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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706화


706화. ‘빛의 책’, ‘어둠의 책’ (1)

스릉….

마이어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검을 뽑았다.

“대체 어느새….”

“길잡이도 없을 텐데, 빨리도 왔군.”

그를 따르던 드레드로어의 랭커들 역시 적대심을 드러냈다.

단 두 명.

키요프와 이반코비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

“…….”

우물쭈물. 두 사람은 진혁이 두려운 듯 오히려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적으로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판단을 내린 것이다.

“건방진 미물들이….”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자 엘리스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한 번에 다 쓸어버릴 생각에서다.

그런 엘리스를 진혁이 말렸다.

“워워, 진정하자고. 우리끼리 치고박고 싸우다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그것만큼 멍청한 게 어딨겠어?”

람세스 대신전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어둠의 책’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나머지 길드들도 반대편에서 ‘빛의 책’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상 공과 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마이어님. 차라리 이 녀석들 함정을 돌파하는데 고기방패로 쓰는 게 어떻습니까?”

메인 힐러인 ‘클로이’가 마이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안 그래도 골치 아파 보였는데. 대신 희생양이 되어줄 이들이 있다면 이쪽으로서는 피를 덜 흘려도 된다.

마이어가 반쯤 뽑았던 검을 집어넣었다.

클로이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같이 공동전선을 펴는 걸로 하지.”

“잘 생각했어.”

“그럼, 바로 첫 번째 임무를 주도록하지. 저기 보이는 게 그 책이다. 가서 나에게 가져오도록.”

마이어의 손가락이 방의 가장 안쪽에 있는 제단으로 향했다.

검은색 해골의 손바닥 위에 ‘어둠의 책’이 놓여 있었다.

“명령조가 조금 기분 나쁘긴 한데, 그 부분은 내가 대인배로서 이해해줄게. 하지만, 이 길은 두 명이 짝을 이뤄야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구조야.”

“호오. 마치 함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투로군. 미궁 공략에 대해서 좀 알고 있나?”

떠보듯이 던진 질문.

“으음. 아마 내가 이 중에서 제일 잘 알고 있을 걸? 내가 테레사 씨나 아델 씨와 파티를 이룬 것도 전부 이 재능 덕분이거든.”

진혁이 턱을 긁적였다.

그러자 마이어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확실히.

별 볼 일 없는 놈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건 나름의 재주가 있다는 뜻. 그게 탐험가의 고유능력 덕분이라면 지금까지 모든 일들에 앞뒤가 맞았다.

그리고 마이어의 머리가 굴러갈수록, 진혁의 입 꼬리 역시 씰룩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런 말을 툭툭 내던졌으랴?

이미 빌드업은 모두 끝내둔 상태였다.

[고유성창 ‘미궁창조’를 발동합니다!]

[결계사의 고유특성이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시스템 조작’이 발동됩니다!]

‘미궁’이라는 특수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그 대상에 간섭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권능.

거기에 관리자들의 특수 능력까지 더해지자 방 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다.

오직 진혁만이 눈치 챌 수 있는. 함정의 근간이 되는 부분들이었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 했다.

‘좋아.’

아예 대놓고 책을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해도. 입맛에 맞게 장난질을 칠 순 있었다.

일단 난이도를 올려볼까?

[‘혼돈의 문양’] [‘검은 바위 문양’] [‘원념의 문양’] [‘증오의 문양’].

그리고….

시스템 조작을 통해서 변질되어버린 [‘천칭의 문양’] 까지.

총 다섯 개의 선택지가 놓여졌다.

첫 번째 고대 룬어를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책에 적혀 있는 내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통상적으로는 책을 얻기만 해도 보상으로서 나쁘지 않지. 애초에 람세스 대신전의 공략 포인트만 놓고 보자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조건이 이 정도 갖춰졌으면 안전을 지향하는 것보다 다소의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

기존의 전력이 대폭 강화된 것도 결정을 하는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테레사 씨도 가브리엘로부터 무언가를 얻은 모양이니까.’

태고의 존재든. 그 남자라 불리는 놈이든. 아니면 그 외에 제3세력이 개입한 것이든.

누가 장난을 쳤던간에 놈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진 않겠다.

진혁이 슬쩍 발을 뗐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불길해 보이는 문양이 그려진 바닥에 발을 놓았다.

“잠….”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며 두 눈을 질끈 감는 플레이어들.

조금 전에 검은 가루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탓이다.

그런데 당연히 발동되어야 할 함정은 잠잠했다.

…정말이다.

“함정에 대해 알고 있어.”

“이럴 수가.”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모두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진혁의 말만 따르면 아무런 희생도 없이 책까지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허나 이들은 전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혁이 선택한 것은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천칭의 문양’. 단순히 지금 당장 함정이 발동되지 않은 이유는 굳이 처음부터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이들은 그저 킬킬대면서 책이 있는 안쪽을 향해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부렸던 여유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우웅!

갑자기 밝은 빛과 함께 저 멀리 있는 곳으로부터 검은색 흑염이 솟구쳤다.

“실드를 사용해. 어떤 종류든 상관 없지만, 화염 계열은 아니어야 해!”

“큭!”

진혁의 경고에 마이어가 즉시 뒤쪽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드레드로어의 랭커 중에서 한 명이 선두로 향했다.

“우오오오!”

쩌렁쩌렁한 고함소리와 함께 탱커 전용 실드가 펼쳐졌다.

[‘아머드 캐슬’이 발동됩니다!]

“뒤는 제가 봐드릴게요!”

메인 힐러인 클로이가 다중 캐스팅을 시전하며 탱커를 뒷받침했다.

“흥. 귀찮게 굴기는.”

진혁 쪽에서는 엘리스가 피로 만든 장막을 펼쳤다.

콰콰콰콰콰콰콰!

순식간에 흑염이 통로 전체를 집어삼켰다.

1분이 넘도록 이어진 폭풍이 끝나자 엄청난 열기에 지면이 지글지글 타올랐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실드 뒤에 있는 이들은 아주 작은 화상하나조차 입지 않았다. 실드 역시 금 하나 가지 않았고.

그러나 안도할 새도 없이 두 번째 함정이 발동되었다.

푸른색 가시 칼날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신성력!”

“뭐, 뭐라고?”

“6성급 이상의 신성력으로 받아쳐야 돼. 다른 건 소용없어.”

“빌어먹을. 갑자기 신성력이라고 말해봤자….”

성기사나 프리스트가 그리 흔한 직업도 아니고. 더군다나 6성급이면 요구치가 너무 높았다. 메인 힐러인 클로이 조차 힐링에 특화되어있을 뿐. 신성 계열 스킬은 전무했으니까.

드레드로어의 유일한 프리스트가 허둥지둥 황금색 검을 소환했다.

곧바로 검은색 칼날 두 개가 원을 그리며 날아왔다.

쿠쿠쿠쿠쿠쿠!

2m에 이르는 크기에 귀가 아플 정도의 파공성을 만들어낼 만큼 속도와 무게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제가 맡을게요.”

[테레사가 ‘기도하는 천사’를 발동합니다!]

방패를 중심으로….

……황금색 날개가 펼쳐졌다.

콰와아아앙!

눈부신 신성력에 부딪친 칼날이 그대로 튕겨나가 천장 깊숙이 박혔다.

반면.

서거걱! 콰지직!

“크아아악!”

드레드로어 쪽의 프리스트가 만든 검은 칼날과 부딪치는 순간 반으로 쪼개졌다. 당연히 그 뒤에 있는 프리스트 역시 반으로 잘려나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숭고한 희생의 제물이 바쳐졌습니다.]

한 명이 죽는 것과 동시에. 저 멀리 책의 위쪽에 있는 유리병 속에 붉은 액체가 약간 차올랐다.

눈으로 확인하기엔 미미한 양이다.

특히나 정신없이 함정들이 발동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욱 알아채기 힘들겠지.

“이번엔 얼음 속성이야!”

진혁의 고함소리와 함정이 발동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두 명, 세 명.

앞으로 전진할수록 희생자가 늘어났다. 유리병에 차오르는 피의 양 또한 늘어났다. 이제는 거리가 꽤나 좁혀져서 육안으로도 훤히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그런 거였나.”

모두가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동시에 깨달았다.

계속해서 희생양이 나와야지만 저 유리병이 가득 찰 테고.

유리병을 가득채워야지만 비로소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

콰콰콰콰콰콰콰!

수백 겹의 결계와 다중차원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변했다.

여기저기 파인 구멍에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힘과 힘이 격돌했다는 방증이다.

“쥐새끼 같은 건 여전하군요.”

촤촤촤촤촤!

시벅컬이 칼날들을 회수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안배해두고 폭풍처럼 공격을 퍼부었지만, 니알라토텝에게 치명상을 입히진 못 했다.

그래도.

일부러 본신으로 온 보람은 확실하게 챙겨두었다.

후두둑….

니알라토텝이 파편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에 몸의 반쪽은 화상과 독에 당한 상처로 진물러 있었다.

“이것도 꽤나 공을 들인 껍데기이긴 합니다만, 당신과 싸우기엔 부족한 모양이군요.”

“언제나 자신들이 가장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오만함이 문제인 겁니다. 그딴 화신체 달랑 하나 준비한 것부터 우리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뼈를 때리는 말은 그쯤 하시죠. 제가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가 영원할 거라 착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오싹하고.

시벅컬은 뼛속까지 시리는 살기를 느꼈다.

제 아무리 완전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해도 니알라토텝은 태고의 존재들 중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한 존재다.

여차하면 판 자체를 엎어버릴 수 있는 한 수 정도는 준비해뒀을 거란 소리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

시벅컬도 그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이곳에 온 것이었기에 서로의 수 싸움은 뻔한 듯 뻔하지 않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분을 삭힌 니알라토텝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제가 패배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슈에뜨라는 몸체를 여기서 잃어버릴 순 없었다.

모든 계획은 슈에뜨를 통해서만 실현이 가능했으니까.

적어도 여기서는 사리는 수밖에 없겠지.

문제는.

슈에뜨라는 인류의 영웅을 이번 이벤트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 그 대가로 무얼 넘겨줘야 할지에 대한 것이다.

시벅컬이 이토록 무리를 하면서까지 자신을 저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진데….

잠시 고민에 잠겼던 니알라토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가. ……’사도’를 구한 거군요. 그 사도가 이번 일에 활약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온 거고요.”

각 신화는 그들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사도(使徒)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당연히 그 범주에는 아우터 갓이나 엘더 갓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하. 플레이어들이 얽히고설켜 난전을 펼치고 있는 메인 이벤트 안에 엘더 갓들의 후원을 받는 사도가 섞여 있었을 줄이야.”

들개들이 노는 곳에 호랑이 한 마리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이제라도 알아차린 건 역시나 당신이라고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마 그대에게 다음 기회는 없을 겁니다.”

이미 모든 계획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남은 건 선택 뿐.

엘더갓들은 네크로노미콘을 가져간 강진혁에게 최후 통첩을 할 생각이었다.

순순히 자신들에게 책을 바치고 충실한 장기말이 될지.

아니면, 강제로 책을 넘기고 죽임을 당할지를.

“…….”

니알라토텝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작정하고 나선 엘더갓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뒷구녕으로 이 정도 일들을 벌여놨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바로 그때.

“그리고 이것과는 별개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3번 째 선택지를 드릴 수 있습니다.”

“3번째 선택지라고요?”

“예. 듣자하니 ‘그 남자’라는 묘한 인간에게 휘둘리고 있나 보던데, 위대한 50층의 지배자들이 결정해야 할 일들에 정체불명의 필멸자 따위가 끼어든 게 불편하더군요.”

태고의 존재들은 경외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그들이 인과율을 정하고 관리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며 탑의 질서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건 니알라토텝 또한 같은 생각일 터.

“놈을 제거하기 위해 임시 동맹을 맺는 거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50층의 패권을 다투는 건 이후의 이야기.

그 전에 건방진 하이에나들을 정리하는 데는 굳이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될 필요는 없으리라.

“…….”

허를 찌르는 제안에 니알라토텝이 멈췄다.

흐르는 시간 속.

스르륵.

시벅컬의 모습이 한 줌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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