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59화
59화. 3층의 끝, 심장 없는 군대 (5)
“자꾸 도발하지 말거라. 제대로 싸운다면 우리도 피해가 크겠지만, 네놈 또한 이곳에서 살아 나가지 못할 테니.”
캐드릭이 분노를 삭이려 애를 썼다.
목소리만 들어도 새파란 애송이한테 도발을 당하니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예예. 어르신. 그쪽이 언데드 병력도 많고 준비도 많이 한 거 알겠으니까 치아 좀 그만 혹사시키세요. 요즘 임플란트 하려면 돈 많이 든다던데.”
“이…… 이 이! 개자식이! 죽여 버리겠다!”
캐드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양손으로 움켜쥔 지팡이에서 거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쿠쿠쿠쿠!
[캐드릭이 고유 능력 ‘검은 무덤의 묘지기’를 발동합니다!]
[특수 스킬 ‘피라미드의 수호자’가 발동됩니다!]
“캐, 캐드릭 님! 여기서 그걸 사용하시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마력이 남지 않게 됩니다!”
네크로맨서들이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상대를 찢어 죽여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캐드릭에겐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너희는 닥치고 내 명령에 따라라!”
만약 보스전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가면을 쓴 저 녀석만 죽일 수 있다면!
마인 협회에도 할 말은 생긴다.
문제 될 건 없다.
지금은 오직 저 가증스러운 놈을 죽이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아야만 한다.
쿠쿠쿠쿠쿠쿠!
지면이 갈라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크아아아!”
“키에에엑!
땅 속에서 새로운 언데드들이 일어났다.
전신을 붕대로 감은 미라들.
금과 보옥으로 만든 화려한 갑옷과 이집트 특유의 초승달 모양의 검이 눈에 띄었다.
“허억! 허억! 허억…….”
캐드릭의 가슴이 연신 들썩였다.
대량의 마력을 소모한 탓에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으나, 얼굴엔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득 차 있었다.
“파라오의 친위대를 불러오는 능력이라…….”
이런 걸 보면 참……. 뼈골 빠지게 혼자서 날뛰는 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네크로맨서나 소환계열 능력자들은 부하들한테 다 맡기고 뒤에서 명령이나 하고 있다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 부럽다.
만약.
“그 부하들이 정말로 쓸모 있는 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말이지.”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천이 아닌 만이 모인다 한들 오합지졸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더 최악이다.
이 많은 놈들을 유지하려면 소모되는 마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여전히 그 오만방자한 주둥아리는 여전하구나. 좋다. 단순히 수만 많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마.”
캐드릭이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 모았다.
츠츠츠츠! 츠츠…….
지팡이가 빛나는가 싶더니, 이내 깜빡이며 점멸했다.
마력이 뜻대로 모이지 않았다.
“쳇! 너무 무리를 한 건가.”
캐드릭이 짧게 혀를 찼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이리 오너라. 지금 내가 몹시 시장하니.”
캐드릭이 바로 옆에 있는 네크로맨서의 목을 움켜잡았다.
“캐, 캐드릭 님……? 끄아아악!”
쭈우우욱!
손바닥을 통해 흡수되는 생기.
목이 졸린 네크로맨서가 온몸을 마구 비틀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다.
한 번 손에 넣은 먹잇감을 캐드릭이 놓아 줄 리 없었으니까.
“얌전히…… 얌전히 있거라. 발버둥 쳐 봤자 고통만 길어진다.”
쭈욱! 쭈우욱!
“끄어어……어억!”
비명이 점차 잦아들었다.
곧,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네크로맨서의 몸이 산산이 바스러졌다.
“역겹군. 같은 편 아니었나?”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후후. 물론 같은 편이지. 그러니 우리의 승리를 위해 소중한 한 목숨을 헌신한 것 아니겠나?”
“동의도 받지 않고 죽였으면서 말은 잘하네.”
“아마, 녀석도 동의했을 걸세. 나중에 저승에 가서 만나면 직접 물어보라고.”
마력이 충분하게 공급된 캐드릭이 지팡이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쿵! 쿵! 쿵! 쿵!
미라 병사들이 전선에 가세했다.
모아이 석상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선. 그러나 새로운 원군으로 인해 전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콰쾅!
쾅!
황금으로 만든 창들이 석상 몸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자로 잰 듯한 움직임. 게다가 위력 또한 압도적이다.
‘열이 모이면 데스나이트 하나 정도는 되겠어.’
아무리 모아이 석상이 일격에 수십 마리의 언데드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했다 해도, 이 정도 전력 차를 좁힐 순 없었다.
“어떤가? 이걸 보고 나서도 큰 소리를 칠 수 있겠나?”
캐드릭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진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그 모습에 캐드릭이 더욱 신난 듯 너스레를 떨었다.
“푸하하! 할 말마저 잃어버린 건가? 괜찮다. 두려워하는 게 정상이니까!”
“응?”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 녀석,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아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거였어. 진심으로 겨우 이 정도 갖고 보스 몬스터한테 덤빌 생각이었냐?”
아무리 좋게 봐 줘도 5분이면 전멸할 것 같은데…….
그것도 상처받지 않을까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평가해 준 거지 실제로 만났으면 보스 몬스터한테까지 가지도 못하고 전멸할 것이다.
하지만.
진심 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캐드릭은 이 모든 걸 단순히 허세라고 판단했다.
“궁지에 몰리니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 뭐, 됐다. 따분한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캐드릭이 손짓을 하는 것으로 대신 명령을 내렸다.
“키에에!”
“케엑!”
미라 병사들이 거칠게 포효했다.
주둥아리가 세로로 길게 찢기며, 검은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죽여라.”
***
절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숲.
빼곡히 솟아 있는 나무 중 가장 높은 곳엔 두 명의 남녀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채 전투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인 협회에서 보낸 멜레나와 리챠오였다.
“흐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무모한데?”
멜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리챠오가 곧바로 대답했다.
“처음 거점을 무너뜨리는 의도까진 좋았지만, 이후에 빠져나가지 않은 건 멍청한 짓이지.”
“풉! 하긴, 저건 용기가 아니라 멍청한 거 맞네.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망가지 않은 걸까?”
“상대와의 전력 차를 잘못 판단한 걸 거다. 녀석은 스켈레톤과 듀라한만 보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완전히 오판이었지. 캐드릭의 고유 능력은 그것보다 훨씬 성가시거든.”
고대 시체들을 부활시키는 흑마법은 확실히 쓸 만하다.
때문에 캐드릭이 이번 레이드를 맡게 된 거였고.
반면.
간부가 그토록 경계하던 상대는 의의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저렇게 멍청해서야. 굳이 우리까지 나설 필요는 없겠어.”
캐드릭 선에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파츠츠……!
가면을 쓴 남자로부터 이상한 기운이 일렁였다.
“음?”
“뭐지 저건?”
조금 전까지 보여 줬던 냉기 속성의 마법이나 신성력이 아니다.
불길하고 짙은 기운.
단검을 완전히 뒤덮은 흉흉한 마력에, 두 사람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자, 장난해? 뭐 저리 터무니없는 스킬이 다 있어?”
멜레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황스러운 건 리챠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저 규모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더라도.
저 많은 대군을 상대로 그 누가 승리를 장담한단 말이냐?
꿀꺽!
리챠오가 마른침을 삼켰다.
석상과의 전투로 인해 전력의 절반이 묶여 있는 데다 마력 거점 역시 3군데나 파괴된 상태.
만약 이 모든 것들이 상대가 설계한 함정들이었다면.
캐드릭을 도발하고 스스로 적진 한가운데 포위되는 것까지 계산한 거였다면…….
……어쩌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랐다.
***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오싹하고.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래, 이거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전신에 구석구석 스며드는 고양감.
‘얼음 조형’이나 ‘별의 가호’도 좋았지만, 특히나 ‘검의 무덤’을 선호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이나 신성계열 능력들은 이 짜릿한 맛이 없단 말이야.’
방어 따위는 일체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롯이 공격만을 추구하는 이 능력이야말로 진정 고인물을 고인물답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었다.
‘음……, 이런 식이었나?’
진혁이 검은 기운을 머금은 단검을 좌우로 그었다.
점에서 선으로 부드러운 궤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몇 번의 시도 끝,
마침내.
‘오! 됐다.’
천유성이 익혔던 ‘추혼검무’의 편린(片鱗)이 재현되었다.
[추혼검(追魂劍)에 대한 이해력이 상승합니다.]
진혁이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게 정교한 검무를 펼쳤다.
아마 천유성이 이 장면을 봤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10년을 넘게 검 하나만 파고 들었던 세월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검마의 재능을 발현한 지금 그런 것 따위는 하등 문제되질 않았다.
부우웅!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이제 알겠다.
어떻게 해서 추혼검이라는 절기가 탄생했는지.
[추혼검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어떻게 해야 추혼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전부.
[추혼검에 대한 이해력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과 함께 진혁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들이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추혼검무(追魂劍舞)’.
검은 불꽃이 사방으로 흐드러졌다.
‘제5식(第五式)’.
천유성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검의 끝.
그리고 그 끝을 넘어선 탈마(脫魔)의 영역.
‘추혼멸천(追魂滅天)’.
추혼검의 정수라 불리는 다섯 번째 초식이, 지금 이 자리에서 펼쳐졌다.
“무슨…….”
캐드릭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동시에 검이 횡으로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콰!
먼저 밀려온 건 검풍이었다.
단순히 바람뿐 아니라 마력이 실려 있는 흉기.
그렇기에 가장 앞에 있던 미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키에에엑!”
“케에엑!”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검게 변한 살덩이가 쏟아졌다.
“크읍!”
캐드릭의 쉴드에도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쿠쿠쿠!
“으으으으……!”
3겹이나 둘러싼 방어막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지만, 숨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추혼멸천’의 진짜 검격이 날아왔다.
이번엔 쉴드에 거센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서걱!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캐드릭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당연히 보여야 할, 당연히 있어야 할 팔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그저 한 번 휘두른 검에 미라 병사들이 모조리 토막 났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쉴드를 박살내고 팔까지 잘라?
덜덜덜!
자신도 모르게 턱이 떨렸다.
바로 얼마 전까진 허무하게 죽어 버린 제자, 알렉스를 욕했었다.
언데드를 부리고 대체 왜 졌는지 그것이 이해가 안 됐기에.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이 돼서야 왜 알렉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이런 괴물은 이길 수 없다.
도망가는 것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데스나이트…… 당장 저자를 막……아라!”
이젠 석상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설령, 나머지 언데드들과 네크로맨서들을 모두 잃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캐드릭이 잘린 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쓰러지기 직전의 몸을 채찍질하며 북쪽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 했다.
“무대에서 퇴장하려면 상대에게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바로 그 순간.
[흑월야(黑月夜)가 발동됩니다.]
캐드릭의 얼굴 위로 검은 달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