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431화
431화. 크라켄 (2)
속사포처럼 튀어나오는 폭언.
어버버….
로테인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누가 감히 명예스러운 성십자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에게 이런 막말을 지껄인단 말인가?
교황청의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유럽에 있는 수많은 명문가들도 꼼짝하지 못하는 게 바로 자신이었다.
하물며 탑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소시민에 불과했던 게 눈앞에 있는 상대였을 터.
만약 상대가 그토록 유명한 진혁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발포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아무리 당신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건 집안 문제입니다. 함부로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테레사 씨는 이쪽에도 한 발을 걸쳐 놓고 있어서요. 게다가 콩가루 집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딸내미가 있으면 당연히 구해내고 싶은 게 본심이죠.”
“코, 콩가루? 교황청과 성십자 기사단이 콩가루라는 말씀입니까. 지금!?”
“아, 죄송합니다.”
진혁이 빠르게 사과했다.
“이제 와서 사과하신다고 넘어갈 거라 생각했으면….”
“아니, 그쪽 말고 콩가루한테 죄송하다고요.”
맛좋고 몸에도 좋은 콩가루한테 무슨 말을 한 건지.
저건 분리수거도 안 되는 음식물 쓰레기다.
“크아아!”
“부기사단장님….”
“참으십쇼. 보는 눈이 많습니다.”
로테인이 살기를 뿜어냈지만, 추가적인 액션을 취할 순 없었다.
먹잇감들을 잔뜩 획득한 크라켄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크오오오!”
물속에서 튀어나온 다리들이 함선들을 휘감았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화이트펄호와는 달리 일반 함선들은 크라켄에게 있어 너무나 손쉬운 타겟이었다.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
거대한 함선이 반파되어 사라졌다.
배가 침몰되면서 나타난 소용돌이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마저 모조리 삼켜버렸다.
[크라켄이 패시브 ‘함대 포식’을 사용하는 중입니다.]
공격력이 증가함에 따라 크라켄의 덩치 역시 더욱더 비대해져 갔다.
파츠측!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번개도.
바다에서 헤엄치는 각종 어류들도 성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놈의 입장에서는 바다 위에 화려한 뷔페가 차려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러서지 말고 맞서라. 어차피 도망가 봤자 소용없단 말이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에게 마력 포션 전부 넘겨. 다른 길드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놈에게 먹힐 만한 마법을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유능한 공대장들은 공대원들을 독려하며 반격의 기회를 엿봤다.
거센 해류 속에서도 대형을 정비하고 빈틈을 찾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 안 좋았다.
투웅! 투쾅!
허무하게 튕겨나가는 작살들.
고래를 잡는 작살을 연성하고. 그 위에 화염 계열 마법을 덧씌웠다.
거기에 도핑을 한 서른 명 이상의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이 가속 마법까지 중첩시킨 공격이다.
그런데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공략법을 찾는 것 따윈 무의미하다.
애초에 공략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쿠쿠쿠쿠쿠!
바다를 가로지르는 규격 외의 재앙.
6성급에 해당하는 대형 함선이 일격에 침몰하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콰직! 콰드득!
바다에 떨어진 플레이어들은 백상아리들의 밥이 되거나, 해파리들에게 휘감겨 익사했다.
물이 더더욱 붉게 물들었다.
“으으으… 다 틀렸어.”
“도망쳐야 한다. 어디든지, 어디로든 배를 몰라고!”
공포에 이성이 완전히 나간 배들은 제멋대로 키를 놀리다가 소용돌이를 향해 들이박았다.
하나 둘.
채 30분도 되지 않아, 이곳에 온 배들 중 1/3이 사라졌다.
그나마 남은 배들도 목숨만 연장된 것일 뿐.
머지않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은 함대끼리 뭉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뭔가 뾰족한 수는 없는 겁니까?”
“뭐, 뭐든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쇼.”
진혁의 눈앞에 상태창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각 길드의 공대장이나 부공대장. 혹은 그에 준하는 간부급 랭커들이었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살려달라라….’
진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테레사를 희생타로 써버린 놈도 괘씸하고.
그걸 알면서도 묵인해버린 나머지 놈들도 고깝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냥 전부 죽으라고 했다간, 크라켄이 더욱 강해지겠지.’
지금도 유효타를 입히기 힘든 지경인데, 더 괴물이 됐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각 길드의 스펙과 보유한 랭커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변수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부터 무조건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셔야 합니다.”
진혁이 결정을 내렸다.
* * *
함대의 배치가 개편되었다.
진혁이 짜둔 진형을 토대로 배를 넓게 펼친 형태로.
크라켄이 도망치던 함선들을 정리하는 사이 최대한 빠르게 대응한 결과였다.
“정말 저 남자가 하는 말대로 해도 괜찮은 겁니까?”
성십자 기사단에 소속된 랭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파마를 한 갈색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여성.
공격대의 메인 원거리 딜러를 맡고 있는 ‘제이나’였다.
비교적 후방에 배치된 성십자 기사단은 얼핏 보기에 안전한 위치였지만, 액면 그대로를 믿기엔 진혁의 의도가 너무나 의심스러웠다.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지금, 굳이 자신들에게 안전한 위치를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십자 기사단의 임무는 곧 나타날 다양한 종류의 암초들을 파괴하라는 것뿐.
그 외에는 추가적인 지시사항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아마 우리를 미끼로 이용하려는 생각 같다.”
로테인도 그 냄새를 맡았다.
그렇기에, 순순히 진혁이 하라는 대로 할 생각 따윈 없었다.
“프레드. 해류를 파악하는 건 끝났나?”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예상하셨던 그대로입니다.”
해류의 흐름을 읽는 데 특화된 플레이어.
‘항해’에 관련된 스킬을 보유한 프레드는 계속해서 그 흐름을 살펴왔다.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 파도와 염분의 농도. 그리고 바람의 세기까지.
그 모든 걸 말이다.
“곧, 흐름이 바뀌겠군.”
“예. 저희가 있는 곳이 크라켄과 가장 가깝게 변할 겁니다. 시간으로 치면 약 15분 뒤입니다.”
역시나. 이런 장난질을 쳐놨다.
성십자 기사단의 배를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인 거다.
하지만, 그 계획이 읽혔다는 건 꿈에도 모를 테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이나의 질문에, 로테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순순히 속아주는 척한다. 그리고 해류가 바뀌는 타이밍에 맞춰 우리가 상대의 작전을 역이용해주지.”
성십자 기사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십 년이 넘게 군생활을 해온 로테인이었기 때문에, 상대가 대충 어떤 식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보였다.
게다가 에덴을 통해 준비해둔 비장의 한 수도 있었으니, 여차하면 그걸 이용해버리면 된다.
바로 그때.
사냥을 끝마친 크라켄이 함대들을 향해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갈라지는 물살과 물살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1분 1초가 미친 듯이 길게만 느껴졌다.
‘빌어먹을, 이놈의 탑은 가면 갈수록 지옥처럼 변하는군.’
로테인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비교적 후방에 있다고 해도 안전하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저, 어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 * *
퍼퍼펑!
퍼엉!
선두에 있던 함대들이 함포를 발사했다.
목표는 크라켄이 아닌 소용돌이.
그것도 화력을 집중시키는 게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었다.
리듬 게임을 하듯, 시간 차를 두고 각기 다른 소용돌이를 노리는 것처럼 말이다.
얼핏 보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격처럼 보였지만….
“크오오오!”
이변이 일어났다.
거침없이 정면을 향해 질주하던 크라켄이 갑자기 근처에 있던 소용돌이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라켄이 처음으로 입이 있는 안쪽을 보였다.
……지금이다!
[마리아가 Lv16 ‘헬파이어’를 발사합니다!]
[오지원이 Lv15 ‘블랙맘바의 독액’을 발동합니다!]
[요시오가 Lv16 ‘유메 카제’를 발동합니다!]
[배현제가….]
각 배에 있던 랭커들이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형형색색의 마력들이 입이 있는 부위를 강타했다.
“키에에에!”
고통에 찬 음성.
상처는 언제나처럼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유효한 공격을 성공시키게 된 것이다.
“오오오!”
“됐다! 됐다고!”
“이렇게만 하면 된다. 밀어붙여라!”
여기저기서 희망에 가득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생츄어리’와 ‘탐식의 눈’을 통해 진혁의 눈엔 상대가 가진 총 체력이 보였다.
[1,889,983,555 / 1,980,000,000]
이렇게나 쏟아부었는데도 입힌 피해가 고작 저거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순간.
해류가 바뀌었다.
드디어 기다렸던 타이밍이 온 것이다.
쏴아아아….
바다 안에 있던 암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기 다른 문양이 새겨진 암초들은 특정 공격으로 파괴할 경우, 크라켄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동시에.
앞쪽에 있던 함대들과 중간에 있던 함대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성십자 기사단의 함대들이 가장 앞쪽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함대들이 크라켄으로부터 멀어졌다.
완전히 고립되어 미끼가 된 모습.
“그래,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이 썩을 놈아!”
로테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계속해서 기다려왔다.
상대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이 순간만을!
[조건 충족, 성유물 ‘아벨의 두개골’이 사용되었습니다!]
카인과 아벨.
시기와 질투로 이루어진 비극적인 신화다.
그리고 그 신화를 재현하게 만드는 성유물이 바로 카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두개골이었다.
[치명적인 배신을 당할 경우, 그 원인을 제공한 대상자들과 자신의 처지를 바꿉니다.]
에덴의 가호 하에, 이루어지는 공간 구속과 물질 변형.
우우웅!
‘화이트펄호’와 성십자 기사단의 배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어버린 것이다.
“푸하하! 감히, 내 앞에서 되도 않는 잔꾀를 부리다니. 내가 네놈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단 건 몰랐겠지!”
광기에 젖은 웃음.
역으로 뒤통수를 쳤다는 생각에, 로테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
이미 진혁이 어떤 식으로 크라켄을 공략할지 파악했기 때문에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암초들에 대한 분석도 끝났습니다!”
“속성 마법과 신성력을 조합해 파괴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아냈습니다!”
프레드와 제이나가 동시에 외쳤다.
크리티컬 확률을 올리고 대신 크라켄의 방어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터.
그때 또 다른 성유물인 ‘카인의 돌칼’을 사용한다면 틀림없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크라켄을 죽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육지로 도망칠 수 있는 루트는 확보하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충분하고말고.
“그러니, 네놈들이 우리를 위한 희생양이 되거라.”
강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 거기에 명령을 듣지 않는 쓸모없는 성녀까지.
모든 골칫거리들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