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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70화


70화. 탑의 거주자 (1)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허진수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나에서 끝내야 돼. 절대…… 흑운 길드와 ‘거주자’들이 접촉했다는 것까지 들켜선 안 돼.]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녀석이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마,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

순간 진혁의 머릿속에 복사 조건이 다시 한번 스쳐 지나갔다.

‘꿍꿍이를 밝혀라’.

처음엔 단순히 비리를 파헤치라는 건 줄 알았는데, 더 깊숙이 숨어 있는 흑막이 있었다.

한국 상위 길드 중 하나인 흑운 길드. 심지어 오래전부터 탑에서 살아온 ‘거주자’에 관한 이야기가 튀어나올 줄이야.

플레이어가 정복한 것은 3층.

하지만, 탑의 층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급의 거주자들은 15층은 넘어가야 만날 수 있다.

그렇다는 건.

‘거주자 쪽에서 먼저 싸울아비 길드와 접촉했다는 뜻이겠지.’

이유와 목적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것과 앞으로의 계획에 유천영이 방해된다는 것뿐.

‘놈들 입장에서 인류와 플레이어는 탑을 위협하는 외적일 텐데…….’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간다.

바로 그때.

“오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놈들이 스승님을 치료하라고 준 돈을 빼돌렸다는 겁니까?”

“이,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그깟 돈이 뭐라고 이런 짓을 했단 말이냐? 오늘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유연화를 비롯해 유천영을 따르는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믿고 맡겼던 힐러들이 뒤통수를 쳤으니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당장이라도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이 뽑히려던 찰나.

“이들의 처분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진혁이 끼어들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진상을 밝혀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이놈들을 죽이지 않고선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런 놈들에게 스승님을 맡겼다니…….”

제자들이 피눈물을 삼키는 것 같은 심정을 토로했다.

어지간해서는 말리기 쉽지 않을 분위기다.

“대신, 유천영 어르신을 치료해 드리죠. 바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요.”

“……!”

“그, 그게 가능합니까?”

진혁의 말에 반쯤 뽑힌 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복수도 중요했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유천영을 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합니다.”

훨씬 더 골치 아픈 역병들도 다뤄 봤는데, 고작 마력 폭주증 하나쯤이야.

탑의 상층부로 가면, 이건 독감 수준에 불과하다.

‘어디 보자…….’

진혁이 의료용 테이블 위에 있는 수액과 약품 몇 개를 챙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건 퍼포먼스를 위한 소품들이다.

융합 스킬을 숨기고 그 자리를 적절하게 빛내 주기 위한.

준비를 끝낸 진혁의 시선이 이번엔 허진수에게 향했다.

잘 봐 둬라.

엘릭서를 어떻게 사용하야 하는 건지.

[고유 능력 ‘별의 가호’와 ‘엘릭서’가 융합합니다!]

[융합에 성공하였습니다!]

[특수 아이템 ‘별의 눈물(SS)’을 획득하셨습니다!]

[다시 ‘별의 눈물’을 융합하려면 90일간의 쿨타임이 필요합니다.]

우우우웅!

순간, 엘릭서의 색깔이 변했다.

형언할 수 없는 밝은 빛이 액체의 표면을 따라 반짝였다.

진혁이 유리병을 들고 유천영에게 다가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한참 전에 죽었겠군.’

터질 듯이 팽창한 혈관은 마력 폭주가 한계치를 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과연, 강자는 강자다.

이토록 끔찍한 격통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한두 방울 정도론 턱도 없을 테고, 전부 다 먹여야겠어.’

워낙에 상태가 악화된 탓에, 엘릭서를 모조리 쏟아 부어야 했다.

살짝 아깝긴 하지만.

능력 복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치를 수 있는 값싼 대가였다.

꿀꺽! 꿀꺽!

액체가 유천영의 목을 타고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창백했던 유천영의 얼굴에 점점 화색이 돌았다.

“후우우…… 후우우…….”

호흡이 안정되고 이마를 타고 흐르던 식은땀도 멎었다.

보기 흉하게 튀어나왔던 혈관들도 모두 가라앉았다.

긴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유천영이 회복한 것이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유천영이 갖고 있는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고를 건 이미 정해 뒀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유천영이 지닌 스킬 중 하나를 선택했다.

[고유 능력 ‘진태청화랑심법(眞太淸花郞心法)(S)’을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진태청화랑심법(眞太淸花郞心法)]

입수 난이도: S

내용: 대기에 녹아 있는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심법으로 유천영이 개발한 독문무공입니다. 사용 시 마력 회복 속도가 30%만큼 증가하며, 단순히 익히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체가 어려 보이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복사된 스킬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

진혁은 새로 얻은 스킬의 내용을 눈으로 훑었다.

‘마력 회복에 나이가 어려 보이는 효과라…….’

이러니 유천영이 나이에 비해 그토록 젊어 보였나 보다.

‘탐식의 눈’을 통해 확인한 스킬 레벨이 무려 13이나 됐으니까.

거의 상위 네임드 몬스터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리고 진혁이 스킬의 세부적인 특성을 살피는 사이.

“할아버지!”

유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유천영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로 스승님께서 회복하셨다고?”

“지, 진짜야! 마력의 파장이 안정되셨어.”

모두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꿈만 같은 현실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반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허진수는 입을 쩍 벌린 채 할 말을 잃어버렸다.

‘믿을 수 없다.’

상대는 전투 계열.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아직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 마력 폭주증의 치료법을 알고 있단 말인가?

수액과 약품을 통해 엘릭서의 농도를 조절한다는 게 말이 쉽지.

까다로운 배합 비율을 꿰뚫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걸 해냈다.

평생을 의학에 몸담았던 자신들도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너무나 태연스럽게.

덜덜덜!

허진수의 턱이 떨렸다.

이쪽의 패를 모조리 읽어 버리는 통찰력.

S급 판정을 받아낸 압도적인 잠재력.

게다가 의학에 관한 지식까지.

마치, 괴물을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다.

머릿속은 온통 여기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떨고 있는 허진수에게 진혁이 다가왔다.

“저쪽은 오랜만의 해후에 정신이 없는 것 같으니, 우리는 이쪽에서 따로 대화를 하지.”

“나,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응?”

“역시 죽일 건가?”

“아니, 탑 안이라면 몰라도 밖에서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간 골치 아파지거든. 무엇보다 돈 좀 삥땅쳤다고 죽이는 것도 우습고.”

그러니.

“그동안 받은 돈. 그것만 전부 토해내면 돼. 그럼, 보내 줄게.”

“돈만 주면…… 풀어 주겠다고?”

“나쁘지 않은 이야기잖아? 너흰 분노한 유천영의 제자들로부터 도망갈 수 있고. 나는 이 기회에 두둑이 한몫 챙길 수 있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자신의 관심은 오직 돈뿐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처럼.

‘원하는 게 돈이라는 건가?’

허진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돈이 목적이라면, 그깟 돈 따위 줘 버리면 그만이다.

유천영을 죽여야 한다는 임무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가장 중요한 정보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이 계좌로 입금이 되는대로 풀어 드리죠.”

진혁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S급에게만 주어진 혜택 중 하나인, 추적 불가능한 번호가 적혀 있는 계좌였다.

그리고 잠시 뒤.

띠링!

[새로운 금융 거래가 발생되었습니다.]

[강진혁 회원님의 계좌에 ‘36,35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진혁의 핸드폰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약 360억.

그동안 유천영을 상대로 착복했던 금액 중 상당수가 되돌아왔다.

“이제 가 봐도 됩니까?”

허진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정말 만족스러운 거래였네요.”

진혁이 생긋 웃으며, 문 옆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제 더 이상 문을 가로막는 건 없다.

도망가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덜컹!

“히이익!”

“어서 밖으로 가!”

“사, 살았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힐러들이 우르르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혹시라도 진혁의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됐는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뛰어갔다.

“흐음. 저대로 보내 줄 생각이야? 너답지 않은데?”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역시 반지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군.’

하여간 안 끼는 데가 없다.

뭐, 덕분에 부를 수고를 덜었지만.

“엘리스.”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저 녀석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대화하는지 전부 알아내.”

“뭐야. 일부러 놓아 준 거였어?”

“여기서 심문해 봐야 쉽게 입을 열지 않을 테니까. 뭣보다 흑운 길드나 거주자는 먹이사슬 밑에 있는 놈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았을 거야.”

일개미들을 아무리 죽여 봤자 소용없다.

그러니.

“헐레벌떡 도망간 일개미가 여왕에게까지 가도록 유도해야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 * *

한바탕 난리가 난 뒤 병실 안에는 진혁과 유천영 단 둘만이 남았다.

엘릭서가 몸에 구석구석 잘 스며들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려 뒀기에, 유연화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진혁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유천영을 바라봤다.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미 아까 전부터 의식이 돌아와 계셨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진혁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자.

“허허. 기감을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네만. 생각보다 훨씬 눈치가 빠른 젊은이로군.”

놀랍게도 의식이 없는 줄만 알았던 유천영이 두 눈을 떴다.

“내 호흡이 그렇게 어설펐던 건가?”

“아뇨. 완벽했습니다.”

탐지 스킬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라고 할지라도 유천영의 호흡을 읽어낼 순 없었다.

단지, 이쪽은 ‘탐식의 눈’을 갖고 있어서 말이지.

어지간한 속임수쯤은 모조리 간파할 수 있다.

“미안하네. 일부러 자네를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닐세.”

“괜찮습니다. 제가 나타난 타이밍이 꽤나 절묘하긴 했으니까요. 게다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마력 폭주증의 치료법을 알고 있는 점도 충분히 의심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하하! 맞아. 바로 그것 때문에 그랬지.”

유천영이 즐거운 듯 광소를 터뜨렸다.

만약, 진혁이 변명을 한다든가 말꼬리를 돌렸으면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바람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오해했던 것 같군. 그래서, 이 늙은이에게 원하는 게 뭔가?”

“꼭 물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인데 내가 아는 거라면 뭐든지 대답해 주겠네.”

유천영이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르신이 거주자와 싸운 건 시련의 탑이 나타난 첫 번째 날…… 맞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그걸… 어떻게?”

유천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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