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661화
661화. 주인 없는 그림자 묘목 (2)
거대한 협곡 안에 있는 수많은 광산들에선 드문 확률로 보석들을 채굴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분명 극악의 확률로 빛의 파편이 될 수 있는 보석도 잠들어 있을 터.
“반드시 우리 손으로 확보해야 한다!”
“정령의 힘을 보여주자!”
“가자가자!”
정령들이 긍지를 불태우며 내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물론, 난데없이 내기에 휘말리게 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도 각자 다른 광산으로 돌입했다.
우우웅!
광산을 따라 여러 개의 야광석이 길을 밝혔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 동안 빛의 파편이 될 만한 걸 찾기 위해선 모두가 경쟁자이고 적이다.
그것은 정령수들뿐만 아니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
천유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혁이 여러 가지 능력을 사용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능력을 제한하고 순수한 검술만으로 겨룬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다양한 전투방식을 추구하는 진혁과 달리 자신은 오직 검술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까. 극한까지 단련된 하나의 능력은 만능형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
“크오오!”
“키에에!”
통로 아래 쪽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흉측하게 생긴 외형. 녹색 체액을 뿌리는 2m 크기의 곤충형 몬스터 ‘땅강아지’들이다.
다수의 땅강아지들이 모처럼 들어온 먹잇감들을 뼈째로 먹어치우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방해하지… 마라!”
천유성이 ‘검의 노래’를 발동시켰다.
무시무시한 강기가 솟구치며 달려들던 땅강아지들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잘려나갔다.
오직 소원권을 따내겠다는 일념.
천유성의 눈이 탐욕으로 가득 찼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각자만의 이유를 위해 젖먹던 힘까지 끄집어냈다.
퍼퍼퍼퍽!
콰아앙!
베헤모스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또 다른 광산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도망친다. 반드시… 이 거지 같은 회사에서 탈출하겠다고!”
아포칼립스를 주관하는 재앙.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만인의 두려움이 되어야 하는 게 바로 자신이란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은 인간 한 명에게 쩔쩔매는 파충류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이 처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야 말겠다.
“소원권! 계약자와의 소원권! 전부… 짐의 것이니라!”
“보석을 찾을 확률은 1.253% 정도야 응.”
엘리스와 프레이 역시 각자가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광산을 하나씩 맡아 거침없이 최심부를 향해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고구마 후라이드와 티본 그리고 하벨리안과 해태 마지막으로 말랑흑두루미가 한 자리에 모였다.
“모기 대장!”
“모기이…!”
“우린 대장만 믿을게! 마정석이나 보석에 관해서만큼은 대장의 후각이 기가 막히니까!”
”모기모기!”
일명 ‘소환수 연맹’.
그들이 원하는 건 퇴사니 뭐니 하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더 나은 노예로서의 삶.
배불리 먹고 따뜻한 곳에서 자며 소환수답게 살아가는. 그런 소환수의 권리가 보장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곧바로 고구마가 코를 킁킁거리며 광산의 한쪽 벽을 가리켰다. 그러자 나머지 정령수들이 허둥지둥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내기를 제안한 진혁은 정작 광산에 있지 않았다.
다들 광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채굴에 열을 올리는 늦은 새벽 조용히 누군가의 집을 찾았던 것이다.
‘다들 잠들었나 보네.’
워낙 다사다난했던 하루였기에 쌓인 피로도 상당했을 터. 직접 채굴을 하는 당사자들을 제외하곤 깊은 잠에 빠졌다.
진혁이 최대한 기척을 감춘 채 계단을 타고 지하로 향했다.
움찔하고.
미세한 마력의 흐름을 감지하자 즉시 몸을 멈췄다.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정교한 방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보통이라면 눈치 채기 힘들 정도의 2중 3중 마법이다.
하지만.
[8성급 결계 ‘마력 파훼’가 발동됩니다!]
정령왕도 아니고 정령수들이 건 마법쯤이야.
간단한 손짓 한 번으로 여러 개의 보안이 파훼되었다.
서걱!
넝쿨들로 막힌 통로를 뚫자 수많은 무기와 재료들이 가득 차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바로 정령수들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모은 성유물들이다.
“휘유. 진짜 많이들 모아놓긴 했네.”
과거 펜타그리스의 발톱으로 만든 단검과 활처럼. 신수나 환수의 신체로부터 가져온 재료들을 통해 만들어낸 아이템들이 상당수 보였다.
……아까워라.
이 귀한 것들을 이렇게 쌓아만 두고 있다니.
주인없이 영겁의 세월동안 썩어가느니 차라리 누군가 요긴하게 사용해 줄 수 있는 이에게 주는 게 훨씬 나을 거다.
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너희도 나랑 같은 생각이지?”
진혁이 각종 무기와 성유물들을 소중하게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어떤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너희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이런 어쩔 수 없네. 나도 내기 때문에 바쁘지만, 이런 너희들을 두고 갈 수는 없지.”
진혁이 창고에 쌓여 있는 여러 성유물들 중 가장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아공간에 저장해두었다.
특히 퍼스트 블레이드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재료들 위주로 꼼꼼하게.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길고 긴 쇼핑이 끝나고 나서야 진혁이 창고에서 나와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바로 완벽한 ‘빛의 파편’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내기도 질 수는 없어.’
예전부터 탑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빛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했었다.
‘태양의 빛이 제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 달빛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빛의 파편이 될 만한 원재료는 그런 게 아니었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순수함이 아닌…. 그걸 넘어 압도적인 광기가 뒷받침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완벽한 의미의 파편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혁이 천천히 주택 안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빛을 모았다.
⁕ ⁕ ⁕
[시간이 끝났습니다.]
내기의 완료를 알리는 상태창과 함께 넓은 공터에 수많은 정령수들이 모였다.
“좋아. 이거면 될 거야. 틀림없어.“
“애게, 고작 그거 가지고? 내가 찾은 게 훨씬 더 예쁘고 커다래.”
“크기만 크다고 좋은 게 아니야. 난 우리 물의 일족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사파이어를 매개체로 썼다고!”
“흥! 보석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정도는 돼야지.”
“그나저나 어제 장로님 집에 누가 침입했다던데? 보물을 훔쳐갔느니 뭐니 하면서 범인 색출에 난리더라고.”
“겁도 없이 누가 그랬을까?”
몇몇 시답잖은 대화가 끼어들어가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파편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었으니까.
공터에 모인 이들이 저마다 각자가 가지고 온 보석을 자랑스럽게 꺼냈다. 각각 태양이나 달빛 혹은 신성력이나 자연의 빛을 머금어 오색찬란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들 사활을 걸고 준비하긴 했네.”
진혁이 여러 개의 보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첫 번째 성유물의 자격을 얻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들로만 준비해뒀다.
빛의 정령왕을 구해야한다는 목표의식과 외부인에게 질 수 없다는 정령족 특유의 자긍심이 깃든 탓이리라.
“그래봤자 짐의 것에 비해선 보잘 것 없는 것이니라.”
엘리스가 자신만만하게 새빨간 루비를 꺼냈다.
자신의 피를 뽑아다가 만든 광석은 문자 그대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녀석도 제정신이 아니긴 하네. 세상에 ‘빛의 파편’이라는, 누가 듣더라도 빛의 성향이 듬뿍 담긴 과제를 던져줬는데 저런 걸 가져오다니.
디x블로라도 소환하는 게 아니라면 전혀 채택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훗!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 본질을 놓친 자들이 많군.”
천유성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과연 한국대 의대생.
그 이름도 악명 높은 수능 지옥에서 당당히 정상에 오른 괴물답게 발언 또한 매서웠다.
그런데.
정작 품에서 꺼낸 반지 크기의 보석이 뭔가 이상했다.
……아름답긴 한데 가까이 가는 게 꺼려진다.
뇌까지 검으로 된 놈 아니랄까 봐. 검강으로 보석을 무 썰 듯 썰어버렸네.
만약 빛의 신이라는 게 있다면 저 살벌한 세공기술에 마른침을 삼키지 않았을까?
보석 안에 든 것도 빛이 아니라 살기를 가득 담아놨다.
“당첨 확률은 50%야 응. 되거나 안 되거나.”
프레이는 정체불명의 광석을 꺼냈다.
나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는 걸 보니 자신작인 듯싶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명확하게 결과값을 도출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비트코인 기도 메타식 계산을 할 줄이야.
“크하하하! 다들 조막만 한 걸 보석이라고 꺼내놓고 자랑질을 하는구나. 이 몸의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빛의 파편이지!”
베헤모스가 광소를 터뜨리며 무언가를 땅에 던졌다.
콰아아앙!
흙먼지가 자욱하게 뿜어져 올랐다.
지 몸보다 거대한 보석.
파괴하는 것밖에 모르는 아포칼립스에게 제대로 된 과제를 수행하라는 건 역시나 무리였다.
‘파편’이랑 ‘덩어리’도 구분 못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저럴까 쟤는.
마지막으로… 고구마와 정령 특전대는….
말을 말자.
“안 돼. 대장! 그거 다 먹으면 우린 무슨 수로 이겨!”
“으아아악! 누가 대장 역할을 굶주린 도마뱀에게 맡긴 거야?”
“고귀한 이 몸이 이 점을 간과하다니. 뼈아픈 실수다.”
“미요오오오!”
이미 고구마의 뱃속에 다 들어가버린 지 오래였다. 얼마 남지 않은 보석들 앞에서도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걸 보니 몇 분 안에 준비한 보석은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깨끗하게 사라져있을 거다.
그렇게 저마다 자신의 것이라 우기는 사이 빛의 파편을 선정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우우웅!
신비로운 빛이 떨어졌다.
언제나 실패하기만 했던 파편의 선정.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 명이 들고 있는 보석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 내가 돼 버렸네. 미안.”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진혁이었다.
“어째서 네가 된 거냐!”
“마, 말도 안 돼!”
“무슨 수작을 쓴 게 틀림없다. 당장, 그 보석을 어떻게 얻었는지 밝혀라!”
정령수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자신들이 계속해서 실패했던 걸 단 한 번에 성공시켰으니, 당연히 의문이 터져나올 수밖에.
[12시간 전 영상이 재생됩니다.]
화면 속에서는 어두운 밤 누군가의 침실에 숨어든 진혁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살금살금 침실에 들어간 진혁이 보석을 꺼냈다.
드르렁! 드르렁!
미친 듯이 코를 골고 있는 장로의 맨들맨들한 대머리를 통해 별빛이 그대로 반사되어 투명한 보석으로 빨려들어갔다.
단 하나의 불순물도 섞여 있지 않는, 순도 100%짜리 광채가 모여들자 형용할 수 없는 빛이 한점으로 응축되었다.
“시련의 탑을 만든 놈이 누군진 몰라도 정말 또라이 같거든.”
운영자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독특한 성향.
놈의 성향에 맞추려면 그에 맞춰 미친 놈이 되어야만 한다.
바로 지금처럼.
[‘빛의 파편’이 완성되었습니다!]
진혁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맺혔다.
이것으로 천유성과 엘리스는 물론 장로와 나머지 정령수들로부터도 모두 1가지 소원권을 획득했다.
협곡에 있는 수많은 노예들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이이익! 자, 잠깐, 잠깐 멈춰라!”
장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 침실에 침입한 자가 네놈이라는 건 결국 지하에 있는 보물 창고를 턴 자도 네놈이라는 뜻 아니겠느냐!”
호오.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하지만.
“아, 그 부분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감히 대 정령들의 보고에 손을 댄 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협곡의 저주가 뒤따를 거란 말이다!”
이야 무섭네.
너무 무서워서 팬티라도 갈아입고 와야 하나 싶다.
“으음. 아무리 저라도 협곡의 저주는 조금 무섭네요. 그런 의미에서 바로 소원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소원은 사면입니다. 소급 적용해서 절도했던 사실을 깨끗하게 세탁 부탁드립니다.”
지었던 죄를 없는 것으로 하는 것.
내기에서 이긴 정당한 대가를 행사할 시간이다.
“……어, 어버버…. 사, 사면. 소, 소원?”
장로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