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650화


650화. 한계를 넘어서 (3)

천유성의 등장으로 인해 생긴 균열.

완전히 단절되었던 공간에 자그마한 틈이 생겼다.

“……저 녀석이 대체 어떻게….”

언노운도 이 상황이 예상 밖이라는 듯 가면 표면이 격렬하게 떨렸다.

제법 강자 축에 들어가긴 했으나, 천유성은 어디까지나 주신급에 해당하는 수준. 태고의 존재나 운영자들이 펼쳐둔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실력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건만….

하늘에서 지상까지 이어진 얇은 검상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깨뜨려버렸다.

언노운의 시선이 천유성에게 향했다.

고고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은 마치 또 다른 진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법이야.’

보지 못한 발치에서 또 다른 위협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줄이야. 똑똑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적이다.

하지만.

작은 돌멩이가 던져졌다고 해서 바다를 뒤집을 순 없는 법.

[아자토스의 궁전이 88%만큼 구현되었습니다!]

쿠쿠쿠쿠쿠쿠!

지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촉수들이 꿈틀꿈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신계열에 심각한 데미지가 발생합니다!]

[절대판정 ‘상태이상’에 걸리셨습니다!]

[계속해서 궁전의 영향권에 노출될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

전신에 솜털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크윽….”

“……후웁.”

진혁과 천유성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기존의 스탯 내성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어떻게든 궁전이 완전히 현현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빌어먹을.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하고 있던 거냐?”

“아, 나도 놀고만 있던 게 아니라. 뱀파이어 사냥도 하고 징그러운 리퍼랑 계시록 기사들이랑 티키타카도 하고 하느라 바빴다고.”

“그걸 말이라고…. 젠장.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궁전인지 뭔지도 베어버리면 되는 거냐?”

천유성이 또 다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여간 이 무식한 놈은 뭐든 막혔다 싶으면 칼부터 꺼내든다.

결계 좀 베었다고 아자토스의 궁전까지 베어버린다는 사고방식은 대뇌의 어느 부분에서 일어난 건지 해부해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도 저 무식함이 든든할 때가 다 있기도 하네.

천유성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내가 저걸 지연시켜볼 테니까 그동안 나머지 녀석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막아줘.”

“가면 쓴 놈이랑 나머지 떨거지들 말이로군.”

“응. 그 녀석들.”

“알겠다.”

천유성이 발도 자세를 취했다.

정신공격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무시무시한 기운이 칼끝을 타고 몸 전체를 감쌌다.

지금이다.

콰앙!

진혁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키에에에!”

“온다.”

“막아라! 이번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다!”

쉐이드 리퍼의 호령과 함께 계시록의 세 기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언약을 집행하는 검이 진혁의 몸을 꿰뚫기 위해서 폭사되었다.

카아앙!

천유성의 검이 뽑힌 건 바로 그때였다.

섬광 같은 발도술이 뿜어지며 기사들을 그대로 튕겨냈다.

워낙에 후방에서 가한 일검인 데다, 발도의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랐기에 적들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천유성이 진혁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가라! 이놈들은 내가 상대하겠다.”

카카카카캉!

요도가 녹색 궤적을 그렸다.

종횡무진 움직이는 패도적인 검술은 하나같이 절초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시간을 벌어주기에 훌륭한 지원인 셈이다.

천유성이 발을 묶는 데 성공하자 곧바로 언노운이 공격을 개시했다.

[언노운이 ‘만상공유’ – 블러드 스피어즈를 발동합니다!]

우우우웅!

공간이 갈라지며 허공에 수없이 많은 꼬챙이들이 나타났다.

꼬챙이들의 끝이 전부 하나의 목표를 향했다.

그 순간.

우우웅!

[개벽의 계시록 – 블러드 스피어즈가 발동됩니다!]

“감히 짐 앞에서 가짜를 내보이지 말거라. 버러지 같은 미물아.”

엘리스가 있는 쪽에서도 공간이 갈라졌다.

“엘리스…. 그렇죠. 아직 당신도 남아 있었군요.”

“계약자의 몸은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느니라.”

“그거야 한 번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수많은 꼬챙이와 수많은 꼬챙이들이 맞부딪쳤다.

콰콰콰콰쾅!

투콰아앙!

꼬챙이들이 박살 나고 짙은 피보라가 일어났다.

엄청난 수의 요격전이 펼쳐지는 전장은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했다.

“흐음. 인간 놈들의 저력이라는 게 제법이긴 하구나.”

타마쉬가 잠시 멈춰 두었던 메테오 스톰을 재소환했다. 푸른 불꽃에 감싸인 유성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재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광역기를 퍼부어 궁전에 접근하는 길 자체를 차단시켜버릴 계획에서다.

[고구마가 Lv??? ‘브레스’를 발동합니다!]

유성우에 맞선 건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까만 고구마였다.

쿠쿠쿠콰콰콰콰콰콰콰…!

단죄의 검보다 위력은 떨어지지만, 연사력 면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효과적이었다.

“모기이이이!”

지금까지 막대한 마정석을 먹어치우며 모아둔 마력이 일제히 폭발했다.

검붉은 브레스와 유성우들이 맞부딪치면서 또 다시 무시무시한 파장이 퍼져나갔다.

타마쉬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수십 개의 유성우들이 모조리 브레스에 가로막혀 소멸되었고 뒤이어 만들어낸 유성우들도 지면에 채 닿기 전에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마력이 무한인 덕에 메테오 스톰이 멈출 일은 없었지만, 고대종 한 마리에게 시간이 끌리는 것 자체가 손해였다.

다른 것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리라.

“도마뱀 가죽으로 만들어주지.”

타마쉬가 다른 마법을 발동시켰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기동력을 묶어둔 다음 토끼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술식이 재배열됩니다.]

서클을 초월하는 태고의 마법이 초고속으로 완성되었다.

연산 속도는 이미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상태였다.

우우웅!

7개의 대마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런데 공격 마법이 고구마에게 발사되기 직전, 서늘한 감각이 뒷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무언가 왔다.

“어느새?”

타마쉬가 깜짝 놀라 외쳤다

바로 지척까지 접근한 두 개의 그림자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여러 겹으로 펼쳐둔 경계마법과 방어 마법의 틈을 파고든 기습이었다.

“주군의 동료들에게 손대지 마라.”

“…성공확률은 12.5%야 응.”

월영과 프레이가 검과 단창을 찔러넣었다.

푹!

푸욱!

물렁거리는 액체형 실드가 가까스로 타마쉬의 심장을 보호했다.

자신의 몸을 극도로 아끼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방금 전 한 방을 허용했을 게 틀림없었다.

“먼지만도 못한 인간과 인형 따위가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려는 것이냐!”

타마쉬가 수정구를 높게 치켜들었다.

지팡이에서 갈색 외피를 가진 2m 크기의 메뚜기 떼가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취이익!”

“취이잇!”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메뚜기들이 프레이와 월영을 뜯어먹기 위해 날아들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프레이가 고유성창을 발동시켰다.

[고유성창 ‘불멸의 인형사’가 발동됩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4분 32초 정도야. 응.”

프레이와 쏙 닮은 인형들이 각기 다른 무기를 든 채 메뚜기 떼에 맞섰다.

테레사와 가브리엘 역시 수많은 태고의 존재들에 맞서 한 쪽을 단단히 지켜주고 있었다.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각자 맡은 역할 그 이상을 해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가능해.

가능하고말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진혁이 마력을 쥐어짜내며 단숨에 궁전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

진혁이 궁전의 입구에 도달했다.

콰아아앙!

주체하지 못한 속도 탓에 브레이크를 걸었음에도 기둥 몇 개가 박살나 버렸다.

파츠츠츠…!

가운데서 거대한 보라색 결정이 빛을 발하는 게 보인다.

저게 이 궁전의 핵이자 심장이다.

욱씬! 욱씬! 욱씬!

두통이 한 층 더 심해졌다.

할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이성의 끈이 끊어질 것만 같은 강한 충동이 느껴졌다.

이것이 아자토스의 궁전.

단순히 현현하는 것만으로도 온 우주의 질서를 박살내버릴 수 있는 절대자의 위엄이다.

‘저 괴물하고 싸우려면 아직도 많은 게 필요하겠네.’

하긴, 전성기 당시에도 3개월 동안 철저하게 밑준비를 했었다.

수많은 함정과 아이템들을 죄다 쏟아부어 최후의 결전을 대비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자토스의 가장 까다로운 능력과 성유물 중 5개를 봉인시키고 시작한 싸움에서조차도 2주일 동안 밤낮을 싸우고 나서야 간신히 놈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실력과 노력, 준비와 재능. 무엇보다도 운이라는 요소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져야만 승리를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때의 출력을 발휘할 수 없으니 다른 편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일전에 보상으로 받은 걸 꺼냈다.

[sss급 랜덤 박스가 발동됩니다!]

촤르륵…!

랜덤 박스에 적힌 다양한 보상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이 중에서 원하는 걸 고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동체 시력의 좋고 나쁨이 문제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물론.

이걸 대비해서 샤일록과의 거래를 해두었다.

[‘광채를 갉아먹는 보석’을 사용했습니다!]

[인과율이 일정 부분 비틀어집니다!]

[‘기묘한 포춘쿠키 10개‘를 사용했습니다!]

[총 25%의 확률이 상승하게 됩니다!]

시련의 탑의 탄생 기념으로 만들어진 아이템을 모조리 털어넣었다.

우우웅!

눈부신 빛과 함께 상자의 표면에 떠오른 그림들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제법 쓸 만한 성유물 한 가지를 손에 넣으려고 했으면, 애초에 샤일록과 그리 치고받으면서 확률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의 보상에 비해 압도적인.

몇 배의 꿀을 빨 수 있는 그러한 걸 얻기 위해 고생을 한 거지.

[아이템을 선택했습니다.]

[‘욕심 많은 두꺼비’를 소환합니다.]

“꾸르륵…. 꾸륵!”

진혁의 앞에 배가 잔뜩 부푼 두꺼비가 나타났다.

일명 램프의 두꺼비.

다양한 성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두꺼비는 특정 행동을 할 경우 뱃속에 먹어치워둔 성유물들 중 4가지 성유물을 토해낸다.

다만, 이 지니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약이 있다.

4가지 아이템을 각기 다른 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측정 불가 급 아이템 4가지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 나쁘진 않아.’

온갖 생색을 다 내며 평생 노예 계약을 시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진혁이 재빨리 두꺼비의 입에 코인 거래소에서 구입한 빨간 파리를 들이밀었다.

유일하게 두꺼비가 안에 있는 것을 토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두꺼비가 가장 좋아하는 이 루비 체체파리를 먹이는 것뿐이다.

대부분 멍청한 놈들이 귀한 두꺼비에게 다른 걸 먹이거나 심하면 배를 갈라 안에 있는 걸 꺼내려 하는데.

때문에 제대로 이 두꺼비의 진가를 알아본 이는 없었다.

‘날 빼고는 말이지.’

진혁이 파리를 꿀꺽 꿀꺽 삼키는 두꺼비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그 순간.

“꾸웨에엑!”

두꺼비의 입에서 다양한 성유물들이 쏟아졌다.

‘좋았어.’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정확히 원하던 것들이었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