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659화
659화. 시련의 탑 30층, ‘요틀레암 협곡’ (2)
해가 완전히 지자 특이한 형태의 반딧불이들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눈부신 달빛과 싱그러운 숲내음.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협곡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첫 번째로 불침번을 서기로 한 진혁이 나무 아래 자리 잡았다.
“벌써 시간이 이리 흘렀네.”
언약이란 거대한 재앙을 막은 지 반 년. 체감상으로는 한 10년은 흐른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혁이 언노운과의 전투가 끝난 직후 얻은 보상들을 하나둘 꺼냈다.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를 위한 마지막 보상]
[명예의 월계수]
입수 난이도: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에 한정
마력 소모치: 분당 1,000
내용: 명예의 월계수는 8번째 왕관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월계수의 잎에 마력을 주입하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할 경우 왕관으로서의 효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제작된 아이템의 능력치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의 150% 이상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사기적인 보상이긴 하다.
7개의 왕관을 모두 모아야만 50층에 도전할 수 있는 제약. 하지만 이게 있다면 왕관을 6개만 모아도 50층에 갈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게다가 아이템 제작을 할 경우 기존에 없는 기상천외한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150%라는 제한이 붙어 있긴 하지만, 퍼스트 블레이드의 150%에 육박하는 능력치를 지닌 무기라면 그거 자체로 격이 다른 위력을 발휘할 테니까.
[언노운의 가면]
입수 난이도: 측정 불가
내용: 탑을 50층까지 오른 자가 사용하던 가면. 음성변조와 안면왜곡 등의 마법이 영구히 걸려 있을뿐더러 착용 시 기본 스탯을 20%만큼 상승시켜주는 마법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또한 매 전투 시마다 언노운이 사용하던 스킬 중 1개를 랜덤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빌리 더 키드의 권총 – X모델]
입수 난이도: SS
공격력 250,000
내구도: 1,100,000 / 2,370,000
내용: 희대의 건 맨 ‘빌리 더 키드’가 사용했던 권총 중 하나입니다. 기본 자체의 공격력은 높지 않지만, 현존하는 모든 탄환을 소화할 수 있으며 어떤 탄환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공격력이 바뀝니다.
그 외에도 고급 재료들과 마정석 등을 대거 손에 넣게 되었다.
‘레벨도 27레벨이나 올랐어.’
아자토스나 슈브니구라스 니알라토텝 등 태고의 신격들 중에서도 최상위 존재들을 잡아야만 올릴 수 있는 경험치를 얻게 된 것이다.
진혁이 개인 스탯창을 활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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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레벨: 345
힘 125 민첩 140 체력 198 마력 809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정기 413.77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62,224,905
직업: 룬의 지배자
고유성창: 고유성창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고유능력: 고유능력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스킬: 스킬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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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력 스탯은 ‘809’입니다.]
81스탯을 전부 마력에 투자했다.
월계수를 사용하려면 분당 1,000이라는 무지막지한 양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마력의 총량이 40,000 정도니 단순히 따지면 40분가량 사용할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 실전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고유성창과 스킬들을 사용해야 했기에 마력 소모량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갈수록 마력 스탯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는 뜻이다.
진혁이 개인 상태창을 닫았다.
그리고 이번엔 능력들을 저장해둔 대도서관을 개방했다.
우우웅!
[‘세계의 기억’을 불러옵니다.]
다양한 조합들을 생각하고 연구하며 최적의 조합식을 생각했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앞으로의 공략에 도움이 될지를 고심하면서.
그 결론이 이거다.
[고유성창 ‘세라핌’과 고유성창 ‘페이즈2’, 고유성창 ‘파이널 제네시스’ , 고유성창 ‘빌리 더 키드’가 융합합니다!]
미세한 마력의 컨트롤과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능력들의 조화.
이 모든 게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맞물렸을 때에만 비로소 완벽한 신스킬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진혁이 모든 감각을 깨웠다.
세포들이 마력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요동쳤다.
1분 2분 그리고 3분.
시간이 흐를수록 진혁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혔다. 극도의 집중력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마저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조금만. 조금만 더….
시야가 조금씩 흐릿해졌다. 부족한 산소로 인해 멍한 기분이 전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거의 다 왔다. 이제 끝이 보인다.
진혁이 마지막으로 숨을 참은 채 마력을 이어붙였다.
지금!
우우우웅!
마지막 동기화를 마무리 지은 진혁의 눈앞에 황금색 상태창이 나타났다.
[융합에 성공하셨습니다!]
[고유성창 ‘황야의 무법자’]
입수 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레인저 최상위 능력으로 ‘총’에 관한 모든 능력과 스킬들의 잠재력을 300%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총에 관한 특정 키워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각각의 성명절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이때의 공격력은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융합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됐다!
진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다행히 원하는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거라면 최악의 순간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터,
보험으로서는 최상의 보험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어디 오랜만이라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으려나?’
마침 언노운으로부터 새로운 총도 얻었겠다. 가볍게 영점 사격이나 해보려고 할 때였다.
“…….”
진혁의 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수풀 사이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를 눈치 챈 것이다.
……사람의 기척은 아니다.
워낙에 자연과 동화되어 있었기 때문. 극한까지 날카롭게 갈고닦은 고인물의 감각이 아니었다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드디어 온 건가.’
협곡에 있는 정령수들.
경계심이 높은 종족의 특성상 멀찍이서 이쪽의 정체와 목적을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보물이나 자원을 노리는 추악한 면모를 보이기에 정령수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나는 다르지.’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정령들의 친구라는 점을 확실하게 어필해주겠다.
진혁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노예들을 불렀다.
“얘들아. 간식 준비 다 됐어. 다들 어서 나와.”
어느새 앞치마까지 갖춰입고 각종 소스와 마정석들을 꺼내 놓은 건 덤이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이끌려 정령수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다들 안에서 고생이 많았지? 편하게 앉아서 좀 먹어. 부족하면 내가 다른 간식들도 만들어줄 테니까 부담 없이 말하고. 끝나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정령 공주님에 관한 동화도 읽어줄게.”
“뭐지?”
“엥?”
“주인, 미치기라도 한 거야? 아님 술이라도 마셨나?”
“알았다! 이건 함정이야. 우리 주인을 내놔 이 못된 납치범아!”
난데없는 상황에 정령수들이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빠직하고.
진혁의 이마에 굵은 심줄이 돋았다.
건방진 말을 하는 특히 저 살라맨더 놈을 당장이라도 도마뱀구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
바로 옆에서 보는 눈들이 많았으니까.
“하. 하. 하. 하. 납치범이라니. 평소에 하는 대로 하는 것뿐인데. 간식을 먹지 않으면 고구마 간식으로 만들어버릴 거니까 적당히 하고 이쪽으로 와주련?”
진혁이 얼마 남지 않은 인내심을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지 않다.
정령수들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으…으응!”
“같이 놀자.”
“고마워 따뜻한 주인.”
“헤헤헤.”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진혁이 만든 마정석을 갉작이며 캠프파이어도 하고 장기자랑도 했다.
겉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포근한 장면이다.
* * *
“괜찮은 인간들인가?”
“동족들과 저리 잘 어울리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조심해야 돼. 인간들이란 자기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들이니까.”
“그래. 왠지 저 정령수들이 웃고 있는 것도 뭔가 좀 어색하기도 하고. 뭐랄까.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저 정도면 한 번 말을 걸어볼 가치는 충분해 보여.”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수풀에 숨어 있던 정령수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늘어놨다.
의견이 분분하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상대의 진위를 파악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협곡에 큰 위험이 찾아왔고. 정령수들만의 힘으로는 그 위험을 돌파할 수 없었으니까.
결국.
“에잇! 내가 가볼게.”
가장 덩치가 큰 불의 정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뿔이 2개 달린 살라맨더였다.
총총총.
“엣헴! 이봐라 인간!”
“응?”
“여기다 여기!”
진혁의 발 아래쪽에 도착한 살라맨더가 양 손을 흔들었다.
진혁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오? 뭐야, 여기에 웬 정령이 있지?”
시치미를 적당히 떼면서 세상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품 안에 운디네를 더더욱 꼭 끌어 안았다.
“놔, 놔라 닝겐.”
운디네가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진혁이 갈고리 같은 손아귀로 철저하게 운디네를 구속했다.
어린아이와 동물 등등. 연약하고 귀여운 것들을 슬로건으로 내거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닐 터.
상대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방심하고 있는 상대를 골수까지 뽑아 먹기 위해서다.
-안 돼.
-멈 춰!
-제발 오지 마.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정령 특전대가 동정이 가득 담긴 눈동자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미 경계심을 반쯤 풀은 살라맨더는 진혁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아하니 다른 악독한 인간들과 달라 보여서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부탁? 나한테?”
“그렇다. 대가는 확실하게 지불할 테니 부디 우리를 도와다오.”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들어줄 생각이긴 하다.
정령수들과의 친밀도를 쌓은 뒤, 3가지 히든 피스를 모아야 하는 것.
그게 요틀레암 협곡을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우리 작고 소중한 정령들이 곤란에 빠진 걸 모른 척할 수는 없지. 미약한 힘이긴 해도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할게.”
“고, 고맙다. 다행이다. 정말 마음 착한 인간을 만나게 되어서.”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나 같은 사람이 그리 흔치 않거든.”
진혁이 살라맨더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것으로 숨겨진 퀘스트가 해금되었다.
[정령들의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첫 번째 히든 피스를 찾을 단서가 주어집니다.]
‘라이볼트’가 이성을 잃고 정령수들과 협곡을 파괴하고 있는 이유를 파악한 뒤, 정령왕과 협곡이 다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하십시오.
힌트: ‘빛의 파편’을 찾아야만 합니다.
빛의 정령왕 ‘라이볼트’
일전에 상대했던 불의 정령 이그니와 마찬가지로 한 원소의 정점에 위치한 대정령이었다. 온화한 성격으로 인해 정령왕들 중에서도 가장 중립적인 성향이었는데, 그 녀석이 협곡을 파괴하고 다닐 줄이야.
큰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상한 묘목이 자라나기 시작한 뒤부터 갑자기 이상해지셨어.”
“묘목?”
“응. 보랏빛이 나는 말라비틀어진 나무인데, 주위에 있는 다른 나무들을 말라비틀어지게 했거든. 이 협곡은 정령들의 가호를 받아 모든 게 풍족한 곳인데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살라맨더의 말에 따르면 특정할 수 있는 묘목이 극도로 제한되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설마. 아자토스의 궁전에 있는 그 묘목인가?
하지만, 그건 궁전 밖에서 심으면 절대로 자라지 않을 텐데?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퀘스트였는데,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