 핵’이 발동됩니다!]

지면을 따라.

츠츠츠츠……!

푸른 마력이 일어났다.

심마사령의 능력에 대항하듯.

서로 다른 색깔의 기운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검게 튀어오르는 스파크 속.

“그럼, 시작해 보자고.”

진혁의 왼손엔 ‘송곳니’가.

그리고 오른손엔 ‘쌍룡검’이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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