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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711화


711화. 움직이는 흉수(兇手) (1)

자리를 비운 건 일주일이지만, 이쪽 차원에선 고작 1시간 남짓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공격대 전체가 전부 사라져버릴 줄이야.

“책을 벌써 해석했다는 거야?”

“아마 그런 것 같다. 장보경인지 뭔지 하는 여자 쪽에서 단서를 발견했다고 했어.”

엘리스가 모래성 위에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꽂았다.

완성이라면서 뿌듯한 미소를 짓는 건 덤이었다.

사무라이 길드의 타케시도 있겠다. EX급 괴물인 그레이와 각 길드의 하이랭커들까지 죄다 모여 있으니 공격대 측으로서는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계산이 섰으리라.

‘전력이야 둘째치고 이 짧은 시간 내에 해석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면 반이라도 갈 것을.

모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었다.

다른 길드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눈앞에 두고 안전만 추구하진 않겠다는 생각이겠지.

이해는 하는데 그 판단을 내린 대가는 쓰디쓸 거다.

“그나저나 아델 씨는 메인 티켓 전 이후로 보이지가 않네요.”

테레사가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나칠 정도로 호전적이고 잔혹한 귀환자가 잠잠한 게 오히려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어중이떠중이들 보다 제대로 된 사냥감을 노리느라 그럴 겁니다.”

천유성이라고.

검귀가 노리는 제1 순위 타겟이 있다.

천유성도 검에 미친 스토커였으니 어떻게 보면 끼리끼리 잘 만난 셈이다.

“공격대를 따라 잡으려면 이쪽 방향으로 가야 해. 인형 하나를 붙여뒀으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응.”

프레이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좋아. 그럼, 마무리해 볼까.”

대충 필요한 것들도 다 확보했고. 이제 마지막 보스전을 끝내고 보상들을 몽땅 꿀꺽 할 일만 남았다.

***

콰콰콰콰콰콰…!

퍼어엉!

어지럽게 교차하는 스킬들.

전신이 붕대로 칭칭 감긴 20m 크기의 미라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재액 그 자체였다.

“키에에에!”

“크오오오!”

수백이 넘는 중형급 크로커다일과 육식형 마수들이 돌진했다.

하늘에서는 수천 마리가 넘는 식인 메뚜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소환수에 마법 계열 능력에….”

콰콰콰콰쾅!

보스에게 접근하던 검사 셋이 그대로 황금으로 만든 창에 맞고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단순히 휘두르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완성된 창술을 펼친 것이다.

“……근접 전투까지 능숙하다니.”

슈자 길드의 은크루마가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책을 얻고 해석한 게 확실히 제 역할을 했다.

[‘어둠의 책’이 특수 능력 ’10가지 저주를 피하는 길’을 발동합니다!]

우우웅!

하늘로 솟구치는 흰색 연기.

미친 듯이 몰아치던 메뚜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태양을 뒤덮는 메뚜기’의 속도가 30%만큼 떨어집니다.]

거기에 대규모 난전을 더욱 까다롭게 하던 피로 물든 강의 저주 또한 반감시킬 수 있었다.

[‘나일 강의 저주’가 일부 완화됩니다.]

정신계열에 작용하는 붉은 강이 크게 그 수위를 낮췄다.

10개의 저주들이 완전히 발동된 필드는 말 그대로 난공불락.

틈 자체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두 개의 책을 통해 일부나마 저주들을 완화시켜뒀기에 그나마 승산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보스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네요.”

메인 딜러 중 하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나머지 양산형 몬스터들이야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다지만, 저 괴물 같은 보스몬스터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상대했던 모든 보스 중에서 가장 강력했다.

게다가 더욱 큰 난관은 각 길드의 공격대 간에 연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해 말고 비켜라!”

“그건 우리가 할 소리다!”

“젠장. 걸리적거리기는….”

“뭐가 어쩌고 저째?”

현대에 나타난 변칙 중에 변칙 미궁.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최악의 참사를 해결하는 게 누구인지는 이후 전 세계의 언론과 매체가 집중 조명할 것이 틀림없었다.

잘만 하면 모든 길드들을 누르고 천외천의 위치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

최대 전력인 그레이마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체력과 마력을 아끼고 있는 상황.

은크루마의 입술이 일자로 굳어졌다.

‘이대로는 안 돼.’

가뜩이나 낮은 승산이 점점 더 떨어졌다. 만에 하나 이기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바로 그때.

[고유능력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측면에서 모든 상황을 뒤엎을 만한 변수가 개입했다.

붉은 강의 한복판에 하늘에 닿을 듯한 황금색 십자가가 만들어졌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한 점의 사심도 섞여 있지 않는 맑은 목소리.

성녀가 바라는 것은 명성도 권력도 부귀영화도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구원하고 인류의 앞날을 수호하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이유들이야 모두 하찮을 뿐이었다.

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콰!

황금색 물결이 휘몰아쳤다.

테레사가 가장 위험한 포지션에서 버텨주자 반목하던 공격대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일어났다.

“테레사 씨….”

“지금 혼자서 나서면 리스크가 너무 클 텐데.”

“상관없다는 건가.”

언제나 이해득실만 따지던 이들로서는 저런 이타적인 희생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합심해야 한다.

당장 누가 최대의 성과를 올리는 것보다는 테레사를 따라 더 이상 피해가 커지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 공통된 생각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반전의 기류가 빠르게 생겨났지만, 희망은 채 몇 초를 넘기지 못했다.

퍼어엉!

난데없이 피어오른 성화(聖火).

“……큭!”

그 불꽃에 직격당한 테레사의 몸이 휘청였다.

“후후. 가증스럽군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마지막에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겁니까?”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백의를 입은 이단심문관들이었다.

지금까지 줄곧 잠자코 있던 바티칸의 사냥개들이 보스 대신 테레사를 노렸다.

화르륵!

또 다시 성화가 뿜어졌다.

고속으로 날아가던 불덩이가 창질 한 번에 반으로 쪼개졌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은크루마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방해하겠다는 겁니까? 우리 일을?”

“빌어먹을. 지금 당신들이 하는 거야말로 모든 인류를 방해하는 겁니다!”

이단심문관들과 슈자 길드 사이에 대치가 이뤄졌다.

“그래도 마냥 바보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네.”

진혁이 천천히 걸어왔다.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이 유독 푸르게 빛났다.

“너는 테레사 씨의 동료…,“

“맞아. 강진혁이라고 해. 당신이 슈자 길드의 대표로 온 랭커 맞지?”

“그래. 맞다.”

“보아하니 자기 뱃속이나 채우는 머저리나 신앙이 과충전된 광신도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우리를 도울 생각 있어? 단기간에 저 보스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거든.”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나라면.”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확신에 찬 듯한 대답에 은크루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평소라면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평범하다 못해 시련의 탑이 나타나고 지금껏 어떤 길드에도 소속되지 못한 유령. 소설로 친다면 전체 서사에 한 번 이상 언급되기 힘든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왜일까?

은크루마는 진혁의 말이 마냥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무라이 길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플레이어.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티칸 쪽과 척을 져야 된다는 건가.”

“뭐, 세상 일이라는 게 전부 다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어?”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군. 알겠다. 협력하도록 하지. 찬틀라.”

“예.”

“이단심문관들을 저지해라. 테레사 씨를 돕는다.”

“진심이십니까? 그러면 뒷 감당이….”

“걱정 마라. 내가 전부 책임지겠다.”

“…알겠습니다.”

슈자 길드의 공격대가 테레사 쪽으로 붙었다.

이걸로 광신도들 쪽 대비는 해두긴 했지만. 아직까지 이 판을 짠 진짜 흉수가 누구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대체 누구지.’

엘더 갓의 사도가 여기 어딘가에 있다.

어떤 함정을 설치해놨고 그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이상,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진혁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수많은 플레이어들 중 누가 엘더갓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쪽은 이단심문관들이긴 한데, 슈자 길드 쪽과 맞서 싸우는 걸 보면 특출나게 눈에 띄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쩌저적….

보그르르…!

기괴한 소음과 함께 ‘어둠의 책’과 ‘빛의 책’에서 각기 다른 반응이 일어났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탐험가가 들고 있던 빛의 책을 황급히 떨어뜨렸다.

반으로 찢어진 책에서 붉은 피가 꿀렁꿀렁 솟구쳐 나왔기 때문이다. 반면 어둠의 책은 주위에 있는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아아악!”

곁에 있던 이들이 송두리째 말려들었다.

“……!?”

진혁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아무리 해석 능력이 개판이라 해도 어둠과 빛의 조화를 무너뜨리는 멍청한 짓까진 할 리가 없을 텐데.

일부러 삽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뜻하지도 않게 첫 시험을 하게 생겼네.’

벨토르와 일주일간 오만한 집합소를 탐험하며 습득한 새로운 언어. 결계를 통해 공간에 결속시킬 수 있게 된 능력이 진혁의 손끝을 통해 새롭게 빛을 발했다.

[고대 결계가 발동됩니다!]

[잃어버린 언어 – ‘허무의 봉합’을 발동합니다!]

쿠쿠쿵!

보라색 언어들이 허공을 가득 수놓았다.

이질적이면서 화려한 문자들은 결계라는 도화지 위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미친 듯이 날뛰던 책들의 균열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대가를 너무도 쉽게 무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난데없이 저주가 사라지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안도감이 터져나왔다.

“책이… 원래대로 된 건가?”

“그건 아니야. 단지, 뭔가가 저주를 막고 있어.”

“설마, 테레사 씨 덕분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숨 돌릴 수 있게 됐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간신히 막았다.

그때였다.

“네놈…이구나.”

진혁의 앞에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츠츠츠….

회색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10대 저주를 다루는 보스 몬스터였다. 수많은 랭커들의 공격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보스가 처음으로 위치에서 벗어났다.

가장 성가신 존재를 처리하기 위해서.

“워. 하얀 오아시스에 이런 미남이 있었나? 있었다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텐데.”

진혁이 미라를 아래에서 올려다봤다.

끔찍한 시취(屍臭)가 코끝을 찌른다.

노란색 안광에서는 침입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적의가 느껴졌다.

“그분의 안식처를… 어지럽히지 말거라. 인간이여.”

[‘세탄 머미’가 고유능력 ‘위대한 혼’을 발동합니다!]

쿠쿠쿠쿠쿠!

마력이 폭주한다.

두 개의 책에서 난 균열은 봉인해두긴 했지만, 세탄 머미의 고유능력이 발동되자 10개의 저주가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춤거리고 있던 중, 소형 몬스터들의 마력과 호전성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쿵! 쿵! 쿵!

“크롸라라라!”

“키에에에!”

일종의 페이즈2.

본격적으로 세탄 머미가 개입함에 따라 모든 난이도가 대폭 상승되었다.

‘좋아 이제 본 게임 시작인가.’

대놓고 나선다면야 이런 놈쯤이야 몇 분 안에 처리가 가능할 테지만, 그랬다간 기껏 온갖 사람들로부터 관심이란 관심은 죄다 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건 안 되지.

어떻게 망각의 샘물을 사용했는데, 그 회한과 씁쓸함의 맛을 다시 보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그렇다면….

진혁이 ‘세계의 기억’에서 보관되어 있는 능력을 꺼내왔다.

[‘고대결계’와 ‘아누비스의 심판’ 그리고 ‘태양의 성역’, ‘파이널 제네시스’가 융합합니다!]

파츠츠…!

네 개의 능력이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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