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513화
513화. 태양의 마차 (3)
투두두두두!
오룬이 만든 마차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아무리 장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짧은 기간에 급조한 마차로는 충격을 전부 견디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1시간 안에 이 정도 퀄리티를 냈다는 게…… 과연, 오룬은 오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마차에 장착된 비장의 수도 하나 있었으니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으리라.
‘벌써 몇 킬로미터는 뒤쳐졌나 본데…….’
가펠리우스가 선언했던 것처럼, 태양의 마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젠장, 이래서야 벌써 진 것 아니냐?”
“공격을 해서 속도를 늦춰보려 해도 뭐가 보여야 할 텐데요.”
“아니면, 짐이 따로 날아가서 쫓아볼까?”
각양각색의 반응이 흘러나왔다.
“걱정 마. 이건 장기전이니까. 게다가 우리 애들은 이제 막 달리는 데 익숙해지고 있어.”
진혁이 고삐를 부드럽게 쥐었다.
은은한 마력이 퍼져나가며…….
[고유 능력 ‘적토승마(赤兎乘馬)’가 발동됩니다!]
[고유 능력 ‘바람의 영역’이 발동됩니다!]
세계의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능력이 개방되었다.
순간, 고삐에 전해지는 압력이 달라졌다.
“모오오기이이!”
선두에 선 고구마를 기점으로 나머지 소환수들의 기세가 끌어 올랐다.
콰콰콰콰콰!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며, 마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앞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천유성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핑을 한 것도 아니고.
멀쩡하던 애들이 갑자기 펄펄 날아다니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게다가 ‘바람의 영역’으로 인해 바람을 등에 업게 되자, 말랑흑두루미가 몇 배는 편하게 마차를 보조할 수 있게 되었다.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그래 이 맛이지.’
수많은 능력들을 저장해둔 보람이 느껴진다.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복사’와 ‘융합’이 사기적인 이유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저 멀리 가펠리우스의 마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가, 가펠리우스 님!”
가펠리우스의 마차 후방에 있던 전사가 다급히 가펠리우스를 불렀다.
“뭐냐?”
“저기! 뒤, 뒤쪽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뒤는 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가펠리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이내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감히 쫓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진혁이 어느새 등 뒤에 있던 것이다.
“어떻게……?”
수만 가지 의문점이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현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무슨 수를 썼든. 상대는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본격적인 경주를 해야 한다.
“크하하하! 역시, 쉽게는 안 된다 이건가. 암, 그래야지. 그래야 이 몸이 몸소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지!”
반면, 헤라클레스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좀 온 몸이 근질거린다는 것처럼.
동시에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장궁에 화살이 걸렸다.
쿠쿠쿠쿠쿠!
화살촉을 따라 응집되는 무시무시한 살기.
마력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단순히 시위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터무니없는 파장이 일어났다.
[헤라클레스가 Lv??? ‘천공의 활’을 발동합니다!]
콰아앙!
질풍이 몰아쳤다.
질풍은 이내 폭풍이 되어 하늘을 집어삼켰다.
……빠르고. 무겁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화살이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진혁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고유 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진혁의 앞에 나타난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카카카카카……각!
칼날이 화살촉의 빗면을 긁으며 궤도를 비틀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빗겨치기였지만…….
애초에 헤라클레스의 화살은 완전히 빗겨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큭!?”
천유성의 팔이 충격을 버티지 못해 그대로 밀려났다.
콰아앙!
마차의 뒷부분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약간 스친 것만으로도 이런 위력이라니.
제대로 맞았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추락해야 할 마차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오룬의 마차가 특수 능력 ‘장인의 혼’을 발동합니다!]
쿠드득…….
……콰득!
빠르게 복구되는 후면부.
진혁이 싱긋 웃었다.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말라고.”
경주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호오. 제법이군.”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작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마차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
바로 그때.
모두의 앞에 거대한 부유석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측면 코스를 따라 완만하게 주행하는 거였다면, 이 부유석부터는 경사가 급속도로 꺾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말을 모는 이와 말들 간의 호흡이 중요해진다는 뜻.
“하압!”
“히이잉!”
“히잉!”
투두두두두!
가펠리우스가 능숙하게 말들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 정도쯤은 우습다는 듯 마차가 궤도를 타고 매끄럽게 질주했다.
반면, 진혁이 끄는 마차는 우당탕탕 부유석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젠장. 우리도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꺄아아악!”
“계, 계약자?”
모두가 다급히 외쳤다.
아무리 ‘적토승마’가 각 개체의 주행 능력을 극대화시켜준다고 하더라도, 네 마리의 곡예 조종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구마야!”
진혁이 고구마의 입에 오색찬란한 빛을 지닌 마정석을 던졌다.
“모, 모기!”
두 눈을 반짝거린 고구마가 한 입에 마정석을 집어삼켰다.
우우웅!
고구마의 배가 은은하게 빛나더니 이내 빛이 배를 따라 목구멍까지 솟구쳤다.
[고구마가 최상급 마정석을 흡수했습니다!]
[Lv14 ‘브레스’가 발동합니다!]
하얀색으로 빛나는 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모여들었다.
“빨리!”
천유성이 검을 움켜쥐었다.
이제는 부유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직경이 수백 미터에 이르는 돌덩이를 벤다는 건 아무리 천유성이라도 살 떨리는 일일 터.
무언갈 하려면 그 전에 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모기이이이!”
고구마의 브레스가 해방되었다.
한 줄기 섬광이 점멸했다.
그 후에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콰콰콰콰콰콰!
응축된 브레스가 그대로 부유석을 관통했다.
동시에.
[빙하조형 ‘블리자드’가 발동됩니다!]
[엘리스가 ‘블러드 스피어즈’를 발동합니다!]
얼음과 피로 만든 창들이 가펠리우스의 마차를 노렸다.
얼핏 눈대중으로만 봐도 수백에 이르는 흉기들.
이번에는 가펠리우스가 당황할 차례였다.
“부유석을 통째로 파괴한 걸로도 모자라…… 곧바로 저런 반격이라니.”
쏟아지는 두 색깔의 폭우를 보자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융단폭격을 경험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승마’ 스킬과 ‘굳건한 채찍’이 발동되자, 마차가 있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전후좌우를 누비기 시작했다.
콰콰쾅!
퍼퍼퍽!
종이 한 장 차이로 마차에서 벗어난 창들이 애꿎은 지면을 박살냈다.
지면이 삽시간에 고슴도치로 변했다.
“흑두루미!”
“알고 있다!”
진혁의 외침에, 말랑흑두루미가 기상을 조종했다.
[말랑흑두루미가 Lv?? ‘기상개변(氣象改變)’을 발동합니다!]
쿠르릉!
검게 물든 보랏빛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졌다.
그런데.
“멍청하긴. 어딜 노리는 것이냐!”
번개는 아예 마차의 근처를 스치지도 못했다.
완전히 엉뚱한 데로 떨어진 낙뢰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펠리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진혁의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짙은 미소가.
“아니, 제대로 노린 거 맞아.”
어차피 낙뢰 하나 정도로는 무지막지한 마법 저항력을 지닌 헤라클레스에게 통하지도 않을 터.
애초에 마차를 노린 것이 아닌…….
……지면에 박힌 꼬챙이들이 목적이었다.
“땅에 박힌 저것들…….”
조금 늦게 진혁의 의도를 파악한 헤라클레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자세히 보니 꼬챙이들이 무작위하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으로 박혀 있었다.
[빙하조형 ‘하늘의 번개’와…….]
떨어진 낙뢰가 체인 라이트닝이 되어 수백 개의 꼬챙이들을 타고 흘렀다.
흐르고 흐른 체인 라이트닝은 이내 거대한 룬어의 형상을 이루었다.
[……블러드 스피어즈 ‘땅의 창’이 이어집니다!]
콰콰콰콰콰콰!
종말을 고하는 번개 줄기들이 위아래로 교차했다.
“크아아악!”
“크읍!”
“으아아악!”
가펠리우스의 마차가 거대한 화염이 휩싸였다.
⁕ ⁕ ⁕
관리자들이 기거하는 부유석 위.
“저런, 말도 안 되는……!”
느긋하게 경주를 지켜보던 고디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에 압도적인 차이로 거리를 벌렸을 때만 해도 승리를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나 전투병으로 타고 있는 게 헤라클레스인 이상 변수 따윈 없을 거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한 위화감이 들러붙었고.
지금에 와서는 불안감이 턱밑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했잖습니까. 강진혁 플레이어님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릭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홀짝였다.
“확실히, 흥미롭긴 하군요. 이래서야 누가 이길지 전혀 모르겠어요. 아니, 어쩌면 예상 외의 일이 날지도…….”
벤디비아도 연신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 외의 중간 관리자들과 하급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동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오랜 세월, 탑의 상층부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올림포스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지켜만 보실 겁니까?
고디락의 음성이 맞은편에 있는 부유석으로 향했다.
그러자.
침묵하고 있던 올림포스의 주신이 움직였다.
대답 대신 행동이 이어졌다.
[제우스가 고유 능력 ‘아스트라페’를 발동합니다.]
번쩍하고.
푸른 섬광이 점멸했다.
고작 한 줄기뿐이었지만, 조금 전의 낙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
진혁이 반사적으로 ‘만다라’와 ‘별의 가호’를 중첩시킨 방어막을 펼쳤다.
아스트라페와 충돌하기 직전, 가까스로 한 방어였다.
물론.
콰아아앙!
이 정도 방어막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반파된 마차가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크아아아!”
끔찍한 충격에 바람을 조정하던 말랑흑두루미가 그대로 기절했다.
그 탓에, 나머지 소환수들에게 가해지는 부담감이 곱절로 늘어나버렸다.
“진혁 씨!”
테레사가 곧바로 신성력을 이용해 치료를 시작했다.
따스한 기운이 마차 전체를 휘감았다.
정신을 차린 진혁이 벼락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하여간 규칙 따위는 개나 줘버린 망나니 신화 아니랄까 봐. 경주의 규칙마저도 가볍게 씹어 먹어 버린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곤 했지만, 이토록 허무하게 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아직 때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다.
가펠리우스는 대의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시간을 끌어줘야 한다.
제우스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아아아…….”
“아아!”
푸른 통로를 통해 나온 건 저주의 노래를 부르는 세이렌들과.
“캬오오!”
“크아아아!”
전신이 돌로 만들어진 가고일들이었다.
하늘을 빼곡히 메운 몬스터들이 제우스의 명을 받아, 진혁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