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634화
634화. 새로운 무기 (2)
저벅.
가벼운 발걸음 틈에 지팡이를 끄는 소리가 섞여 있다.
태고의 존재 ‘니알라토텝’이었다.
“어떻게…?”
가네샤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언노운과 태고의 존재들이 자신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는 게 알려진 상황. 당연히 그들의 리더 중 하나인 니알라토텝은 발견하는 즉시 공격해야 할 적이었다.
그런데 비슈누가 그런 니알라토텝의 옆에 있다니.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저런, 비슈누 님. 단 둘이 보는 줄 알았는데… 웬 방해꾼이 함께 있었군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둘이서 대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흐음. 그렇습니까?”
니알라토텝이 어깨를 으쓱였다.
“예? 잠깐, 비슈누 님. 방금 그게 무슨 뜻….”
가네샤가 말을 더듬거리고 있던 바로 그때.
푸욱!
비슈누의 챠크람이 가네샤의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콸콸콸 솟구쳤다.
“……커억?”
“미안하지만, 그대가 좀 희생을 해줘야겠어. 그분을 위해선 우리 쪽에서 죽은 자가 나오는 게 훨씬 더 유리할 것 같거든. 때마침, 주신급에 해당하는 자의 심장이 필요하기도 하고.”
피로 범벅이 된 비슈누가 싱긋 웃었다.
가네샤가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마력을 모으려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안 된다면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냈다.
하지만,
[특수 스킬 ‘음울한 장막’이 발동됩니다.]
[현재 이 공간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니알라토텝까지 공간을 완전히 결속해버린 탓에 가네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쿠웅!
몇 초 안 되는 사이에 가네샤의 동공에 불빛이 꺼졌다.
상층부를 지배하며 힘에 관해서만큼은 헤라클레스와 토르와도 버금가던 주신치곤 너무나 허무한 최후였다.
툭 툭….
비슈누가 챠크람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번에는 일을 조용히 진행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가네샤를 죽이면 주목을 꽤나 받을 텐데요?”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조금 전에 변수가 한 가지 발생해서요. 제가 태고의 존재분들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설마….”
니알라토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대상은 단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놈은 지금….
“수리부엉이가 탈출했습니다.”
비슈누가 마법을 이용해 가네샤의 시신에 난 상처를 바꾸며 한 마디 덧붙였다.
짧지만 충격적인 말이다.
니알라토텝의 표정을 완전히 바뀌어버릴 만큼.
“……뭐라고요?”
“태고의 존재들께서 운영자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놓친 미꾸라지가 있더군요. 그 여자가 수리부엉이를 가둔 공간에 들어가 그를 구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명백한 실수를 하신 셈이죠.”
“그 계집이….”
“해서 어쩔 수 없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테레사나 엘리스를 이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거든요.”
“하아.”
니알라토텝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테레사나 엘리스를 이용하라는 게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일을 그르친 이상 마땅히 반대할 수 있는 명분 또한 없었다.
‘JJ 아니, 아르마 에스턴 그 영감까지 놓친 건 말할 필요가 없겠지.’
굳이 자신들의 실수를 더욱더 알릴 이유는 없으리라.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죠. 전 남은 잔당들을 사냥하러 가야 하니 이쪽은 맡겨도 되겠습니까?”
아직까지 탑 여기저기에 생존한 운영자들이 남아 있다.
중층부는 전부 쓸어버리긴 했으나 불씨가 될 존재들을 묵과했다간 이후에 거대한 위협이 되어서 찾아올 것이다.
“예. 각자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죠.”
비슈누가 다시 한 번 웃음을 머금었다.
세삼 소름이 끼치는 미소다.
혀를 내두른 니알라토텝이 검은색으로 물든 오래된 나뭇 가지 하나를 건넸다.
그것으로 두 신격의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
[재료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전격 주입에 성공했습니다! 동기율이 3%만큼 증가합니다!]
[성유물 ‘색(色)’이 주입됩니다!]
연거푸 올라가는 상태창.
시간이 지나고 망치질과 불길이 거세질수록. 두 자루의 검이 지닌 외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칼날의 색과 형태 역시 기존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화려하게 변하고 있었다.
원래 꼼꼼한 오룬의 집념에 명품만을 고집하는 헤파이토스의 장인정신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서둘러야 하는데….’
진혁이 초조하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곳이야 지금 평화로운 상태이긴 했으나, 탑의 안밖은 언약으로 인해 지옥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안드리아의 정신병동이나 제국 무림 등은 당장의 큰 화를 면했다고 전해들었다.
워낙에 거세게 저항하고 수비로 일관한 덕에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운영자들이라는 우선순위가 사라지는 즉시 쓸려나가버릴 것이다.
현대에서 버티고 있는 대형길드과 군대의 상황은 더욱더 힘들 테고.
결국.
타임 리미트가 걸려버린 셈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언노운이란 것도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간 것 같은데.”
엘리스가 디저트를 품 안에 가득 안은 채 중얼거렸다.
하여간, 저 녀석은 아까도 그렇게 먹었는데도 또 먹을 게 들어가는 게 신기하다.
체구는 저리 가녀린데 말이지.
“우리 쪽은 일단 휴식을 취해야 해서 먼저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최소한 오늘까진 방어에 전념하면서 상황을 봐야할 것 같아.”
“흐음. 그건 짐도 동의하는 바이긴 하다만, 저쪽에서 가만히 내버려둘까?”
넘쳐나는 힘을 아껴둘 이유는 없을 터.
뭔가 수작을 부리긴 할 거다.
문제는 그게 어떤 방식이냐는 건데….
바로 그때.
뿌우우우!
망루 쪽에서 길고 긴 뿔나팔 소리가 두 번에 걸쳐 울려 퍼졌다.
적들이 정면에서 몰려오고 있다는 신호다.
“엘리스!”
“짐도 들었다.”
진혁과 엘리스가 즉시 자리를 박차고 움직였다.
순식간에 바뀐 시야.
그곳에는 수많은 병력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면의 방벽을 더 두껍게 해라!”
“동쪽과 서쪽의 망루에도 병력을 배치해. 다른 신화들에게도 연락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모조리 이곳으로 모이라고 전해야 한다.”
주신들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다가오는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는 이제까지 접해본 적 없는 압도적이고 불길한 공포를 자아냈다.
“메에에에!”
“크오오오!”
전신이 검은 연기에 휩쌓인 양과 염소들.
들고 있는 병장기는 하나같이 태고의 성유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 한 마리 한 마리가 어지간한 층계의 네임드급 가디언에 육박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숫자만 해도 최소 수 만.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거라는 생각에 연합 측에서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늦었군요.”
“이쪽이다.”
“엘리스도 함께 온 건가.”
아르테미스와 아누비스 그리고 베리엘이 진혁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세 신격 역시 아직까지 완전히 제 컨디션을 되찾는데 실패했는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살짝 울컥했다.
저리 깊은 다크서클이 생긴 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 나 때문에….”
“그래요. 그 빌어먹을 대장간만 아니었어도 푹 쉴 수 있었을 거예요.”
“피라미드 대공사도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어.”
“아까 보니까 가브리엘은 새벽 기도도 포기하고 자고 있던데.”
저마다 불평불만이 쏟아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말들은 진혁의 오른 쪽 귀로 들어가 자연스레 왼쪽 귀로 빠져나갔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저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버텨내냐는 것이었으니까.
“장치는?”
“그건 거의 준비가 끝났다.”
베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성전에 있어서 유리한 이점 중 하나.
미리 전략적인 요충지를 점거해 놓고 다양한 장치들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쿠웅! 쿠웅! 쿠웅!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언노운과 태고의 존재들이 한 자리에 집결했다.
“쥐새끼들이 감히 우리와 싸울 모양이군.”
태고의 존재 중 하나이자 존재 자체가 멸망으로 일컬어지는 자.
멸망을 예고하는 신 ‘그로스’였다.
원래의 터무니없이 거대한 본신을 극한까지 압축시켜 인간의 형태로 만들어놓긴 했지만, 본신이 보유하고 있는 범우주적인 힘까지 숨길 순 없었다.
작은 체구의 소년의 눈이 핏빛처럼 붉게 빛났다.
쿠쿠쿠쿠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층계 전체가 흔들린다.
감히 맨 정신으론 마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발악을 할수록 더욱 짓밟는 맛이 있지 않겠습니까? 공포에 질려 텅 비어버린 껍데기들보다야 이 편이 훨씬 더 낫죠.”
“크하하하! 아까 전에 어지간히 화가 나긴 했나보구나. 그대가 그토록 열이 잔뜩 받은 건 처음보는 것 같아.”
“…….”
그로스의 광소에 언노운이 말 없이 가면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조금 전에 진혁에게 한 방 먹었던 것이 뼈 아플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분의 신임이 걸린 중요한 이 시기에서 버벅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아예 흔적도 없이 쓸어버려주지.’
재미나 흥미를 추구할 생각은 더 이상 없다.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것 외엔.
“성문을 박살내라.”
언노운이 손을 들어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두두두두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병력이 앞으로 향했다.
형세를 살피는 전초전도 없이 시작부터 총공세다.
쏟아지는 적들에 연합 측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수성병기를 총동원했다.
퍼엉!
퍼퍼펑!
캐터폴트에서 1m에 이르는 마력탄들이 하늘을 빼곡이 채웠다.
삽시간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불바다로 변했다.
천세의 장점인 머릿수에서 나오는 화력은 다른 의미로 태고의 존재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뜨거운 겁화 속에서도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메에에….”
“크르르….”
직격을 당한 몇몇 놈들만 죽었을 뿐.
근처에 휘말린 놈들은 피부 몇 꺼풀 벗겨낸 게 고작이다.
콰아앙!
가장 먼저 성문에 도달한 흑염소가 들고 있는 곤봉을 휘둘렀다.
수십 겹의 결계와 방어 마법이 중첩된 성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접근하게 해선 안 된다!”
브라흐마의 포효에 토르와 헤라클레스가 움직였다.
파치칙!
번개들이 사정없이 내리 꽂히며 성문에 모여 있던 염소와 양들을 날려버렸다.
콰콰콰콰쾅!
헤라클레스의 몽둥이 역시 가차없이 적들을 하늘 위로 날려버렸다.
“생각보다 더 무식한 놈들이군. 자칫하다간 전쟁 첫날에 성문이 뚫릴 뻔 했어.”
“이번엔 아주 한계까지 날뛸 수 있겠군. 확인 차원에서 다시 한 번 하는 말이다만, 양과 염소는 마리당 1점이고 간부급은 100점이다. 지는 쪽이 앞으로 1,000년간 술을 사는 걸로.”
“마다할 이유가 없지. 덕분에 올림포스의 유명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원없이 먹게 생겼구만.”
“훗. 나야 말로 위그드라실 위에서 네놈들이 자랑하는 맥주를 마셔주지.”
토르와 헤라클레스가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문지기를 자청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문이 뚫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진혁이 재빨리 전체적인 전황을 살폈다.
아주 작긴 했지만….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맡길게.”
진혁이 엘리스를 뒤로 한 채 그대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