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690화
690화. 미궁 ‘지평선의 경계’ (3)
“우와아아아!”
페시스가 미친 듯이 몬스터들을 끌어 모으며 틈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제단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했기에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쉬이익!”
“쉬잇!”
뱀들이 미친 듯이 페시스를 추격했다.
[성유물 ‘피리부는 사나이’ – ‘시궁창 행렬’이 발동됩니다!]
쾨쾨하면서 꼬릿한 향이 퍼져나갔다.
목표한 대상들을 매혹해 따라오게 만드는 특수 능력이었다.
상당한 고위급 몬스터에게도 통한다는 장점. 대신 이 향을 맡은 적들의 흉폭성과 공격력이 최대 30%까지 상승한다는 단점이 공존했다.
일종의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술래잡기가 유지되고 있는 건 전용무구들 덕분.
페시스가 깃털처럼 가볍게 몸을 날렸다.
얼핏보면 가벼운 산책처럼 보였으나 한 걸음에 5m 이상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화르륵!
콰콰콰쾅!
화산탄과 태고의 불길들이 닥치는 대로 몰아쳤다.
“큭!”
페시스가 팔에 붙은 불길을 재빨리 껐다.
제법 심한 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욱씬!
끔찍한 격통.
신경들이 아우성을 지른다.
1분1초가 흐를수록 몸에 생기는 상처의 개수가 늘어났다.
“젠장. 젠장. 젠장.”
2닭 역시 페시스의 소중한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제단까지 가는 길을 찾으며 수십 마리가 넘는 사도들을 베어넘겼다.
그러나.
놈들의 숫자는 오히려 처음보다 더 늘어나 있었고. 포위망은 훨씬 더 촘촘해져 있었다.
요마간토의 사도들은 페시스와 2닭의 패턴을 파악하며 더욱 예리하고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이제는 빠져나갈 틈이 없다.
궁지에 몰린 쥐는 화로 안에서 서서히 불타 죽는 길 뿐이다.
……끝장이다.
처음부터 요마간토의 사냥 놀이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모든 수단이 단지 헛된 발악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불멸의 인형사 ‘만들어진 자들의 오페라’가 발동됩니다!]
[음영극살 ‘어둠 속의 습격’이 발동됩니다!]
서걱!
콰콰콰콰콰콰!
두 개의 섬광이 각기 다른 쪽에서 파고들었다.
“버티느라 고생했어. 응.”
“주군께서 도우라 하셨습니다.”
프레이와 월영이었다.
***
그렇게.
모두의 도움과 진심이 모여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운영자 ‘1인 2닭’으로부터 긴급 소포 패키지가 도착했습니다.]
[열어보시겠습니까? Y/N]
보라색 상태창이 점멸했다.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드디어….
저쪽에서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믿고 있었다고.”
진혁이 즉시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네크로노미콘의 단서들을 꺼냈다. 모두 이 때를 위해 준비해둔 회심의 카드들이었다.
‘드디어 시작이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친다.
시련의 탑이 나타나고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희노애락.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즐거운 일도 아픈 일도 많았지만, 그 모든 건 단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탑의 정상.
50층을 넘어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별들이 머무는 자리. 그 고독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더 이상 가상의 게임이 아닌, 그리고 혼자가 아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그곳에 도달하고야 말겠다.
그리고 네크로노미콘은….
……탑의 정상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가장 큰 수단이었다.
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단서들 사이에서 가느다란 실들이 이어졌다.
[성유물들이 각각의 존재에 반응합니다!]
파츠츠…!
보라색 실타래들이 아름다운 광휘를 뿜어내며 하나의 점을 향해 모여들었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기다.
*
“허, 히이이익?”
상황이 그렇게 되고 나서야 정원사도 지금 이 모든 사태가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다.
놈들은 길을 잃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어중간한 성유물이나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고.
네크로노미콘.
50층의 금서가 있는 장소를 찾으려던 거지.
“서, 설마 여, 여기에 그 책이 있었다니.”
정원사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경을 거스르는 적들을 처리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건만, 지금 와서는 아름다운 정원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모두 후순위에 불과했다.
보라색 빛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온통 혼란으로 뒤섞였지만,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잊진 않았다.
“이, 일어나라, 일어… 나, 나라!”
정원사가 들고 있는 가위를 지면에 내리 꽂았다.
[미궁의 가디언이 미궁주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미궁에는 그 미궁을 수호하는 각각의 수호신이 있다.
당연히.
지평선의 경계에 위치한 태고의 정원에도 그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었다.
[‘격퇴의 심판관’이 현현합니다!]
쿠우우웅!
“크오오오!”
거대한 갑주로 전신을 감싼 기사.
운철과 성유물로 이루어진 대검과 철로 된 방패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태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투구 사이에서 스산한 안광이 피어올랐다.
저릿저릿!
“……이건.”
“본 게임이 시작되는 건가.”
“강해요. 저 적.”
“제법이구나. 미물 주제에.”
격퇴의 심판관을 마주한 멤버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늘어놨다.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
태고의 언어들이 각인된 검은색 무구에선 수많은 적들을 찍어눌러온 긍지가 느껴졌다.
[공포 내성이 발동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2,800%만큼 상승합니다.]
[미궁 전체가 가디언의 수호를 위해 움직입니다.]
상태창들이 늘어남에따라 심판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기하급수적으로 진해졌다.
“히, 히히… 허억. 어헉. 다… 죽여버려라.”
정원사가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체내에 저장해둔 양분까지 쥐어짜내 깨운 가디언인 만큼. 이번에야 말로 확실하게 끝을 보길 고대했다.
그리고.
격퇴의 심판관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궁의 가디언이 특수 스킬 ‘미궁 수호’를 발동합니다!]
[태고의 권능 ‘속삭이는 정원’이 개방됩니다!]
쩌저저적…!
쩌어억!
벽을 이루고 있던 식물들 사이에서 집채 만한 꽃들이 뜯겨져나왔다.
네 쌍의 잎이 좌우로 펴지며 안에 있는 얇은 꽃술들이 도드라져보였다.
콸콸콸콸!
검은 물이 범람하기 시작했고. 공중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형태의 벌레들이 군집을 이룬 채 날아다녔다.
정원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적의를 갖고 침입자에게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위치는 찾은 거냐?”
천유성이 진혁의 옆에 섰다.
“응. 여기서 멀지 않아.”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쪽 방향을 바라봤다.
단서들이 가리키는 곳에 조금 전까지 느껴지지 않던 신비로운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에 바로 네크로노미콘이 있다.
‘이제 한 발자국 남았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이질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과거의 기억이 꿈틀대며 개미가 혈관을 기어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따라 퍼져나갔다.
“그 변태 같은 표정만 봐도 목표가 코앞이라는 건 알겠군.”
“야이…. 너는 말을 해도 꼭 그따위로 하냐.”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 누구한테 물어봐도 나랑 같은 대답을 했을 거라는 데 걸지.”
“하여간 정이 안 가는 놈이라니까.”
“헛소리는 그만하고 여긴 내가 맡을 테니, 책이나 회수해 와라.”
스릉!
‘백야’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얀 눈발이 조금씩 굵어졌다.
“오…. 우리 유성이 든든한데? 웬일이야. 먼저 다 나서주고?”
살짝 감동이네.
물론, 먼저 나서지 않더라도 결국엔 부려먹을 생각이긴 했지만, 노예가 자발적으로 나서주는 모습은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천유성이나 나머지 멤버들한테만 맡길 순 없다.
적어도 이 정원 안에서 만큼은 ‘격퇴의 심판관’이 무적을 자랑하기 때문.
그렇다면….
진혁이 세계의 기억에 저장된 서고에서 책 한권을 뽑았다.
아무리 강력한 적이라도 제 각각의 상성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
이 미궁 역시 딱 한 가지 통용되는 힘이 있다.
‘빛’.
신성력을 의미하는 게 아닌, 순수한 태양과 열기에 의한 힘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시련의 탑에서 그 힘을 가장 크게 관장하는 건 42층에 있는 ‘이집트 신격’들.
“어디보자.”
이 상황에서 최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을 찾았다.
[고유능력 ‘태양의 성역’이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시스템 조작’이 발동됩니다!]
[‘지평선의 경계’에 사막화(沙漠化)가 진행됩니다!]
황금색 성역 위로 하얀 모래사장과 오아시스가 펼쳐졌다.
태고의 정원과 사막이 충돌하면서 풍경과 풍경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
격퇴의 심판관이 쏟아지는 빛을 경계했다.
진혁이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정원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숨어만 있지 말고 나와. 이곳 전체를 사막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시스템 조작’으로 인해 ‘태양의 성역’과 ‘사막’이라는 필드 조건의 능력치가 최대치로 상승한 지금.
미궁과의 상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꺼낼 기회가 왔다.
[아누비스의 심판이 발동됩니다!]
지금부터 하는 문답은 평소와는 조금 다를 거다.
***
꿀렁꿀렁!
진흙 속에서 끔찍한 외형을 가진 존재가 솟구쳐 올랐다.
얼굴에 난 여러 개의 집게다리.
기괴하게 생긴 입에서는 연신 알 수 없는 액체가 새어나왔다.
저 녀석이 바로 이 미궁의 주인인 ‘정원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는 익숙한 얼굴도 함께 보였다.
발냄새… 아니, ‘발세테르’다.
와. 저 녀석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시련의 탑이 넓으면서 좁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아, 아주 죽고 싶어서 화, 환장을 하는구나. 그분들의 책을 탐하는 거, 걸로도 모자라서 내 안식처까지 망치려 들어?”
정원사가 분노를 참치 못하고 연신 고함을 질렀다.
조금씩 사막으로 변해가는 정원.
자신의 애정하던 곳이 망가지는 걸 지켜보자니 애간장이 다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서, 설마 알고서 하는 건 아니겠지?’
평상시였다면 사막의 모래바람 따위가 아무리 불어봐야 사막화 같은 게 진행될 리 없다.
허나.격퇴의 심판관을 깨우고. 미궁 수호를 사용하는 순간이 역설적이게도 정원이 가장 취약해질 때.
모든 기능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투자되는 지금이 방어에 허점이 생기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내가 탑 정상에서 별 보는 걸 좋아하는데, 50층의 썩은 물들이 고이고 고여서 자리를 비켜줄 생각을 안 하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책이라도 구매해서 그 무거운 엉덩이들을 치워보려고 생각 중이야. 괜찮은 계획이지?”
“푸, 푸하하하! 허, 헛소리도 정도껏이지 네깟 게 탑의 저, 정상을 가겠다고?”
“뭐,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차차 지켜보면 될 테고. 그나저나 이 정원은 그냥 더럽게 못 꾸며서 싹 리모델링 좀 해야겠는데? 쯧쯧. 아주 센스가 그냥… 내가 특별히 내 스타일대로 꾸며줄게. 어때?”
“가, 가, 가 가, 감히 누가 만든 정원보고 못 꾸몄다고 하는 것이냐! 여, 여기서 털끝 하나라도 더 건들인다면 그, 그게 네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이 통과되었습니다.]
오!
간만에 삼문답을 하니 색다르긴 하네.
중, 상층부에선 여러 제약이 많아서 못 쓰고 있었는데, 모처럼 멍석을 다 깔아주는 상황이 찾아왔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원사에게 진혁이 세 번째 질문을 했다.
“아, 미안미안. 내가 말이 너무 심했나보네. 사과의 의미로 ‘비명을 지르는 영양수’라도 좀 줄까 하는데, 그거면 용서해줄 수 있으려나?”
“……뭐, 뭐라고? 그, 그게 진짜냐?”
정원사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50층에 존재하는 수많은 식물들에게 있어 최고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꿈의 샘물. 그걸 주겠다고 하니 당연히 눈이 돌아갈 수밖에.
거짓이라고 하기엔 정확히 명칭까지 알고 있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진짜겠냐? 당연히 거짓말이지.”
내가 니알라토텝도 아니고.
50층에서도 구하기 힘든 영양수를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끄…으으으….”
정원사가 게거품을 문 채 뒷목을 잡았다.
저 녀석을 들었다놨다 하는 게 재밌긴 하지만, 놀이는 이걸로 끝이다.
[세 번째 질문이 통과되었습니다.]
격퇴의 심판관에 맞서.
[‘왕가의 수호자들’이 현현합니다!]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막의 정예들이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