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625화
625화. 공중요새 ‘비마나’ (1)
흔들리는 지축.
쿠쿠쿠쿠쿠쿠!
사원의 일부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떨어져 나온 파편들이 지면 아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곧이어 요새로 인해 생긴 그림자가 지면을 밤처럼 어둡게 물들였다.
“크아아악!”
“아아악!”
“대, 대체 어째서 요새가 가동한 것이냐?”
“당분간은 마력보충이 어림도 없다고 했는데… 누가….”
사원 주위를 지키던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난데없이 잠자고 있던 공중요새가 깨어나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특히 막대한 마력이 요구되는 공중요새는 당분간 가동될 일이 없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세의 본군이 대부분 떠난 게 아니었다면 이걸 얻을 가능성은 없었겠지.’
자신들의 유일한 방어책인 결계를 맹신한 것과 비마나에 대한 정보를 외부인이 알 리 없다고 확신한 오만도 이 요새를 얻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
하지만 천세 역시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주력이 사원을 빠져나갔다고 해도 아직 수만의 예비 병력이 이 일대에 흩어져 있었으니까.
“키에에에!”
“크오오오!”
“공격해라!”
“모두 달라 붙어! 절대로 요새를 적에게 넘겨선 안 된다!”
신수에 탄 정예병력들이 공중요새를 향해 날아왔다.
비마나를 빼앗긴 건 예상 밖의 일이었으나, 요행은 거기까지.
비슈누마저 수백 년이 걸린 비마나의 조작법을 절대 침입자들이 알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건만.
쿠쿠쿠쿵!
[비미나의 특수 무장 ‘정화의 요람’이 발동됩니다!]
적들의 군대를 쓸어버리는 화염줄기.
초고온의 불길이 아군을 향했다.
화르륵!
쿠쿠콰콰콰콰콰!
비명을 지를 틈 따위는 없다.
뼈까지 재로 만들어버리는 겁화는 통각까지도 태워버렸으니까.
수천의 신수들이 사라진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함을 되찾았다.
“크으. 화끈한 불놀이네. 이래서 좋은 차를 뽑아야 된다니까.”
진혁이 불바다로 변한 지면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최종병기라는 칭호답게. 새로 얻은 신병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런 계획이 있을 줄이야.”
“진짜 오빠는 이런 걸 전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형. 인터넷에 형 인생 2회차라는 말이 그렇게 떠돌던데, 요즘 보면 볼수록 그게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 계약자는 인간 중에서 독보적이긴 하다. 짐이 배필로… 아니, 거래를 한 남자가 평범할 리가 없지.”
“뭔가 이상한 단어가 끼어들어가 있네요. 엘리스 씨.”
여기저기서 기가 막히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죽…인다. 이… 거…머리 같은…놈,”
제대로 빨대를 꼽힌 천유성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여간 사내 자식이라는 놈이 속은 좁아선. 다 너 덕분에 일이 이렇게 잘 된 것 아니냐.”
“날 속이고 한 것 아니냐!”
“선의의 거짓말이야. 백색 거짓말.”
천유성이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봤으나 진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 시선을 흘려넘겼다.
어차피 저 호구 검성은 나중에 대결을 해준다니 진귀한 검을 준다느니로 적당히 속여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요새를 이용해 천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최초의 연꽃’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했고.
‘아누비스나 베리엘이 최대한 시간 끌기로 버티면 앞으로 하루는 더 버텨줄 수 있을 거야.’
가능성이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르릉!
마른 하늘에 벼락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측 후면이에요!”
테레사의 날카로운 고함이 고막을 찌르기 무섭게 묵직한 충격이 선체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공중요새에 펼쳐져 있는 방어막의 일부가 그대로 날아갔다.
“쳇! 결국 회복한 건가.”
진혁이 즉시 후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뇌신 ‘인드라’뿐이다.
⁕⁕⁕
뼈 아픈 굴욕.
이 상황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으리라.
뿌드득.
인드라가 풀려진 쇠사슬과 떠오르는 요새를 보며 어금니를 갈았다.
위대한 주신 브라흐마께서 직접 포로들을 잘 간수하라고 지시하셨건만, 그걸 실패한 걸로도 모자라 비마나까지 빼앗기게 된 것이다.
처음 포로들을 놓쳤다는 걸 깨달았을 때 최대한 조용하게 실수를 수습하려 했던 게 실수였다.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지원을 요청했어야 했는데.
“아주 나를 지옥까지 끌어내렸구나.”
이제 뒤는 없다.
브라흐마는 몰라도 그 불같은 시바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이 일을 수습해야만 한다.
[인드라가 고유능력 ‘7개의 구름’을 발동합니다!]
작은 구름 위에 선 소녀가 수많은 벼락들을 불러모았다.
쿠르릉…우릉!
“비마나의 동력을 어떻게 모은 건진 모르겠다만, 너무 아슬아슬한 양만 모았구나. 빈틈이 너무 많아.”
인드라의 시선이 공중요새의 모서리로 향했다.
이 거대한 부유물을 띄우고 또 고속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할 터.
상대적으로 외부를 방어하는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내 시선만 봐도 무얼 말하는지 아는 것 같구나.”
“뭐, 대충은.”
“어이가 없군. 하…. 우리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긴 하지만, 그거야 나중에 천천히 찾으면 될 테고. 상황이 얼마나 너희에게 불리한 지 알겠지? 지금이라도 순순히 잡히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사지 멀쩡히 말이지.”
“이야, 자비를 베푸신다고? 우리 옆집에서 키우는 뽀삐도 그 말은 안 믿겠다.”
진혁이 가운데 손가락을 우뚝 세웠다.
인드라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그럼. 새카맣게 태워버리는 수밖에.”
[뇌운(雷雲) – ‘조각구름’이 발동됩니다!]
정교하게 잘린 구름들 사이로 번개들이 연결되었다.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번개의 힘이 막강한 건 바로 속도 때문이다.
파치칙…!
번개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진혁의 비마나의 방어 타워 사이로 파고들었다.
퍼퍼퍼펑!
콰아앙!
대부분은 공중요새에서 뻗어나온 빛에 요격되거나 상쇄되었다.
반쪽 짜리 요새라고 해도 기본적인 방어능력 자체가 규격 외인 덕분이었다.
그러나.
몇몇은 통과해 일행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신성력마저 태워버리는 천세 최강의 번개.
그리고 그걸 향해 뿜어진 건….
[고유성창 ‘뇌신’이 발동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신화를 지탱하던 최강의 공격이었다.
주신 제우스의 성명절기.
진혁이 오른 손에 쥔 푸른빛의 번개를 가볍게 휘둘렀다.
콰아앙!
인드라의 마지막 번개마저 허공에서 산산히 부서졌다.
“그건…!?”
인드라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모를 리가 없겠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반드시 짓밟아버리고 싶었던 주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시련의 탑에서 존재하는 극소수의 번개 사용자. 그 중에서도 제우스는 50층을 제외한 전 층계에서 최강의 번개를 다룬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당연히 같은 번개 고유능력을 가진 주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진혁은 그 점을 정확히 파고들면서 인드라를 도발했다.
바로 그녀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서.
[복사조건: 인드라는 오래 전부터 마음 깊숙이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드라로부터 제우스의 능력과 복장으로 그녀를 굴복시킨다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창과 고유능력 혹은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얼마나 굴욕적으로 짓밟는지에 따라서 복사된 능력의 숙련도가 다르게 적용됩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미 천유성을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존심을 박살내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왔기 때문.
진혁이 길게 쭉 뻗은 날렵한 아스트라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엔 작고 앙증맞은 인드라의 번개를 바라봤다.
“풋.”
한 쪽 입꼬리만 살짝 위로 올리고. 눈웃음도 지어주는 게 포인트다.
굳이 대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이런 사소한 행동 자체가 훨씬 더 도발적이었으니까.
빠직.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예상대로 인드라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
거대 세력 간에 전쟁이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 시점.
이번 사건의 최대 중요 인물 중 하나인 언노운 역시 변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우우웅!
천천히 모여드는 보라색 기운.
전성기의 힘을 재현하기 위해 추출해둔 원념과 영혼들이 언노운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너무 늦군.”
“진즉에 끝났어야 될 일인데 뭔가 이상해요.”
2닭과 JJ를 비롯한 운영자들이 초조하게 언노운을 지켜봤다.
충분하다 못해 과할 정도의 영혼을 쏟아부었는데도 언노운의 힘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
무언가 잘못됐다.
“수리부엉이는 확실히 가둬둔 거겠지?”
“예. 아무리 놈이라고 해도 지금 그 속에서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새영언환 쪽인가.”
장난질을 할 수 있는 존재는 극히 제한적이다.
JJ가 다시 한 번 영혼들의 상태를 스캔했다.
극도로 섬세하면서 정교하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서를 찾아야 한다.
[운영자 특수 스킬 ‘4차원 MRI’가 발동됩니다!]
몇 겹의 파장들이 언노운 주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열 번….
뭔가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이건.”
2닭의 감각에 티끌 만한 벌레가 포착되었다.
워낙 작고 하찮아서 인지 자체가 안 되긴 했지만, 그 작은 벌레들은 미량의 액체를 흘려보내 언노운이 공급받는 영혼의 농도를 희석시키고 있었다.
또한 작은 날벌레들이 마력의 일부를 머금은 채 어딘가로 날아가는 장면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운영자…들 쪽이 아니었구나.”
외부에 있는 적들만 신경 썼는데, 그게 실수다.
방해를 하는 원흉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었다.
같은 시각.
꿈틀대는 촉수들이 가득한 공간엔 니알라토텝과 슈브니구라스가 함께 자리잡았다.
“순조롭군요. 역시, 운영자 놈들이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합니다.”
니알라토텝이 키득거리며 모여드는 마력을 음미했다.
언노운을 전성기로 돌리기 위해 모아둔 영혼과 원념들이 얼마나 순도 높고 강력한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헌데 괜찮을까요? 제가 최대한 손을 써두긴 했습니다만, 놈들이 조만간 눈치 챌 겁니다.”
“상관없다. 미천한 것들이 주제 파악을 못하고 우릴 이용하려 한 것이 잘못이지.”
슈브니구라스가 조금도 게의치 않다는 듯 말했다.
“하긴 운영자란 것들이 으스대는 꼴을 보는 건 저 역시 역겹긴 했죠.”
니알라토텝도 공감한다는 뜻으로 지팡이를 튕겼다.
사실 태고의 존재들이 껄끄러워 하는 건 운영자가 아닌 ‘그 남자’ 뿐. 운영자들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 불과했다.
목적만 달성할 수 있으면….
언제든지 이용하다가 버려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힘을 얻는 다음 강진혁의 수족을 잘라낸다. 그리하면 그 자도 불만이 없을 거야.”
아니,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영자들과 태고의 존재들이 뒤에서 서로를 노리는 것 만큼 자극적이고 짜릿한 이벤트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운영자들과 태고의 존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